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영화와 만나다
김윤아.이종승.문현선 지음 / 아모르문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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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근에 감상한 애니메이션 중에 <몬스터 아가씨가 있는 일상>이란 작품을 보았다. 물론 한국에서 아가씨란 단어가 들어간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리 없으니 당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아가씨가 있다는 점에서 한 명의 남성에 수많은 여성이 그에게 구애를 구한다.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은 남성중심으로 시장을 개척했기에 남성이 주인공이 되어 수많은 여성들 품에 안기는 것은 흔한 장르 중에 하나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 다르다. 작품은 남성이 중심으로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조적으로 서포터 하는 역할로 나온다. 중요한 활약상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몬스터 아가씨들인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 반인반수, 반인반신 식으로 되어 있는 존재들, 상반신은 인간의 여성으로 나온다. 대부분 미인에다가 스타일도 참으로 좋다. 그러나 허리 아래를 보면 뱀의 꼬리, 말의 다리, 새의 다리, 물고기의 지느러미, 거리 다리 등등으로 나온다. 상반신은 인간형이나 하반신은 인간이 아니다. 다른 세계 전설 속에 등장하는 존재가 인간 세상에 찾아와 그녀들은 자신들이 머물 장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거기서 인간 보호자를 구하여 홈스테이를 해야만 체류가 가능하다. 이른바 가족이란 형태로 인간과 같이 생활을 해야 하는 점이다. 인간이 아닌 그녀들은 물론 생식기능을 가졌기에 인간과 교미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인간과 비인간 중간에서 무엇이 나오느냐이다.

 

사자와 호랑이와 교배한 라이거나, 말과 당나귀를 교배한 노새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그 종들은 종을 남기기 어렵고, 수컷은 거의 불능에 가깝다. 그런데 인간이 다른 종이 합하면 어찌 되는가? 그런 의문의 요소는 SF재앙영화 <더 플라이>를 보여주었으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인간과 교미하는 암컷 몬스터는 그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담은 아이가 나오는 것이다. 라미라, 인간형 뱀 족 아가씨도 그렇고, 하피도 그렇다. 생각하면 그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혹은 아닌지를 떠나서, 인간에서도 황인종과 백인종, 흑인종 등이 DNA를 후손에게 남겨둘 때 각각의 특징을 타고 태어난다.

 

그러나 <몬스터 아가씨가 있는 일상>에서는 인간의 요소는 없다. 이 안에는 엄청난 사회적 함의가 숨어있다. 제작국은 일본이고, 일본도 세계적으로 강대국이다. 그 나라에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것을 바라보는 일본사회가 바로 그 작품에서 숨어있는 의미다. 이래저래 소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남자주인공의 시선으로 보자면, 서로 다른 종족이지만 그들도 생명이 있다는 것이고, 몬스터일지라도 그들도 레이디란 점이다. 종족과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몬스터 아가씨에게 모두 레이디로서 대우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세계적인 교류가 활발한 점에서 작품은 그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셈이다.

 

애니메이션의 신화인 디즈니메이션에선 그런 것을 교묘하게 헤게모니적으로 이용했다. 예전에 <알라딘>에서나 <라이온킹>에서 백인식 영어나 흑인식 영어가 다른 점을 이용하여 흑인식 영어는 나쁜 것으로 몰고 가거나 인종차별적인 이념을 작품에 반영했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이나 그동안 해온 짓을 본다면 모든 것을 잘했다고 본 것은 아니나, 대중매체로 통한 영상물들은 시청자로 하여금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이미지 세계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의 현실성으로 바꾸어 버리는 스펙타클이 존재한다.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 첫 장부터 이미지로 만들어진 세계는 이미지로 통해 모든 것을 만들고 파괴한다. 스펙타클의 전복은 곧 새로운 스펙타클의 옹립이기 때문이다.

 

스펙타클로 넘치는 영상세계는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보단 감성의 세계 내지 무의식을 자극한다. 문자는 우리가 읽고 생각해야 하나, 영상물은 이미지의 재현과 소멸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므로 환상적인 공간이 된다. 물론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이미지로 남아 우리의 인식 안에 각인된다. 그렇기에 인간의 집단적인 무의식을 강조하기도 하고, 각종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서 영상의 존재는 큰 힘을 발휘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시대적 분위기가 영상 안으로 스며들며, 인간의 무의식적인 심리가 하나의 신화로서 영화로 태어난다.

 

우리의 문화를 알려면 영상을 배제하고서는 떨어질 수 없다. 비단 이번에 읽은 책 제목이 <신화, 영화를 만나다>이나, 영화에서 반드시 극장의 영화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과 같은 영상서사물도 포함된다. 신화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고, 신화하면 우리가 아는 단군신화나 주몽신화만이 아니라 인간 세상사에 녹아있는 다반사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우리의 이야기보단 헤게모니적인 형태로 신화 속의 주인공에 열광하거나 그 신화적인 욕망을 분출한다.

 

신화가 과거의 이야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존재로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다르다고 하나, 인간의 근본적인 영역에서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인간의 뇌가 약 만 년 전의 크로마뇽인들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인간이 발달된 것은 기술문명과 제도 등이 있지만, 인간 그 자체로서 진화는 하지 않았다. 문명적 진화와 신체적 진화는 다르다. 오히려 신체적으로 과거의 인간보다 퇴화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환경이 오염되고, 생태적인 조건에서 지구는 생물이 살기에 점점 좋은 곳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은 문명과 자연, 근대와 전 근대 등 이항적인 조건에 의해 갈등을 빚게 된다. 지난날의 삶과 앞으로 삶에서 현재 우리 모습은 가운데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과거는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만 다가오는 것인가? 항상 현실의 자신에게서 인간은 정체성이란 영역에서 고민을 한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의미는 자신은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으면 좋겠는가? 나는 무엇에 흔들리는가? 라는 다양한 주제의식을 던진다. 신화는 바로 그런 의미를 찾아가거나 찾아주는 의식적 역할을 수행한다.

 

책에서도 잘 지적했지만, 평소 한국역사나 신화에 관심이 없는 자들도 한국이 월드컵에서 상대국가하고 경기를 하면 월드컵주제가를 부른다. 그런데 가사 중에 단군의 자손이란 말을 사용한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 같이 대륙을 호령한 역사의식은 다른 국가와 경기에서 한국은 강력한 민족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인 것이다. 2002 월드컵에서 Red Devils란 모습도 치우라는 전설적 무신을 현실에서 다시 등장하게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때만 민족을 찾는 행위는 조금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신화적 존재가 역사적 존재로서 남을 때도 있고, 현재의 역사성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신화라는 것은 현실의 영역에서 언제나 우리 삶을 향유하고 있는 현재성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신화의 세계를 재현 내지 그 법칙을 따라가고 있다면, 우리는 신화를 그냥 수동적으로 겪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신화, 영화를 만나다>는 그런 점에서 처음 접하기엔 조금 어려운 점은 없지 않으나, 영화와 신화 그리고 대중매체로 통해 보는 사회적 관계에 흥미가 있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각 파트별로 신화와 주제를 분리하여 설정하고, 각 파트 마지막 부분에서 읽을 만한 도서를 추천한다. 영화나 신화의 세계는 너무 광대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신화 이야기와 문학이론, 영상이론, 문화사회학 도서들을 탐독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알아가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삶이 어떤지, 내가 누군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위에서 언급한 <몬스터 아가씨가 있는 일상>에서 몬스터와 교미하면 암컷 몬스터는 인간을 낳지 않고, 인간과 몬스터 중간도 낳지 않고 바로 몬스터로 나온다. 일본사회가 나름 열린 것은 인정하나, 아직까지 몬스터라는 존재로 통해 외국인과 내국인하고 결혼하여 후세가 나오면 내국인이라는 것보다 외국인으로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배타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호의적이나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으며, 몬스터에 대한 혐오의식을 가진 자들도 있다.

 

<신화, 영화를 만나다>에서도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검토하면서 1920~30년대 미국대공황, 베트남전쟁, 각 정권에 따른 시대적 조건에 따라 영화장르 내용을 다룬다. 거기서도 사회적 흐름과 국제정세에 따라 영화의 장르가 탄생하고, 성공하는 사례도 보여준다. 이른바 영화에서 트렌드가 나타나고, 그 트렌드는 현실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읽게 해주는 것이다. 대중의 욕망이 매체로 통해 드러나고, 영화가 현대적인 신화로 재탄생하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추천할 만하다.

 

영화를 감상하다면 다른 제작국이나 제작사 시기가 다르지만 같은 소재와 같은 주제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아더왕의 이야기가 나올 때 최근 <페이트 제로>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신화 속의 주인공은 언제나 이야기의 단골메뉴이고, 제작사나 대중의 기호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다. 그 작품들의 원류를 알고 다시 보고, 재조합한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이쪽 분야의 전공자나 관계가 전혀 없는 분들이라면 다소 짜증이 날 것이다. 그나마 이 책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책이 아닌 게 다행이다. 인문학자들이 학술적인 시선이 담겨있지만, 어디까지나 책에서 다루는 것들은 대중매체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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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 -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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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사회의 문제와 모순점을 간단히 알려주는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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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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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적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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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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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의 지평을 열어가는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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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 윤한봉 회고록
윤한봉 지음 / 한마당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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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재판에 대한 뉴스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 계엄군에 대항하던 시민들의 유해가 가족 품으로 온 장면이었다. 자식과 형제 그리고 친구의 차가운 몸과 붉게 젖은 천을 바라보며 그들은 원통한 눈빛으로 통곡하고 있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으나, 군인이 민간인을 총으로 살해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국군이란 헌법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나라를 지켜야 하나, 때로는 권력자들의 눈빛을 따라 움직일 때도 있다. 이른바 충정훈련, 공수부대를 오랫동안 훈련시키면서 전투요원의 마음에 진압당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때려죽여야 하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5월 17일 그들의 작전이 시작되고, 18일부터 누군가의 지시 아래 총포가 울린다. 아직도 그 총포를 지시한 지휘관은 누구인지 그 윗선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만약 진짜 518사태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총을 쏘게 한 지휘관은 누구고, 그 명령을 내린 상부기관과 상관의 이름이 나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 국가의 위기를 모면한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라면, 분명 그것은 바른 판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35년이 넘은 지금에도 그 지시를 내린 자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

 

만약 진짜 북한의 음모와 반국가적 폭동이라고 한다면 그 지휘관의 이름과 상관의 이름은 분명 우리 앞에 등장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인지 모르고, 그것을 전혀 밝혀들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518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른 사건이란 점을 반증하게 된 것이다. 진짜 북한의 소행이라고 한다면 희생자 중에서 임신한 여성이나 이제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아이나, 어린 여중생들이 왜 국군의 총에 맞아 사망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비논리와 비이성적 억척은 거짓의 논란과 위증의 말꼬리를 잡고, 그런 것 같더라 혹은 그랬다고 하네요. 라는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낸다. 518의 역사, 그리고 최근 정치권에서 광주중심으로 한 정당을 창당, 왠지 모르게 역사의 흐름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상황이 보이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이번에 읽은 책이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이 저술한 <망명>이란 책을 읽으면서다. 본래 <똥가방>이란 이름이란 책으로 발간했지만, 내용을 보충하고, 다소의 에필로그를 추가하여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윤한봉은 참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운동역사에서 빠질 수 없던 인물이다. 1970년대 유신정권이 들어오면서 사실상 대한민국 헌법은 권력자의 무력 앞에 무참하게 짓밟혔다. 이때부터 많은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났으나 군사정권은 고문과 감금 그리고 심지어 사법사형까지 일삼는 잔혹한 추태를 보였다. 윤한봉은 1970년대부터 유신에 대한 저항으로 체포되어 구형되었고, 출옥 후에도 계속 민주주의운동을 하였다.

 

제3공화국 말, 윤한봉은 강제로 감옥에 끌려와 각종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1026사건 이후 출옥되자, 조만간 1212사건이 일어난다. 군부가 장악하던 시절, 윤한봉은 1980년 5월이 오기 전부터 신군부가 25일 전후로 광주에 유혈진압을 할 것이란 말을 한다. 모두 다 아닌 것 같다고 하나, 막상 18일이 되자 광주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윤한봉의 친구와 동무들은 무참하게 진압부대의 총과 칼 아래 주검으로 변하고, 윤한봉은 수배자로 몰리자 주변의 의견에 따라 외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심한다.

 

미국으로 가는 배, 35일 동안 더운 방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배고픔, 외로운, 억울함, 죄책감으로 사무쳐 괴로워하며 표범(leopard)호에 탑승한다. 미국에 내릴 때 그는 병든 사람처럼 창백했고, 자유가 없는 고국을 떠나 낯선 타국살이를 시작해야 했다. 1981년대부터 시작하여 12여년을 타국에서 보낸 후 1993년 비로소 고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의 생활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가난도 그런 것이지만, 망명을 받아들인 것은 한참 후이고, 미국정부와 미국 내 한국대사관의 공작으로 계속 억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고, 미국에 한국청년연합회를 결성하여 미국 내 여기저기 흩어진 동포를 모우고 그들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망각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고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이 남영동 고문실에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받는 것을 소식으로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려야 했다.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보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그들이 자신의 망명 때문에 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 윤한봉은 자신이 감옥에 수감되고 나올 때, 아버지가 노환으로 사망한 것을 들었다.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점에서 그는 가슴이 무너졌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고, 돌아간다 해도 무사할지 모르는 것이다. 벼랑이 언제나 눈앞에 있는 그의 운명에서 그는 불굴의 정신으로 미국 LA 한인사회를 차츰 변화시켰다. 지금의 미국 한인동포 모임에서 그가 남긴 업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에 온 이민자들, 고향을 잃은 사람과 고향을 등진 사람들, 그래도 한국은 우리의 고향이고 그리운 흙이 있는 곳이었다.

 

이 책을 보며 느끼지만, 약하고 힘이 없는 자들은 어떻게든 바르게 정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도 불리한 상황은 계속 압박하고 때에 따라서는 박해는 지속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을 억압하는 무리에 대해 다른 조직이나 사람들과 연대하겠지만, 그 연대하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명분이란 이름으로 숨기며 각종 특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언제나 겨울의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여름의 더위와 외로움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막상 어느 상자리가 차려질 것 같으면 어김없이 달려 들어와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518재단을 발기했을 때 윤한봉이 처음 공로가 많았지만, 막상 그 행사가 열린 당일에는 윤한봉을 시기하는 무리가 나와 묘소에 참배하는 것을 가로 막았다. 윤한봉이 했던 일 중에 아마 DJ에 대한 비판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지자가 있더라도, 만약 지지자들의 비판이 있으면 그것을 듣고, 반성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다. 호남권에서 DJ의 비판은 곧 적이 되어야 했고, 윤한봉은 그것을 바로 실시하던 사람이었다. 광주에서 518의 슬픔은 윤한봉 역시 크다. 그러나 그 슬픔의 공로를 정치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무리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DJ정신의 계승에서 김대중 대통령 사망 이후 보이는 정치권의 행태는 왠지 참 안타까웠다. 2007년 윤한봉이 사망했으니 이미 그 전에 <망명>이란 책이 발간되었다. 그런데 벌써 그것을 예측하고 문제가 터졌다. 인간에 따라 공과 실은 나누어지나, 공만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실책을 보고, 그것을 다시 반성하여 새롭게 나가는 게 바른 길이다. 지금 한국 정치에는 전혀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작년에 우연히 광주에 갈 일이 있어서 망월동에 있는 518묘지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다음에 갈 일이 있으면 윤한봉의 묘지 앞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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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1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9-22 08:43   좋아요 0 | URL
아~!
제 전공은 정치와 철학이 아닙니다.
저는 공대출신입니다. 전공이 환경인지라 환경 자체가 아주 조금 인류학이랑 관계가 있다보니 인류학쪽으로 관심을 돌리다가 이렇게 오게 되었군요.

오덕은 진화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