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 시리즈를 두 편 정도 읽은 게 전부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만화의 분위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알면서도 꾸준히 보고 싶은 만화이기도 하다. 특이 이번 베스트 컬렉션은 '베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녀석들의 모험 같은 일상이 재밌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얘네들 원래 이랬나 싶게 각 캐릭터를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한꺼번에 모아놓고 보니,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각자 해결하는 자세가 다르다. 각자의 개성이 더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매력이 달라서 다가오는 색이 다르기 때문에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이 녀석들의 일상에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우리와 너무 닮았다는 거다. '어라? 이거 나도 궁금했는데, 왜 그런 걸까?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문제들을 풀어가는 방식이 가슴으로 한 번에 들어온다. 때로는 고민도 해야 하지만,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 대부분은 의외로 쉬운 답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보노보노의 엉뚱함은 그가 하는 고민에 그대로 드러난다. 아빠의 보물창고에 새긴 구멍 때문에 사라진 귀한 것들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발을 동동 구른다. 너부리, 포로리와 머리 맞대고 고민하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 여기저기 다 뒤져봐도 마찬가지. 길을 떠난 아빠가 돌아올 때는 다 되었고, 사라진 아빠의 보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러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귀가 번쩍 뜨인다. "혹시 아빠가 길을 떠날 때 그 보물들을 가지고 간 건 아닐까?" 그러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처음부터 아빠의 보물창고에 생긴 구멍으로 사라진 보물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어봐도 좋았을 것을...

 

왜 우리는 아닐지도 모를 일에 걱정부터 하는 걸까 생각해보게 한다. 나처럼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을 계속 쓰고 고민하는 사람이 보면 좋은 안내서 같은 부분이었다. 보노보노가 아빠의 사라진 보물을 걱정할 때 누군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아마도 보노보노는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아빠가 들고 간 게 아니었는지 묻고, 그게 아니라면 다 같이 찾아보면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 대부분이 처음부터 할 필요 없는 고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일상적으로 뱉는 쉬운 말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 이 녀석들이 아빠의 보물을 찾아다닌 시간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언제 해도 해야 할 걱정이라면, 확인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꼬리를 떼어버리겠다는 너부리의 다짐으로 궁금해졌다. 너부리의 꼬리는 정말 필요 없는 것일까? 처음부터 있던 꼬리의 쓰임새가 분명 있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꼬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는 거겠지. 그런데도 너부리는 그 꼬리가 거추장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다. 떼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어떻게 떼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그렇고, 웬만한 다짐은 아닌 듯하다. 꼬리가 없어도 죽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참에 확 떼어버리고, 예쁜 너부리로 거듭나고 싶었나... 포로리와 보노보노는 너부리의 꼬리에 마음을 두고 너부리의 마음을 바꾸려고, 그동안 그 꼬리가 너부리의 몸에 붙어 있으면서 했던 활약(?)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혹시나 너부리의 떼어낸 꼬리로 동물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둥, 처음부터 한 몸이었으니 당연하다는 둥, 결론은 같다. 꼬리를 떼어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때 현명하게 답을 준 족제비 아저씨가 너부리의 다짐을 바꿔놓았는데, 이상하게도 매일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을 품평했던 나 자신이 떠오르더라. '나이 먹으면서 눈이 자꾸 처지는데 어떻게 좀 해야 하나? 조금 더 예쁜 외모를 만들고 싶은데 좋은 방법 없을까?' 하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하던 것을 고민해본다. 떼어내도 죽지 않으니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떼고 싶다던 너부리처럼,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외모를 만든다고 죽지 않으니까. 하지만 굳이 떼어내지 않아도 너부리인 것처럼, 지금보다 더 예쁜 외모가 아니어도 나인 것이라고. 목숨에 지장을 줄 문제가 아니라면, 이대로 사는 게 불편한 게 아니라면, 처음 주어진 상태로 오늘을 살아가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본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잖아?

 

 

꿈을 꾸는 이유를 궁금해하면서도 왜 꿈은 이상한 걸까 고민한다. 꿈이 이상한 건 현실이랑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놓는 너부리의 말에 공감도 된다. 꿈은 그냥 꿈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래서일까.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상황들이 꿈에 나타나는 걸 보면, 정말 현실과 구분하기 위해 꿈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꿈에서라도 간절한 바람을 이뤄보는 거, 잠깐이지만 행복해지는 순간이 될 것 같다. ^^

 

읽다 보면 이 녀석들이 모여서 일으키는 문제들만 보는 것 같다. 나쁘지 않게 웃음을 주면서 그들만의 엉뚱함을 뽐내는 것 같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에피소드에 이 만화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걷는 게 좋은데 걷는 게 왜 좋을까 자문하는, 혼자 있다는 것을 외로움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보노보노의 모습에 사색적으로 된다. 심심하니까 걸을 수도 있고, 풍경을 보면서 걸으니까 좋고, 좋아하는 곳에 갈 수도 있으니까 걷는 게 좋다고 말하면서도, 아주 쿨하고 정확한 답을 내놓는다. 걷는 게 좋으니까 좋은 거라고. 걷는 순간에만 보이는 것들을 소환하면서 천천히 가는 순간의 미학을 담는다. 어떤 의미도 답도 더는 필요 없다는 듯 '좋아하는 것' 자체에 모든 의미가 있다는 거. 생각해보니 그러네.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없잖아?! 좋으니까 좋은 거, 그 사람이 좋으니까 좋아하는 것. 같은 의미잖아. 좋은 건 그냥 좋은 대로 놔두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다. 흐뭇하게 마음에 두고 그냥 생각하면 되는 거였네.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이렇게 쉬웠는데, 왜 우리는 자주 그 쉬운 일을 어렵게 해야만 했던 것일까 되묻고 싶어진다. '외로움'이라는 화두, 계속 머릿속에 남을 질문이 되었다.

 

 

그렇게 포근해지는 답을 듣다가도,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 녀석들을 보면 진지해진다. 혼자 있는 아빠의 모습이 외로워 보였던 보노보노의 고민에 동물 친구들의 답이 가지각색이지만, 다 맞더라. 원래 모두가 외로운 거라고 말하는 포로리는 모두 쓸쓸하니까 시시한 얘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달래고 싶다는 말일까? 그러다가 듣게 된 홰내기의 말. '우리는 보통 누군가와 같이 있으니까 혼자 있으면 외로워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반대로 혼자 있다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외로워 보이지 않는 걸까? 행복하기만 한 걸까? 홰내기의 말에 시선을 멈추고 한참 생각했다. 타인의 시선에 외로워 보인다는 말이지 외롭다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외로운지 아닌지 누가 정해주는 걸까 궁금하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들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 하고, 연애나 결혼으로 짝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이 녀석들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어느 순간 인생 철학을 말하는 것 같은 퀄리티가 되어 새겨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마음이 힘든 하루에서,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찾아내는 보물 같은 순간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찢지 마... 제발...


윤태호의 로망스를 이제야 알고 구매하려 했더니 절판...
생각보다 중고 가격도 좀 쎄더라.
찾아보니 다행히도 도서관에 딱 두권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책이다 보니 책 상태가 다 지지하더라는...
그나마 깨끗한 책으로 골라서 빌려왔는데,
한참 재밌게 읽고 있는데...
누가 이렇게 찢었어!!!!!
여덟쪽이나...
없으니까 사라진 페이지가 더 궁금해... ㅠㅠ
너무 재있는 이야기라 찢어간 거야? 응?!!!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3-1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의 책을 누가 감히 찢으셨나요!!!???^^

구단씨 2019-03-13 14:34   좋아요 1 | URL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ㅠㅠ
딱 한 챕터 찢어간 것 같은데, 없어지니까 그 부분 내용이 더 궁금합니다. ^^
 
세계사톡 2 - 중세의 빛과 그림자 세계사톡 2
무적핑크.핑크잼 지음, 와이랩(YLAB) 기획, 모지현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왕조실톡』시리즈가 조선을 재미있게 여행하고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면, 『세계사톡』은 조선을 넘어서 더 넓은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보게 하는 책이다. 판이 커졌으니 등장인물도 다양해지고, 배경이 되는 나라도 더 많아졌다. 역사적 사건이 더 많아진 것도 그렇다. 1편은 고대의 시간을 다루었고, 2편은 중세를 이야기한다.

 

2권은 중세의 시작과 함께 펼쳐진다. 몽골 고원에 사는 북방 유목민인 흉노족이 중국으로 넘어왔고, 중국의 북쪽은 흉노의 지배를 받는다. 흉노족의 세력은 커지고 제국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아시아와 유럽까지 그 세력을 넓히고 서로마까지 펼쳐간다. 서로마의 멸망과 프랑크 왕국의 시작, 게르만족의 이동과 동로마 제국의 유지,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며 그 명맥을 이어간다. 이 시기에는 세계사의 여러 가지 흐름 중에서도 종교의 문제가 많이 나타났다. 이슬람교와 그리스 정교, 불교, 힌두교 등 종교가 중심이 되어 각 나라의 문화가 형성되고, 각 나라 사이에서 그 문화가 충돌하면서 오랜 기간 전쟁도 계속되기도 했다. 종교가 우선 되어 흐르는 역사, 그 종교 때문에 서로 묶이고 흩어지는 관계, 그러면서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영역 확장의 구실을 만들어버리기도 했던 시대. 하지만 문명의 확대로 중국의 문물이 유럽에 전해지기도 했고, 이런 일은 후에 신대륙 발견을 이루기도 하면서, 기원후 300년에서 1400년 정도까지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세계사를 들려준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중세의 많은 면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각 시대의 인물과 관계, 그사이의 일들을 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형식으로 보여주면서, 좀 더 쉽게 세계사의 단면을 확인하게 한다.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군, 이 둘은 앙숙이었군,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아내로? 신분의 차이와 불평등이 반란을 일으켰네, 등등 오늘까지 이어온 중세 시대 세계사의 온갖 역사를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다. 사실 빡빡하게 설명된 글로만 보기에는 역사와 세계사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 우리 이미 학교 다니고 시험공부 하면서 많이 겪어보지 않았던가?! 공부만을 위한 책은 아니지만, 관심이든 공부의 목적이든 흥미와 재미를 함께 주는 책이 더 솔깃한 건 사실이니까. ^^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사 돋보기'라는 항목을 뒤에 붙이면서, 앞서 톡이나 인스타그램 형식으로 주고받은 대화나 게시글로 '카더라'라고 전해준 얘기들을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도를 덧붙이면서 글로 다 보여주지 못하는 설명을 한눈에 알아보게 한다. 각 시대나 사건으로 각 나라의 영토 확장의 범위, 영역 변경의 정도, 주변 국가와의 경계 같은 구분을 보여준다.

 

 

 

사실 세계사는 한 나라의 역사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과 공간, 사건들이 방대하다. 그래서 한꺼번에 살펴보기도 어렵고, 같은 시대에 각 나라와 대륙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정리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역사 속 인물들이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재구성해서 재미있게 들려준다. 조금 더 가깝게 세계사에 접근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같은 시기의 동서양을 한꺼번에 아우르며 한국사까지 함께 언급한다. 그래서 더 관심 두고 읽게 한다.

 

『조선왕조실톡』에서 한껏 업그레이드한 전개로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세계사를 즐기게 하는 책으로 충분한 책이다. 일부러 외우려고 하니 힘든 공부, 굳이 외우지 않아도 생생한 상황을 마주하며 세계사에 들어가 현장 체험하듯 즐겨도 좋겠다. 중세를 다룬 2권에 이어 곧 3, 4권(근대), 현대편으로 이어지는 5권까지 기획되었다고 하니 다음 편을 기다리는 설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가면서 인생을 바꿀 기회는 몇 번이나 찾아올까? 아니, 처음부터 자기가 정한 인생대로 흘러가는 것을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자기가 정한 대로 삶을 이뤄나갈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현재 상황에 맞는 제일 나은 선택으로 삶을 정했다. 평범한 소시민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일상이었고, 그 고민의 결과로 선택한 삶은 대부분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묵묵히 일상을 지낸다. 하고 싶은 일은 저기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언젠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함부로 쉽게 꺼내놓을 수 없는 비밀처럼, 죽을 때까지 못 이룰 수도 있는 상상처럼 간직한다. 그렇다고 그 꿈을 잊은 것은 아닌 채로 말이다.

 

누군가는 책 속의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스타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한다. 우리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찰나에 찾아오는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이 책에서,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삶을 바꾸는 계기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느낀다. ‘아차’ 하는 순간에 놓친 것을, ‘문득’ 하는 순간에 잡아채는.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였다.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록키 발보아처럼 그녀는 공부를 재개할 것이다.

공부를 더 할 것이다.

의과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부를 마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의사가 될 것이다. (15~16페이지)

 

어느 날, 리즈는 <록키3>를 보고 자기가 내려놓았던 꿈을 생각한다.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다 멈춰버린 일, ‘언젠가’라는 생각으로 미루기만 했던 일을 기어코 꺼내놓고 실행에 옮긴다. 부모님 집으로 가서 사용하던 책과 노트를 가지고 온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일상. 쉽지 않은 날들이지만 그녀는 해낸다. 의사가 된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의사로의 그녀 삶도 채워나간다.

 

도대체 <록키3>가 무슨 영화이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표작인 록키. 권투로 인생의 오르막을 오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실베스터 스탤론을 세상에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 말이다. 아주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영화 속 사각의 링 안에서 권투 글러브를 끼고 동그란 두 눈을 뜬 배우의 표정은 잊지 못한다. 강한 이미지였지만, 실상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의 인생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는 밑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인생으로 남지 않겠다는 각오가 들리는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 리즈에게도 그 순간이 그대로 전해졌던 것일까? 리즈는 이 영화 속 몰락해가는 챔피언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 자신의 삶을 본다. 이대로 사는 게 맞는 것일까?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현재에 안주하면서? 이때 뒤통수를 치듯 그녀의 꿈이 가슴 속에서 튀어나온다. 중단했던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의사가 되기로 한다. 그 이후로 그녀는 한 번도 그 꿈을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 배우에게 애정을 느낀다. 이른바 덕질을 시작한다. 그가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다 본다. (못 볼 때는 티켓을 사는 것으로 대신한다) 무너져가는 챔피언의 모습에 그가 경제적 위기를 겪을 때를 대비하여 계좌를 개설한다. 유언장에도 남긴다. 그 돈은 오직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남긴다고.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기가 생각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해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리즈의 삶은 <록키3>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뉜다. 누구에게나 그런 타이밍 한 번씩 찾아온다는 말을 식상하게 하지만, 그게 진짜라는 것을 보여준 그녀다. 언제라도 자기 삶을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있었지만, 그게 현실로 반영되기까지 우리는 많이 망설인다. 겁이 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염려하고, 변화하려고 시도했는데 또다시 실패할까 봐 무섭다. 차라리 시도하지 않은 게 나은 선택은 아니었을까 후회할까 봐 걱정된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실패는 남아있으니, 다시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선뜻 자기 안의 바람을 내놓지 못하는 삶을 이어가곤 한다. 하지만 그게 맞는 삶일까? 온전하게 받아들이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다는 걸 리즈가 그대로 보여줬다. 짧고 굵은 문장으로, 아주 간결한 한 편의 소설로, 울림은 깊게. 100페이지 소설로 유명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글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짧은 문장과 분량으로 가독성은 좋게,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은 깊게 전달하고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짧은 글이 발휘하는 문학의 힘을 그대로 증명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착하게 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로 전해지는 감정이, ‘아, 나 그거 알아!’ 하는 강렬한 느낌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바치는 소설이자 작가 자신의 삶과 똑같이 닮은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정도는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 인생에서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내려놓아야만 했던 간절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루를 사는 일은 힘들고 고되지만, 혹시 그 안에서 같이 쌓여가는 매너리즘을 모른 척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묻는다.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인생의 변화를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 인생을 바꿀 의지를 꺼낼 계기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거, 그렇게 찾아온 계기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거, 그렇게 이뤄내는 인생의 주체도 우리 자신이라는 것. 빰 빠바밤 빠바밤~

 

짧지만 강하게 빛났던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기 이외의 인간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될까요.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던, 적어도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을 동안은 무슨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할 때, 인생의 주어는 언제나 '나'입니다. 손에 잡으려 노력하는 행복 역시 '나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이런 상태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인생의 주어가 '나'에서 '우리'로 변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나' 혼자만 살아봐야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립이란 결코 혼자 사는 것, 자신의 일을 자기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내'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달성한다는 과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바로 자립입니다. (165~166페이지)

 

 

사랑이 행복해야 했던 것인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이거나 사랑이 아니거나,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만 하는 것 아니었나? 그거 말고 사랑에 뭐가 더 필요했단 말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일에도 어떤 방식이 굳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했던 거다. 그저 사랑하는 동안에는 내 마음이 가는 데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사랑이 끝났을 때는 내 마음이 더는 상대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 그게 전부였다. 헤어지고 슬퍼하거나 아프기는 했어도, 세월이 그 슬픔을 희미하게 한다는 것 또한, 안다. 사랑에 관한 어떤 물음이 구체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한 채로 살아왔다.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사랑에 임하기만 하면 되었기에 뜬금없는 저자의 물음이 당황스러웠다. 당신의 사랑이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이유가, 사랑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전제부터 다시 해야겠다. 사랑이 행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이 책 속에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공감할 수 있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고, 우리가 노력하고 기술을 쌓아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몰랐던 게 아니다. 하지만 막연했다. 사랑하는 우리가 나 자신과 상대에게 쌓아가는 노력에 구체적인 게 없었다. 시시콜콜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무던하게 흘러가는 것, 감정과 물리적인 노력이 합해져 이뤄가는 거라는 것, 그 정도였다. 그런데 저자는 참으로 구체적으로, 소소한 것들까지, 쉽지만 해내기 어려운 감정적인 문제까지 풀어내려고 애쓴다. 성숙하게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불러와서, 우리의 사랑을 돌이켜보고 생각하게 하고, 우리는 사랑에 얼마만큼의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묻게 한다. 사랑하는 법을 알 때, 사랑도 인생도 행복해진다는 말을 증명한다.

 

사랑에 방법이 문제라는 게 무엇일까. 사랑은 능력이고 기술이라는 저자의 말이 낯설지도 모른다. 사랑이 무슨 공부도 아니고 전문직도 아닌데 말이다. 저자는 사랑의 정의부터 다시 쓴다. 사랑이란 '나와 상대가 함께 시간을 쌓으면서 관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그게 '사랑의 기술'이고, 서로가 함께하면서 공유하는 시간은 곧 '체험되는 시간'이 되어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연애도 결혼도 혼자 할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유지하고자 하는 연애나, 그 결과로 얻고 싶은 결혼도 같이 노력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 흔히 상대와의 관계가 어긋나면 둘 중 하나의 문제를 찾곤 하는데, 그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저자의 말처럼, 그 문제는 '누구'에게가 아니라 '어떻게'에 관한 것이다. 둘 사이에 생기는 문제가 왜,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는지 원인을 찾아야 하지 누구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건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지 못한다. 둘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 대부분을 상대에게 책임 묻기로 한다면, 그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고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노력하는, 배우는 사랑이어야 하니까. 그래야 우리의 사랑이 행복할 테니까 말이다.

 

사랑은 '능력'의 문제이고 나아가서는 '기술'이라고 프롬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술이라면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고 '쌓아올리는 것'입니다. (47~48페이지)

 

함께 지낸 시간이 '그저 보낸 시간'이 아니고 '체험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시간이 아니고, 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229~230페이지)

 

인생을 배우는 것처럼 사랑도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게, 요즘 내가 느끼고 있어서다.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나 혼자 결정했다. 그건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도 비슷하다. 만날 사람을 내가 정하고, 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정리도 내 맘대로 했다. 내 생각대로 하면 되는 거였고, 그게 적용되지 않으면 싸우기도 하면서 결국 헤어지는 거겠지 싶은 일을 반복했다. 행복해지자고 연애하는 건데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행복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러니 끝날 수밖에. 그런데도 아쉽다거나 잘못된 걸 몰랐다. 그저 나의 말과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는 상대에게 화만 냈다. 도대체 왜? 그러다가 지금 애인을 만나면서 나는 조금씩 변했다. 부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에 깔고 사는 내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에 깔고 사는 그와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의심하고 확인하고 경계하는 내 생각이 '괜찮겠지, 나아지겠지, 어쩔 수 없지' 3종 세트를 남발하는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안 되는 일 앞에서 나를 닦달하고 있는 걸 봤다. 내려놓고 잊어야 하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나 자신을 들들 볶아댔다. 그의 말 한마디가 나의 사고를 바꾸게 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해야 하는 게 사랑이라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게 됐다. 나만 보고 나만 우선시하던 관계에서, 강요하지 않고 나아가야 할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게 많아졌다. 피곤하고 귀찮아서 걸려오는 전화를 무시하던 것도, 왜 그렇게 느리냐고 투덜대던 것도, 서로 식성이 달라서 짜증 내던 것도. 크고 작게, 서로가 달라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곤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을 때는 감정적이 되거나 힘을 사용해서 이견을 짓눌러 이기려고 들면 안 됩니다.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끈질기게 논쟁을 펼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인정하는 만큼, 바로 그 폭만큼 우리는 대화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다르구나, 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비결일 수도 있겠습니다. (199~200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같이 만들어가는 체험하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보여줬던가 싶다. 그러다 점점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 내가 상대에게 화를 내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이, 상대도 나를 보며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쌓아두고 있지는 않았을까?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주기만 했던 거 아니었을까? 그때야 '아차' 싶은 후회, 내가 느끼는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가 싶은 반문, 내가 맺은 이 관계에서 나는 무슨 책임을 지고 있었던가 싶은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는 이 관계를,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던 거다. 저자는 사랑의 기술은 서로를 대등하게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상대의 관심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지 않으면 관계가 망가지는 건 순간이고,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는 건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고. 그러면서 좋은 관계를 쌓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상대를 존경하고, 신뢰하고, 협력할 것. 나빠지려고 하는 관계에서는 그 관계 개선을 위한 시도와 방법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 존경이라고 했다. 상대의 과제 해결 능력을 믿는 것이 신뢰라고 했다. 결국은, 상대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신뢰했을 때 '우리'의 사랑은 유지되고 성장한다는 말이겠지.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사랑이 행복해진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냥 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배우고 노력하며 얻는 게 사랑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모르지 않는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건 없을 테니. 저자는 거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노력은 힘들기만 한 게 아닌, 즐거운 과정이라고 말이다. 사랑, 연애와 결혼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인생의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피력하면서, 행복한 사랑을 완성해가는 기쁨을 알게 하려 애쓴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해야 하는 협력이다.

 

사랑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상대가 우리를 사랑할지 여부는 상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결정권이 없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69페이지)

 

"사랑과 결혼은 인간의 협력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그 협력은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협력일 뿐 아니라 인류의 행복을 위한 협력이기도 하다." (251페이지)

 

관계를 맺고 이뤄가는 게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랑을 얘기하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내용은 사랑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용되는 방법이다. 연애와 결혼을 넘어, 인간관계 전체를 아우르는 방법에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같은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연애가 두려워 다시 시작하기 두려운 사람, 현재의 사랑이 어려운 사람, 배우자와의 관계가 위태로운 사람 등 우리의 사랑이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를 찾으면서, 사랑하는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로 자기만의 방법까지 찾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는 일. 인생의 많은 일에서 부딪힐 때마다 우리가 찾는 방법이었다. 그 많은 관계 안에서 더 성장하고 나아가고자 애쓸 때, 우리는 행복을 만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