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아무튼 시리즈 71
이애월 지음 / 제철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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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라디오를 접했다. 언니가 중학생이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친구들이 구구단 외우면서 산수(그때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였다) 숙제하고 있을 때, <두 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고, 어느 광고에 나오던 음악에 귀를 열었다. 마치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듯이, 친구들과 방과 후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게 심심한 일이라는 듯이, 라디오 이야기를 하면 TV 만화 프로그램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마치 아이들 같다는 듯이. 그때의 나는 아이였으니, 아이들의 세상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도, 그 아이들 틈에서 나만 혼자 훌쩍 커버린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그 후로도 여전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랐고, 집안의 고요함이 싫을 때도 TV보다는 라디오를 켜 놓는 습관은 여전하다. 지금은 그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훨씬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TV보다 라디오가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 한 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 책 속의 한 문장 같을 때가 있다. 라디오와 책, 느낌이 닮았다.

 

겨울밤라디오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게으름에 미뤄둔 책이지만, 이 추위에 제법 잘 어울려서 며칠 밤 계속 읽은 책이다. 며칠 동안 읽어야 할 정도로 두꺼운 책이 아니었건만, 지독한 감기에 두꺼운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식거리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건, 저자가 살아온 세월 속 라디오, 그 시절 속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아서다. 저자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찌감치 라디오를 접했고, 라디오를 좋아해서 겪은 에피소드에 안타까움과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때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낯설지 않아서 흠칫했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까지 묻어났다. ‘그땐 그랬지같은 느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싶은 아쉬움까지, 괜히 오늘의 추위에 우울한 기분까지 밀려와서 옆에서 누가 꾹 찌르기라도 했다면 눈물까지 날 뻔했다.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일해온 사람이 전하는 라디오 이야기의 힘이 이런 건가.

 

라디오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을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라디오 공개방송을 들으면서 울고 웃고, ‘워크맨’(요즘 세대는 이걸 알려나?)이 소중했던 시절을 건너와 방송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라디오 때문에 행복했는데, 라디오가 좋아서 방송작가 되어보니 라디오 때문에 절망했던 순간이 따라오더라.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건 부러웠는데, 그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보니 고통스러운 순간이 또 생기더라는. 이러면 안 되는데, 좋아하는 건 계속 좋아하는 채로 남아주어야 하는데, 꿈이 이루어졌는데 왜 절망이 따라오는 건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쩔 수 없는 이런 순간을 또 버텨내야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괜히 또 서글퍼진다. 그래도 좋았다. 주파수를 열어놓고 있을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누군가의 힘들다는 한마디에 위로를 담은 답 문자를 보내고, 그 문자 한 통에 또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기뻤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도 이런 안부를 묻는 게 가능하다는 건, 라디오가 가진 힘일 거다. 나 역시 그 힘을 나눠 받으며 살았으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제목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있다. 어느 광고에서 들려오던, 익숙한 음악에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는데도 불쑥 튀어나와 자꾸 맴도는 음악. 평소에 중독성 있는 음악이나, ‘훅송(Hook Song)’으로 불리는, 때로는 수능 금지곡이라는 위험한 이름이 붙여진 정도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귀벌레. ‘마치 귀에 음악 소리를 내는 벌레라도 들어온 것처럼, 그 벌레가 귀에서 나가지 않는 것처럼 특정한 노래나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현상을 두고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이름은 좀 징그럽지만,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게 이해되기도 한다. 일부러 듣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귀에 머물러서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게, 심지어 입으로 종일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음악에 붙여진 이름. 아이러니하게도 이 귀벌레가 부르지 않아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웃기긴 하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사연 사이에 들어오는 음악과 함께였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따라올 때도 있는가 보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단어를 알았다. 귀벌레 증후군이라니. 계속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데도 익숙하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요즘 나의 귀벌레 노래는 김필의 다시 사랑한다면이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소음이 심했던 병원의 대기실에서도, 책 속 문장에 시선이 머물러 있어도 귀에서는 이 노래가 자꾸 들려온다. 심지어는 며칠 푹 빠져 있었던 OTT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는데도 계속 들렸다. 이 정도면 좀 심한 거 아냐? 때가 되면 귓가에서 사라질 목소리겠지만, 들리는 동안에는 뭐,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고 있어 보지 뭐. 나중에 언젠가 이 노래가, 이 목소리가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라디오였다. 최근 경험했던 단순노동의 현장에서도 일정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가 계속 켜져 있었고, 어느 사연에 박장대소하다가 누군가의 슬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에 살아가는 게 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가 좋았고, 병원에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이어폰 속의 DJ 목소리가 반가웠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을 전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라고 했는데, 그 외로움을 즐기면서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라디오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 거기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외로움은 이 주파수에 맞춰 서로 통하고 있다는,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믿음에 힘을 실어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대놓고 말하지 못해서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을 때, 누가 내 얘기 좀 들어줬으면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나무숲이 라디오였다. 지금은 익명 게시판을 비롯해 여기저기 마음을 토해낼 공간이 많이 있지만, 그 시절의 우리에게 라디오는 마음상담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라디오 로맨스의 대표주자 같은 소설 속 로맨스는 현실에 없었다. 방송국이 배경이 된 드라마 속 로맨스도 없었다. 몰라서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전쟁통에도 사랑이 있다는 말처럼, 전쟁 같은 일터에서도 사랑을 있을 테니까, 좋아서 하는 일에도 절망은 따라오니 뭔가 설레는 일 하나쯤 같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 같은 게 아닐까. 살면서 때로 환상 같은 일도 생겨주면 좋잖아. 어쨌든, 나에게 라디오는 그 단어 자체로 포근해지고 정적인 분위기를 전하지만, 현실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그저 치열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낭만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다. 어렸을 적 뭣 모르고 두근거리기만 했던 라디오는, 어른의 세상에서 그 두근거림이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게 아쉽고, , 그렇다. 그래도 놓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우리 곁에 라디오를 남겨 둔다. 저자의 말처럼 영원히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보다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때론 어떤 존재와 온기로 생의 고독을 잊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더 좋아서 함께 하고 싶어진다. 지금처럼 울고 웃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그 틈틈이 외로울 것이고, 그때마다 슬쩍 그 외로움을 토해내고 싶어질 거다. 누군가 부담 없이 그 마음 들어주길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라디오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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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1-2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했었는데, 마음을 흔드는 걸보니 글의 내력이 9단쯤 되시는군요...잘 읽었습니다!
 


가끔 단순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몸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어떤 일을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라서, 일장일단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했다. 몸을 쓰면서 일하다 보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더라. 심지어 손가락이 부어서 잘 굽어지지 않고, 젓가락질이 힘든 적도 있다. 그것도 며칠 지나면 그나마 적응되어 그냥 힘들다고 하면서 일하게 되더라는. 하지만 그런 일의 장점도 나름 있었다. 밤새 잠이 안 와서 짜증 났던 순간이 많았는데, 잠은 잘 오더라. 저녁 먹고 나면 초저녁부터 잠이 슬슬 온다. 엄마가 매일 저녁 일일 드라마를 보고 일찍 잠드실 때 왜 그런가 했는데, 이제야 좀 이해가 된다. 종일 종종거리며 집안일 하다가 몸이 쉬는 시간이 되니 잠이 오는 거다. 근데 잠이 일찍 온다고 다 좋은 건 또 아니었다. 책을 못 읽었다. 책 펴놓고 몇 분 지나면 고개가 꾸벅꾸벅 쏟아진다.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하면 교재 펴놓고 바로 잠들어버리는 걸, 이제 뭐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반성도 해 본다.


작년 말에 집에 있는 책을 200권 정도 기증에 보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세계문학이었고, 나머지는 베스트셀러 위주였다.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아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래, 아무리 오랜 시간 내 책장에 모셔놔도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다는 확신에 미련 살짝 얹어서 보냈다. 어딘가에서 좋은 의미로 쓰일 것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죄책감은 어쩔 수가 없어서, 덜 미안해지고 싶어서 펼쳐 든 책이 조경국의 , 읽는 재미 말고 이다. 제목부터 죄책감 덜어주지 않나? ^^ 표지의 한 문장처럼, ‘솔직히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김영하 작가의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라는 말과 함께 큰 위로가 된다. 진짜.



, 읽는 재미 말고의 저자는, 자기가 이 책을 쓴 단 하나의 목적은,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읽지 않아도 사서 집에 쟁여 놓고 싶게 하는 많은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사장님(헌책방 운영하신다고 함), 이 책이 아니어도, 정말 읽지 않아도 사서 집에 쟁여 놓고 사는 독자(?)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요? 저자가 더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책을 쟁여 놓는 습관은 오래전에 생겨버렸고, 앞으로도 쉽게 놓지 못할 버릇인 것 같다. 가끔 한 번씩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뜨끔한 마음이 들면 또 한 번씩 기증에 보내기는 하겠지만, 읽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게 되는 이 몹쓸 습관은 어찌해야 할꼬. 어쨌든, 반복적으로 하는 반성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이유가 공감되긴 하는데, 그중 몇 가지만 봐도 괜히 흐뭇해진다. 특히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는 놓칠 수 없다. 내가 그 시리즈를 더는 읽지 않기로 마음먹지 않는 이상, 포기할 수 없다. ‘책 선물하는 재미는 진짜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내 돈 쓰고 기분 좋아지는 일이어서 행복했는데, 지금은 책을 선물하지 않는다. 처음에 뭘 모를 때, 내가 읽은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받는 사람도 당연히 좋아할 거란 착각을 하기 전까지는 종종 책을 선물했다. 하지만 받아보니 알겠다. 아무리 좋은 책도, 재밌는 책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받아도 미안한 선물이 된다. 꼭 책을 주고 싶다면, 차라리 받고 싶은 책을 골라서 말해 달라고 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 ‘책싸개 하는 재미는 좀 부지런해야 계속할 수 있는 습관이 아닐까 싶다. 한때는 내 책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비닐 커버를 종종 씌우기도 했는데, 이것도 몇 번 하니 귀찮더라. 정말 애서가가 아니라면, 이 책에 애정이 없다면 계속하기 힘든 책사랑이 아닐까. ‘영화 속 책을 찾는 재미는 가끔 따라 하기도 한다. 영화나 책에서 소개된, 언급된 책이 궁금해서 찾아보곤 한다. 다 읽지 못할 걸 알면서도, 목록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혹시 알아? 어느 날 문득 그 책에 스르륵 손이 가게 될지도. ‘망가진 책 고치는 재미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종종 하던 습관이다. 가장 흔한 건 찢어지거나 쩍벌이 책. 찢어진 책은 조심스럽게 가능하면 표시 덜 나게 붙여놓곤 했고, 쩍벌이 책은 목공풀로 섬세하게 발라서 뜯어지지 않게 만들어 놓고 반납하곤 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내가 빌린 책에 일정 페이지가 없다면, 찢어져서 문장이 잘려 나갔다면 화가 날 것 같아서. 그 외에도 책을 좋아하고 쟁여두고 싶은 이유를 많이 언급해주었는데, 책갈피나 사인본 수집하는 재미는 내가 아예 애정이 없는 부분이고, 필사는 게으름과 악필로 시도하지 않았고, 책 속 메모를 발견하면서 공감했던 경우는 거의 없고 낙서 때문에 화가 난 적이 많았고, 오탈자 찾아내는 재미도 없고 오히려 다른 독자보다 오탈자 잘 못 보는 인간이어서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도 샀다. 200여 권의 책을 기증 보내고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또 샀다. 물론, 못 읽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이 녀석들이 웃음이라도 주니 다행인가 싶어서 혼자 당당했다. , 읽는 재미 말고의 저자가 언급한 이유 중의 하나로,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로 차곡차곡 채우는 책이 있다. 그럼 이 시리즈를 왜 사기 시작했나 스스로 물어봤는데,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예뻐서 샀다. 녹색광선 출판사의 책이다. 처음에는, 예쁘기도 했지만 읽어보려고 산 거였다. 하지만 당연히 읽지 못했고,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 중에서 완독한 것은 셰리한 권이다.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이런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참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디자인이 예쁘기만 하고 재미는 그에 미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셰리읽고 나서 다른 책도 서둘러서 읽고 싶어졌다. 예쁜 외모만큼이나 내용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다 읽었다고 해서 이 책을 쉽게 기증이나 다른 경로로 내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머지, 이 빠진 시리즈를 채워 넣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 정도면 책을 사야 할 이유가 분명한 거지? 헤헤




그동안 문학과지성사 출판사의 소설 보다시리즈를 꾸준히 사긴 했으나, 띄엄띄엄 샀다. 그때그때 기분이 내켜서 읽어보고 싶을 때만 샀는데, 2025년의 시리즈는 알림 신청해 놓고 다 샀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제목에 맞는 계절감을 책에서 느낄 수 있어서 말이다. 봄의 딸기, 여름의 포도, 가을의 무화과, 겨울의 감귤. 이렇게 썼지만, 표지의 각 과일이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제철 과일이 아니어도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과일이든 채소든, 제철이 가장 맛있긴 하지. 맛있는 과일 옆에 두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 같은? 그동안 이 시리즈는 짧게 읽는 재미가 좋아서 사곤 했는데, 2025년의 이 시리즈는 그 짧은 호흡으로 읽게 하는 재미도 있지만, 표지만 봐도 기분 좋아져서 더 펼쳐보고 싶게 한다. 올해는 어떤 표지로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잠깐 읽고 덮어둘 게 아니라, 그래도 좀 오래 갖고 있고 싶어지게 하는 요소를, 그게 비록 표지만 예쁜 책으로 남게 되더라도 좀 잘 만들어주었으면 싶다.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하고 싶다는 조경국 저자의 말처럼, 책이라는 게 읽는 것도 좋지만, 일단 사야 읽는 거 아닌가. 그러니 더 팔리는 책이 되게 하려는 애정을 출간된 책으로 보여주기를. 아마 2025의 시리즈는 2026년인 올해에 제대로 읽게 될 것 같다. 늘 그래왔듯이. ㅠㅠ




세계문학을 정리하려고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책이라고 해도 내가 읽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거기에 좀 짧은 분량에, 재밌게 세계문학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꾸준히 사서 모았던 게 문학동네의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 명작시리즈다. 221*188mm 판형의 가로로 넓은 디자인에 삽화까지 담겨 있어서 좀 편하게 읽힌다. 최근에 출간된 시리즈는 153*224mm 판형의 세로로 긴 일반도서 사이즈인데, 아무래도 이야기의 분량이 좀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무튼 이 시리즈 한 권씩 읽으면서, 나도 미뤄두었던 세계문학, 고전 읽는 독자가 되었고, 이 책들이 왜 꾸준히 사랑받고 추천되는지 알 것 같다. 그래, 역시 책은 읽어야 맛이지. 아무리 좋은 책, 여기저기서 추천되는 책이라고 해도 내가 확인하지 못하면 그 재미와 의미를 영원히 알 수 없으니까. 이 시리즈도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로 이어질 것 같다. 아직은 읽은 목록보다 안 읽은 목록이 많다. 근데 이 시리즈로 프랑켄슈타인읽어보려고 샀는데,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2025년 버전의 프랑켄슈타인을 봐버렸네. 재밌게 봤는데, 너무 미루지 않고 책으로 읽어볼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괴물의 간절함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에게도 동반자를 만들어줘.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은 절대 완독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절대 쉽게 정리해서 내보낼 책 목록에도 넣지 못하겠다. 처음 출간된 게 2018년이니까, 출간된 지 8년이 다 되었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꼭 읽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커서 말이다. 1권 읽다가 말고, 또 몇 페이지 읽다가 멈추고, 어느 장면에서는 잔인해서 그만 덮고. 주인공 패트릭 멜로즈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와 상처를 받았다. 그 기억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는 그 시절의 악몽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학대로 그의 20대는 약물에 중독된 시간으로 보내고, 세월이 흘러 그가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어도 그의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나쁜 아버지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게 더 충격적이었는데, 저자 역시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털어놓는 건 힘들었다고 하고, 약물 중독에 자살 시도까지 했던 그가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는 생존의 문제였다. 죽느냐, 아니면 이 책을 쓰느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다섯 살 때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극적인 그의 인생을 다룬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세상에 이런 부모가 있을 수 있는지, 분노하지 않으면서 읽어야 한다는 건 독자에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긴, 세상에 드러난 이런 사건들이 흔하게 들려오는 걸 보면, 이게 소설로 머물지 않을 이야기라는 건 이미 증명된 셈이다.



20대가 끝나가는 어느 날에, 지금 떠올려 보면 이런 철없는 말이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인데, 친구랑 둘이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책방을 하자고, 커피도 팔고 간단한 음식도 파는 그런 책 카페를 하자고. 말은 쉬웠다. 우리는 모아둔 돈도 없었고,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보기 좋아서, 책이 쌓인 공간에 머물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거의 매일 찾던 여러 카페에 손님으로 앉아있었을 뿐인데, 아무 대책도 준비도 없이 막연하게 쏟아낸 그 말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이런 말을 다시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확실히 알았다. 현실을 너무 몰랐던 망언이었다고. 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저자는 책방지기에 대한 로망을 1년 차에 바로 깨졌다고 한다. 현장을 경험하기 전에는 다 알 수 없는 일이 책방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진리.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덤벼든 작은 책방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그래도 저처럼, 또 다른 많은 독자가, 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실 테니, 힘을 내요, 사장님. ^^



이제 나는 뭘 사야 하느냐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이야기를 들려줘요를 사고 싶은데, 그러려면 앞서 출간된 또 다른 책 올리브 키터리지내 이름은 루시바턴이나 버지스 형제도 사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에이미와 이저벨은 갖고 있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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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다읽으려고사는건아니잖아요 ##책추천 #안읽어도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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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19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ㅎㅎ
그래도 가끔은 저걸 다 언제 읽나 싶죠!

구단씨 2026-01-25 15:06   좋아요 1 | URL
아, 죄책감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네요. ^^
그래도 삽니다. 살 수밖에 없었어요. ㅠㅠ
언젠가는 읽겠죠?

잠자냥 2026-01-20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렇게 모아놓으니까 참 예쁘네요?! 특히 보다 시리즈, 저는 한번도 구매한 적이 없어서... 저런 아름다움이? 하고 감탄.

구단씨 2026-01-25 15:06   좋아요 0 | URL
보다 시리즈 가끔 구매했는데요.
2025년은 표지가 예뻐서 저절로 사게 되더라고요. 표지에서 계절을 느끼게 되는... ^^

니르바나 2026-01-20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가지수 5000이 눈 앞에 보이는데 주식보다 책을 사시는 구단님이 멋있습니다.
책을 기부하는 손에 강복있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구단씨 2026-01-25 15:07   좋아요 1 | URL
하아... 주식을 몰라서 코스피 5천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순간에도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 ㅠㅠ
저에게는 사랑받지 못한 책들이 어딘가에서는 귀한 쓸모가 있기를 바라면서 보냈습니다.

살리에르 2026-01-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보다 책 사는 속도가 빠른 탓으로 방 한 칸이 책으로 뒤덮여서 나 죽을 때 어쩌나 하는 한숨을 매일 쉬는 사람에게는 공감이 안 가는 제목입니다 ㅎㅎ 책은 읽으려고 사는 거죠^^ 그게 언제냐가 문제지만요^^ 내 취향 아닌 책은 아무리 표지가 이뻐도 그냥 내 공간을 차지하는 짐덩어리일 뿐입니다. ‘이 빠진 시리즈 채워넣는 재미‘ 는 제가 글을 썼나 했네요. 나만 이러고 사는게 아니구나 하는 자기 위안으로 삼아봅니다..^^

구단씨 2026-01-28 20: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아요.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맞습니다. 뭐, 언젠가는 읽을 거니까요. ^^

서노기 2026-01-2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는 제 마음을 대변해주시는 듯하여 솔깃, 해서 방문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취미도 ‘책 소장‘인 것 같아서;; 요즘은 자제하고 있어요. 비우는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구단씨 2026-01-28 20:33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책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나를 답답하게 하는 걸 찾아내어 조금씩, 더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버리나 했는데, 없어도 크게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은 걸 보면, 뭐든 꽉 채우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살아가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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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또 하나의 ‘하영 시리즈‘로 이어지지 않을까 궁금해서 읽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추리 소설이라고 굳이 복잡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단순해서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오히려 설화 ‘여우누이‘가 더 흥미진진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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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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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를 누누(유모)라고, 여자는 남자를 셰리(소중한 아이)라고 부른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너무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까지 알고 나니 마음에 표현할 수 없는 지진이 일어났다. 헉 소리와 함께, 도대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뭘까 싶었다. 진짜야? 설마. 이쯤 되니 나이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처음 관계가 문제가 되는 거였나 괜히 걱정되기도 했다. 나이 차이? , 그럴 수도 있지. 레아와 셰리의 모친이 서로 친구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충격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내 아들이 내 친구와 연인이라고 생각해 봐. 선뜻 사랑으로만 이해 가능한지. 하아. 어쨌든, 스물다섯 살 셰리와 마흔아홉의 레아는 서로 연인 사이라는 게 사실이니까.


그녀는 이제껏 전혀 아쉽지 않았던 것들을 난생처음으로 헛되이 기다렸다. 그것은 젊은 연인의 신뢰와, 무방비 상태의 느긋함과, 고백과, 진심과, 조심성 없는 감정의 토로였다. 젊은 연인이 거의 부모에 대한 청소년의 감사와 흡사한 감정으로 성숙하고 든든한 여자 친구의 따뜻한 품 안에서 밤새도록 눈물과 고백과 원망을 주저 없이 쏟아내는 시간들 말이다. (56페이지)


6년 전 어느 날 밤, 레아와 단둘이 있게 된 셰리가 갑자기 레아에게 키스한다. 처음에는 어린 애 장난처럼 여겼을지 모르겠는데, 레아는 생각할수록 설렌다.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에 휩쓸린 레아는 다시 셰리에게 키스하고, 셰리는 레아에게 무너진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레아를 불러왔던 누누라는 호칭이, 이제는 그에게 쾌락과 욕망을 함께 나누는 대상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사랑하는 예쁜 연인을 보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나뿐일까. 이 관계를 부정하거나 못 볼 꼴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둘을 보는 내내 크게 남은 감정은 불안이었다. 숨길 수 없는 감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지만, 주변에 비밀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애써 아는 척하지 않은 건 아닐까. 혹시 이 둘의 관계를 모르더라도, 언제 들킬지 몰라 좌불안석이었다. ‘네가 감히 내 아들과 이런 짓을?’ 갑자기 셰리의 모친이 나타나 레아의 머리채를 휘어잡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셰리의 모친 역시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마치 모두가 비밀 하나씩 숨긴 채로 자기만의 욕심으로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급기야 셰리의 모친과 레아는 셰리를 젊은 여성과 결혼시키고 만다.


그러니까 이런 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셰리와 레아가 한때 그저 소중한 아이와 유모였던 관계에서, 이제는 다 키운 아이 결혼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보이기를 원하기라도 했을까. 셰리는 결혼했고, 레아는 쿨~하게 셰리의 결혼을 인정했다.


진짜 쿨~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6년이라는 시간, 나이 차이를 무색하게 서로에게 더할 수 없는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한쪽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서 이별하는 게 쉬운 일이던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서 서로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연기해왔지만, 서로를 탐하는 욕망만 앞세워 보려고 했던 것 같지만,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휘몰아치던 불안한 마음을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된다. , 우리 이제 헤어져야 하는구나, 우리 정말 사랑했구나. 언제 이별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만나왔는데, 문제가 있었구나.


언제라도 쉽게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마냥 가볍게 여겼던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네가 결혼하는 게,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셰리가 젊은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질투하지 않았는데,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든 레아였다. 마치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떠나보내고, 떠나고. 이제 우리는 그저 누누였고, ‘셰리였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가슴 깊이 묻어둔 말들을 삼킬 수 있는, 이별 따위 별거 아니라는 듯 표정 관리도 능숙한 어른이었다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자기 육체가 증명하는 나이를 인지하면서 셰리를 잊었다고 착각한다. 아니, 레아는 그렇게 셰리를 잊고 잘살고 있다고 믿었을 거다. 내가 아무리 읽어도 레아는 처음부터 착각한 거였다. 레아만 그랬을까. 셰리 역시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했지만, 집을 나와 호텔에서 생활한다. 돈을 주고 산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한다. ? 이게 뭐지?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셰리가 친구가 머무는 호텔에 같이 투숙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셰리와 같이 있던 그 사람은 그저 돈을 받고 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얘기를, 셰리는 마치 벽을 보고 얘기하듯 그 사람에게 레아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게 사랑이 아니야?


글쎄다. 이게 자존심인지, 마치 이 사랑의 끝을 알아서 미리 마음 단속을 한 건지 모르겠는데, 셰리가 결혼하고 몇 달을 떠나있던 레아의 마음도, 누군가를 붙잡고 끊임없이 레아 이야기를 했던 셰리의 마음도 알 것 같다는 게 혼란스러웠다. 결국, 아닌 척하던 마음은 더 숨길 수 없게 되고, 무너져내린다. 사랑한다고, 그 사랑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고. 마치 자석에 끌리듯 매일 당신 집 문 앞을 서성이며, 떠난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당신 옆에 다른 사람이 함께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있었다고. 셰리의 울부짖음에 답답했던 나의 마음도 폭죽처럼 터지고 말았다. 진즉에 말하지, 오래된 연인을 두고 결혼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짓 따위 하지 말고, 이 결혼과 당신과의 관계 사이에서 고통스럽다고 말을 하지. 하긴, 말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사랑이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감싸 안아 줄 수 있느냔 말이다. 셰리가 레아의 민낯을 보면서 낯설어하고, 잠깐 사이에 다시 화장하고 돌아온 연인의 얼굴을 보고 안도하는 시선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레아가 줄곧 차고 있던 진주 목걸이. 그냥 레아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겼는데, 그 목걸이가 나이 든 여자의 목주름을 가릴 용도로 활용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젊은 연인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이 든 흔적을 보여주기 싫은(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기에) 마음은 괴로웠다.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서 줄곧 머물러 있던 불안감은, 애써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들 때문이었을 거다. 읽는 내내 그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전혀 편하지 않았던 마음은 소설의 시작에서 이미 그 끝이 보여서다. 내가 하는 사랑이 누구에게 환영받을 필요는 없지만,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그 시선에 저절로 움츠러드는 것도 모자라 춥기까지 하니 말이다. 아마도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괜찮은 척, 행복한 척, 현재의 삶에 만족한 척하면서 살아가겠지.


후속작 <셰리의 몰락>이 있다고 하니 거기까지 읽어봐야 하나 싶다. 궁금하긴 하네.



#셰리 #콜레트 #시도니가브리엘콜레트 #소설 #녹색광선

##책추천 #프랑스문학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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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 - 중년의 불안을 쓸고 닦는 법
송은주 지음 / 시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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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음‘의 두려움이 요즘처럼 크게 다가 온 적이 없다. 살아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이유. 뜨거웠던 여름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뭘 하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새긴다. 멋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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