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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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하고 내가 말했네.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통치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네. 그들은 을 받고 공개적으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고용인들이라 불리기도 바라지 않고, 권력을 이용하여 공금을 몰래 착복함으로써 도둑이라 불리기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지. 그들은 또한 야심이 없는지라 명예를 바라고 통치하지도 않을 것이네. 따라서 그들이 통치하게 만들려면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벌 받게 하지 않으면 안 되네. 이런 이유에서 강요당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진하여 관직을 맡는 것이 창피스러운 일로 여겨져왔던 것 같네.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는 것일세. 적격자들이 통치하기로 승낙하는 것은 이 점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듯하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마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뭔가 좋은 것인 양 권력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대신 이 일을 맡아줄 더 훌륭한 사람들이나 대등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다가간다네. 혹시 훌륭한 사람들의 도시가 생긴다면, 그곳에서는 지금 우리 사이에서 정권을 맡지 않으려고 경쟁이 벌어질 터인데, 그것은 진실로 참된 통치자는 본성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피치자에게 유익을 것을 생각한다는 명백한 증거일세.” (『국가』 347b~d, 67~68면


선거의 계절이 또 왔다. 여러 선거 중에서도 대통령선거는 투표율도 높고 전국을 들썩거리게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대선은 꽃 중의 꽃인 셈이다. 정기적으로 다가오는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플라톤의 대화편 한 구절이 어김없이 소환된다. 신문이며 방송은 물론이고 후보자가 직접 이 대목을 인용하기도 한다. 대략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와 같은 메시지다. 천병희 님 번역에 따르면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는 것일세.“이다.

 

오늘날 투표 참여 캠페인에 약속처럼 등장하는 문구이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면이 있다. 여기 언급하는 ‘그들’ 또는 ‘훌륭한 사람들’은 뛰어난 철학자(哲人)이며, 플라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철인통치론’를 주장하였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철저히 검증된 소수의 엘리트들(곧 '수호자(guardian)', 이들만이 정치 권력을 잡아 다른 모든 (열등한) 이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통치를 거부한 그들(철학자들)이 받는 벌은 자신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오늘 현실을 떠올리며 텍스트를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다. 그런데 핵심 인용문 전후의 맥락이 흥미롭다. 인용문 앞뒤의 텍스트까지 읽으면 오늘날 정치 현실에도 여전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통치하기를 선택했을 때 어느 누구도 ‘돈’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는 경고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통치자는 ‘걸면 걸리는’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용문의 후반부에서 혹시 ”훌륭한 사람들의 도시“가 있다면 이상국가를 통치할 자격을 갖춘 자들이 서로 ”정권을 맡지 않으려고 경쟁이 벌어질 “ 것이라는 언급이 흥미롭다. 여기서도 오늘날 우리 사회라고 가정하고, ”대통령으로서 자질은 갖춘 이들이 서로 대권을 맡지 않겠다고 경쟁하는“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런 양보가 가능할 수 있을까? 


선거철이면 자주 거론되는 『국가』의 한 문장의 출처와 전후 과정을 공유하자는 뜻에서 정리했다. 최근 한 시사유투브에서 이번 대선 출마자들의 인물 됨됨이를 분석하는 방송을 보았다. <최동석의 인사만사#4회>(열린공감TV, 2022. 2. 4.)인데, 최동석 소장이 준비한 PPT(아래 사진)가 시사하는 바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4Q2rDA5Oto ) 


최 소장이 1965년 이후 하버드신학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친 하비 콕스가 쓴 『신이 된 시장-시장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정리했다는 자료라고 한다. 하비 콕스는 『세속 도시』(1965)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신학자다. "돈이 곧 명예이고 권력이고, 권력이 곧 돈이고 명예이며, 명예가 곧 돈이고 권력“으로 셋은 삼위일체로 함께 쥐게 되는데, ”이 마약을 한 번 먹으면 자기인식이 불가능해지고 학습능력은 떨어진다.." 최소장님의  설명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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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0 1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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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전가(傳家)의 보도(寶刀)", 무심코 썼는데 일본에서 유래된, 일본의 무사 문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해가 바로 온다. 그런데, 이 칼은 실제로 쓰는 칼이라기 보다는 그 존재 자체로 정통성('자부심' 혹은 '자존심')을 입증하는 상징으로, 컬렉션만으로도 영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길이 보존하세" 말하자면 서양 중세를 떠올리면 등장하는 봉건 영주 가문의 문장(紋章)과도 유사한 것이다. 무심코 받아들이는 '프레임'이란 개념도 그런 것 아닐까? 

02. 

비주얼은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나익주 지음, 2020)의 표지다. 한국 사회에 '프레임'이란 용어 혹은 개념을 유포한 저자가 쓴 일종의 사례집, 열심히 읽었다. 가장 궁금한 대목이 있었는데 나름의 답이다. 

"프레임 형성 이론에서 말하는 '프레임'이란 개념적 은유 이론에서 말하는 '개념 영역'에 해당한다. 물론 '개념 영역'이 적용 범위가 넓고 시간상 안정적이어서 정적인 특성을 가지는 반면, '프레임'은 발화 순간 적용 범위를 한정하고 실시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동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개념 영역'과 '프레임'은 미세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여기(이 책에)서는 두 개념 차이가 초래할 수도 있는 학문적 중요성을 논의하지 않기에, '개념 영역'과 '프레임'을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프레임'은 동(動)적이다. 달리 말하면 의도가 분명하다. 뉴스가 그렇듯 굿 뉴스보다는 배드 뉴스, 곧 내거티브에 익숙하다. 그 자체가 내거티브다. 필자는 이렇게 해석하는데 현실이기도 하다. 

03.

노승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다. 조그만 새 한 마리를 넣고 키웠지.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겠는데 그동안 커서 나오질 않는구먼----- 병을 깨뜨리지 않고는 도저히 꺼낼 재간이 없어. 그러나 병을 깨선 안 돼. 새를 다치게 해서두 안 되구. 자,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만다라』40면) 소설 속 자암 스님 말씀)

04. 

플라톤이『국가』에서 소개한 동굴 우화만큼이나 해석의 여지가 넓은 혼란을 주는 화두다. 

05. 

순간의 꽃, 꽃이 되는 찰나의 관심사는 한 컷의 사진, 한 편의 시, 책의 표지(디자인)인데. 그 사례로 이 표지를 골랐다. '병 속의 새'라는 화두와 프레임(혹은 한 개념을 강조하는 다른 개념)에 빗댄 것까지는 좋았는데, 말아 많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06. 또 하나의 아쉬움은 필자도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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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요즘 OOO 씨나 저를 보고 ‘얼굴 천재’라고 한다.”라며 외모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출해 웃음을 자아냈다.](<스포츠투데이> 2016년 10월) 언제부터인가 ‘얼굴 천재’라는 말이 일상에서 거리낌 없이 쓰이고 있다. 정확히 그 언제가 언제인지를 알 수 없지만, 인터넷 사전은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예시로 2016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포털 검색 결과, 주로 연예인들을 다룬 기사들에서 따옴표 처리를 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이런 말의 쓰임을 견제하는 뭔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응이 좋았던 드라마나 영화의 명대사로도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얼굴 천재’라는 낯선 말을 처음 접했던 드라마가 떠오른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임수향·차은우 주연, JTBC드라마 금토 16부작, 2018.7.27.~9.15)이다. 어릴 적부터 ‘못생김’으로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성형수술로 새 삶을 얻을 줄 알았던 여자 ‘미래’가 대학 입학 후 꿈과는 다른 캠퍼스 라이프를 겪으면서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 역시 성형수술이 개입하며 외모지상주의의 반작용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형술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불과 5년 전 드라마인데, 한 10년쯤 전에 방영된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 놀랍다.▲[아래 댓글]


문득 우리 일상어 권으로 진입한 ‘얼굴 천재’

그런데 외모가 한 사람이 가진 자질(특성)로 평가 기준이 되었던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 연원(淵源)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기록으로 인재 등용 기준이 되었던 신언서판(身言書判: 신수·말씨·문필·판단력)은 중국 당(唐 AD618~907)나라, 우리는 통일신라 무렵부터라고 한다. 네 가지 기준 가운데에서도 맨 앞이 ‘신(身)’이다. 여기에서의 신수(身手)가 오늘날의 ‘얼굴 천재’처럼 얼굴의 생김새, 외모 지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용모나 풍채가 인재를, 그리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오래전부터 작동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천재(天才)’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를 뜻하고 ‘그런 것을 가진 사람‘이 천재다. 천재 시인, 천재 과학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이처럼 특정한 분야(재주나 정신능력) 앞에 붙어 ’천재‘라는 단어를 쓴다. 물론 ’바이올린 천재‘나 ’과학 천재‘와 같은 쓰임도 가능하므로 ’얼굴 천재‘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어색하다. 그런데, 천재가 ’선천적(先天的‘(↔후천적 後天的)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것‘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재 성형외과 전문의에 의해 태어나는 성형미인, ’얼굴 천재‘는 이 즈음에서 혼란을 야기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인재 기준, 통일신라부터 시작

내 아이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인재 판단 기준으로 보았을 때, 어느 분야든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희망하는 것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오래된 서양 고전 중에서 그 노하우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거의 모든 학문의 개론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시학』이다. 얼굴 천재로 키울 수는 없더라도, 뛰어난 말솜씨와 글솜씨, 우수한 판단력을 가진 자연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노하우가 알차게 담겨 있다. 그리고 저자는 『시학』(22장)에서 ’천재‘를 직접 언급한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은유에 능한 것이다.)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상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시학』 22장, 429면)

제호가 ‘시학(詩學)‘이라고 시의 표현법 중 하나인 ’은유(隱喩)법‘에 대한 강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한정한다. 그리하여 앞서 살핀 ’천재‘라는 의미에 충실하게 은유 능력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 그러나 “그가 은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한 과장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사다리 치우기'로 보인다. 은유는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현대 교육심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김용규 지음, 『생각의 시대』 161면, 제3부 생각을 만드는 생각들 제1장 메타포라-은유) 김용규는 현대 철학자 폴 리쾨르의 『살아 있는 은유』(1975) 한 대목을 소개한다. 

 "유사한 것을 알아채고 관찰하고 보는 것, 거기에 시학과 존재론을 하나로 만드는 시인들의 그리고 철학자들의 정신적 섬광이 존재한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라는 것.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한 은유를 리쾨르는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노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은유 능력, 남에게 배울 수 없는, 천재의 표상

은유가 가진 힘과 관련하여 또 하나(혹은 한 분야의)의 참고할 책이 있다. 나익주의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2020)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프레임 이론을 정립, 유포하고 우리 사고 과정과 사용하는 개념이 은유적임을 간파한 『삶으로서의 은유』를 쓴 레이코프와 존슨에게 공부했다. 『프레임 전쟁』을 비롯 대부분의 선생님 저작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했으며, 오늘날 숱하게 쓰고 있는 ’프레임‘이란 개념을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은유는 단순히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넘어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과 경제, 국제 관계, 성과 사랑, 사회적 재난, 개신교 세계관을 은유로 묘사하는 언어 표현들을 분석함으로써, 추상적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물론 이 책도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앞서 소개한 부분을 인용하면서(서장) 시작된다. 

한 권으로 묶인 ’수사학‘과 ’시학‘, 저마다 가진 콘텐츠가 어떻게 공조(共助하고 있는지, 관련된 리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생각의 시대』에서는 시 읽기, 낭송하기, 기왕이면 암송하기 등 생각의 도구인 ’은유‘ 능력을 습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저자의 유투브 강연도 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는 번역과 집필로 우리 사회에 프레임 이론과 은유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가 관심 영역을 중심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 있는 은유의 힘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찾는 과정이고, 집필 기간이 좀 길어서인지 유행이 지난 옷을 입는 느낌이지만, 생생한 ’지금 여기‘ 우리 사회 뉴스들에 숨어 있는 불순한 의도를 떠올리노라면 섬짓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수사학/시학』- 『생각의 시대』-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곧이어 3월,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필자에게는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자녀의 나은 삶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시작한 책들 소개가 길어졌다. 관련 이론들을 찾아 읽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좋은 부모 노릇을 위해 어른들부터 읽어야 할 책들이기도 하다. 끝으로 『생각의 시대』 175면 한 대목을 소개한다.


”아이들은 작대기를 말(馬)이라고 타고 다니며, 바나나를 전화기라고 들고 다니고, 새끼줄이 뱀이라고 갖고 논다. 그러다 6세 이후부터 학교에 다니면서 점차 부적절하거나 불합리한 은유를 순화해가는데, 그러면서 은유의 사용도 함께 줄어든다. 

왜 그럴까? 주된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은유 능력이 점차 떨어진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유사성이 아니라 동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에 의해 아이들이 점차 길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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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2-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얼굴 천재>(by 지에이)라는 웹툰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게임 캐릭터로 변신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 스킬과, 그 모습이 모두 내 것이다. 나는 이제 언제든 ˝얼굴 천재˝가 된다!” 그런가 하면 <외모지상주의>(by 박태준)라는 웹툰도 연재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는 지금 넷플릭스 드라마(OTT)에서 서비스 중이다.
 

"우린 두렵다고 죽이지 않아. 생명을 구하려고 죽이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위쳐> 시즌2(2화 20분 즈음)에 나오는 대사다. 상황에 따라 ‘워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동일 메시지의 대사가 등장한다. ‘위쳐’란 마법이 만든 (인간의) 돌연변이. 세 주인공 중 하나로 ‘위쳐계’를 대표하는 게롤트가 '의외성의 법칙'으로 운명 지어진 시릴라 공주(시리)와 드디어 만나, 공주를 지키기 위해 위쳐들의 안식처인 케어모헨(집)에 이르고 (제거 대상이자 수입원인) 괴물들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다. 


시리: 훈련도요? 

게롤트: 훈련은.. 위험해

시리: 검은 깃털 달린 투구 쓴 사람도요. 

게롤트: 그자를 죽이고 싶니? 

시리: 네

게롤트: 왜? 

시리: 증오하니까요. 

게롤트: 중요한 얘기다. 우린 두렵다고 죽이지 않아. 생명을 구하려고 죽이지, 알겠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한 '위쳐'. 드라마는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기에 갖은 괴물들이 등장하고, 기묘한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등 판타지적 볼거리가 화려하고, 영상미도 기대 이상이다. 폴란드의 경제학자이자 소설가인 안제이 사프콥스키는 이 소설 하나로 단숨에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아직 원작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한 상태인데, 그것이 소설이건 게임 시리즈이건 드라마이건 앞서 인용한 대목에 이 작품의 핵심 주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너희 인간들처럼) 두렵다고 해서 그 두려운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생명을 지켜내는 최후 수단으로 '죽임'을 선택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떠올린 한 권의 책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지음)이다. 인류 최초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부를 수 있는 실제 전쟁을 기록한 역사,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후로도 전쟁은 왜 일어나게 되는지를 간파한 ‘정세 분석’은 이 책의 백미(白眉)이며, 훗날의 독자들에게(인류) ‘경고한 바’는 지금도 유효하다. 특히 해양세력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배경에서 살아가기에 이 전쟁은, 그리고 전쟁사는 전율로 다가온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서양 고전들 대부분을 원전번역한 놀라운 성과를 남긴 천병희 선생에게 그나마 번역상을 드릴 수 있었던 ‘작품’으로, 이 책을 다룬 책(각종 ‘리뷰’를 포함)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라디오 인문 강연으로, 그 강연록을 반영한 강유원의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라티오, 2장, 2021년 11월)는 ‘전쟁사’를 읽기 전후에 살필 책으로 추천할 만 하다. 간명한 정리가 돋보인다. 

두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헬라스(그리스) 세계는 30년 평화조약을 맺어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다. 해양세력(해군)을 기반으로 한 아테네 중심의 아테나이 동맹과 육상세력(육군)이 주축인 라케다이몬이 중심인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팽팽한 긴장. 이들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 상태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이런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텍스트가 바로 전쟁사의 전반부이며, 곳곳에 같은 맥락의 진단이 등장한다. 정리하고 요약해서 소개하기가 힘들 만큼 텍스트 자체가 명료하다)


  

”그런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둘 다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으며 적대감은 상승한다. 공포가 쉽게 적대감으로 번지는 것이다. 일종의 '덫'에 빠진 상태다. 이 덫에 걸리면 공포가 안보 불안을 불러오고 상대방의 전력을 과대평가하면서 급기야는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숙명론에 빠지기 쉽다.“(앞의 강유원의 책, 36-37면 요약)


상대방(세력)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가 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처음엔 사소한 듯 보이는 분쟁이 불씨가 되어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 것.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에 빠진 것이다. 

『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1.31.)은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과 중국을 세력의 중심으로 대결하는) 국제정치판의 상태와 사태를 진단하였다. 



치르고 난 이후 생각하면 인류사의 끊임없는 전쟁의 원인은 무척 원초적인데, 먹거리(경제) 문제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거친 산악지역이라 몇몇 특산(과일)물을 제외하면 기본적인 식량(곡물)을 자급자족하기 힘든 아테나이 제국에게 제해권(制海權)은 생명줄이었다. 이 점을 간파하고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그리스의 영광을 이어가고자 한 정치지도자가 페리클레스다. 그가 죽은 다음 차세대 지도자로 등장한 클레온도 이 정책을 지지했으며, 알키비아데스가 시켈리아 원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연설도 이 맥락에 닿아 있다. 농업생산이 나라 경제의 기반인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에게 제해권을 잡고 날로 페르시아 연안에까지 지중해 곳곳에 식민시를 세우며 팽창하는 아테나이 동맹은 불안감을 부추기고, 아테나이 동맹 입장에서도 그들의 근간인 육지에 잠재적인 적을 남겨둔 채 해외 진출에만 집중하기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아테나이의 영광은 제해권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 제해권을 추구하면서 아테나이는 몰락했던  것이다“(앞의 강유원의 책, 43면) 전쟁에서 진정한 승자는 없다. 이 전쟁은 결과로만 치면 펠로폰네소스 동맹(라케다이몬)의 승리로 끝나지만 결국 제3의 세력에 의해 두 제국이 주도하던 영광의 그리스의 시대는 몰락하게 된다. 

두려움은 ’다름‘에서 싹트는데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서로 다름이 가진 강점으로 협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돌이킬 수 없는 전쟁으로 이어진다. 생산하는 방식이 삶의 양식을 규정한다. 다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면 비극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인용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인간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동물입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방식이 인간 삶의 양식을 규정하죠. 양떼를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유목생활자는 한곳에 정착해 삶을 영위하는 농경생활자와 다른 방식으로 먹거리를 마련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목생활자와 농경생활자는 다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지요."(양문덕 지음, 『철학 놀이터』 63면, <먹거리 '찾기'에서 '생산'으로> 중) 


드라마 <위쳐> 시즌2의 한 장면. 게롤트는 '의외성의 법칙'으로 운명 지어진 시릴라 공주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다. 언제까지나 게롤트라는 보호와 보살핌에만 의존할 수 없다. 게롤트도 시릴라공주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위쳐들이 받는 훈련을 시키게 된다. 시리는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과거보다 성장해가고 또 자신을 둘러싼 비밀 역시 알아가고자 한다. <위쳐> 시즌2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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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1-31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 어제 5년여 만에 ‘화성-12형‘ 발사..˝정확성과 안전성 확인˝(입력 2022. 01. 31. 06:36) 오늘 자 뉴스.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면 8년여 만에로 긴장 국면의 주기가 바뀔까? 이 리뷰를 쓴 동기다.
 

청소년과 어른을 위한 정본 <<이솝우화>>(천병희 옮김, 숲)에는 탈모인에 대한 이야기가 두 꼭지가 나온다(/2358). 탈모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대머리'라는 단어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작품이니까. 일종의 세대 갈등의 희생양(1), 난무하는 뇌피셜(2) 등 우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시대에 따라, 보는 이에 따라 늘 새롭더라. 한 대선 후보의 탈모치료제 관련 공약을 지켜보다, 두 편을 골라보았다. 

*은 정본 이솝우화에 있는 그 우화의 교훈이다.  아이소포스의 이름으로 우화집이 발행될 당시의 그 우화에 대한 보편적인 교훈을 기록했다는, 정도로만 여기고 비교해보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052. 반백(半白)의 남자와 작은마누라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에게 애인이 둘 있었는데, 한 명은 젊고 한 명은 늙었다. 

나이 많은 여자는 연하의 남자를 가까이하는 것이 창피해서 

남자가 찾아올 때마다 늘 남자의 검은 머리를 뽑곤 했다. 

한편 젊은 여자는 애인이 늙은 것이 싫어서 그의 흰머리를 뽑았다. 

그리하여 그는 두 여자에게 번갈아 머리털이 뽑혀 대머리가 되었다.


*이와 같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언제나 해롭다는 것이다.


097. 디오게네스와 대머리

견유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1)가 어떤 대머리에게 모욕당하자 말했다. 

“나는 모욕하지 않겠소. 천만에! 

오히려 나는 당신의 사악한 두개골을 떠난 

머리털을 칭찬해주고 싶소.”


*이 우화에는 ‘교훈’이 없다. 

1)디오게네스(Diogenes 기원전 400년경~325년)는 그리스의 견유학파(犬儒學派) 철학자이다. 견유학파란 개인의 정신적인 자유 확보하려고 욕심 버리고 자연생활 영위를 이상으로 삼는 그리스 철학의 한 학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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