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 2020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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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은 끝났지만, 국민통합을 이뤄야 하는 작금의 국내 상황도 한창 전쟁 중, 아니 이제 막 시작되었다. 두려움의 저편애 자신감이 있다.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도 그렇지만 과도한 자신감도 무척 위험하다.] "두려움은 파괴나 고통을 야기할 임박한 위험을 생각할 때 느끼는 일종의 고통 또는 불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해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나 고통을 야기할 해악만 두려워하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2권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간파해야 할 인간의 감정들에 관해 고찰한다. 인용은 제2권 5장 '두려움과 자신감' 중 두려움에 대한 간명한 정의다. 필멸의 인간에게 죽음은 언젠가 다가올 위험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결국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음이 가까이 있지 않으므로 죽음에 무관심하다. 곧 우리는 (죽음처럼) 아주 멀리 있는(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큰 파괴력을 가지거나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해악을 끼칠 능력이 있어 보이는 그런 것들이 두려운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 것들은 징후조차도 두렵다는 것. 이런 징후의 한 예로 "우리를 해코지할 수 있는 자들의 적대감과 분노가 있다." 나아가 우리를 해코지할 수 있는 자들이 느끼는 두려움도 마찬가지다.(수사학, 2권 제5장 두려움과 자신감(1382a~1383b) 앞부분 정리) 


[아주 멀리 있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과 더불어 <시학>을 썼고, <시학>을 집필한 동기가 그리스 비극이 가진 힘을 강조하기 위한 것 아닌가, 싶게 비극 장르, 그 작품들이 가진 미덕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반면 <수사학>은 좋은 문학작품이 가진 수사적인 면모(기술)를 간파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지, 그 노하우를 밝힘으로써 수사학을 학문 영역으로 편입시킨 저작이다. 그럼에도 <수사학>의 텍스트들은 그리스 비극이 가진 역동적인 힘을, 흔히 말하는 '드라마를 드라마틱하게' 즐길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다음은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메데이아>와 <휩폴뤼토스>의 줄거리이다. 두 작품의 등장인물이 가진 '두려움'의 실체를 잠시 살피고, 그것이 극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감상 포인트 하나를 정리해볼까 한다.(두 작품의 줄거리를 사진 촬영하여 올리는 것으로 했다.)  

[사진1은 <메데이아>의 줄거리다.] 

여기서는 크레온 왕이 가지는 '두려움'이 극을 전개하는(사건의 발단이랄까), 원동력이 된다. 조국와 부모 형제까지 배신하면서 이아손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그간 메데이아가 펼친 활약상은 더 이상 '미덕'일 수가 없다. 크레온은 이미 처자가 있는 이아손을 사위로 맡이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후계구도를 튼실하게 할 욕망에 사로잡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였고, 메데이아와 두 아들만 추방하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렵다. 지난 날 메데이아가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쌓은 미덕은 이제 악덕이 되어야 하고, 그녀가 '요주의 인물'이며 공존할 수 없는 구실이 된다. 그 선택 때문에 애지중지하는 딸과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에도 그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두려움' 이란 감정은 이렇게 극적으로 작동한다.

[사진2는 비극 <휩폴뤼토스>의 줄거리다.]

 파이드라는 전처 소생인 힙폴뤼토스에게 가진 연정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유모를 통해 그 연심이 전달되었고, 힙폴뤼토스에게 그 마음을 들켰다는 사실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어쨌든 파이드라가 가진 두려움은 그 결과가 뻔히 보이는,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고 있다는, '안 봐도 비디오'처럼 예견된 그 자체가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해서는 안 될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것이었고, 제어할 수 없는 그 '두려움'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때문에 힙폴뤼토스가 부왕에게서 추방을 당하고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는 것은 파이드라의 고뇌에 비하면 '조연급'의 고민이다. 

(덧붙여) 두 작품의 결말, 그러니까 복수에서도 유사점은 있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우리' 아들들을 죽임으로써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평생 살아가게 함으로써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한다. 파이드라는 제 목숨을 제물로 삼아 자기 사랑을 거부한 힙폴뤼토스에게 복수를 하는데, 궁극적으로 그 복수의 화살은 남편 테세우스(메데이아가 그랬듯이)를 향하고 있지 않았나, 그리 해석할 수도 있다(그냥 남편인 것이 야속한 것일까). 메데이아가 사건 발생 이후의 거취를 정해놓고 일을 도모했다면 파이드라는 문득 찾아온 <상사병>이 그랬듯이 대책 없이 일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을 직접 죽여야했던 메데이아라고 행복했겠는가!  


[막연한 두려움도 과도한 자신감도 위험하다.] 

(맺으며)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투퀴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진단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찰한 '두려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투퀴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에정된 전쟁』,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대 대선은 끝났지만, 국민통합을 이뤄야 하는 작금의 국내 상황도 한창 전쟁 중,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려움의 건너편에 자신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도 그렇지만 과도한 자신감도 무척 위험하다. 

​"자신감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가까이 있고 두려운 것은 없거나 멀리 있다는 생각에 따른 기대이다.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두려운 것은 멀리 있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가까이 있을 때이다.".(위 <수사학/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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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3-2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사학/시학』(천병희 옮김),『펠로폰네소스 전쟁사』(천병희 옮김),『예정된 전쟁』(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등이 연관 서적인데, 리뷰로 가는 바람에 여기 적어둡니다.

새우 2022-03-21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전쟁, 전쟁 같은 사랑이네여.

Meta4 2022-03-21 16:31   좋아요 0 | URL
[사랑은 전쟁]은 은유, 전쟁 같은 사랑은 직유인가요? 호메로스 서사시 가령, <일리아스>의 경우 직유와 은유의 구분이 없다고 한 어느 해설서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됩니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 2020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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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비극들을 다시 읽어야겠다, 이전에 읽던 전집을 펼치니 밑줄과 메모 등이 거슬린다. 딱히 정답은 없는데, 책을 읽는 동안 스치는 생각들을 해당 페이지 해당 지점에 메모하는 습관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텍스트와 새롭게 만나야 하는데 기존의 생각/느낌이 프레임으로 다가오는 것. 큰 맘을 먹고, 개정판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19편의 작품들을 마음이 가는 대로 골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어 군데 오자는 아니고 탈자가 보이는 것이었다. 다듬는 과정에서 놓친 부분이구나, 반가웠다. 이것이 개정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가독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두어 (10년 만에) 개정판을 만든다." 옮긴이가 '펴내며'에서 언급한 부분을 가볍게 보고 지나친 것. 우아해보이는 백조의 고단한 물갈퀴질을 떠올렸다. 무엇인 바뀌었는지,  가볍게 생각한 내가 문제였다. 살핀다. 글자 크기(급수)는 조금 키웠고, 그리드(글자가 배열되는 사각형) 크기는 그대로인 듯한데, 자간과 행간이 조정되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하드커버 전집을 구입하는데 가격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고충은 상당하다. 재고를 무시하고 새로 만들 수도 없고, 재고가 소진되는 시점에 개정판을 만들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한다는 얘기다.(때가 때인지라. 구입 6개월 만에 미루고 미루다 완독한『조국의 시간』에는 인명 하나를 인쇄하여 붙인 곳이 있다. 또 무슨 흠을 잡을까, 싶어 고민한 흔적인가, 문득 씁슬해지는 것이었다.) 

원전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는 천병희 선생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오점이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번역은 원죄처럼  그런 한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1판과 2판 전집을 일일이 대조할 수는 없다. 해서 나는 에우리페데스를 읽는 동안 별표 몇 개로 체크해놓은 부분만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트로이아 전쟁은 그리스연합군의 승리로 끝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왜 촉발되었으며 어떻게 소멸되었는지, 과감한 선택과 그 선택에 집중하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처럼 주제가 '분노'라서 이 전쟁은 누구의 승리로 끝났는지조차 독자들은 알 수 없다. 그리스 비극들은 좀 더 섬세한 터치로 이야기(일리아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이후 이야기를 무대에서 들려준다. 멸망한 트로이아의 왕비 헤카베는 오뒷세우스의 하인으로 살아가야 할 처참한 운명 앞에 서 있다. 그런 그녀에게는 딸(캇산드라, 아가멤논의 첩이 될)은 말할 것도 없고, 또 다른 딸은 폴뤽세네는 전사한 아킬레우스 무덤에서 제물로 바쳐지며, 이웃나라로 대피시겼던 어린 왕자의 죽음을 확인해야 하는 등 2차, 3차 가해 앞에 오열한다. 이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아래 인용 부분은 그 '순간'을 짚어낸다. 

비극 「헤카베」코러스는 포로가 된 트로이아 여인들이다.「헤카베」의 두 번째 정립가(오르케스트라에 위치한 코로스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부르는 노래. 선행 에피소드에 대한 성찰이나 감정을 표현. 나중에는 선행 에피소드와 무관한 막간가(幕間歌)로 변질된다) 세 단락 중 전반 두 단락이다. 왼쪽은 개정판(2판), 오른쪽은 1판의 해당 부분이다. 


「헤카베」 629~646행(제1판과 제2판 비교, 원전번역 제1판 1쇄 발행, 2009년 5월 10일)  


헤카베」 (2판 1,  2020.2.10.)

헤카베」 (1판 5,  2018.2.10.)

[코로스 좌]

나는 이미 불상사를 당하도록,

고통을 당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네.

알렉산드로스1)가 이데산에서,

바다의 심연 위를 지나 황금빛

찬란한 헬리오스2)가 비추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의 침상으로 갈 배를

건조하려고 전나무를 베던 순간.

 

[코로스 우]

고생이그리고 고생보다 더 나쁜

강압이 나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네.

단 한 사람의 어리석음으로

시모에이스3)  강 유역에

만인 공통의 파멸이타인들에 의한

고통이 덮쳤네이데산에서

목자4)가 신들의 세 따님 사이에서

시비를 가릴 때5)

[코로스 좌]

나는 이미 불상사를 당하도록,

고통을 당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네.

알렉산드로스가 이데 산에서,

바다의 심연 위를 지나 황금빛

찬란한 헬리오스가 비추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네의 침상으로 갈 배를

건조하려고 전나무를 베던 순간.

 

[코로스 우]

고생이그리고 고생보다 더 나쁜

강압이 나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네.

단 한 사람의 어리석음으로

시모에이스 강 유역에

만인 공통의 파멸이타인들에 의한

고통이 덮쳤다네이데 산에서

목자가 신들의 세 따님 사이의

시비를 가릴 때.

1)과 4)파리스의 다른 이름.   2)태양신.   3)트로이아 옆을 흐르는 스카만드로스 강의 지류.   5)‘파리스의 판정을 말함(줄임).

주(註) 번호는 필자가 임의로 지정했다. 희랍어에 정통하고 우리말에도 능숙해야 좋은 번역인지를 관찰자 시점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다만, '이데 산->이데산'으로 바꾸는 것이야, 편집규범에 따르면 되는 것이지만, '사이의'->'사이에서'로 수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선택의 무게 중심이 달라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는, 것인가, '해주는' 것인가? 그 '순간'(위) 그 '때'(아래)의 주체가 파리스인가, 아닌가의 차이로 달라지는 것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국내 연극 무대에서 원전 번역 그대로 상연된 일이 있다. 특정 부분만을 선택하여, 무작위로 개정판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 실험 결과이지만, 책은 움직이는 비석(碑石)과도 같은 것이라, 독자들이 알아주면 감사한 일이지만, 보다 완전해지는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생략한 '파리스의 선택' 주5)는 이런 것이다. 

"이른바 ‘파리스의 판정’을 말한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테티스가 결혼식을 올릴 때 신들 중 하객으로 초대 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가 앙심을 품고 연회장에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문구가 적힌 사과를 던진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서로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제우스의 주선으로 당시 트로이아 근처의 이데산에서 목동으로 생활하던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가서 판정받게 된다. 헤라는 아시아를 통치할 권력을, 아테네는 전쟁에서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절세미인을 약속하는데, 파리스는 이 경연에서 아프로디테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 그 대가로 파리스는 헬레네를 아내로 삼게 되지만 함께 경연에 참가한 헤라와 아테네가 트로이아를 집요하게 미워하면서 결국 트로이아는 멸망한다. 특히 헤라는 트로이아가 멸망한 뒤에도 아이네이아스가 이끄는 트로이아의 유민들이 세운 로마를 미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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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 2021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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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12년에 공연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헬레네」는 메난드로스가 대표작가인 그리스 신희극 등장과 관련하여 각별한 의미가 되는 작품이다. 또한 정통 그리스 비극이라는 장르가 해체 혹은 진화되는 이정표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비극이 끝나는 즈음에 그리스 비극이란 무엇인가, 그 정체성을 되새기게 한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 부록(2권) 옮긴이 해설, 「헬레네」 소개 말미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발견한다. 과연 ”「헬레네」를 비극으로 볼 수 있을까?“ 현대적 비극 개념에서 본다면(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전학자들이 정립한 그리스비극이란 이런 것이란 개념인지, 현대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비극’이란 뜻인지)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에우리피데스)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당연히 비극이었다.“는 것(2권, 677면). 1)여전히 신화와 영웅 전설이 소재다. 2)디오뉘소스제에서 공연된 드라마다. 3)“(그들에게는) 불행한 결말보다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관련된 비극적 상황”이 있다. 이상 비극의 필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

”「헬레네」를 비극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과연 ‘(그리스)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그리스)비극’ 장르가 지닌(갖춰야만 하는) 일반적인 특성을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특히 2)는 그 시절, 그 (비극)무대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비극이란 논거다. 대학 시절 호기심에 선택한 미학 강의(그들에겐 전공필수)에서 관심 있게 들었던 ‘예술제도론’(‘제도미술론’으로 기억)을 떠올린다.

‘어떤 사람을 미술가로 정의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미술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미학자인 조지 디키는 어떤 대상이 ‘예술’로 불리면, 그것은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유명한 예술제도론이다. 대표적인 예는 이렇다. 상업 공간(매장)에 전시·판매 중인 공산품 양변기를 갤러리로 옮겨 전시했다. 이 때 그 상품은 예술공간에 전시되었으므로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처럼 (그래도)「헬레네」는 (아직) 그리스 비극이라는 얘기다. 「헬레네」는 정통 그리스 비극 장르의 정체성을 흔든 문제작, 그리고 그 ‘경계’에 위치한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연에서 공연되었으므로 비극(예술제도론?) 

「헬레네」는 비극으로 볼 수 없다!! 비극적 상황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인간과 신들의 의미심장한 만남이 없다. 2)주어진 운명에 맞서는 처절한 자기주장도 없다. 3)(비극 구성의 필수인 ‘필연’은 사라지고) ‘우연(偶然)’이 새로운 힘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등장한 ‘우연’은 이후 아테나이 신희극(메난드로스가 대표작가)의 지배적 원리가 된다는 것. 다만 근거3) 관련 에우리피데스에게 우연은 ‘우연의 유희’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인간적 가치를 함유하고 있으며, “슬기로써 대처해 나가는 인간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 에우리피데스의 후기 비극 세계가 그리스 신(新)희극의 소시민적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것을 위해 길을 닦아 놓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 

아테네 신(新)희극의 길을 연 에우리피데스 

아테나이 구(舊)희극(아리스토파네스는 대표작가)이 절찬리 상연되던 시기에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들도 공연되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희극에 당대 인물인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에우리피데스를 등장시켜, 조롱하고 비판한다. 그의 비극이 내용과 기법에서, ‘전통’을 벗어나는 것이 못마땅하였으리라. 무엇보다 두 작가는 ‘연설술(수사학)’을 무기로 등장하여 시대정신이 되는(특히 철학계를 뒤흔든) 소피스트들에 대한 수용 태도에서도 대립한다. 당대의 ‘뉴웨이브’에 대한 에우리피데스의 진보적인 수용(작용)과 아리스토파네스의 보수적인 반발(반작용)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현대의 드라마는 내용(소재)와 스타일에서 여러 장르로 분화되어 있지만(장르소설, 장르드라마도 있다) 일반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하게 하는 개연성 있는 주인공의 등장,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흥미를 유발하는 에피소드가 흥행에 필수요소인 것. 에우리피데스가 「헬레네」에서 사용한 우연이 ‘진지 모드’였다면 메난드로스의 신희극에서 우연은 유희(遊戲)를 위한 소스(도구, 에피소드, 구성 요소)였다. 그렇게 현대 드라마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희극에만 국한되지 않는) 세련미를 갖춘 드라마 장르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헬레네」에서 진지한 ‘우연’, 신희극에선 유희 

「엘렉트라」(1권 마지막에 수록)에서 에우리피데스는 당대의 비극 소재(신화와 영웅전설)를 새롭게 해석하여 파란을 자초한다.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하고 친딸 엘렉트라와 친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살해되는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보다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녀는 헬레네와 자매이다(아가멤논과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형제이다). 이어 공연된 「헬레네」(2권 첫 작품)에서 이런 경향은 가속된다. 자의건 타의건 트로이아로 간 헬레네는 환영일 뿐이라는 것. 헬레네가 스파르테를 떠난 것은 분명하나 실제 헬레네는 그 기간(대략 17년)에 이집트에 머물렀으며, 그의 배경도 이집트(아이귑토스)이다. 이 비극 작가는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독자들이) 그렇다고 여기는 ‘사실’을 과감하게 흔든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은 아닌가, 영웅 신화와 전설, 그에 기반한 서사시의 서사, 그 ‘정설’을 거침없이 뒤틀었다. 가능한 변화이지만 당대의 통념과의 정면승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기교나 운율 등에 깃든 그리스 비극의 ‘진화’(?)를, 혹은 생성과 소멸, 계승을 (원전 번역의 탁월함에도) 비전공자로서는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그리스 신화와 문학(서사시와 비극)에서, 트로이전쟁이 실제 역사인가 논란마저 진행 중임에도, 민감한 인물이고 예민한 소재이며 영원히 아름다움인 ‘헬레네’의 여러 모습을 따라가며 읽는다. 필자에게 「헬레네」는 이런 독서 탐사, 독특한 경험의 출발점이자 분기점이다.  

그리스 비극의 창조적인 파괴자, 에우리피데스 그리고..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를, 아이스퀼로스는 (비극의)‘창시자’, 소포클레스는 (비극의)‘완성자’자로 부르는 데에 이견은 없다. 그런데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면 늘 애매하다. 필자는 ‘그리스 비극의 파괴자’라는 수식을 그에게 선사하고 싶다. ‘창조적인’ 파괴자. 그리고 여기에 ‘현대 드라마의 창시자’라는 각주를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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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2-1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이는 말) 개정판에 올리는 첫리뷰라는 것을 확인하고 몇 가지 기본 정보를 덧붙인디.『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전2권)에는 에우리피데스의 현존하는 작품 19편이 수록되어 있다. 1권 세 번째 수록된 「알케스티스」가 공연연대로는 첫 작품. 그런데 (비극 경연에 출품한) 비극3부작은 아니고 사튀로스 극를 대치한 말하자면 ‘소품‘. 이 작품을 1권 세 번째에 수록한 것을 예외로 하고, 나머지 18편이 1권과 2권에 공연연대 순으로 실려 있다. 1권 마지막 작품이 「엘렉트라」, 2권(9편 수록) 첫 작품이 「헬레네」다. 이들 비극 작품들은 여느 비극들처럼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재해석한 작품군, 그리스 신화(전설)를 차용하고 재해석한 작품군,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난데없이 「헬레네」이야기를 한 것 같아, 설명을 덧붙인다.

새우 2022-02-19 11:24   좋아요 1 | URL
한번 읽는데도 오래 걸리고, 관해서 리뷰쓰기도 벅차고 그렇지요. 배려에 감사..
 
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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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훌륭한 사람들은” 하고 내가 말했네.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통치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네. 그들은 을 받고 공개적으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고용인들이라 불리기도 바라지 않고, 권력을 이용하여 공금을 몰래 착복함으로써 도둑이라 불리기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지. 그들은 또한 야심이 없는지라 명예를 바라고 통치하지도 않을 것이네. 따라서 그들이 통치하게 만들려면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벌 받게 하지 않으면 안 되네. 이런 이유에서 강요당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진하여 관직을 맡는 것이 창피스러운 일로 여겨져왔던 것 같네.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는 것일세. 적격자들이 통치하기로 승낙하는 것은 이 점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듯하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마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뭔가 좋은 것인 양 권력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대신 이 일을 맡아줄 더 훌륭한 사람들이나 대등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다가간다네. 혹시 훌륭한 사람들의 도시가 생긴다면, 그곳에서는 지금 우리 사이에서 정권을 맡지 않으려고 경쟁이 벌어질 터인데, 그것은 진실로 참된 통치자는 본성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피치자에게 유익을 것을 생각한다는 명백한 증거일세.” (『국가』 347b~d, 67~68면


선거의 계절이 또 왔다. 여러 선거 중에서도 대통령선거는 투표율도 높고 전국을 들썩거리게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대선은 꽃 중의 꽃인 셈이다. 정기적으로 다가오는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플라톤의 대화편 한 구절이 어김없이 소환된다. 신문이며 방송은 물론이고 후보자가 직접 이 대목을 인용하기도 한다. 대략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와 같은 메시지다. 천병희 님 번역에 따르면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는 것일세.“이다.

 

오늘날 투표 참여 캠페인에 약속처럼 등장하는 문구이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면이 있다. 여기 언급하는 ‘그들’ 또는 ‘훌륭한 사람들’은 뛰어난 철학자(哲人)이며, 플라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철인통치론’를 주장하였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철저히 검증된 소수의 엘리트들(곧 '수호자(guardian)', 이들만이 정치 권력을 잡아 다른 모든 (열등한) 이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통치를 거부한 그들(철학자들)이 받는 벌은 자신들보다 못한 자들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오늘 현실을 떠올리며 텍스트를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다. 그런데 핵심 인용문 전후의 맥락이 흥미롭다. 인용문 앞뒤의 텍스트까지 읽으면 오늘날 정치 현실에도 여전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통치하기를 선택했을 때 어느 누구도 ‘돈’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는 경고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통치자는 ‘걸면 걸리는’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용문의 후반부에서 혹시 ”훌륭한 사람들의 도시“가 있다면 이상국가를 통치할 자격을 갖춘 자들이 서로 ”정권을 맡지 않으려고 경쟁이 벌어질 “ 것이라는 언급이 흥미롭다. 여기서도 오늘날 우리 사회라고 가정하고, ”대통령으로서 자질은 갖춘 이들이 서로 대권을 맡지 않겠다고 경쟁하는“으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런 양보가 가능할 수 있을까? 


선거철이면 자주 거론되는 『국가』의 한 문장의 출처와 전후 과정을 공유하자는 뜻에서 정리했다. 최근 한 시사유투브에서 이번 대선 출마자들의 인물 됨됨이를 분석하는 방송을 보았다. <최동석의 인사만사#4회>(열린공감TV, 2022. 2. 4.)인데, 최동석 소장이 준비한 PPT(아래 사진)가 시사하는 바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4Q2rDA5Oto ) 


최 소장이 1965년 이후 하버드신학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친 하비 콕스가 쓴 『신이 된 시장-시장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정리했다는 자료라고 한다. 하비 콕스는 『세속 도시』(1965)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신학자다. "돈이 곧 명예이고 권력이고, 권력이 곧 돈이고 명예이며, 명예가 곧 돈이고 권력“으로 셋은 삼위일체로 함께 쥐게 되는데, ”이 마약을 한 번 먹으면 자기인식이 불가능해지고 학습능력은 떨어진다.." 최소장님의  설명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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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0 1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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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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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던가, 페이퍼던가, 알라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은 이가 쓴 서재의 글이 떠오른다. 추석 연휴 5일을 꼬박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완독에 할애했다는 얘기였다. 200퍼센트, 그 이상 공감하는 얘기다. 인류의 역사에, 지성사에 굵은 획을 그은 고전 역작 혹은 대작을 완독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백두대간 종주에 비유할 만하다. 중대 결단과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한 독서라는 얘기다. 

한 차례 완독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국 100대 명산 중 하나를 한 차례 등반했다고 다시 오르지 않던가! 자주 올라야 그 산이 왜 명산(名山이고 진산(珍山)인지 문득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무심코 명품(名品)을 찾지만 그것을 실제 사용하는 동안 문득 그 물건이 진품(珍品)임을 깨닫게 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들을 원전번역으로 펴낸 천병희 선생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 애로(崖路)가 곳곳에 깔린 책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서평이 가장 와 닿는다.


“…투키디데스는 근엄하고 통합적이다. 그는 문화사가라기보다 정치와 군사의 역사가이다. 그는 의심이 많은 데다 매력적이지 못하며, 그래서 읽기가 까다롭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그의 책은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되풀이하여 읽으면 진국이 나오는 작가이다. …그는 권력 정치의 내면을 파악한 최초의 역사가이다." (『평생 독서 계획』, ‘투키디데스' 중, 존 S. 메이저, 클리프턴 패디먼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10년 10월) 


이 고전의 실체를 간파한 최고의 서평(리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산의 정상까지 등반한 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소회라고 할 수 있다. 비단 이 책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대 서양의 고전들을 읽노라면 인명들부터 낯설다. 지명들도 혼란스럽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오늘날 그리스 반도와 과거 페르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나라들과 지명들, 지중해에 흩뿌려진 수 많은 섬들, 오늘날 이탈리아반도(당시는 시켈리아)에 이르기까지 지도(지명)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책 부록으로도 당시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만, 언젠가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 A2 사이즈 정도의 관련 지도를 제작하여 서비스로 제공했으면 하는,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말 번역이 깔끔하다. 

잘 읽힌다. 번역으로 인한 피로감은 거의 없다. 본래 이 책의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소화하기가 힘들 뿐이다. 그리고 노고 그 이상의 생생한 교훈, 당면한 현실을 살피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유시민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역사의 역사‘라 했다. 이 책에 적용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사의 전생사‘라고 하겠다. 달리 말하면 ’전쟁사의 역사‘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흐름은 ’진행中‘이다. 

시작(詩作)의 기술 가운데 하나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핵관련 미사일을 쏘아올려 북미협상 카드를 유리하게 만들려던 북한이 정권 말기에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누가 대권을 잡든 새로운 정부를 길들이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와 닿는다. ’종전 선언‘까지는 해야 하는데.. 정권 말기임에도 역대 최고의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하는 여세를 몰아 평화 무드에 쐐기를 박고자 했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이러듯 한반도 정세는 언제 발생할지 모를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다. 얼마 전 유력한 대선주자가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와의 경제대담을 가졌는데 핵심 키워드는 '한반도 평화'였다. 주식투자의 꿀팁을 묻는 질문에 짐 로저스는 ”꿀팁을 듣지 말라는 것이 팁입니다.“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블랙핑크가 38선에서 공연할 정도로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면 내가 롤링스톤스를 데려가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불러 '빅 파티'를 열자."(짐 로저스)라고 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이었던가,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라는 대목이 떠올라 씁쓸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외국인 투자자가 시 한 구절 같은 희망 사항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들은 헤어진 게 아녜요/ 우리들은 나뉜 게 아녜요/ 우리들은 딴 세상 본 게 아녜요/ 우리들은 한 우주 한 천지 한 바람 속에/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을 살아요“(달이 뜨거든-아사달 . 아사녀의 노래 2중창 부분)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히 살자!‘ 그럴 수 있다면.. 

2018년 1월(31일).『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1.31.)이란 책이 번역되어 화제를 모았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국제 정치판에서 전문가들의 입에서, 언론에 회자되먼서 주목받은 책이 발 빠르게 번역된 것인데, 2017년 전후 뜨거웠던 한반도 정세를 새삼 떠오르게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먼 옛날인 고대 그리스의 ’역사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현재의 당면한 전쟁 위험을 감지하는 책인 것.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사이리도 하니까. 인류사는 곧 전쟁사임을 실감할 수 있는 이색적인 책이 있다.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1차 걸프전 발발 직전인 1990년 마지막 날에 배포한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말이다. 미국 시민들의 반전 여론을 무마하고 전쟁지지 여론을 이끌기 위해 부시 행정부와 보수 언론이 동원한 국제 관계 은유는 [국가는 사람], [세계는 마을], [전쟁은(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정치]. [정치는 사업] 등이었다는 것. 미국의 보수 언론은 [이라크는 악당]이고 [쿠웨이트는 천진한 처녀]이며 [미국은 선한 구원자]라는 은유적 이미지를 미국 시민들의 머릿속에 주입했다는 것. 그 결과 이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보다 지지하는 여론이 더 높아졌고,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나익주 지음, 2020년 11월, 전자책은 2021년 5월) 머리말에 나오는 얘기다. 

필자는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끝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 레이코프에게서 인지언어학을 공부했으며, 조지 레이코프가 언어철학자 마크 존슨과 1980년에 펴낸 『삶으로서의 은유』를 번역했다. 무엇보다 그는 『프레임 전쟁』을 비롯 자신의 선생님 책을 두루 번역하여 우리 사회에 ’프레임‘이란 개념을 유포하고 있다. ’3장 국제 관계를 지배하는 은유(전쟁의 언어, 평화의 언어)‘는 머리말의 첫 문장에서 보듯,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극명하게 드러난 2017년 즈음의 말의 (프레임) 전쟁이 담겨 있다. 굳이 이 책의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특히 한반도 정세에서 생생하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이고 어느 세력이 집권하건 미·중, 북·미, 한·미 남·북 관계에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새로운 버전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적어도 안보 문제나 질병(코로나 팬데믹) 대응과 관련해서는 여와 야, 진보의 보수에 따른 이견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선을 밟는 세력도, 그것을 부추기는 언론도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다. 아직도 ’휴전 중‘인 한반도의 현실, 지정학적 리스크를 떠올리면서 읽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등반‘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좀 가볍게 다루려고 작정했는데, 무거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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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2-1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선정 추카추카

Meta4 2022-02-10 19: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