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빛깔들의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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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우연이라면 희망도 우연처럼 찾아오겠지...『모든 빛깔들의 밤』

 

 

‘잊을 수 없으면 지워야 하고, 지울 수 없으면 죽여야 한다(229페이지)’는 말이 가슴에 박혀버리는 순간,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 말이 그 어떤 다짐보다 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들렸다. 잊으려 애쓰는 모습이 간절하고, 지우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지워지지 않아 가슴을 쥐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상황이 끝나는 점을 만나지 못한다. 끝이 없는 고통을 품는 것만이 남았다면, 어쩔 텐가. 고통의 원인을 죽이는 수밖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였더라도, 내가 이렇게 나아지고 보듬으려 악쓰는 데도 안 된다면, 별수 없다. 가능한 다른 방법을 찾아 그 원인을 소멸시켜야 한다. 어려운 건 그 소멸의 방법, 소멸의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지고 끝이 없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알 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차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조안은 아이와 함께 열차에 타고 있었다. 기관사는 자살하려고 선로 위에 누워버린 한 남자를 발견했다. 열차는 멈추려고 급정거했지만 탈선하고,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차량 안은 불과 연기로 가득 찼고, 조안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창문 밖으로 아이를 던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이가 죽었고 조안은 살았다. 사고 후 조안은 정신적 충격으로 밖에 나가지 못한다. 조안은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남편 희중은 그런 조안에게 모든 것을 집중한다. 조안의 양아치 동생 상윤은 열차 사고의 원인이 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먹을 휘두른다. 뭐든, 그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모든 것을 부수고 미친 듯이 퍼부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울분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조안은 정신을 내려놓았고, 그 사고와 연관된 사람들의 일상은 파탄 났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고통이 사라질 방법은, 없었다.

 

사고는 우연이었을까. 우연이겠지. 우연이어야만 해. 우연이 아니라면 이들의 상처를 멀쩡하게 두 눈으로 보는 게 불가능하다. 일한 돈을 받지 못해 죽어버리겠다고 만취한 채 선로 위에 누워버렸던 트럭 기사,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가 중단되어 트럭 기사에게 급여를 주지 못했던 회사, 인근의 철새도래지를 지키려고 공사에 반대했던 환경단체. 설상가상 선로지반까지 약해져 열차는 탈선했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으로 죽은 남편의 생일을 챙기고자 했던 희중의 어머니, 아이와 함께 그 기념일을 챙기려 열차에 올랐던 조안, 뉴스로 사고 소식을 듣고 미친놈처럼 달려가던 희중을 태워준 약국 손님, 식당에서 양아치들과 싸우게 되어 도망가던 백곰이 본 사고 현장, 백곰을 죽일 듯 따라가던 양아치가 구원의 손길이 된 것, 조안과 희중의 집 517호로 이사 온 백곰, 417호로 이사해도 변한 게 없었던 조안. 위층 아래층에서 동시에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귀신도 사람도 울어버리는 시간, 공간.

 

기억을 죽이기까지 해서 잊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건, 아픈 일이다. 그 아픔의 크기를 알 수도 없다. 그런 다짐이 필요할 정도의 고통이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나? 미리 말하지만,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다. 오롯이 당사자의 몫으로 남아 아파하고 견디고 버텨야만 한다.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리본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 상실을 끌어안고 버티듯 살아가야만 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오지랖은 부리지 말자. 아무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같은 경험을 하기 전에는... 아이를 잃고 살아남아 매일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조안, 그런 조안을 감시하듯 지켜봐야만 하는 희중. 자신의 작은 마음으로 죽음을 보게 했던 삼촌과 대화하는 백곰(백주), 신들린 듯 기도문을 외우는 희중의 어머니. 미친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였다면 나도 미친 건가. 미치지 않고서는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니 그 미친 사람들이 정상일 수밖에.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은 사고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경험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갈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고, 리셋 버튼 하나 누른다고 해서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꾸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그 열차에 타지 않았다면, 거짓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면, 첫사랑 정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절로 긴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열차 사고가 아닌, 훨씬 이전의 불행을 차곡차곡 끌어와 지금 시간에 밀어 넣는다. 불행의 이유는 더 짙어지고, 상처와 죄책감도 깊어간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물을 수 없고 그때 그 시간 때문에 지금 불행하게 살아갈 이유도 없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어 모든 것이 하나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지금 이런 시간과 고통의 이유가 그때부터 시작된 걸 거야, 라는 덩어리로 채우게 하는 마음의 흐름. 그 마음속이 온통 캄캄해져 빛이라곤 떠올릴 수 없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뭔가 싶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양아치 상윤의 한마디가 뒤통수를 친다.

 

“다시 한 번 말해봐.”

“누나, 괜찮아.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상윤의 가슴에 예리한 통증이 지나갔다. 조안은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말을 들어도 결국 괜찮을 수는 없겠으나, 어쩌면 그래서라도 더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293~294페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게, 캄캄한 밤을 밝은 빛으로 채울 수 있게, 그 온전한 삶으로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건 '괜찮다'는 단 한마디였는지 모른다. 약의 복용량을 늘이고 무슨 일을 저지를까 싶어 감시하듯 지키는 게 아닌, 위로의 말이 필요했던 거였다. 조안이 백곰 앞에서 울어버렸던 건 아마도 그런 마음의 폭발이었지 않을까.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 건넨 '괜찮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던 건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가끔은 그냥 모르는 대로 묻어버리고, 묻지 않고 건너가기도 하고,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불안과 고통을 버려두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행동이나 다짐이, 어둠을 통과해서 빛을 만나려는 희망을 희미하게 피우는 시작일지도 모르잖아. 죄책감, 상실감, 고통을 동반한 불행을 건너 만날 수 있는 건 희망이고, 그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건 갖은 모양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그 시간이니까. 그래서 기다릴 수도 있다. 지금 잠깐 내려놓았어도 그 빛이 찾아와 나를 밝혀줄 순간을. 산다는 건 이런 어둠이 지나가기도 하는 일이라고, 밝게 비춘 곳을 디딜 날도 곧 만날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너가야만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모든 밤, 사랑이었던 것도 잠깐 내려놓고, 지독히 두렵겠지만, 주춤주춤 현관문도 열어보면서, 어둠이 지나면 찾아올 어떤 것을 기다린다.

 

우연처럼 찾아온 불행이 우연처럼 물러갈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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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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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240여일간 유가족들이 겪은 내밀한 이야기들이다. 기록 작업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삶의 진실이 있었다. (6페이지, 여는 글)

 

고통의 시간이 1년을 채우기까지 3주 정도 남았다. 곧, 4월 16일이 돌아온다.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던 아이들은 몇 번의 금요일이 지났어도 오지 못했다. 앞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금요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 테지. 아이들의 부모는 절망과 오열 속에서 1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는 지금일 텐데, 감히 그들의 고통을 알 것 같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어려운 마음. 시간이 좀 지나가기를, 지워지지 않을 상처겠지만 조금은 옅어지길 바랐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그런데 이런 말조차 미안해서 할 수가 없다. 끝난 게 아니므로.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상처만 다독이면 될 것처럼 여기게 될까 봐 무섭고 죄송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가 비단 나뿐일까 싶은 생각에 공감의 시선을 들어보지만, 많은 말이 오히려 불필요함을 느끼곤 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분명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읽기를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펼쳐볼 생각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을 상상할 수 없었고, 읽고 난 후에 마주한 진실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렇게 마주한 진실을 들어야만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결코 끝나서는 안 될 이야기임을 저절로 알게 됐다. 온갖 매체를 통해 접했던, 내가 보고 들었던 이야기 중에 진실이 있기는 한 걸까. 누가, 무엇을 위해, 왜, 많은 이들에게 진실을 전하지 못했던 건가. 끝이 없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답답함. 이제야 듣고 격해지는 나보다, 직접 부딪힌 이들이 겪었을 그 참담함이 먼저 그려진다. 그러니, 절대 끝나지 않을 일인 거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안타까움을 떠올릴 사이도 없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를 두고, 먼저 시신을 수습하게 된 부모들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야 하는 현실을 두 눈으로 봐야만 했다. 죽음을 먼저 확인한 이에게 건네는 인사가 축하일 수밖에 없다니... 그런 세상을 부딪친 이들에게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마지막까지 팽목항에 남은 부모가 될까 봐 두렵고, 그 시간이 끝이 없을까 봐 겁나고, 비참함 죽음이 아무 의미 없이 기억에서 사라질까 봐 안타까운 시간을 버텨온 그들에게 남겨진 게 무엇인가. 많은 것을 놓아버리고 버티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퇴사하고 매달리고 있는 진상규명, 웃음을 잃어버린 표정, 행복이란 단어를 지운 머릿속의 무게감이 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이렇다.

 

2014년 4월 16일에 정지된 시계, 줄어들 수 없는 고통의 무게, 무너져버린 일상의 모습. 삶을 꾸려가던 많은 것이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여전히 멈춰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죽은 딸아이가 주문해놓은 참고서가 도착해있었다.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꿈이 많은 아이가 이제는 내일을 얘기할 수 없다. 미처 다 하지 못한, ‘다음에’라고 미뤘던 말이 죄스럽게 그들의 가슴 속을 채우고 있으니... 무엇보다, 그 어떤 진실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 기록을 계속하게 한다. 끝나지 않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미 귀한 것을 잃은 유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특별법이 증명해야 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안전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마땅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인 거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열세 명의 부모의 목소리지만, 이게 열세 명만의 목소리는 아닌 거다. 기억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야기. 작가들이 보고 듣고 쓰고 그린, 생생한 증언의 목소리가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들은 팽목항을 떠날 수 없다. 참사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기다림만이 이를 일깨워주는 것은 아니다. 아직 4월 16일은 끝나지 않았다. (341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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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중고책을 구매할 때 책 상태를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데, 보통 ‘최상’으로 기재된 책을 사곤 했다. 이왕이면 깨끗한 책으로 읽고 싶기도 하고, 혹시 나도 한번 읽고 되팔게 될 때 좋은 상태 그대로 팔고 싶기에 그렇기도 하다. 아니면, 꼭 필요한 책인데 책 상태가 별로인 것만 있다면 그것도 그냥 구매하기도 하는데, 언젠가는 그 책의 최상인 상태를 다시 구하곤 한다. ^^

 

며칠 전, 알라딘에서 새 책을 구매하면서 직배송으로 올라온 중고도서 한 권을 장바구니에 같이 담았다. 절판본이기도 하고 정가 이상으로 거래되는 책인데 내 눈에 띄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글이라 한 권 더 사서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해줘야겠다 싶은 마음에 냉큼 담았는데, 책 상태가 ‘상’으로 기재되어 있다. 제품 상세페이지 열어봐도 어떤 부분에서 그 책이 상급으로 분류되는지 따로 설명이 없어서 확인할 수 없었다. 어디가 찢어졌나? 너무 낡았나? 그래도 상급 정도면 지저분한 상태는 아닐 것이니 그냥 결제했다. 막상 도착한 책을 살펴보니 새 책과 같았다. 너무 깨끗했다. 담당자가 실수로, 혹은 지나치게 완벽한 사람이라 ‘이 정도의 책은 상급으로 할 거야.’라고 생각했을까? 뭐, 암튼, 구매자의 입장에서 좋았다. 이왕 받은 김에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싶어서 펼쳤는데, 이 책이 왜 상급으로 분류되었는지 알겠더라. 이 책이 양장본이었는데, 양장본 뒤표지 안쪽에 처음 이 책을 구매한 사람의 메모가 있었다.

 

처음에 책 보자마자 실장님 생각이 났는데 선물로 드릴게요! 재미있게 읽으세용. ^^*

2010, 8, 3 은영이~

 

 

2010년 8월 3일에, (아마도 여직원일 터인) 은영이가, (같은(?) 직장의 상사인) 실장님에게, (뭔가 어울릴 듯한) 이 책을 보자마자 생각나서, (마음을 담아) 선물로 안겼던 것. ^^

 

누군가의 지극히 사적인 메모이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더 어떤 마음을 담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호기심이 쏠렸다. 이 책의 어떤 면을 보고 실장님에게 잘 맞을 책이라는 판단을 했는지, 혹시 은영이는 실장님에게 실장님 이상의 감정이 있었는지, 실장님은 이 책을 선물 받고 다 읽긴 했을는지, 지금 은영과 실장님은 여전히 어떤 관계로든 교류하며 지내는 사이인지... 무엇보다 가장 궁금했던 건 이거다. 이 책은 어떻게 5년여의 세월이 흘러 나에게까지 왔을까, 하는 것. 실장님이 이 책을 다 읽고 안 읽고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떻게 이 책이 실장님의 손에서 흘러나왔나 하는 물음표가 생겼다. 실장님은 이 책을 헌책방에 팔았는지, 너도 한번 읽어봐라 하며 실장님의 지인에게 주었던 건지, 어딘가에서 잃어버렸는지, 그 손에서 떠나온 책은 5년 동안 어떤 주인을 만나고 다녔을지... 별것 아닌데, 몰라도 그만인데, 중고책 한두 번 사는 것도 아닌데, 괜히 궁금해졌다.

 

 

사실 나도 아주 오래 전에는 구입한 책 첫 장에 구입한 날짜나 어떤 마음으로 구입했는지 하는 마음을 적기도 했다. 책 하단에는 내 책도장을 찍기도 했고, 맘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긋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위의 사연처럼 책의 첫 장에 마음을 담은 메모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냥 있는 그대로 읽거나 보관하기 시작했다. 책도장 절대 안 찍고, 메모나 밑줄도 안 한다. 아마도 소장하지 않는 책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그랬던 듯하다. 누군가가 받을 책이 깨끗하고 새 책 같았으면 하는 마음. 별것 아닌 마음인데,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뭐, 나는 그렇다고.

 

 

 

이런 사연 있는 책을 받은 경우가 2년 전쯤에도 한번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최근에 출간된 책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아주 오래전에 출간된 책을 구입할 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거의 20년 전쯤에 출간된, 지금은 절판된 책을 중고서점에서 구입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딱 한번만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굳이 찾아다녔다. 아주 얇은 문학도서였다. 오랫동안 단 한권의 중고도 보이지 않다가 발견한 반가움에 냉큼 결제했다. 책 상태도 나쁘지 않아서 만족했지만, 무엇보다 그 책의 전 주인이 적은 메모가 내 시선을 붙잡았다. 이 책이 나에게 오기까지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주인들을 만났을지 모르겠지만, 날짜를 보아하니 아마도 이 책의 처음 주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의 출간일이 1996년 9월 6일, 책 안에 써진 이의 흔적은 1996년 10월 27일. 이 정도면 처음 이 책을 새 책 상태로 구매한 이의 흔적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마음속에서는 공부를 하고자 하나 뭔지 모르는 힘이 날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지금도 도서관 자리를 옮긴 채 건성으로 종이 위에 눈동자를 남겨놓을 뿐이다. 멍한 머릿속은 어떠한 input도 거부한 채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그러나 실망이란 말만큼은 하지 말자.

너무도 익숙해버린 단어지만 정말 이젠 떨쳐낼 때다.

넌 네 나름대로 열심히 삶을 즐겼고 여러 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방향 전환이 필요한 과도기일 뿐이다.

더 이상 내 삶을 타인의 시각에, 잣대에 맡기지 말자.

내 삶에 행동 주체, 판단 주체로서 내 자신을 세워야 한다.

1996. 10. 27. 일요일

도서관 2열에서 교수법 print를 기다리며... ”

 

이렇게 쓰여 있다.

 

글씨체로 성별을 구별해도 된다면, 글쓴이는 아마도 남학생일 것 같다. 남학생이라면 제법 글씨를 잘 쓰는 편인 것도 같다. 나에게 온 이 책이 문학 수업을 들을 때 참고할 만한 책이라는 애기를 들었는데, 이 책을 소장했던 사람이 아마도 문학을 전공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교수법 print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사범대쪽 학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냥 이 수업이 맘에 들어서 수강한 학생일 수도 있겠고...

 

일요일의 도서관. 수업에 필요한 복사물을 기다리는 시간.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나, 또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머릿속이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을 수도 있겠다. 눈으로는 글자를 쫓고 있으나 읽는 그대로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 또한 공감했다. 자꾸만 실망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오직 자신을 위한 일이어야 하는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음에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토로하는 공간으로, 이 책이 선택되었던 듯하다. 단 몇 줄의 글이 그(혹은 그녀일지도 모를)의 마음을 풀어놓는, 다시금 열정으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줄 수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글을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건너 나에게 왔던 이 책은, 다시 또 내 마음을 풀어놓는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지, 하면서. 누군가의 흔적으로 시작된 시간여행, 1996년에 학생이었을 이 책의 전 주인은 아마도 나랑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공감. 비슷한 고민으로 그 시간을 보냈을 동기 같은 마음. 일요일의 도서관 2열에서 수업자료, 혹은 과제물을 위한 자료를 기다리는 그 시간의 무료함이나 불안함일 수도 있겠지.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모를 누군가의 흔적 하나로, 타임슬립하여 십몇 년 전의 그 시간으로 잠깐, 돌아가고 싶어지게 했던 순간이다.

 

 

운명처럼 내 손에 들어온 헌책에서 지나간 것들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내 심장의 박동소리가 커진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잊히기도 하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 일부러 저장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다시금 마주하는 시간이 온다. 설핏 웃다가, 눈꼬리에 눈물 한 방울 걸어놓았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떨림과 울림이 찾아오거나... 시간은 흐르고,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별을 한다. 무언가를 향해 달리기도 하고, 잠시 멈추어 숨고르기를 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면서 잊히는 것은 잃어버린 것으로 진행된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그럴 때, 이렇게 우연히 찾아드는 것들이 우리를 유실물 보관창고로 안내한다. 나리코처럼...(『잃어버린 것들의 나라』가쿠타 미츠요) 우리의 잃어버린 흔적을 찾아서. 아니면 누군가가 우연처럼 나의 흔적을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무엇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세상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진짜로 깨닫게 되는 것은 대개 나이가 한참 들어서이다. 나 역시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던 물건, 혹은 시간, 장소, 사람조차도 잃어버린다 해서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서 그것이 없어지고 난 빈 공간을 안고 살아간다.

(7페이지, 작가의 말)

 

 

 

5년 전 혹은 20여 년 전,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리에 앉아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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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5-03-2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메모가 있는 중고책을 팔다니요. 실장님은 선물해주신 은영씨를 잊었나 봅니다. ㅋ

구단씨 2015-03-20 18:24   좋아요 0 | URL
5년은 아마도, 그런 시간인가 봅니다. ㅋㅋ
그냥, 은영이의 마음이 궁금하더라고요. ^^
 

 

 

 

 

3주 동안 칼국수를 세 번 먹었다.

언니네 집 앞에 있는, 자리가 없어서 못 먹는다는 닭 육수 칼국수를 먹었고,

제부 회사 근처에서도 자리가 없어서 못 먹는다는 국물칼국수와 팥 칼국수를 먹었고,

동생이 데리고 간 공항 근처에 있는, 줄 서서 먹는다는 곳에서 해물칼국수를 먹었고...

 

면을 좋아해서 다행이지, 솔직히 그냥 먹을 만한 칼국수들이더구만.

줄 서서까지 먹고 싶은 정도는 아니던데...

그래도 지금 아니면 다시 먹으러 못 온다는 표정으로 데리고 간 그들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한 그릇씩 다 비웠다.

 

 

남동생네와 함께 세번째 칼국수를 먹었을 때,

배가 너무 불러 쉬어 가자고 해서 인천공항 전망대로 올라갔다.

공항 정면이 아닌 활주로쪽이 보이는 곳인데,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열 몇 대씩 주차(?)되어 있는 장면을 보면서 비행기가 장난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옆에서 누군가(아마도 엄마인 듯) 비행기 타고 싶다고 혼잣말 하는 걸 듣더니

4살짜리 조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내가 비행기 한 개(!) 사줄게.”

 

 

헐...

왜 이제껏 몰랐을까. 비행기도 사고 싶으면 그냥 한 대 사면 되는 거였구나...

마치 과자 한 개 사준다는 것처럼 들려서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아이의 눈에는, 비행기도 진열된 상품 중에서 그냥 하나 고르면 되는 것처럼 보였을까...

 

모처럼 웃었다면서 엄마도 내 말을 거든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우리 그동안 너무 웃지 않고 살았구나...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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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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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있는 책장과 바닥의 상자 속에 담긴 책까지 슬쩍 둘러보니 내가 가진 책이 얼추 400권쯤 되는 듯하다. 그보다 조금 더 적거나 많아지기도 하지만 평균 400권쯤 유지하고 있다. 방이 작기도 하고 워낙 정리를 안 하는 사람이기에 책이 더 많아진다고 해도 감당이 안 된다. 도서정가제 전에 사들인 책이 아직도 상자 속에서 그 자태를 숨기고 있을 정도이니, 정리 안 하는 것으로 따지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것도 같다. (응? 이거, 자랑은 아닌데 자랑인 듯 당당하게 들리는 건 왜인지... ^^;;) 그래서인지 크게 책 욕심은 없다. 그저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사고, 천천히 라도 읽어보자는 마음이다. 그럼 꾸준히 사면서도 평균 소장 권수를 유지하는 건 어떻게 가능한지 곰곰 생각해보니 책을 미련 없이 내 손에서 떠나보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다 읽은 책 중에서 소장하고 싶은 건 따로 챙겨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한 번 읽고 안 읽는 책들은 인터넷 헌책방에 팔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복지센터에 기증한다. 그러니 책을 계속 사면서도 내게 남겨진 책이 많지 않음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겐 좋은 습관이다. 어차피 책을 보관할 곳도 없고, 정리도 안 되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잘 고른 듯하다.

 

그럼, 나는 이렇게 책을 처리(?)하는데 다른 이들은 책을 어떻게 감당하나? 내 주변의 오프라인 사람 중에 책 읽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인지 누구네 책장은 이 정도더라, 하는 광경을 말하긴 좀 어렵다. 반면 온라인 지인들은 대부분 다독가이고 장서가 혹은 애서가들이다. 책 보유 권수가 나의 몇 배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책 놓을 장소가 모자라 장롱 안에까지 책을 보관한다는 사람도 있다. 장롱 안에 넣어두어야 할 옷이나 이불은 집 잃고 헤매고 있는데 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더라. 누구나 같은 고민인가 보다. 방이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책을 보관할 곳이 늘 부족하다고 하는 걸 보면 책을 매개로 같은 생각, 공감을 이어가고 있다. 웃음이 나면서도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라는 고민이 남는다. 아마 그 고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어쩌랴... 앞으로 계속 책을 읽는 한, 책을 좋아하는 한 끌어안고 가야 할 행복한(?) 비명인 것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만나면서 어느 정도 사람과 책을 견주어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됐다. 이를테면 책 좋아하는 사람과 책 모으는 사람은 다르다. 앞쪽은 ‘애서가’, 뒤는 흔히 ‘장서가’라고 부른다. 애서가이면서 동시에 장서가인 경우는 뜻밖에 많지 않다. 반대도 똑같다. 책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애서가는 아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서 책장을 한번 눈으로 훑어보면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애서가인지 장서가인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어서 그저 책을 물건 삼아 진열해놓은 사람인지. (174페이지)

 

저자의 말처럼 애서가와 장서가가 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장서가는 아니다. 그럼 애서가인가? 흐음... 책을 좋아하니 애서가라고 해도 되겠지만 책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건 아니니 완전한 애서가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아, 이런 겸손함이라니... 근데 사실인 걸. 나는, 아직은, 발가락 하나 걸친 애서가라고 하기에도 벅차다.) 그저, 책으로 일상에 관심 둘 곳이 조금 늘었다고 해야 하나. 책에서 일상을 보고, 일상에서 소설의 한 장면을 발견할 때 찾아오는 매력이 즐거울 때가 있다. 헌책방지기 윤성근이 만난 사람들도 책으로 이어진 인연이고, 책과 함께한 즐거움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유명인의 서재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한 책 이야기다. 학생부터 회사원, 선생님, 번역가, 수의사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책과 어떤 인연을 맺으며 지내왔는지 들려준다. 멀쩡한 아파트는 책으로 가득 채우고 반지하에서 월세 사는 사람, 어느 한 분야에 꽂혀 책을 수집하는 사람, 컨테이너 하나 빌려 서재를 만든 사람 등 책에 쏟는 애정이 다양하다. 그 책들을 유지하고 보관하는데 여러 가지로 애를 먹기도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그럼에도 책이 좋다는 것! 말 그대로 애서가의 즐거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나하나 듣다 보면 책을 좋아하는 그 절절한 마음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와는 다른 방식, 다른 관심, 다른 과정으로 책을 접해온 사람들이지만 책을 대하는 마음에서 비슷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애틋해진다.

 

솔직히 이런 책이야기를 몇 번 만나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온다거나 신선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 중 몇 부분만 소개해보고자 한다.

 

많은 책을 읽다보면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럴 때는 마치 금맥을 찾은 것처럼 기쁘다. 허섭 씨는 그런 책이 있으면 보통 십여 권씩 따로 사뒀다가 마음 맞는 사람에게 읽어보라며 선물하는 걸 즐긴다. 학사재 구경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교무실 한쪽에 있는 선반 문을 여니, 그렇게 한꺼번에 사둔 책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다. (17페이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보통 같은 책을 두 번 구입하는 경우는 실수가 아니고서는 생기지 않을 일인데, 같은 책을 몇 번 구입해서 선물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좋은 책이 상대에게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상대방이 내가 고른 책을 받으며 느낄 부담도 염두에 두게 된다. 다만, 이제는 이런 소심한 바람을 갖는다. 내가 읽어서 좋았던 그 책이 다른 독자에게도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거, 그 책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그 누군가도 알아챘으면 하는 거...

 

책을 볼 때 주변 환경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는 말에 서찬욱 씨는 단호하게 ‘완전한 혼자’여야 한다고 답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심지어 가족도 가까운 곳에 있으면 책이 안 읽힌다. (82페이지)

‘반드시’는 아니지만 나도 조용한 곳에서 혼자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워낙 집중력이 약한 사람인지라 조용한 곳에서 읽어도 책 읽기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을 때는 정말 짜증이 난다. 간만에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는데 한 페이지도 제대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앵그리버드가 된다. 화가 난다~! 다른 누군가는 천둥 번개가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던데, 나의 예민함을 이럴 때 활동성을 높인단 말이지.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만화를 좋아하면 일단 만화를 보는 거죠. 저도 어릴 때는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많이 봤어요. (중략)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명랑 소설 같은 걸 읽다가 조금씩 무게가 있는 책들로 발전한 거예요. 무엇보다 어릴 때 가정 환경이 중요해요. 어떤 사람은 아이가 동화책 보고 있으며 책 그만 보고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거든요. 어릴 때 자연스럽게 책이랑 친해지지 않으며 어른이 돼서도 책 읽기가 쉽지 않죠. 무엇이든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기 시작하면 그 책 본문에 나온 책이라든지, 참고 문헌이나 주석 같은 데 또 다른 책이 소개돼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책을 찾아서 읽으면 지금 읽는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쉽게 알 수 있어요.” (213페이지)

책을 어떻게 접해야 가장 좋은 건지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함부로 판단할 수 없지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만화든, 소설이든, 잡지든, 그냥 읽히는 대로 읽는 게 가장 좋은 시작이 아니겠냐고, 그렇게 읽다 보면 다른 것도 읽어보고 싶어질 테니 일단 읽는 대로 나두라고 말하곤 했다. 무엇보다 어릴 때 책 읽는 분위기를 형성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건 경험상 너무 잘 아는 일이다. 주변의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에 따라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분명하게 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소개해준, 책 읽는 즐거움을 아는 평범한 애서가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와 닮아서 웃기기도 했고, 이렇게 책을 대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감탄하기도 했다. 관심의 폭을 넓혀 책을 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책을 통해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겠고, 내가 만나는 책에 좀 더 애정을 주어도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책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존재로 남아주길, 책을 통해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늘 밤엔, 어떤 책을 펼쳐볼까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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