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리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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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불금입니다. 한 잔 꺾어봅시다~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정신은 비교적 말짱하다. 헌데 계단 오르기가 힘들다. 양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늘어진 엿가락처럼 꼬였다. 옆에서 따라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시지 않고 선을 그은 것이 그나마 다행. 기특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51페이지)

 

밤 10시쯤, 정말 딱 한 잔만 하고 싶었다. 아니다. 딱 한 병. (한 잔은 좀 서운하잖아) 집에 엄마가 맛있게 익혀둔 고기도 있었고, 목이 시원해지는 과일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 한 병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상황. 2월 설날 명절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집에 맥주가 없을 게 뻔한 걸 알면서도 냉장고를 뒤졌다. 아하. 그때 미처 다 마시지 못하고 냉장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맥주가 한 병 나온다. (다행이다) 신난다. 기분 좋게 맥주를 컵에 따르다가 급우울해져버렸다. 맥주가 한 컵 밖에 안 나와. ㅠㅠ 정말 딱 한 잔뿐인 거야? 아쉬운 대로 그 한잔을 마시다가 보니 속이 상한다. 아, 서운해. 뭔가, 정말 서운해. 맥주를 사러 가야겠다. 그런데 너무 귀찮다. 걸어서 3분 거리의 마트까지 가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그때 마침, 내 눈에 들어온 건 며칠 전에 제부가 왔다 가면서 준 와인이다. 아주 좋은 거라고 했다. 비싼 거라고도 했다. 얼마나 좋은 건지, 얼마나 비싼 건지 모른다. 몰라도 괜찮다. 일단 눈앞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이름도 모르는 그 와인을 땄다. 조금씩, 한 모금씩, 그렇게 천천히 마시다가 보니 와인 반병을 마셨더라. 그때야 알았다. 내 손에 힘이 빠지고 있던 것을... 그래도 뭐, 기분이 알딸딸하니 좋더라. 적당히(?) 잘 마셨고, 기분 좋게 취해서, 잤다. (주사가 특별히 없고, 그냥 술 마시면 졸리니까, 잔다. 그래도, 그날 그렇게 몸이 늘어지고 손에 힘이 빠지는데도, 양치까지 잘하고 잤다니까!)

 

아, 이런. 술과 함께한 미야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자꾸 말이 삼천포로 빠지려고 한다. 내가 아직도 술이 안 깼나 보다. 술은 술술 들어가지만, 인생은 안 술술~하다는 미야코의 일상에서 웃음까지 곁들이다 보니 술과 미야코에게 취하는 기분이다. 그녀의 이름 코사카이 미야코. 책 소개에서 보면, '코사카이'는 '술이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뜻이란다. 어쩜 이리 잘 어울리는지 모른다. 잡지사 편집부에서 일하는 미야코는 퇴근과 동시에 술집이 즐비한 골목으로 선배 언니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는 게 삶의 낙이다. 어라? 무슨 말인가 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니 열쇠가 없다. 택시에서 두고 내렸나? 의미 없는 길을 오가며 열쇠를 찾았는데, 그녀의 손에서 도망간 가방은 집 앞 돌덩이에 걸쳐 있다. 술로 가득 채운 에피소드가 미야코를 설명한다. 동료의 명품 가방 안에 술 마신 것을 게워내고, 취중에 길거리에서 누워 잠자는 그녀는 누구인가. 훌러덩 벗고 있던 그녀의 앞 시간은 어디서 찾아와야 하나? 잃어버린, 찾을 수 없는 그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그녀가 했던 일들에 숨이 막힌다.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아픈 건가. 병원 진료실에서의 일화에는 진짜 박장대소했다.

 

어쨌거나, 병원에는 진료에 앞서 기록하는, 문진표라는 것이 있다. 외상에 관해서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도 적는다.

"코사카이 씨."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흰 커버를 덮은 둥근 의자에 앉아 의사와 마주했다. 의사의 첫 마디.

"정직한 사람이군요."

놀랄 일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사실 위장, 속임, 거짓말은 적인 편이라 생각한다. 허나 병원 의사의 소견으로 듣기엔 이게 뭔가 싶었다. 조심성 없다, 멍청하다, 라는 말을 들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할 상황 아닌가. 술 취해 다쳐서 병원에 왔는데 어째 도덕적인 칭찬을 듣는 거지? 미야코는 절로 고개가 외틀렸다.

의사는 말을 이었다.

"여자들은 대개 이런 상황에서 '넘어졌다'고 씁니다."

그러면서 문진표에 다치게 된 경위란을 톡톡 쳤다.

흰 종이에 꾹꾹 눌러쓴 글자. '술이 떡이 돼서.' (155~156페이지)

 

이러니, 미야코가 어떤 사람인지 눈앞에서 그려지지 않아? 몸에 술이 채워지지 않을 때도 이렇게 재밌는 사람이잖아. 게다가 그녀가 술만 잘 마시느냐? 아니다. 일도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다. 작가를 대하는 것부터 기획을 마무리하는 일까지, 그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떤 일도 불사하는 그녀다. 대책 없을 것 같지만, 나름 선을 지키고 열정을 불사르는 그녀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녀이기에 어느 자리에서건 인기를 폭발시킨다. 말 그대로 못 하는 게 없다. 누구 하나 그녀를 미워할 수도 없다. 일 잘해, 술 잘 마셔, 인간적이지, 대화 통하지. 이 얼마나 좋은 상대냐고. 읽는 내내, 이런 사람 하나쯤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미야코 같은 사람 옆에 한 명 있다. 일단 술병을 들면 말술을 마시는데, 술 취한 그녀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말 힘들다. 새벽 두 시에 술집 앞에서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한 시간을 헤맨 적도 있다. 에휴...)

 

술이 술술 넘어가듯 그녀의 인생도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 듯했으나,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실패로 기록될 일이 있으니, 바로 연애다. 어느 날, 대학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만나자고 한다. 뭔가 느낌이 온다. 이상하다. 좀 더 예쁘게 하고 나가야지. 아마도 오늘이 디데이가 될 것 같다. 오호~ 이건 틀림이 그거야. 바로 그거! 프.로.포.즈. 뭐, 아직 결혼할 때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뭐, 결혼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미야코는 설레는 맘으로 애인을 만나러 간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미야코한테 물어봐. 그날 밤 그녀가 왜 그렇게 술잔을 꺾어댔는지 말이야. 그녀는 애타게 불렀다. 술아 술아~ 내 술들아~ 일루 와~. 한 잔 꺾고 꺼억~, 두 잔 꺾고 꺼~어~억~

 

술로 시작해서 술로 계속되고, 술로 즐겁고 우울해지는 그녀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남 일 같지 않은 거냐. 소설인데 시트콤 같다. 나 같고, 내 옆의 또 다른 사람들 같다.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오늘을 풀고, 속상함을 털어내고, 기쁜 일에 더 설레게 하는 매개로 술을 선택한다. 술 때문에 미야코가 보인 엉뚱함이 자칫 과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과함이 어쩌다 한 번, 귀엽게 보일 정도라면 괜찮을 듯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이 가볍지만도 않다. 직장이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진지한 일들이 그녀들의 끝도 없는 수다로 술술~ 풀어가는 재미가 있다. 그게 바로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때로는 울기도 하는 인생이지만, 이렇게 웃어가는 일들 때문에 오늘이 재밌어질 수도 있는 거. 그런 재미를 술이, 좋은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게 즐겁다.

 

모두, 오늘도 시원하게 넘어가는 한 잔으로 즐겁게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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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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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를 꿈꾸며... 『죽여 마땅한 사람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살인이 범죄가 아니라면, 처벌받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는 몇 번의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지 않을까? 누구나 그런 적 한 번이라도 있지 않아? 나를 상처 입혔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미워하고 분노하는 감정이 정당화될 수 있는... 다만, 우리가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건 타인의 목숨을 내 기준대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살인은 법의 처벌을 받는 범죄라고 인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신감, 분노 같은 감정을 이길 수 없어 살인을 저지른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이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동시에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그 ‘죽여 마땅한’ 이유도 듣고 싶었다. 가끔 TV 뉴스를 보면서 흥분하다가 쉽게 내뱉는 말, 어떤 가해자나 피의자에게 당연하게 던지는 말이 있다. ‘똑같이 당해봐야 한다고...’ 내가, 피해자가 받은 고통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개인의 복수가 아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받아야 한다는 절차와 방식이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죽어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진짜 죽인다면? 그들은 '죽여 마땅한' 사람이 된다. 그 가정에서 멈추지 않고 그걸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이 있다. 그 누군가가 죽어 마땅한 이유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이유 중에 마음의 상처를 입힌 이유라면 상대에게 죽음을 건네고 싶은 감정은 더 격해진다.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한, 배신감에 치를 떨게 한 너를 그냥 둘 수는 없다’고. 그래서 실행에 옮긴다. 나와 직접 관계가 있든 없든, 죽이고 싶다는 그 바람을 가진 이를 돕는 일도 한다. 릴리가 그랬다. 히스로 공항 라운지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테드와 릴리. 테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 것을 공항에서 처음 본 릴리에게 이야기한다. 다시 만날 일 없을 거로 생각한 릴리에게 무거운 속내를 털어놓은 거다.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그냥 꺼낸 말이라고 생각했던 테드에게 릴리는 진지하게 대꾸한다. 자기도 같은 생각이라고, 도와주겠다고...

 

“사람을 죽이고도 잡히지 않으려면 시체를 숨겨야 해요.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애초에 살인이 없었다면 살인자도 없는 거니까요.” (87페이지)

 

릴리가 테드를 어떤 방법으로 도울까? 그 방법은 한 가지다. 테드가 자기를 배신한 아내 미란다를 죽이고 싶다는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사람을 죽이고도 잡히지 않기 위해 시체를 잘 숨기는 것. 두 사람은 공동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묘미는 그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처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는 것을 따라가면서부터다. 릴리와 테드, 테드의 아내 미란다, 살인 사건의 담당 형사 킴볼의 시선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모든 진실을 알고 싶을 때 당사자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풀어야만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게 불가능할 때 관계된 이들의 목소리를 따로 듣기도 한다. 이때, 각자의 입장만 듣게 된다는 맹점이 있다. 어떤 이유로 이들의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동하는지, 죽여 마땅한 이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는지,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해서 모든 경우 다 죽일 수 있었는지, 그 죽음에 관해 아무도 처벌할 수 없었는지... 누군가를 죽이기로 계획했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위기를 또 어떻게 넘기면서 새로운 국면에 처하게 되는지 반전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테드는 미란다를 죽일 수 있을까, 그 살인이 성공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살인을 들키지는 않을까?

 

‘썩은 사과 몇 개를 신보다 먼저 도려내는 일’이 가능한지 물으면서 또 하나의 큰 질문을 던진다. 썩은 사과를 도려내는 일은 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이어진다. 사람이 사람을 살인으로 심판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명확한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없음도 확인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보게 된다. ‘나라면?’ 이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번은 경험해봤을 생각일지도 모른다. 법의 절차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처벌을 내가 하고 싶다는 욕망에 잠겼던 찰나를 건너가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냥 한번 생각해본 것’과 ‘살인’ 사이의 경계를 만든다. 인간이기에 대부분은 전자의 경우가 많을 듯하다. 혹여 누군가 나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나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하는 정도의 즐거운(?) 상상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는 세상에는 법이라는 제도가 있고, 우리는 그 법의 절차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게 많은 사람이 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아서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생각들이 사건을 만든다. 이 소설은 그 빈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저지른 살인은 잘못되었지만, 또 그렇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뿜어져 나오니까.

 

가슴이 아팠다. 익숙한 감정은 아니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난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내가 저지른 살인마다 이유가, 그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까닭은 외로움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420~421페이지)

 

‘살인은 나쁘다’라는 한 가지 결론만을 내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살인을 응원하는 순간도 만들면서, 이게 정말 가능한가 싶은 의문을 품게 한다. 벌을 받아야 할 행동에 묘한 공감이 생겨나고 있다니... 나 정말 이상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저지르는 살인에 동조하는 순간이 있는 걸 보면,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음이 틀림없다. 릴리만의 심판이 모두 옳다는 결론에 다다르지는 못하겠지만, 그 시도 자체를 무조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완벽한 살인과 숨김이 가능하다면, 어쩌면 당신은, 우리는, 그 고통을 사라지게 하려고 직접 해결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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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이동도서관>을 읽고 있다.

앞부분은 신기한 판타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어째 느낌이 이상하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이런... 괜히 슬퍼진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 작가가 썼다고 한다. 느낌 비슷하면서도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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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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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흔들 타이밍을 저격한다. 『댓글부대』

 

지난번에 본 영화 <내부자들>은 강했다. 동시에 아픈 영화였다. 정의와 진실이 이기기 위한 과정이 너무 험난했다. 권력자들의 욕심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만들어진 진실에 거짓은 가려졌다. 끝내 그 진실이 드러나기 어렵다는 걸 보게 했다.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안상구는 자기 자리에서 끝없이 몸부림쳤다. 온갖 편법을 저지르고서라도 오르고 싶던 그의 인생은 노력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믿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를 배신했다. 그 배신자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언론을 주름잡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듯 모든 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던 장면은 어떻게 여론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이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느냐, 이었다. 힘 있고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자에 의해 철저하게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중은 개, 돼지라며... 이런 내용의 영화가 비단 <내부자들>뿐이겠냐 마는, 언제 봐도 답답했다. 화가 나고, 정의가 실현되는 게 불가능할 거란 절망만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건, 그 여론이 어떻게 흔들리고 조작되어 한쪽으로 몰리는 힘을 가지는가 하는 거다. 그 배경에는 여론을 주도하려는 자들이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연구하는데 있다. 인간의 마음이 흔들리는 건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계획하여 흔들어버리고자 작정하는 또 다른 인간이 있어서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가도 금방 사라진다. '그게 가능하니까 이런 소설이 생기는 거 아닌가?' 라는 답을 끌어내고 있으니까. 궁금했다. 불분명하게 들어왔던 이런 이야기가, 허구라는 소설로 진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소설 『댓글부대』는 나의 그런 호기심에 대한 답을 더 분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준다. 삼궁, 찻탓캇, 01査10. 이 세 사람이 ‘팀-알렙’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여론 조작은 놀라울 정도였다.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 어딘 가에서부터 시작된 ‘카더라 통신’의 진실이 여기 있다. 조작된 진실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여론몰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심리전의 고수가 어떤 표정으로 그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밑바닥은 다 똑같은 겁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인정 투쟁. 모두 가슴에 단도 한 자루씩 숨기고 있다가 기회만 생기면 팍! 그런데 저희들은 언제 사람들이 미쳐서 그 칼을 휘두르는지 그 타이밍을 알아낸 거죠. (77페이지)

 

온라인을 통해 어떤 이야기들이 얼마나 빠르게 멀리 퍼져나가는지 안다. 그런 방식을 알고 있는 이들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의 흐름을 몰아간다. 그들에게 여론 조작은 쉬운 일이었다. ‘팀-알렙’은 처음, 특정 기업의 상품평과 후기를 거짓으로 작성하며 푼돈을 벌고, 점점 그들이 하는 일의 규모는 커진다. W전자 생산직으로 일하다 백혈병으로 죽은 노동자의 죽음을 그린 영화의 흥행을 방해하는 일을 의뢰받는다. 삼궁은 처음 의뢰받은 내용의 방향을 틀어 영화판을 배경으로 삼은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영화 흥행 방해 작전에 성공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달라진다. ‘팀-알렙’ 멤버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들에게 힘이 생겼다고 믿는다. 위험한 생각이 이렇게 시작되고 고정된다. 그들에게 이런 일을 의뢰한 ‘합포회’와의 고리는 더 굳건해지고, 그들의 작전은 더 교묘해지고 위험해지며, 두려움과 죄의식까지 밀어내기에 이른다. 점점 커지는 의뢰들, 더 과감해지는 여론 조작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그들의 행보와 인터뷰 장면을 교차로 보여준다. 그들이 여론 조작을 어떻게 계속해나가고 있는지 서술하면서, ‘팀 알렙’ 멤버 찻탓캇이 신문 기자에게 폭로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독자의 눈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 그들이 여론을 조작하며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계속되면서 섬뜩함을 붙잡고, 반성의 시간을 걷는 듯한 찻탓캇의 폭로는 결말이 기다려지는 안달을 부른다.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여론을 흔드는 재미와 돈을 챙긴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찻탓캇의 폭로가 시작되었나 하는 궁금증에 눈을 뗄 수 없다. 상당한 속도감으로 읽힌다. 이 소설을 읽기 바로 전에 봤던 영화 때문에라도 읽고 싶은 동기는 충분했다. 물론 내가 봤던 영화와 이 소설의 결론이 같진 않았지만, 그 맥락은 비슷하다. 정의도, 진실도, 모두 힘 있는 자들의 필요로 어떤 그림으로든 그려질 수 있다는 것. 진실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교란하여 휘저어버린다. 그 중심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또 하나의 세상에서 권력이 생기고, 진실과 거짓이 무엇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느 조종자의 손에 휘둘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종하는 사람, 이용당하는 사람, 폐기물처럼 버려지는 사람. 그 안 어디에도 진실은 없을 거라는 불신이 가득하다. 먹이사슬처럼 또렷하게 보이는 권력구조가 혀끝에 씁쓸함을 맛보게 한다. 여전히 정의를 본다는 건 희망적이지 않고, 진실이라 말하는 것들을 수도 없이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보이는 것의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누군가의 조작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계속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생각해본다. 어디까지 믿어? 아닐 거로 생각해? 왜 그런 시도를 하는 건데? 언제까지 그 거짓이 통할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는 정의가 이길 거라고?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라고 선을 그을 수도 없다. 동시에 허구라고 불리는 이 소설이 허구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좀 조용해지나 싶었던 댓글 알바의 의심은 지난번 모 구청의 사건에서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끝이 아닌 거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의혹은 계속된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는 그 믿음을 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남은 것은 불신뿐이다. 쉬지 않고 던지는 질문을 떠올려보면서, 그 불신이 신뢰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찾고자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된다. 반전, 반전, 반전을 기다리면서... 그래서 이 소설이 그 불신을 지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읽어보면 알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그 후의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소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의 답은 아직 다 나오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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