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들 사이로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말대로 이렇게 죽어버리면 스승님은 더한 고통 속에서 짐승이 되 버릴 것이다. 그렇게라도 살아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둘 것 같지 않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을 향해 말없이 뛰었다. 내 뒤로 기웅이가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

차 안에서 불편하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기억나지 않는 악몽들 속을 헤매다 번쩍 눈을 떴더니 해가 늬엿늬엿 지는 중이다. 내 옆에는 기웅이가 머리를 뒤로 젓힌채 자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해가 닿지 않는 회색 지대에 서서 몸을 추스렸다. 저택 쪽을 올려다보자 희미한 연기가 보였다. 혹시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일어나셨어요?] 

저택의 반대편, 즉 우리 차가 서 있는 도로 너머에서 에스더가 속삭였다. 그녀의 뒤로는 회색빛 숲에서 본 프릭스들이 서 있었다. 나는 아직 완전히 지지 않은 해를 조심하며 그 쪽으로 걸어갔다.  

[모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대장 늑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에게 다가와 손에 코를 살짝 가져다댄 후, 다시 돌아갔다. 

[에스더에게 들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우리가 세운 계획이 있는데..]
[말해줘] 

나는 몸을 쭈그리고 앉아 늑대와 눈을 맞췄다. 

[네가 잠들어 있을 동안에 그 곳에 다시 다녀왔다. 상황은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너의 스승은 그대로 있고, 대신 몇 명의 뱀파이어들이 사라졌다] 

아마도 아까 내가 본 연기가 그 사라진 뱀파이어들을 태운 걸 수도 있다. 누가 그런 죽음을 당한 것일까? 경찰 기동대들? RRS? 

[우리는 건물 안에 있는 프릭스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
[도움? 어떻게?]
[프릭스여도 우리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들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음식을 가져올 것이고, 문이 열리는 그 때 소란을 일으킨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도 합세하고 네가 복도에 연기를 피워준다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너는 그와 함께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너의 프릭스가 같이 부축하면 된다]
[밖에 지키고 있는 뱀파이어들은? 나 혼자서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어]
[고약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들을 끌어낼 수 있게 우리 중 일부가 사람으로 변하면 가능하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나는 사람으로 변할 몇 몇의 프릭스들과 주종의 관계를 맺어야한다. 스승님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사선으로 보내야한다는 말에 나는 당황하여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제가 할꺼에요] 

에스더가 내 옆에서 말했다. 

[저도 할께요] 

그녀의 뒤에서 작은 목소리 둘이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오소리였다.  

[그럴 수는 없어. 너무 위험해. 그들은..뱀파이어야]
[각오 하고 있어요. 숲까지만 그들을 끌어낼 수 있으면 좀 더 많은 친구들이 도와 줄 수 있어요] 

에스더와 오소리들은 내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뿐이다. 우리는 저 안에 같여 있는 다른 프릭스들을 위해 너를 돕는 것이다. 말하자면..일종의 동맹이다, 시한부이긴 하지만] 

늑대의 작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동맹] 

나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단어를 몇 번이고 되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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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따라 왼쪽의 나무들 사이로 걸어갔다. 이 저택의 나무들은 계절에 큰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설계했는지 잎이 뾰족한 놈들이 많아 정신차리지 않을 때면 얼굴을 심하게 찔렸다. 성가신 잎들을 손으로 걷어내며 몇 분 쯤 더 걸어 하수구로 추정되는 파이프 앞에 도착했다. 바닥에는 약 30센치 정도 깊이의 구덩이가 길게 파여 담장 너머로 이어져 있고, 그 한 가운데 작은 파이프가 몸을 드러내놓고 있어, 그 중 왼쪽으로 뚤려있는 구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 추측했다. 

[빨리 다녀와] 

내 앞에서 에스더가 사라지자 다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새벽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종종 올려다보며 햇빛을 피할 곳을 찾으려 애썼다. 앞으로 1시간 정도 후면 아침 햇살이 적나라하게 내리찔테고, 여기는 나무들이 빽빽하지 않아 햇빛에 타 소멸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에 손톱을 깨물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 때 파이프 안 쪽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가가 파이프를 치면서 움직이는 소리라고 판단하자 나는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굴을 파이프 앞으로 가져갔다. 졸졸 흐르던 물이 갑자기 끊어져,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기웅이를 불렀다. 파이프 안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한바가지 정도 되는 물이 갑자기 확 밀려나와 얼굴에 정면으로 쏟아졌다. 

[푸...하] 

나는 손으로 구정물을 닦아내고 눈을 뜨려 애썼다. 오물이 잔뜩 섞인 물은 냄새가 지독해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푹 젓은 고양이 상태의 기웅이가 파이프 안에서 튀어나와 얼굴에 세게 부딛혔다. 우리는 동시에 반대편으로 나동그라졌다. 나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물기를 힘차게 털어낸 후, 내게 다가왔다. 

[스승님 봤어?]
[응]
[살아계서?]
[모르겠어] 

나는 그를 번쩍 들어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나도 모르게 뱀파이어의 힘으로 그를 누르며 흔들어 고통스러운 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제야 그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과하며 자세히 설명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프릭스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어. 그리고 네가 설명한 건너편 방은 비어 있고. 너의 스승님은 제일 첫 번째 방에..말뚝이 박힌 채로..벽에..]
[다른 뱀파이어와 혼동한 거 아니니? 첫 번째 방이면 다른 남자일텐데..왜 너도 전에 본..]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더 이상 말을 전하지 않자,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 숨을 제대로 내쉬려 노력했다. 그러나 천식 환자가 내뱉는 숨처럼 거칠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만 뿜어져 나왔다. 

[곧 해가 뜰꺼야. 일단 피했다가 다시 오자] 

그의 말이 머리 속에서 울리는 대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몸이 얼어붙어 영혼이 빠져나가버린 듯한 상태였다. 

[네가 여기서 햇빛 때문에 사라지면 누가 그를 구하니? 그대로 나쁜 놈들에게 휘둘리다가 죽게 둘까?]
[스승님이 없는 게 너에게는 더 좋은거 아니야? 넌..그를 좋아하지 않잖아]
[그래. 그가 너를 놔주지 않아서 차라리 사라져주길 바랬지만, 이런 식은 아니지. 난 그가 죽는 걸 원한 적 없어] 

그의 목소리가 머리 속을 태워버릴 듯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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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왔어요] 

에스더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나, 몸을 곧추세웠다. 그들은 어느새 사람으로 변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그 건물 가까이로 가서 경찰들이 그분을 구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혹시 마타님께 다른 계획이 있으시다면..] 

[아니야, 너의 말대로 하자] 

나는 에스더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차장 쪽으로 뛰었다. 그들과 함께 흰 건물이 보이는 곳에 갔을 때,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뒤로 숨었다. 그곳에는 기대했던 경찰 병력 대신 무장을 한 낮선 뱀파이어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프릭스들이 다시 고양이와 토끼로 변신했다. 그들은 몰래 들어가보려는 계획을 나에게 설명했다. 

[안돼. 저들은 뱀파이어야. 뚫고 들어가기란 불가능해]
[주변을 확인해보면 다른 진입로를 찾을 수 있을거에요. 마타님은 움직이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그래, 알았어] 

에스더를 보며 끄덕인 후,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덧붙였다. 

[기웅아, 조심해] 

그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라 털을 세웠다.  

[다치지 말고..내 말 알지? 에스더도..]
[네,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에요]
[좀 있다가 보자. 이름..불러줘서 고마워] 

그는 그렇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한 후 시야에서 사라졌고, 에스더 역시 살짝 웃어 보인 후 깡충깡충 뛰어갔다. 나는 그들이 남겨둔 옷가지를 들고 나무에 기대 앉았다. 뱀파이어면서 마타이기도 하니, 어찌보면 굉장한 능력을 가진 것 같지만 실재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투에 취약하니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저들을 물리친 후, 스승님을 구하러 들어가기도 어렵고 에스더처럼 혹은 기웅이처럼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계획을 짤 이성도 부족하다. 그들에게 의존해 이렇게 기다리고 걱정하는 게 다 인가 싶어 심장이 말뚝에 박힌 것처럼 조여들었다.  

그 때 나와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지점 쯤에 건물을 지키던 뱀파이어 하나가 걸어와 멈춰섰다. 그는 담배를 피려고 주머니를 뒤지며 사각사각 땅을 밟는 소리를 냈다. 나는 깜짝 놀라 숨을 멈추고 그가 내는 잡음들에 신경을 집중했다. 담배를 꺼내 빨아들이고, 침을 뱉고, 하늘을 향해 연기를 쏘아올리며 피곤해 미치겠다는 짜증 섞인 욕설이 나오는 그 순간까지.그가 마지막으로 코 앞의 나무에 소변을 본 후 사라지자 나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바짝 조인 후, 눈을 감고 저 건물 안에 있는 프릭스들을 향해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그들을 불렀다. 만약 대답이 있다면 그 안의 상황을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러나 몇 번을 시도해도 아주 약하게 지지직 거릴뿐 딱히 말다운 말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보내는 메시지가 뭔가에 막혀 가지 못하던지, 그들이 받지 못할 상황이라는 결론이다. 어느 쪽이든, 별로 좋지 못하다. 초조함에 손을 주무르며 나무 주위를 왔다갔다 하는데 에스더 혼자 돌아왔다. 

[왜 너만 와?]
[기웅이가 하수구로 들어갔어요. 저는 몸집이 구멍 보다 커서..]
[아..그랬구나]
[저기..괜찮으시다면 다른 프릭스들을 오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다른 프릭스들?]
[네. 대장이라면 이런 일에 좀 더 경험이 많으니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물론 기웅이가 안의 상황을 알려줘야 가능하긴 하겠지만요]
[그럼 일단 나를 하수구 앞으로 데려다주고 갔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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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알았으니까 이러지 말고 빨리 가요, 제발!]
[집으로 돌아가 계십시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왔다. 그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경찰서 문을 나설 무렵엔 검은 색의 기동 경찰차 2대가 급하게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다시 정부 관료의 저택으로 차를 운전했다. 이대로 집에 간들 마음이 편할리 없고, 혹시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무슨 일 생긴거야?]
[무슨 일이에요?] 

머리 속에 프릭스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신호등에 걸리지 않으려고 샛길을 따라 거칠게 운전하면서 그들에게 대략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리로 갈게, 혼자 행동하지 마]
[고마워] 

제일 처음에 든 생각은 위험할 수 있으니 오지 말라고 하려던 것이었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그 안에 있는 프릭스들을 누군가가 맡아야하고, 또 어쩌면 스승님을 구하는 일에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좋겠다고 에스더가 덧붙였다. 우리는 주차장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대화를 접었다. 그들도 달려오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나 역시 사고 없이 운전하려면 집중을 해야한다. 골목은 밤이라 얌체같이 주차해 논 차량들로 구석구석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조심해서 긁지 않게 운전해야 하지만, 나는 지이익 소리를 내며 거의 모든 차의 백미러를 떼어냈다. 요즘 가로등에 달려 있는 CCTV의 성능이 어느정도 일까 잠깐 고려해보며 악셀을 더 힘차게 밟아 마침내 큰 도로로 진입했다. 잠시 후, 속도계를 보니 180에 도달했다.  

정확히 5분 뒤에, 주차장 건너편의 나무 밑에 차를 세우고, 그들이 도착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미터 쯤 뒤에 경찰 기동대의 차량 두 대가 세워져 있어 조심스럽게 다가가 안을 확인하려고 창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내 시력과 청력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그들은 이미 저택 안으로 들어간 게 틀림없다. 다시 내 차로 돌아와 차체에 등을 대고 서서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샤샤삭 소리를 낼 뿐, 나를 둘러싼 주변은 전체적으로 음침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이유 없이 돋아오르는 소름에 입술을 깨물며 어둠에 감싸인 정부 관료의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저 안에 계실 스승님이 무사한지 알고 싶고,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를 껴안아주고 내 체취를 맡았던 게 혹시라도 마지막이 될까 싶어 그런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웃는 듯한 그레고리의 미소가 자꾸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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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줘요!] 

[안됩니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하면 무조건 안전하게 피신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뭔가 한 참 잘못된 듯 한 소리가 계속 메아리치며 증폭되어가 나는 그를 발로 차며 내려달라고 소리 질렀다. 그는 못 들은 척하며 계단을 뛰어올라가 육중한 문을 발로 차 활짝 열었다. 어두운 곳을 최단거리로 뛰어 현관문을 열고는 나를 내려놓았다. 

[가서 경찰을 불러주세요]
[나 혼자요?]
[저는 팀장님을 도우러 가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모습을 감췄다. 나는 울면서 홀이 있는 건물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홀에 당도했을 때, 파티가 끝나 불이 모두 꺼진 걸 깨달았다. 그리고 설혹 누군가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누가 그들 편인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주차장으로 전력질주 했다. 그 곳에는 이제 2-3대의 차만 있을 뿐, 텅텅 비어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찾으려고 운전석과 조수석을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문득 아치 입구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듯해 백밀러로 살펴보니 모르는 뱀파이어 같았다. 나를 따라온 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멍하니 경찰서 쪽으로 운전하는데 목구멍을 넘어오는 훌쩍임이 느껴져 손을 들어 눈가를 만져보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빵빵빵빵!
 

내 앞의 차가 신호를 지키려고 서자, 옆 차선으로 차를 거칠게 돌렸다. 나로 인해 두 개 차선이 엉망으로 얽히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 1분이라도 빨리 경찰서에 도착하는 것 만이 스승님을 도울 수 있으니까.
 

북서울 숲의 붉고 검은 건물에 도착해서 뛰어내릴 무렵엔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에는 슬슬 잠자리에 들어가려는 뱀파이어들이 하품을 하며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나는 문을 활짝 열고 뛰어들어가 지난 번의 기억을 되살리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나를 고문했던 남자를 찾는게 최우선이라 그와 마주쳤던 방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문이 잠겨 있었다. 쾅쾅 내리지차 졸린 눈을 부비며 나오는 뱀파이어와 부딛혔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를 밀치고 들어가 두 개의 방을 모두 뒤졌지만,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어제 작전을 나가서 아직 귀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다른..다른 뱀파이어는요?]
[누구 말씀이십니까?]
[체격이 크고..그..그..] 

나는 마음이 급해 말을 더듬었다. 상대는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지금 경찰을 출동시켜주세요. RRS팀이 위험해요]
[RRS? 그게 뭡니까?]
[지금 장난해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를 향해 화를 내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뒤로 돌았다. 바로 내가 찾던 뱀파이어였다. 

[내가 처리할테니 나가보도록] 

그는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힌 후 문을 닫았다. 나는 두서 없이 설명을 하며 빨리 경찰 병력을 그곳에 파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RRS의 존재는 경찰 내부에 비밀로 되어있습니다.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병력이 가야한다면 먼저 존재를 공개해야합니다]
[이보세요! 당신도 아는 그 분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요. 적들에게 포위당한 채로요!]
[압니다] 

그가 너무 담담하게 말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도울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냥 죽게 나둔다고요?]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제 휘하에 있는 10명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 이상은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또다시 솟구쳐 오르려해 발을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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