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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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예술적이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막상 보통 사람들과 예술에 대해 논하는 순간, 그들이 말하는 예술에 대하여 논하는 순간 당황하게 된다. 그들이 말하는 예술이란 단지 세간의 흐름이나 조류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세간의 평가 역시 중요하나, 문제는 그 평가를 본인들이 정확히 인지하는지 혹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흔히 이렇게 말을 한다. “미술관에 가는 이유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기 위해서인지? 아니라면 그림이 걸린 벽을 보러 가기 위해서인지?”

 

예술 중에서 역사가 오래되고, 다양성이 넓은 미술은 더욱 그런 모순에 빠지게 된다. 가령 미술에 대한 평에서 지난 19~20세기는 혁명과 전쟁으로 세계가 요동치던 시기다.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 갔으며, 이들을 위해 많은 혁명가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21세기에 오면서 더 이상 세계를 바꾸려하는 혁명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20세기 말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진영으로 혁명가란 단어는 무색하게 만들었다. 물론 소비에트연방이 19172월과 10월 혁명에 의해 탄생했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혁명은 실패한 것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혁명을 주장하던 볼셰비키 내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한다.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 흐름에 예술에 무슨 영향을 주는가에서 바로 이런 역사적 순간들이 예술을 탄생하게 만든다. 예술은 그 시대의 모습이고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들이 추구하는 이상, 또는 그 현실에서 절망하는 비극에서 예술은 탄생하게 된다. 20세기 최고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경우 그는 평생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프랑스 공산당으로 활동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파시스트를 저항한 파블로를 두고 우리는 그를 배척하는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미술품은 대부호들의 수집품으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예술이 어느새 시대정신과 저항의식이 반영된 세계가 아니라 상품으로 전략한 신세다. 이런 세계에 도래하면서 예술이란 무엇이고 그 예술을 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은 우리 시대 대표적 예술가를 만나고 정리한 내용이다. 진중권 교수가 창비라디오에서 문화다방에 늘 새로운 게스트를 2회에 걸쳐 대화를 나누고 녹음을 한다. 평소 진보논객이나 정치적인 활동보단 문화평론가 및 미학자로서 이 책이 나온 것이다.

 

물론 문화평론이나 미학에서도 정치적인 요소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어떤 사회적 활동이 정치적이다. 심지어 내 자신이 정치에 관심 없다거나 혹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선전 역시 정치적인 발언이다. 문화를 파헤치기 위해 사회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 필요하고, 미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에 관여된다. 미학과 관련하여 공부한다면 미학 그 자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철학 관련 도서를 찾아보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미학은 철학이란 칼로서 예술을 파헤쳐 보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에서 항상 갈등하는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세계를 보거나 또는 그런 공간을 꿈꾸는 경우 예술을 창조하게 된다.

 

예술의 시작은 이 책에서 이외수 작가가 플라톤의 <향연>에서 따온 말처럼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술을 우리 인간이 계속 추구하는 이유는 인간은 빵(식욕)과 고기(성욕)만으로 살아가기 없기 때문이다. 뭔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잠재적 의식, 또는 지루함과 한가함의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시도, 이런 것들이 예술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물론 예술이라 하여 아름다운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기존의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려는 것에 대해 철저히 파괴하려는 반() 미학적인 아방가르드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동일할 수 없고, 모든 인간은 목적이 정해진 어느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기준을 파괴하고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모더니즘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약자와 비주류의 이야기도 대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는 윤리성의 부재라는 한계점이 있었고,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새로운 예술적 조류는 모더니즘 사조에 계몽주의적 정신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포스터모더니즘의 세계에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예술이란 바로 그렇게 새로운 흐름을 찾아가거나 또는 그 흐름을 만들어낸다. 단지 유행이란 이름처럼 공장사출기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소통과 공감, 더 나아가 사유와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예술이란 것을 대중적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이상이어야 하는가이다. 대중적인 예술이 없다면 보통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흐름을 전해줄 수 없고, 예술이 너무 대중의 취향에 부합되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문화적 상품에 불과하다. 게다가 예술가들은 국가에서 무상으로 지원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생계를 마련해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생계의 기로에서 그들은 독특한 자신들의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대중의 기호로 넘어가면 예술가들은 더 이상 예술을 만들 수 없기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대중의 세계에 나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현대에서 예술가들의 모습이다.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에서는 한국 대표 예술가 7인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 아는 얼굴도 있지만, 모르는 얼굴이 더 많을 것이다.

 

우선 사진으로 구본창, 건축으로 승효상, 배우로 문성근, 미술가로 임옥상, 소설가 이외수, 음악평론으로 강헌, 시각디자이너로 안상수, 미디어 아티스트로 박찬경이 있다. 내가 이중에서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건축가 승효상, 배우 문성근, 소설가 이외수, 음악평론 강헌이었다. 박찬경은 예전에 내가 보고 싶던 영화 <만신>의 감독이었다. 아마 일반인이라면 배우 문성근이나 소설가 이외수는 잘 알겠지만 그 외에의 인물은 모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자신의 한글프로그램을 실행하여 글꼴을 찾아보면 안상수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나온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을 읽는다면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하여도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은 어디서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보단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그들이 무슨 의미로 만들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더 좋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맛이 베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맛을 우리가 찾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은 밥만 먹고, 잠만 자고, 일만 하고, 성행위만 하고 살아갈 수 없다. 생리적 동물성과 사회적 동물성으로 우리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문화에 대하여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문화를 즐기고 싶은데 막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문화는 즐기기보단 오히려 낯선 세계처럼 다가올 것이다. 다양성이 존재하고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라면 우리는 늘 새로운 즐거움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 예술가라면 우리 역시 예술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좋다. 예술은 우리에게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것만큼 가까이 존재할 수 있는 문화양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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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와 자유
켄 로치 / 키노필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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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1984>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나, 그 외에도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작품도 있다. <동물농장>은 우화적 특성을 살린 문학으로 1917년 러시아의 2월 10월 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작품이다. 조지 오웰이 나폴레옹이란 돼지를 두고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드러나듯이, <1984> 역시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감시제국의 빅 브라더 역시 스탈린의 철권정치를 비판한다. 빅 브라더가 만든 최고의 적이 과거 같이 빅 브라더와 활동했고, 그 적이 만든 그 책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위험한 서적이었다.


물론 그 책이 레프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조지 오웰의 소설은 스탈린에 대한 비판과 반 스탈린적인 작품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그나마 <동물농장>과 <1984>는 우화적 이야기 가상적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지만, <카탈로니아 찬가>는 그야 말라 오리지널 이야기다.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의 형태를 가진 조지 오웰의 자기 기록이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이 상당히 영화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문학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영화 시나리오로 사용되므로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카탈로니아 찬가>는 다른 작품과 달리 매우 리얼리즘을 강요한 작품에서 그 원작을 토대로 만든 켄 로치의 <Land and Freedom>은 작가의 눈을 그대로 살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동물농장>은 1954년 영국 애니메이션 감독 존 핼라스와 조이 베첼러에 의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조지 오웰의 <1984> 역시 SF적인 디스토피아적인 영화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카탈로니아 찬가>로 만든 <Land and Freedom>은 1936년 스페인 민주공화국의 탄생에서 발생된 내전의 아픔을 역사라는 거대한 서사로서 보여주기보단 그 서사 안에서 단순히 자신만의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역사라는 거대서사가 개인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해도 그 거대한 역사가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란 점이다. <Land and Freedom>에서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자도 있었지만, 자신의 국가도 민족이 아닌데도 총을 든 자들도 있었다. 과거의 적국이었고,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비행기와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모인다. 그 이유는 스페인내전에서 민주공화국을 되찾기 위해서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는 파시스트 국가의 지원 아래 쿠데타를 일으키고, 오히려 국민을 적으로 삼는다.


조지 오웰이 그 내전에 참가한 것처럼 영화 속 주인공 데이빗은 영국인으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바람을 찾기 위해, 그리고 파시스트에 의해 유린당하는 스페인 국민들을 돕기 스스로 POUM(통일노동자당)에 가입한다. POUM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에 아나키스트와 같은 반파시스트 진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무기가 부족하고 적의 힘이 강해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 전투를 벌인다. 그 덕분에 많은 스페인 영토를 다시 차지할 수 있었고, 파시스트에 대해 지속적으로 저항했다. 영화명이 <Land and Freedom>인 것처럼 땅과 자유(권리)라는 타이틀처럼 POUM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운다.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땅이 필요했고, 그 땅을 지키기 위해선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1936~1938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가했고,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트로츠키의 국제주의에 반대하는 일국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스페인내전의 POUM을 제거하기로 한다. 실제 지원을 중단하고 POUM의 중심인물을 숙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POUM을 파시스트와 내통한 적으로 내몬다. 스탈린주의에 의해 스페인내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프랑코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반파시스트 연대와 국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항공폭격을 가한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미술가, 피카소의 <게로니카> 탄생은 무자비한 인명을 살해하던 독재자들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실패로 끝난 스페인 민주공화국과 반파시스트 전쟁에 모두 실패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역사에서 그 당시에는 패배자였으나 후세의 역사에서는 승자가 되었다고 말이다. 부당한 권력한 폭력을 휘두른 압제자는 자신의 권력이 살아있을 때만 살아있던 자이지, 후대에 이르러 정당한 평가에 의해 그 죄악이 드러나게 된다. 데이빗과 POUM 대원들은 자신들이 수복한 마을을 비록 4주만 차지하고 다시 파시스트에게 내어주게 되었지만, 자신들이 행한 의지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빗은 전쟁 중 사랑에 빠진 베이트가 죽을 때, 그녀의 묘지를 만든 마을의 흙 한 줌을 가지고 온다. 전쟁에서 POUM은 패배해도 자기 자신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는 신념이다. 영화를 본다면 다소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언제나 담배가 없는 것과 추위에 괴로운 기억이 가장 인상적이라도, 그 전쟁에서 같이 파시스트에 대항하던 동지들이 스탈린에 의해 서로 총구를 겨누는 것에 대한 슬픔은 <Land and Freedom>에서 크게 느낄 수는 없다.


아마 영화제작 시기가 1995년인 점에서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스탈린의 잔재가 사라짐에 따라 스탈린에 의해 희생된 자들의 명예가 다시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이 살아있던 시절, 스탈린의 영향력이 미친 공산권 국가에서 POUM은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을 생각하면, 조지 오웰이 느낀 그 당시 상황이 영화에서는 매우 심각한 주제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은 POUM의 해체와 과거 동지간의 갈등이 주요 초점이라면 <Land and Freedom>은 당시 POUM의 투쟁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감상하면 영화화면이 보통 전쟁영화의 spectacle적인 요소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전자나 후자나 spectacle이 아니라고 볼 수 없는 게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라는 것이 전자처럼 오락과 낭만으로 가득한 세계가 아니라 후자처럼 일상적인 요소가 매우 강한 점을 보여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 담배와 땔감이 부족하다는 투덜거림이 바로 그 증거고, 영화에서도 물자부족과 자신의 몸을 계속 갉아대는 이도 그렇다. 카메라영상은 멀리 있는 모습보단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

 

전쟁에서 꾸미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작품에서 카메라는 보통 헐리웃 영화처럼 깔끔한 영상보단 투박한 영상으로 인물을 그려낸다. 또한 영화 시퀀스에서 전쟁하는 장면보다 전쟁 외적인 영상이 제법 많은 비중을 부여한다. 파시스트가 정복한 마을을 수복할 때 농지를 모두 공유하여 공동농작을 하는 것에 대해 토론할 때 그 토론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 스스로 권리를 찾아가는 여정도 중요하나, 그 여정이 도달 이후에 어떻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다음과 같은 패배의 기록, ① 데이빗과 POUM이 스탈린의 군대에 의해 강제무장해제 되었을 때, ② 데이빗과 POUM이 목숨 걸고 지킨 마을이 다시 파시스트에게 빼앗긴 것, ③ 데이빗이 수명이 다해 사망했을 때 마치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데이빗의 손녀는 데이빗의 무덤에 시를 낭송하고, 데이빗이 목숨 걸고 싸운 곳에서 가지고 온 흙 한 줌을 다시 데이빗 무덤에 뿌려준다. 데이빗이 지키려한 그 가치는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와 함께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 흙 한 줌이 자신들이 지킨 땅, 그리고 그 땅에서 자유를 만끽할 인간에 대한 권리가 영원히 이어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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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0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죠. 마지막 장면에서 먹먹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군요. 캔 로치 작품치고는 꽤 규모가 큰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이 작품은 카탈로니아`를 바탕으로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네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봤는데... ㅋㅋㅋㅋ 만애비 님 땜에 아, 그렇구나 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4-06 13:07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이 좋아하는 켄 로치 작품을 하나하나 홀랑홀랑 보고 글을 적어야죠. 우울한 4월 그저 책 읽고 글 쓰는 게 저만의 자위적인 위로가 되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06 15:16   좋아요 0 | URL
4월의 우울이라..... 맬랑꼴리하네요. 서울 오시면 막걸리 한 잔 합시다.

만화애니비평 2015-04-06 15:18   좋아요 0 | URL
2월달 설연휴에 서울에 갔었죠. 그때는 형집과 큰아버지집에 간다고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아마 시간되면 SICAF 서울 애니메이션축제 되면 가지 않을까 하나, 서울에 요새 가는 게 참 괴로워지는군요. 멀다 멀어 몸과 마음도
곰발님과 저기 탑골공원의 막걸리에 돼지고기를 올려 크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 동백 숲길 맑은 그늘 물 끝난 곳 구름 이네
정민 지음, 김춘호 사진 / 글항아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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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동양에 있는 국가이나, 현재는 서구사회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서구화가 되었다. 물론 국제사회 동향과 미래에 대한 움직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고, 앞으로 그런 추세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구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 중세유럽과 르네상스 이전인 16세기까지 농업중심에서 17세기부터 목축업이 성행하였고, 19세기부터 공업이 발달하여 상업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산업구조가 농업, 공업, 상업으로 이어지고 20세기는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산업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부터는 다른 산업구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경제단위의 확대로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게다가 대규모공업화와 농업의 기계화 도입은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고, 단기적인 인구증가는 직업체계에서 누구나 회사, 공장, 농사, 장사만 한다고 하여 그 수요를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직업을 찾아봐야 할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대안이 되는 사업이란 바로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은 하루아침에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꾸고 자라면 크게 꽃을 피우는 과실수와 같다. 흔히 예술과 철학을 말한다면 분명 프랑스와 영국을 생각할 것이다. 미국은 자유주의 정치에서 하버드대학교를 생각하겠지만, 예술로선 유럽에 미치지 못한다.

 

파리에 위치한 베르사유의 궁이나 루브르박물관은 세계적인 예술품이 있어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쇄도한다. 그들이 파리의 문화를 즐기면 그 거리의 식당이나 문화 상품을 파는 곳도 성행한다. 그에 따라 상업이 발달하고, 음식을 먹으면 농산업이 유지되며, 상품을 만드는 공장이나 수공업자도 이어져간다. 문화산업은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주는 경제적 돌파구다. 하지만 문화산업은 결코 무에서 유로 되는 게 아니다. 그 무의 공간을 만들어줄 기본적인 베이스가 필요하다. 한국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의 농업 국가였고, 해방이후 근대화시절에 공업과 상업이 발달했다.

 

대규모 공업은 처음에 많은 노동인력을 필요하게 되었으나, 기계의 발달은 인력을 감축하고, 서비스산업이란 사업이 발달한다. 하지만 이젠 서비스산업도 소비하는 주체인 소비자의 소비능력 감퇴로 과소소비의 한계에 도달했다. 산업구조가 더 이상 기존체계로는 무리고, 앞으로 다른 산업이 필요하고, 여기에 대한 인력과 투자개발은 새로운 직업군을 필요하게 된다. 문화산업의 기반은 바로 인문학적 소양과 창의적인 생활 그리고 문화적 베이스가 되는 그 민족만의 특이성이다. 한국에서는 아마 위에 3가지 모두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문학 전공자가 줄어들어 그들이 사회에 나가면 생계가 힘든 세상이고, 문과계열은 취업위주의 교육을 추구하여 문화적인 소양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겁다. 이런 사회적 구조와 교육현실은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모두 막아버리게 되고, 그들에게 문화적 생산력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mass culture 즉 대중문화를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다른 하위문화나 고급문화 또는 counter culture 같은 반문화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다양성이 문화산업의 기반이고 에너지다.

 

세계화로 통해 우리를 서구사회의 틀이란 옷을 입는 것도 좋으나 가끔은 우리만의 옷을 찾아 입는 것도 필요하다. 옆 나라 일본이나 유럽의 국가에선 자기만의 특유문화를 살려 관광 사업으로 만들거나 또는 관련 상품으로 제작한다. 스토리텔링으로서 문학, 연극, 영화, 만화, 게임 등으로 새롭게 재생산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여 다시 발굴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확립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아이템을 만들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서는 각 마을의 특성을 살려 축제라는 행사를 개최하는 일이 많아졌다. 축제에서 단지 먹고 노는 것만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가치관을 부여한다면 그 행사는 더욱 값진 것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런 축제와 행사의 질을 올리는 것은 문화적 유산이 기반 되어야 한다. 황무지 위에 씨앗을 뿌려도 꽃이 피기는커녕 나무줄기조차 올라가지 않는다. 이번에 읽어본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은 기존에 내가 가진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대만권역에서는 다도문화에 대한 교류가 있다. 중국 운남성의 보이차, 일본의 말차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한국의 대표차로는 작설이 있을 것이다. 다도문화와 관련하여 다산 정약용 선생은 차를 마시면 나라가 흥하고, 술을 마시면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문화의 보존만이 아니라 건강을 챙기고, 차는 선비들의 독서생활에서 즐기던 것이므로 우리 조상의 지혜에서 술보다 차를 권한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가 강진 다산초당이듯이, 유배지 주변에 있던 월출산 자락의 백운동 역시 좋은 경치였다. 다산초당이나 이 책이 소개하는 백운동 별서정원이나 생각하면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이런 역사와 문화공간이 숨 쉬는 곳이 국가에 의해서보단 그 문중의 후손에 의해 지켜진 것이다. 한국이 양반과 상놈이 없어진 곳이지만, 진짜 양반가문이라면 그런 양반의 특권의식이 아니라 양반들이 지켜오던 그 문화적 유산을 기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 누구의 지원 없이 오로지 후손들의 손으로 지킨 문화유산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화산업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책을 읽어보면서 아름답고 경이로운 우리 문화유산이 저 멀리 일본과 유럽에 있었다는 점이 참 안타깝다. 문화재의 보존과 전승은 그 나라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문화자본으로서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민 교수가 저술한 이 책에서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가 당시 이 서원의 주인들과 그들을 방문한 나그네를 찾으며 우리 문화와 자연을 음미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초의선사와 완당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시대 차의 성인으로 모셔진 것처럼 강진에서 유배생활이 한국의 다도문화의 활성화 시킨 것을 생각하면 좋은 문화유산을 발굴한 것과 같다.

 

흔히 한국의 차밭이라 하면 보성차밭을 생각하나, 그곳은 일제가 대규모 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기에 비록 차의 생산은 많으나, 단지 넓은 차밭을 제외하면 문화적 유산가치가 강진에 비해 부족하다. 백운산의 죽로차는 대나무 숲의 이슬을 먹은 찻잎을 따서 만든 차로 그 맛이 어떨지는 모르나 분명 깊은 세계를 가질 것이다. 대학시절 다도문화동아리에서 활동할 적에 한 번 강진의 다산초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다산 선생님이 기거하신 다산초당은 윤단의 별채였고, 거기의 후손들은 다산 선생님의 제자들이었다. 그 제자의 후손들이 계속 초당과 주변을 지키고, 다산차를 지켜왔다.

 

다산 선생님의 제자 18인이 만든 모임인 다신계에서 그 중 한 사람의 후예가 그 차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사서 마신 차는 이때까지 어느 작설차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구수하고 깊은 차 맛에서 다산 선생도 좋아한 백운산 죽로차 역시 상당히 좋은 차란 점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별서정원의 조경과 주변 환경은 자연에 대한 인공적 자연미가 무척 어울려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은 운치가 있을 것이다. 현대처럼 뜨거운 자동차매연 아래 콘크리트 숲을 걷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안정이 없다. 맑은 물과 공기 그리고 푸른 숲과 한옥, 과거의 것이라고 하나 지금의 우리 마음에 치유로서 그 가치는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그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며, 많은 기록을 남겼으니 한국의 국문학과 미술까지 같이 자라나는 것과 같다. 그동안 한국은 먹고 사니즘에 정작 미래에 먹고살아갈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모습을 알고, 그 현재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문화적 유산은 바로 거기부터 시작이다. 한국이란 나라가 계속 한국이란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 그것이 곧 우리의 자산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문화에도 중요하다. 2012년 유네스코 인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되셨다. 한국의 인물과 그 인물로 통한 문화적 유산이 세계유산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유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문화적 가치가 오르면 교류가 활성화되고, 교류가 활성화되면 상품과 시장이 발달된다. 우리의 미래는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것은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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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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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얻은 별명 하나가 있다. 그것은 카나리아라는 새인 것이다. 카나리아라고 하면 귀엽게 생긴 작은 새로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관상용(觀賞用)으로 자주 이용한다. 만약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위 별명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귀엽게 생겼거나 혹은 목소리가 아름다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카나리아로 된 동기는 그렇지 못하다. 카나리아 앞에 수식해 줄 단어가 붙어야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은 탄광(炭鑛)이다. 옛날 사람들의 지혜는 바로 일상생활에서 비로소 알 수 있는데, 바로 카나리아를 탄광에 보내 이상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탄광에는 대기 중의 산소가 21% 이하일 가능성이 높고, 만약 산소가 일정치가 낮고 일산화탄소 내지 이산화탄소가 높을 경우 인간은 질식사로 사망한다. 특히 일산화탄소는 산소에 비해 인간의 헤모글로빈와 결합도가 300배 가깝다. 탄광에 카나리아가 들어가는 순간 죽게 되면 그 탄광은 매우 위험한 곳이란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탄광의 카나리아(목소리가 성인남자치고 굵지 않고 약간 가는 편이고 노래는 못하는 편도 아님에 불구하고)가 된 것은 바로 담배냄새에 무척 민감하다는 점이다. 집에서 잠을 자는데, 누가 대문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 바로 감지하는 점, 전에 아는 분의 결혼식장에 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몰라도 나는 담배냄새를 맡은 점이다.

 

 

결혼식장 전체가 일정구역을 제외하면 전부 금연구역인데, 누군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담배냄새로 인해 짜증나는 상태로 결혼식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결혼식장을 보고 난 뒤 식사하러 갈 때 일행들에게 담배냄새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후각이 예민한 것인지 아니면 담배에 대한 극단적인 이질감이 있어서는 모르나, 덕분에 탄광의 카나리아가 탄생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조금이라도 상한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이상한 맛과 냄새를 느끼고, 만약 그냥 넘기면 장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장염에 걸린 일들은 1년에 1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고, 담배는 일상에서 언제나 마주치는 대상이다. 담배에 대한 부분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담배냄새는 매워 내 눈을 아프게 하고, 코를 찌르는 냄새는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게 만든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친구가 담배 피우면 뭔가 싶어 하나 물고 빨아보면 아무런 매력도 없고 그저 먹먹한 느낌만 난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던 잠깐 사귄 여자 친구와 키스에서는 뭔가 모를 불쾌감이 왔다. 물론 담배를 깊게 피던 사람도 아니고, 담배 자체도 순한 편인데도 말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담배 하나를 잡고 흡연실에 가는 회사직원, 길가에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물고 다니는 사람들, 담배는 이제 어디 가더라도 누군가의 두 손가락과 위아래의 입술을 연결해주는 교량이 되었다. 좌우와 상하 중심에 있는 담배, 그것은 인간관계도 그렇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선 담배를 피우는 부류의 사람들과 그렇게 대화할 일이 없다. 흡연실에서 담배 한 가치는 모르는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조차도 친하게 만든다.

 

 

담배의 기발한 능력이란 바로 어색함의 무력화다. 담배의 기능 중에 사람의 마음을 진정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는 것처럼 담배를 서로 피우면서 이야기하면 쉽게 친해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게다가 술자리에 특히 담배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술은 인간의 뇌를 자극하여 성격을 급하게 만들거나 혹은 아주 늘어지게 만든다. 이때 담배 하나를 피우면 잠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정신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이렇듯 담배는 우리 일상생활에 매우 깊숙이 자리 잡은 기호품이다. 단지 문제는 기호품이 되어도 세상 모든 사람의 기호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담배에 대한 이야기 그것은 현재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 역시 마주치는 물건이다. 그런데 이 담배가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오늘 어떻게 하여 이 모습으로 하게 되었는가?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담배라는 게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것처럼 담배문화와 관련된 것들은 누구나 1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왜 한국인들은 담배나 또는 담뱃불을 빌리는지, 왜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지, 담배의 맛을 도대체 무엇인지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문학동네 출판사에 나온 <담바고 문화사>는 우리 담배문화의 시작부터 근대까지 자세히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한자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하거나 또는 어려워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을 한자로 남은 조선시대 기록은 잘 정리하여 해석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즐비하게 정리해놓았다. 우리가 누구나 알만한 역사인물이 나오고, 담배는 일상생활 속의 물건이라도 그것이 조선시대 후기 정치적 갈등까지 이어지는 것도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군 도암면 귤동마을 만덕산 자락에서 다산초당(茶山草堂)에 기거하며 유배생활을 하였다. 내가 그 다산초당 직접 방문할 때 주변에 야생차로 가득했으며, 높지 않으나 은근히 산세가 험한 곳이라 작은 절벽 아래로 차나무들이 이래저래 자리 잡았다.

 

 

여기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제자와 친구들이랑 차를 만들어 마셨다. 그래서 다산(茶山)이란 호처럼 차를 사랑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남다(南茶)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남쪽의 차, 즉 담바고 담배이었던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한국위인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었던 만큼 그가 겪은 유배생활은 처음 포항 쪽에 위치한 장기현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 기나긴 귀양, 낯선 공간과 외로움, 개혁을 꿈꾸던 조선의 지식인은 붕당정치에 의해 비참하게 먼 길을 가야 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담배라는 점이 신기했다.

 

 

조선의 대표적인 담배애호가 정조와 정약용이 있었다는 점에서 신기했다. 담배라는 것이 조선 임진왜란 후 새로 왜국과 교역하기 시작하면서 반입되다가 어느 순간 동아시아 최고 담배생산지가 되었다. 담배는 청국과의 교역에 매우 중요한 위치였고, 전쟁 중에 담배가 없었다면 물자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2차례의 호란은 피폐한 국가제정으로 몰고 갔으며, 청국과의 관계에서 담배는 여러모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조선의 담배가 최상의 상품이고 최고의 선물인 점에서 담배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던 시절 제일 중요한 물건이었다.

 

 

양반들이 피우던 담배는 장죽(長竹)을 이용했고, 서민이 주로 이용하던 것은 곰방대였다. 길고 긴 장죽으로 담배를 피우던 양반들은 시간에 대한 풍류를 즐겼을 것이고, 짧지만 편리한 곰방대를 물던 서민들은 고된 하루의 일과를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담배를 맛으로 피우기도 하지만, 왜 담배에 사람들을 끌릴 수밖에 없는가? 이 책에서는 그런 내용은 단지 담배가 가진 성능이나 효과에 치중되어 있다. 물론 담배가 가진 독성이 인간의 폐와 장기에 영향을 미치며, 담배를 횡죽(橫竹)하는 것은 못된 버릇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이유란 바로 인간이 시간이란 것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한가로운 자나 지겨운 자 모두 담배가 좋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조선시대에 놀이나 문화생활에 한계성이 있었다. 영화, TV, PC, 라디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방도가 없었다. 시간은 과연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같은 24시간을 주어진다고 해도 결국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난감한 부분이 생긴다. 선비들은 대부분 독서를 하며 학문을 수행하고, 과거를 보고 관료로 등용되며, 때에 따라서는 정치를 수행한다. 혹은 자연과 집안에서 풍류와 예술을 즐긴다.

 

 

하지만 이 모두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인간은 지겨운 시간을 이기기 힘들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도 지겨운 일이다. 담배는 입에 빵 대신 장미를 물게 해주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담배 한 번 물고 생각이 잠기면 마음이 다시 안정을 찾는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라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그저 한숨만 내쉬는 것보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밤하늘을 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점을 말이다. 한가함의 의미로 장죽은 선비의 무료하고 한가한 시간을 더욱 보배롭게 해줄 것이다. 이에 곰방대는 지겹고 힘든 일에 잠시 마음을 달래는 도구일 것이다.

 

 

담배란 그렇게 우리 민족 역사에서 등장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가만히 앉아 아무 것도 못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이 없다. 귀양길에 오르면서 잠시 앉아 자신의 입장에 서러워하고, 헤어진 형님을 그리워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담배 장죽을 입에 물고 다시 길을 떠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느껴진다. 유배생활 중에 길가 모퉁이에서 친구인 시보와 군보를 기다리며 장죽을 입에 무는 그의 모습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물론 담배가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때는 낭만이란 것이 있었다. 일제 강탈기가 도래하면서 담배는 원래 장죽과 곰방대가 아니라 종이를 말아 넣은 지권연이 수입되고, 지권연은 지금 형태의 담배가 되었다. 지금 우리 담배형태는 약 100년이 넘은 셈이다. 장죽과 곰방대가 당시 유교사회의 관습이 남아있었고, 일제는 그런 유교관습이 제국주의 침략에 방해되고, 경제적 수탈을 위해 지권연을 조선인들에게 판매했다. 물론 담배를 사람들이 많이 피우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담배로 보이는 우리 일상과 전통 그리고 문화가 급속히 사라진 점은 확실히 아쉬운 것은 분명했다.

 

 

담배에 대한 일화를 민화, 시조, 교지, 상소 등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참조하면서 <담바고 문화사>는 우리 담배문화를 보여준다. 그 당시 혹은 지금이라도 담배에 대한 문화적 유사성은 있었다. 담배 한 가치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변에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담배가 개별적인 소모품이 아니라 곰방대나 장죽의 도구였다. 그래서 누군가 빌려주는 것은 다소 성적인 문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고, 위생적으로 좋지 못했으며, 게다가 사농공사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하위계급에 머리를 숙이는 상황도 발생했다. 담배로 인해 재산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에서는 평등주의적인 요소가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유사한 문화현상을 많았다. 다소 우리 문화사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고지식하고 지루할 것으로 보이겠지만, 이 책은 매우 재미있다. 시조내용도 재미있고, 해설내용도 재밌는 흥밋거리로 가득하다. 특히 김홍도와 신윤복의 민화는 그림을 보는 재미도 선사해준다. 고리타분한 지루함이 없는 <담바고 문화사>는 오늘 우리에게 다소 한국문화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관심을 주는 도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문화는 버려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해석하거나 때에 따라선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유물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지키는 것에서 우리 문화는 다양한 맛을 내지 않을까 한다. 물론 그 맛은 애연가에게 달콤하고, 비애연가에겐 매울 수도 있지만, 아마 문화적 유산은 맵고 달콤한 맛을 가진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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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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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책 나오는군요! 이건 사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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