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모시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은 아니다만...) 아들을 둔 어머니들이 나와서 같이 출연한 여성 중에 며느리 삼고 싶은 사람에게 호감을 보인다. 물론 젊은 여성들도 같이 상대를 관찰한다. 말, 행동, 분위기로 어머니들을 파악한다. 같이 지내면서 어떤 어머니가 시어머니로 괜찮을지 보는 거다. 물론 이건 예능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의 평소 있는 그대로의 성격이 보일 수도 있고, 조금 더 오버해서 나타내는 제스처나 말투가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처음부터 정해진 역할 분담이 있었다. 처음부터 본 건 아니고 지나가다 눈에 들어와서 30분 정도 보고 있는데, 어머니들이 계속 눈에 거슬리더라. 아무래도 내가 아직은 시어머니가 될 나이가 아니어서 그런 건지, 자주 엄마한테 시어머니 노릇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자기 자식이 예쁘지 않으랴. 최고가 아닐 수가 있나. 그런데 그 어머니들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더라. 오로지 자기 위주다. 자기 아들만 최고다. 자기 사업을 물려받는 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반문한다. 자기 아들과 결혼할 사람은 며느리인데, 며느리를 한 인간으로 인정하거나 자기와 평등하게 살아간 사람임을 생각조차 안 하는 듯하다. (시어머니들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 아들 소중한데 며느리 될 사람(가상이지만)의 성품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 프로그램에서 젊은 여성들은 탈락시킬 시어머니를 고른다. 누가 탈락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거기까지만 보고 말았으니까. 그런데 젊은 여성들이 탈락시킬 시어머니를 고르는 의논을 하는데, 잠깐씩 언급되는 시어머니 한 명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30분 정도 보면서 엄마와 계속 얘기했다. 0번 시어머니가 떨어지겠군.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시어머니의 탈락이 유력해 보였다.

 

그러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그 시어머니가 탈락하든 말든, 누가 최종적으로 남아 있든 말든. 몇 시간 혹은 며칠, 그만큼의 시간만 본 사람에게 생기는 호감과 비호감이 무서워졌다. 그러면서 그런 게,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보는 상대의 면면들이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끊어내는 이유와 근거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시간 함께해도 이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멀어지게 되는 거고, 불과 1시간 전에 만난 사람도 ‘이 사람은 이런 면이 좋구나.’ 싶은 순간 앞으로 이어갈 관계를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인연을 맺고 끊고 하는 게,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고, 더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건 사소하지만 어떤 한 가지 때문일 것이다. 당신을 내 옆에 두거나 당신을 내 옆에서 밀어내게 하는 사소한 한 가지. 마스다 미리는 자신의 만화에서 '음식점에서 무조건 종업원에게 반말하는' 애인을 보며 이 남자랑 계속하는 게 옳은가를 고민하는 여자를 보여주는데, 황정은은 멀쩡한 남자가 쓴 요강을 아내가 비워주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이 남자에 대해 고민하는 나나를 보여준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아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려고 해도 자꾸 그게 눈에 걸린다면, 돌아서야 하지 않을까. 내가 눈 딱 감고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나는, 요강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나도 그런 모세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그런' 모세를 결국 받아들이지 않는 나나를 응원한다. (잘 지내나요 238~239페이지)

 

그렇다. 어떤 관계였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건 정말이지 사소한 한 가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라면, 그 사소한 한 가지가 큰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 만나면서 쌓인 시간 때문에 마음을 전하는 깊이가 생기기 마련인데, 사실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분위기라는 게 있다. 이 정도 봤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나와 맞는지 아닌지 정도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않아도 결정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반말하는' 애인의 말투를 확인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거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도 가능한 일이니까. 황정은의 소설에서, 요강을 아내가 비워주는 게 당연하다는 남자의 태도를 고민하는 나나도 마음이 바로 정해지지 않았을까. 돌아서야 하는 이유는, 남자의 아내가 요강을 비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던 그 순간 확실해진 거다. 나에게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목소리를 듣는 느낌이었으니까.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데도,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다른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가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암담하다. 특히 가족이라면 더더욱. 서로를 보는 눈에 신뢰는 사라지고 거부감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할까 싶어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내 의견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는 상대가 가족이 되는 순간 매우 아프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계속 생길 거다. 왜 하나의 마음이 되지 못할까, 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그럴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가족 사이에 생겨난 그 감정의 골은 남과 생긴 골과 다른 깊이로 새겨진다. 그만큼 상처가 커지는 거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치료가 되면 좋으련만, 내 경험상 그런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지는 않더라. 상당히 오랜 시간, 이 관계의 골이 얕아지기를 바라면서 보낼 것 같다.

 

공감이라는 게, 이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확인하는 요즘이었는데, 이 책 속의 이 문장에서 한참 시선이 멈췄다. 다양한 주인공,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지만,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는 순간은 아니다. 그래서 답을 얻고 싶어서 그 책을 펼치기도 하고, 답이 없는 걸 알기에 그저 공감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읽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든, 그 순간에는 그 책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로맨스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대개 그런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현실 속 많은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지 못해서 현실인가 싶으면서도, 마냥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는 못하겠다. 잘되겠지, 잘되어야지, 그래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을 놓지 못하겠다고.

 

사실은, 이 책을 웃고 싶어서 펼쳐 들었다. 책이 새끼를 치는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전작에서 받았던 어떤 느낌 때문에 이번 책에서도 그때 내가 느꼈던 유쾌함을 기대했다. 웃기면 그냥 웃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책과 더불어 일상이 유쾌함과 재미로 가득했던 전작을 기억해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글의 깊이가 또 가벼운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전작과 같은 발랄함에 무거움이 더해졌다.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수록된 도서 목록 때문에 그 분위기가 어느 정도 연상되기도 하면서, 저자의 독서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그 안에서도 여전히 놓지 않는 위로와 사랑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는 편안함과 아픈 순간들에도 찾아올 행복을 기대하게 한다. 이런 마음이 저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게, 괜히 내 편 한 명 더 생긴 것만 같다. 책 속 한 문장에서 파생한 일상의 기억들과 생각들이 이렇게 풀어져 나올 수 있어서 좋다.

 

처음에 인용했던 문장에서 느꼈듯이, 유독 그 '관계'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글이다. 어떤 책이 등장하는지는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을 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는 우리가 겪는 여러 가지 태도와 감정에 시선이 간다. 고백하지 못한 순간을 후회하는 데서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오랜 짝사랑. 나는 고백했는데 차이니까 감당이 안 되던데... ^^ 그런데 막상 고백하지 않고서는 안 될 마음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거절로 돌아온 답에서는 잠깐 주눅이 들었었지. 그렇게 짝사랑은 끝났지만 후련했다. 아닌 건 아닌 것으로 마침표를 찍고 나니, 감당할 수 없던 마음은 개운해지고, 더는 내 것이 아닌 상대에 미련조차 두지 않을 마음을 얻었으니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이입되어 같이 울고 웃는 일. 그건 소설을 읽어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다. 소설 속 이야기에 공감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그런 느낌을 너무 잘 아는 사람 같다.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지만...) 클레어(『가든 스펠스』)가 얼마나 힘들지 느끼면서 같이 화내고 슬퍼한다. 이런 감정, 이런 표현. 공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들. 그 말을 참 편하게 한다. 바로 옆에서 조잘조잘 말하는 것처럼 들리잖아. 마치 수다를 떠는 것처럼, '맞아 맞아' 하면서 옆자리 사람의 팔을 툭툭 치며 말하는 것처럼, '이건 좀 그렇지 않아?'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챌 사이인 것처럼... 그러니 이 상황을 두고 마음껏 욕하고, 화내고, 울고, 웃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안도감이 생긴다. 나, 좀 이래도 괜찮지? 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다 아는 것처럼.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저자가 고르고 읽은 책으로 알 수 있다. 세상이 전하는 뉴스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동안 말로 꺼내지 못한 위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드러내지 못한 당당함이 얼마나 많이 숨어있었는지를. 여전히 그 생각과 표현이 충분하지 못하고, 용기 내지 못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항상 드러내야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오래전 기억까지 꺼내면서 여성이기에 받은 차별과 성추행을 언급하며, 여성이기에 겪는 많은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같이 풀어가야 할 문제임을 시사한다. 저자가 읽은 책 중에서 내가 읽다가 만 책도 있던데, 그러다 기억에서 잊힌 제목인데, 생각난 김에 완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이, 사회가,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바뀌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한 권의 책으로 인식의 변화가 하나씩 쌓인다면 변화의 길은 멀지 않은 거, 아니겠나?

 

사람은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일상을 버텨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해럴드가 퀴니에게 닿기 위해 그녀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걷듯이, 우리는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향해 걷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모든 행위가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게 아닐까. 해럴드가 올 거라는 믿음으로 퀴니가 기다리듯이, 퀴니에게 가기 위해 걷고 있는 해럴드를 모린이 기다리고. (잘 지내나요 191페이지)

 

지금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기다림의 의미는 안다. 그건 그 사람을 그만큼 아끼고 또 아낀다는 말과 같다. 그 '아낌'의 단어를 꺼낼 수 있는 관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대와 나 사이에 쌓이는 것들 때문에 만들어지는,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 사는 모든 순간에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무게를 느낀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족이든 누구든. 서로에게 무엇으로든, 그렇게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매번 책 속의 문장에서, 어느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 배경이 되더라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내가 겪어가는 여러 관계, 이해와 해결, 공감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읽기를 멈추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게으른 독자이지만, 특히 요즘에는 책을 거의 안 읽고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이렇게 책 속의 문장 하나 때문에 되찾아오는 감정이 있다면, 더디더라도 책을 계속 읽고 지내고 싶은 마음을 놓고 싶지 않다.

 

점점 말이 줄고, 그러다 보니 표현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나도 모르게 검열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가슴속 하고 싶은 말이 줄지는 않는다. 목소리로 얘기할 수 없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저자 때문에 많이 했다. 글에서, 단어에서 문장에서 누군가를 읽는 일이 생각보다 괜찮더라. 조심스럽게,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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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0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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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대한 개츠비 (양장) - 개정증보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로 먼저 만났던 개츠비를 원작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이 남자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그저 세상을 향한 복수처럼, 가져본 적 없던 부를 거머쥐기 위해 애를 썼던 한 남자가 아니라,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건 남자로 비친다. 데이지가 그럴만한, 그가 목숨까지 바쳐야 할 정도의 여인이었던가? 영화를 보면서 빠져들었던 그 순간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그녀는 흐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두터운 옷더미에 묻혀 작아졌다.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다는 게 슬프게 만들어요." (153페이지) 이런 말을 하는 여자를 5년 동안 기다린, 기다린 것뿐만 아니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온 그의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게 부질없어 보였다. 허망했다. 완벽하지 않은, 구멍 난 것들이 보였다, 그들 모두의 인생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시간과 노력도, 12년 동안 떠나지 못해 안달하면서 톰을 만났던 윌슨 부인도,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쳐버린 윌슨도, 버림받은 것처럼 마지막에 외쳤던 베이커 양도, 상대의 돈을 바라보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 데이지도.

 

가난했던 개츠비. 그에게는 신분을 바꿀만한 어떤 배경도 없었다. 영원히, 가난한 개츠비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던 거다. 공부해도 변할 수 없었던 그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온다. 어떤 부유한 사업가의 선택을 받은 그는 본인의 이름 '제임스 개츠'를 '제이 개츠비'로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무엇으로 부를 거머쥐게 되었나? 톰 뷰캐넌이 의심하던 것처럼, 나도 그가 축적한 부를 의심하면서 읽게 된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투명하지 못한 그의 배경이 계속 의심을 낳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소설의 흐름이 점점 개츠비의 잃어버린(?)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거로 보인다. 오래전 그가 놓친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여전히 데이지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개츠비의 맹목적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그래 봤자 너무 작은 불빛 하나겠지만) 건너편에 저택을 마련한다. 데이지는 올까? 그는 오로지 데이지가 그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매일 파티를 연다.

 

원작을 읽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이 아는 내용이다. 데이지를 찾아 헤매던 개츠비가 많은 돈을 쏟아부어 여는 파티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나는 윌슨 부인의 사망한 사고에서다. 닉의 집에서 데이지와 조우할 개츠비의 행동은 순정남이었다. 데이지를 기다리는 동안 뭘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고, 데이지와 만나는 순간의 설렘을 잔뜩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이 정도의 되어야 나 순정남이네, 하고 말할 수나 있지.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부담부터 생겼던 것에 비하면 소설의 흐름은 오히려 편안했다. 보이는 그대로 읽으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개츠비를 보게 했으니, 이제 데이지를 만난 그의 순정이 얼마나 빛나느냐 하는 기대를 잔뜩 품게 된다. 그런데 데이지는 속물 중의 속물이었고, 개츠비의 마음이 아니라 그의 부에 더 정신이 팔렸다. 데이지는 정말 개츠비를 사랑하긴 했을까? 오래전 그때도 그를 사랑했을까? 단지 비슷한 신분의 누군가를 만나 자기가 누리던 부를 이어가려던 게 아니고? 믿을 수 없다. 데이지의 마음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더라. 개츠비의 저택에서 아름다운 셔츠들에 열광하며, 그동안 자신이 누려온 부가 그 정도(개츠비의 셔츠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인생에 절망했다. 이런 몹쓸.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은 고조되고 소설은 더 탄탄해진다. 닉 캐러웨이가 적어가는 개츠비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각자의 역할에 더 집중한다고 해야 할까. 베이커 양은 의외로 순정파였다. 닉에게 추파를 던지며 한순간을 즐기는 것으로 여겼던 그녀에 대한 나의 평판은 수그러들었다. 닉을 원망하며 그녀의 은근한 프러포즈를 거절한 투정을 말할 때는, 아 여기서도 타이밍이 문제였던가 싶었다. 가장 원망하고 싶은 남자 톰 뷰캐넌은 여전했다. 그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잘 살아갔다. 그가 가진 부는 그를 여유롭게 만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살게 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거다. 이 소설이 개츠비의 순정에서 잔인한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여겨진 것은...

 

아무리 오르고 싶어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그 생을 마감한 개츠비. 그는 가난에 빠져 지냈지만 어떤 희망을 품고 나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노력하면 나아지는 삶. 우리는 그걸 바란다. 그렇게 하루를 산다. 하지만 세상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개츠비와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선택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간절히 바라는 게 생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불법적인 일에도 손을 뻗게 되는 자연스러움. 우리가 목말라 하는 갈증에 그 방법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가 바랐던 건 한 여자의 마음이었지만, 결국에 그가 바라던 것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파멸 같은 결말을 선사했을 뿐... 한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에서 마지막까지 그가 선택한 삶을 걸어갔던, 그녀를 위해 자기 자신 따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흩어지고 사라진 상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는, 누구인가 묻고 싶었다.

 

개츠비는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는 그 풋풋한 불빛을, 그 절정의 미래를 믿었었다. 그때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뛸 것이고, 우리의 팔을 더 멀리 뻗을 것이고…… 그리고 어느 날 좋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밀쳐지면서. (289~290페이지)

 

여러 번역으로 이미 출간된 이 작품이 이번에는 67군데의 오역을 지적하면서 새로 출간되었다. 사실 영화로 본 적은 있지만, 원작을 읽은 적이 없어서, 그 오역의 지적을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다.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으면서 어떤 비교를 해야 할지 어려워서다. 다행히 이 책의 끝에 역자가 지적한 오역의 비교가 그대로 담겨있다. 세세하게 보면 문장이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의 흐름이 다른 번역과 전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적용되는지 다른 번역본을 읽어보면서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터. 저자가 언급해준 부분 외에도 큰 흐름을 보면서 다 읽은 느낌을 비교하는 매력도 상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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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속편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내 누나』를 읽었을 때는 거의 웃기만 했다. 남자와 여자의 심리가 누나와 남동생 사이에서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걸 거듭 확인하면서, 이 남자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모를 고민만 연속 했더랬다. 언제나 평행선을 달리듯 그렇게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좌절도 하고, 영원히 이해 못 할 관계로 남더라도, 그래도 가족이니까 병아리 눈곱만큼의 이해는 가능한 걸까 싶은 대답 없는 물음만 계속 따라왔다. 그러면서 지하루와 준페이의 일상과 대화에서 많이 공감했다. 어느 평범한 집의 누나와 남동생을 보는 것처럼 친근해서 마냥 호감으로 웃으면서 읽었는데...

 

이번에 출간한 『내 누나 속편』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남매의 은근한 티격태격도 여전했고, 누나의 말과 행동을 어이없어하는 준페이의 표정도 재밌다. '세상 모든 여자가 정말 이럴까?' 하는 좌절의 눈빛을 보내는 준페이를 보니, 여자라는 대상에 대한 복잡함만 더 늘었을 것 같아서 괜한 웃음이 났다. 누나는 여전했다. 소녀 같기도 했다가, 단호하기도 했다가, 한없이 나약하게 보이기도 했다가... 그러다가 뭔가 자신의 행복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또 반전처럼 일상의 발랄함과 순수함을 보게 하더라. 음식에 따라 만나는 남자가 다르고, 여자들 모임의 분위기를 더 생생하게 체험한 듯하다. 작은 소품 하나에 일희일비했다. '그게 뭐 별거라고' 하는 것들에 흐뭇해하는 표정이 눈앞에서 그려진다. 그러면서 지하루의 표정에 나를 대입한다. 풋~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일상의 소소함에서 불어오는 웃음의 가치는 안다. 지하루가 딱 그런 것 같다. 준페이의 시선에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펼쳐질지라도, 지하루에게는 그게 마지막까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인 것처럼 보인다. 아, 생각하면 할수록 그냥 푸시시 웃음만 나.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글도 많고, 그 배역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설정하며 들려주겠지만, 누나와 남동생이라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 나의 기준으로 보면 남동생과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상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참 전에 따로 살고 있고,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는 게 전부이기도 하고, 집안의 일을 의논하는 게 아니면 통화도 잘 안 한다. 그러니 한집에서 같이 사는 지하루와 준페이처럼 매일 얼굴 보며 살고, 퇴근길 누나의 표정 하나에 오늘 일과를 읽을 일도 없다. 그런데 이 남매는 참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게 눈에 보인다. 세상 모든 남매가 이렇게 지내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지내고 싶은 로망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편보다 이번 속편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들어오고 나가는 누나와 동생의 표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는 섬세함이 더 와 닿아서다. 요즘 며칠 내가 느낀 남동생의 태도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일까.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이들 남매의 모습에 괜한 뭉클함까지 얹어졌다.

 

전편에서 많은 웃음을 끌어냈는데, 속편에서는 그 많은 웃음은 물론이고 웃음의 깊이까지 달라졌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사회 초년생인 준페이와 베테랑 직장인 누나 지하루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거다. 그동안 준페이가 누나의 말이나 행동에서 '아, 정말 여자를 이해 못 하겠어.' 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런 누나의 표정과 말, 행동, 시간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에피소드가 많다. 몇 년 사이, 시간은 흘렀고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는 때. 누나의 직장생활이나 여자의 심리를 이해 못 하고 엉뚱한 표정으로 누나를 살폈던 준페이가 이제는 어느 정도 누나의 일상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기지 않았을까? 특히 지하루의 말과 행동에서는 개운함과 톡 쏘는 사이다 같은 맛이 나는데, 그런 분위기 때문에라도 평소에 꺼내기 어려운 소재의 이야기가 거침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보면 여자들만의 속사정이라도 해도 좋을 테지만, 그런 내용을 수면 위로 드러내놓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지하루와 준페이 남매의 이 대화가 직장에서의 끓는 속을 풀어주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닿지 않는 거리를 좁혀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좀 더 유쾌하게 읽을 수도 있는데, 지금 내가 겪는 분위기 때문인지 나는 이 만화가 왜 이렇게 애틋하고 뭉클하고 진지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전편처럼 좀 더 가볍고 즐겁고 유쾌하게 읽고 싶었는데 말이다. (지하루와 준페이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있고, 누나의 일상에서 황당하다는 표정보다 존경의 의미를 담은 눈빛 때문에 더 진지해진 것도 있지만) 나의 남동생은 여전히 남동생이고, 여전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여전히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요즘 며칠을 같이 보내며 많은 것을 묻고 의논하고 하면서, 좀 더 현명한 대처를 위해 계속 이야기하면서, 살짝, 아주 살짝, 아주 잠깐 이 녀석이 오빠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동생의 뒤통수에서 발견한 새치 한 가닥과 내가 하는 질문에 알고 있는 방법을 얘기해주는 말에 뭔가 든든한 기분. 힘들게 사는 엄마를 생각하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떤 애정. 항상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라고 욕했던 게 미안해지는 걸 보면, 이 녀석이 변하긴 변했나 보다. 온갖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보고 경험하는 게 많았던가 보다. 거의 10년의 시간 동안 배운 것을 엄마와 가족에게 적용하며 조금 더 보듬어주려 애쓰는 게 보인다. 한꺼번에 공격하는 누나 네 명의 말발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걸 보면, 이 녀석이 큰 게 맞는가 보다. ^^

 

 

남자와 여자 사이의 마음을 읽는 것에 인생을 배운 진지함까지 더해져 읽는 맛이 더 진해졌다. 다시 태어나도 자기 자신이 되겠다던 지하루의 대답에 준페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현재 누나의 삶이 행복하다고 여겼을까?

 

뭔가가 자꾸 쌓여 높아만 가는 마스다 미리의 삶의 탑을 보는 듯해서 즐거웠다. 속편의 속편이 또 나올지, 나온다면 언제쯤일지 모르겠지만, 기다려본다. 그때는 또 어떤 분위기와 진지함, 유쾌함으로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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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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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어떤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참 힘들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거라면 주저하지 않고 덮으면 그만인데, 꼭 들어야 할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이미 이 내용으로 발행된 책이 여러 권일 테지만, 매번 접할 때마다 감정이 일렁인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 좀 무뎌지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그게 아니었나 보다. 누군가는 그날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누구 말처럼 그 날은 사고 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기억할 만한 날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늦은 아침을 먹다가 놀란 건 당연하고, 저게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으로 계속 TV 뉴스를 보던 기억이 난다. 저런 일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하는 놀람은 계속됐다. 내 가족이 타고 있던 것도 아닌데, 종일 슬픔의 순간을 공유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희생자는 너무 많았다. 한 가정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동생이자 언니 오빠, 아내이자 남편. 어디선가는 VIP 보고용으로 영상을 요구할 때, 누군가는 생사를 건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거다. 그마저도 불가능해 결국 수장된 채로 아직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 세월호의 모습은 처참했다. 세월호의 외관이 저러할진대, 그 안의 많은 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은데, 그건 언제쯤 이뤄질까. 지금도 뭍에서 자식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가 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목소리가 그 안에까지 들릴 것 같다. 어서 나오라고, 엄마 아빠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늦게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고... 그게 언제쯤 이뤄질지 모르겠다. 간절한 바람으로 어서 빨리 엄마 아빠 곁으로 오기를 같이 기다리는 마음이다.

 

우리는 매순간 형제자매를 그리워해요. 매일 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동생이고 언니고 형이고 아우인 그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기억하곤 해요. 그런데 세상은 자꾸 잊으라고, 그만하라고. 그리움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데 그만하라고만 해요. (330페이지)

 

이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봄을 맞이하여, 세월호 유가족 육성을 담은 기록이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은 11명이라고 한다.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단원고 학생, 세월호 참사로 희생한 단원고 학생의 형제자매 이야기다. 사고 당시 십 대였던, 이십 대 초반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다. 온몸으로 겪어냈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대로 들려온다. 어린 나이에 형제자매를 잃는다는 게 뭔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그런 순간이 있지 않겠나. 나에게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들의 이야기에 저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사고 당시 순간의 일들, 오보에 안심하며 가졌던 희망, 불안함이 들고 온 소식, 이해할 수 없는 절차와 방식의 태도들에 좌절하며 보냈던 시간이 생생하게 들린다.

 

그들은 '생존학생' 혹은 '유가족'이라 불렸다. 어떻게 슬픔을 견디며 지내왔을까.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된 말이 나온다.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라고 했다. 가족에게는 더 아프고 슬플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까 봐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득하다. 그것뿐만은 아니겠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순간이 많기에, 그들이 다 말하지 못한 이유에 슬픔이나 불편함만이 있을 수는 없을 거다. 어디 털어놓을 수 없던 속내를 시간이 조금 지나니, 누군가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물으니 대답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라, 안타깝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같은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모두 바라는 건 하나다.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주기를, 잊지 말아주기를...

 

세월호 이후에 저는, 어… 그냥 삶이 나눠진 것 같아요. 친구들을 잃었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도 생겼고 배운 것도 성장한 것도 많아서, 더 나쁜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없는 삶을 더 좋은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전환? 그냥 삶이 다른 거. (315페이지)

 

어떤 때는 '이해할 것 같다, 잘 알 것 같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공감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눈다. 그게 어느 순간 힘이 된다는 걸 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같은 경험으로 공유하는 슬픔과는 다르다는 거다. 기쁨보다는 같은 슬픔을 겪은 사이에서 생기는 유대감이 있다. 같은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슬픔을 언제 어떻게 겪었느냐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한없는 마음을 보내다가도, 내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싶어 감히 말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그저 공통으로 겪은 '슬픔', 소중한 사람의 '부재', 견뎌내야 할 '고통'. 대개 이런 마음이었던 거다. 당사자의 아픔만큼 다가가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 책을 한번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히 잊힐 기억도 아니기에 더 그렇다. 그동안 세월호 관련하여 나온 책이나 소식들은 어른들의 눈과 입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뒤에, 옆에 있던 10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뒤로, 10대의 당사자가 품은 생각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가족, 생존자인 10대들의 마음을 듣는 좋은 기회를 열어준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기에 더 들어야 할 마음들이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니, 이제 또 다른 시작일지 모른다. 밝혀야 할 것들, 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잃어버린 친구들, 되찾아야 할 일상, 오늘을 살아갈 용기와 내일을 기다릴 희망, 아픔과 추억을 간직할 기억들, 진심으로 들어야 할 누군가의 마음, 상처 회복과 배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그 날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이들의 마음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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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눈이 부시게 좋은데...
이런 환함이 장례식장을 둘러싸고 있다는 게...
그냥 좀 이상한...

누군가는 이렇게 좋은날 가시는구나...
그런데 가만히 보니 고인의 나이 4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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