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에바 로만 지음, 김진아 옮김 / 박하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거의 3년 전까지, 나는 잠잘 때도 손목시계를 차고 잤다. 그런 나를 보고 조카가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나는 시계를 풀어놓고 자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손목에 시계가 없으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불안하다고. 내가 손목시계를 차고 잠을 잤던 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제법 오랜 시간을 그렇게, 시계를 차고 잠이 들었다. 일상을 지내고, 저녁에 씻고, 다시 시계를 차고, 잠을 자고... 이런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를 강박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나는 상당히 많은 강박증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시계에 관한 것이었다. 다행인지 그 손목시계에 대한 강박증은 없어졌다. 지금은 손목에 시계가 없어도 불안하지 않다. 그 불안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강박증이 사라진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은 개운하지 않다. 어떤 심리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고 들어왔던 터라,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던 강박증이 이렇게 갑자기, 완전히 사라진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언제 어느 때 튀어나와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을지 알 수 없다. 가끔 그런 불안감이 나를 잠식하기도 한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주인공이 가진 어떤 불안감이 그 8주의 시간을 보내게 하였을까 싶은, 그 시작점은 어디였으며 어떤 결과로 그 8주의 시간을 정리했을까 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몸의 감각. 사람들은 밀라(Mila)를 의사에게 데려갔고, 곧 정신병원으로 데려갔다. 무슨 일로 그렇게 되었는지 그녀에게는 기억에 없다. 그녀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그리고 그녀는 안심했다.

 

나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가족, 친구와 수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그들과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가까운 이들에게 느껴본 적이 없는 동질감을 막 알게 된 낯선 사슴에게서 느끼다니! (29페이지)

 

이상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감각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도, 어쩌면 더욱더 큰 불안을 가져올 것만 같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안심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생각했다. 그녀가 진정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오랜 시간 무기력함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고, 문득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녀를 슬픔에 빠지게 한 듯하다. 규칙적으로 먹는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쯤 되면 그녀의 건강을 해치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안심했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유로부터 도망갈 기회가 생긴 듯하다. 출근하고, 직장에서 시달리고, 누적되는 피로에 지치는 하루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주체가 자신이라면, 그런 생활을 선택하고 이어가는 목적이 자신이 정한 거라면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것을 그녀가 입원한 그 8주의 시간이 들려주고 있다. 그녀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의 주인공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시간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자신이 아니었던 거다.

 

그녀가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퇴원하기까지, 그 안에서 생활하는 과정이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그 자체인 듯하다. 많은 것들로부터 피곤해진 그녀가 놓아버린 육체가 표현했다. 그 이상의 것, 즉 육체가 보낸 신호는 영혼의 소리가 보낸 신호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들려온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원인과 증상들, 거식증, 폭식, 여자의 정체성을 가진 남자, 다중인격, 실연, 등등 많은 이유로 그곳을 찾은 사람들이 내는 고통의 소리를 밀라를 통해 듣게 한다. 그녀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까지 함께 보게 한다. 그 안에서 그녀의 원인 역시 그 많은 증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치료의 과정에서 함께 하는 전문가의 상담을 눈여겨보게 한다. 그저 환자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그렇게 듣다가 시간만 보내고 다음 상담을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 듯하다. 그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그녀를 나아지게 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원인은 달라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같은 고통을 나누면서, 전문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하나하나 그 원인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냥 행복해지라고요? 그게 얼마나 큰 요구인지 아세요? 행복해지라고요? 삶에 만족하는 균형 잡힌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220~221페이지)

 

그래서 그녀는 그 원인을 찾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찾았다. 그리고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필요한 건 그녀의 변화와 용기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가 그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무기력함이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끝없는 피곤함을 가져왔고,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밀라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같았다. 우울증이라는 간단하게 들리는 병명이 얼마나 많은 원인을 숨긴 채로 우리를 잠식해가고 있는지 보게 한다. 사회에서 보내는 관계와 시간, 자신의 인생에서 부모님이 차지하는 비중과 존재감, 인정받고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 그 안의 많은 원인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대부분 하나로 귀결되는 듯하다. 그 시간, 그 관계, 그 미래, 한 사람의 인생을 차지하는 중요한 많은 순간에 있어서 주인공이 빠져 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어야 하는데, 지금 살아가는 우리 생활, 환경 대부분에서 그런 갈등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나에게 좀 더 안정된 삶을 허락하는 일, 나보다 부모님이 더 기뻐할 일, 나보다 타인에게 더 괜찮아 보이는 일이 우선시 되는 것. 그래서 자꾸만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진다. 내가 그러면 안 되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안달하고 몰아친다. 그럼, 그게 다 이루어질까? 행복할까? 웃을 수 있을까?

 

8주라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입원해있던 8주라는 시간은 워밍업이었을 뿐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그녀의 그 시간을 동행하면서 느꼈던 건,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의 증상이나 원인이 정상인과 정신병자 사이의 차이점을 크게 느끼게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동시에 그런 내면의 이야기를(이 책에서는 영혼의 목소리라는 표현을 했다.) 아무에게나 쉽게 하지 못하는 현실 역시나 공감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겨버리거나, 제대로 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거나, 그 증상의 해결방법도 모른다거나... 대부분의 일에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것처럼 내 안의 문제도 그 시작점을 찾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걸 간과해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 정신을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 보게 한다. 저자가 밀라를 통해 보여준 병원의 풍경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 한다. 잘해야 한다는, 자녀로서 해야 할 역할도, 연애도, 사회적 지위도, 어쩌면 삶 자체를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그걸 원하니까, 부모님이 바라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로 쌓여갔던 것.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과 삶에 대해 자신을 닦달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겉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지금 웃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행복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으니까.

 

알게 모르게 내가 만들어가는 강박증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아직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언제 생겨날지 모를 그 불안이 얼마나 많은 강박증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보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만들어주는 듯하다. 불안하게, 초라하게, 안달하면서 볼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아직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강박증들을 천천히 살펴봐야겠다. 그 시작점을 찾아서,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그 시간을 만나기 위해서.

 

'삶이란 둘 중 하나다. 신나는 모험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그렇다. 내 삶은 신나는 모험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내가 다리 밑에서 잠을 자야 할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을 일도 없을 것이고 머리 위에 언제나 비 피할 지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머리로 내 살 길을 찾아낼 것이다. (235페이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9-18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9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수상하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게 불편하다.

고개를 숙이는데 왼쪽이 묵직하다.

아픈 건지 어떤 건지...

 

거울을 보니 이건 뭐, 찌그러진 달덩이 같다.

얼굴 왼쪽이 심하게 부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왼쪽 턱 아래, 목으로 내려가기 직전, 그곳이 혹 달아놓은 것처럼 부어 올라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게 했던 거다.

 

이건 뭐다냐...

깜짝 놀라서 병원 문 열자마자 달려갔는데 예약 환자가.... ㅠㅠ

오전 마지막 진료를 받았는데, 임파선이 부었단다.

감기가 걸렸냐고, 많이 피곤하냐고 의사가 묻는다.

감기는 아직인데 일교차 심한 요즘에 자주 밖으로 돌아다녀서 몸살기운은 살짝 있다고 했다.

피곤하냐는 질문에, 요즘 피곤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냐......고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

 

약 며칠 먹고 쉬라고 했다.

그래도 부어있으면 병원에 꼭 다시 와서 검사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래도 참았다.

잘 견뎠다, 싶었더니...

봄부터 계속 맘에 안 들었던 몸은 여름동안 피곤을 쌓아놓더니 결국 이렇게 드러낸다.

저녁 약 먹고 졸다가 깨다가 졸다가 깨다가...

 

부은 것도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아직도 묵직하고 살짝 아프고...

이거 원래 이렇게 아픈 건가??

엄청 아픈 엉덩이 주사 또 맞기 싫은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9-16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6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은 정말 못 하는 게 없구나, 싶은 생각...

 

 

알라딘에서 메일이 왔기에 열어봤다가 알게 된 새로운 소식.

수험서 분철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40716_spring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어떤 분권으로 만들어질지는 모르겠다.

신청해보지 않았고, 당분간은 신청할 일도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런 기획을 했다는 게 재밌어서 설명을 살펴보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정말 문제집 한권이 무거웠다. 가방에 빵빵하게 들어차 있는 무게감...

결국 새학기가 시작되어 교재를 샀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단원별로 어느 정도 나누어 분권을 만드는 일이었다.

보통 한 과목, 문제집 한 권당 2~3개의 분권을 만든다.

적당히 들고다니기에 무겁지 않을 정도의 두께로 페이지를 나누어 잘려진 부분에 두꺼운 종이(보통 스케치북 커버 두께)를 대고 테이프로 단단히 붙였다. 그래도 사용하다 보면 가방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테두리가 너덜너덜 해진다. 그나마 몇달만 사용하고 마는 게 대부분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 하면 다행.

 

학교 근처에 복사나 제본해주는 곳이 많아서 꼭 필요한 경우는 제본을 맡긴 적도 있는데, 연습장 한권 분량을 제본해주는 것도 권당 1000원씩 받았었다. 그게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비쌌구나...) 아쉬울 때는 그런 제본을 하고는 했는데...

 

그때를 생각해보니, 알라딘의 분철 제본 소식이 괜히 반갑다.

교환이나 환불이 안 된다는 점을 상기하고 필요할 때 신청하면 유용할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어제, 조카가 대학교재 주문해달라고 해서 이 책 저 책 살펴보면서도 관심이 없었는데

요런 기가 막힌 서비스라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뭐든, 몰입해서 읽을 게 필요하다.

단 몇시간이라도...

 

로맨스가 제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 나 맥주 캔 한 개만~~"

“한 개면 되겠냐?”

“응. 딱 한 개만 사다주면 고맙겠어~.”

늦은 오후, 마트에 가신다는 엄마에게 나는 캔맥주 한 개를 주문한다. 다 늙은 딸내미 술까지 마시면 얼굴이 더 늙는다고 구박하시면서도 잊지 않고 장바구니 속에 챙겨다 주신다. 잔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또 한 번 이렇게 대꾸하면서 모른 척 안들은 척 나는 또 딴소리를 한다. “에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잔소리 좀 그만 하시지~?!” 그럴 때면 또 한 번 눈을 흘기고 만다. 그리고는 장바구니에서 과자 한 봉지를 조용히 꺼내주신다. “빈속에 마시지 말고 안주라도 챙겨 먹어라.” 하시면서.

장난처럼 웃으면서, 과자 한 봉지에 나도 모르게 울컥 해지면서, 문득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와 서로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부모는 뭐든 다 저렇게 이해하고 봐주게 되는 것인가?’, ‘자식은 이렇게 철이 없이 마냥 자식으로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일까?’ 하면서. 부모는 부모라서 어른이고, 어른이라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라던 이 책 속의 한 구절이 동시에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부모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어서(부모가 아니니 어른이 아니므로) 잔소리를 하면서도 안주까지 챙겨다주는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갖다 붙인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흔히 철이 없다는 열일곱 나이에 자식을 낳은 부모가 여기 있다, 지금 서른네 살이 된, 아름이의 부모. 그리고 지금 자신을 낳았던 부모의 나이인 열일곱 살이 된 아름이. 거의 누워 살다시피 하는 아름이는 조로증 환자다. 아름이의 지금 신체나이는 여든의 노인. 이가 빠지고 주름이 생기고 머리숱이 적어지고 점점 눈이 안 보인다. 아름이가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움직이는 손으로 책을 읽고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것 밖에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고 두 눈으로 봐두고 싶은 것뿐이다. 아름이는 어느 날부터 아빠와 엄마에게 들어오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자신의 열여덟 번째 생일에 부모에게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름이 자신은 몰랐던, 부모보다도 더 빨리 늙어가서 그 시절의 부모를 알아갈 수 없었던, 아름이가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아름이는 알아간다.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늙어가는 자신이 그래도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음을, 부모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자신을 부모는 역시 사랑한다는 것을, 자신이 부모의 기쁨이고 슬픔이란 것을. “니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이라던 아빠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자신으로 인해 부모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라고 마지막까지 행복의 순간을 놓지 않는다. 트램벌린 위에서 하늘을 향해 뛰어 올랐던 그때처럼.

 

이야기의 모든 순간들이 페이지가 계속 넘어가는 것을 멈추게 만든다.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내 가슴 속 어디선가 잠자고 있었던 감정들과 기억들을 끄집어내느라 분주하다. 묻어두고 싶고 그냥 모른 척 지나가고 싶었던 마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언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게 자신을 두근대게 한다는 아름이의 말은 충격이자 공포였고 나 자신을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다. 하루하루가 무료하다고 투정부리고, 시간 죽이기 놀이에 익숙하고, 지루하다는 말을 하는 게 일상이었던 지난 시간들이 아름이의 저 한마디로 다시 보이게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부모님께 대꾸하던 그 많은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부모가 하는 말들이 ‘알지도 못하면서’가 아니라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부모는 부모의 자식이었고, 지금은 자식의 부모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부모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고 있는 분명한 입장이었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투정을 부리고 억지를 부렸나보다.

 

영화에서 한번 봤던 소재가 이 책 속에 등장하던 그 순간 나는 이 조로증이라는 병이 흔치 않으면서도 동시에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도 있는 병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가 소개하고 써내려간, 아름이를 통해 표현했던 조로증의 증상들 역시 단순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특히나 마음보다 몸이 더 빨리 늙어가서, 몸의 속도에 맞추려면 마음도 빨리 어른이 되고 늙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름이의 말이 기억에서 잊히지가 않는다. 나이라는 숫자가 늘어가고 겉모습이 늙어가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 것처럼 살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생각했는데, 아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게 또 마음만큼 자연스럽다거나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누구보다도 더 빨리 늙어갔던 아름이는 그만큼 더 성숙한 아이이면서 동시에 어른이었다. 부모가 되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름이는 어른으로 그 생을 마감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결코 만나거나 느낄 수 없었던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아름이는 그 누구 못지않은 성숙한 인격체였던 것이라고. 문제는 조로증이라는 병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던 건데 말이다.

 

인생의 속도,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와 늙어가는 몸과 마음의 속도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무언가 간절히 되고 싶었던 아름이의 바람도 어느 정도 이루어주고, 슬픔이어서 기쁘다는 부모의 사랑도 좀 더 받아보고, 거짓으로 끝났지만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대상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좀 더 아름이에게 만들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름이에게 두근두근 뛰고 있었던 심장의 울림을 더 들려주고 싶었는데 마냥 아쉬운 것 투성이다.

 

어쩌면 시간이 삶과 죽음의 그 모호한 경계에 걸쳐지면 느낄 수 있을지 모를 감정들을 나는 300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 한권에서 다 느낀 듯하다. 공중에 그려진 오선지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음표를 보는 듯한 즐거운 웃음이 설렌다. 허를 찌르는 진심이 담긴 농담 같은 아름이와 부모의 대화, 그들의 생각과 말 한마디마다 들려오던 그 재치가 귀엽다. 아름이의 가슴 속 말들을 들을 때마다 흘릴 수밖에 없었던 눈물이 슬프다. 아프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고 고개 숙일 일도 아니고 슬픔은 더더욱 아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슬픔과 동시에 기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던 아름이의 이야기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될 것 같다. 부모가 될 때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시간들, 부모가 되어서만이 볼 수 있는 모습들, 부모와 자식이기에 당연히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아름이를 통해서,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배우게 된다.

 

아름아, 사랑스러운 그 이름 아름아.

이제는 멜로디가 되고,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바다가 되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네 안에 가득 쌓아두었던 부모의 정을 나누어주렴. 너의 부모님이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온전한 기쁨과 슬픔이 되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