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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어긋난 짝사랑 (총2권/완결)
얍스 / 동아 / 2017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흠... 읽다가 보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아서 공감하기 힘든 소설이었다.

왜 그 정도의 험한 말과 집착이어야만 사랑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끌려가기만 하는 듯한 여자 주인공과

당연하게 끌려오기를 바라는 남자 주인공의 케미가 어울리기는 하지만 (당연하지, 끌려가고 끌어오는 건데...)

그 이상의 것을 남겨두는 건 어려운 소설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린 나이에 그런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여전히 그런(?) 종속관계 같은 흐름도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들이었다.

 

기억에 남겨두기 어려운 작품이었다는 개인적인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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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 - 탐욕이 부른 국가 이기주의와 불신의 시대
스티븐 D. 킹 지음, 곽동훈 옮김 / 비즈니스맵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세계화'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초록창에 물어보니 이런 지식백과 결과가 나온다. '세계 여러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교류가 많아지는 현상'이라고 말이다. 말로는 교류이지만, 점점 그 교류라는 의미로 참여의 강요가 많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너도나도 함께'라는 외침은 점점 희미해지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세계화라는 게 어떻게 보면 연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같이 나아가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게 모든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얼마나 자세히 알 수 있을까 싶은 노파심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세계화의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긴 장점들이 더는 좋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느낌이다. 세계화의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결과다. 물론, 지금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볼 계기가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이 책에서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이슈가 될 만하다.

 

저자가 전하는 가장 큰 외침은, 다가올(어쩌면 이미 다가왔는지도 모를) 탈 세계화의 시대를 대비하라는 거다. 한때는 우리를 구원해줄 거로 생각했던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게 나라의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관계가 점점 흐트러지고 있다. 붕괴에 가깝게 각자의 노선을 주도하기 시작한 거다. 트럼프 때문에 더 이슈가 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 탈 세계화다. 세계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했던 미국이 먼저 세계화 곳곳에서 발을 빼는 모습은 그 변화를 증명하는 셈이다. 저자 역시 이 부분의 경고를 더 크게 말한다. 현재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더 강한 탈 세계화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거다. 미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가 추구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일 테니, 그것이 목적이 된다면 탈 세계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의 세계화의 모습은 점점 더 변할 것이고, 각국의 이익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찾아야 할 것들을 각국이 모여 논의해야 한다는 방법도 언급한다.

 

세계화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제시함으로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지게 하면서,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도 하는 책이다. 그동안 세계화가 끌어온 발전이 무엇인지, 세계화의 폐해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세계화를 이루면서 부의 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등등. 무엇이 세계화의 정당화를 뒷받침하면서 흘러왔는지 다시 살펴보게 한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해온 우리가 오늘날의 그 '함께'가 붕괴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방안을 살펴야 하는지 묻기도 한다. 선진국이 앞장서서 이뤄낸 세계화는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도모를 위한 최선으로 여겨왔고, 선진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개도국이나 신흥국가들의 몸부림이 효과를 얻어내고자 하는 목적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국제기구에 가입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1980년 이후로 변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고, 각국이 더는 자국의 이익에 관해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손해 보는 장사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세계'라는 큰 시장이나 타국과의 관계가 아닌 자국의 모든 것이 1순위가 되어간다. 그래서 확인하게 되는 게, 많은 국제기구를 탈퇴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시행한 일들이나, 영국의 브렉시트,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는 것들이 탈 세계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 경제가 더욱더 통합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관리하는 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한동안은 보이지 않는 손의 놀라운 힘으로 시스템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계 금융 위기가 시작되면서 그런 견해는 확실히 잘못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자기 관리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 각국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때때로 워싱턴에 있는 다양한 기구들의 간섭을 받는 - 기존 체제는 점점 더 통합되어 가는 세계 경제에 맞지 않는지도 모른다. 세계화의 문제에 있어 우리는 진짜 갈림길에 도달한 것이다. (115페이지)

 

저자가 언급한 대부분 상황들이나 세계화의 붕괴의 원인은, 현재의 세계적인 사건들과 각국의 여러 가지 정책들을 말하고 있지만, 거의 한가지로 귀결되는 듯하다. 자국의 이익이 세계화의 이익과 맞지 않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같이 나아가자고 하지만 자기에게 이익이 없으면 더는 함께 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하나둘, 쌓이다 보면 결국 발을 빼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서서히 세계화의 종말에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을 하다 보면, 그동안 못 본 척하며 세계화에 발맞추려 했던 자국이 놓친 이익이 자꾸 수면 위로 떠 오르기도 하기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며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찾아야 한다. 탈 세계화에 살아남기 위한 각국의 방안과 전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보면서 준비해야만 한다. 세계 질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결국 언젠가 그 무너짐을 볼 때를 대비하는 최선을 방법을 말이다.

 

21세기의 세 가지 도전 과제 - 즉 이민, 테크놀로지, 돈 - 는 세계화가 점점 더 파괴적인 힘의 압력 아래에 놓일 거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전통적인 경제적 거사를 정치적 서사가 지배할 것이며, 브레튼우즈 정신은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의심만 남을 것이다. 국민 국가들은 점점 더 서로 협조하기 어려워지고, 최소한 경제 영역의 갈등은 더욱 잦아질 것이다. (259페이지)

 

국제정세가 변화하는 원인을 찾아가면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국제사회가 재편되어야 하는 방향을 보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탈 세계화의 경고로 시작되어, 현재 상황이 오기까지의 국제 정세의 변화와 흐름을 설명한다. 그 결과로 현재의 국제 정세가 보여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 판단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방법의 모색이란 어려운 숙제까지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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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잃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남아있는 게 없는데도 살아가야 하는 게 또 우리 인간들이라, 그래서 살아갈 이유를 다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럼 어디로 가서 그 사랑을, 이유를 찾아야 하나? 그 사랑을 되찾는 길은 누가 알려줄 수 있나? 생각하면 할수록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 길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얀 마텔의 이 소설 『포르투갈의 산』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길을 떠나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들이 한곳에 모여 상실을 견디는 순간을 그린다.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순간이기도 하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자세이기도 하다. 누구나, 언제나 다가올 수 있는 일을, 어차피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면 어떻게 잘 건너가야 하는지 묻는 순간이기도 하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이 서로 다른 등장인물을 배치함으로써 드러내고 싶은 이유도 비슷하다. 그렇게 걷다 보면 찾아지는 어떤 곳을 향해 가는 길, 각자가 간절히 바라는 믿음의 종착역-우리는 그곳을 각자의 유토피아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을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 우리가 돌아가야만 하는 곳을 이렇게 지켜보면서 구원의 순간을 그린다.

 

사랑은 방이 많은 집이다. 사랑을 먹이는 방, 사랑을 즐겁게 하는 방, 사랑을 씻기는 방, 사랑에게 옷을 입히는 방, 사랑을 쉬게 하는 방. 이 방들은 또한 웃음을 위한 방, 이야기를 듣는 방이거나 비밀을 털어놓는 방이거나 심통이 나는 방이거나 사과하는 방이거나 단란함을 위한 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새로 들어온 식구들을 위한 방들도 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제 그의 집은 어디에도 없고 ─ 알파마의 아파트는 수도사의 방처럼 을씨년스럽다 ─ 어느 집이든 발을 디디면 그의 집이 없다는 사실만 상기될 뿐이다. 애초에 율리시스 신부에게 끌린 것도 그 때문이라는 걸 토마스는 안다. 둘 다 집이 없다는 점 때문에. (35페이지)

 

1904년. 토마스는 고미술박물관에서 학예사 보조로 일한다. 운명이 그에게 이런 잔혹함을 줄 거로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그는 아들과 아내와 아버지를 잃는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그때 토마스는 기록보관소에서 한 신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17세기에 기록된 그 일기장으로 토마스는 신부가 남겨놓은 보물을 찾아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1939년. 에우제비우는 병리학자다. 그리고 두 명의 마리아.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는 둘이 같이 좋아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과 복음서를 이야기한다. 또 다른 마리아는 남편의 시신을 가방에 담아와 에우제비우에게 부검을 요청한다. 남편의 시신을 가방에 담아와 부검을 요구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데, 부검의 이유도 특이하다. 남편의 사망 이유가 아니라, 남편이 살아온 시간을 듣고 싶어 하는 거다.

 

1981년. 피터는 40여 년을 함께한 아내를 떠나보내고 상원의원으로 살아온 정치에도 환멸을 느낀다. 출장지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 침팬지 '오도'에게 끌리고 오도와 함께 살기로 한다. 자신을 옥죄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침팬지 오도와 함께 고향인 포르투갈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꾸린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3주 동안 - 아니 한평생일까? - 쉼 없이 움직였는데, 이제 할 일이 없다. 무수한 종속절과 수십 개의 형용사와 부사가 들어가고, 기발한 접속사들이 문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는 와중에 - 예기치 못한 막간의 촌극까지 끼어들고 - 하이픈 없는 명사들이 난무하는 장문이 마침내, 놀랍도록 고요한 마침표와 함께 끝이 난다. 한 시간쯤, 꼭대기 층 계단참에 나가 앉아서, 지치고 조금 긴장이 풀리고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그 마침표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 문장은 무엇을 가져오려나? (332페이지)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 남자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공통의 목적지를 찾아간다. 각자의 다른 이야기였지만, 결국에는 그곳에서 마주할 치유의 순간이 같은 거였다. 어찌 보면 그곳은 신비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는 슬픔과 고통, 분노를 털어내면서 마주하는 것은 예수의 여정을 이어가듯 그 끝에서 마주할 무언가로 우리는 슬픔을 정돈하는 시간을 만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존재들과 마주침이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고, 계속되는 대화로 우리가 가둬두었던 상실과 직면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신비의 장소처럼 보이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지정된다. 그것은 곧 사랑의 시작이자 사랑이 존재하는 '집'이라는 공간과 동의어가 되기도 하는데, 우리의 회복과 안정을 만들어주는 곳이라는 개념을 심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집을 잃은' 우리의 상실감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지만, '집으로' 가는 여정을 통해 새로운 시간을 겪으면서, 결국 '집'에 도착해 우리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인 것처럼... 그렇게 삶이 나아가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흐르는 이야기에 또 한 번의 기적 같은 순간을 목도한다.

 

분위기가 상당히 묘해서 마치 환상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전작 『파이 이야기』가 조금은 강한 느낌의 모험 같았다면, 이번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조금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여행 같은 느낌이다. 뭔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목적과 오늘의 슬픔과는 다른 내일의 빛을 보려는 노력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을 곧 확인하게 될 것 같다는 확신. 그렇게 우리는 잃은 사랑을 찾아가며, 남아 있는 삶을 향해가는 존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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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로 만나는 여성의 삶을 볼 때마다, 세상은 이렇게 발전되고 변해가는데 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변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 시선을 보내는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이 있겠지만, 내가 살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제 만난, 어떤 남자 어른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랬다. 겉으로는 '어디서 그런 고릿적 사고방식을 들이대느냐?' 라며 웃으면서 에둘러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왜 세상과 여자를 대하는 방식이 저렇게 자리 잡았을까 하는 의문뿐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보는 것보다, 인간과 여자를 구분하여 인지하는 경우를 겪으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로 그 시각을 좁혀야 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바뀔 방식들은 아니겠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확인하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 가는데 참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하다.

 

일곱 명의 작가가 뭉친 이 소설집은 그러한 변화의 시도에 한발 들여놓는 문을 열어준다. 이야기와 문장으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속내의 답답함을 풀어준다. 소설에서 만나는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추면서, 때로는 SF적인 분위기로 강한 여자의 이미지를 찾아내면서 고정관념처럼 박힌 여성의 존재를 새로 쓰려 애쓴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하면서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는 10년을 만난 남자친구에게 길들듯 살아온 여자의 깨달음이 인상적이다.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나눈다고 여겼던 대상이라고 믿었던 남자 친구의 태도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거다. 편지로 전하는 진심과 솔직함으로 잘 몰라서 끌려가는 게 옳다고 믿었던 시간을 끝낸다. 세상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눈을 뜨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이 여자가 지나간 10년보다 앞으로의 남은 시간이 더 빛날 거라는 걸 안다. 10년이란 수업료를 톡톡하게 치러냄으로써 인생이 더 단단해지고 자존감 있는 인간으로 살아낼 것이라는 걸.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38페이지 「현남 오빠에게」)

 

그리고 이어지는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와 김이설의 「경년(更年」에서는 '엄마'라는 자리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무시당하고 살았던 지난 시간의 고충을 딸에게 토로하고, 아들의 결혼을 두고 아들 가진 자의 당당함을 내세우려 하는 엄마의 모습. 또 아들의 성적인 문제에 관대한 남편과 주변의 말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선뜻 나서서 상대 여자아이들의 입장까지 파악하지 못하는 엄마의 불안함을 드러낸다. 본인들도 여자이면서, 여자로 살면서 당해온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시선과 태도를 견뎌왔으면서, 정작 그런 문제들에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으면 안으로 감싸 안는 자세를 취하는 게 옳은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들. 아들이니까 당연히, 남자라서 다행인 일들이라고 들어왔던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쏟아진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가 익숙하고 당연하게 보아왔던 가치관을 머릿속에 심어놓고 그대로 행하면서 사는 시간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공포가 찾아든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그가 말했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였을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들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 그가 '현명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51페이지 「당신의 평화」)

 

"세훈이가 아니라 세은이한테 벌어진 일이라면? 세은이가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남자애들이랑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면? 그때도 당신은 공부 잘하는 애가 그랬으니 괜찮다 할 거야?"

"어디 끔찍하게 세은이한테 갖다붙여! 여자랑 남자랑 같아?"

"다를 게 뭐 있어?"

"어깃장 부리지 마. 계집애가 무슨. 여자들은 태생저으로 그런 짓 안 해."

"세훈이랑 한 애들은?"

"그것들이 미친년이지. 세운이 때 남자애들은 여자라면 정신 못 차리니까 어떻게든 몸으로 꼬셔보려고. 그럼 내가 가마니 안 두지. 우리 애 공부 방해한 것들이면 가만두면 안 된다고. 싸가지 없는 년들. 어린것들이 발랑 까져서 밝히기나 하고."

싸가지 없이 밝힌 건 그 여자애들이 아니라 아들아이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아들아이가 그런 아이라고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97페이지 「경년(更年」)

 

조금은 다른 분위기로 여성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최정화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 손보미의 「이방인」,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과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 역시 다른 세상 속 여성을 보는 듯한 분위기다. 고정관념처럼 여겨지던 여성 직업의 다양성을 부각하고 여성 살해의 역사를 남자가 경험하게 하면서, 임신한 여성의 존재가 출산을 이루는 과정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존재를 따뜻함으로 언급한다. 앞서 나열된 소설들과는 다르게 마지막 소설이 주는 분위기는 사뭇 다른데, 이러한 배열은 이 소설집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흐름을 같이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편 가르기나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떠한 존재이든, 같이하면서 따뜻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싶었던 듯하다. 화성으로 보내져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로 다른 역할의 존재들이었지만, 한 생명의 탄생을 함께 하면서 같은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로 인식하면 되는 일로...

 

나는 이 모든 풍경에, 익숙한 이미지와 친구들로 이루어진 내 둥지에 와락 안심이 된다. 그러자 너로 인해 발생한 나의 말, 다정한 말을 아이에게 건네고 싶어진다.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들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271페이지 「화성의 아이」)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여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내가 아는 게 많지 않고,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기에는 나의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서 보게 되는 차별과 이해 못 할 태도들에 관해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서 들리는 말이 불편하다고 여길 때 더 자주 말한다. 엄마나 주변의 다른 연장자들(이들 대부분은 남자인 경우가 많았다)이 하는 말에, '지금 하는 말이 옳지 않으며, 당신의 아내와 딸이 살아갈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다르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면서 말이다.

 

이 소설집이 전하는 게, 단순하게 가부장제를 비난하고, 차별받으며 살아온 여자의 시간이 결혼으로 더 많은 차별을 유발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두려워서 주저앉았던 순간들을 변화시키면서, 이야기의 중심에 나 자신이 설 수 있는 인생을 만들 여성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다양한 소재로 현실과 미래를 넘나들며 인간다운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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