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포근했던 날이 언제였느냐는 듯, 갑작스러운 추위로 옷깃을 여미던 주말이었다. 마치 때가 되었으니, 조금은 슬퍼도 되는 날이니, 날씨마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듯이... 몸도 마음도, 상당히 추웠던 날이다. 덕분에 때아닌 감기가 다시 찾아왔지만, 괜찮았다. 그까짓 감기쯤 너그럽게 받아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엄마를 보내드리는, 조금은 슬펐던 그 의식으로 감기쯤이야 뭐 별건가, 싶은...

 

 

금요일 오후...

작은이모가 왔다. 나이 75세. 몇십 년 만에 기차를 타봤다고 했다. 그것도 혼자서. 너무 무서웠다고. 나이가 드니 겁이 더 많아졌다고. 그동안은 자식들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이동했던지라 혼자서 낯선 곳으로 오는 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이모의 말로는 40여 년 동안 고향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내 기억에서도 그렇다. 엄마랑 같이 이모를 만나러 간 적은 있어도 이모가 이곳으로 온 적은 내 기억에 처음인 듯하다. 이모가 고향에 오지 못했던 이유는, 먹고 살기 바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마음을 아주 모르지 않기에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이모는 쉬지도 않고 이야기를 했다. 어디 가서 말할 데도 없다면서 답답한 속내를 한참 풀어놓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도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안 들을 법한 나도 그냥 듣고 있게 된다. 밖에 나가서 말하자니 흉이 되고, 그 속을 이해할 사람 없으니 함부로 이야기도 못 하고. 무엇보다, 다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 작은 기쁨을 맛보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주무신다고 누우시더니 바로 코를 골고 있다. 재밌다. 장거리 기차여행이 힘들었을 테고, 낯선 곳으로의 발걸음이 긴장되었을 테고, 심란한 마음이 무거웠을 테고...

 

 

토요일 아침...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 옷을 갈아입던 작은이모가 말한다.

“나이를 먹으니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모, 얼마 전에 누가 그러던데? 눈물은 마르지 않는대.”

“그래, 그런가 보다...”

나이를 먹으니 눈물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의식을 위한 날이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기도 하고...

곧 큰이모까지 오셨다. 그렇게, 칠순을 넘긴 노인 셋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당신들의 엄마 아빠(나에게는 외조부모)가 계신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외삼촌이 살아계셨을 때는 외삼촌이 알아서 관리하셨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2년 전에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당신들의 부모가 누워있는 그 자리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엄마의 형제 중에 살아계신 분은 한국에 세 명, 미국에 네 명. 물리적으로 오고 가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지만, 다들 살아갈 날이 머지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다들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화장하기로 한 것을 행하는 날이었다.

 

예감했다. 그 자리가 어떨지를. 오랜만에 만난 그녀들은 서로의 안부를 제대로 묻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칠순이 넘은 노인들이 당신들의 엄마 아빠를 이제는 완전하게 보내드려야 하는 그 마음을,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몇십 년을 땅속에 계시다가, 하얀 가루가 되어 날아갈 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그래도 언젠가 내가 부딪힐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보일 모습이 그러할 것이니...

간단하게 예를 갖추고, 포클레인이 묘를 파고, 조심스럽게 드러낸, 얼마 남지 않은 뼛조각. 울적한 마음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엄마가 있고, 언젠가 저렇게 보내드려야 할 텐데, 생각만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들의 눈물에 동요했다. 지금 다 알지는 못해도 알아야 할 눈물의 의미 때문에. 영원한 안녕을 위해 꼭 한번을 치러야 할 의식처럼, 경건하면서도 슬펐던 시간... 이제는 지나간 시간이면서 가슴에 묻어야 할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저녁에, 이모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돌아오다가 괜히 울컥했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시간 오지 말라고 때 쓰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기에. 가슴에 묻는 아픔과 고통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에...

밤에, 엄마에게 물었다. 어떠시느냐고. 엄마는 답이 없었다. 나도 참, 어리석다. 어떤 답을 듣겠다고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조금 오래된 얘기다.

큰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엄마와 둘이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두 여인이 있었다. 60대와 8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 그들은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탔고, 우리 좌석과 대각선 방향으로 앞쪽에 타고 있었다. 조금 더 젊은 쪽이 나이 든 쪽을 엄마라고 불렀다. 모녀 사이인가 보다. 손주, 혹은 증손주를 두고 있을 나이의 두 사람이 엄마라는 호칭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애틋했다. 혹시나 엄마가 멀미할까 싶어 몇 번이고 괜찮으냐고 묻는 딸, 괜찮으니까 그만 신경 쓰고 편히 앉으라는 엄마.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엄마의 몸을 부축하고 차에서 내리는 딸, 걸음이 조금 느린 엄마를 안고 화장실로 향하는 모습. 잠시 후 다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대화, 그들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내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하는 엄마의 말을 나는 듣고 말았다. “엄마 보고 싶다...”

당연한 건데 나는 참 자주 잊고 살아온 듯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그 엄마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을 전혀 모르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오직 나의 엄마의 자리에만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낯설었나 보다. 그 당연함이...

 

 

모든 일정이 끝나고, 결국, 엄마는 지독한 몸살이 났다. 나의 컨디션도 최악인데, 감히 엄마의 그 상태 앞에서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무거울 그 몸살이 조금은 가볍게 지나갔으면 싶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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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패대기 쳐 놓고,

흠씬 두들겨 패 놓고,

"미안" 이란 한 마디 던져 놓으면

그게 사과가 되고 용서가 되나?

 

사과는 받을 사람이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사과가 되는 거다.

자기 마음 편하고자 미안하다는 말 던져 놓는 게,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너무 오래 걸었더니 다리가 후덜덜 떨리기까지 하더라.

아, 늙었구나...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며칠째 소화제를 달고 산다.

안 마시던 탄산음료까지 마셨다.

건망증도 심해졌고...

화를 내느라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좀 높아졌고,

글이 거의 없는 그림책 한 권을 보다가 조금 울적해졌고....

 

 

 

책은 읽지 않았지만, 책쇼핑은 멈추지 않았고... ㅠㅠ

근데 이상하다.

늘 그랬지만서도...

요즘, 읽고 싶은 책 참 많이 나온다...

마음 아프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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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에 꼭 한 권은 끼워넣고 싶은 책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갑자기 이분 책이 쏟아져 나옴...

분위기는 좋으나 이번 도서는 어떨지 몰라서 살짝 망설이는 마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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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토요일 밤, 코감기가 심했지만 감기약은 없었고,

코막힘으로 두통이 너무 심해 두통약을 한 알 먹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일요일 밤이다.

꼬박 24시간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나?... 그럴 수도 있나 보다.

일교차가 심했던 지난주에 바람을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녔는데 기어이 탈이 났나보다.

 

 

덕분에(?) 주말 동안 읽으려고 다짐했던 한 권의 책은 여전히 펼치지 못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

뭔가가 자꾸 어긋난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뭉텅이로 비틀어진 것...

신경이 곤두섰다.

그 와중에 기껏 생각한 것이, 지난주에 주문하지 못한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것... 휴...

 

 

 

 

아직 읽지 못한 <1Q84>를 오래전부터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은 너무 지져분해서 손이 잘 안 간다. 일정 기간 동안 금방 읽을 자신도 없고... 사서 옆에 두면 조급함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은 구매하려고 한다.

구간인데도 내가 생각했던 가격만큼은 아니어서 좀 섭섭하지만, 신간이 아니라 구간이니까 고민은 덜 된다.

 

 

 

 

구매해두고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는 <모비딕>이다.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두 권을 추려놓고 어떤 책으로 할까 망설이던 차에, 지인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원서로 읽을 수준이 안 되니, 그저 편하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손이 간다. 그나마도 다행이라는 생각 중...

 

 

 

며칠 계속 흐리고, 뿌연 바람이 앞을 가리고, 기분까지 우중충하게 만들더니

오늘 아침에는 환한 햇살이 보인다.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도 빨라졌고...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봄이 다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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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뜬다.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모르는 번호가 뜰 경우 둘 중에 하나다. 스팸이거나 택배이거나... 근데 보통 이곳에 배송하시는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는 거의 다 입력되어 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택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후자였다.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을 가져다주겠다는 택배 기사님. 집 위치를 묻는 거였다. 큰 길 쪽에 위치한 터라 어렵지 않게 찾아오셨기에 물었다. 현대택배 기사님이 바뀌셨냐고. 기존에 배송하시던 기사님이 그만 두셔서 자기가 대신 배송해드리는 거라고, 자기는 현대택배 기사가 아니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딱히 그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를 입력해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그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가 자주 뜬다. 요 며칠은 이제 전화도 없이 찾아오신다. 익숙해졌다는 얘기다. 아직 고정된 기사님이 오시지 않았나 보다. 기존에 그 기사님 여기 배송한지 거의 반년 정도 되었는데 벌써 그만두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끔 알라딘에 중고팔기 하면서 알라딘 노란가방에 책 꽉꽉 채워서 보낼 때, 난감해 하시던 표정이 생각난다. 이러면 곤란하다는 표정, 무겁고 힘들다고 말했던 표정, 한쪽에 탑차 세워놓고 담배 하나 피우고 출발하시던 표정... 결국, 그만두셨구나...

 

며칠 전에 TV에서 택배 기사의 3일을 취재한 다큐를 봤다. 택배 기사의 하루를 동행 취재한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었으니 특별하게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그 내용이 어떨 건지 뻔히 알면서도 저절로 시선이 간다. 그리고 매번 볼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한때는 나와 여러 번 싸우기도 했던 대상인데,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그 모습은 나와 싸우던 모습과는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던 그 많은 택배 기사들의 말에 공통점이 있었다. 노동의 순간이 기쁘고, 땀 흘려 뛴 만큼 버는 일이라 좋고, 아파서 누워 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이렇게 일 하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거다. 택배 기사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예전에는 주로 나이 있으신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이십 대 청년들도 많다. 부부가 함께 다니기도 한다. 거의 잠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이 택배 업무에 필요한 시간이다. 바삐 움직이는 만큼 번다고 해도,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택배 업무에 드는지 몰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밤 10시에 배송 올 때도 있는 걸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탑의 물건이 쏟아질까 봐 후진해서 언덕을 오르는 택배 차량도 있다. 골목 안쪽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해서 물건을 들고 좁을 골목을 달린다. 번지수는 맞는데 집을 잘못 찾는 경우가 힘들단다. 집을 찾아서 물건을 배송해야 다음 집으로 배송을 가니까. 수령인이 부재중일 때는 택배 기사와 수령인 사이에 아는 장소에 두고 가고는 한다. 어느 집 현관문 앞에는 방문할 택배 기사의 이름이 써진, 음료수가 담긴 봉투가 하나 걸려 있기도 한다.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한마디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한다.

 

택배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물건을 보내고 받았는지 기억하기도 싫다. 작은 언니가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갔을 때다. 엄마가 담근 김치랑 엄마가 만든 반찬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열심히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든 것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나? 집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기사님께 물품 인도하고 차비만큼의 배송료를 내고,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언니랑 형부가 버스 도착 시각에 맞춰 나와 물품을 가져가고는 했다. 그런 일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정말 마음은 열 번을 보내고 싶어도 번거롭고 힘들다. 다행스럽게도 그즈음 해서 택배가 생겼다. 너무 편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택배가 없어진다는 상상만 해도 캄캄하다.

 

소비하는 생활에서 이제 택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부터도 대부분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는 하니, 택배 기사님은 몇 달에 한 번 보는 친구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다.

어느 날, 조카 아이에게 동생(조카 아이의 엄마)이 자전거를 사줬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자전거가 배송되었고, 조카 아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 나게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놀이터에 같이 있던 아파트 아주머니가 조카 아이에게 물었단다.

“어머~ 자전거 멋지네. 누가 사줬어?”

“택배 아저씨가요!!!”

@@

아이의 눈에 비친 택배 기사님은 물건을 배송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물건을 사주시는 분이었다. 너무 자주, 익숙하게 배송받는 일이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택배 아저씨가 사줬다는 그 말은 내 동생을 웃프게 했다. ㅠㅠ

 

인터넷서점 이용한 지 십 년이 넘었다. 그 말인즉슨, 택배를 이용한 시간도 똑같다는 말이다. 그동안 택배 관련해서 참 감정 상할 일 많았다. 배송도 안 해주고 마음대로 배송완료 처리해놓고 이틀이나 더 지나서 배송해준 적도 있다. 책도 그냥 막 던지고 가서 망가지고, 귀찮게 책 교환하게 하기도 했다. 어디 책뿐이랴. 내 돈 내고 내가 물건 보내는데도 택배 기사 눈치 봐야 하느냐며 화를 낸 적도 있다. 근데, 참... 이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한 템포 쉬고 말을 꺼내니 열 번 싸울 일도 다섯 번 싸우게 되고, 한번 싸울 일도 그냥 넘어가게 한다. 배송하는 사람, 받는 사람, 보내는 사람 모두가 딱 한 번만 더 숨 고르고 얘기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썩는 물건 아니면 하루 이틀 지나서 와도 그러려니 하고, 내가 먼저 웃으면서 수고하시라고 인사하기도 한다.

 

“기사님, 저 구단씨인데요.”

“어, 구단씨~” (몇 년 전에 처음 봤을 때부터 막 반말하셨다.)

“오늘 제 이름으로 반품 송장 나온 거 있어요?”

“송장? 오늘 구단씨 송장 나온 거 없는데?”

“아, 그럼 내일 나오려나 봐요. 알겠어요. 수고하세요.”

“그냥 오늘 가지러 갈 테니까 이따가 줘.”

“저희 오늘 부재중인데요?”

“그럼 00한약방에다 맡겨놔. 내일은 바쁜 날이야.”

“아, 네. 그럴게요.”

며칠 전, 택배 반품할 게 있어서 H택배 기사님께 전화를 드려 송장이 나왔느냐고 물었다. 송장이 안 나왔다는 말에 다음 날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랬더니 기사님께서 내일 송장 나오면 알아서 보내줄 테니 그날(월요일) 수거해 가신다고 했다. 다음날(화요일)은 바쁜 날이라 일부러 들르기 어렵다고. 택배에서 화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웬만하면 화요일에 물건을 받거나 보내는 일을 피하려고 날짜 맞춰 주문하고는 한다. 그런데 반품은 내 맘대로 송장이 나오는 게 아니므로 어쩔 수가 없다. 그날은 내가 부재중이라 기사님을 기다릴 수 없다고 했더니 집 앞 큰길에 있는 한약방에 맡겨놓고 가라고 하신다. 그 한약방은 거의 매일 기사님이 방문하시는 곳이기도 하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집이라 맡겨 놓고 가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했다. 이럴 경우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직접 건넨 물건도 아니고, 송장을 받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남의 집에 물건 맡겨놓고 알아서 가져가겠다고 하는 말을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믿었다. 연락처도 알고 있으니 이틀 정도 지난 후에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낼 택배 물건에 캔커피 하나를 붙여놓고 왔다. 이거 드시고 송장 나오면 문자 한 통 달라고 포스트잇에 써놓았다. 그런데 문자 없었다. ㅎㅎ 결국은 내가 전화를 해서 송장 번호 확인했지만, 화가 날 일은 아니었다. 기사님이 먼저 송장 번호 불러주고 있었으니까. 나이 드신 분이라 그럴 수도 있고, 그 바쁜 와중에 문자 한 통 보내는 일이 번거로웠을 수도 있다. 안전하게 발송된 거 알았으니, 됐다. 이 기사님은 길 가다 우리 엄마를 봐도 아는 척하신다. “구단씨 어머님 어디 가셔요~?” 남의 귀한 딸내미 이름 막 부르고 반말하신다고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거, 아시려나 몰라. ^^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닌데요?”

“항상 웃고 계셔서요.”

“아, 하하하...”

작년에 C택배 기사님이 바뀌셨다. 인터넷서점에서 내가 직접 주문한 책이나 선물이나 출판사에서 책을 받을 때 주로 마주하는 택배다. 그런데 이 기사님, 처음부터 너무 밝게 인사하면서 오신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집안에서도 다 들린다. 이제까지 경험한 택배 기사님 중에서 가장 반갑게, 먼저 인사하는 분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그렇지,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인상 쓰면서 올 건데 뭐, 하는 생각으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근데 이분이 배송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하시다. 항상 밝게 인사하면서 들어오신다. 덩달아 택배 받는 사람도 괜히 기분이 좋다. 길 가다 우연히 봤는데 마주하는 고객들에게 모두 그렇게 대하신다. 이런 분이 이 구역을 오래 담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엄마가 김치를 보내신다고 방문요청을 했다. 좀 무거운 박스였는데, 엄마가 따뜻한 캔커피 건네면서 택배 기사님께 물으신다.

“날씨도 추운데, 짐도 무겁고, 힘드시죠?”

“아이고, 어머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그런데... 그래도 힘들지요.”

“힘들어도 열심히 해야죠. 하하하.”

그렇지.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몸이 아프면 일하기 힘들어지는 일이라, 밖에서 움직이는 일이라,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은 저절로 시선이 간다. 내 몸이 아프면 짜증나고,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라 별의별 상대를 다 만날 텐데... 그래서 이분의 하이톤 인사가 대단해 보인다. 그냥 나오는 인사가 아닐 듯해서.

이분은, 우리가 부재중일 때는 배송 안 하고 그냥 갈 수는 없으니 기사님과 나만 아는 비밀 장소(?)에 택배 숨겨두고 전화하신다. 어디 어디에 놓고 간다고. 아주 오래전에 어떤 기사님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가시고는 했다. 불쾌했다. 이런 이유로 놓고 가니 나중에 확인하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화를 낸 적도 있다. 택배 온 줄도 몰랐는데, 물건 분실하면 책임지실 거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냥 놓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을 이해 못 한 게 아니라, 놓고 갔다는 확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다. 웃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태도 하나에서 얼굴 붉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지금은 잘 알고 있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C택배 영업소가 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는 H택배 영업소가 있다. 택배 보낼 일이 있을 때는 보통 3분 거리의 C택배를 이용한다. 처음에 부부가 같이 택배 배송을 하셨는데, 지금은 그분들이 영업소를 열었고, 택배 기사님 2~3분이 함께 일하시는 걸로 안다. 번거롭지 않게 하려고 송장도 몇 장씩 미리 갖다 놓고 사용하고는 한다. 물건 보낼 일이 있을 때는 송장까지 다 붙여서 들고 가기도 하고, 음료수를 가지고 가기도 한다. 주로 화요일은 피하는 편이고, 오전 일찍 방문하는 것도 피한다. 택배 영업소가 오전 9~10시쯤 되면 문을 연다. 그래서 물건을 들고 간 적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오전 11시쯤 다시 갔다. 그때야 기사님들이 있으셨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물류 작업하고 그 시간이나 되어야 배송 때문에 영업소로 온다고 하셨다. 기사님 두 분이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계셨는데, 송장을 쫙 펴놓고 정리하고 계셨다. 뭐하나 싶어서 궁금한 마음에 물었더니 담당 지역 배송할 송장인데 주소에 맞게, 배송 순서에 맞게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하... 미리 정리해서 순서를 정해야 시간도 절약하고 효과적이겠구나 싶었다. 대충 그런 식으로 배송하는 거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해 보였다. 세상에 쉬운 일 없는데, 택배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순간이다.

 

내가 TV를 통해서 본 다큐 속에서 그들은, 직접 마주한 택배 기사님은, 노동의 현장에서 자신의 땀으로 일구어낸 만족감을 얘기했다. 자신이 배송하는 물건을 보고 좋아하는 고객의 표정에 기뻐했고, 방문하는 집마다 노크하느라 장갑의 가운뎃손가락에 난 구멍을 보여주며 웃었다. 물건을 이고 지고 뛰어다니느라 불편한 한쪽 팔, 한쪽 다리를 얘기했다. 월급날 입금된 숫자를 보여줬다. 그렇게 뛰어다녔는데 그 금액일까 싶어서 갸우뚱 했지만, 그 내역에 대해서, 택배 일의 더 세세한 사정에 대해서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넘어가자. 하지만 그들의 하루를 지켜보고, 통장에 입금된 숫자를 본 내 마음은 서글펐다는 거... 그 금액 중 절반 이상이 영업차량의 기름 값이며 온갖 세금으로 다 나갈 테지만, 뛴 만큼, 땀 흘린 만큼 버는 그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얼굴에 내가 느낀 서글픔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새벽부터 물류 집하장으로 나가 허리 펼 시간도 없이 몇 시간을 택배 분류하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그 좁은 골목을 뛰어야 하며,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운전석에 앉아 차가운 김밥 한 줄을 먹으면서도 택배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 노동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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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0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7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4-03-2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수필한편 같아요

구단씨 2014-03-21 21:45   좋아요 0 | URL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 그렇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