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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만든 사람들 -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을 그리다
발 로스 지음, 홍영분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4월
평점 :
[charliemom]
고지도에 얽힌 지도책이라고해서 지루하지 않을까 조금 생각했었다. 첫장부터 이 책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지도는 고문서로써 가치가 아주 높다. 해서 간혹 가짜 고지도도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발견한 사람부터 역사적 사실이 간혹 새로 발견된 이 고지도 한장을 통해 전혀 다르게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짜 지도를 만드는 기술도 점점 교묘하고 정교해져 좀이 갉아먹은 흔적을 예일대 한 교수의 경우는 실제로 '살아 있는 좀'으로 가짜 고지도를 갉아먹게 하여 진짜로 둔갑시킨다는 말에 얼마나 놀라웠는지....
쇄국정책으로 우리나라의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되는 큰 사건처럼, 이 책에서 만난 역사 속에 그 나라에 유달리 아쉬움을 남길만한 사건은"정화의 남해 원정"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398년 몽고족을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국한 주체 왕자의 아버지 주원장이 죽자 그의 손자 주윤문이 황위를 잇게 되었다. 주체 왕자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어린 조카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고, 실지로 황제는 삼촌들을 곧바로 하나둘 제거해 나갔다. 1402년 주체 왕자는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미 들어선 황궁은 대화재가 일어났고 주체 왕자는 영락제가 되었다. 그 영락제가 노예였던 정화를 거뒀고, 그에게 명령하여 바다를 통해 옛날의 명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정화가 이끄는 선단은 선박 건조술이나 항해술 면에서 유럽의 배보다 몇 세기 앞선 기술을 보유하였다고 한다. 배의 한쪽에서새 들어온 물이 다른 곳까지 흘러들어 배가 침몰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방수 구획 방식으로 배를 건조하였다고 한다. 타이타닉 설계자들이 반드시 참고했어야 할 중요한 기술이었던 이 방식. 또한 600년 전이었는데도 중국의 선원들은 이미 나침반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볼 때면 중국이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돌로 만든 사발에 물을 담고 그 속에 자력을 띤 바늘을 뛰워 북쪽을 확인함으로써 길을 잃지 않고 항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화의 함대는 그렇게 6차 원정까지 나아갔으나, 1424년 영락제의 죽음과 함께 원정을 중단한다는 칙령이 반포된 것이었다. 명나라의 이름을 떨치기보다는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유교적 신봉하는 황제가 콜럼버스가 태어나기 한 세대 전인 1433년바깥 세계로 향하는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기대로 유럽 인들이 탐욕스런 눈을 번득이던 1500년경 중국은 항해용 선박 건조를 금지하는 칙령을 반포하고 이를 어긴 사람에게는 사형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정화가 신대륙 발견이나, 정화의 지도들이 지도 제작 면에서 획기적이었다고는 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화의 함대가 영락제의 통치가 잘못된 것의 단적인 일례라고 비난하며 정화와 관련된 기록들을 폄하하여 모두 불길 속으로 던져 버린 사실은 바다를 닫아 세계사의 주도권을 유럽에 내줘버린 일이 되었던 것이다. 정화가 남해 원정을 통해 이룩한 성과들이 후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역사 속에 사장되도록 만든 명나라. 동북공정문제로 치가 떨리는 중국의 역사 속에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고소를 금치 못했다.
역사의 흔적, 지도를 만든 사람들의 열정 희생, 신앙. 발 로스의 흥미진진한 문체와 만날 수 있는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꼭 오래도록 소장하고 싶은 책과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