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9페이지)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보이는 첫 문장이 강렬하다.

처음, 이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평범한 일상에서 겪는 갈등이 어떤 분위기로 펼쳐질지 복선처럼 보이는 느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여자의 음성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왜 시작되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펼친 이 책의 첫 페이지의 문장이 저러했으니,

예상했으면서도 놀랐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강렬하게 시작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면서,

나에게는 레일라 슬리마니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게 해 준 작품이다.

제목의 달콤함은 첫 문장으로 바로 사라졌다.

결코 달콤하지 않은 '달콤한 노래'를 부르리라는 우울한 걱정이 앞섰다.

누군가의 가려진 시간을 알아가는 순간이면서,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도 있을 모른 척한 일일지도 모르면서,

결국은 나의 일이 될지 몰라서 염려를 해야 하는 이야기.

 

그래서 끝까지 읽어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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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무채색 결혼
향기바람이 / 로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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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평범하게 사는 부부 대부분의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두 사람의 시작이 지극히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선을 보고 결혼을 한다는 과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 시한부 환자인 어머니의 안심을 위해서 아내를 찾는 남자가 어디 흔할까. 또 그런 남자의 조건에 선뜻 손을 내민 여자는 어떻고. 주변에서 이런 사람 본다면 누군가는 분명 말리느라 정신없을 텐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평범해 보이지 않은 두 사람의 시작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동네에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연정은 셀 수도 없을 만큼 선을 봤다. 무슨 일과를 치러내듯 선을 본다고 해도 무방하리. 이번에 만난 남자가 어떨지 기대하기보다는, 이런 과정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연애로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자기 사정을 그대로 다 말한다. 시한부 선고받은 어머니가 자기의 결혼을 보고 싶어 하신다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당신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신다고, 그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이런 자리에 나온 거라고. 연정은 이런 사정을 미리 알지 못하고 나온 자리라서 순간 당황하지만, 시후를 한 번 더 만나보고 시후의 어머니를 멀리서 지켜보고 난 후 결심한다. 이 남자와 결혼하겠노라고.

 

그렇게, 서로의 필요(?) 때문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시후는 늘 바빴고, 연정도 익숙한 일상을 이어나갔다. 가끔 시후의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으로 마음을 다했다. 별일 없는, 무난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적응 기간이 없을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도 소소한 감정싸움이 일어난다. 지다고 보면 왜 그랬을까 싶은 일들, 별거 아니었는데 말이 앞서나갔다는 후회, 화해하고 나니 괜히 더 유치한 언행이 부끄러워지는 시간.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일상이 공유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오늘이 평온해지는 날들이었다. 그 사이에 시후 부모님의 비밀과 시후의 옛 연인이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시간이 쌓이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는 모습과 닮아서 오히려 공감되었다. 살면서 그런 바람 한두 번쯤 불어오는 거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서로 맞춰가는 게 결혼이라고, 그렇게 맞춰가기 위해 크고 작은 충돌은 피할 수 없다고,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라는 시간 또 만들어가는 모습이 찾아온다고. 그렇게 감정이 스며들고 또 쌓이면서 결혼이란 역사를 같이 쓰고 갈 두 사람일 테지. 그 순간 온전한 '내 편'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을 것 같다.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위로가 되어줄 사람이라고, 이런 평범한 일상 이루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가는 시간. 사소하고 또 사소해서 그 소중함을 차곡차곡 쌓는 모습이 예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읽으면서 내내 흐뭇해지는 기분에, 페이지 넘기는 일이 즐거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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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짝사랑의 타이밍
YUN짱 / 조은세상(북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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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는 설정인데,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인데,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대개, 그런 흐름으로 가지 않나?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앓이'를 하다가 그만두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연애가 시작된다거나, 혹은 그 짝사랑이 알고 보니 서로 말 못 하는 쌍방통행이었다던가... 이제껏 만나왔던, 짝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러니 이 소설도 당연하게, 짝사랑을 감춰온 여자의 마음이 그 상대에게 가 닿아서, 처음의 등장인물 두 명이 그대로 주인공이 되어 해피엔딩을 이룰 거로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나는 너무 익숙한 선입견으로 이 소설을 대했던가 보다. 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이 소설이 희한하게도, 흥미롭더라는. ^^

 

차희연은 최민규를 짝사랑했다. 오랫동안 친구였고, 부모님끼리도 친구인 관계. 아마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로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알고 자라는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희연의 눈에 민규는 남자로 보였다. 한 번도 여자를 안 만난 적이 없는 민규의 화려한 연애사가 어느 순간부터 거슬리기 시작했다. 민규에게 들어오는 선물들로 배를 채우던 희연이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 못 할 질투와 표현하지 못한 마음으로 점점 민규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민규 이놈은 그런 희연의 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희연이 끝까지 친구로 남아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희연의 짝사랑을 모른 척한다. 심지어 희연의 친구와 사귀기까지 하면서 희연의 반응을 살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가장 알 수 없던 게 민규의 마음이었다. 어떤 마음이면 희연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나 싶어서 주리라도 틀고 싶었으나, 또 민규는 민규 나름의 연애관이 있을 터이니 내가 훈수를 둘 수는 없어서 참았다. (뭐, 안 참으면 어쩔 건데?)

 

그러다가 희연은 우연히 알게 된 박승현을 애인 대행으로 꾸준히 이용한다. 승현 역시 희연과 비슷한 이유로 희연을 애인 대행으로 맞이한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마음을 아는, 누군가를 향한 짝사랑 동지로 뭉친 희연과 승현은 그들 나름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서로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는 연기를 하는 거였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흐름이 뻔하게 흘러갈 거로 여기게 된 이유다. 가짜 애인을 하는 사람의 등장으로 원래의 짝사랑 상대가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은 처음 마음 준 사람에게로 가는 방식. 그런데 이 소설 의외다. 민규라는 인물은 사이코에 가깝게 집착남이 되어버렸고, 승현은 가짜 애인이 아니라 어느 순간 희연에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이 순간, 희연과 승현은 쌍방이 되고, 민규는 못된 후회남이 된 것. 게다가 민규의 한심함과 구질구질함은 동정은커녕 잡아다가 감옥에라도 넣고 싶을 정도의 한심한 짓이었으니... 도대체 희연은 민규의 무엇을 보고 좋아했을까 혀를 차고 싶을 정도였다. 하긴, 또 사람을 알아도 끝이 없다는 것을 여기서 또 확인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지.

 

흔히 말하는 그 타이밍의 중요성과 운명을 갈림을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혼자만의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혹은 끝나는 순간.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먹은 순간, 혹은 거절하는 순간. 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도 얻어야겠다고 자각하면서 직진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우리 인생에 등장하는 그 많은 타이밍은 꼭 사랑에서만 작용하는 법칙은 아니다. 늘 그랬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에는 그 타이밍이 중요한 순간이 많았다. 살면서 늘 겪는, 언제나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얻는 게 있으면 버려야 할 것도 있기 마련인 게 인생이라서. 그래서 매번 그 타이밍을 잘 잡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게 사람 마음이라면 더 중요한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 테니, 움직이는 게 마음이라서 그 거리가 더 생기기 전에 잡아야 하고, 멀어지는 순간 접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로 보면 승현은 자기 마음 확인한 순간 고백하고 다가가는 것으로 그 타이밍을 잡았다. 민규는 이기적인 계산으로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희연은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내보내고, 다시 마음에 들여놓는 일의 타이밍을 잘 맞췄다. 그녀 인생에 이보다 더한 시험이 있었을까 싶은 순간을 지나고 있다. 희연의 말처럼, 엇나간 타이밍은 힘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 앞에서 지나간 타이밍은 의미가 없다.

 

유치하게만 흘러갈 것 같던 소설이, 인생의 큰 지침을 알려주고 끝을 맺었다. 타이밍은 짝사랑에서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 작용하는 법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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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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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경제학 수업 같은 것을 이런 책으로 진행한다면 훨씬 집중하고 재밌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딱딱하고 원론적인 내용 말고, 좀 더 쉽게 설명이 되고 차근차근 하나씩 귀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누구라도 즐겁게 들을만한 강연 느낌이다. 물론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알아두면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거의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내용을 한꺼번에 다 소화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나하나 새겨듣다 보면 경제를 보는 시야도 넓어질 것 같다. 인플레이션이 우리 생활에 작용하는 것들, 그로 인해 우리 삶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인플레이션을 조종하는 듯한 배우의 일들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위기를 극복할 자세를 만들어갈 수 있다.

 

화폐량에 비해 재화량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물가는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를 양팔저울로 도식화시키면 더 이해하기 쉽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화폐가, 다른 한쪽 접시에는 재화가 담겨 있다. 화폐가 담긴 접시에 화폐를 너무 많이 올려놓으면 접시가 아래로 기울면서, 재화가 담긴 접시가 위로 올라간다. 쉽게 말해 물가가 상승한다. (187페이지)

 

학교 다닐 때, 경제 과목에서나 제대로 들어봤을 단어, 인플레이션. 실생활에서는 물가의 상승을 이야기할 때나 튀어나왔을 단어이기도 하다. 아기 주먹만 한 호박 하나에 2천 원이나 하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인플레이션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인플레이션'에 보다 흥미롭고 세세하게 접근한다. 독일인 저자 세 명이 같이 쏟아낸 이야기가 그 인플레이션의 시작과 역사를 말한다. 더불어 돈, 권력, 부의 미래가 어디를 어떻게 향해 가는지 풀어내면서, 그에 대응할 우리의 자세까지 언급한다.

 

10세기 중국 교역 상인들이 거래 수단으로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동전을 주조할 금속이 부족했고 종이는 사용하기 편리했다. 이전에는 상인들과 교역을 할 때 물건을 담보로 맡겼지만, 이제 물건의 가치를 명시한 종이만 있으면 간단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 종이가 발전하여 고유한 화폐가 되었다. (43페이지)

 

인플레이션은 화폐와 함께 시작되었다? 2000년 전쯤에 화폐가 사용되면서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같이한다. 거의 모든 시대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생되어 부의 흐름과 세계 경제를 좌우해왔다. 그 배경에는 국가가 있었고, 부의 권력자들이 있었다. 화폐 가치를 조작한다거나, 나라의 경제 위기를 인플레이션으로 눈가림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취했다. 그로 인해 서민들은 더욱 가난으로 몰렸고, 이런 상황은 늘 반복되어 흘러왔다. 아는 사람만 알고 쥐고 흔들 수 있는 수단이었던 거다. 물론 거기에는 나라 안팎의 위기와 전쟁 같은 일들이 발생해서 더해진 것도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던 거다. 특히 지폐의 사용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녹아내리기도 하는 금속 화폐 대신 종이 화폐의 등장은, 부의 탄생과도 그 흐름을 같이 한다. '돈의 역사 =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 모습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발생과 과정은 같다고 한다. 화폐가 붕괴하는 시작은 국가 채무나 통치자가 책임 회피를 하려 했고, 그 해결을 위한다고 하는 게 인플레이션의 발생이고, 실제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의 생활에 다가왔다. 매번 이런 흐름은 계속 반복될 것이고,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의회는 세금을 징수할 능력이 없었고, 각 주는 국가 예산을 지원할 재정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용의도 없었다.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남은 방법은 전쟁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폐를 발행하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지폐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뻔한 것이다. 매년 약 100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105페이지)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 사태를 예로 들면서 그 심각성을 고발하고, 헝가리와 독일의 경제를 바꿔놓은 화폐개혁 등으로 위기 정돈 상황을 보여준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하지 않기도 하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잘 알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보이기 마련이라고 길을 열어준다. 사태의 심각성과 우리 삶에 적나라하게 와 닿는 일들을 살펴보면서 인플레이션의 장단에 휘둘리지 않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언급하면서 위기를 직면하게 하고, 그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몸에 새겨야 한다는 경고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야 부의 권력자나 통치자들이 만들어놓은 인플레이션으로 우리가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제 위기의 거대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뼈아픈 경고다.

 

인플레이션의 시작부터 다양한 접근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들려주어야 할 내용이 많다는 듯 저자가 언급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이 몰랐던 사실이었으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고통받아온 경제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듯 새로운 접근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 모두를 옮길 수 없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결국은 이 책은 지침서 삼아 금융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듣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인플레이션의 역사와 증상들, 보이는 이면의 어두운 사실들, 결국 부를 거머쥔 이들이 이끌어오다시피 한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인플레이션만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화폐의 가치와 부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의외의 결의안이나 장관의 공식 선언도 없이 익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239페이지)

 

저자는 인플레이션은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라고, 빗겨간다는 건 불가능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 그럼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인플레이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확실한 건 없다. 다만, 그 불확실 안에서 좀 더 안전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무작정 덤비는 게 아니라 전략과 준비로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는 것.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어떤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순발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이 가지는 구조적 위험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애초부터 피해갈 수 없으니, 대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 책의 후반부에 언급되는 저자가 제시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네 가지 시나리오'는 투자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응 방법일 수 있다. 투자하고자 하는 곳의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자세로 파악해야 한다. 투자하기 전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필수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 종목의 구성뿐만 아니라 배분까지 확실하게 연구한 결과물이 필요하다. (특히 포트폴리오 작성법이 더 세분화하여 설명되어 있다) 투자의 실수를 경험 삼아 실패의 재발을 방지한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따라 하는 것, 우연을 맹신하는 것, 쓸데없는 집착들, 다시 가치 있기를 바라면서 처분을 미루는 것, 객관성이 없는 희망, 과도한 낙관주의는 피해야 할 것들이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화폐의 형태, 모습, 발행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화폐는 우리 인류가 발견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다. 화폐는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52페이지)

 

다른 매체에서도 들었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앞으로의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뭐, 언제는 그렇게 투명하게 보인 경제 전망이었겠느냐마는...) 지나간 역사에서의 인플레이션에 대책 없이 당해온 것은 서민들뿐이다. 투자로 고수익을 얻겠다는 얄팍한 수를 생각하지 말고, 알지 못해서 당해온 희생을 더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에 뭔가 크게 바뀔 효과를 얻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 책임이 아닌 일로 마이너스의 경제를 안는 삶을 만나서는 안 될 것이기에 말이다. 피부로 닿지 않는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이 사라진 건 아니다. 더 현명하고 (그나마) 안정적인 돈 관리를 위해, 누군가 휘두르는 경제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한번은 만나 봐도 좋을 경제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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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8-31 0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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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책에 그대로 담겼다. 이 책은 오직 그 시 한 편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시 구절 그대로를 그림으로 옮겨놓아, 그림으로 읽는 시라고 말해도 좋겠다. 가을밤, 누군가의 낭랑한 목소리로 들으며 봐도 좋을 조합이다. 특히 시 구절이 뭔가 함축적인 내용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해석하려고 머리카락 쥐어뜯는 어려움을 품지 않은 듯한 느낌이, 이 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한다. 얼핏 우리네 인생의 한 줄기 흐름을 그대로 담아낸 것 같아서 더 애틋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계절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사 안팎으로 들려오는 아픈 소식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때 만난 이 시가 때로는 더 서늘하고 시리게 다가온다. 괜한 마음에 울컥해지기도 하면서...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참죽나무를 가지치기할 때 전해지는 떨림이 있다고 한다. 그 떨림을 지켜보는 시선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한, 흔들리지 않고 버티려고 애쓰는 듯한, 그대로 중심 잡고 서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느낌. 때가 되면 잘라내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사의 한 부분일 텐데, 매번 그걸 지켜보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런데도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는 게 우리의 의무이자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빈자리를 채워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면서 잘라내어진, 비워진 자리를 흔들리면서 채우려 애쓰는 것만 같다. 그림으로 그리자면 구멍 뚫린 자리에 흔들리는 나뭇잎 색깔로 칠하는 것 같은. 붓을 들고 칠할 수 없었으니 바람에 흔들리면서 눈앞에서 가득 채운 느낌으로 끌어주려는 것도 같다. 그 빈자리가 보이지 않게, 애써 흔들리고 있지만, 더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그렇게라도 흔들리면서 뿌리 내리듯 중심 내리려는 몸부림처럼. 마치 우리 사는 일이 그렇지 않으냐는 듯 동의를 구하며, 삶을 그렇게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고. 매번 절박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렇게 붙잡고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듯이 삶을 표현한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흔들고, 때로는 비가 내려 흠뻑 적시면서 괴롭혀도,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일에 절망해도,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이런 흔들림 정도야 건너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처럼. 그러니 또 한번 살아내어 보자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어쩌다가, 시인은 참죽나무의 생에 우리의 생을 덧입혀 보았을까. 흔들리는 가지에서 뿌리까지 어떻게 시선을 내렸을까. 아마도 사는 동안 지켜낸 자기의 시간을 돌아보는 순간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커다란 나뭇가지 아래의 그늘도, 힘들다면서 한숨을 내쉬는 일도, 크고 작게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일도 모두,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고.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흔들리고 잘라내고 다시 채우면서 뿌리를 더 굵게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처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만 같다. 마치 '인생이란 건 좀 흔들려야 제맛'이라는 것처럼. (사실은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을 바라는 게 우리의 진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상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일까. 얇은 외투를 꺼낸 게 며칠 전인데 이제 다시 두툼한 겉옷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인생이 그렇다고 말하는 시의 구절 때문일까. 누군가의 읊조림이나 일기장의 몇 문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어가고 있는데, 괜한 마음에 순간 울컥해지고는 했다. 첫 페이지를 열면서 보이는 서늘함과 어두컴컴함 때문이었는지, 시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 장의 그림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계절에 떠올리는 사람 사는 모양의 긴 흐름이 너무 추워 보였다. 매번 흔들려야만 지탱할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거부하고 싶기도 하건만, 야속하게도 그렇게 흔들리면서 버티는 게 우리 삶의 표본처럼, 당연한 받아들임처럼 보여서 속이 상했다. 그러지 말라고 거부한다고 해서 안 그렇게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시인도 그렇게 말했겠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처럼, 마치 그것 말고 더 이상의 최선은 없는 것처럼.

 

 

경의선 책거리 낭독회 행사로 먼저 소식을 접했던 시그림책이다. 직접 가보지 못해서 그 낭독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접했지만, 가을밤과 너무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을 듯하다. 시인 함민복과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 한성옥의 콜라보가 이 계절에 만나는 시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시리즈의 시작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시의 구절과 지금 이 계절과 시인과 그림이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시를 어렵지 않게, 즐겁고 재밌게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시그림책 시리즈'의 좋은 시 한 편과 시를 품은 그림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시를 기다린다.

 

 

 

흔들린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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