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엇보다도 상담이 꼭 필요해요.


사람의 마음은 다만 뇌 활동이 아닙니다. 마음의 핵심에 뇌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마음=뇌, 아니죠. 마음>뇌, 맞습니다. 마음은 삶 전체 활동을 일으키고 이끄는 선도 운동이자 결과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뇌를 넘어선 마음의 치유에는 현실 삶이 개입되어야 합니다. 현실 삶이 개입되는 치유는 스토리가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대화, 즉 심리 상담이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아이들, 할 말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어른들은 막무가내로 무시하지만 아이들, 이미 “알 건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진실을 들어주고 정서적 지지를 보내주고, 이성적으로 수긍해주고, 의지적으로 동참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심리적 현실도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어른들이 제대로,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특유의 감수성으로 어른보다 빨리, 다양하게 이 변화무쌍한 세계를 따라잡고 적응, 변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만 뭔가 덜 자란 준비 단계의 예비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의 현재는 어른의 현재와 동일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공부나 해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경청하는 어른이 꼭 있어야만 합니다.


경청에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경청이란 자기 선입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진실에 주의를 온통 맡기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경청하면 고통의 감염이 일어납니다. 감염이란 말이 서늘하다면 공유로 바꾸어도 무방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내 고통을 함께 나누어질 때 그 고통의 무게는 쑥쑥 덜어지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참으로 경청하는 사람은 다만 내 고통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게 아닙니다. 고통보다 더 큰 나를 알아차립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내가 곧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 고통은 내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리하면 그 투명한 힘은 이내 내게로 감염됩니다. 고통만 감염되는 게 아니고 치유와 깨달음도 감염됩니다.


그러면 고통보다 큰 내가 고통의 여백이 됩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고통, 그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홀연히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영원한 고통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나 또한 영원히 고통에 신음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고통을 호소하는 이, 그것을 경청하는 이, 그리고 고통이 함께 흘러감으로써 치유와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려운 말로 통섭(通躡)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이루어낼 수 있는 최상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위대한 변화를 몰고 오는 것이 치유상담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합니다. 


(4) 쉬고 싶거든요.......


아이들의 한결같은 소원이 잠 실컷 자 보는 거, 부담 없이 쉬어 보는 거, 그렇지요. 예. 그렇다마다요. 큰 휴식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지운 짐, 거의 죄악 수준입니다. 그래 놓고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지요.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하지만 그 잘된다는 것이 가도 가도 멀어지는 수평선 같아서 아이들한테는 사실상 속임수처럼 느껴지는 무엇입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고단한 여정, 여기에 무슨 애착이 있겠습니까. 하여 자꾸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길이 나버린 생각은 두고두고 남은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어찌하면 쉬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 아이가 장차 무인도에서 살아갈 것이 아닌 이상 평범한 사람의 처지에서 사회적 삶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결국 이 문제는 아이들 교육, 입시 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중심축으로 하여 사회적 가치를 재구성하는 매우 커다란 국가적 과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환기하여 아이들의 관점과 정서에 맞는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나마 각 가정 또는 소규모 가정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본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공동체끼리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삶의 길을 합의, 조정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적절한 여유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휴식이 꼭 양적 개념만은 아니므로 아이들에게 높은 행복감을 제공하면서도 압박감을 주지 않는 질적인 길을 제시하는 것이 마냥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현재 우리사회 분위기상 그리 녹록치는 않겠지만 그럴수록 이런 요구에 대한 갈망도 커질 것임을 감안한다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아늑한 오솔길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어찌하든 우리 아이들에겐 지금 절대 개념의 휴식을 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왜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온 길을 문득 멈출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잠시 또는 일부의 여백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와 행복을 재정립하는 방향전환이 그 휴식을 낳는 것이어야 합니다. 참으로 절박한 문제인데 그만큼 한없이 답답한 문제입니다. 생각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힘 있는 사람은 생각이 없으니 말입니다. 기성세대 한 사람으로 오직 참담할 따름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 한 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엄마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챙기는 것을 혼동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아이의 삶, 특히 감정의 형성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며 함께해주는 것입니다. 챙기는 것은 결과만을 염두에 두고 해결을 돕거나 제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아이 자신에게 맡기고 기다리며 “그냥 내비 둬~”할 줄 아는 너그러움입니다. 챙기는 것은 한사코 손 대고 입 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악착스러움입니다. 이 혼동에서 벗어나야 아이의 휴식에 진심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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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1) 약물치료, 문제없나요?


흔히들 말합니다. 우울증, 약만으로도 쉽게 나을 수 있다고. 그런가요? 물론 가벼운 경우 약으로 증상만 완화시켜도 일상생활로 금세 돌아갈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우울증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평생을 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은 어쩌면 최소한의 치료법일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우울증 치료약을 먹으면 자살충동이 일어난다는 지적까지 있고 보면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미국의 어떤 임상심리학자가 쓴 <우울증 치료제(SSRI)가 청소년 자살 증가의 원인인가?>라는 글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미국 내 10대의 자살률이 최근 크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져 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통계인 2004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8%나 증가 했고 그전 15년간의 자살률 감소 추세를 크게 벗어났습니다. 10세에서 14세까지의 여자 어린이의 75.9%의 자살 증가율을 비롯해 모든 나이의 남녀 청소년들의 자살시도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는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급증하는 자살의 가장 유력한 이유 중 하나는 뜻밖에도 2004년 당시 미국 연방 정부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대표적인 우울증 치료제인 SSRI에 부착한, 복약 후에 자살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입니다. 이 경고문은 청소년의 우울증 치료제 사용을 즉각 20% 이상 감소시켰으며 치료제가 필요할 때 약의 사용을 기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자리 잡히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의 치료제인 SSRI가 어떻게 해서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증상인 자살을 치료하기는커녕 증대시킨다고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경고문을 넣었을까요. 그것은 미국 식품의약국 자체에서 실행한 연구에서 이 약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자살시도 비율을 2%에서 13%까지 증가시켰다는 결과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 결과에 상응해 그런 경고문을 넣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과된 것은 환자가 우울증을 경험할 때 정말 심한 경우엔 자살을 할 여력이나 자살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우울증 치료제의 투여 시 갑자기 생기는 여력과 기운은 전에는 시도조차 못했던 자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줍니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계 권위자들은 우울증 치료제 투여 후의 많은 자살시도는 우울증 치료제의 본질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환자에게 생기는 갑작스런 기운과 여유로 인한 현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번 짚고 넘어갈 것은 SSRI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우울증에 많은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프로작(Prozac)은 어린이들에게 65%의 약효가 입증됐고, 졸로프트(Zoloft)는 75%의 약효가 입증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심한 우울증을 경험해서 약을 처방해야 할 때 자살할 위험 때문에 약을 처방하지 않는 경우, 아직 심하지 않았던 우울증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자살의 위험이 오히려 증가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번 갑작스러운 청소년 자살 증가는 필요한 치료제를 자살의 위험을 의식해 기피한 것이 오히려 큰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우울증의 경우 약의 치료보다는 심리적인 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증세를 일으키는 원인이 있을 경우 근본적인 원인을 인식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그 증세가 언제나 재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을 이용하지 않고 치료가 가능하다면 절대로 약을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약을 병행해야 치료가 가능할 때가 많습니다.(이하 생략)


무슨 의도에서 쓴 글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지니고 있는 기본 철학에 동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관계와 논리에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약을 먹고 자살을 하는 것이 약의 부작용이 아니고 오히려 약 효과로 나타난 여력과 기운 때문이라는 주장이 옳다면, 그 앞에서 경고문 때문에 약을 기피해서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해석과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약을 안 먹어서 여력과 기운이 생기지 않았는데 무슨 힘으로 자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말일까요? 약을 먹어서 자살하는 사람과 약을 안 먹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같을 리 없는데 어떻게 이런 논리가 나왔을까요? 더군다나 바로 앞에서는 자살을 우울증에서 가장 무서운 증상이라고 했으면서도 약을 먹으면 증상이 완화되어 자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한다고 하니 이 또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혼란이 생긴 걸까요?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SSRI라는 약 하나의 작용 범주에 함몰되어 논의를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하면 세로토닌 양이 늘어나 우울증 상태를 완화한다는 사실에만 집착했지 신경전달물질 상호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로토닌은 도파민계열 모노아민 억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사람일 경우 세로토닌이 늘어나서 자살한 게 아니고 도파민이 억제되어 자살을 한 것입니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편리한 대로 분리하는 논리는 아무래도 제약회사의 입김 같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SSRI의 효과이자 부작용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은 본디 SSRI로 치료해서는 안 되는 환자였던 것입니다. 우울증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낳은 비극입니다. 제가 먼저 쓴 책(<안녕, 우울증>)에서 말씀드렸듯 우울증은 현재 적어도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분류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따라 치료를 달리해야 합니다. SSRI를 일단 줘 보는 식의 치료는 극히 위험합니다. 가령 도파민 부족으로 삶의 의미를 못 찾고 있는 사람에게 SSRI를 쓰면 자살을 권하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거기다 대고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로 에너지가 생겨 자살했다고 말하면 누가 듣더라도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쓰면 약에 분명히 완화 효과 있다는 거, 인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교과서적 의학 수준에서 과연 제대로 약을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제 임상의들이 적절한 진단 방식을 통해 우울증의 유형을 분류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식을 갖추고 거기에 맞추어 약을 체계적으로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다른 안전장치 없는 “아니면 말고” 식의 약물 치료는 삼가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공-화학적으로 조제된 약물로 뇌신경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의 병을 고치겠다는 발상 자체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람은 뇌가 조종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의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인간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킬 의무가 있는데도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 가지 구체적인 폐해 사실을 더해두기로 합니다. 우선, 거의 모든 정신과 양약은 칼슘과 마그네슘 효능을 탈취합니다. 두 물질 모두 사람의 정신 안정에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정신과 양약을 오래 복용하면 정신 안정이 무너진다는 모순에 봉착하게 됩니다.


둘째,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SSRI는 소화관을 망가뜨리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로토닌은 뇌에 2% 미만, 소화관에 98% 이상이 분포하기 때문입니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 효과가 소화관에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결국 과량의 세로토닌이 소화관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필연입니다. 더군다나 소화관은 이른바 “제2의 뇌”라고 말해질 만큼 정신 문제와 직결됩니다. 이 문제 또한 앞의 폐해와 똑같이 모순을 낳고 마는 것이지요.


셋째, 이는 양약 일반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거의 모든 양약은 우리 몸을 차게 합니다. 몸이 차다는 것은 한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매우 좋지 않은 사실입니다. 암을 비롯한 수많은 중병들이 낮은 체온과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런 일련의 문제를 놓고 생각한다면 양약 일변도로 우울증 치료에 접근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2) 아, 그럼, 한약은 어떤가요?


물론 한약도 약입니다. 약으로 마음의 병을 완벽하게 다스린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교만한 것이란 점에서는 양약과 다를 바 없이 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약은 양약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선 양약은 기본적으로 병이라는 적대적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그 기전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게 서양의학의 기본자세거든요. 우울증의 경우 앞에서 거론된 SSRI라는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그대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입니다. 부족한 세로토닌을 공급한다거나 세로토닌 신경계를 활성화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한약은 이와 달리 기본적으로 보충해주고 활성화한다는 개념입니다. 서양의학에는 없는 보(補) 개념을 통해 생명의 자체 치유능력을 돕는 방법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양약과 같은 극단적인 부작용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약의 쌍방향조절 기능입니다. 양약과 달리 필요한 성분만 추출하거나 조작해서 쓰는 게 아니라 생명체인 식물 자체를 쓰기 때문에 식물의 생명 특성이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땅에 뿌리 내리면 죽을 때까지 이동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쌍방향적 성품을 지니게 됩니다. 물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한약, 특히 여러 가지 약재를 조합해서 달이는 탕약은 사람의 생명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쌍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서양의학에서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대로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약은 SSRI처럼 재흡수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세로토닌 부족을 메우는 게 아니라 세로토닌 신경계를 활성화하고 세로토닌의 전구물질인 트립토판을 공급해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또한 일방적으로 이런 효과가 일어나 도파민 신경계를 과도하게 억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쌍방향 작용을 합니다. 결국 약만으로 따졌을 때 한약이 양약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종합적인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약만으로 우울증을 치료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우울증을 잘 모르거나, 약을 과신하거나, 최악의 경우 그 둘 다거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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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특별한 짝꿍 질환이 있어요.


아이들의 우울증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 바로 발달장애입니다. 이 문제는 뒤에 가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지만 우선 <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의 저자 호시노 요시히코의 개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발달장애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이른바 자폐증과 아스퍼거증후군을 아우르는 광범성발달장애(PDD), 그리고 학습장애(LD)가 모두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장애라는 표현이 주는 편견을 고려하여 그는 발달장애를 발달불균형증후군으로 다시 고쳐 말합니다.


발달불균형증후군이 만병의 근원이라 하는 호시노 요시히코에 따른다면 이것이 우울증과 결합할 경우 우울증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됩니다.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마도 엄밀한 인과관계로 놓기보다는 평등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 어쩌면 파악하는 관점의 문제이지 본령은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규명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아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다양하게 고통 받고 있는가를 살피는 게 중요하겠지요.


2009년 여름에 나눈 대화입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전 중3 16살 여자고요. 요즘 너무 기운이 없어요. 과다수면 아니면 기면증에 걸린 게 아닐까 하고 두렵고요.


제가 우울증 대인공포 조울증, 이런 게 좀 심한 거 같아서 글을 남겨요. 요즘 스트레스에 정신적으로 힘들고요. 잠 때문에 또 몸이 너무 힘들어요. 학업, 가족, 메이크업 학원(진로 이쪽)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진짜학교에서 밥 먹다가도 운다니까요? 그냥 순간적으로 기분이 확 상하고 기분 안 좋을 때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아지고 울죠.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않아요. 물론 학교에서 즐거운 시간도 조금은 있겠죠. 하지만 워낙 감정 기복이 심해서....... 전학 온 뒤로 더 심해진 거 같아요. 미칠 것 같아요.


제가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했잖아요. 어제 학교에서 일기 쓸 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손목을 칼로 내려찍어서 죽여 버리고 싶다." 이렇게 썼다니까요? 이런 제가 지금 보니까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에요.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삶의 낙이 없어요. 취미도 없고요. 취미 찾아볼 생각도 없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전 우울증 스트레스 조울증 이런 거 테스트할 때마다 다 점수가 높게 나와요. 낮게 나오는 딱 하나 자살 테스트뿐. 자살할 용기는 없어요. 인터넷 중독도 심각하게 나오는 편이구요.


마음이 복잡해요. 저도 이런 제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너무 복잡해요. 미칠 것 같아요. 한의원이나 정신과 이런 곳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안정 취하고 싶은데 돈도 걱정이지만 엄마, 아빠가 그런데 왜 가냐고 할 것 같아요. 엄마아빠는 제가 이런 줄 몰라요.^^ 활발한 애로 알고 있어요. 분명히 한의원이나 정신과 가자고하면 미친년 취급하면서, 돈 아깝다고 공부나 해! 이럴걸요? 안 봐도 비디오죠. 이렇게 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제가 싫어요.


자가 테스트에서는 ADHD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성불안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입니다, 자세한 평가 및 치료가 필요합니다, Hamilton 테스트하신 결과는 19점입니다, 당신은 중간 정도의 우울증 증상이 있습니다.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답변]


1. 부모님과도 소통하지 못한 채 이런 상황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구체적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마음 상태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2. 자신과 생활을 살피다가 자가진단까지 하게 되었겠지만 그 결과를 보고 지나치게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참고 자료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합니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우울증 환자가 된다는 극단적인 말도 있는 것처럼 이런저런 병명에 얽매이다 보면 정말 내가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까 더럭 겁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라면 열여섯 나이에 홀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현실인 것이 맞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 특히 의지만한 어른이 계시지 않다는 게 참으로 힘든 부분입니다. 사실 공부 문제든 진로 문제든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데 어른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하면 뭐가 되는 줄 아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가 잘 안 되지요.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더더구나 완고합니다. 사춘기 때 존재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 능력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허무감에 빠져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생각이 자라는 폭량과 실제 할 수 있는 일 사이가 너무 커서 절망감, 우울감에 빠져든다는 사실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또 하나, 더 어이없는 편견이 있습니다. 어린 애가 무슨 우울증이냐, 네가 뭐 부족한 게 있어서 우울증이냐,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신력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회풍조입니다. 이는 참으로 '완전' 무지입니다. 우울증의 90%는 청소년 초기에 발병합니다. 부모 없고 돈 없어서 우울증 걸리는 게 아닙니다. 우울증은 정신력으로 버틸만한 기분저하를 넘어선 뇌질환입니다.


3.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 *** 님 자신부터 자신이 처한 시기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자신에게만 일어난 특수한 것이 아니고 남들에게도 일어나는 보편적인 것이란 사실을 차분히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읽을 수 있어요. 그래야 무서움이 성큼 덜어지거든요.


다음에는 진지하게 이 문제를 부모님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물론 안 봐도 비디오인 거 압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계속 말씀하셔야 해요. 필요하다면 이 상담 글을 보여드리세요. 그래도 안 되면 제가 부모님과 직접 통화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개별적 연락 통로를 이용하지요.) 아무튼 이 문제는 중3 학생이 혼자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4. 지금 상태를 그냥 내버려 둔 채 시간이 약이다, 하고 버티면 안 됩니다. 중3이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의 시간이 질적으로 아주 소중합니다. 객관적으로 우울증이다, ADHD다, 이런 병명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생활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서둘러 부모님께 알리시고 길을 찾아야 합니다. 힘!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학습장애는 이미 우리사회의 주요 문화목록어가 된지 오래입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들의 이 문제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이들의 성적이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의 인격의 고른 성장, 그에 다른 사회적 스킬의 균형 잡힌 발달 문제보다는 당장 급한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짝꿍인 우울증에는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한테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보이는 행태가 전형적인 (어른) 우울증의 증상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발달장애가 우울증 뒤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발달장애는 감추어져 있는데 그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잘 낫지 않게 되므로 상황이 꼬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광범성발달장애 가운데 전형적인 자폐증은 어려운 병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우울증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스퍼거증후군이 문제겠지요. 아스퍼거증후군은 일상적 대화나 학습활동에는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특별한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공감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맥락과 상관없는 일방적인 언행을 거침없이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잘 융합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고립이 일어나고 우울증과 결합됩니다. 아, 물론 반대의 수순을 밟기도 하겠지만요. 요즘 이런 아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낍니다. 아스퍼거증후군을 병이라고 볼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발달의 불균형과 우울증이 공존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크게 문제 되는 짝꿍이 불안장애입니다. 2009년 겨울에 나눈 대화입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학생입니다.


제가 지금 공부를 해야 되는 시기인데,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고 너무 지쳐요. 중2때부터 불안한 증상이 시작되고, 중3때, 그리고 고1인 지금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우울증 검사를 해보니 심한 증상이라고 나오더군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제가 이제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될지 모르겠어요.


마음속에 불안들이 자꾸 휘몰아쳐요. 첫 번째 불안은요 제 주위의 사람들이 죽을까봐, 저의 이러이러한 행동 때문에 사고를 당한다거나 죽고, 제 곁을 떠날까봐 자꾸 나쁜 상상이 되고, 불안해져요.


두 번째 불안은 성폭행, 성추행, 납치, 강제, 폭행, 폭력, 살인 이런 사회적으로 안 좋고 무서운 일들이 저한테 일어날까봐, 제 가족들, 제 친척, 저의 소중한 사람들이 당해서 제 곁을 떠날까봐 걱정이 되고, 마음속으로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계속 생각을 하지만, 자꾸 생각이 나요.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할까봐 그게 두려워요. 전 그냥 평범한 학생인데, 중3때 남자애처럼 생긴 공부 잘하는 어떤 여자애가 있었는데, 저는 '쟤는 어떻게 공부를 잘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빤히 쳐다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들한테는 제가 동성애자로 보였을 까봐 그게 걱정이 되요. 지금으로선 많이 지난 일이지만요. 그때 그 여자애의 친구들이 귓속말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저를 보면서 욕을 한 것 같고, 제 얘기를 하는 것 같고, 저를 오해해서 제 친구들한테 오해한 것을 말할 것 같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이글을 읽으시는 선생님께서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실까봐 겁도 나고요. 막 다른 사람들의 나쁜 일에 잘 됐다 이런 생각 들 때도 있고 그럴 때면 벌받을까봐 걱정된 적이 많아요. 제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혹은 어떤 친구가 저를 원망하거나 복수하려고 할까봐 겁이 나고요. 항상 똑같은 고민 똑같은 생각을 하며 힘들게 지내고 있어요. 벌이란 것이 무섭고 생각하는 것이 무서워요. 아무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공부에만 전념하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돼요.


그냥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가끔씩 밀려들어오는 생각에 무표정으로 멍하게 있을 때도 있어요. 음, 다른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은 제가 이런 고민을 하는 줄 모르고요, 말하기도 싫어요. 저 어쩌면 좋을까요. 공부도 안 되고 지금 너무 힘듭니다. 꼭 답 글 써주세요.


[답변]


1. 한창 공부할 시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2. 기본적으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감에 상처를 입었군요.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가지는 감정 가운데 하나인 신뢰감에 문제가 생기면 우울과 불안이 나타납니다. 어떤 곡절이 있어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일단 깊고 자상한 상담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합니다. 더 지체하지 말고 부모님과 진지하게 의논하셔서 상담 받으세요.


3. 그리고 한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잊지 마셔야 해요. 지금 *** 님의 연령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 능력이 급성장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무의미감, 공포감, 불안감 등이 수시로 출몰하지요. 하지만 그것들 영원하지 않아요. 다 지나갈 것입니다. 따라서 너그럽게 생각하고 견디는 순간들도 필요합니다.


4. 하지만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으셔야 해요. 힘!


물론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결합은 어른의 경우에서도 현저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훨씬 더 심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감정-뇌가 팽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생애 초기에 겪은 다양한 공포들이 다시 점화되고 일반화되어 청소년기의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조여드는 성적(成績)에 대한 압박감, (이성) 친구 관계의 미묘함, 성적(性的)인 상상과 욕구에서 오는 폭발적 공격과 그에 따른 죄책감, 외모에 대한 날카롭고 중독적인 관심, 그리고 추상적 사유 능력이 가져다주는 죽음 등에 대한 서늘한 경도(傾倒) 등이 매우 현실적인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누구도 동참할 수 없는, 그런 불안이, 초조가, 조급증이 언제나 30cm 안에 있습니다. 책을 열 때 손끝이 떨리는 그런, 밥 한 숟가락 밀어 넣을 때 속이 문득 굳어버리는 그런, 야자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 홀연히 아득해지는 그런, 그런, 불안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울울한 마음을 그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을 때, 아이들은 속절없이 우울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엄마도, 아빠도, 분명히 그런 시절을 겪었을 텐데, 왜 기억하지 않는 걸까요? 누구든 다 그런다고요? 그래요? 그러면 누구든 다 죽을 텐데 뭣 하러 사나요? 헐~!  


세 번째로 크게 문제가 되는 짝꿍, 바로 불면증입니다. 2008년 여름에 나눈 대화입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고3학생입니다. 수험생은 아니고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도 아니고요.


근데 요즘 들어서 자꾸 밤이 되면 잠이 안와요. 불면증인 거 같은데....... 뜬눈으로 밤을 지내구요. 아침에 해 뜨는 거 봐도 잠이 안 들어요.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심하고요. 그래서 몇 시간 못 자고 또 일어나서 밤을 새곤 해요. 진짜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막 나고요....... 누가 조금만 서러운 말을 하면 그냥 눈물이 줄줄 흘러요. 쓸 데 없는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을 못 자는 거 같은데 아예 잠이 안와요. 잡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리고 죽고 싶다는 충동도 많이 느끼고요.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구요.


제가 어릴 때부터 병을 갖고 있어요. 임파선 혈관 기형이라는 병이에요. 얼굴에 부어오르고 보기 싫은 상처 때문에 옛날부터 마스크를 끼고 다녔었어요. 그래도 당당하게 잘 살고 있었거든요. 근데 요즘 들어서 제가 너무 한심해 보이고 1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데 걔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더 눈물 나고 섭섭하고 서운하고 그런 거 같아요.


그 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서 왜이런지 모르겠어요. 정말 힘들어요. 지금도 눈물이 막 나요. 너무 서럽고 우울하고 섭섭하고 뭔가 모르게 슬프고 밤에 잠도 못자고 왜 이런 거죠?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와요.......피곤한데 잠이 들지가않아요.......


[답변]


1. 아주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위로와 공감의 마음을 전합니다.


2. 전후 사정으로 보아 수면장애를 동반한 우울증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병명의 확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고요히 받아들이는 일이 치유의 지름길입니다.


수면장애도 우울증도 있을 만해서 있는 것입니다. 즉 곡절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것을 살피지 않고 병이니까 무조건 빨리 떼어내야 한다고만 생각하면 일이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모든 질병은 내면의 소리를 간직하고 있으므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잠이 안 올 때 '잠이 안 온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깨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깨어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하게 되지요. 눈물이 흐를 때 우울하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눈물은 슬픔을 씻어내는 약이기도 하거든요. 이렇듯 진실은 모순된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 온 영혼이 눈뜨기 위해 지금 많이 아픈 겁니다. 마치 해 뜨기 전 어둠이 더욱 짙은 것처럼.......


3.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지녀 온 병과 그 치료적 외상에 결부되어 자긍심이 입은 상처가 핵심 아닐까 싶군요. 이 문제는 자상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4. 하지만 고통은 고통입니다. 단순히 정신력으로 승부할 게임이 아닙니다. 수면중추를 포함한 신경, 내분비, 면역계의 이상 상태를 분명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심층 상담은 물론 약물(수면제가 아닌)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우울증에 내면의 소리가 깃들어 있다고 해서 고행주의를 자처할 이유는 없지요. 더 미루지 말고 부모님과 상의하여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셔야 하겠어요. 힘!


물론 기면증도 있어요, 한사코 자려 하는 병 말입니다. 사실은 똑같은 겁니다. 대략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수면주기가 전면적으로 재조정된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감정-뇌의 팽대와 무관하지 않겠지요. 이때는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잠이 요동을 칩니다. 완전 말똥말똥하거나, 완전 ‘시체’거나....... 이걸 보고 어른들은 또 욕합니다. 예민하기 짝이 없다, 신경 줄이 너무 가늘다, 정신이 썩었다, 결기가 부족하다.......마치 아이들이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투로. 정작 윤리적 감수성이 필요할 땐, 세상이 다 그런 거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고, 생명의 이치가 작동할 땐 막무가내로 윤리를 들이밉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짝꿍. 맨 끝에 놓아서 섭섭하겠어요, 바로 중독이죠. 우선 퍼뜩 떠오르는 것은 게임중독입니다. 2011년 초 봄에 어느 엄마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질문]

초등학교 3학년 된 아이를 둔 40대 초반 엄마입니다. 요즘 아이가 온라인 게임에 너무 빠져 있어 걱정입니다. 집에서 못 하게 하니까 주변 PC방을 다니더군요. 학교 근처 문방구 앞에도 작은 게임기가 있어서 몇 시간 동안 하고 돌아오는 눈치고요. 집에서도 게임을 하게 해 달라며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닙니다. 제가 잔소리도 심하게 해보고, 달래보기도 하고 아이 아빠도 야단쳐 보지만 소용이 없네요. 제가 보기엔 아이의 머릿속에 게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이런 문제를 대할 때 흔히 우리 어른들이 취하는 극단적인 태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게임중독에 빠져버렸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그 치료 방법을 찾아나서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먼저 부모가 아이를 야단치고, 도덕적으로 훈계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지요. 어떤 부모는 미끼를 던져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 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계약’을 맺기도 합니다. 그러다 안 되면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위해 심리상담소나 신경정신과 병의원을 찾습니다.


다른 하나는 방치하는 것이지요. 먹고살기 바쁜 부모의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일일 테지만, 편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극단이지만 두 태도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정서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아이들이 어떤 감정적 경로를 거쳐 게임에 빠져드는지, 그리하면 아이들이 어떤 정서 속에서 살게 되는지,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결과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는 극단적 규제로, 다른 하나는 극단적 방임으로 고착되는 것이지요. 둘 다 나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아이가 지금 중독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정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물론 재미 수준을 넘어섰을 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아이의 정서, 특히 감정적 결핍이나 상처입니다. 결핍이나 상처 때문에 격화된 감정이 아이를 그런 곳으로 몰아가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학교생활에 대한 불안이 격화되면 게임에 몰두함으로써 그 불안을 피해 가려 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감정 형성 과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게임을 금지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게임에 빠져 있다는 현실 이전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현실을 알아차려서 맞장구 쳐주고 다독이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감정은 나 몰라라 하고 행동만 금지하는데 아이가 어찌 그 금지를 진심으로 수용하겠습니까.


이맘 때 아이들의 경우 이성·의지 에너지가 감정 에너지를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감정적으로 마음 문을 닫은 아이는 더 이상 어른의 이성·의지적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니라 듣지 못 합니다. 여기부터 해결하세요. 그게 바른 순서입니다.


중독은 게임 말고도 많죠.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폭력, 전쟁, 정복 등에 관한 환상적인 생각이나 만화, 판타지 소설. 실제적 폭력, 절도, 폭주, 음주, 흡연, 본드 흡입, 섹스. 또, 아, 자살 시도. 이 모든 것들이 실제 일어나는 몸 감각, 삶의 열정을 제압하기 위한 도피이자 슬픈 실천인 것입니다. 어른들은 물론 이 또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어 심판합니다. 중독을 몰고 온 고통은 모르쇠. 고통을 낳은 우울은 개 무시. 아, 우리 짝꿍이 물어요, 어른들은, 우울증이 몸 감각을 죽일 때, 어떻게 당당히, 그리고 관능적으로 대처하느냐고요. 흠, 알죠, 어른들한테 할 말이 없다는 걸.


편리한 대로, 어쩔 땐, 덩치 작은 어른으로, 어쩔 땐, 반 토막 인간으로 아이들을 가지고 노는, 사물화 하는 일일랑 이제 그만두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그 자체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 자체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자체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 자체의 눈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른과 다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에 주의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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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 우울증, 무엇이 다를까요?



(1) 분노, 공격성, 그리고 거부로 나타나지요.


제3장에서 인용했던 소녀의 글을 필요한 부분만 다시 보겠습니다.


.......집에만 오면 모든 게 짜증났고요. 자살시도도 했었습니다. 무서워서 중간에 그만뒀었지만 매우 여러 번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2,3학년 때 특히나 심하게 자살하고 싶어 했고요.......


그리고 옛날엔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화가 나면 주체를 못하겠고 물건 던지고 싶고 뭔가 부러뜨려야 성에 차고........또 화도 너무 자주 납니다. 짜증나고 신경질 나고....... 엄마랑 사사건건 부딪히고요. 몇 마디 대답하면 엄청나게 뭐라고 하기 때문에 결국엔 엄마 역정 제가 다 받아주는데....... 이렇게 한번 싸우고 나면 갑자기 세상이 싫어지고 그냥 죽고만 싶고 어디론가 꺼지고 싶은 느낌입니다.......


이 소녀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청소년기 우울증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분노, 공격성입니다. 이는 성인 우울증의 무기력, 허무감과는 전혀 다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 근거로 작용합니다. 저렇게 덤비고 못되게 구는 게 무슨 우울증이냐, 이런 반응을 낳게 하는 것이지요.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자살충동과 자살기도입니다. 이는 분노와 공격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충동과 시도일지라도 그것은 자기모독의 흉터, 자기부정의 길을 선명하게 남기는 일이므로 쉽게 다루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또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경계를 설정하고, 확인하는 일에 민감해져서 빠른 주기로 엄청난 감정의 격차를 드러내거나, 과시적 자해를 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노와 공격성은 반사회적인 생각이나 행동으로 확산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부모나 가족과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고 사회 규범이나 가치를 거부하고 거기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폭력, 전쟁, 정복 등에 관한 환상적인 생각이나 만화, 판타지 소설 등에 빠지는 것은 물론, 실제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절도, 폭주, 음주, 흡연, 본드 흡입, 문란한 성관계 등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이런 특징들은 청소년기의 생리적, 사회적 특성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청소년기는 매우 미묘한 경계시기입니다. 생각이나 몸은 어른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는데 실제로 그에 맞게 생리적, 사회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대부분 금지되거나 무시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그들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준(準) 인간쯤으로 여깁니다. 오직 완전한 어른이 되기 위해 배우고 예비하는 일에만 매달리도록 묶어두려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언사,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


참으로 질리도록 듣는 말입니다. 그러나 생리적으로든 사유능력으로든 이 무렵 아이들은 성인과 거의 다름없습니다. 오히려 생리적으로는 더 왕성합니다. 사유능력 면에서도 실제 시간이나 교육 기회의 차이에서 오는 전문적 지식과 연계된 것이 아닌 한 기본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금지와 무시로 말미암은 괴리에서 오는 억눌린 감정이 이들 우울증의 고갱이입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를 것입니까. 문제는 특히 우리사회가 지니고 있는 강도 높은 부조리함입니다. 유교사회에서 식민지를 거쳐 군부독재를 오랜 세월 겪으면서 내면화된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지배논리가 너무나도 견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현실. 이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의 우울증을 가파르게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판단기준조차도 성인 중심이니 더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아이들은 다릅니다. 어른의 기준에서 그렇다, 아니다,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우울증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아이들을 더욱 절망하게 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의 우울증을 더 깊게 합니다. 윤리 이전에 감정이 있습니다. 청소년기 아이들, 특히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의 이른바 감정-뇌는 매우 팽대해져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윤리-뇌는 2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설혹 윤리적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윤리 규범을 들이대며 훈계하거나 때리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윤리는 아이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른들만의 질서이고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끼리만 노는 상에 아이들이 왜 들러리를 서야 하는지 묻는 것은 그냥 철없는 질문이 아니고 준엄한 질정입니다. 그대들이 어른 맞는가, 묻는 호된 채찍입니다. 악(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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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사회의 특별한 조건2-불화하는 가정, 가정 폭력


[질문]


안녕하세요? 우선 이런 곳에서라도 털어놓는 게 쉽진 않지만 그래도 상담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인데요. 예전에 아빠께서 반 년 동안 거의 집을 나갔었고 아빠가 잘못해서 제가 중2때 엄마랑 아빠랑 이혼을 했고요. 중1때부터 저는 상처가 많았고요. 엄마도 아빠 때문에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그 후로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사는데 엄마가 직장을 다녀요.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거의 저한테 풀고요. 엄마와의 마찰이 너무 심합니다. 엄마가 욕하면서 화내는 것에 저는 항상 말대꾸를 하게 되요. 저항할 힘도 있고요. 하지만 그게 잘 못된 건 줄은 아는데 엄마가 그런 입장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화나서 더 화내고요. 뭐 별로 심하지 않은 사소한 투정만 부려도 이년저년 하면서 그럼 아빠랑 살아, 왜 나한테 빌붙어서 이러고 있냐? 넌 아빠랑 똑같아서 난 너 싫어, 지금 당 나가!  이런 소릴 시도 때도 없이 합니다. 그리고 나가라고 막 밀고 제가 밀리면 현관문 잠그고, 정말 싫습니다.

 

전 아빠도 싫어요. 아빠 집에도 가기 싫어요. 그 소릴 들을 때마다 정말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울어요. 용돈도 정해진 날짜에 안주고 엄마랑 몸싸움도하고 엄마가 싸대기도 때리고 밤에 잠옷 바람으로 쫓겨나서 택시타고 친구 집에서 잔적도 있어요. 엄마 때문에 집 나간 적도 있었고요. 그래도 엄마가 직장에서 윗사람들한테 많이 깨지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이해해야지, 하고 생각을 하는데, 교통비 떨어졌다고 교재 사야 된다고 돈 달라고 하면 욕하고 돈 없다 그러고....... 그리고 동생하고 저를 차별해요. 엄마가 너무 싫어요. 침대에만 누우면 소리 없이 우는 게 습관이 됐어요. 그래서 거의 항상 팅팅 부은 눈으로 등교하고요. 엄마랑 마찰이 있을 때마다 저는 자살을 생각하게 되고 자살시도도 해봤습니다. 옷장에 옷걸이 매달아서....... 근데 너무 서러워요. 독하지 않고서야 못 죽겠어요.


스트레스성 장염도 있어요. 스트레스는 거의 친구들과 돌아다니거나 폭식하는 걸로 푸는 편입니다. 뭐 우울하고 그렇다고 해서 밥을 안 먹지는 않습니다.^^ 친구들은 많지만 이런 거 털어놓을 진짜 친구는 한명입니다. 저는 활발하고 밝은 성격이지만 혼자 있을 때마다 항상 우울해지고 소심해져요. 학교생활은 괜찮아요. 별 문제 없는데 지나간 과거의 가정문제를 떠올리면 계속해서 눈물만나오고 아빠를 원망할 뿐이고요. 여하튼 엄마랑 다툴 때면 다투는 게 너무 심하고 저는 그럴 때마다 자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엄마랑 싸워서 엄마는 지금 집에 계시지 않아요.


어떡하면 좋죠?


[답변]


1. 쉽지 않은 결정인데 이 공간에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으신 점, 우선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음을 털어놓는 글쓰기는 치유의 좋은 방법입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부모님한테서 받는 상처와 고통, 많이 공감해요. 저 또한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만 서로 뀌었을 뿐 본질이 같은 상처와 고통을 퍽 오랫동안 지속 반복적으로 받았답니다. 지금도 마음에 흉터로 남아서 이따금씩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키곤 하지요.


2. 무척 힘드시겠지만 다음 두 가지만 먼저 마음에 꼭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첫째,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상처와 고통을 운명이려니 하고 감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 전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말도 아닙니다.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여 외면하거나, 거부하거나, 절망하면 할수록 더욱 힘에 부치기 마련이므로 평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담담히 현실을 제삼자의 눈으로 한 번 살펴보라는 말이지요. 당사자로서 문제에 깊이 빠져 있으면 현실이 왜곡, 과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 입은 딸의 관점을 잠시 접고 이렇게 질문해 볼까요?


"000씨(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왜 이러실까? 무슨 곡절이 있지 않을까? 혹시 어떤 결핍, 예컨대 애정결핍이 원인 아닐까? 그러면 그 분도 아프셔서 그런 것 아닐까?"


타인을 '결점'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분노를 느끼지만 '결핍'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공감을 느낍니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길의 시작이지요. 사람에게든, 사물에게든 다른 측면이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을 다 보아야 진실입니다. 결국 이 진실이 구원입니다.


진실 속에서 참된 소통이 일어납니다. 참된 소통만이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합니다. 지금 *** 님의 슬픔은 바로 이 소통의 결핍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잠시 거두고 차분히 진실을 주목하십시오.


둘째, 지금은 이 슬픔이 *** 님보다 훨씬 커 보여서 당장이라도 깔려 죽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슬픔보다 *** 님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아차리셔야 합니다. 슬픔은 다만 나와 내 삶의 일부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그것은 내 생명을 근본적으로 허물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국 지나갈 것입니다. 행복한 시절과 그 기억이 그러하듯 불행한 이 시절과 기억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충고하는 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을 지녀 보세요.


버스는 우리가 조바심 낸다고 빨리 오지도 않고 느긋하다고 천천히 오지도 않습니다. 올 때 옵니다. 그리고 반드시 옵니다. 힘들고 슬플 때 침대에 파묻혀 울지 말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십시오.


3. 맨 앞에서 드린 말씀을 다시 한 번 꺼내겠습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계속해서 글을 쓰세요.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의 글쓰기라도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태까지의 삶을 역사처럼 써도 좋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주제로 서도 좋습니다. 친구에 관해 써도 좋습니다.


그리고 글 읽기 역시 좋은 치유 방책입니다. 특히 성장소설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그 밖의 소설, 시 등 모든 문학은 치유의 글쓰기이므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상담할 수 있는 분을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대뜸 들겠지만 세상이 마냥 비정하지만은 않습니다. 선생님, 사회복지 관련 업무에 종사하시는 분, 성직자 등 주위를 돌아보세요.


가능하다면 저를 찾아 오셔도 나쁘지 않겠지요. 제게 도움의 능력이 없다면 하다못해 책이라도 빌려드릴 수는 있을 테니 말입니다.^^ 힘내세요!


2008년 늦가을에 고2 여학생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불화, 이혼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됩니다. 그 여파로 나타나는 폭력과 소외는 그 상처를 더욱 깊고 크게 하지요. 사실 이 문제 또한 우리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높은 이혼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긴 했지만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거의 두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한다고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1위라는군요.


이혼의 경우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도 있겠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바로 아이들입니다. 이혼에 이르는 정도 그렇거니와 이혼 뒤의 후유증까지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문화적 특성상 이혼 과정에서 새로이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서구적인 합리성으로 이끌리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유난히 정서적 고통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부부 당사자야 어차피 자신들의 일이므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경우는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에 주체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상처를 완화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격심하게 시달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사실 부모가 입만 열면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는 하지만 내밀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는 게 맞습니다.


결혼과 이혼이 기본적으로 개인 차원의 문제임은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제도이기도 합니다. 또 사회마다 다른 어떤 특성을 지닌 문화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회문화적 흐름을 조절하고 변화시키는 대승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런 일을 겪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됐을 때, 또 어떤 모습으로 세상이 돌아갈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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