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유물전

 

날짜: 2008. 5. 17. 토

장소: 국립중앙 박물관

같이 간사람: 어머니, 아버지, 선오, 병호, 승재, 선오 어머니, 승재 어머니, 나

아침 7시경, 학교를 가기 위해서 급하게 일어났다. 준비물을 챙기다가 어머니에게 갑작스런 말을 들었다.

“상철아, 아빠가 모처럼 쉬시니까 오늘은 학교 대신에 승재, 병호, 선오와 함께 페르시아 유물전에 가자.”

선오, 병호, 승재와 함께 간다는 소리에 곧 내 마음은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 찼다.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의 유물을 살피러 가게 된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국립중앙 박물관. 그곳의 기획 전시실에서 나는 수많은 멋진 유물들과 이란의 역사, 페르세폴리스 궁전의 모습 등을 살펴보았다. 감수성이 뛰어났던 페르시아인들의 생활과 그 흔적도 함께 알아보았다.

페르시아의 뒤를 잇는 현재의 나라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란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들은 많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그 웅장했던 시대를 재현해냈다.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유물은 장식이 달린 뿔잔이다. 그 특유의 모양은 워낙 정교한 금세공기술이라 도저히 옛날 것이라 할 수 없었던 정도였다.

불교의 대표적인 무늬 卍. 卍는 본래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그 흔적은 卍장식 목걸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아름다운 장신구들과 장식도구를 구경할 수가 있다.

특이한 도장 인장. 페르시아의 인장은 대부분 원통형이어서 부드러운 점토에 돌려가며 문양을 찍어내어서 봉인을 풀 수 없도록 한 인장이다. 매듭을 묶은 후에 그 위에 점토를 올려논 후에 인장을 찍어내 굳히면 너무나 단단해서 포장을 잘 풀 수가 없다. 이 인장은 그런 역할을 해내는데, 인장의 무늬 속에서 페르시아 인들의 삶을 찾아볼 수가 있다.

위대하고 아름다웠던 나라, 페르시아. 이 페르시아의 역사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돌아보니 세계와 관련이 깊었던 페르시아와 함께 세계사를 알아본 느낌이다.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온갖 기념품을 샀다. 그 중 하나는 페르시아 퍼즐 맞추기다. 퍼즐 맞추기를 하면서 그 페르시아에 대해서 계속 기억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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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일자: 2008년 4월 26일~27일(1박2일)

함께 한 사람: 아버지, 어머니, 나

체험 장소: 대전 과학 자연 여행 

대전 과학 체험 여행. 오래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체험학습이다. 1박 2일동안 짧은 시간이었으나, 정말 많은 것을 보고 왔던 체험이다. 과학의 도시 대전은 그 이름대로 정말 과학에 관련된 볼 것이 많았다.


내가 제일 처음 체험했던 것은 공기압을 이용한 로봇팔 만들기였다. 4학년 때 해 보았던 것이지만, 다시 만들어보니 그 원리가 더 쉽게 이해되고 재미있었다. 그 다음 특허청에서 각종 체험을 하고 멋진 발명품들을 둘러보았다. 특히 몸을 이리저리 뒤틀기만 한다면 쉽게 움직이는 균형을 잘 맞추는 스쿠터가 있었다. 아직 시중에 유통되지 않아서 스쿠터를 구입하려면 고가를 내야한다고 한다. 이런! 만약 이 스쿠터가 가격이 무척 싸진다면, 꼭 사고 싶은 욕망이 든다.

[특허청에서 본 학생들의 발명품 작품들]

[아래 사진들은 과학 상상 체험관에서 직접 체험하는 과학을 맛보았다]

1박 2일 체험에서 제일 놀이공원에 온 것 같던 기분을 느꼈던 곳은 바로 '스매쉬 팩토리'라는 자동차 분쇄 공장에서의 체험이었다.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 입체 영상을 보면서 실제로 자동차에 타 분쇄 공장의 위험한 상황을 그대로 연출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무서워서 무척 어지러워 하셨다. 처음 탔을 때에는 나도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타다 보니 이런 것도 슬슬 매우 재미있어진다.


[연전 연승 - 다리만 조립했지만, 나의 거미 로봇은 쌈짱이었다]

특허청에서의 체험이 끝난 후에 로봇만들기도 해 보았다. 앞으로 가는 개미로봇이 장애물을 감지하면 후진을 하는 멋진 로봇이었다. 동생들의 개미로봇과 싸움을 붙여 보았는데 어찌나 잘만들어졌던지 내 로봇이 항상 완승이었다.

대전 체험중에 처음으로 먹었던 음식, 갈비탕. 수원 화성에 체험 학습을 갈때도 그렇고 매번 갈비탕을 먹어왔지만 이번 갈비탕은 맛이 무척 색달랐다. 특히 뼈에 둥그렇게 쌓인 살점을 뜯어 먹을 때면 다시 소비했던 기운이 내 몸 속으로 쏘옥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대전 과학관에서 친절한 누나의 설명을 들으며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었다]



상상과학체험관에서는 말하는 줄, 오르골 만들기등을 체험해 보았다. 레코드 판의 원리는 판에 있는 홈의 높낮이를 통해서 진동수가 정해져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런 원리를 통해 말하는 줄에서도 줄에 홈을 넣어 손톱으로 줄을 긁으면 줄이 말을 하도록 한다. 이 외에도 오르골에 종이컵을 연결해 소리를 증폭시킨 오르골 만들기도 체험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돌아다니면서 드디어 호텔에 들어서게 되었다. 호텔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호텔에 묵어 보는 것이었다. 호텔 방은 온돌방이어서 수수한 멋이 났고 화장실에는 고급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기에 살 맛이 났다. 호텔방이 1일 숙박에 15만원 가량 된다고 하신던데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전 세피아 호텔/ 아침에 온천 스파를 피부로 느끼고 호텔 조식을 모두 함께 했다] 

호텔에서 묵고 난 후, 드디어 정든 호텔을 떠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한밭수목원과 뿌리 공원을 방문하게 될 시간이었다. 한밭수목원에는 정말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잘 조성된 공원을 보고서 대전속에서는 자칫 과학하면 떠오를 수 있는 딱딱함을 이런 수목원의 아름다움이 보충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꽃들이  제각각 화려한 자태들을 뽐내고 있었다]


[뿌리공원을 둘러보다- 전주 최씨 기념비 앞에서 ]

뿌리 공원에서는 60개가 넘는 우리나라의 성 씨들이 각각의 기념비와 함께 새겨져 있다. 나의 본관인 전주 최씨의 경우엔 안쪽에 있었지만, 그래도 나의 본관이 자랑스럽게 뿌리 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서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언젠가는 그 기념비의 소개서에서 나의 이름도 함께 올라가 전주 최씨를 빛내고 싶다.

왕우렁이

왕 우렁이는 토종우렁이와는 형태만 비슷할 뿐 알로서 번식하는 아주 다른 종류로 남아메리카 아마존강 유역이 고향이라고 한다.

먹이 습성은 잡식성으로 채소, 수초, 연한 풀 등을 먹으나, 물 밖 수면위로 올라온 것은 풀은 먹지 못한다.  이를 이용하여 벼재배에 제초용 우렁이 농군으로 활용하여, 친환경 왕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6시 내고향이랑 아침 방송 등 여러번 TV에 출연한 무수천하마을 스타 꼬맹이들]

하단 왼쪽 사진은 삼근정사(유형문화재 제 6호) -> 1707년(숙종33)에 유회당 선생의 부모인 찬성공 내외분을 모신 산소 가까이에 시묘살이를 위해 마련한 건물이라고 한다

오른쪽은 별묘(유형문화재 제 6호) ->  유회당 선생이 1707년(숙종33) 종형인 이현 선생의 협력으로 세워진 별묘 사당이다.  

마지막으로 무수천하마을에서 각종 체험들을 해보게 되었다. 무수천하마을의 뜻은 하늘아래 근심 없는 마을이란 뜻이다. 과연 마을에 사는 사람들 모두 근심이 없어보이고 항상 행복한 듯 했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비록 잘 씻지 않은 것 같아 얼굴에 땟국물이 가득해보였지만 항상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인지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

우렁각시 이야기와 관계가 깊은 우렁이. 무수 천하마을에서 본 우렁이들은 그 수가 엄청났다. 심지어 벽에 붙어서 커다란 분홍색 알을 낳고 있는 우렁이도 보였다. 그 작은 우렁이의 몸속에서 덩어리진 그 커다란 알을 낳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렁이 농장에서 본 것이야말로 제일 신기했다고 생각한다.


[손수건 쪽염색 체험을 했다. 냄새가 대단했지만, 직접 염색을 해보니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꽃누름이. 유리 안에 과연 예쁜 무늬가 어떻게 들어갈까? 하고 고민하던 내가 그 원리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열을 가하면 굳는 풀때문에 그렇게 깨끗하고 멋진 무늬가 나왔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든 것은 만드는 작업 도중에 바닥에 떨어져서 망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무늬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멋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대전 과학 체험 여행이었지만 이름처럼 그리 어렵지 않던 재미있는 체험이었다. 기념품으로 삐에로 준이라는 무게 중심을 잘 잡는 인형도 하나 사왔다. 이 삐에로 준 인형을 보면서 대전 과학 여행을 기억해야겠다.

[우리가 체험했던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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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5-0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알찬 체험 여행이 되었겠네요~
부러워요, 저도 가고 싶어지는데요 ~~ ^^

최상철 2008-05-05 23: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용이랑슬이랑님 ^^*
대전시에서 50%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요. 그 때 1박 2일로 저희를 꼼꼼히 안내해주셨던 "동굴"의 저자 손희정님께서 말씀하시길 5월에 재모집 계획이 있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혹시 참고가 되실까 사이트 주소 남깁니다~ 한번 들어가보셔여 ^^*(스쿨김영사체험학습 프로그램이었습니다)
http://www.schoolgy.com/experience/customer/notice/content.asp?num=212&cate1=b
 

체험 일시: 2007. 10. 28 (토)

같이 간 사람: 아빠, 엄마, 나, 이 광헌

날씨: 그다지 맑지 않은 날

학습 장소: 백범 기념관

제목: 백범 김구의 혼을 찾아서

  새로 이사와서 채 적응하기도 전에 벌써 첫 번째 체험학습이 있게 되었다. 여기에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마침 이번에 전국 독후감 대회 대상을 수상하기 위해 백범 기념관에 가야 했었다. 꼭 와야 할 친구 선오는 부재중에 오지 못하고, 결국 광헌이하고만 그 곳에 가야 했었다. 얼마나 늦었든지 타이밍에 맞춰서 가자마자 내가 바로 상을 탔었다. 그 때 교육 회장님과 악수를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문화상품권 30만원과 상장을 받는 그 기분이 어땠는지... 정말 기분이 최고였다. 문제는 기다리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단체사진을 찍기 때문에 채 가지도 못하고 서있다가 사진만 찍고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그 다음에는 재미있는 만화와 영상자료가 가득한 백범 기념관의 전시실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 곳에는 신기한 것이 매우 많았다. 영상자료는 물론이고, 백범 김구의 어린 시절과 동학 활동 시절등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그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첩자를 김구가 살해한 후 옥에 갖혀 매우 엄청난 고문을 받았던 것이다. 그 때 밧줄로 묶여서 몽둥이로 온 몸에 맞고, 인두로 살을 지지는 고문까지 했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고문할 때 손톱 사이에 날카로운 바늘을 집어넣기도 하고, 뜨거운 물을 마구 붓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의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잔인한 실험들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김구 선생님이 임시 정부를 세워 우리나라를 위해 활동하며 일본인들을 물리쳐 나가는 것을 볼때면 정말 통쾌했다.

김구 선생님의 소원은 첫번째로 우리나라의 독립, 두번째는 대한 민국의 독립, 세번째가 대한 제국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였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를 생각하셨던 김구선생님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지금 세대의 아이들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구선생님 외에도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이 세 분의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한 폭탄 테러도 나라를 위한 끝없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부하의 4발의 총성 이후로 74세란 연세를 가지고서 돌아가신 김구 선생님. 그분의 정신을 앞으로도 쭉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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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항해 2007-11-0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혹시 5학년이세요? 님의 리뷰를 보면서 정말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답니다. 제 서재오셔서 답변좀 해주세요..가끔 독서토론도 하고요..
 

 
제목: 공주와 부여 역사 탐방

날짜: 2007년 8월 21일 화요일

함께 한 사람: 엄마, 나,  지석, 현식, 많은 친구들

장소:  공주, 부여 (무령왕릉, 국립 부여박물관, 공주박물관,  부여산성, 삼충사, 백마강,  궁남지)

 

 
단체로 떠난 공주와 부여의 역사 체험기. 집에서 6시에 출발해 앞구정동까지 전철을 타고 달려야 했다. 겨우겨우 버스를 잡은 어머니와 나는 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갔다. 버스를 타는 동안 책도 읽고, 지석이의 종류많은 닌텐도DS가 심심함을 달래주었다. 첫번째로 도착했던 곳은 바로 공주박물관이다. 공주박물관 바로 옆에는 그 유명한 무령왕릉이 위치해 있었다.



이 무령왕릉이 발굴되기 전에 그 주위의 고분인 1,2,3,4,5,6고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2,3,4 고분과 5,6고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때만 해도 5,6고분과 붙어있던 7호분은 무덤이 약간 평평해 찾기가 힘들었었다. 이 7호분은 유일하게 역사적 기록과 유물의 시기를 알 수 있는 지석이 있었기에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이라는 사실등을 알 수가 있었다. 이 무령왕은 고분에 묻힌 뒤의 호명이고 실제 왕의 이름은 사마왕이라고 한다. 이 7호분은 아까 말했듯이 발견하기가 힘들었었기 때문에 일제 시대에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고 유물이 남아있던 곳이다. 현재 무덤이 손상되기 때문에 박물관 안에 무덤 모형을 만들어 두어서 과거 역사적 사실을 잘 체험할 수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부소산성으로 출발했다. 산성은 역시 산에 있는 성으로, 부소산에서 3중으로 둘러싸인 이 성은 백제의 최후 발악지였다고 한다. 이 부소산성에는 백제를 위했던 최후의 충신들이 모셔진 삼충사가 있었다. 이 충신 세 명은 바로 성충, 흥수, 계백이다. 백제의 슬픈 역사가 담긴 부소산성 안에는 백마강, 삼천 궁녀가 떨어졌다는 낙화암, 고산정등이 있다. 고산정에는 고산초와 함께 시원한 약수물이 명물이고, 백마를 이용해 용을 잡았다는 백마강의 전설과 그 곳 위에서 유람선을 탄 기분도 최고였다. 그 시원한 유람선을 타면서, 이 백마강 아래에 있던 용왕의 죽음으로 인해 망한 백제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만약 내가 의자왕이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나라가 망해가는 꼴을 보자니 속이 매우 탈 것이다. 지금까지 선대왕들이 이룩해 온 모든 업적을 흥청망청 놀다보니 없애버리는 꼴을 일으켰으니 마음의 병이 생겼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의자왕이었다면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 오기 전에 삼충신들의 조언을 듣고 빨리 그 말대로 실천했을 것이다. 수많은 폭군들은 자신을 위해 조언하는 충신의 말을 무시하였더니 망하였다. 내가 한 군주라면 그런 멍청한 짓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 

 


 

 
국립 부여박물관에서는 백제 금동 대향로등의 실제 유물과 직접 만지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유물 시설을 통해 정말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그중 복제품인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무척 멋있게 생긴 청동기 시대의 칼을 보았다. 들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할 수 없도록 고정되어 있었지만 무척 멋있게 생겼다. 날이 의외로 날카로워서 옛날 칼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한국식 동검의 꾸며진 무늬는 정말 아름답고 고유의 멋이 살아났다. 손잡이 부분이 이상하게 생겼는데, 그래도 잡아 보니까 어느정도 편했었다. 

마지막 코스는 바로 백제의 무왕이 세웠다는 궁남지였다. 이곳에서 우렁이도 잡고, 수차도 돌렸는데 이 수차는 너무 빨리 돌려서 물이 너무 넘쳐났다. 내 달리기를 이렇게 응용할 수가 있다니... 기분 최고다.

 

 
버스에서 오면서 배운 것들을 모두 복습하는 것과 같이 골든벨을 하나 하였다. 그 곳에서 모두 15문제가 나왔는데, 나는 15문제 모두 맞아 백제금동대향로 진품 사진이 담긴 엽서를 받았다. 암살자에게 죽음을 당했으며 신라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왕 성왕,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최후 충신들 흥수, 계백, 성충등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속에 꼭 박혔다. 특히 계백의 나라를 지키려는 결의는 나에게도 큰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이번에 이번 탐사를 온 것이 정말 잘 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집에는 조금 늦게 도착했고 매우 힘든 하루였지만 정말 보람있었다.
오늘에서야 백제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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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영어캠프와 갔다오느라 함께 휴가를 보내지 못했던 부모님과 함께 단란했던 시간을  오늘에서야  즐거운 하루로 보낼 수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율곡 배드민턴장에서 배드민턴을 쳤는데 그곳의 자연환경이 알맞아 무척 신나게 배드민턴을 칠 수가 있었다.(배드민턴 공이 16번 오간 적도 있었다!) 사온 팥빙수와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그다음 향한 곳은 녹천교 밑의 자전거 공원이었다. 인라인스케이트든, 자전거든, 농구든 뭐든지 할 수 있었던 그곳에서 나는 처음에 아빠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쭉 달리기가 무서워서 페달에서 발을 떼고, 옆에 막 부딪히고, 그래서 혼도 많이 났었다. 그렇지만 브레이크를 살짝 당기면서 하니까는 속도도 그리 많이 나지 않고 나에게 무척 알맞았다. 물론 처음에 두 페달을 밟고 시작하는데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곧 숙련이 되었다. 그러고서는 7시까지 계속 그곳을 돌았던 나는 어떤 때는 갑자기 튀어나온 꼬마와 부딪힐뻔 하기도 하고, 옆의 강속에 빠질 뻔 하기도 했다. 그 때 일로 인해 내 다리에는 자전거 기름칠이 듬뿍 묻었다. 여하튼 조금 위험했지만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고 할 수도 있다. 아, 나를 이곳에 데려다준 부모님이 무척 감사하다. 나의 노력의 흔적들은 우리집 디카속 사진기에 담겨 있다. 나중에 내가 자전거를 얼마나 멋지게 탔는지 몇 번이고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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