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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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를 꿈꾸며... 『죽여 마땅한 사람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살인이 범죄가 아니라면, 처벌받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는 몇 번의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누구나 그런 적 한 번이라도 있지 않아? 나를 상처 입혔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미워하고 분노하는 감정이 정당화될 수 있는... 다만, 우리가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건 타인의 목숨을 내 기준대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살인은 법의 처벌을 받는 범죄라고 인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신감, 분노 같은 감정을 이길 수 없어 살인을 저지른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이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동시에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그 ‘죽여 마땅한’ 이유도 듣고 싶었다. 가끔 TV 뉴스를 보면서 흥분하다가 쉽게 내뱉는 말, 어떤 가해자나 피의자에게 당연하게 던지는 말이 있다.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고...’ 내가, 피해자가 받은 고통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개인의 복수가 아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받아야 한다는 절차와 방식이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죽어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진짜 죽인다면? 그들은 '죽여 마땅한' 사람이 된다. 그 가정에서 멈추지 않고 그걸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이 있다. 그 누군가가 죽어 마땅한 이유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이유 중에 마음의 상처를 입힌 이유라면 상대에게 죽음을 건네고 싶은 감정은 더 격해진다.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한, 배신감에 치를 떨게 한 너를 그냥 둘 수는 없다’고. 그래서 실행에 옮긴다. 나와 직접 관계가 있든 없든, 죽이고 싶다는 그 바람을 가진 이를 돕는 일도 한다. 릴리가 그랬다. 히스로 공항 라운지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테드와 릴리. 테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 것을 공항에서 처음 본 릴리에게 이야기한다. 다시 만날 일 없을 거로 생각한 릴리에게 무거운 속내를 털어놓은 거다.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그냥 꺼낸 말이라고 생각했던 테드에게 릴리는 진지하게 대꾸한다.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고, 도와주겠다고...

 

“사람을 죽이고도 잡히지 않으려면 시체를 숨겨야 해요.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애초에 살인이 없었다면 살인자도 없는 거니까요.” (87페이지)

 

릴리가 테드를 어떤 방법으로 도울까? 그 방법은 한 가지다. 테드가 자기를 배신한 아내 미란다를 죽이고 싶다는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사람을 죽이고도 잡히지 않기 위해 시체를 잘 숨기는 것. 두 사람은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묘미는 그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처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는 것을 따라가면서부터다. 릴리와 테드, 테드의 아내 미란다, 살인 사건의 담당 형사 킴볼의 시선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모든 진실을 알고 싶을 때 당사자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풀어야만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게 불가능할 때 관계된 이들의 목소리를 따로 듣기도 한다. 이때, 각자의 입장만 듣게 된다는 맹점이 있다. 어떤 이유로 이들의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동하는지, 죽여 마땅한 이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는지,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모든 경우 다 죽일 수 있었는지, 그 죽음에 관해 아무도 처벌할 수 없었는지... 누군가를 죽이기로 계획했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위기를 또 어떻게 넘기면서 새로운 국면에 처하게 되는지 반전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테드는 미란다를 죽일 수 있을까, 그 살인이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살인을 들키지는 않을까?

 

‘썩은 사과 몇 개를 신보다 먼저 도려내는 일’이 가능한지 물으면서 또 하나의 큰 질문을 던진다.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일은 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이어진다. 사람이 사람을 살인으로 심판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명확한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없음도 확인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보게 된다. ‘나라면?’ 이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번은 경험해봤을 생각일지도 모른다. 법의 절차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처벌을 내가 하고 싶다는 욕망에 잠겼던 찰나를 건너가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냥 한번 생각해본 것’과 ‘살인’ 사이의 경계를 만든다. 인간이기에 대부분은 전자의 경우가 많을 듯하다. 혹여 누군가 나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나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하는 정도의 즐거운(?) 상상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는 세상에는 법이라는 제도가 있고, 우리는 그 법의 절차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게 많은 사람이 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아서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생각들이 사건을 만든다. 이 소설은 그 빈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저지른 살인은 잘못되었지만, 또 그렇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뿜어져 나오니까.

 

가슴이 아팠다. 익숙한 감정은 아니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난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내가 저지른 살인마다 이유가, 그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까닭은 외로움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420~421페이지)

 

‘살인은 나쁘다’라는 한 가지 결론만을 내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살인을 응원하는 순간도 만들면서, 이게 정말 가능한가 싶은 의문을 품게 한다. 벌을 받아야 할 행동에 묘한 공감이 생겨나고 있다니... 나 정말 이상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저지르는 살인에 동조하는 순간이 있는 걸 보면,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음이 틀림없다. 릴리만의 심판이 모두 옳다는 결론에 다다르지는 못하겠지만, 그 시도 자체를 무조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완벽한 살인과 숨김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당신은, 우리는, 그 고통을 사라지게 하려고 직접 해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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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이동도서관>을 읽고 있다.

앞부분은 신기한 판타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어째 느낌이 이상하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이런... 괜히 슬퍼진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 작가가 썼다고 한다. 느낌 비슷하면서도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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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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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흔들 타이밍을 저격한다. 『댓글부대』

 

지난번에 본 영화 <내부자들>은 강했다. 동시에 아픈 영화였다. 정의와 진실이 이기기 위한 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권력자들의 욕심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만들어진 진실에 거짓은 가려졌다. 끝내 그 진실이 드러나기 어렵다는 걸 보게 했다.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안상구는 자기 자리에서 끝없이 몸부림쳤다. 온갖 편법을 저지르고서라도 오르고 싶던 그의 인생은 노력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믿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배신했다. 그 배신자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언론을 주름잡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듯 모든 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장면은 어떻게 여론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이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느냐, 이었다. 힘 있고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자에 의해 철저하게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중은 개, 돼지라며... 이런 내용의 영화가 비단 <내부자들>뿐이겠냐 마는, 언제 봐도 답답했다. 화가 나고, 정의가 실현되는 게 불가능할 거란 절망만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건, 그 여론이 어떻게 흔들리고 조작되어 한쪽으로 몰리는 힘을 가지는가 하는 거다. 그 배경에는 여론을 주도하려는 자들이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연구하는데 있다. 인간의 마음이 흔들리는 건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계획하여 흔들어버리고자 작정하는 또 다른 인간이 있어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그게 가능하니까 이런 소설이 생기는 거 아닌가?' 라는 답을 끌어내고 있으니까. 궁금했다. 불분명하게 들어왔던 이런 이야기가, 허구라는 소설로 진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소설 『댓글부대』는 나의 그런 호기심에 대한 답을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준다. 삼궁, 찻탓캇, 01査10. 이 세 사람이 ‘팀-알렙’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여론 조작은 놀라울 정도였다.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 어딘 가에서부터 시작된 ‘카더라 통신’의 진실이 여기 있다. 조작된 진실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여론몰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심리전의 고수가 어떤 표정으로 그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밑바닥은 다 똑같은 겁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인정 투쟁. 모두 가슴에 단도 한 자루씩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팍! 그런데 저희들은 언제 사람들이 미쳐서 그 칼을 휘두르는지 그 타이밍을 알아낸 거죠. (77페이지)

 

온라인을 통해 어떤 이야기들이 얼마나 빠르게 멀리 퍼져나가는지 안다. 그런 방식을 알고 있는 이들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의 흐름을 몰아간다. 그들에게 여론 조작은 쉬운 일이었다. ‘팀-알렙’은 처음, 특정 기업의 상품평과 후기를 거짓으로 작성하며 푼돈을 벌고, 점점 그들이 하는 일의 규모는 커진다. W전자 생산직으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의 죽음을 그린 영화의 흥행을 방해하는 일을 의뢰받는다. 삼궁은 처음 의뢰받은 내용의 방향을 틀어 영화판을 배경으로 삼은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영화 흥행 방해 작전에 성공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달라진다. ‘팀-알렙’ 멤버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들에게 힘이 생겼다고 믿는다. 위험한 생각이 이렇게 시작되고 고정된다. 그들에게 이런 일을 의뢰한 ‘합포회’와의 고리는 더 굳건해지고, 그들의 작전은 더 교묘해지고 위험해지며, 두려움과 죄의식까지 밀어내기에 이른다. 점점 커지는 의뢰들, 더 과감해지는 여론 조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그들의 행보와 인터뷰 장면을 교차로 보여준다. 그들이 여론 조작을 어떻게 계속해나가고 있는지 서술하면서, ‘팀 알렙’ 멤버 찻탓캇이 신문 기자에게 폭로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독자의 눈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며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섬뜩함을 붙잡고, 반성의 시간을 걷는 듯한 찻탓캇의 폭로는 결말이 기다려지는 안달을 부른다.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여론을 흔드는 재미와 돈을 챙긴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찻탓캇의 폭로가 시작되었나 하는 궁금증에 눈을 뗄 수 없다. 상당한 속도감으로 읽힌다. 이 소설을 읽기 바로 전에 봤던 영화 때문에라도 읽고 싶은 동기는 충분했다. 물론 내가 봤던 영화와 이 소설의 결론이 같진 않았지만, 그 맥락은 비슷하다. 정의도, 진실도, 모두 힘 있는 자들의 필요로 어떤 그림으로든 그려질 수 있다는 것. 진실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교란하여 휘저어버린다. 그 중심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또 하나의 세상에서 권력이 생기고, 진실과 거짓이 무엇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느 조종자의 손에 휘둘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종하는 사람, 이용당하는 사람, 폐기물처럼 버려지는 사람. 그 안 어디에도 진실은 없을 거라는 불신이 가득하다. 먹이사슬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권력구조가 혀끝에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여전히 정의를 본다는 건 희망적이지 않고, 진실이라 말하는 것들을 수도 없이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보이는 것의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누군가의 조작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계속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생각해본다. 어디까지 믿어? 아닐 거로 생각해? 왜 그런 시도를 하는 건데? 언제까지 그 거짓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는 정의가 이길 거라고?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라고 선을 그을 수도 없다. 동시에 허구라고 불리는 이 소설이 허구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좀 조용해지나 싶었던 댓글 알바의 의심은 지난번 모 구청의 사건에서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끝이 아닌 거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의혹은 계속된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는 그 믿음을 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남은 것은 불신뿐이다. 쉬지 않고 던지는 질문을 떠올려보면서, 그 불신이 신뢰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찾고자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된다. 반전, 반전, 반전을 기다리면서... 그래서 이 소설이 그 불신을 지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읽어보면 알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 후의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의 답은 아직 다 나오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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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의 50가지 그림자
F. L. 파울러 지음, 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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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갑자기, 치킨이 고급지게 보인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

 

가끔 요리 프로그램 볼 때, 진짜 배가 고프다. 아니, 방금 밥 먹고 포만감이 느껴지는데도 그런 방송 보고 있으면 자꾸 뭔가 더 먹고 싶어진다. 뱃속이 꽉 찼다고 아우성치는데 그런 소리는 무시하고 일단 입속에 뭐를 집어넣어야만 풀릴 것 같은 갈증. 그래서 웬만하면 밤에 요리 프로그램 안 보려고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되네. '야식'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거다. 낮이 아닌 밤에 입맛 돋우는 장면들이 더 찾아온다. 이 책도 밤에 보면 침이 질질 흐를 것 같다. 닭 한 마리로 온갖 요리를 해댄다. 제목처럼 50가지 요리법이 등장하는데, 기름기 줄줄 흐르는 장면에 느끼할 것 같으면서도 손이 저절로 책으로 뻗어진다. 하아... 또 배가 고프다. 치킨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2월이다. 비닐장갑 하나 끼고 매콤한 소스가 발라진 닭 다리 하나 들고 와구와구 뜯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더 마음 아픈 건 치맥의 계절이 왔다는 거... 치맥을 즐기는데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유독 여름날 치맥이 더 당기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한낮의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치킨... 흐엉...

 

그 유명한 그레이 시리즈를 패러디한 게 많이 나왔지만, 유독 이 책이 궁금했던 건 영상 때문이다. 거의 2년 전쯤에 온라인에서 닭을 묶고 요리하는 영상 하나를 보고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이었다. 먼저 말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요리책이다. (내가 이 책을 요리가 가미된 소설인 줄 알았다는 건 안 비밀. ㅠㅠ 도서 분류에도 문학이라고 되어 있다.) 각각의 요리를 2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처럼 서술하고, 바로 이어서 요리 레시피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런 문장에 혹해서 읽었다가,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바삭하게 구워지는 닭요리 하나를 알게 되는 거다. ㅎㅎ 냉장고 신선실에서 뚝 떨어져 칼잡이 씨의 눈에 띈 영계 한 마리는 온갖 형태의 닭요리로 주인공이 된다. 요리사 칼잡이 씨는 자기 주방을 통제하는 걸 상당히 좋아하니, 그의 입맛에 맞게 행동을 취하면, 요리사님(그레이)의 애정을 듬뿍 받는 영계 아가씨(아나스타샤)가 되는 거다.

 

소설 형식을 빌린 닭 전문 요리책이다. 총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마다 호기심 돋는 설명에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은 닭 요리가 채워졌다. 순진한 영계(처음 요리사님에게 발견된, 냉장고에 방치되었던 영계 한 마리), 산산이 조각나다(토막 친 닭 요리와 부분육 요리 소개), 거침없이 막 나가는 치킨(닭을 이용한 여러 가지 업그레이드 요리 고급 기술 편). 첫 번째 장에서는 닭을 통째로 이용한 요리가 대부분이고, 두 번째 장에서는 닭을 조각내서 하는 요리, 세 번째 장에서는 닭을 조각내거나 다져서 하는 요리(내가 보기에 손이 많이 가는 요리여서 고급 기술 편인 것 같다. ^^)가 등장한다. 요리가 하나씩 진행되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과정과 수량을 적어 넣은 기존의 요리책과 같은 구성이 아니라, 아무래도 유명한 소설을 패러디한 설명 때문에 웃으면서 볼 수 있다. 뭔가 야릇한 장면을 연상하듯 끌어가는 이야기가 알고 보니 닭의 몸매라던가, 통제 운운하면서 소유욕 쩔은 남자를 말하는 듯하지만 결국 요리사의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읊는 거였다거나... 분명 닭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들으면 그만인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게 한다. 왜냐고? 난 이미 그레이 씨를 다 읽어버린 몸이거든!!

 

일반인이 하기에는 좀 더 전문적인 닭 요리 레시피가 아닐까 싶긴 한데, 닭 요리를 좋아하거나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든 관심 두면 잘할 가능성이 열려 있으니까. 푸드포르노라는 소개 글에 어울리는 요리책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식 닭 요리가 아닌 서양식 닭 요리여서 그런지 색다른 입맛을 돋운다. 닭이 간식이나 메인 요리로 나오는 여러 가지 레시피가 흥미롭기도 하다. 곁들일 수 있는 샐러드나 사이드 메뉴도 알 수 있고, 일단 사진부터 먹음직스러운 건 당연하고... 누드 상태의 영계와 그 영계를 어떤 식으로든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요리사님의 썸과 밀당의 연애 요리다. 후훗~

 

 

"눈썰미가 좋은 닭이로군. 그가 말한다. 또 그 표정이 된다. "이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내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 내가 쓰는 재료들은 정확해야 해." (15페이지)

 

 

"당신을 요리하고 싶어." 그가 속삭인다. "통째로."

아, 어쩌면 좋아. 내 몸이 속에서부터 뜨거워진다.

그는 내 몸 너머로 손을 뻗어 향신료 병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커다란 조미료장을 연다.

"말해 봐, 어떻게 해줄까? 골라 봐."

(중략)

"전 밑간은 처음 당해 봐요." 내가 풀이 죽어 중얼거린다. "아니, 아예 재료 밑손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의 입이 한일자로 꾹 다물어진다. 그가 받은 충격을, 크나큰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

"한 번도?" 그가 속삭여 묻는다.

"이렇게는 처음이에요." 내가 고백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당신을 바삭하게 구워 주지 않았다고?"

"그런 적 없어요……, 하여튼 양념을 한다는 거 괜찮은 건지 전 잘 모르겠어요." (21페이지)

 

그렇게 밑간을 당하고, 묶이고 해서 완성된 귤과 세이지를 곁들인 로스트 치킨

 

 

그는 내 양발목을 합쳐 단단히 묶는다. 노끈은 꽉 묶여 있지만 살갗에 파고들 정도는 아니다. 나는 구속감고 함께 기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내 등골을 타고 전기가 오르듯 위험한 전율이 찌릿찌릿 치민다.

"당신은 매혹적인 꽁지를 가졌군. 완벽해, 암탉 아가씨. 요걸 물어뜯을 게 기대 되는 걸." (47페이지)

 

 

"당신을 오로지 나를 위해 담금액에 밑간 된 거야." 그가 음험하게 말한다. "오직 나만을 위해."

그래요. 나는 신음한다. 나를 먹어 주세요. 당신 혼자서. 그리고 바로 그때에야 나는 그가 뭔가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래디시인 것 같다. 그 빨간 래디시가 심장처럼 박동하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광경이 흐릿해져 가고, 나는 미칠 것 같아진다.

"일어나, 베이비."

신선실 문을 열면서 그가 말한다. 우쭐하게 멋 부린 말투.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브로일러에 들어갈 시간이야."

빌어먹을. (92페이지)

 

 

허브와 아몬드 페스토를 바른 나비 모양으로 벌린 통닭

 

 

"이제부터 당신을 납작하게 펴 놓을 거야. 활짝 벌려 놓을 거야. 있는 줄도 몰랐던 경지에 이르게 해 주지."

그의 미치광이 같은 기대와 흥분이 느껴진다.

내 몸은 전적으로 숙련된 그의 손 아래 맡겨져 있다. 그가 나를 옆으로 활짝 벌려 놓을 때 충격이 내 몸을 관통하여 흐른다. 그리고 그건 감미롭고 낯설고 관능적인 감각이다. 그가 나를 가슴이 위로 오도록 팬에 놓는다. 가금육이 이렇게 납작해도 될까. 이건 부자연스럽다. 이토록 쾌감이 밀려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팬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열기가 이렇게나 균일하게 내 몸을 관류하는데. 나는 녹아 버릴 듯 육즙으로 가득 차 말할 수 없이 맛있어진 느낌이다. (164페이지)

 

 

베이컨에 묶인 날개 - 메이플 시럽으로 윤이 나게 구운 닭날개 베이컨 말이

 

 

버터를 가져와 가슴살 - 향기롭게 갈색으로 만든 버터와 헤이즐넛으로 요리한 닭가슴살 소테

(이거 정말 먹고 싶게 생겼다. 침이 질질~~)

 

치킨 서브 - 모차렐라를 올린 치킨 서브마린 샌드위치

(샌드위치라는데, 위에 듬뿍 올려진 모차렐라에도 느끼함이 아닌 침샘이 먼저 고인다.)

 

 

꼿꼿이 일어선 치킨 - 매콤한 토마토 감자를 곁들인 직립 로스트 치킨

(요리가 보여야 하는데, 다른 게 먼저 보인다.

요리할 때는 꼭 상의 탈의 상태로 앞치마를 착용해야 눈에 들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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