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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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무뎌지기 쉬웠다. 불편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안으로 숨기고 아닌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상대에게 다가올 언짢은 말을 듣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내가 느끼는 불합리한 대우를 나 스스로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해야만 편해진다고 생각했다. 그 편해지는 주체가 누구인지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아닌 상대가 편해지는 일이었겠지?

 

너무 익숙하게 보아왔던 장면들이 ‘별일’이 되어버린 건 왜일까. 저자는 전작 『82년생 김지영』의 의미를 이어가기라도 하듯이 이 ‘별일’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애쓰는 듯 보였다. 아니, 저자는 굳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레 전작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저자의 전작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받아들이기로 하곤 했던 김지영 씨 인생의 모든 순간이 우리의 이야기였기에 잊을 수 없다.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KTX 해고 여승무원 이야기인 「다시 빛날 우리」는 지금도 뉴스에서 보는 장면들이 소설에 녹아 있다. 그녀들이 외치는 현재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부정부패로 저지른 일 때문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오랜 시간 외치던 목소리들은 법원의 로비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낼 수 있을까? 다양한 이름의 그녀들이 부딪히고 겪은 별일들은 다양하지 않았다.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강이 모여서 바다로 연결되는 어떤 지점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저자가 불러낸 이름들은 각자가 좁은 강줄기였다. 그 강줄기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길목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소진 씨는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했다.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올바르게 처리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되돌아온 건 그녀를 향한 수많은 화살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위장병과 탈모를 얻은 그녀는 거기서 멈춰야만 하는 걸까? 학교 급식 조리사의 단체 파업 때문에 오늘도 엄마의 도시락을 들고 등교하는 수빈은 엄마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들 급식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한다고 서운한 눈빛을 보낼까? 아니면 엄마가 되찾으려고 하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응원할까? 국회 청소노동자 진순 씨는 열심히 일했다. 비정규직, 하청 같은 수식어가 그녀의 노동을 더 힘들게 했지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업무를 더는 열심히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 노동의 대가는 어이없는 수준이었다.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힘을 냈다. 직장으로의 출근길이 행복이었으면 싶었다. 매우 어려운 싸움을 하면서 얻어낸 결과로 그녀는 더 열심히 일하고 싶은 노동자가 되었다. 국회에 직접 고용된 청소노동자. 더 열심히 일하고 싶게 만드는 근무 환경이 일의 능률을 높여준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다.

 

다양한 나이대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이 소설이 결코 소설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사회 초년생으로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달리기와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시간을 만드는지, 가사와 노동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고충 같은,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눈물만 흘리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싸우기만 하자니 통하는 말이 없고, 두 손을 내려놓고 있자니 해결될 게 하나도 없는 상황. 답답하고 힘들지만 계속 나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대로 꿋꿋하게 묵묵히 걸어가야만 하는 그녀들의 일상이, 인생이 말을 하는 거다. 우리 여기 이렇게 있다, 더 나아가지 않고서는 현실의 불합리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으니, 인간다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이 목소리는 힘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그녀들의 많은 이야기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이혼일기」와 「결혼일기」, 「엄마일기」는 한 가정의 세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정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시선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같은 어려움을 가진 여성의 마음을 엿볼 수도 있었다. 큰딸의 이혼과 작은딸의 결혼이 동시에 이뤄진다. 언니의 이혼으로 여동생은 결혼에 관해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아직 겪지 못한 일들에 언니의 이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곧 언니와 동생은 공감의 시간을 가질 거로 생각한다. 두 딸의 이혼과 결혼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심란하지만, 큰딸의 이혼을 반대하기는 싫다. 당신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혼이란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큰딸의 이혼이 곧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발악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여자의 이혼이 주홍 글씨로 여기던 시대는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이혼이 주홍 글씨가 될 이유는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언니, 나 프러포즈 받았어. 오월에는 상견례를 하려고 해."

"아, 그래? 잘 됐네."

그리고 잠시 침묵.

"언니, 나 결혼 할까 말까? 결혼이라는 거 어떤 거야? 할 만한 거야? 언니가 하지 말라면 그냥 여기서 멈출게. 이유 같은 거 묻지 않을게."

결혼이라는 게 어떤 걸까. 나는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의외로 여러 장면들이 기억났다. 오랜 상의 끝에 선택한 식탁 위 액자, 같은 영화를 보고 나누었던 너무 다른 의견들, 밤 산책 중 사먹은 삼각김밥과 컵라면, 내 승진 축하파티…… 나는 동생에게 결혼하라고 말했다.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그게 쉽지 않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대로 나는 내 이혼을 진행했고 동생은 결혼을 준비했고 나와 동생의 일 모두 잘 마무리됐다. 이게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90페이지, 이혼일기)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당신이 윤 서방한테 전화 넣어봐."

"내가? 내가 왜?"

"잘 달래서 데려가라고 해야지."

"쟤들이 어린애들이야? 왜 우리가 끼어들어?"

"그래서 이혼하게 둘 거야?"

"이혼하라고 안 하지. 근데 절대 이혼만은 안 된다고도 안할 거야. 우리 정은이 똑똑하고 정확한 애야. 알아서 잘 판단하고 선택하고 잘 살 거야."

남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자고 딸들을 다 저렇게 키워놨어? 여자애들이 좀 숙이고 들어가는 법이 없어. 다들 나 잘났다고 저러고 있으니. 당신은 정은이 걱정되지도 않아? 여자 혼자 사는 게 어떤 건지 당신이 알기나 해?" (187페이지, 엄마일기)

 

이혼하는 큰딸, 결혼하는 작은딸, 그런 두 딸을 바라보는 엄마. 세 사람의 마음을 듣는 동안, 여자라는 존재가 다양한 자리를 갖고 있구나 싶었다. 거기에 사회에서 또 차지하는 역할들까지. 그렇게 많은 위치에서 존재하는 대상인데, 왜 적정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했나... 아프고 아픈 이야기들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익숙하고 당연시하게 되는 습관까지 붙었는지도 모른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인 건 맞다. 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틀리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일어나는 ‘별일’이 익숙해지지 않을 시간을 꿈꾸게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넘기고 나니, 가만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저자가 이 기록을 남겨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이유가 저절로 알게 될 수밖에 없다. 특별히 별일도 아니라고 말문을 여는 그녀들에게는,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때로는 투쟁이 되는 일들이었던 거다. 르포 기사로 연재되어 다시 소설로 태어난 이 이야기들이 내는 목소리는 부조리의 폭로이면서, 힘든 싸움에서 다른 방법이 없기에 계속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용기에,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연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독자로 그녀들의 싸움에 동참하는 나의 힘도 보태고 싶다.

 

그녀들의 짧은 이야기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다. 결혼과 이혼, 오랜 고심 끝에 선택한 비혼, 억울하게 당한 해고, 버스 기사를 하면서 추행에 대처하는 방법을 습득한 여성 버스 기사, 아내에서 엄마로 손주를 돌보는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이 육아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국정농단 폭로의 문을 연 여학생들의 시위가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 위해 기록해낸 결과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인생의 품위를 만드는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온몸으로 묻고 답하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끝은 없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것이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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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들에게 사면초가 1~2 (완결) - 전2권
소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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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주(여자 주인공 이름이 ‘여주’다)에게 찾아온 네 명의 남자. 그냥 남자도 아니고 네쌍둥이다. ㅋㅋ 네 명의 남자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좋아야 하는데, 팔짝팔짝 뛰어야 하는데, 이건 대력 난감이다. 형제라잖아. 여주가 생각하는, “인생에 한 번쯤 인기가 폭발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데, 나는 그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꽃보다 남자 F4의 형제 버전. 네쌍둥이의 등장은 다른 여학생들도 부러워하지만, 문제는 네 명의 남자 모두 여주에게 향하는 눈길이다.

첫째 일남이. 내신도 1등급인 우등생이다. 마음도 예쁘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여주라면 가장 먼저 일남이를 보게 될 것 같은데, 또 일남이 같은 애가 좋긴 해도 음, 너무 모범생이라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나는 그런 심심함을 느낄 수 없다. 왜냐고? 나는 여주가 아니잖아. ㅠㅠ 일남이가 나에게는 안 올 거니까...)

둘째 이남이. 과격하게 보이는 상남자다. ‘여주 넌 나랑 사귀어야 해!’라고 외치면서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가만히 보면 똘끼 충만한 것 같은데, 단순한 것 같아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것 같기도 하고. 그 단순함이 매력이 되기도 할 것 같은데, 내 취향은 상남자는 아니므로... 하긴 이남이로 나에게 안 올 것이기에 이남이의 상남자 스타일을 내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네. 쩝!)

셋째 삼남이. 운동을 하는 캐릭터. 거친(?) 외모와는 다르게 마음으로만 말하는 남자. 눈으로 말해요, 라고 말하는 시기가 지나간 지가 언제인데 고릿적 연애를 꿈꾸는가. (삼남이의 순수한 마음을 아름답지만, 답답해서 패스. 삼남이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을 살짝 가르쳐주고 싶기도 하다.)

넷쨈 사남이. 귀요미 폭발. 애교부터 청소, 요리,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남이는 그 집 형제들의 엄마처럼 보인다. 물론 사남이도 여주를 좋아한다. 동갑인데도 여주한테 누나라고 부르며 연하남 캐릭터를 만든다. (귀엽기로 따지면 사남이가 최고지만, 음, 사남이의 들러붙음이 나는 별로일세. 사남이도 내가 별로겠지만... ㅠㅠ)

 

“전생에 지구쯤은 구해야 이런 기적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염없이 부럽긴 하다. 한꺼번에 네 명의 남자가 달려들면, 무섭기도 하겠지만 흐뭇하기도 하겠지? 근데 여주는 좀 이상해. 아니, 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다 이상해. ㅎㅎ 뭐랄까, 책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남주를 찾아 헤매기 마련인데, 매 회 남주가 달라지는 느낌? 남주가 달라질 것만 같은 느낌? 오늘은 일남이였나 싶으면, 일주일 후에는 이남이? 그러니까 이 말인 즉슨, 여주의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의 마음이기에, 그 마음 들여다볼 수가 없어서 함부로 남주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게 이 웹툰의 재미였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여주의 짝은 누구란 말이냐~ 하면서 보게 되니까 말이다.

 

여주의 친구 나비가 등장하는데, 나비 역시 오늘은 일남이, 내일은 이남이, 이런 식으로 마음이 갈대가 된다. 아니, 나비는 갈대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사빠라고 해야 할까? 너무 착해서 순간순간 상대의 착한 점이나 매력을 바로 캐치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여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그때마다 알게 모르게 나비와 여주, 네쌍둥이 중 한 명은 삼각관계(사각관계)에 빠지게 되고 은근한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는데, 그게 참 웃음이 난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어서 그런지, 애들의 연애가 참 풋풋하고 신선하게 보인다.

 

매 순간 달라지는 여주의 마음, 그때마다 연애와 실연에 빠지게 되는 네쌍둥이, 질투와 응원을 보내는 여주 친구 나비. 갈팡질팡, 오락가락, 여주의 마음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목적지를 확인하려고 끝까지 읽게 되는데, 아............. 너였어?

 

네쌍둥이의 성격과 매력이 다 달라서 누구 하나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각자의 매력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기에 누구 하나 놓고 싶지도 않고, 다 가질 수도 없고... 그렇게 보면 어쩌면 여주는 현명한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때그때 자기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그냥 가버리는 그녀가 당돌하게 보이면서도, 그게 솔직한 마음이기에 맞는다는 생각도 들고. ㅋㅋ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도,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느낌에 이 애들의 성장기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만 작가의 머릿속에 어떤 이야기가 남겨있을지 알 수 없어서 궁금할 뿐이다. 오랜만에 풋풋한 아이들을 보면서 잠깐 설레기에 좋은, 오래 전에 읽었던 순정만화 느낌에, 로맨틱 코미디 같은 분위기에, 현실감 좀 떨어지는, 오직 설렘설렘을 느끼고 싶은 순간에 딱 펼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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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주 그냥... 죽인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선입견인지 고정관념인지 모르겠지만,

내 머리 속에는 '교회 오빠' 이미지가 있다.

뿔테 안경을 낀, 선한 눈매의, 피부가 좀 하얗고, 공부도 좀 잘 할 것 같은...

전체적인 느낌은 한없이 착하고 착한 느낌을 뿜뿜하는 오빠의 분위기다.

테오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이석훈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바로 그 느낌.

 

작가 이기호가 들려줄 '교회 오빠'는 또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지 무척 궁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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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누가 듣는가 - 제1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동효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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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 순간.

책을 읽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별것 아닌 내용에 갑자기 울컥해지거나, 위로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눈에 들어온 문장 하나로 감동이 쏟아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배꼽 잡게 하는 허무맹랑한 제스처에 깔깔대거나... 우리 일상에 그런 순간을 만들어주는 게 많이 있겠지만, 책과 비슷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게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 기분에 맞춰, 상황에 어울리게 스리슬쩍 다가와 버리는 순간. 보통 이런 순간을 타이밍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 타이밍은 참 절묘하다.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이나 노래가 그렇게 다가오면 당황스럽잖아. 진짜 듣기 싫은 노래였는데, 갑자기 좋아지는 그런 거, 적응하기 좀 그렇잖아. 아이러니하게도, 그 타이밍이란 건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어느 순간, 정말이지 그 찰나에 꽂혀버리는 것. 오래전 얘긴데,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던 선배가 듣고 있던 노래 한 곡에 반해 그 선배를 좋아하게 된 적도 있다. '어? 이 노래 너도 좋아해?' 하는 괜한 공감의 이유를 찾아낸 게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제 와 기억해보면 그냥 웃을 일, 어렸을 적 얘기지만 그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역시 뭐든, 타이밍이 중요한 거였어.

 

왜 하필 지금 이런 노래가 나오는 것일까? 흘러나오는 저 노래야말로 그녀의 본질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문득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삶의 고비 고비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노래, 의미심장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모든 우연은 신이 흘린 편지래요, 소곤대는 성은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185페이지)

 

아버지의 구타가 장난 아니다. 주인공 오광철은 아버지의 술과 폭력으로 말더듬을 갖게 되었다. 이 말더듬은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첫 사회생활인 학교생활부터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그 말더듬은 어마무시한 장애가 된 거다. 학교생활, 직장생활, 군대생활, 연애까지 모두. 술을 마실 때, 노래를 부를 때 그의 말더듬은 잦아든다. 그가 찾은 말더듬의 치유법이다. 그래서 넘치게 술을 들이켠다. 술을 깨기 위해 노래방을 돌고, 다시 술을 마시고, 노래방, 술, 노래방, 술... 이 정도면 알코올중독 수준 아닌가? 금방 끊겨버리는 필름, 일어나보면 젖어있는 옷,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몸뚱이. '자신이 이렇게 된 게 다 그 인간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가 세상을 제대로 살지 못한 이유, 말더듬을 숨기려고 침묵을 택한 일상, 비겁하고 외로워지는 순간들은 덤.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모두 그 인간 탓이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모든 걸 내보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좋아했던, 기타를 잘 쳤던, 말발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개둥이(개주둥이). 개둥이와의 우정은 광철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제목 때문에라도 눈치를 챘겠지만, 다양한 노래가 등장한다. 1980년대의 음악이 주를 이루고 팝송과 가요가 계속 언급된다. 솔직히 내가 모르는 음악도 많았고, 흥얼거리던 기억이 있는 오래된 노래도 있었다. 가사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멜로디가 기억나 나도 모르게 알게 된 노래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삶을 성장의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음악으로 인해 이들의 인생이 어느 정도 흔들리는, 혹은 포기한 꿈이 만들어낸 격한 감정들을 풀어낸다. 거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광철이 처음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던 순간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나올 때는, 음악이 한 인생을 어떻게 주관할 수 있는지 놀랍게 한다. 그 안에 한 사람의 집착 같은 사랑이 어떻게 폭력을 감당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사람이, 절실해지면, 간절해지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은 절망, 체념, 혹은 기대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광철의 엄마가 선택한 인생, 광철의 아버지가 포기한 삶, 광철이 알지 못하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그가 선택한 인생의 찰나들이 그에게 남겨준 게 뭐였는지, 그 고리의 시작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게 했다. 그 길에서 함께한 노래들이 구성지다. 피식 웃음도 났는데, 사실 그 절절한 마음들이 노랫가락에 들려오는 것 같아서 아픈 마음이 더 컸다. 노래라는 게, 음악이라는 게 위로나 즐거움이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때로는 그 음악이 거부와 분노의 몸부림이 될 때는 안타까움이 흘러내린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모든 것들에 음악도 있을 텐데, 그 음악이 미움으로 변해버린 순간 바로 버려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노래는 내게 휴식이었고, 삶을 버팅기게 하는 피난처였다. 그건 내가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부터가 그랬다. 구타 뒤에 나오는 아비의 그 흥얼거림.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이 싫어서도 나는 곧잘 내 방에 처박히곤 했다. 처음엔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헤드폰을 꼈다. 헤드폰을 끼는 순간, 나는 외부로부터 완벽히 단절되었다. 헤드폰만 끼면 원하는 소리를 언제고 들을 수가 있었고, 혼자서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었기에 아비의 노랫가락이 들려오지 않아도 나는 자주 헤드폰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FM 라디오를 듣다가 금방 팝송에 빠져들었고, 중1 때 처음 스모키 판을 사들이는 걸 시작으로 그때부터 과도한 열정으로 레코드판을 모아댔다. (47페이지)

 

『노래는 누가 듣는가』의 주인공 오광철의 인생 안으로 다가온 노래가 참 굴곡지다. 화자인 '나' 오광철의 연대기적 서술로 이어가는 이 소설 속에서, 틈틈이 그에게 다가온 노래가 그의 역사를 함께했다. 그의 삶에 숨겨진 것들이라고 말해도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면 다 그의 시간을 채워준 것들이지만, 그 당시에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고스란히 보여서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외롭고 고독하고, 상처가 깊고, 죄의식을 만드는, 열정을 품었던 음악과 인생들. 좋아서 좋았고, 싫어서 싫은, 귀로 파고드는 그 음악들이 그에게 온갖 감정을 만들고, 분노게이지를 상승시켰으리라. 알 것도 같다. 어쩌지 못하는 그 몸부림을, 발악을, 회피를,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원인으로의 화풀이를, 결국, 어떻게든 이루어질 것 같은 화해의 멜로디를...

 

주둥이만 살아있던 개둥이와의 추억, 미친 듯이 패대기치던 아버지의 폭력 뒤에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던 노래, 어머니가 중독되듯 빠져들었던 교회의 찬송가.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를 카페 풍차의 주인 정희. 순간순간 어둠이 온몸을 장식하지만, 햇빛 아래로 돌아온다. 누구나가 바라는 결말 아닌가? 읽으면서, 대물림하듯 술판을 벌이는 광철에게 매번 분노했지만, 그 이유를 찾고 싶어 거슬러 올라갈 때마다 그를 향한 분노는 동정으로 변한다. 내가 알 것 같은 느낌들,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일들, 그래서 보는 이가 좌절하게 하는 순간들이 답답했지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을 봐야만 안심할 것 같아서... 참으로 광철스러운 행보에 웃음이 나지만 어쩌랴. 그가 그런 모습인 것을. 됐다, 그 정도면. 지금쯤 어디 시골 다방에서 주방을 책임지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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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엄마
신현림 지음 / 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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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의 글귀를 보는 일은 인생에서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엄마와 함께 책을 읽는 일은 삶의 지혜와 철학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영혼을 느끼고 영혼이 풍요로워짐을 깨달으리라. 참으로 멋진 일이다. 지금 당장 엄마가 좋아하실 글이나 시를 전해보기를. 그러면 그 순간 추억이 만들어진다는 것. (206페이지)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아니,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 어떤 문장 하나, 어떤 음악 하나가 눈과 귀에 들어와서 힘든 한순간의 위로가 되는 때. 무심코 들었던 멜로디에서 눈물이 주룩 흐르기도 하고, 시의 한 구절이 가슴을 파고 들어와 이 순간을 건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에도 벅찬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하나를 지탱하는 것도 어려운 순간마다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라는 존재감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감정의 거대한 숫자이리라. 그 무게가 나를 꼿꼿하게 설 수 있게 묶어주면 좋겠지만, 또 그러지 못해서 에너지의 기복을 그리는 게 인간이고 엄마일 것 같다. 시인이자 작가이자 선생인 저자가 엄마로 살면서 그런 순간이 없었으랴.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순간이 이 사람에 없을 수는 없다. 그때마다 그녀를 위로하고 힘이 되게 하는 시의 구절들을 그대로 담아온 책이다.

 

매번 흔들리고 좌절할 때마다 엄마라는 이름의 그녀가 사는 의미를 얻게 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녀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힘을 내게 했던, 이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38편이 담겼다. 거기에 저자가 엄마로 살면서 겪은 온갖 감정을 쏟아내는 에세이가 함께 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겪는 육아의 고충, 아이가 커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세상의 시선에 상처받았던 일. 하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된 딸의 엄마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옆에서 위로가 되었던 문장들이다. 두렵고 막막한 날들에 겁이 나면서도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품은 시 때문이었다. 시인들의 시가 묵묵히 그녀를 지켜주었고, 그녀 자신이 써 내려간 시 구절들은 그녀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글귀를 읽을 때마다

반드시 도달해야 할 어떤 곳이 있을 것 같다

그 비로소는 어떤 곳이며 어느 정도의 거리인가

비로소까지 도달하려면 어떤 일과 어떤 현상, 말미암을 지나고

또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할 것인가

팽팽하게 당겨졌던 고무줄이

저의 한계를 놓아버린 그곳

싱거운 개울이 기어이 만나고 만

짠물의 그 어리둥절한 곳일까

비로소는 지도도 없고

물어물어 갈 수도 없는 그런 방향 같은 것일까

우리는 흘러가는 중이어서

알고 보면 모두 비로소,

그곳 비로소에 이미 와 있거나

무심히 지나쳤던 봄꽃,

그 봄꽃이 자라 안 할의 사과 속 벌레가 되고

풀숲에 버린 한 알의 사과는 아니었을까

비로소 사람을 거치거나

사람을 잃거나 했던

그 비로소를 만날 때마다

들었던 아득함의 위안을

또 떠올리는 것이다 (「비로소」, 이서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부터, 너무 유명해서 귀에 익숙한 시인들까지. 그들의 시를 저자와 같이 듣고 있는 느낌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계속된다. 누군가의 일상을 듣는 것도 같고, 힘든 순간을 잘 건너고 싶은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부정의 감각들이 온몸을 감싸고 주저앉고 싶게 할 때마다, '그래, 사는 거 뭐 별거 있나, 다시 일어서는 거지, 이 정도도 건너지 못하면 뭘 할 수 있다고, 계속 가보는 거야.' 많은 의미와 감동을 담은 메시지로 전해오는 시 구절들이 힘이 된다. 그때마다 보이는 건 바로 옆의, 저자의 딸이다. 딸을 키우면서 알게 되는 감정이 또 다른 문장들로 함께 녹아 있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보이는 게 있다. 이제는 딸과 함께, 친구처럼 동료처럼 가족처럼, 서로 의지가 되고 무한의 응원을 보내는 사이가 되어 있다는 거. 힘든 시간 같이 겪어간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저자의 상황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 내가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겪고 느끼는 시간의 감정은 저자와 비슷하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이지만, 그 이상의 많은 관계로 정의할 수도 있는, 엄마와 내가 공유한 같은 경험들이 만든 관계의 끈끈함이 있다. 지금도 서로 싸우면서 감정도 상하고 그러지만, 언제 그렇게 싸우고 그랬냐는 듯이 새로 개봉한 영화를 같이 보고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웃는 시간이 있다.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떤 순간들을 같이 건너온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다. 저자와 딸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엄마의 아픔을, 엄마의 노력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지... 그런데도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계속 이어가는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괜히 뭉클해진다.

 

물 냄새를 맡고 싶어

좁은 계단으로 강가에 내려간 적이 있다

 

휘어진 모래톱

부드러운 변방에 서서

눈을 감고 냄새를 맡았지만

 

물가에선 또 다른 냄새가 그리워

어디로 더 가야 하지

 

다리도 계단도 없을 곳이라면,

아득히 귀를 열고 선 내게

 

흘러드는 물은 멀어지는 물살은

날더러 기슭이라고 그토록

 

어디든 닿고 싶어서 (「강가에 내려간 적이 있다」, 조원규)

 

여름을 느끼게 하는 한낮의 더위가 아니라 아직은 봄이 다 가지 않았다고 느끼게 하는 선선한 바람을 맞는 기분으로 읽고 싶은 글이다. 부채질하면서 밀어내고 싶은 않은, 가슴으로 스며드는 바람으로 느끼고 싶어서... 아무리 이해를 한다고 해도 엄마의 모든 것, 모든 시간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는 것 이상으로 건네져 오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저자의 글이 낯설지 않다. 읽는 순간순간 어떤 감동이 느껴질 때마다, '한 번도 좋은 딸인 적 없다'는 저자의 고백이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끔해진다. 엄마의 마음을, 엄마의 힘든 시간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저 습관처럼 '엄마니까'라는 생각으로 지나쳤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쉽지 않았겠구나. 우리 엄마도, 세상 모든 엄마도...

 

'엄마라는 무게를 견디고 있는 당신에게'라고 말하지만, 늘 삶의 무게를 이겨내야 하는 숙제로 오늘을 버티는 우리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글이다. 엄마라는 책임이 절대 가볍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또 각자의 무게를 안고 사는 게 우리니까 말이다. 삶이 언제나 편하게 지나갈까 싶은 투정이 가슴 속에서 뛰쳐나오려고 하면서도, 이렇게 살아가며 울고 웃는 게 우리 인생인가 싶은 마음에 또 한 번 자신을 토닥이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위로가 없다면 우리가 오늘을 사는 일은 더 힘들 것만 같다. 저자가 전하는, 위로와 힘이 되었던 시 구절들이 이 책을 읽는 모두에게 그대로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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