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고침 위픽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마다 생각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그거 말고 지금 못마땅한 생을 원하는 대로 바꿀 방법을 모르겠다. 원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다 보면 달라지겠지, 기회를 잡으려고 애써봐야지,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용기를 갖게 하고 희망을 기다리는 말을 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사실 최선의 노력과 기다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거 다 해봤는데, 정말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건 어디에,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운명이 있다는 걸, 이 순간에 믿게 된다. 세상이 그렇더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스무 살 이태이의 삶에 문제가 생겼다. 아니, 문제는 이태이가 태어난 순간 붙박이처럼 몸에 붙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두에서 태어난 이태이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로 성장했다. 구경도 해본 적 없는 빚이 그녀의 하루를 옭아매는 일상을 버티는 중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인생.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대로라면 세상 구경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로 어딘가로 팔려 갈 것 같다. 그때 눈앞에 버튼 하나가 보였다. ‘새로고침어떤 인생으로 만들어줄지 궁금하면서도, 그걸 고민한 겨를이 없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테니까. 눌렀다.



인생을 새로고침 하고 싶나요?

지금 바로! 이 세상 아! ! ! 의 삶과

자신의 삶을 바꿀 의향이 있다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 (13페이지)


누구라도 누르지 않았을까? 눈앞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뭐라도 누르고 볼 일이다. 지금 위기를 넘길 수만 있다면, 지금 생이 끝난다고 해도 하나도 아쉬운 것 없는 시간을 살아왔는데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아쉬운 것 없는 인생이라면 말이다. 그렇게 누른 새로고침버튼이 이태이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재밌는 건, 이태이뿐만 아니라 그 시각, 각각 다른 장소에서 새로고침버튼을 누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다.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던 유은희, 불법에 눈감아주던 부패 형사 표진노. 운명의 버튼을 누른 이들이 맞이하게 된 또 다른 운명. 이태이는 낯선 남자의 몸속에 들어와 살인 용의자가 되어 있었고, 유은희는 남편 표진노의 몸으로 깨어났다. 부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용의자를 쫓던 형사들로부터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유은희는 이태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한다.


몸이 바뀌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두 사람, 이태이와 유은희. 태어났으니까 살아왔다. 환경이 이랬으니까 하루하루 버티는 거 말고는 인생의 목표도 없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싶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뭔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더라도 그 방법을 몰라서 금방 또 잊으면서 살아왔을지도.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는 게 운명이라고 받아들였고, 한 번만 일어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여자의 몸은 침대에 묶어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이렇게 살다가 죽겠구나.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살아갔겠지. 그런데 뜬금없이 새로고침이라니. 이거 뭐, 진짜 뭐가, , 바뀌려나?


바뀌었으면 좋겠다, 제발. 반으로 쪼개진 젓가락 하나의 틈만큼이라도 길이 벌어졌으면, 그렇게 작은 틈 하나가 점점 더 인생의 다른 궤적을 그리며 뻗어가기를. 그래야 이 소설이 의미 있을 것 같다. 인생의 최악을 경험한 이들의 앞날이 새로고침버튼을 누르기 전과 같다면, 그러면 안 되잖아.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각자 바라는 인생을 향해 가는 길을 열어준다면, 아니, 내가 바라는 인생이 무엇인지 그것만이라도 찾게 된다면 오늘의 삶이 꽉 찰 것 같은데.


이 소설 속에서 내가 상상한 새로고침버튼의 효과는, 새로 태어난 삶이었다. 이번 생은 완전히 끝나버리고, 다음 생이 새롭게 시작하면서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지난 생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거. 그게 아니라면 새로고쳐지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태이의 스무 해 생을 듣고 있자면, 애써 버리고 싶은 삶이었으니까. 일부러라도 지우고 싶은 시간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주인공들이 누른 새로고침버튼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랜덤으로 누군가와 인생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 그렇구나. 그럼 나는 누구의 인생으로 바뀌고 싶은 건가 잠깐 생각해봤는데, 또 잘못 읽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누군가의 인생과 바꾸고 싶은지 아닌지였지, 그 대상을 지정할 수 없는 거였다. 말 그대로 아무나, 랜덤. 하아. 그래도 눌러야겠지?


나의 예상과 다른 전개였지만, 싫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타인의 삶을 경험함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의 생이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보면서 겪는 온갖 감정과 생각들이 오늘의 나를 어떻게 변화하게 해줄지 기대되기도 해서다. 나의 오늘이 그랬다. 뭔가 불안함이 스멀스멀. 낌새는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데, 결국 듣고야 말았다. , 금방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모른 척할 일도 아니었을 뿐 나의 선택지는 없었다. 오후 내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었는데, 빚쟁이에 쫓겨 팔려 갈 운명의 스무 살 청춘도, 억울하고 분해도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네. 시간은 흐를 거고, 이 상황도 이대로 머물러 있지만은 않겠지 싶은 바람만이 남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상황은 새로고침 되어 또 흘러가고 있을 테니까. .



#새로고침 #김효인 #위즈덤하우스 #위픽 #소설 #한국소설 #문학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봄이 오고 있나 보다. 제법 포근하다고 여겼던 2월에 갑자기 눈이 내리던 날, 아직 봄이 멀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 종일 내린 비로 이제 겨울이 끝난 것 같다. 어제보다 기온은 살짝 내려갔지만, 그냥 딱 요즘 느꼈던 봄의 기운이 흐린 날인 오늘 더 느껴지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어차피 찾아올 봄이라면, 좀 즐겁게 가볍게 웃으면서 맞이하고 싶어서. 그래서, 어제는 햇살이 좋아서 나갔다. 어디서든 햇살을 등에 받으며 앉아 있고 싶었다. 알라딘 보관함을 뒤져서 책도 샀고, 도서관에 신청한 책도 찾으러 갔다. 집 근처 새로 생긴 카페에도 갔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수다도 떨었다. 웃긴 건, 그렇게 책도 사고 책도 빌려오고 했는데, 올해 초와는 다른 이유로 책을 못 읽었다는 거다.


새해가 시작하면서 바빴던 일은 조금 정리되는 듯했는데, 지금은 다른 것에 빠져있느라 책이 손에서 멀어진다. 봄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드라마를 정주행하느라 말이다. 드라마 <봄밤>이 좋아서, 정해인 배우가 인생 캐릭터를 만났구나 싶어서, 현실을 살아내는 시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처음 방영 당시에는 미처 닿지 못했던 감정들이 다시 볼 때마다 하나씩 튀어나온다.











습관처럼, 익숙하니까 이어오던 연애의 마무리는 꼭 결혼이어야 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10년을 만나고도 헤어지는 친구 커플을 보고,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해서 이어가는 마음을 잘 알지 못해서 그들을 이해하는 걸 멈췄었는데, 드라마 <봄밤> 속 정인(한지민)과 기석(김준한)4년의 결말을 보면서, 그 익숙함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이해하게 됐다. 앞으로 이들의 만남은 또 어떤 방향을 향할지 궁금증이 생길 무렵, 정인은 다른 사람과 우리가 시작된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는데, 정인이 자신의 변한 마음을 진즉에 인정하고 기석과 헤어졌다면, 그 후에 지호(정해인)을 만났다면 그 타이밍은 자연스러웠을까. 헤어지자는 정인의 말에 기석 또한 깔끔한 대답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는 하는데, 이들의 갈등은 오히려 다른 방향에서 방점이 찍힌 것 같다. 연인의 헤어지자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가 연인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되었기 때문에. 농락당한 기분? 그래서 기석은 그의 말처럼 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한풀이정도는 해야 이 배신감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미혼부로 살면서 부모의 책임을 다하려는 남자에게 찾아온 낯선 감정, 그의 표현대로라면 다시 없을 줄 알았던 감정에 취해애인이 있는 여자를 바라보게 되는 일이, 이성과 반대로 움직이는 마음 때문에 힘든 상황이 내내 시선을 붙잡는다. 같이 일하는 선배가 우리 지호는 꽃길만 걸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 애틋함이 그대로 느껴져서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사회의 시선이 어땠을지 상상이 돼서 말이다. 그런 남자가 다시 없을 줄 알았던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또 어땠을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응원하면서 보게 되는 커플이었다. 이미 사랑이 아닌데도 사랑인 척하면서 만나왔던 대상을 정리하는 여자도 힘들었을 거고, 자신의 상황을 알면서도 사랑 하나만 보고 쫓아오는 여자를 놓을 수도 없고 지켜내고 싶은 남자의 견딤도 그대로 보인다. 재인(주민경, 이정인의 동생)의 말처럼, ‘사랑을 어떻게 막니?’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든 튀어나오는 것처럼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다. 특히 봄에 더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지난 주말,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남편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해줬더니 싫다고 하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회만 같이 보자고 했다. 정해인 배우의 인생 캐릭터라고, 같이 공감 한 번만 해달라면서 딱 한 번을 강조했다. 무슨 고문당하는 것처럼 옆에 앉아서 1회를 보더니, 이틀 동안 정주행하더라. 다 보고 난 후 남편의 그 표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굉장히 복잡한 듯한, 괜히 안심하는 듯한, 복잡하게 얽힌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운 듯한. 나 역시 이 드라마를 보고 두 사람의 사랑도 그렇지만, 한 번씩 툭 치고 들어오는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에 무너져내리곤 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서로가 우리가 되어 살아가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연인, 가족, 친구로 맺어지는 관계들, 나누는 마음들, 지켜내야 할 책임들. , 그런 여러 가지. 말랑말랑하고 설레면서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가, 보면서 무거워졌고, 뭔가 분명하게 정해진 삶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삶의 변수들을 어떻게 맞고 고민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지 보게 한다.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온 감정들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좋았던 드라마.


뒤늦게 OST를 사려다가 절판 소식에 절망, 중고로 사야겠다 마음먹고 뒤져보니 후덜덜한 중고 가격에 또 한번 놀라고, 대본집을 보고 싶어서 찾아보니 역시 절판, 대본집도 중고 가격이 정상 가격을 뛰어넘는구나 싶어서 아쉽네. 어쩔 수 없이 음반 대신 휴대폰에 음악을 담고, 도서관에 딱 한 세트 비치된 대본집을 찾아봤다. 대본집 읽다 보니, 저절로 소환되는 책이 한 권 있는데,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이다. 소설의 흐름이, 상황이 긴장되면서 막 심장이 뛰잖아. 마치, 처음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사실 이 책은 몇 번을 읽고 다시 읽을 일 없을 것 같아서 중고로 팔았다가, 다시 샀다. 애매하더라도 마음에 있는 책은 정리하면 안 된다는 걸 이때 알았지. 생각난 김에 엊그제 만난 지인에게도 선물했다. 원래 책 선물 잘 안 하는데, 그 지인은 책도 안 읽는 사람인데, 얼마 전에 약속 장소를 도서관으로 정했다가(나를 데리러 오는 상황이라), 어쩌다 보니 같이 도서관 서가를 돌게 됐다. 내가 메모해 간 책을 찾고 있는데, 뜬금없이 자기도 한 권 추천해 달라고 하더라. , 나는 이 말이, 책 추천이 정말 무서운데, 고민 끝에 무난하게 페이지가 넘어가겠구나 싶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골라줬다. 안 읽고 시간만 보내다가 반납할 줄 알았는데, 거의 2주 넘게 가지고 다니면서 끝까지 읽어내더라. 이런 책이라면 자기도 책을 계속 읽을 수 있겠다면서. 그 말이 생각나서 고민 살짝 하고 선물했지.


계절을 느끼고, 감정을 터트리게 하는 노래, 드라마, 영화, . 천천히 떠올려 보면 참 많지만, 그때마다 다 다시 만날 수는 없지만, 한 번씩 눈 마주치고 지나가고 싶어지는 계절이 봄이 아닐까. 작년에 책장 정리하면서 오래전에 즐겼던 로맨스 소설도 다 정리해서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지금 이런 기분에 책장에서 꺼낼 만한 책이 거의 없는데,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역시 명불허전인가 싶기도 하다. 스테디셀러로 남은 두 책이 아직 내 책장에도 있다는 거. ^^










#봄밤 #새벽세시바람이부나요 #사서함110호의우편물 #로맨스 #드라마

#설렘 #봄 #봄바람 #벚꽃 #사랑



여담이지만, 최근에 본 영화 <만약에 우리> 역시 너무 좋았는데, 보는 내내 후회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라서, 이 영화는 설레는, 뭔가 시작하고 싶은 간질간질한 봄이 아니라, 서늘해지는 계절에 만나면 더 어울릴 듯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6-03-06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드라마 봄밤 좋게 봤답니다 레이첼 야마가타의 노래도 좋죠 오랜만에 들어야겠어요 3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구단씨 2026-03-06 22:01   좋아요 1 | URL
정말, 미치게 좋아하는 드라마에요. ^^
거기에 노래까지 진짜... ㅠㅠ
당분간 이 드라마와 노래에 좀 더 빠져서 지내보려고요.
며칠 쌀쌀할 것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고, 봄의 시작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

서곡 2026-03-06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이 드라마부터 보고 그 다음에 밥잘사주는예쁜누나도 보게 되었죠 밥누나도 재미있지만 봄밤 참 먹먹하고 애틋한 드라마입니다
 
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위픽
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0세와 66. 살면서 두 번의 생애전환기를 맞이하는 법이 있다. 첫 번째 생애전환기에는 이대로 평생을 태어난 그대로, 타고난 조건을 유지한 채로 살다 죽을 것인지 아니면 전환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리고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충분한 준비와 숙고를 거친 끝에 두 번째 생애전환기에 최종 선택한 형태의 삶으로 전환하게 된다. 승혜도 40세에 생애 전환 여부만 결정하고, 66세에 결정된 형태로 살아가야 한다.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생애 전환에서 선택해야 할 문제였다. 승혜는 자갈이 되고 싶었고, 3지망까지 쓸 수 있었지만 더 적어내지 않았다. 자갈이 될 터였으니까. 하지만 사는 동안 승혜가 사회에 보탬이 된 것보다 사회가 승혜에게 도움을 준 게 더 많았다면서, 승혜는 사회에 갚아야 할 빚이 생겼다. 빚이 없어야 자연 상태의 무생물로 전환할 수 있었기에, 승혜는 남은 시간 동안 살면서 그 빚을 갚아야 그렇게 되고 싶은 자갈이 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 빚을 갚는데 쓸모를 다해야 했다. 그렇구나.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도움을, 지원을 받은 게 있다면 그게 다 빚이었구나.


승혜가 자갈이 되지 못한, 유보된 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갑자기 무서웠다. 소설 속 단순한 설정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게 이상하게도 공포심으로 다가오더라. 우리나라의 국가건강검진 제도에서 이와 비슷하게 생애전환기 연령별 맞춤 혜택이 있다. 보통 40, 50, 56세 등 그 나이대에 점검하고 관리해야 할 몸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인 듯하다. 그냥 내 몸이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 아직은 괜찮구나,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 이 정도로만 여겼는데, 소설 속에서 승혜에게 닥친 생애전환기 결정 여부는 단순히 관리 차원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바뀌는 결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다. 거기에, 승혜가 그냥 무생물, 자갈이 되고 싶다는데도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보니, 살면서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나도 궁금해졌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사회에 진 빚은 얼마나 될까.


바람처럼 바로 자갈이 되지 못한 승혜의 생이 머물게 된 곳은 타자기. 오래된 타자기로 살아가는 승혜는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빈티지 숍의 인기 상품처럼, 진열된 상태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역할로 머문다.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타자기를 쳐보는, 미처 다하지 못한 얘기를 쏟아내는 소리로, 그러다 기어코 활자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태에 이르자 타자기의 생애도 끝나가는 듯하다. 빚을 갚지 못해 유보된 생으로 타자기가 되었건만, 그마저도 쓸모를 다하지 못하자 어느 바닷가에 버려진 신세가 된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씩, 점점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는 타자기의 운명이 바닷가에서 쓰레기로 끝나게 될지 어떨지. 누군가의 손에 들어 올려져 따라간다고 해도, 바닷가 모래밭에 그대로 파묻히게 된다고 해도, 이상하게 서글퍼진다. 그 쓸모를 다한 모든 것의 운명처럼 보여서 말이다.


몸은 늙어가고, 기억도 잃어갈 것이다. 낡아지는 몸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게 없는 생이라고 여긴 승혜였지만, 생의 끝을 향해가는 순간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사과일 수도 있는, 마음 쓰이는 일. 기억하고 싶은 게 없다면서도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뭐란 말인가. 오래전 인연이 끊긴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할 마음을 적어가면서, 완전하지 못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상황이, 그저 아리기만 했다. 이번 생이 미련 없어서, 다른 무엇으로 다시 살아간다는 간절함도 없는 줄 알았는데, 생이 끝나가는 순간에 비로소 찍히는 온점, 마침표 하나가 모든 생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 인간은 쓸모로 분류되어야 하는가. 저절로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불안함은 당연한데, 그 불안함을 위로하는 사람조차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쓸모를 걱정한다. 엄마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기도 하고, 나 역시 이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겪는 감정적 사회적 문제를 마주한 것만 같다.



#찰스부코스키타자기 #박지영 #위픽 #위즈덤하우스 #소설 #문학

#이책의여운을표현할방법이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요양병원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봐야 할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보내드릴 준비를 하라고. 멀리에 사는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그 주 주말에 다 모여서 아버지를 보러 갔다. 그리고 이틀 후 새벽,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시 가족들이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에, 이제 나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계시던 요양병원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었고, 미리 한번 상담받아본 터라 고인을 요양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절차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확인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바로 화장 예약하고, 장례식장의 어떤 크기의 방을, 얼마짜리 꽃으로 장식할 것인지, 음식은 몇 인분을 시작으로 할 것인지, 나무젓가락 하나까지 다 선택해야 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관, 수의 가격까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한 사람을 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돈이었다. 정확하게는 얼마짜리 품목으로 이 사람을 보내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만 원짜리 관보다 천 원짜리 관을 선택하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혼자 민망하기도 했다. 바로 화장할 건데 수의를 어느 가격대로 골라야 하는지 어려웠다. 음식 도우미는 우리 자매들이 해도 되는데 꼭 장례식장을 통해 고용해야 한다고, 하루면 충분한 인력을 3일로 계산해 줘야 한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꽃장식을 해야 손님들이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일이 앞섰다. 웃음이 났다. 장례를 치르는데 이런 게 걱정할 일이었구나 싶어서.


그동안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문객으로 드나들었던 장례식장의 현실을, 실제로 내가 상주가 되어 장례식을 경험하고 보니 이런 생각만 남더라. 이렇게 장례식을 치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법적으로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일이므로 고민할 게 없다. 문제는 장례식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었다. 다행인지, 우리가 이용한 장례식장에서는 외부 반입할 수 있는 품목이 있어서 미리 확인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필요 없는데도 장례식장 안에서 우리가 필수로 이용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음식 도우미, 기본적으로 주문해야 할 음식의 양부터 자잘한 용품들까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시간이 아니라 날짜로 계산되는 대실료였다. 48시간도 안 되는데 꼬박 3일의 비용을 내야 하는 방식도 아까웠다.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장례식의 씁쓸한 현실로 남았다는 것. 흔히 상술이라고 하는 게 여기서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고인을 잘 보내드리는 일이 꼭 이런 방식이어야만 하는 걸까?


슬기로운 장례문화라는 제목을 보고 궁금했던 건, 요즘에 관심 두던 무빈소 장례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경험한 장례문화가 의미 없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또 언젠가는 나의 엄마,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을 보내는 일에 상주가 되어 참여해야 하기에 기존 장례문화가 남긴 장점, 최근 도시화, 핵가족화 등으로 변화하는 장례문화를 배우고 싶어서다. 이 책에서는 한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는 거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 연명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결정해두는 것도 좋다. 유언이나 임종 과정의 법적인 절차도 잘 설명되어 있다. 그 후에 이어지는 죽음의 선고까지. 혹시 사고사나 고인의 죽음에 의문이 생긴다면 부검을 의뢰해도 좋다. 이제 남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장례식이다.


동생이 상조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상조 서비스를 이용해도 되지만, 우리가 이용한 장례식장에서는 상조보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대부분 제공하고 있어서 굳이 상조보험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러 사건으로 상조 회사의 문제가 드러났다. 매달 일정하게 돈을 내면서 선불제 후불제 상조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 알았는데, 나도 상조 서비스는 무조건 선지급제인 줄 알았다. 후불제 상조 회사도 있다고 하니 이 부분은 확인해서 가입하는 게 좋겠다. 국내에서는 1982년 처음 전문 상조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그사이 수많은 상조회사가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가입자의 피해도 컸다. 이 책이 나온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러한 상조 회사의 문제도 있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고인을 보내주는 일에 절차를 잘 몰라서 우왕좌왕하기도 하는 이때, 이러한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술에만 집착하는 관련 업체들도 있기에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이 책의 출간 배경이라고 한다. 나 역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굳이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한번 경험하고 나니, 법적인 절차를 비롯한 장례식장에서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미리 확인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애써 화려하고 비싼 것만 좇는 장례식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좀 더 잘, 실속 있는 장례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장례식장에서 선택해야 할 품목이나 과정, 장례의 마지막 절차까지 쉽게 설명되어 있다. 일자별 장례 절차, 주변에 부고를 알리는 방식, 개인의 종교별 장례 절차, 안치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가족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장례비용 줄이는 방법으로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활용, 각 지자체의 지원도 있으니 해당하는 지역의 지자체 서비스를 미리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장례 후 답례 인사부터, 사망신고, 사망자의 재산조회와 상속에 관련된 부분도 이해하기 쉽게 말하고 있다. 사실 나도 경험해보니 고인이 떠난 후 이런 행정적인 절차가 어렵게 느껴졌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해당하는 가족의 확인 서류까지 챙겨야 해서 좀 번거로운 부분이 많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고인이 되기 전에 미리 확인하고 가족이 모여 이 부분을 의논하고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하는 게 가장 시간 절약도 되고 그나마 번거롭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유용했던 건, 부록에 담긴 화장 과정이었다. 전국의 화장시설, 전국 공설자연장지 현황, 지역별로 다르겠지만 화장장려금이 있는 곳도 있다. 각자 해당하는 지자체의 여러 가지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내가 관심 두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무빈소 장례다. 장례 기간을 꼭 3일 이상으로 할 필요가 없고, 조문객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덜어주고, 정말 이 죽음을 애도하는 최소한의 사람의 애도로 고인을 보내주는 일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간소하게 가족장 형태로 하거나, 아예 빈소가 없어도 되는 방식 말이다. 우연히 숏폼에서 보다가 관심이 생겨서 찾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빈소 장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결혼하는데 결혼식이 굳이 필요한가 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왔던 사람으로 기존의 장례식이 꼭 필요한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물론 결혼식을 생략하든 무빈소 장례를 하든 당사자의 결정이 우선이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받는 시간과 경제적인 문제는 장례식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기에 그 피로감을 경험해본 사람은 무빈소 장례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2년 간격으로, 새해가 시작되면서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2년 전에 떠난 사람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번에 떠난 사람은 반년 정도 병원에 있다가 떠났다. 갑작스럽든 미리 알고 있었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례 과정에서 또 한 번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 떠난 사람은 이혼 후 혼자 살았고, 가끔 친구들 만나면서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인생의 낙이었던 50대 중반의 남자였다. 하던 사업을 접고 일용직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병이 생겼다.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빈소에는 그의 부모, 형제들, 몇 명의 친구가 전부였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썰렁하다였다. 그 썰렁함을 뒤로 하고 장례식이 끝나고 정산하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보내는 방식이 꼭 이래야만 하는 건가 싶더라. 빈소를 차리지 않아도 일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4시간 이내에 화장이 불가하다고 알고 있으니 보통 2일 정도가 소요되는 장례에서, 빈소를 마련하면서 3일을 채워야 하는 게 맞는 건가.


며칠 전에는 엄마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면서, 엄마가 돌아가시면 무빈소 장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가족과 의논해야 하겠지만, 무빈소 장례를 하려는 이유가 엄마와의 이별이 하찮아서가 아니라고. 엄마가 바로 확답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남은 사람이 본인을 보내주는 방식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건 사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정도만 기일을 챙기자고 얘기했고, 지금은 명절이나 아버지가 생각나는 사람만 보러 간다. 누군가를 보내는,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방식이 남겨진 이들에게 부담된다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하고 비싼 것만 골라야 하는 게 고인을 보내는 방식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살아있는 동안 맛있는 거 같이 먹으면서 서로 얼굴 한 번 더 보며 안부 나누는 일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새해가 시작되고 두 달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몸은 바빴고, 마음은 더 바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최근에 손에 닿은 책이 대부분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이 들고 아프고, 예상하지 못한 사고도 생기고, 감정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도 잘 안되더라. 특히, 죽음에 관해서는 더 그랬다. 그래서 더 많이 고민하고 어느 정도 결정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을 보내는 방식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그보다는 그 방식에 어떤 마음을 담는 게 더 중요한지 간직해야겠다고 말이다.












#슬기로운장례문화 #죽은다음 #죽음에관하여 #죽음의책 #단계별장례준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트랑 2026-02-2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친의 명복을 빕니다....

yamoo 2026-02-2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선친의 명복을 빕니다..
 
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아무튼 시리즈 71
이애월 지음 / 제철소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큰언니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라디오를 접했다. 언니가 중학생이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친구들이 구구단 외우면서 산수(그때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였다) 숙제하고 있을 때, <두 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고, 어느 광고에 나오던 음악에 귀를 열었다. 마치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듯이, 친구들과 방과 후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게 심심한 일이라는 듯이, 라디오 이야기를 하면 TV 만화 프로그램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마치 아이들 같다는 듯이. 그때의 나는 아이였으니, 아이들의 세상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도, 그 아이들 틈에서 나만 혼자 훌쩍 커버린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그 후로도 여전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랐고, 집안의 고요함이 싫을 때도 TV보다는 라디오를 켜 놓는 습관은 여전하다. 지금은 그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훨씬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TV보다 라디오가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 한 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 책 속의 한 문장 같을 때가 있다. 라디오와 책, 느낌이 닮았다.

 

겨울밤라디오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게으름에 미뤄둔 책이지만, 이 추위에 제법 잘 어울려서 며칠 밤 계속 읽은 책이다. 며칠 동안 읽어야 할 정도로 두꺼운 책이 아니었건만, 지독한 감기에 두꺼운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식거리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건, 저자가 살아온 세월 속 라디오, 그 시절 속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아서다. 저자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찌감치 라디오를 접했고, 라디오를 좋아해서 겪은 에피소드에 안타까움과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때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낯설지 않아서 흠칫했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까지 묻어났다. ‘그땐 그랬지같은 느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싶은 아쉬움까지, 괜히 오늘의 추위에 우울한 기분까지 밀려와서 옆에서 누가 꾹 찌르기라도 했다면 눈물까지 날 뻔했다.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일해온 사람이 전하는 라디오 이야기의 힘이 이런 건가.

 

라디오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을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라디오 공개방송을 들으면서 울고 웃고, ‘워크맨’(요즘 세대는 이걸 알려나?)이 소중했던 시절을 건너와 방송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라디오 때문에 행복했는데, 라디오가 좋아서 방송작가 되어보니 라디오 때문에 절망했던 순간이 따라오더라.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건 부러웠는데, 그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보니 고통스러운 순간이 또 생기더라는. 이러면 안 되는데, 좋아하는 건 계속 좋아하는 채로 남아주어야 하는데, 꿈이 이루어졌는데 왜 절망이 따라오는 건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쩔 수 없는 이런 순간을 또 버텨내야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괜히 또 서글퍼진다. 그래도 좋았다. 주파수를 열어놓고 있을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누군가의 힘들다는 한마디에 위로를 담은 답 문자를 보내고, 그 문자 한 통에 또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기뻤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도 이런 안부를 묻는 게 가능하다는 건, 라디오가 가진 힘일 거다. 나 역시 그 힘을 나눠 받으며 살았으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제목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있다. 어느 광고에서 들려오던, 익숙한 음악에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는데도 불쑥 튀어나와 자꾸 맴도는 음악. 평소에 중독성 있는 음악이나, ‘훅송(Hook Song)’으로 불리는, 때로는 수능 금지곡이라는 위험한 이름이 붙여진 정도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귀벌레. ‘마치 귀에 음악 소리를 내는 벌레라도 들어온 것처럼, 그 벌레가 귀에서 나가지 않는 것처럼 특정한 노래나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현상을 두고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이름은 좀 징그럽지만,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게 이해되기도 한다. 일부러 듣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귀에 머물러서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게, 심지어 입으로 종일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음악에 붙여진 이름. 아이러니하게도 이 귀벌레가 부르지 않아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웃기긴 하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사연 사이에 들어오는 음악과 함께였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따라올 때도 있는가 보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단어를 알았다. 귀벌레 증후군이라니. 계속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데도 익숙하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요즘 나의 귀벌레 노래는 김필의 다시 사랑한다면이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소음이 심했던 병원의 대기실에서도, 책 속 문장에 시선이 머물러 있어도 귀에서는 이 노래가 자꾸 들려온다. 심지어는 며칠 푹 빠져 있었던 OTT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는데도 계속 들렸다. 이 정도면 좀 심한 거 아냐? 때가 되면 귓가에서 사라질 목소리겠지만, 들리는 동안에는 뭐,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고 있어 보지 뭐. 나중에 언젠가 이 노래가, 이 목소리가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라디오였다. 최근 경험했던 단순노동의 현장에서도 일정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가 계속 켜져 있었고, 어느 사연에 박장대소하다가 누군가의 슬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에 살아가는 게 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가 좋았고, 병원에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이어폰 속의 DJ 목소리가 반가웠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을 전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라고 했는데, 그 외로움을 즐기면서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라디오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 거기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외로움은 이 주파수에 맞춰 서로 통하고 있다는,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믿음에 힘을 실어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대놓고 말하지 못해서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을 때, 누가 내 얘기 좀 들어줬으면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나무숲이 라디오였다. 지금은 익명 게시판을 비롯해 여기저기 마음을 토해낼 공간이 많이 있지만, 그 시절의 우리에게 라디오는 마음상담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라디오 로맨스의 대표주자 같은 소설 속 로맨스는 현실에 없었다. 방송국이 배경이 된 드라마 속 로맨스도 없었다. 몰라서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전쟁통에도 사랑이 있다는 말처럼, 전쟁 같은 일터에서도 사랑을 있을 테니까, 좋아서 하는 일에도 절망은 따라오니 뭔가 설레는 일 하나쯤 같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 같은 게 아닐까. 살면서 때로 환상 같은 일도 생겨주면 좋잖아. 어쨌든, 나에게 라디오는 그 단어 자체로 포근해지고 정적인 분위기를 전하지만, 현실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그저 치열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낭만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다. 어렸을 적 뭣 모르고 두근거리기만 했던 라디오는, 어른의 세상에서 그 두근거림이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게 아쉽고, , 그렇다. 그래도 놓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우리 곁에 라디오를 남겨 둔다. 저자의 말처럼 영원히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보다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때론 어떤 존재와 온기로 생의 고독을 잊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더 좋아서 함께 하고 싶어진다. 지금처럼 울고 웃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그 틈틈이 외로울 것이고, 그때마다 슬쩍 그 외로움을 토해내고 싶어질 거다. 누군가 부담 없이 그 마음 들어주길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라디오가 되겠지...

 

 

 

#아무튼라디오 #이애월 #제철소 ##책추천 #문학 #에세이 #라디오 #아무튼시리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트랑 2026-01-2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했었는데, 마음을 흔드는 걸보니 글의 내력이 9단쯤 되시는군요...잘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6-02-03 20:48   좋아요 0 | URL
사실 지금은 라디오 듣는 시간이 훨씬 줄어서인지,
처음 라디오를 즐기며 푹 빠져있던 느낌을 그대로 느끼지는 못하는 듯해서 아쉬워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겨울밤에는 라디오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