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시간 속을 흐르는 것이다.
시간 속을 흐르는 것은 만사에 때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사에 때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신뢰하는 것이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신뢰하는 것은 서두름과 느긋함의 맞가장자리에 서는 것이다.
서두름과 느긋함의 맞가장자리에 서는 것은 천지의 이치와 내 마음이 껴울리는 것이다.
천지와 나의 껴울림, 이 경이로운 존재론적 오르가즘에서 시간은 시작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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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은 모든 인간정신의 터전이며 가장자리다.

감정은 感知감성이다.

이성은 理智감성이다.

의지는 意志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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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 홀연히 일어나 스마트폰 이메일을 연다.
우울장애 앓는 이와 강박-공황 결합장애 앓는 이가 보낸 글이 와 있다.
이 새벽에 읽으라고 일부러 보낸 것이 아니기에 나는 읽는다.
마음 다해 그 사연과 얽혔다 풀어진다.
인연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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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삶만

곡진한 거 아니다

숨 죽이며

눈치 보며

멍 때리며

견디디견딘, 그

낮은 체온의 삶도, 한사코

곡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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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에 시달리던 딸아이가 조금 여유를 찾은 듯 어제, 일요일 이른 밤 영화 한 편 예매를 해놓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26년>.


개인적으로 저는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바른 인식 덕분에 70년대 중반학번으로서는 늦깎이로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입니다. 하여 영화 시작 이전부터 뻐근하고 뜨거운 흉통이 제게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영화 중후반부부터는 신열이 온 몸을 휘감으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찰나, 특정 인간을 죽여야만 한다는 간절한 염원 때문에 두 손을 으스러지도록 맞잡은 생애 최초의 경험으로 빨려들고 말았습니다. 누군들, 가슴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이다 이내 단 하나의 비원(悲願)으로 비수 끝처럼 예리해진 생명 감각이 온 영혼을 정적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총성과 함께 칠흑이 된 화면이 뜬 바로 그 순간, 저는 냉정하게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영화 아닌 현실, 그것이 아닙니다. 염원 아닌 현실, 그것도 아닙니다. 오직, 있어야 하는데 있지 않은, 바로 그 현실입니다. 그 현실로 돌아오자 제 눈에는 전혀 다른 의미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영화도 사회행위의 일부입니다. 그 사회행위는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미와 재미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사회행위를 이끌어내기 마련입니다. <실미도>를 보십시오. <도가니>를 보십시오. 이제 <26년>의 차례가 아닐까요. 마지막 장면 그 젊은, 아니 어린 의경의 눈초리를 불씨로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해피엔딩 아닌 것이 퍽 다행스럽습니다. 해피엔딩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민중에게 허위의식을 심어줍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음에 대하여 눈감게 만듭니다. 그렇게라도 위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위안은 중독일 따름입니다. 중독인 위안이 현실을 더욱 어둡게 합니다. 아프디 아프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당하지 않습니다.


돌아와서 트위터에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5.18은 12.1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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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9 1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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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1 1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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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5 15: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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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6 16: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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