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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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을, 꼭 해야 해?' 나이를 먹으니 자꾸 편한 것만 찾으러 다닌다. 텐트? 오~노~! 허리 아파서 안 돼! 음식을 싸가서 먹자? 오~ 노~노~노~노~! 짐 보따리 바리바리 싸서 이동하는 것도 싫어. 그냥 무조건 편한 곳으로! 잠은 꼭 실내에서 자야 하고, 먹는 것은 어디 식당에서 먹거나 아주 간단하게. 오케이? 여행이란 무릇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다. 편하게 다녀온다고 하는데도 어딘가를 한번 다녀오면 온몸이 혹사당한 것처럼 피곤한데, 힘들게 다니는 건 안 되는 말씀! 암만! 재충전을 위한 힐링이라고 하는데, 다녀오고 나면 꼭 피로가 오래가더라, 하는 후유증에 무조건 편한 여행을 외치곤 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한다는 교훈을 다시 깨닫고 오기는 싫다는 거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다. 무조건 편한 여행을 외치는 나에게 박상은 반박한다. 그냥 가는 거야~!(무슨 노홍철 말투처럼?) 반지하 방의 눅눅함이 싫어서 떠나고, 글이 잘 안 써져서 떠나고, 싼 항공권을 득템해서 떠나고. 말하고 보니 그렇다? 그가 떠나는 데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떠나는 이유를 고르기가 더 어려운 거 아닌가! 그의 방랑은 글과 한 몸이 되어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보인다. (여자가 아니라 방랑이 동반자여서 싫은가, 그대?) 그런 방식의 그의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이지만, 막상 읽기 전에는 그 뻔함을 느낄 수 없다. 뻔함에, 뻔함에, 또 뻔함에 웃김까지 얹어진 그의 여행기, 음악 방랑기, 들을수록 짠내가 풀풀 난다. 아, 이 아저씨를 어쩌면 좋지?

 

그만의 여행법에 음악이 슬리퍼 뒤꽁무니처럼 따라붙는다. 아니면 그의 찌질한 일상에 음악이 술안주가 되어 주거나. 럭셔리한 여행도 아니요, 그럴싸한 식당에서 한 끼 해결하는 맛집 투어도 아니다. 의사소통에 혼란이 생겨서 그의 여행은 당연하게 문제로 시작하거나, 이탈리아의 험악한 남자들에게 데어버린 기억이나. 여행자가 한 번 겪을 만한 모든 일은 그에게다 모여서 다가온 듯하다. 박상 특유의 말투와 재치가 이 글을 더 신나게 한다. 그가 겪은 시간이 결코 신나게 보이지 않음에도 그렇게 만드는 게 그의 재주다. 우울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 같은 순간에도 그의 익살은 빛을 발한다. '될 대로 되라지.' 하는 건 우리가 언젠가 꼭 한 번은 저질러 보고 싶은 일탈 같은 거 아닌가? 그런 일탈을 그는 일상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으니, 아~ 정말 그의 일상에 뛰어들어보고 싶더라는 간절함이,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퐁퐁 샘솟는다. (그의 전작들 제목에서부터 알아보긴 했다. 역시, 범상치 않아.)

 

우리 눈으로 보면, '저건 제대로 된 게 아니여.' 하는 모든 순간 그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그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나는 막 웃고 싶다. 깔깔깔. 솔직히 음악이 없었다고 해도, 그는 '혼자서도 잘 놀아요' 하는 자세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순간을 막 건너갔을 것만 같다. (이상하게 그의 인생이 아무 걱정이 안 되는 건 나만 그런 거야?) 그의 말투와 외모가 눈앞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아서 그가 풀어내는 이 문장들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간신히 오줌을 참고 있는데 <She>가 흘러나올 것은 무엇이냐. (그는 이때 노라조의 <니 팔자야>를 들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왜 <She>가 더 강렬하게 남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서 봤던, 아기들 기저귀 떼고 소변 가리는 거 가르칠 때 생각난다. (상상 금지!) 어찌 되든 흘러가는 세상살이. 맞다, 걱정해서 뭐하냐, 아무 소용없지, 전인권이 긁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걱정 말아요, 그대>를 귀에 장착하며 잠시 눈앞의 문제들을 잊어도 좋은 거지 뭐. 장염을 앓으며 위로를 받았던 음악이 하필이면 <Patience>일 건 또 뭐란 말인지. 인내하라, 그러면 장염도 날아갈 것이니라, 아멘. 뭐 그런 기도문을 외우기 좋은 분위기였을까?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복음성가처럼 부르면서 대책 없는 인생들의 파이팅을 외치거나. 고만고만한 인생들에 '건배'를 불러주니 살아갈 만하더라는 통증 완화제 같은 거였거나. 봄날의 어느 날, 식당에서 메밀국수를 먹으며 <봄바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벚꽃과 떠나간 그녀와 속초는 장범준의 목소리를 그의 귀에 콕 박아놓은 것이다.

 

 

페이션스(Patience, 인내심)는 페이션트(Patient, 환자)와 한 끗 차이의 단어다. 술 마시고 이 곡의 제목을 떠올릴 때 종종 헷갈린다. 사는 일이 뭔가 안 풀리고, 할 일도 많은데 몸이 아프고, 좌절감과 통증과 외로움이 태풍처럼 밀려올 때 이 음악이라도 없었음 어쩔 뻔했나 싶다. 음악이 있는 한 인간은 절대 혼자가 아님을 다시 깨닫는다. (175페이지)

 

나는 우울한 기분을 고조시키기도 싫고 차분하게 가라앉히기도 싫어서 블론드 레드헤드의 <Misery Is A Butterfly>를 골랐다. 블론드 레드헤드의 음악들은 기본적으로 암울한 마이너 톤인데 리듬감은 뛰어나다.

그런데 리듬이 빠른 곡도 감정을 차분하게 만들거나 축축 처지게 한다. 이들의 음악은 여행을 출발할 때 듣거나, 막 시작된 연인과 스테이크를 썰면서 들으면 곤란하고, 우울이 집적거려 귀찮아 죽겠을 때 들어야 그저 그만인 것이다. (142페이지)

 

 

음악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그가 소음을 견디기 어렵다는 게 의외였다는 말씀. 음악도 어디 보통 음악이더냐. 헤비메탈을 즐긴다는데, 소음(고음, 찢어지는 음?)에 익숙할 것 같은 그가 새소리를 못 견뎌 새하고 맞짱이라도 뜰까 궁금했는데, 영웅 베토벤의 이름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한발 물러서다니! (아니, 박상, 나는 당신이 정말로 소음으로 귀를 고통스럽게 하는 새에게 한판 뜨자고 할 줄 알았단 말이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가 선한 사람일 것이라는 걸. 진짜 나쁜 사람이었다면 새소리를 신고하거나, 새를 사냥했을지도 모른다. (이러면 너무 심하게 나쁜 사람인가?)

 

이게 여행 에세이인가, 음악 에세이인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또 무슨 문제가 될까? 그냥 헷갈려버려! 여행지에서 떠오른 음악이나, 음악을 듣다가 찾아오는 깨달음이나, '엄마 손은 약손~' 하면서 들려오는 멜로디에 아픔이 나아졌거나, 여행자의 꼬질꼬질함에도 주눅 들지 않게 귀를 감아주는 '퐈이야~'이거나, 혹시 '비포 선 라이즈'를 찍어볼까 작업용으로 내밀어 보는 노래이거나... 그게 어떤 이유로든 음악이 함께하는 삶에 방점을 찍은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온다. (사실, 그의 찌질하고 짠내 나는 순간에 포착된 음악이 더 많긴 하더라만. ㅋㅋㅋ 그래서 그의 이야기들이 더 웃음이 나긴 하더라만. ㅋㅋㅋ 왜인지 그의 여행법을 한번은 따라하고 싶기도 하더라만. ㅋㅋㅋ 그의 인생 메들리를 저장하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된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더라만. ㅋㅋㅋ) 10년 동안 전 세계를 누볐다는 그의 여행과 음악이 뭉쳐 쏟아낸 이야기가, 그의 방식대로 삶을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시도를 품게 한다.

 

그의 웃김과 잘생김은 비례한다. 그가 안 웃길 때마다 그의 못생김은 전염병 번지듯 온 얼굴을 덮을 것이다. (이게 말이여, 방구여?) 본인 스스로 잘생겼다고 우기는(?)데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그는 정말 대단하다. 그 자신의 잘생김(?)을 십분 활용할 줄 안다. 상상 그 이상의 니글거림을 이탈리아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광고도 그의 행보 앞에서는 달콤함이 죽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에서 과감히 뱉은 그 말, "저 내일 베로나를 떠나요." 아아아악~~~ 이러지 마, 제발.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어지잖아. 숨이 막힌다고! 저런 작업 멘트 옳지 않아.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한번은 따라 하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뭐란 말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를 우째. 이런 달달한 멘트를 날렸는데도 그에게 돌아오는 건 콧방귀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 '뭐, 어쩌라고?' 아마도 술집의 그 여자는 딱 그런 표정으로 그를 보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내민 감자칩 한 접시는 이별 선물도 뭣도 아니었다. 이 감자칩이나 먹고 떨어져! 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작가정신 '슬로북' 시리즈의 의미에 맞게 흘러간다. 병맛 나는 일상에서, 죽을 것처럼 괴로운 문제들에서 잠시 벗어나도 좋을, 눈과 귀로 하는 여행으로 작가에게서 시간을 얻게 한다. 이렇게 오늘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고, 지갑에 달랑 만원 한 장 남은 돈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한두 시간쯤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별것 없이 맥주로 차린 밥상에 친구들을 초대해도 즐거울 것 같다. (아, 좋아. 편안해. 눈물 날 것처럼 슬픈데도 즐거워. 이거 뭥미?) 그는 너무 옛날 노래 얘기만 할 때도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원래 어느 순간 '그때 그 노래'가 떠오르는 때는, 다 옛날의 시간을 부르는 거다. 오늘을 기준으로... 응? 응답하라 시리즈나, 시그널의 음악이나 그때를 연상하는 장면들에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들이 삽입된 건 다 그런 이유 아닌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요. 귀에 찰싹 달라붙는 멜로디는 다 그런 세월을 통과한 것들이라오...

 

추억은 과거 한때 아름다움의 순간 포착이고,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회한의 부작용이 있어서 아픈 것 같다. 잠시 흐뭇해하다 한숨이 나올 만큼 아픈 걸 알면서도 우리들은 또 아름다운 순간들을 수집하고, 추억을 저장할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싶다. (282~283페이지)

 

음악이야말로 삭막함의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음악의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72페이지)

 

지금의 속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속도로 오늘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은 편안함을 건네는 그에게, 꼭 한마디를 하고 싶다.

배우 이정재는 얼굴에 잘생김이 묻었지만, 당신의 얼굴(글)에는 웃김이 묻은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안 웃길 때마다 못생겨질 거라는 걱정은 넣어둬요. 지금 웃긴 거로도 당신의 잘생김이 당분간은 유지될 테니. 그러니! 계속 똥꼬발랄해줘요. 젭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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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럼에도 우리는
다노 / 동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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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게, 원래 그렇다. 다 잊었다고,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채로 있을 것 같은데, 가끔 그게 아니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떠오른다. 그래서 기억이란 건, 지워지는 게 아니라 희미해진다는 걸 확인한다. 희미하게 흐려졌다가, 어느 순간 또렷하게 생각이 났다가, 잊고 싶다고 아우성치다 보면 또 억지로 눌러 담았다가, 그게 아닌 걸 알면 또 나타나서 혼란스럽게 하거나. 그러니까 한 마디로, 기억은 내 의지대로, 머릿속 다짐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우진을 처음 본 진서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

 

“혹시, 나 알아요?” 혹은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어요?”라는 말을 꺼내기가 부끄럽지 않은 순간. 진심이었다. 쌍팔년도의 작업 멘트가 아니라, 꼭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우진과 마주친 진서는 묻는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없는지. 우진도, 호재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싶다가도 불쑥불쑥 두통이 일듯 찾아오는 기억에 우진의 모습이, 우진의 목소리가 있다. 처음 본 게 아닌 것만 같다. 오랜 시간 가족처럼 지내온 호재에게 의지해 그 흔적을 찾아내려 하지만 쉽지도 않다. 뭔가를 자꾸 숨기고 있는데 그것도 금방 알아낼 수가 없다. 진서는 부딪혀 보기로 한다. 우진과 호재가 숨기는 어떤 시간을...

 

기억 상실이란 소재, 다시 만난 인연 앞에서 불행한 사람들, 그렇게 다시 만나는 게 옳은 건지 판단이 서지 않지만, 가슴 속 뜨거움은 그런 판단 따위 의미 없게 만드는 일들. 뭐, 색다른 분위기는 아니다. 그동안 만나온 소설들 속에서 익숙하게 느껴온 것들을 재탕하는 기분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 부분 분명 있는데, 어쩌면 이 소설은 두 사람의 로맨스 자체보다는 주변 인물과 함께 하는 힐링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이 소설이 로맨스소설의 달달함을 채우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 진서와 우진의 헤어짐의 이유를 알 것 같지만, 다시 만난 이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대의 기억 상실이 의미 없어지게 하는 재회가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서의 기억이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 (어차피 해피엔딩일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만나도 되는 건가 싶은 염려가 생기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그들의 시간에 나에게만 잘려나간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면 감당해야 할 충격은 아무도 계산에 넣지 않고, 오직 다시 만나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 연인으로만 그려져서 아쉽기도 하다.

 

이들이 가진 시간의 심각함 때문에 분위기가 우중충해지려고 하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그거 별거 아니잖아? 뭘 그렇게 고민해? 마음 가는 대로 그냥 해봐!’라고 말하듯 던지는 호재의 몇 마디가 어떤 결심을 아주 쉽게 만들면서 분위기를 전환한다. 누군가가 하지 못하는 말들을 호재의 가벼운(?) 입이 방정을 떨면서 대신 말해주기도 하는 순간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을 만드는 호재 때문에 복잡하다고 여긴 일들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실타래로 만들기도 한다. 진서의 아빠 역시 착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진서와 우진의 만남을 반대하면서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흐르는 마음을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진이 선택한 정의 때문에 와해한 그의 가족도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면서 가까이 다가간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의 형 강진이 보여주는 의외의 귀여움은 이 소설의 해피엔딩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 남의 일에 독설을 날릴 줄 알았지 관심이라고는 없던 인간이, 은근 오지라퍼가 되어가는 모습이 괜히 즐겁다.

 

누군가의 사라진 기억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인연들을 보는 노파심은, 두 주인공을 비롯해 주변에서 두 사람을 응원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용기 내게 한다. 잘라내려 했는데도 안 된다면, 모르는 사람으로 살면서 지우려고 했는데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기억해내고, 다시 만나고, 같이 갈 수밖에. 상처와 고통으로 채운 시간이 그들의 기억에 계속 박혀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버티면서,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계속 사랑할 수밖에...

 

상황의 설정이나 전개, 뭔가 자꾸 끊기는 흐름도 분명 있었다. 그때마다 몰입은 떨어지고, 페이지는 더디게 넘어가긴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으면 완독하지 못할 게 없다는 걸 보여준 소설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이 작가가 다음 작품을 내놓는다면, 그때는 좀 더 탄탄한 구성에,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졌으면 좋겠다. 로맨스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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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읽어 씨 가족과 책 요리점 초승달문고 42
김유 지음, 유경화 그림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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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어떻게 읽어야 맛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 책이라는 게 그냥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읽어보니 알겠더라.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을 읽고 있는 게 고문이라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책이 재미없다면 읽기 싫은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읽어야 할 때가 있고, 읽기 싫다 보니 자꾸 멀어지는 속도가 빠른 것도 책이더라는... 안읽어 씨 가족의 책 맛집 탐방기가 우리 모두의 입맛을 만족하게 하는 맛있는 책으로 거듭날지어다.

 

안읽어 씨 가족은 모두 네 명이다. 안읽어 씨, 산만해 여사, 안봄, 개 왈왈 씨.

안읽어 씨는 폼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을 절대 읽지는 않는다. 남들 앞에서 폼 나 보이는 책을 손에 들고 지하철을 탄다. 거실의 책장에도 폼 나는 책으로 채웠다. 산만해 여사는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한 적이 없다. 산만해서 말이다. 안봄은 떼쓰면서 자기주장을 내세운다. 이 집에서 가장 어른은 개 왈왈 씨다.

 

 

안읽어 씨 가족은 책을 좋아한다. 정말 좋아한다. 안읽어 씨는 책을 운동기구로 이용한다. 산만해 여사는 책을 냄비 받침으로, 높은 곳의 물건을 꺼낼 때도 사용한다. 안봄은 책을 장난감으로 여기고 논다. 왈왈 씨에게 책은 밥그릇이 되기도 한다. 안읽어 씨 가족에게 책은 너무 좋아하는 대상이지만, 읽지는 않는다는 게 반전이다. 책을 엄청 좋아하지만, 절대 읽지 않는다. 가끔 새 책이 필요하면 주문도 한다. 그런데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 오직 그들만의 방식을 책을 좋아하는 거다. 그러던 이 가족에게 갑자기 나타난 ‘맛있는 책 요리점’으로 가는 약도는 신비한 모험을 만든다. 안봄의 학교 숙제 때문에 등장한 이 책은 안읽어 씨 가족에게 맛있는 책 요리점으로 인도하는 네비게이션이 된 거다!

 

‘맛있는 책 요리점’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맛있는 책 요리점’을 사칭한 듯한, ‘거만한 책 요리점’에 갔다가 화나는 맛을 경험했다. 뭐 그리 거부하는 사항이 많은 요리점인지, 다시는 가지 않으리. 이름도 지워진 ‘XX 요리점’에서는 먹은 책은 헷갈리는 맛이었다. 지워진 간판 일부분처럼 뭔가 알쏭달쏭 알 수 없는 맛이었다. 그다음 찾아간 곳은 정말 이름값을 하더라. ‘맛없는 책 요리점’에서는 아주 끔찍한 맛을 보았다. 도대체 ‘맛있는 책 요리점’이 있기는 한 걸까? 분명 주소 그대로 갔는데 왜 보이지 않는 거지? ‘책도시 책마을로 99’ 맞잖아? 도대체 ‘맛있는 책 요리점’은 어디 있는 거야?

 

어찌어찌, 보물섬 찾아가듯 헤매다 보니 드디어 도착했다. 맛있는 책 요리점! 와우~ 여기는 메뉴판부터 다르다. 발효 종이를 층층이 쌓은 책, 무지갯빛 그림을 곁들인 책, 오븐에 구운 사진 책, 문장 사이에 꿀을 바른 책, 숫자 소스를 듬뿍 올린 책, 바삭하게 튀긴 글자 책, 낱말 새싹을 버무린 책. 메뉴만 봐도 뭔가,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 같잖아. 식당 입구부터 분위기가 다르더라고. 사람들이 북적북적, 겨우 한 자리 남은 곳에 안읽어 씨 가족이 앉게 되었지. 그리고 책 요리의 다양한 맛의 세계로 풍덩 빠져버린 거야. 게다가 마구 편식해도 된다잖아! 이렇게 자유로운 요리점이 있다니, 지상 천국이로구나.

 

쌀로 만든 종이에 유기농 식용 잉크로 글자와 그림을 인쇄하고, 옥수수수염으로 종이를 묶어 만든 건강한 책 요리를 비롯해서 이제까지 책에서 보지 못한 맛이 수두룩했다. 아니, 이런 책 요리점이 이제 알았다는 게 뭔가, 뭔가 많이 억울해! 이제라도 다 먹어보고 말테야! 편식이 웬 말인가! 이 기회에 편식 습관을 없애버리고 말 테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 부분인데, 맛있는 책 요리점에서 화장실에 갔던 안봄이 길을 잃어서 가게 된 곳이, 맛있는 책 요리점의 주방이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하얀 모자를 쓴 요리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하는 말이, 책 만드는 일을 대하는 자세를 알려주었다고 해야 할까.

“오늘 들어온 이야기가 싱싱하지 못해요. 다시 보내달라고 해야겠어요.”

“배꼽 빠지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오죠?”

“따뜻한 이야기가 더 필요해요.”

요리사들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103페이지)

책을 요리하는 것을 처음 본 안봄은 신기했다. 여기서 이어지는 요리점의 고양이 할아버지(아마도 매니저쯤?)의 말이 책에 관한 기본을 말해준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책 한 권을 요리할 때도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단다. 그래야 맛있는 책이 될 수 있지.”

“맛있는 책은 어떤 건데요?”

안봄이 되물었습니다.

“음, 우선 재료가 좋아야겠지. 파릇파릇 신선한 이야기나 깊은 맛이 나는 이야기처럼 좋은 재료에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이 더해진다면, 맛있는 책이 탄생하지 않을까?”(106페이지)

 

 

한 권의 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게 된 안봄은 책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좋은 소재에서 신선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기대. 책과 관련한 많은 사람이 정성을 다해 이루어놓은 책의 탄생.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책 만드는 과정이 좀 더 흥미롭고 재밌게 재탄생한 이야기다. 두껍고 어려워서 읽기 싫지만 어디 놓아두면 폼 나는 책이 아니라, 저절로 펼쳐보고 싶어지게 하는 책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는 여정이었다. 그동안 안읽어 씨네 이야기를 듣고 보면 이건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의 도구쯤으로 활용했던 이 가족이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계기가 된 거니까. 무엇보다, 그저 취향대로 주문했을 뿐인데 자기 입맛에 맞게 나온 책 요리들로 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열린 것이다. 책만 보면 답답하고, 독후감 숙제라도 해야 하니 억지로 펼치고, 이런 것은 좀 읽어야 한다면서 권하는 책을 눈앞에 두고 한숨만 푹푹 쉬어지는 어린이들에게, 스스로 책 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 메뉴로 가득한 책 요리점이었으니!

 

이 가족이 책을 대했던 자세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 허세 부리며 책을 장식으로 활용했던 안읽어 씨, 산만해 여사의 산만함으로 가방으로 변신한 듯한 책 디자인, 남의 독후감을 짜깁기해서 겨우 제출한 숙제를 읽지도 못하는 두통을 일으키는 안봄, 왈왈 씨가 핥아 대서 표지가 지워지는 지워지기까지 하는 책은 더는 볼 수 없다. (냄비 받침으로는 이용해봤어도 개 밥그릇으로는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놀라웠지만... ^^) 책을 이루는 재료들이 어떻게 어우러져서 태어나는지, 어린이의 시선에서 재밌게 엮어 놨다. 안읽어 씨 가족이 각자 주문한 책으로 자기 입맛을 찾을 것처럼 책에서 찾는 다양한 맛이 누구에게나 찾아들 수 있다는 의미를 가득 담은 이야기다. 재밌고, 맛있고, 달콤하고, 고소하고, 새콤하고... 더 다양한 맛을 즐기고 찾는 그 날까지, 계속 책맛에 빠져들어 맛있게 꼭꼭 씹어 먹을 수 있기를.

 

 

오늘 안읽어 씨는 정말 재미있는 책을 가지고 지하철을 탔고, 산만해 여사는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하고, 안봄은 책이 얼마나 맛있는지 확인하려고 책을 씹어 먹고, 왈왈 씨는 다 먹을 밥이 아쉬운지 여전히 책을 핥아먹고 있다. 이 정도면 책을 충분히 즐기는 거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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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시인선 97
권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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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익숙한 이름인데,

그래서 나는 그의 시집을 오래전부터 본 느낌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14년 만에 내는 시집이라고 했다.

그럼 내가 본 그의 시는 어디에서였던가...

 

가을에 만나기 좋은 제목에 반해서 구입했다.

막상 펼쳐보니, 제목이 잘 어울리는 시들로 가득했다.

너무 짧은 분량에 괜히 서울해지려는 시집이다.

 

 

휘어진 길 저쪽

 

세월도 이사를 하는가보다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할 시간과 공간을 챙겨

기쁨과 슬픔, 떠나기 싫은 사랑마저도 챙겨

거대한 바퀴를 끌고

어디론가 세월도 이사를 하는가보다

 

(중략)

 

어디로 갔을까 그 세월의 바퀴는

장독대와 툇마루와 굴뚝을 싣고

아버지의 문패와 배호가 살던 흑백텔리비전을 싣고

초저녁별 지나 달의 뒤편 저 너머

어디쯤 살림을 풀어놓은 것일까

 

(중략)

 

내 마음속 깊은 골목 맨 끝 집

등불 속에 살고 있는 것들

오, 어느새 그 속으로 이사와

아프고 아름답게 반짝이며 자라고 있는

세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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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 좋아하는 독자들 많은 거인디...

애장판 소장하고 싶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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