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자카파 - 미니앨범 스틸(STILL)
어반자카파 (Urban Zakapa)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그 뮤지션을 잘 몰라도, 노래 한 곡 때문에 마치 그 뮤지션의 분위기를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요즘 어반자카파의 노래가 그렇게 들린다. 그들의 첫 앨범부터 집중해서 계속 들어오진 않았다. 그저 귀에 들릴 때마다 흘려듣곤 했던 게 전부다. 부담스럽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는 분위기가 좋아서, 이름이 특이해서 그냥, 그런 뮤지션이 있나 보다 했다. 일부러 찾아 듣진 않아도, 들려오는 대로 듣는 것도 그냥 괜찮은 것 같아서 기억했던 이름이다. 그런데 이번 노래는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다. 한 달 전부터 무한 반복으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단순한 가사 같았는데,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해서 멜로디만 귀에 담을 수가 없다. 어딘가 찔리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결국엔 슬퍼질 수밖에 없는...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 라는 말. 사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가 하는 이별 방식에 어느 정도의 포장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너에게 내가 부족해서, 부모님의 반대로, 지금은 사랑할 여유가 없어서, 다른 이가 생겨서... 온갖 이유를 갖다 대지만 결국 그 모든 이유의 기저에 존재하는 건, 그 진심은 단 한 문장일 뿐이다. 널 사랑하지 않아서 더 만날 수가 없는 것. 상대를 향했던 감각이 다 죽어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너의 모습에도 더는 아프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냐고.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 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다. 이별도 마찬가지. 상대를 향해 세웠던 온갖 촉이 무뎌지고 관심 없어지는 흐름을 무시하면서, 또 다른 기대로 시간을 보내는 거다. 이 위기가 넘어가지는 않을까, 남들도 다 그렇게 겪어내는 건지도 모른다는, 괜찮아질 거라는 바람으로 건너가는 시간.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때 이미 알아채고 있었던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너와 내가 더는 아무 이유 없이도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님을, 함께하면서 어색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이런 만남이 의미 없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 몇 줄로 거짓과 위선으로 대했던 이별의 방식을 불러왔다. 나쁜 역할을 하기 싫어 차라리 이별 통보를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일,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여 어쩔 수 없는 이별을 고함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일, 얼마 동안 연락을 끊은 채로 있다가 자연스러운 이별로 만들었던 일... 그냥 그게 전부일 뿐이라고, 널 사랑하지 않는 게 나의 진심일 뿐이라고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듣는 순간에는 아프겠지만, 어쩌면 가장 정확하고 솔직한 이별은 그런 말이 오가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그냥,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면 충분히 전달되었을 진심을 가린 채로 상대를 더 상처 입히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지독한 폭염에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여름에 겨울을 지내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강한 음색의 조현아, 부드러운 목소리 권순일, 좀 더 두꺼운 감각을 불러오는 박용인, 이 세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색깔이 너무 좋아서 듣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이들의 노래를 흘려듣던 것을 후회했다. 조금만 더 관심 두고 들어볼 것을...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만드는 데도 감각이 좋은 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것 같다. 이 시간 이후로 나는 이들의 다음 음반을 기다리는 마음을 품을 것 같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랜만에 노래에서 그 간절함을 경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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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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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서 - 방황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필수 심리 실용서 세상 안내서 1
김현철 지음 / 마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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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대부분 문제에서 용서와 화해가 당연하게 언급되는 걸까.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된다. 이미 상처받았는데, 그 상처가 지워지지 않을 건데, 왜 자꾸 그러는지... 시간이 흘렀으니까, 지나갔으니까, 상처를 준 이가 용서를 구했으니까, 하는 이유로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드는지 알 수 없다. 문학을 읽다 보면 대부분 그 화해로 마무리 되는 글이 많더라.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 특히 엄마가 즐겨 보는 아침, 저녁, 주말드라마도 그렇더라. 가슴을 후비고 도려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 말들과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사람들을 결국에는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면서 끝나는 드라마가 거의 다였다. 아마도 그 문학이나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그런 결말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길 염원해서일까. 그렇다 치자. 나 역시도 그런 바람이 있으니까. 다만, 그런 바람을 빌미로 그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얼마나 부담이 되고, 분노로 승화하는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거의 1년 정도를 상담 받았고, 그 기간 동안 담당 선생님이 한번 바뀐 것 말고는 동일한 내용의 진료였다. 처음 진료했던 선생님은 환자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었다. 네, 그렇군요. 네. 네, 잘하셨네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질문을 하는 것보다 환자에게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고 대부분의 진료 시간을 환자의 대답을 듣는 것으로 채웠다. 반면, 바뀐 선생님은 환자의 말을 들어주되, 잘 한 것은 잘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따끔하게 혼을 냈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건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어떤 진료방식이 좋은 것일까. 무조건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 아니면 환자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옳고 그른 방식을 인지하게 해주는 것? 결과만 말하자면 그 환자는 선생님이 바뀌고 나서 한두 번 더 진료를 받다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바뀐 선생님은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면서, 자꾸 자기에게 틀렸다고 한다면서, 짜증이 난다면서 병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처음 선생님한테는 자기 말을 아주 잘 들어준다면서, 말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다면서 별 투정을 부리지 않았는데 두 번째 선생님에게는 화를 내면서 병원에 안가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변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자신이 왜 진료를 받기 시작했는지를 잊고,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후 그 환자의 모습을 보면 병원 진료를 받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로 다들 자기만 싫어한다고 했다. 엉뚱한 공상이 정신을 갉아먹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환자는 그렇게 살면서, 늙어가고 있다.

 

오래 전에, TV를 통해 저자를 본 적이 있다. 기존에 봤던 전문의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맘에 들어서 이름을 기억했다. 라디오에 고정출연하는 방송도 들었다. 그동안에는 늘 ‘지나간다, 다 그런 거다, 이해해라, 참아라, 화해해라, 용서해라...’ 했던 말로 답을 전했던 문제들을, 저자는 직설적으로 말하곤 했다. 그게 이 책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저자의 사이가 같은 말이 그리워서 펼쳤다. 아닌 건 아니라고, 나를 아프게 한 사람과 싸워도 된다고, 내 안의 상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좋았던 글이다.

 

신경정신과. 흔히 정신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질병의 치료를 요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마음의 문제라고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 그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저자의 다른 작품보다 일부러 이 책을 먼저 읽어보고 싶어서 펼쳐들었던 이유다. 무조건 들어주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 속에서 적절한 충고를 하고 있을까.

 

내가 읽어본 바로는, 저자는 후자 쪽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현실 속 살아가는 모양에 맞게 충고한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을 처방전처럼 내놓는다. ‘명절의 본질은 ‘화목’이지 ‘만남’이 아니기에 안 내키면 안 가는 것이 상책.‘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말들 중의 하나다. 너희 집에 갔는데 우리 집에는 왜 안가냐고 싸우지 말고, 각자의 집안 경조사에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 단, 상대방에게 의사는 물어볼 수 있되 강요하지는 말라고. 가기 싫다는데 복화술처럼 입에 욕을 달고 몇 시간을 고생하면서 가지 말고, 가기 싫다는 사람에게 당연함 운운하면서 강요하면 안 된다고. 저자의 저 말은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행해지는 마음의 폭력을 방지하는 처방인지도 모른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의무감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가 어려울 때, ‘소귀에 경을 읽어줄 땐 소의 언어로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나만의 언어로 얘기하면 백번 천 번을 얘기해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다. 상대가 소라면 나도 소가 되어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이걸 모를까? 아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화를 내고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방식, 몰라서 제대로 인지하는 못하는 응대, 자칫 예의를 벗어난 일이 될까봐 주저하는 일. 그런 일들로 내 안의 감정은 분노를 쌓고, 용서가 어렵게 되고, 화해는 제스처를 하지도 못하게 되면서 마음의 병을 쌓아가는 일을 멈추게 하려고 한다. 마음을 숨기고 아닌 척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일들을 들추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게 하고, ‘싫으면 하지 마.’ 라고 말하는 듯한 한마디로 쿨한 해석을 내놓는다. 그렇다고 어린애 말장난 같은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내 안의 감정 쌓임으로 힘들어질, 숨어 있던 마음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시간과 관계가 아무리 혼자 발버둥 쳐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과 서로의 한계를 받아들’이라는 저자의 말은 우리 마음이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는 길임을 안내한다.

 

마음이나 세상이나

시간이 갈수록 꼬이지만

이 모두를 리셋 하는 건

이전의 그와 또 다른 그들의 희생이다. (본문 중에서)

 

읽다보면 특별한 것 없는 처방전 같다. 하지만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많은 감정들과 예의들로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감정의 문제, 곧 마음의 문제가 많은 정신적인 아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니까 저자가 단 한 문장, 혹은 몇 줄의 문장으로 상담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음이 주관하는 일, 그 안에 생기는 상처, 애도, 상처를 만드는 가족, 사회, 연애, 행복을 향하고자 하는 성공, 생존의 방식을 둘러싼 문제까지 여덟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은 맨 처음 제시했던 마음의 문제로 돌아간다. 마음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인 것이다. 헛된 망상 같은 것에 기대기에는 우리 사는 세상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 현실 속에서 부딪히면서 쌓여가는 마음의 병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면 더 없는 명의겠지만, 적어도 그게 아니라면 그 마음의 병을 조금은 덜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안의 마음이, 상처나 아픔이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하나의 문장이라는 게 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읽고 보니 충분하다. 그 한 문장에 모든 마음의 문제가 담겨 있고, 뜻밖의 해결이 함께 있다.

 

얼마 전에 진맥을 받을 적이 있다. 한약을 잘 먹지 않으니 진맥 받을 일도 없지만, 나는 진맥 받는 일 자체를 싫어한다. 진맥을 받다 보면 상대가 한의사가 아니라 점쟁이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육체적인 병도 짚어내지만, 결국 마음의 병을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그런 알아챔이 싫어서 진맥 받는 것도 싫어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다른 이를 따라가서 진맥을 받고 보니, 한의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겠더라. 그 사람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진맥이 끝나고 종이에 뭔가를 한참 적더니, 나에게는 한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신 마음의 분노를 먼저 뿜어내야 한다고 했다. 마음 속 분노를 터트려야 내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시기상으로 보면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내 안에 어떤 마음과 감정의 상처가 내재하고 있었는지를 내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다 같은 말이었다. 저자의 이 책을 읽고 보니 더 잘 알겠더라. 사람이 늙고 병들어 육신의 아픔을 가져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마음이 병들어 정신적인 아픔을 가져오는 것은 풀어내야할 숙제 같은 것이다. 그 숙제만 풀면 병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쉽지 않으니 그 병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런 책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겠지.

 

지금 부모와 화해한다 해서

과거에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진 않는다.

상처를 준 사람들은 과거의 그 사람들이지

늙고 기운 없는 현재 이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용서라 착각하며 행하는 대부분은 애도다. (본문 중에서)

 

가르치려만 드는 책보다 이런 글이 좋다. 예의상 하지 못했던 표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참아야 했던 일들이, 감정을 숨기느라 곪는 줄도 모르고 억눌렀던 마음을, 다 터트려도 될 것만 같다. 변해가는 시대에 변해가는 감정이 맞는 거다. 이런 처방전을 오래 전 사람들이 봤다면 예의에 어긋나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변해가는 치료의 모습도 인정하자. 이게 정답이 아니라, 이런 방법도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돌직구를 던지는 듯한 저자의 말투가 참 개운한 책이다.

 

이모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안 일로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잡아놨는데 차질이 생겼다. 여기 저기 전화해서 몇 가지를 미루고 다시 날짜를 잡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남겨진 사람은 현실을 산다. 죽어간다는데, 곧 숨이 끊어질 거라는데, 나는 이모부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이모부는 좋은 사람이 아니므로. 다만, 그 죽음에 슬퍼하며 손을 놓지 못하는 그 가족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모에게는 딸만 셋이다. 이모부는 이모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서, 아들을 낳아오겠다며 밖으로 돌았다. 자식들에게 어떤 아버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모에게 좋은 남편은 아이었던 듯하다. 딸들이 자라고 이모에게 잘하면서 이모 마음이 좀 편해지나 했더니, 몇 년 전 이모부는 병에 걸렸다. 한 달 병원비가 천만 원이 넘게 들고, 퇴원 후에도 계속 큰 금액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평소 하루 세끼를 모두 외식으로만 지낸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모든 돈을 딸들이 다 대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무시하던 딸들 덕분에 목숨 유지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지금 이모 마음이 궁금했다. 이모부와 살면서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모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을 보내는 마음이 어떨지... 이런 마음을 나도 곧 확인하게 될지 모르겠어서 더 무거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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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많은 말을 할 테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은 몇 가지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무식하다’는 표현인데, 내가 유식하지 않아서 사용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상대를 앞에 두고 말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혹시 모르겠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 말을 누군가에게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정말, 많이많이많이 반성...) 무식하다고 말하면 상대는 대뜸 ‘지금 내 가방끈이 짧다고 그러는 거냐?!’ 라며 화를 내는 것도 봤다. 그러니까 이 말은 보통, 학력이 짧다는 말로 들리기 쉬운 듯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무식은 절대 가방끈의 길이와 상관없다. 기본이라 불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되는 단어가 아닐까.

 

내가 사는 이곳 시립도서관은 4개의 분관이 있고, 몇 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시립도서관을 한 달에 한두 번쯤 이용하는 정도인데, 마침 집 근처에 노인 복지관과 함께 작은 도서관이 개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부터 하던 공사가 마무리되고 3월에 개관한다는 것이 미뤄져 결국 7월이 되니 개관했다. 사실, 처음 여기에 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쓸데없이 세금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시립도서관이 있는데, 2주에 한 번씩 이동도서관이 운행하는데, 또 도서관을 만들어 예산을 이렇게 쓰는가 싶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시립도서관까지 가지 못하는 이용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뭐 어떤 식으로든 또 이용자가 생기겠지 싶어 개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 개관하던 날. 오후 늦게 도서관에 가봤다. 이 작은 공간을 어떻게, 어떤 책들로 채워놨을까 싶어 분위기 파악이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가봤다. 이용자는 몇 명 없었다. 학교 끝나고 온 학생. 작은 방 한 칸처럼 따로 만들어놓은 유아도서실에 있던 아기와 아기 엄마. 나까지 해서 다섯 명도 안 되는 이용자가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고 몇 분 안 되어 갑자기 막 소란스러워졌다. 가만히 보니 어떤 아줌마가 아이 둘과 함께 들어왔는데, 입구에서부터 참 시끄럽게 들어오더라. 슬리퍼를 신고 왔는데 질질 슬리퍼 끄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 공간이 막 울리던데, 그 소리가 그 아줌마한테는 안 들리는 걸까? 같이 온 아이 중의 한 명은 5~6세 사이로 보였는데, 그 아이 역시 슬리퍼를 신고 열람실을 다다다다다 뛰어다니고 있었다. 도서관에 슬리퍼 신고 오지 말라는 게 아니다. 발소리를 조심해야 하는 게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거, 아닌가? 한참 아이가 그렇게 뛰어다니고 큰 소리로 소리치듯 얘기하면서 열람실을 도는데도 아이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도서관에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도 뭐라고 말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직원 앞에서 막 뛰어가니까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쉬~!’ 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아이는 그걸 보고도 그냥 무시하고 뛰어가면서 소리치고... 아마 그 직원은 애매했을 거다. 소란스럽게 하는 아이를 나무라야 하는데, 아이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어떤 행동을 취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도서관의 서가 사이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데 소란스럽던 그 아이가 큰 소리로 뭐라 뭐라고 하면서 내 근처로 왔다. 나는 무서운 표정을 하며(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마요미가 “아저씨 무서운 사람이야, 으르릉~” 했던 것처럼, 나 무서운 사람이야, 하는 표정으로) 검지를 입술에 대고 아이에게 ‘쉿~!’ 했는데, 아이는 또 무시하면서 그냥 갔다. 계속 아이가 소란스럽게 하는 상태로 십여 분쯤 흘렀을까.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야, 조용히 해.” 라고 말했는데, 웃긴 건 그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도 쩌렁쩌렁 울리게 큰 소리고 말하고 있더라는 거... 참다가 너무 견디기 어려워서 내가 찾던 책 한 권만 챙겨서 나오는데, 입구에 꽂아놓은 우산을 들면서 다시 서가 사이를 쳐다봤다. 여전히 그 아이와 아이 엄마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소란스러운 상태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서다가 도서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소란을 어떻게 잠재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내 얼굴을 보고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표정.

 

 

 

 

 

 

 

 

그렇게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생각하기 싫은 그 무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도서관에서 소란스럽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나? 아니, 아이 엄마 자체가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조차도 정돈하지 않은 것을 보며, 아이에게 그런 예의를 가르치지 않은 거로 생각하기 쉬웠다. 도서관 직원도, 나를 포함한 다른 이용자도,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감정 상하지 않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도서관 이용한 지 한두 해도 아닌데, 역시 이런 문제는 어렵다...

 

 

여동생은 아이가 둘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동생은 음식점에 가서 식사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식당에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 자기 자리에서 식사해야 한다, 뜨거운 음식을 나르고 있으니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니지 마라, 등등. 처음에는 말로 했는데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엄포를 놓았다. “너희들 자꾸 이렇게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면 밥 안 먹고 집에 갈 거야.” 그렇게 말했을 때도 아이들은 엄마가 늘 하는 잔소리로 여긴 듯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자 여동생은 집에 가자며 일어났다. 막 음식이 나온 상태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모두가 일어나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황당한 표정. 설마, 정말 집으로 가겠어? 말만 그러겠지, 싶었나 보다. 그런데 정말 집으로 갔으니, 아이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여동생은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벌써 여러 번 말했는데도 안 들으니, 앞으로 너희가 식당에 가서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다시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지 않겠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밥을 먹는 게 식당에서의 예의라고. 그 이후로 아이들은 변했다. 식당에서 뛰어다니지도 않고, 소란스럽게 하지도 않았다. 놀이방이 있는 식당에서는 식사를 다 하고 놀이방에 가서 놀았다. 이 귀여운 것들. 기본을 아는 아이가 된 걸 보니 내가 다 기뻤다. 이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몇 번 해서 그런지, 처음 도서관에 가서도 한번 말하는 것을 알아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 책을 꺼내보면 제자리에 꽂아두고 혹시라도 제자리를 모르겠거든 앞쪽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직원이 원래 자리에 찾아서 꽂아둘 거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고 조용히 해야 하는 곳이다, 혹시라도 너희들끼리 얘기하고 놀고 싶으면 유아실로 들어가라, 고 했다. 유아실은 말 그대로 많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들어가 있는 곳이다. 아직 아기이다 보니 울기도 하고, 가끔 거기서 분유도 주고, 소리 내어 책도 읽어주고 하더라. 그렇게 해도 된다고 별도로 마련한 장소이니 괜찮다.

 

말로 가르치든 행동으로 보여주든, 아니면 아이가 말로 했을 때 알아듣는지 행동으로 보여야만 알아듣는지 다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르쳐야 할 게 분명 있다. 그 안에서 중요한 건 기본이다. 나는 작은 도서관에서 본 그 아이 엄마의 태도를 쉽게 잊지 못하겠다. 아이가 도서관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걸 제지하지 않는 엄마, 그냥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아이를 보고 있는 엄마, 엄마가 나무라지 않으니 그게 잘못된 줄도 모르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는 아이. 무엇이 중요한지, 기본인지 가르치는 게, 비싼 옷, 명품 가방, 명문대 같은 것보다 우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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