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
하명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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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꽂히는 드라마 한두 편을 보는 정도라 잘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입소문으로 자꾸 퍼지던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를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 이 드라마 은근 매력적이더라. 누구를 욕하고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은 있는데, 각 캐릭터들에게 한 가지 마음만 보낼 수 없던 거다. '이럴 수도 있을까?' 싶었다가, '그래, 이 상황에서 이런 마음도 있을 수 있어.' 하는 온갖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마음속에 자리한 그 많은 말이 한마디로 쉽게 나오지 않았었다. '이거 뭐지?' 하는 어지러운 기분. 그 이후로 방영된 <상류사회>는 보지 못했지만, 대신 하명희의 글을 만났다.

 

드라마와 얼마나 다를까, 혹은 얼마나 비슷할까. 몰랐다면 백지에서 시작했을 텐데, 이미 저자의 드라마를 본 터라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면서 읽게 됐다. 드라마에서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대사는 어쩌면 저자의 성격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에세이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를 읽다가, 드라마 <닥터스>에서 홍지홍(김래원) 선생이 유혜정(박신혜)에게 직선으로 드러내는 마음을 보는 듯한 시원함을 발견하곤 했다. 역시, 사이다 같은 기분은 잠시 잠깐 한 편의 드라마에서만 나온 건 아니었어, 하는 안도와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동시에 심어준다.

 

 

저자는 살아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 중 하나가 에세이를 출간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저자의 다음 드라마는 뭐가 될까 궁금했던 정도로 이름을 기억했다. 저자의 드라마나 소설을 봤어도,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어도, 내가 이 책을 읽게 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휘리릭 넘기던 페이지의 한 구절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 사람의 사정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른다. 인간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모든 것에 한계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범위의 삶과 다른 삶에 대해선 공부해야 알 수 있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충고하는 것보단 밥 한 끼 사주는 편이 낫다. (81페이지)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르는 것들. 때로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고 자만하는 것들. 우리는 같지 않다. 비슷하게 보이고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완전히 같을 수가 없는 거다.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 아닌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쩌면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 못 한 채로 보고 있는데, 마치 다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경험해본 바, 말이 많아지면 실수를 하더라. 사람을 상처 내는 것도 말로 시작한다. 마치 그 사람에 대해 경험하지 않은 부분까지 다 아는 것처럼 말이 나올 때는 부담스럽고 불편해진다.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아는 만큼만 보고,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아는 만큼만 이해하고, 다가가면 정말 안 되는 건가. 다 알면 좋겠지만 굳이 그게 아니어도 괜찮잖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적당한 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아니었나? 살아온 시간과 과정이 다른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안에 자신만의 상처가 있다. 개인의 상처는 객관적인 게 아니다. 얼굴만 봐서는 그 사람이 뭐로 아파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어려운 거다. 어려운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이 어떤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말조심만 해도 인간관계 절반은 성공이다. (62페이지)

 

저 부분을 한참 들여다보다,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읽었다. 분량도 짧아서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새삼스러운 말도 없었다. 그저, 저자의 말투가 이렇구나, 하는 정도. 그런데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하고자 하는 말의 방향을 가만히 살펴보니, 타인을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는 거였다.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짜증 냈던 거, 내가 알 수 없어서 부담스럽고 귀찮았던 것들을 꺼내며 말하는 듯했다. 차마 말하지 않은 것들을 대신 들려주는 기분. 대부분 내가 경험했던 순간들, 감정들이었기에 조금만 더 들어보자, 하는 의미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다. 무조건 착하고 옳은 것만을 강요하는 위로가 아니라, 아닌 건 아니 거라고 말하는 그 고요한 독설이 좋았다. 독설이라고 하기에 민망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너무 착한 사람 흉내만 내면서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니어서 좋았다는 거다.

 

삶의 특별함은 시간이 흐른 후, 혹은 어느 날의 느낌표로 알게 되는 듯하다. 불행한 삶이 괴롭고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시선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하기만 하면 그 외의 불행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항상 옳은 선택이라고만 믿는다면 잘못된 길을 알지 못할 것이기에. 일상에서 치고받는 순간들이 가져오는 것이 꼭 나쁘게만 작용하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 시선과 감정의 다양성은 인간관계로 이어져 삶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과 이어져 나아가는 중에도 우리가 미처 짚어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표현하는 많은 것,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가리는 이중성, 사랑을 둘러싼 사람의 마음.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고 다 알 수 있는 게 없어서, 때로 그 순간이 죽을 것처럼 아프지만 또 그렇게 받아들이며 흘러간다. 그렇게 겪으며 무심코 알게 되는 것들. 사람이, 사랑이, 그 순간의 아픔을 상쇄시켜주기도 하고...

 

인류가 시작되면서, 사랑이 만들어지면서, 사랑도 함께 시작됐다. 사람에게 사랑은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더 많이 사랑한다는 건 사랑하는 능력을 더 많이 가졌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은 굉장히 좋은 성품을 만든다. 좋은 성품은 다른 사람들도 기쁘게 하고, 자신도 기쁘게 한다. 사랑을 유지하는 건 사랑에 빠지는 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다. (109페이지)

 

인생 뭐 별거 없다고 생각하지만, 살면서 겪게 되는 감정들이 특별해지고 문득 알게 되는 것들이 쌓여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할 때, '별것 있는' 인생이 될 것만 같다. 저자가 드라마와 글을 통해서,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을 하게 되는 것에서 그걸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살아보면서 알 수 있는 일이 그 순간 하나둘씩 늘어갈 때, 자신에게로 향하는 별것 있는 순간들이 하나둘씩 쌓여간다는 것을, 저자의 짧은 글에 함축된 말을, 이렇게 듣는다.

 

 

드라마 속의 대사가 저자의 에세이에 그대로 묻어 있다. 독설 같지만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직선으로 향하는 말들이 듣기 좋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 <닥터스>를 더 집중해서 보고 싶어진다. 4회에선가, 진서우(이성경)가 부원장 김태호(장현성)에게 유혜정을 디스하면서 했던 말에 김태호는 '말씀드릴 수 없는 사생활은 말할 수 있는 사생활보다 더 인신공격'이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상처 입히고, 비열한 공격인지 전한다. 유혜정과 진서우 사이에 필요한 건 페어플레이다. 의사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 너무 무겁지 않게 흐르는 이 분위기가 좋아서 4회까지 본방사수했다. 앞으로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만 계속 보게 될 듯하다. 의학드라마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더 눈에 들어오고, 이미 시작된 유혜정과 홍지홍의 로맨스가 더 '심쿵'하게 하지만, 의학에 관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하명희 특유의 그 인간적인 이야기가 돋보여도 괜찮을 듯하다.

 

 

그나저나, 나는 배우가 나이 들어가는 게 참 보기 좋더라. 김래원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을 봐도 비슷하다. <옥탑방 고양이>가 인기였을 때도 김래원이 좋다는 생각 못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확실히 김래원은 나이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도 그는 그때보다 나이가 더 들었겠지만, 이번 드라마에서 나이 마흔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괜히 기분 좋다. 인간미 넘치고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 보여줬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경험한 병원이나 의사를 생각하면 홍지홍 쌤 캐릭터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듯해 유감이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인간적이고 마음 쏟아 붓는 의사로 남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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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나는
최수현 지음 / 가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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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서 좋았던 여름이라고 기억해야겠다. 『그 여름, 나는』

 

무슨 약속이든 잘 지키는 이재이, 여자를 때린다고 소문났던 윤제희. 거부하면 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쩌다 보니 부반장과 반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서로 맞지 않는 듯 보였던 두 아이가 함께 보냈던 고3.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야 한다는 재이에게 방과 후에 과외를 해주고, 재이의 꿈을 들어주고, 자존감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제희. 말이 거의 없는, 남들이 뭘 하든 관심 둘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늘 최고의 자리를 놓지 않았던 제희가 왜 재이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알 것 같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기 판단할 수는 없었으니... 막연하게나마 추측하면서 그 마음을 들여다보지만, 아직은 미성년이니까,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참아본다. 졸업까지 같이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이 2002년 여름, 계절의 더위와 월드컵의 열기가 맞물린 그때, 우연처럼, 기적처럼, 다시 만난다.

 

대부분 과거를 이야기하며 시작하던지, 아니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와 교차로 진행되든지 하는 구성이었던 것에 반해, 이 소설은 2015년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과거와 과거의 교차로 진행된다. 1993년과 2002년의 시간이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다. 그때보다 나이를 훨씬 더 먹고, 30대 후반, 4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타임머신을 타게 하는 기분이 든다. 진짜 오래전 신문을 뒤져야만 알 수 있는 일들, 어느 통신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기기들이 거리감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잇대를 살아가던 순간만큼은 깊게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설레던 풋풋함, 아침잠을 포기하며 투덜투덜 교복 입고 다니던 그 시간, 수능시험의 최대 수혜자가 누구냐며 성토하던 표정들까지. 저절로 기억나고, 가끔은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다. 누군가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대개 스무 살이나 2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고3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가 살아갈 시간에 대해 먼 그림을 조금씩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뭐, 여러 번 생각해도 지금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냥 과거의 시간일 뿐인데 말이지.

 

재이와 제희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9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던 장면들은 안타까웠고, 서로의 몰랐던 시간을 조금씩 공유해가는 모습은 애틋했다. '자식들, 귀엽네.' 싶으면서도 나이와 상관없이 아픈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시선이 비켜갈 수가 없다. 특히 재이게에 열아홉, 스무 살은 제희를 만났다는 것 말고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때는 몰라도 좋았을 삶의 고통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의 마음에 가득했을 비참함 같은 것,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이 버거워서 지치던 시간, 벗어날 수 있다고 발버둥 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반복될 뿐이었던 기억들. 그게 현재의 삶까지 주관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아닐까. 첫사랑이 있던 시간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래서 소설은 소설인가보다. 꿈을 떠올리게 하고, 괜찮지 않을까 하는 어떤 기대감도 심어주는, 긍정의 결말을 바라게 하니까...

 

읽으면서 내내 괜한 마음에 아닌 척, 모르는 척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더라. '어머, 대전엑스포는 혹시 역사책에서 나오는 행사였던가요?' 라고 물어보며 한 발 빼고 싶었는데 말이다. ^^ 나와는 다른 시간이라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처음 듣는 이야기인 척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 같은 시간을 기억하는 어떤 일들에 대해 이렇게 하나씩 꺼내놓는 이야기가, 좋으면서도 괜히 우울해져서 말이다. 드라마를 즐기지 않으면서도 <응답하라 1994>에 푹 빠졌었고, <무한도전 토토가>를 보면서 미칠 것 같았던 시간을 겨우 넘겼는데, 이제 이 책이 다시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처럼 남아버렸다. '읽지 말 것을' 하고 잠깐 후회하면서도, '어디서 같은 추억을 찾아볼까?' 싶어 다 읽은 후에도 한 번 더 뒤적거리는 내가 참 어이없어서...

 

1990년에 10대 고3 시절을 보내고, 2002년에 20대의 후반을 지내면서 월드컵을 즐긴 세대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물론 나는 열아홉에 첫사랑도 없었고, 2002년에 첫사랑을 다시 만난 적은 더더욱 없었고, 길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만난 일 따위의 경험은 없는 인간이지만, 이들이 만들어가는 그 배경의 시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열아홉에 고3을 지냈고, 대전엑스포의 열기가 사라진 겨울에 그곳을 찾았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친구들과 함께 갔던 맥줏집에서 황선홍의 얼굴이 그려진 맥주잔을 훔쳤다. 무엇보다, 호출기의 음성녹음이 10개만 된다는 건 지금 안 사실. 같은 시간을 지나왔던, 호출기를 사용했던 나도 몰랐던 이 이야기가 2015년을 살아가는, 온갖 스마트기기가 생활을 지배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악역인 듯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 조력자로 등장하는 귀여운 의사쌤, 제희의 꼼수에 누명을 썼지만 '끝내주는 이것'으로 미안함을 전해야만 했던 녀석. 개성 있는 인물들과 무리수 없는 이야기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다.

 

 

 

여담이지만, 몇 가지 생각나는 것.

 

* 수학능력시험의 최대 수혜자?

고3 때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된 아이가 있었다. 하루 7~8교시 수업 내내 과목과 상관없이 책만 읽던 아이다. 단행본 만화책, 격월간지 만화책, 온갖 소설류, 할리퀸까지. 용돈 전부를 책을 사는 데 쓴다고 말하던 아이였다. 신기했다. 책을 저렇게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특히, 전교 등수도 아니고 반 등수에서 하위권을 달리던 그 아이에게 대학이란 단어가 상관없는 줄 알았다. 정말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학교에서는. 모의고사나 중간 기말 성적은 말할 것도 없이 바닥이었다. 다들 그 아이가 대학에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대학 1학년 때, 학생식당에서 점심 메뉴를 고르고 있었던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기에 돌아봤다가 놀란 기억. 그 애였다. 수업시간 내내 소설과 만화책만 보던, 내신이나 모의고사 성적이 바닥이었던 그 아이. 겨우 얼굴과 이름만 알고 있었던 그 아이가 너무 반가워 그날 학생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같은 학교 불문과에 입학했다고 했다. 와우~ 괜히 반가운 마음. 나중에서야 들었는데, 그 아이는 수능 언어영역 만점을 받고 입학했단다. 지금 수능시험의 분위기는 잘 모르겠는데, 그 당시만 해도 수능시험에서 언어영역 점수를 잘 받는 건 수리나 외국어에서 만점 받기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가 있었다. 내 경험으로도 그 말은 맞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수리영역 만점 받는 게 더 쉬웠다. 그래서 우리끼리 그때 얘기를 꺼내면 어김없이 그 아이 이름이 등장한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 바뀌어서 가장 크게 이득 본 사람은 그 아이라고... ^^

 

* 호출기의 녹음은 10개까지만 되었던가?

그랬나 보다. 사실 기억에 없다. 호출기 녹음이 10개까지 되는 건지 아닌 건지.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호출기가 새삼 신기하기도 했는데, 녹음이 10개까지만 된다는 이유로 아쉬운 마음을 녹여냈던 게 제법 잘 어울린다. 거의 대학 졸업 때까지 호출기를 사용했고, 90년대 후반부터 휴대폰을 사용했다.

 

* 대전엑스포는 어느 나라 행사였던가?

아마 요즘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 대전엑스포는 우리나라 행사, 맞다. 행사가 다 끝나고 겨울에 갔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 7~8명쯤 같이 갔었다. 휑한 그곳을 걸으며 춥다고, 따뜻한 뭔가를 먹자고도 얘기했었고, 우리끼리 그런 낯선 곳에, 먼 곳에 갔던 게 처음인지라 무섭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무사히 귀가했고 그날의 경험으로 우린 더 멀리까지, 며칠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부모님의 허락은 받았음) 그때 대전엑스포는 한동안 이슈였고, 이런 게 정말 세상에 나올까 싶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래의 시간, 상상을 말했던 게 현실이 되고 있음을 증명하던 시간.

 

* 2002년 월드컵.

제희가 한밤중에 편의점을 돌면서 경험했던 일(?)은 아마도 사실일 거다. (편의점마다 달랐을 수도 있으니 그건 알아서 판단하시고) 그 당시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엄청 많이 들었었다. 그래서 이 부분 읽으면서 웃음이 피식피식 났다. 제희의 표정이 그려져서다. 아, 도대체 몇 군데를 돌았을까? 그래도 무책임한 녀석은 아니어서 좋네.

2002년은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대한민국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일어났던 시간인 듯하다. 그 시간을 지났던 모든 사람, 특히 스물여덟을 살았던 이들에게 더욱 공감하는 이야기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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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송지성 지음 / 로코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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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외로움이 거둬지는 시간... 『20일』

 

외로운데 외롭다고 말하지 못하는, 외로울 텐데 외롭지 않으려 애쓰는, 외로우면 안 될 것 같은 외로움. 말이 좀 안 되나? 그럼 이런 거. 외로움이 너무 익숙해서 외로운데 외로운지도 모르고, 외로움을 표현해서는 안 되는 마음. 『20일』일 속의 인물들에게 그런 걸 봤다. 섬으로 밀려 들어온 애희에게, 섬이 싫어서 떠난 윤기에게, 섬의 모든 것이 가족 그 자체라 여기며 사는 어매, 아재들. 각자의 외로움에 치여 그 외로움을 묻어버리거나, 서로의 외로움을 똘똘 뭉쳐 없애버리거나...

 

외로움의 곁에 있어 본 사람은 안다. 그 외로움이 얼마나 사무치게 이기적인지. 전염병처럼 퍼뜨려 놓고 수습은 하지 않는 그런 이기적인 외로움. 윤기는 새벽녘 나가는 아배의 등에서 그 모습을 수도 없이 발견했다. (368페이지)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윤기는 섬으로 다시 들어왔다. 다음 배가 들어오면 나갈 거다. 지긋지긋해서, 미움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섬을 떠났는데 한시도 머물고 싶지 않다. 온 동네의 어매 아재들이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했다. 아니다. 그들이 상주 같았다.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온 사람들이니 이런 장례가 낯설지 않다. 그 풍경 속의 낯선 여자, 애희. 모두가 나이 든 사람들뿐인 그곳에 젊은 여자가 분주히 움직인다. 조용하게 움직이면서도 그 흔적을 남긴다. 관심 없다. 상관도 없다. 이 섬에도 그 여자에게도. 그런데도 자꾸만 윤기를 끌어당긴다. 어매 아재들의 정이, 애희의 이상한 흔적들이... 닷새에 한 번 들어오는 배. 그 배를 놓치면 다시 닷새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섬에서는 그의 삶이 없다. 고기를 잡고, 어망을 손보며 보내는 하루, 바다로 나간 배가 제대로 돌아올까 걱정하면서 부둣가를 서성이는 불안함 따위 겪고 싶지 않은데, 뭔가가 자꾸 윤기를 붙잡고 있다.

 

아버지가 남긴 한 문장, 스무날을 섬에서 지내고 가라는 말. 그 말을 지키려고 했던 건 아니다. 처음 들어와서 닷새만 지나면 바로 나가려고 했다. 미련도 없을 거로 여겼다. 한 번 놓치고, 두 번 놓치고... 그렇게 쌓여 스무날을 섬에서 보냈다. 스무날이 지나고 윤기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숨은 것처럼 섬으로 들어온 애희가 윤기에게 전하고 싶은 건 뭘까.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해하고 싶지 않던 것들이 무엇을 보여주게 될까.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눈빛이 무얼 말하고 있는 건지. 그래서일까. 애희가 윤기를 향하게 하는 무엇, 윤기가 애희에게 향할 수밖에 없던 것은. 민철 아재가 배에 그린 그림이 그의 진심을 대신하는 것처럼, 그 그림을 보고 단번에 알아챈 윤기처럼, 윤기를 그 배로 데려가 보여주는 게 마치 자기 할 일이었다는 애희의 표정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왜 그토록 모른 척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 마음을 읽어도 의미를 담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배가 싫어 떠났고, 무엇도 남겨진 것 없을 거라 여겼던 섬이 싫어 떠났는데, 왜 자꾸 다른 감정이 침투하려는 것인지 감당할 수 없어서 화가 나서일지도. 그래서 다 모른 채로 떠나고 싶었을지도...

 

참 이상도 하지. 그런 마음으로 있을 때마다 자꾸 다른 게 들러붙어 감정을 하나로 향하지 못하게 한다. 미우면 미운 채로 남겨두지, 왜 자꾸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까. 미처 듣지 못한 말을 굳이 듣게 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진심이 보이지만, 그건 그 과정을 몰랐던 사람들이 부리는 오지랖 아닐까. 이 부분에서 나는 어느 작은 마을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정을 나누는 거라는 이유로 타인의 삶에 온갖 간섭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에 화가 났다. 나는 정말 이런 거 싫은데. 가깝게 지낸다면서 거리감 제로인 삶을 강요하는 분위기. 고립된 곳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오랜 시간 그런 생활이 당연한 것으로 쌓인 삶의 흔적들일까. 그래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의 삶이다. 적당한 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믿는 나에게 그 섬의 분위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윤기가 섬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보기를 방해하는 많은 것 때문에.

 

어쨌든 이야기의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애희와 윤기의 로맨스가 이루어지는 건 당연해 보였다. 섬으로 들어온 여자와 잠시라도 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남자의 만남이 '민철 아재'라는 매개로 무슨 운명처럼 엮이기 시작했을 때 이미 나온 결말이다. 이 소설은 오히려 그 과정과 시간의 흐름에서 매력을 뽐낸다. 취향이 아니면 읽기 힘든 소설인 듯도 하다. 이 책을 2주 동안 읽었다. 처음에는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읽다 보니 온갖 감정이 밀려들어 페이지를 더디게 넘기고 있었다. 애희의 사연, 윤기의 분노, 어매 아재들의 팍팍한 삶, 그런 것들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묶은' 것처럼 보이는 섬. 이 섬의 이야기가 어디로 흐를까 궁금해하면서 읽게 된다. 바닷바람과 바다 냄새나듯 들리는 어매 아재들의 마음이 부담스러웠다가, 등만 봐도 그 표정을 아는 섬사람들의 혜안에 고마웠다가, 고립되어 보이는 섬이라는 공간에 답답했다가... 그런데도 결국은 미워할 수 없는 그들 삶의 방식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 관객이 거의 없는 상영관에서 단편 영화 한 편 보고 나온 기분이다. 장르소설이 아니라 일반소설로 만났다면 더 만족했을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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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를 견디는 법 현대시 시인선 119
오명선 지음 / 한국문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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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군가가 나랑 어울릴 것 같다면서 작은 소설을 한 권 보내줬다. 오명선의 시집과 같은 제목의 소설이었다. 바닥까지 내려간 인생을 겪는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같이 머물게 된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결말은 두 사람 모두 바닥치고 일어서기로 해피엔딩. 꼭 두 사람이 연결되지 않아도 좋은 마무리였을 거다. 서로 잡은 손이 끊어지고 각자의 길을 가더라도, 아닌 걸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다른 쪽을 보게 되는 시선이 좋았다. 그동안 자기가 봐왔던 게 버려야 할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 두 사람 모두에게.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던 그때. 그 소설의 3분의 1쯤 읽었을 때 궁금해지던 게, 각 챕터의 소제목으로 쓰인 글귀였다. 어떤 마음을 드러내는 한 줄인 것 같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많은 말을 단 한 문장으로 축약한 것 같기도 했다. 소설을 읽다 말고 뒷부분 작가의 말을 펼치고 나서 알았다. 오명선의 시를 소설 각 장의 제목으로 인용한 것. 그때부터, 그 소설보다 이 시집이 더 궁금해진 거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생긴 건지 어떤 건지. 시 한 편이 아니라 시인이 이 시집에 담아놓은 시들을 보고 싶어져 그 소설을 읽다 말고 이 시집을 주문했다.

 

막상 이 시집을 펼쳐 드니, 내가 예상했던 마음과 비슷하기도 했고, 의외의 마음을 들을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시도 잘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재주도 없는데, 한 사람의 일기 같은 마음이 시로 들려오는 듯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내 눈에 들어온 시 구절의 쓸쓸함이 그대로 나에게까지 묻어오는 듯했다. 시에서 드러나는 그 마음은 대개 아파지는 것들인데, 그 아픔을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몰라서, 직접 그 상황이 아니고서야 다 알 수 없어서 뭐라 말하면 누가 될까 싶은 위로 같은 마음이었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생긴 슬픔과 고통이 묻어나는 이 구절 같은...

 

오른쪽 눈의 실명

20년 무탈한 내 기록들의 항의에도 나의 내일은 부적합 판정

당신은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다섯 개 보험회사가 단번에 나를 뱉어버렸다

남은 왼쪽 눈마저 캄캄한 벼랑으로 굴렀다

(「당신은 약관에 맞지 않습니다」 중에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일 텐데, 그 때문에 실수하며 아이를 다치게 한 것도 슬픔이 되고, 보험회사에마저 거부당한 육체가 아무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건 아닐까. 아,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나... 한순간 절망으로 추락한 것처럼 보여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못 보고 못 느끼고 살아가는 게 많을 텐데, 한쪽 눈으로라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그대로 꺾어버리는 세상의 태도에 암울해졌다. 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는 장기 기증한 사람은 보험 가입이 안 된다던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좋은 일을 하고도 안위를 위해 접근한 보험마저 거부당하는 게 현실이었는데, 시인의 말을 듣고 보니 실명으로도 거부당하는 게 똑같은 것 같아서,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지는 기분까지 끌고 온다.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것조차, 남아있는, 아직 살아있는 육체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니, 무슨 기대로 오늘을 버틸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살아왔고, 또 살아온 만큼 비슷하게 남은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아직 세상을 다 안다고는 못 하지만 또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어떤 시기. 사람의 평균 수명을 놓고 볼 때 그 절반쯤 살아왔다고 생각되는 때의 감정과 생각, 경험들을 풀어놓는다. 언젠가부터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보다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는 일이 많아짐을 느끼곤 했는데, 시인은 그 장면을 이렇게 말한다.

 

금방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촉촉한 이별들이 와서 앉았다가

서둘러 근조화환의 환한 배웅을 받으며

문을 밀고 나간다

 

잠깐 다녀가는 이별들은 손수건을 준비하지 않는다

(「짧은 조문」 중에서)

 

바쁜 일정 처리하듯 누군가를 애도하는 풍경이 그려진다. 그 안에 나도 있다. 그런 적이 있다. 가서 얼굴은 비쳐야겠는데 그 자리는 불편하고, 시간은 많지 않고, 그래도 안 갈 수는 없고... 그래서 인사하고 얼른 일어나는 자리로 만들어버린 기억. 그나마 사람들이 많으면 상주가 바쁠 것 같다는 핑계라도 생겨서 다행이라는 마음마저 있었는데, 이 시 구절을 보니 이별의 의식을 너무 가볍게만 생각한 듯해서 미안해진다. 손수건까지는 준비하지 않더라도, 떠난 사람에게 전하는 안녕과 남은 사람에게 전하는 진심이 느껴질 수 있는 마음(그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으로 그곳을 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도 언젠가 그 이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누군가 나에게 진정으로 말하는 안녕의 인사를 받고 싶지 않을 텐가...

 

여러 시가 실려 있지만, 내가 이 시집을 펼치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이 시 때문이다.

 

오후를 견디는 법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 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오후를 견디는 법」)

 

괜히 쓸쓸해지는 기분에 이 말을 하는 누군가의 표정도 그려보고 그랬다. 하루를 보내며 무심코 떠올리는 어떤 날의 오후가 아니라, 견디듯 버티는 오후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까 싶은 마음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부유하는 먼지가 보이는 장면을 그리는 나른함이 오후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먼지가 아닌 마음이 부유하는 상태를 보는 때가 많아졌다. 마음도, 시간도, 생각도, 그저 떠돌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붙잡아서 어디에 고정하고 싶은데 안 될 때, 결국 그 끝에서 마주하는 쓸쓸함이 보기 싫어지는. 어느 구절을 펼쳐도 세상 살아가는 모양새가 씁쓸해지게 말하는 시인의 솔직함에, 고요히 내려앉을 밤을 기다리고 있다. 햇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지면 부유하는 마음도 보이지 않겠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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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저에게 좋아요 누르시지 않으셨나요? ㅋ 전 은근 좋아요 누르신 분들을 놓치지 않는 덕후력이 있습니다 ㅋ 처음 뵈요 ㅎ

2016-06-1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9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6-06-2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근차근 글을 읽어 보니, `오후를 견디는 법`이란 시가 무척 와 닿네요. 전 `고시원에서 견디는 법`을 연구 중이에요. ㅎ 사람들과 관계도 없고, 홀로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차단된 채 있으니 견디긴 견디는 데 이것만큼 최악이 없네요. ㅎ 대화라는 것이 참 중요하구나, 사람이 참 중요하구나 하고 이곳에 있으면서 생각을 많이 해요.

`견디듯 버티는 오후`란 표현 완전 제 심장을 찌르네요. 담담하면서, 촉촉한 문장이 너무 좋아요. 비도 오는 금욜이라서 그런 걸까요? ㅎ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 오네요. ㅎ
즐건 금욜 되세요. ㅎ

2016-06-2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누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남자, 여자. 이해와 공감 사이에서... 『내 누나』

 

 

누나 다섯을 가진 내 동생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자매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남자들의 세계(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언니라는 호칭이 점점 사라지더니 언젠가부터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제법 잘 어울려 놀았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소원하다. 떨어져 살고 있기도 하고, 자주 통화하지 않는 탓인지 가끔 어색하기도 하다. 서로에게 볼일이 없으면 대화를 하지 않는, 남동생과 나는 딱 그런 사이다. 거기에다, 이 녀석과 얘기하다 보면, 동생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남자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에 집안일로 계속 통화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이 녀석과 대화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오빠 없는 여자가 ‘나도 오빠가 있었으면’ 하는 로망을 키우듯, 남자도 누나의 로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키운 판타지로 존재하는 오빠와 누나가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오빠와 누나는 피우지 못한 로망으로 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녀석은 자기 누나를 보면서 ‘여자는 집에서 이런 모습으로 지낼 거야.’라는 환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른 녀석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단번에 기대를 깨주려고 필사적이었단다. ‘누나'에게 키우는 로망 따위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막상 누나를 가진 이들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도 오빠를 가진 친구를 엄청나게 부러워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친구는 절대 아니라고, 다 환상이라고 했다. 지금은 나도 오빠에 대한 판타지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기대는 사춘기 시절의 달콤한 성장제였던 듯하다.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는 이런 나의 경험과 많이 닿아 있었다. 나와 남동생, 내 주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남동생과 누나 사이의 대화가 평범한데, 그 평범함이 또 이상(?)하게 흘러간다. 또 그런 이상함은 익숙하다. 이들의 몇 가지 에피소드로 누나에 대한 환상이 깨짐과 동시에, 여자 남자 사이의 좁혀지지 않은 시선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정말 가까이하기엔 먼 그대(여자, 남자)란 말인가. 누나와 남동생 사이를 차치하고, 성별의 차이로 보이는 내용이 웃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만든다.

 

“그러면 뭣 때문에 그렇게 피곤한 건데? 그 여자애랑도 잘 지냈을 것 아냐.”

“표면상으로는 그렇지. 생각해보면 뻔하잖아? 그 자리에서뿐이지. 그런데 그이는 ‘우리 빼고 여자들끼리 둘이 만나도 되겠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더라니까. 그 여자애도 지금쯤 엄청 열 받아 있을 걸? 앗, 이 순간은 그 여자애랑 공감할 수 있을 듯.”

“다행이네...” (23페이지)

누나가 남자친구의 친구 커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남동생은 누나가 왜 그 시간을 피곤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누나니까, 누나는 원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듣고 있는 듯하다. 남자친구 커플과의 모임에 참석할 수는 있다. 그 시간을 화기애애하게 잘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유감스럽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여자끼리 따로 만날 수도 있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그 자리가 시댁의 불편한 동서 사이가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여인들이 그러했다. 그런 마음인데 여자끼리 따로 만나도 되겠다고 선뜻 말하는 남동생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잖아.

 

“다녀왔어~ 으~~~ 피곤해. 회사 그만두고 싶다.”

“지금 그만두면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서 네가 인기가 없는 거야.”

“뭐가.”

“인기 비결은 결국 하나야.”

“뭔데?”

“공감력. 보라고, 너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남자가 해주는 조언이나 의견은 지겨울 정도로 듣잖아? 나 역시.”

“미안하게 됐네!”

“그런 것보다 그 순간의 공감력.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사랑해’가 아니라 ‘알아, 이해해’일지도.”

“진짜야?” (82~83페이지)

누나와 남동생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거였다. 같은 언어로 얘기하는데 전혀 다른 의미로 대화하는 듯하다. 일이 피곤하다, 그만두고 싶다, 하는 말의 숨은 의미를 봐야 한다. 하기 싫다고 바로 때려치울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입으로 그 피곤함을 표현하는 순간 따라오는 잠깐의 해갈을 찾는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남동생의 대꾸에 인기 없는 이유까지 들먹이게 된다. 남동생은 그 '공감력'이란 결론에 무슨 별나라 구경하듯 신기해한다. 진짜야? 더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이상의 해석은 나에게도 무리다.

 

마스다 미리가 얘기하는 엄마나 다른 여자에 관한 것은 들어봤는데, 누나라 부르는 남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세상의 모든 누나에게 존재하는 남동생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넓게 남자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아무리 읽어봐도, 그동안 무수히 들어오고 겪어왔던 여자와 남자의 생각과 태도의 차이를 거듭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게 언짢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남동생은, 동생이면서 남자다. 형제자매 사이의 다툼이나 생각, 살아가는 모양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내 누나』의 에피소드에서 그 차이와 함께 여자 남자의 차이도 같이 볼 수 있다는 거다. 그 안에서 내 남동생을 봤다.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짜증내는 내 모습을 봤다. 그래서다. 내가 이들의 이야기에 한참 끄덕였던 이유. 나는 이들의 이야기처럼 남동생과 둘이 살아본 적도 없고 친근하다고 느낄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도 않지만 공감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것처럼 대화하고,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도, ‘내 누나’의 말과 행동을 차분한 눈으로 다시 보는 그녀의 남동생 모습이 애틋했다. 그래서 남매인가 싶으면서, 내 남동생과 나 사이에서도 그런 애틋함을 찾을 수 있으려나 싶은 궁금증과 기대가 남는다.

 

마스다 미리 작품의 매력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에피소드라는 점이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남동생의 등장은 색다른 맛을 더해준다. 얼마 전 다녀간 남동생과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이 녀석과 아주 후련한 대화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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