체호프의 '등불'(1888)은 단편인 줄 알고 시작했는데 긴 편이다.

Landscape with seagulls, 1889 - Lev Lagorio - WikiArt.org


'체호프 문학의 몇 가지 쟁점'(강명수)의 첫 장이 '등불'인데 - '제1부 관념과 현실의 틈새 1장 등불' - 저자 약력을 보면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안톤 체호프의 사상적인 중편소설 연구: ‘등불’에서 ‘6호실’로'이다.






바다는 칠 년 전에 내가 중학을 마치고 고향의 읍을 떠나 수도로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넓디넓고, 끝없고, 웅대하며, 무뚝뚝했습니다.

아득히 먼 곳에 한 가닥의 연기가 검게 보였습니다.(기선이 달리는 것입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움직이지 않는 이 연기의 띠와 물 위에 어른거리는 갈매기 이외에는 바다와 하늘의 단조로운 경치에 생기를 넣어 주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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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등대'는 새해 첫 날로 시작한다.

The Low Lighthouse and Beacon Hill, c.1820 - John Constable - WikiArt.org








1796년 1월 1일 오늘. 등대 근무 첫째 날. 디 그라트의 동의하에 이것을 내 일기에 기록한다. 늘 일기를 규칙적으로 써왔듯이 앞으로도 그러려고 한다. 다만 나처럼 철저히 혼자인 사람에게 특별한 일이 생길지는 의문이고, 혹여 내가 아프거나 아니면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괜찮다!

자, 등화실로 올라가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쭉 둘러봐야겠다……. 진짜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거지! 그리 많진 않지만. 파도가 약간 누그러진 것 같다. -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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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첫 날 폴 세잔의 그림을 본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세잔을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세잔'으로부터 옮긴다.


The Four Seasons, Winter, 1861 - Paul Cezanne - WikiArt.org


Still Life with Bread and Eggs, 1865 - Paul Cezanne - WikiArt.org






"나는 내가 주위의 화가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이런 확신은 오랜 각고 끝에 얻어진 것입니다. 나는 물론 열심히 일하지만 세련된 것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세련된 것은 바보들이나 좋아하는 것이지요. 보통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쟁이들의 기교의 결과물에 불과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은 예술적 가치가 부재하는 속된 것입니다. 나는 내 비전을 달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지식과 진실을 신장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1874년 9월 26일

- 제2장 인상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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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1-01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련된 것은 바보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라는 세잔의 말에서 왠지모를 임팩트가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곡 2025-01-01 16:17   좋아요 1 | URL
위 그림들은 1860년대 작품이고 편지는 1870년대에 쓰인 사실을 감안하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성실하게 고민하고 탐구한 끝에 어머니에게 저런 편지를 썼을 거라 짐작됩니다 ... 감사합니다 새해첫날 마저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1-01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임팩트 있는 문장이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게 아니었군요.. 덕분에 하나 배우고 갑니다. 서곡님도 남은 하루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서곡 2025-01-01 16:43   좋아요 1 | URL
편지글 첫 문장 ˝나는 내가 주위의 화가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는 굳이 쓸 필요 있었을까 싶지만 - 불필요한 우월감으로 느껴져서요 - 본인의 솔직한 심경 토로라 하더라도 - 엄마 앞에서 자식이 부리는 만용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 날고 기는 주변 동료들에게 기죽지 않고 뒤지지 않으려면 꼭 필요한 자기확신일 수 있겠네요...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1-01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교만한 것보단 겸손한 게 낫죠. 그나마 좋게 봐준다면 세잔이 자기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한 사람이었다는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서곡 2025-01-01 16:49   좋아요 1 | URL
당시 파리에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을 많이 보고 만났을 거에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치열하게 작업하는 가운데 화가로서 살아 남으려고 저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1-01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서곡님 말씀을 들어보니 역시 큰 무대에서 실력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도 다시금 해보게 됩니다. 좋은 교훈을 하나 배운 것 같습니다.
 

단편소설 '등불'(체호프)을 읽고 있다. 이 포스트를 올리고 나면 곧 새해가 되리라. 아무튼, 해피 뉴이어!

Street Light, 1909 - Giacomo Balla - WikiArt.org


12월 초에 출간된 '체호프의 문장들 - 생의 고단함을 끌어안는 통찰과 위트'(오종우 편역)를 담아둔다. 2024년은 체호프 타계 120주년.






등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들에도, 밤의 적막에도, 전선의 쓸쓸한 노래에도 무엇인가 공통된 것이 느껴졌다. 이 둑 밑에는 무엇인가 중대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고 등불과 밤, 전선 등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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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1-01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단편집을 두 권 읽었는데- 하나는 펭귀클래식, 하나는 민음사 걸로 읽었음.-등불 이란 작품은 읽지 못한 것 같아요. 워낙 단편을 많이 쓴 작가라 안 읽은 게 많겠지요.
서곡 님,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해피 뉴 이어^^

서곡 2025-01-01 12:05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페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바라는 일 다 이루어지시길요! / 그쵸 체홉이 워낙 단편이 많다더라고요 전자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제 올해가 한 시간 하고 조금 남았다. 휴. 새 달력을 바로 걸 수 있도록 준비했다. '1913년 세기의 여름'(플로리안 일리스)으로부터 발췌한 아래 글 속 슈펭글러처럼, 의미와 맥락은 당연히 다르지만, 지금 이 순간 우울하다.


슈펭글러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0065a

By Noah Wulf - Own work, CC BY-SA 4.0




1913년 섣달그믐. 슈펭글러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는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섣달그믐 밤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약탈되어 치워지고 모든 것이 예전처럼 아주 무미건조해졌을 때 느꼈던 기분이 떠오른다. 나는 혼자 침대에 누워 밤새 울었고, 다음 크리스마스 때까지 그 한 해가 너무 길고 우울하게 느껴졌다. 오늘, 지금 세기에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문화, 아름다움, 색채의 모든 것이 약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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