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일본어학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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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별로 배우는 일본어 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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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뱅크 The 중국어 Step 1 (본책 + 워크북 + 오디오 CD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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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띵 시리즈 6
고수리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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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들어라. 잘 들으래도 너는 듣지 않겠지만. 인생이 그렇다. 부모가 중요하다고 여러 번 일러줄 때는 귀찮고 부아가 나서 잔소리라고만 여겼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중요하게 느껴지고 중요하게 나타난단다. 그걸 깨닫고 배우고 싶어서 달려가면 부모는 없어. 그 맛도 이미 없고. 그게 얼마나 허망한 마음인지 아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부모가 중요하다 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아니 조금만 너그럽게 돌아봤으면 좋겠어.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말이야.” (99~100페이지, 엄마가 쥐여준 보따리를 먹기만 할 때는 몰랐지, 가자미식해)


이번 명절에는 전을 부치지 않았다. 가족이 오지 않기도 했지만, 명절 연휴 전에 퇴원한 엄마 때문이기도 하다. 통깁스한 다리로 괜히 이것저것 하신다고 몸을 움직이실까 봐, 본인의 불편한 몸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여기며 조심하려는 게 눈에 보인다. 명절이라고 꼭 전을 부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면 먹고 싶은 게 있다. 전라도에서 유명한 홍어회 무침을 먹지 못하는 식구들 때문에, 엄마가 항상 해주시던 것은 오징어회 무침이다. 맛은 비슷하다. 주재료가 홍어에서 데친 오징어로 바뀐 것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메뉴다. 나도 엄마의 어깨너머로 본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흉내를 내도, 맛집이라고 소문난 반찬가게에서도 파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 오직 엄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맛. 언젠가는 동생이 오징어회 무침이 너무 먹고 싶어서 반찬가게에서 사 왔는데 도저히 맛이 안 나서 먹다가 결국 버렸다고 얘기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오징어를 사 와서 바로 만들어서 택배로 보냈다지. 그것도 다 엄마가 건강할 때 얘기다. 언젠가 우리 곁에서 사라질 엄마, 지금처럼 아픈 몸으로 자식의 돌봄을 받는 엄마라면 이제 더는 엄마의 손맛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기억에서 소환할 수밖에 없는 그 맛. 저자는 저자와 엄마, 엄마 엄마의 마음을 이어온 그 맛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바닷가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그 특유의 짠맛이 문장 곳곳에서 묻어난다. 읽는 내내 코끝으로 그 바닷냄새가 들어오는 것만 같다. (미안하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 그 맛 말이다. ^^) 바다에서 얻은 것들로 힘들게 자식들을 키운 할머니, 그 할머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음식들을 먹고 자란 엄마, 그 입맛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 이들의 삶과 일상에 함께한 음식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물림하는 것은 유산만이 아니라 입맛이기도 하다는 게 새삼스럽다. 닮아간다는 것. 마음이 연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할 그 닮음이 음식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마음을 음식에 담아 먹이고 키웠다. 추운 겨울에도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잡아서 올라오고, 생계를 위해 내다 팔면서도 내 자식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두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할머니의 그 마음을 엄마도 그대로 닮았겠지. 그 사랑 그대로 먹고 자랐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저자가 자라면서 받은 엄마의 밥상에서도, 엄마가 된 저자가 차려내는 밥상에서도 빠지지 않는 고등어는 3대에 걸친 이 가족의 사랑이었으리라.


이들이 먹고 자란 짜고 비릿한 바다 음식 앞에서 누구라도 울컥할 수밖에 없다. 자연에서 걷어 올린 것으로 내 자식을 키워내고 생계를 이어갔으며,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고됨을 너무 잘 알아서 더 이해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는 딸의 마음을 그려내는 문장 앞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을까. 부모와 털어져 타지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차려 먹는 밥상을 기어코 유지했던 것은 당연하게 몸에 밴 습관이었을 테다. 처음에는 귀찮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채웠던 끼니가, 내 몸과 엄마의 밥상을 생각하니 저절로 따라서 하게 되는 이상한 마음. 이들이 하나씩 차려냈던 밥상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 모녀 사이가 대물림하면서 나눈 다정한 마음 그대로였다. 말로 다 하지 못한 그 마음을 눈앞의 음식에서 읽어내는 능력을 발휘하는 건, 마음이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일 거다. 제주 해녀 출신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바다 음식, 강원도 생활이 오래된 엄마의 자연 음식, 그 두 가지를 골고루 만들어내는 저자의 음식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노릇하게 고등어를 굽고 살을 발라 밥 한 숟가락 위에 올려주는 건 엄마의 마음밖에 없는 듯하다. 그 짭조름한 맛이 문장 곳곳에 새겨져 있다. 마치 생선 한번 구워 먹고 온 집안에 냄새가 배여 쉽게 빠지지 않는 어느 날의 풍경 같다. 읽으면서 아쉽고 또 아쉬웠던 게 고등어를 구워 올려주는 밥상 풍경이었다. 언젠가부터 집안에 냄새가 배니까, 아무리 손질 잘하고 환기 잘하면서 구워도 오래가는 그 특유의 생선구이 냄새 때문에 집에서는 생선을 구워 먹지 않게 됐다. 생선조림 역시 마찬가지. 생선을 좋아하는 엄마도 그 냄새 때문에 먹는 걸 포기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가끔 근처의 생선구이 집에 가서 먹고 오곤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괜히 냉동실에 넣어둔 굴비라도 한번 구워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시를 잘 발라낸 생선 살 몇 조각이면 밥 한 그릇 뚝딱인데, . 그것뿐이면 다행인데, 저자가 기억에서 소환하는 음식들 대부분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을, 맵고 짜서 자극적인 입맛을 그대로 불러온다.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는 이상한 책이기도 하다. ‘보리토시의 동해안 사투리라고 한다. 나도 처음 들었다. 이곳 전라도에서 부추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같은 것을 두고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건 왜일까, 언제부터 그랬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프리마 우유가 무슨 브랜드인가 했는데, 어릴 적에 할머니가 프리마와 설탕을 넣어 타준 우유라고 한다. 잠깐 프리마가 뭘까 생각하다가 떠올랐다. 요즘의 커피믹스를 수고스럽게(?) 타서 먹던 재료. ^^ 우리 엄마의 커피 황금비율은 ‘2(커피) : 2(프리마) : 2(설탕)’이었다. 저자의 할머니가 커피를 빼고 타준 게 프리마 우유였다고. 빙 둘러앉아 해물파전을 부치면서 명절의 고단함을 음식과 수다로 풀어내던 이모들의 등장은 시끌벅적했다. , 생각만 해도 푸짐하다. 음식도 사람도. 그렇게 모여서 만들어 먹어야 맛있는데. 언젠가부터 단출해지고 조용해지는 게 우리 집 명절인데, 올해 설날은 정말 고요했던 기억에 괜히 서글퍼진다. 저자의 할머니가 엄마의 손에 쥐여준 보따리 속에 맛있게 머물렀던 가자미식해의 추억은 눈물이 난다. 언제까지나 엄마가 그 자리에서 가자미식해를 해줄 거로 여겼을까. 미처 엄마에게 배워두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는 이 모녀의 말에 계속 눈물이 났다.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는 가자미식해가 기억 속에 머물던 그 맛이 아니라는 게 아파서 말이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음식을 만나본 사람은 알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평생 기억에 남은 이유가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어떤 음식은 손으로 만드는 위로 같다. 재료를 구하고 씻고 다듬고 만들어 전하는 수고로움과 누군가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한데 섞인 맛깔스러운 위로. 그런 음식을 입으로 넘겼을 때 나는 처음으로 미음을 먹어본 아기처럼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저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울 것 같은 마음으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세상에는 이런 음식도, 이런 위로도 있다. (48~49페이지, 아랫집이랑 나눠 먹으렴, 김치)


슬픈 일에도 웃을 수 있고 기쁜 일에도 울 수 있는 것. 기꺼이 같이 울어줄 수 있는 것. 그럴 수도 있지 헤아려보는 것. 심각하다가도 툭툭 털고 일어나 밥을 먹는 것. 내가 지어 내가 먹는 것. 나눠주는 것. 힘차게 껴안아 주는 것. 씩씩한 것. 내가 가진 기질들은 모두 우리 집 여자들에게서 배운 것들이었다. (68~69페이지, 웃음도 울음도 쉽고 다정하여, 해물파전)


단순히 음식 이야기에 머물지 않아서 더 애틋한 이야기로 남을 듯하다. 저자 엄마의 자매들은 자라면서 할머니의 일을 함께했다. 김을 만들고, 할머니가 따온 미역을 정리하는 일을 도우면서 생계를 위한 부모의 고단함을 체험했다. 어려웠던 형편에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힘이 들었을 부모에게 조금이나마 보태려는 마음이 고맙다. 그래서일까. 자매들 누구도 가난을 푸념하며 원망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함께 모이면 수다 떨고 추억 곱씹으며 같이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기에도 바쁘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던 듯하다. 저자 역시 성장의 시간에 함께한 음식을 소소하게 기억하고 새긴다. 일의 고단함을 그대로 풀어냈던 대구탕의 개운함, 동생과 둘이서 혼밥의 시간을 달랬던 달걀밥, ‘꼬아내서끓여야만 제맛을 내는 미역국 레시피처럼, 삶의 모든 순간에 음식이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입이라도 더 넣어주고 싶고, 맛있는 거 먹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손수 차려서 밥 한 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삶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긴 음식 앞에서 세월을 느끼고 엄마를 생각한다. 그 음식들은 대부분 짠맛과 동의어처럼 들렸고, 이 가족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그 짠맛은 바닷냄새 그대로이기도 했고, 고단한 일상에서 흐르는 눈물의 맛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맛이기도 할 테다. 엄마 생각만 하면 짠하니까. (.) 할머니에서 엄마, 저자에 이르는 한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짭짜름한 맛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누구라도 비슷할 평범한 일상과 익숙하게 매일 먹는 밥이 의미를 담은 채로 남겨졌다. 사랑스럽고, 그립고, 눈물 나고, 애틋해서, 특별했다.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인생이겠지만, 아프기만 한 인생도 아닐 것이다. 내가 아직 엄마 나이만큼 살아보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니 보이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고 싶고 그리워질 대상이 되기도 하더라.


엄마. 엄마.

엄마랑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엄마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기억하고 싶었다. 헤어질 때마다 항구식당에서 먹었던 맵고 짠한 우리의 작별 식사를, 언제나 버스가 떠날 때까지 창밖에서 손 흔들어주던 엄마의 얼굴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헤어질 땐 맵고 짠하게 안녕.

맛있는 음식들 쟁여 먹은 힘으로 열심히 살다가 돌아올게. (146~147페이지, 헤어질 땐 맵고 짠하게 안녕, 잡세기탕)


문장에서, 활자에서 음식이 그대로 보이는 착각을 할 정도로 맛있게 읽었다. 짠맛과 비린내가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니... 이 밤에 내일 아침 밥상에 올릴 생선구이를 떠올리며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온 집안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꼭 구워 먹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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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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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의 소설도 그렇긴 하지만 일본 소설을 읽을 때 자주 느끼는 게, 비슷한 환경과 문화에서 겪는 일들이 너무 닮았다는 거다. 거기에 이 작가, 가키야 미우의 작품 속 주인공들과 그들이 마주한 여러 가지 사연들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심정을 토로하는 건 듣는 기분이 들거나, 어느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고민을 마주하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저자의 작품을 좋아한다. 가식을 떨칠 수 있는, 굉장히 적나라한 상황과 심리 묘사로 현실에 찰싹 달라붙은 우리의 이야기를 펼치곤 해서 말이다.


인간이 절망을 느끼며 다시 바닥 짚고 일어서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건 국적을 가리지 않는가 보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구미코는 긍정적이었다. 일도 잘하고 분위기도 좋았으니 이번 계약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로 믿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계약이 끝났다는 통보로 구미코와의 인연을 끝냈다. 설상가상, 7년째 동거하며 지내온 남자친구는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며 헤어지자고 말한다. 둘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같이 준비하며 합했던 모든 것은 이제 나뉘어야 한다. 특히 구미코에게는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부모도 가족도 없는 그녀가 돌아갈 곳도 없다.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고 살던 집에서도 나가야 하는데, 도저히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구인란을 뒤지며 새로운 일을 찾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단기로 일하는 시간제만 있다. 그녀가 찾고 싶은 정규직에 안정적인 직장은 그녀를 거부한다. 그녀의 나이 이제 삼십 대 중반을 향해 간다. 무언가 안정되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 더 불안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다. 모아놓은 돈은 집을 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집을 구하려면 보증이 될만한 배경이 필요하다. 다닐 직장도, 가야 할 집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듣기만 해도 캄캄하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고, 내 몸 하나 편히 뉠 곳도 없다는 건 얼마나 벼랑 끝이란 말인가. 이것저것 시도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고 절망에 절망을 거듭할 무렵,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한 가지. 농업.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홍보하는 장면에 시선을 빼앗긴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정성 들여 가꾸니 무언가가 자란다. 채소와 과일이 눈에 그대로 담긴다. , 뭐든 노력하는 만큼 내놓고 보여주는 게 땅이구나. 그녀는 농업을 가르쳐주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실습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농업을 계속할수록 자신감이 붙는다. 이제 모든 수업은 끝나고, 실전이다. 땅을 구하고 열심히 채소를 가꾸기만 하면 된다.


생각하는 그대로 모든 게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무렵 농업을 알게 되고, 이제 다시 일어설 일만 남았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쳤건만, 현실은 냉혹했다. 시골에서 여자 혼자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모두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대대손손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뜬금없이 나타난 뜨내기가 농사를 짓겠다고 바람을 일으키니 좋아할 사람이 없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봐도 인내심을 가지고 농업을 하면서 시골에 정착한 사람이 없더라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구미코는 당황한다. 땅을 임대해야 농사를 짓고 집도 짓고 하면서 시골 생활에 적응할 텐데, 준비 단계에서부터 그녀는 다시 꽉 막힌 현실에 부딪힌다.


가까운 주변에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실제로 농사를 지켜본 적은 없다. 마트에서 필요한 채소 몇 가지 사다 먹으면 된다는, 편한 일상을 지내기만 했으니 농사의 현실을 내가 알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다가 엄마가 마당의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거의 일 년 내내 그 작은 밭에 몸과 마음을 쏟는 것을 보고 농사의 어려움을 작게나마 알게 됐다. 이렇게 땅에 몇 가지 채소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데, 더 크고 넓게 농사를 한다는 건 정말 가늠할 수 없는 고단함이겠구나 싶었다. 여름에 푸릇하게 벼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가을에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는 것을 지켜보는 이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구미코가 처음 농사에 뛰어들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사람도 회사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나를 배신하는 때도 많지만, 땅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농업을 쉽고 편하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니, 땅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 일이 더 경건하고 위대한 일로 보인다.


식물을 만지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채소와 꽃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뻤다. 씨앗 한 알갱이에서 싹이 나올 때의 기대감, 시간이 지나면 가련한 꽃이 피고 거기에 열매가 맺힌다.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또 연구하고 노력하기에 따라 열매의 품질이 정해지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베란다에 채소를 키우곤 한다.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79페이지)


구미코가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에 입성하고, 어렵게 땅을 구하고 채소를 심고 가꾸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삶의 고단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낀다. 일하겠다고 땅을 구하는 여자에게 농업 하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이나 하라고 말하는 인식, 열심히 자기 삶을 꾸리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남편의 안정적인 삶에 기대야 한다고 말하며 결혼 만남에 등 떠미는 시선, 단체 맞선 같은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강요되는 여성의 자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참담했다. 내숭을 떨어라, 바지 말고 치마를 입어라, 상대의 취향에 맞추는 척해라, 처음부터 남자의 환경이나 능력을 묻지 말아야, 가만히 앉아서 적당히 미소로 응대하라는 등 다시 만나려고 이래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말들이 암흑이었다. 솔직하게 자기를 보여주는 일이 거부당하는 현실, 그것도 대부분 여자에게 강요하는 처세술이 이런 거라니. 결혼하지 말라는 게 아닌, 여성 그 자체로 살아가기 위한 당당함과 독립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비추면서,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누구에게 기대거나 현실의 불안에서 도피하기 위함이 아닌 오롯이 마음이 통하는 상대와의 결합이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성 혼자 농촌 생활을 시작하는 고군분투가 생생해서 삶의 치열함을 거듭 엿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이 내 앞에 튀어나올까 겁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내 앞에 닥친 문제의 답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또 뛰어다녀야 할까 생각만 해도 심란하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 순간을 넘어가기 위해 우리는 또 답을 찾아서 달려야만 하니까. 결국은 눈앞에 닥친 지금을 성실히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답이 되겠지. 그게 바로 삶의 의지가 되고 이유가 된다. 구미코의 곁에 아야노와 후지에 같은 삶의 경험이 축적된 어른이 있어서, 현실의 고충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또래의 시즈요나 히토미, 미즈키 같은 여성이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삶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니까. 함께,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구미코가 현실의 절망에서 다시 일어서기까지 스스로 노력하기도 했겠지만, 주변에서 관심 둬 주고 함께 나아갔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테다. 이번 기회로 삶의 고마움과 사람의 소중함을 더없이 배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겸허히 껴안은 방법도 배웠겠지.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차근차근 배워가는 삶의 순간들이 아름답게 보였던 소설이다. 어떤 환경을 만들어도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답을 찾은 그녀의 농사가 언제나 풍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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