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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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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읽기 힘든 글이 있다.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분야인데 그 작가와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배수아의 글이 읽기 힘든 글이다. 그녀의 책 읽기를 여러 번 시도했으나 완독한 책이 없다. 아마 이 책도 출간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자의로는 선택할 일이 없었을 거다. 낯선 그곳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조금 다른 분위기의 여행서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함께 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읽게 됐다. 아주 더딘 호흡으로, 가끔은 그녀의 문장으로 장면을 그려가면서 읽었다.

 

알타이. 몽골 소설가 갈잔의 소설 한 권에, 무언의 손짓에 그곳으로 향한다. 그녀에게도 낯선 곳일 테다. 하지만 무슨 유혹에 빠지듯 그녀는 그곳을 향해 길을 나선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텐데, 그 쉽지 않음조차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에 이끌렸겠지. 대부분의 여행이 그러지 않을까. 나를 부르는 어떤 것을 향해 저절로 걸음 하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결국 향하고야 마는 것.

 

초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 동화되어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도시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불편함을 주는 삶도 싫어하기에, 문명이 전한 편함에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마음을 돌린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 야크 똥을 주우러 다니는 일, 말이 이동수단이 되는 것에 내 몸은 아우성을 칠 거다. 광활한 초원을 보면 시원함을 느끼다가도 그곳이 화장실과 동의어가 된다고 상기한 순간 민망함을 품은 불편함이 또 한 번 다가온다. 걷고, 경험하고,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가며 동요되는 시간이 채워주는 게 분명 있을 테지만, 그녀의 여행길에 온전히 동참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 자리하기 시작한 어떤 공감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운명처럼 그곳을 향한 그녀의 모습에 부러움마저 들곤 했으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끈끈한 기운에, 살면서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데 그 어떤 이유도 물을 수 없는 거다. 그녀는 그저, 그래야만 했을 거라는 생각에 어떤 물음을 떠올리는 것조차 우스웠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녀의 그 길, 걸음, 사람들, 삶, 일상 같이 녹아든 그 시간을 보고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그 운명처럼 끌렸던 그 향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편한 게 좋은 거라는,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나의 익숙한 생각에 조금이라도 다른 여지를 넣어준다면, 그거면 된 거라고 여겼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내가 가진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들의 삶을 색칠했다. 바람 같이 뿌연, 흙처럼 투박한 그들의 표정을 넣어준다. 편함이나 불편함의 문제가 아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그 모습 그대로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그런 모습을 순수라고 불러도 된다면, 그들은 순수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내가 느낀 불편함은 그 순수가 없어서일 거라고 말이다.

 

은행잎이 다 떨어져 인도를 덮었다. 며칠 내린 비로 그마저 축축해져 거리는 더 스산했다. 그걸 보고 아쉽다는 생각을 했는데, 바로 옆에서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떨어져 눅눅해진 낙엽을 쓸고 있었다. 가는 가을이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그들에게는 번거롭고 해치워야 할 불편함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괜히 더 서글퍼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완전하게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내려놓지 못했던 어떤 감정 하나가 뭘까 궁금했는데, 아마도 그런 느낌이었던 듯하다. 가는 시간을, 계절을 담담하게 볼 수도 있는 어떤 분위기를 그리는 것. 화려한 여행기가 아니라, '그냥, 그 길을 걷고 왔어.'라고 같은 음으로 얘기하는 목소리 같은...

 

 

여전히 그녀의 글은 내게 편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다시 한 번 자의로 그녀의 글을 펼치고 싶은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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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김보영 지음 / 기적의책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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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하고 예뻐서 깨물어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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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 - 진짜 연애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요조 (Yozoh) 외 지음 / 부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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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건 없다. 왜냐하면 연애가 시작되면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란 언제나 실연했을 때 시작된다. (250페이지, 다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정성일)

 

그랬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정성일과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연애할 때 연애소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연애소설은 물론이고 책을 가까이할 시간이 없다는 게 더 맞겠다. 집중해서 읽어도 활자가 눈으로 잘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은데, 연애라는 감정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책을 읽지 않아도 하루는 너무 빨리 흐르고, 일상에 연애가 끼어들면 몸도 마음도 바쁘다. 그 사람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놓고 하루를 보낸다. 틈틈이 만나고 많은 것을 나누는 시간을 챙겨야 한다. 정말, 바쁜 거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또 익숙해진 대로 바쁜 하루의 시간이 굴러간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문제는 그 연애가 비워진 시간의 상실감이다. 하루를 쪼개 쓰던 머릿속에서 빠져나간 시간이 크다. 없을 땐 없는 대로 살아지는 것들이, 있다가 없으면 그 공백이 배가 된다. 흔한 말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게 되는 것. 일상은 전과 다름없이 굴러가는데 무료하고 지루하고, 남는 시간을 주체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은 비어 있고 머릿속은 빠져나갈 것들이 제대로 나가지 못해 엉켜 있고. 그럴 때 슬쩍 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너무 무거운 건 답답할 것 같고, 너무 가벼운 건 마음이 더 허해질 것 같고. 그래서 딱 적당하게 손이 가는 게 연애소설이 될 확률이 높다. 비슷한 경험에 공감하면서, 상실의 자리를 자근자근 밟으며 어떤 감정을 채워주기 좋을...

 

스무 명의 작가가, 그 연애의 공백에 읽어도 좋은 소설을 소개해 엮은 게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연애가 사라진 자리에 채워 넣을 '대리 연애'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몇 페이지 넘기다 보니 그런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다. 동시에,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란 실연했을 때만이 아니라 연애를 할 때도, 연애하지 않을 때도 필요한 것임을 인정했다. 삶의 모든 순간에 연애소설이 다가올 수 있음을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그 소설들이 그들에게 다가온 건 타이밍의 문제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밋밋한 순간에 읽고 넘어갔을 그 소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연애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봤다. 그 소설들에 가득한 연애, 사람의 감정, 살아가는 배경의 문제, 삶의 자세와 같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시간임을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저자들이 겪어온 시간 속의 연애가 들려오고, 그들이 말하는 소설이 이어진다. 어떤 목적지로도 갈 수 있는 게 연애겠지만 대부분 이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소설이 더 깊게 들어올 것 같다. 상대를 얼마큼 사랑했든, 연애의 시간이 길었든 짧았든, 어떤 식으로 헤어졌든, 그들이(우리가) 나눴던 것이 소멸하고 그에 따라오는 상실을 감당해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그러니 이 책 속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연애와 소설들이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줄지 궁금할 수밖에, 낯설지 않을 수밖에, 공유할 수밖에...

 

연애만큼 모두가 하고 있지만 아무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행위도 없다. 늘 사랑 아닌 다른 잡스러운 것들로 오염되고 만다. 타인의 시선이나 경제적인 계산이 제일 흔할 테고, 유년기에 해결하지 못한 온갖 불안정하고 비루한 감정들도 날뛸 것이며, 타이밍과 운의 방해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연애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개 치졸하고 더러운 파국으로 끝나며, 그 끄트머리에서 마음속의 습도계 같은 것이 사이렌 소리를 낼 때 연애소설을 찾게 된다. (289~290페이지, 연애소설 애호가를 애호하는 이유, 정세랑)

 

저자들이 소개해주는 소설이 다양하다. '이게 연애소설이었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읽었던 기억과 다른 느낌을 말하는 소설도 있다. 그때 이어지는, 저자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소설의 의미가 새롭다. 재밌다. 이런 부분에서 그의 연애를 볼 수도 있겠구나, 이때 그녀의 마음은 분노와 복수일 수도 있겠구나, 끝까지 부정할 수밖에 없는 감정도 여기 있구나, 싶은 이야기들. 연애소설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연애소설일 수밖에 없다. 취향이나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애가 빠질 수 없는 소설들이다. 그러면서 매 순간 우리의 연애 시간에 적용할 수 있는 소설들이라는 게 장점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면, 소년 김보통이 소녀와 데이트에 가기 전에 『속 깊은 이성 친구』를 읽고 갔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는 걸 보면 연애를 하기 전에 읽으면 좋을 소설일 수도 있다. 정지돈이 『몰타의 매』로부터 사랑이나 여자를 믿지 말 것을 배웠다면, 이도우는 마지막으로 하지 않은 한 마디를 『워싱턴 스퀘어』의 주인공의 말로 대신한다. "당신은 나에게 잘못했어요."라고. 입 밖으로 말하고 나니 약속이 되지만 말하지 않은 것은 금방 또 번복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리는, 쉬운 감정으로 치부되는 것으로 남을 수 있음을 박현주가 말한다. 연애의 비겁함이며 동시에 연애에 신중해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스무 명의 저자가 말한 게 연애와 소설과 삶 전부는 아닐 테지만, 그에 더 가까이 다가가 우리의 시간의 도움이 되게 하는 순간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어떤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보게 하면서, 그 마음이 드러내는 온갖 감정을 표현한다. 그 안에 각자가 생각한 연애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들이 만난 소설에서 보이는 장면들과 대화, 끝을 알 수 없는 방향에 시선을 집중하게 된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고, 그의 태도가 괘씸해서 화가 나는 순간들. 그렇게 연애를 이어가고 연애에 마침표를 찍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삶의 모습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소설 한 권쯤 있지 않을까. 쌓인 책탑 맨 아래에 눌러놓고, 마음이 텅 비었을 때 한 번씩 꺼내보고 싶은 소설. 그때가 연애가 끝났을 때일 수도 있고, 배신감에 치를 떠는 때일 수도 있다. 지독한 상실감에 온몸이 마비된 듯한 때일 수도, 다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심장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일 수도 있겠지. 어떤 때든, 그때 내가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가 하나쯤 가슴 저 깊숙이 숨어 있지 않을까. 저마다 사랑했던 소설에서, 현실로 연결된 연애를 품은 이야기 말이다.

 

생각보다 숭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순간의 그 마음을 표현하려면 반드시 그 시절 그 나이에 접근해야만 한다.

그런 게 바로 마음의 일이 아닐까. 어느 나이의 어느 마음이 하는 일. 다른 나이의 어떤 마음에게는 해석이나 미화가 필요한 일화일지도 모르지만, 그 나이의 바로 그 마음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온전한 무언가. 여러 경로로 '데브다스'를 접했지만 그 파멸적인 사랑에 관해 최종적인 해석을 내려야 할 때면 결국 사라트챤드라 챠토파드히아이의 원작으로 돌아오게 되는 이유다. (244~245페이지, 무모하게 사랑할 특권, 배명훈)

 

이들이 말하는 소설의 분위기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정작 나에게 이 소설들이 어떻게 다가올지 금방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내게 가까이 오지 못했던 소설이 있는 걸 보면 그 소설들이 꼭 같은 의미로 작용하지는 않을 거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소설이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곰곰 생각해보지만, 선뜻 떠오르는 소설이 없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아서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이 책 한 권이면 감정을 다스리고 뭔가를 채우기에 충분하다고 말할 만한 책을 읽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이 말한 소설의 목록을 천천히, 더 오래 살펴보게 된다. 이 소설들이 그들에게 전했을 '어떤 순간, 어떤 감정, 어떤 토닥임'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오길, 어둠이 내려앉은 듯한 모든 순간에 만날 수 있는 소설이기를 바라면서.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건, 연애가 끝났을 때뿐만 아니라 마음이 구멍 난 모든 순간에 필요하다. 어쩌면,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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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의 <하여가>를 재밌게 읽었다.

개운했다.

시원했고.

몰입도가 좋아서 일단 펼치면 끝까지 읽게 된다.

 

 

 

 

이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슷한 분위기와 재미로 오랜만에 '책'이라는 걸 읽게 만든 소설이 김호연의 <연적>이다

 

 

 

 

 

 

 

 

두 권 모두 영화 같은 분위기다.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졸리면서도 끝까지 보게 한다.

어디서 이런 꼴통이 나왔나 싶게 어이없으면서도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화이팅~! 하면서...

 

 

 

 

 

 

 

 

<망원동 브라더스>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다.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김호연 다음 책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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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 좋은 날 - 그날, 그 詩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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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 10월 31일. 무슨 규칙처럼 종일 어딜 가도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계속 들려오는 날에, 누군가와 헤어진 적이 있다.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다. 경험해본바, 원래 대부분의 일에는 전조가 있다. 어떤 연인이 오늘 싸우고 헤어졌다고 해서 그게 충동적인 이별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 싸움이 이별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일 뿐. 그날, 그렇게 헤어지기까지 쌓아놓은 이별의 조각들이 있었을 거다.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겠지. 생각보다 담담할 것 같았는데, 온종일 서늘한 노래가 들려와서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마음을 부추겼던 듯하다. 뭔가 출렁이기 전에 잠재워야겠다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학교 근처의 작은 서점. 일반도서보다는 수험서나 전공서적이 서가를 가득 채우며 특별 분야를 편애하던 서점이다. 그 안, 한구석에 마련된 문학 코너에 꽂혀 있던 몇 권 안 되는 시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잠깐 서서 읽기에는 소설보다 시집이 낫겠다 싶어 한 권 꺼내 들어 펼쳤다. 뭔가 잔뜩 사랑의 말, 이별의 언어로 채워진 시였는데, 누구의 시였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기억만 있다. 오히려 서점 안 스피커를 타고 흐르던 노래가 더 귀에 들어왔다. 어찌 되었든 이별은 슬픈 일인데, 어떻게 그 순간에도 슬픈 노랫말 같은 시 구절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있던 건지. 시에 대한 불편함은 실연한 여자 코스프레도 못하게 했던 거다. 안타깝게도...

 

시를 얘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시가 어렵다고 말한다. 시가 정말 어려운가? 시가 어렵다는 생각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다.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중 · 고교 시절, 시험을 치기 위해 시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상징이니, 은유니, 직유니, 주제니, 구성인, 감정이입이니, 시적화자니, 이런 것들로 시를 괴롭히고 시 읽는 사람들을 괴롭혀 놓았으니 시가 쉽고 친숙할 수 있겠는가? (5페이지,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 정호승 외)”

시를 불편해하고 다 이해하지 못했던 짜증으로 멀리했던, 차마 내 입으로 대지 못할 핑계를 이렇게 콕 찍어준다. 『시 읽기 좋은 날』의 저자 김경민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렇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를 시로 대하지 못하고 시험문제로만 대했다. 군데군데 중요한 부분 밑줄 쫙, 구절의 숨은 의미를 찾아서 별표 팍팍, 참고서에서 알려준 대로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외워야만 했다. 읽고, 생각하고, 느끼고, 뭔가 공감하고 싶은 과정이 모조리 생략된 채로 시를 대했으니 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그때보다 몇 살 더 먹고 이십 대가 되었다고 해서 시를 대하는 마음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더군다나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시를 더 접할 일이 뭐가 있었겠나. 전공이 아닌 다음에야...

 

김경민은 거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였다. 교과서에 실린 시로 ‘감성과 통찰을 느끼기에 중고등학생들이 그 나이에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직접 시를 가르친 교사였으니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일 터다. 무슨 말인지 알 듯하다. 똑같은 경험을 하거나, 시간이 흘러야만 알 수 있는 게 있다. 좀 더 세상을 보고 배우면서 겪은 굳은살이 알게 해주는 것. 그 나이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강요하니 공감하기는 더 힘들었을 거다. ‘아이 때 읽은 고전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그때와 다른 시선이 생기더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권한다. 어른이 되어 시를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고. ‘詩가 이렇게 따뜻한 것’임을 알게 될 거라고, 그 아름다움에 반할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저자가 들려주는 시 50편이 담겨 있다. 그중 절반은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시다. 그 시를 다시 만나볼 좋은 기회, 삶의 결정적 순간에 시가 우리와 함께 한 찰나를 포착해 글로 전한다. 울고 웃는 일상 속에서, 배우고 알게 되는 성장 속에서,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는 부대낌 속에서 함께 하는 시를 건넨다. 저자만의 사유다. 고정되고 강요되는 해석이 아니다. 그 시를 만났던 그 순간의 느낌이나 단상이 채워졌다. 그게 전부다. 자신만의 감정이 그 시에 찍히는 타이밍을 고스란히 들려준다. 이 시와 저자의 사유가 그대로 건너와 뭔가 한 마디 더 건네고 싶다면, 내 안의 감정이 동요되고 있다면, 그거면 된 거다. 그때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쓰면 되니까.

 

 

내게서 나가는 시선. 사랑, 이별, 관계.

내게서 나가는 타인을 향한 시선으로 공감하는 시어. 사랑을 말하고, 이별을 공감하며, 사람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우리의 일상을 이룬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다가오는 발자국에 쿵쿵거리는 가슴을 기억한다.(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약속시각이 다 되어가는 그 똑딱임은 단순히 시계 초침 소리가 아니라 심장이 뛰는 소리다. 사랑의 순간만큼은 시계 초침 소리가 ‘똑딱똑딱’이 아니라 ‘두근두근’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사람의 자세는 희생이 아니라 자존심일 수도 있다.(진달래꽃 / 김소월) 사랑이 끝난 사람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기억해야 할 자신의 역사 같은 것. 사랑은 끝났으나, 그 사랑의 기억은 고결할 것이기에.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의 의미를 생각해본다.(꽃 / 김춘수)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한다. 가족, 친구, 동료, 또 그 이상의 여러 관계를 표현하는 말들. 그 말들이 가진 공통점은 관계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타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필요 없는 단어들일지도 모르지만, 관계로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소통이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고 말하는 강은교의 시(사랑법 / 강은교)는 집착이 아닌 침묵의 시간을 허용하는 듯하다. 사랑의 범위가 다양하다는 전제하에 이 말은 여러 관계에서 적용되는 말이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관심, 타인의 고통에 관해 함부로 단정하지 말 것. 그건 우리가 이루는 가장 기본적 관계인 가족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게로 들어오는 시선. 나, 내 마음, 나를 이루는 것.

누군가를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위험하다. 그 위험에 가장 크게 적용되는 건 나 자신이다. 남이 보는 나, 누군가가 말하는 나. 여러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정작 나에게서 듣고 싶은 나에 대한 말은 들을 수 없다. 내 뒷모습도 나는 볼 수 없다. 거울이 비추는 나도 온전한 내가 아니다. 단지 어느 순간, 가끔, 조금씩, 나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느낄 뿐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실제와 반대지만 꽤 닮았다고 인정하는, 제대로 보고 싶으나 그럴 수 없음이 섭섭하다고 말하는 의미를 알 것도 같다.(거울 / 이상) 나를 들여다봐야 할 것은 나 자신인데,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아무런 소통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고통스럽다. 내가 나를 안아주고 보살펴주고 싶은데 잘되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답답하다. 거울로 마주한 모습이 그래도 나와 가장 닮은 모습일진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그 섭섭함은 더해지겠지. 누군가는 열등감으로 버티고 서 있는 힘을 가지는 듯하고(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누군가는 먼저 가진 웃음으로 눈물의 힘을 누르는 듯하다.(눈물 / 김현승) 무너지는 꿈으로 삶을 버티면서도, 아직 다하지 않은 꿈 때문에 오늘도 버티는 삶이 되어버리는 청춘(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을 떠올린다. 치열한 삶을 버티게 해주는 건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온전히 봐야 하는 이유가 아직 내 것이 되지 못한 꿈을 꺼내야 하기 때문인지도... 신분증에 들어가지 못한 그 꿈이 때로는 삶 전부가 되기도 하며 나를 지탱해주기도 한다는 것. 오늘을 버티는 이유가 된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한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내게서 나가는 세상의 소리. 눈물, 다름, 표현의 용기.

어느 골목길의 구석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내는 목소리는 아니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곧 그것들은 내 것이 된다. 내가 내는 고통의 소리이며, 내가 흘린 눈물이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소리인 것이다. 시인은 시로 그 소리를 낸다. 당연의 세계를 당연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를 꼬집고(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 / 김승희), 시선의 변화를 유도한다. 영화관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자리에 앉는 것(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이 좌절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을 지적한다. 무고함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것, 차마 날아갈 수도 없는 존재가 자신임을 절망한다. 그저 주저앉는 것이 그때 할 수 있는 일 전부인 것처럼 여길 수밖에... 어쩌면 당연한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름을 시도하지 않았을 때 오는 고정관념이다. 세상 속에서 그 당연함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당연함을 만든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일 테다. 그래서 그 당연함을 거부할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 거부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 필요한 건, 용기.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지는(폭포 / 김수영) 물줄기'는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 에스키모가 늑대를 잡으려 심어놓은 칼날과 같다는 사냥 방식. 자신이 맛보는 피가 자신의 것인 줄도 모르고 계속 핥아대는 순간을 맞닥뜨릴 거라는 경고 같은 거다. 시들이 우리에게 누군가의 울음소리, 누군가의 슬픔을 공유할 자세로 세상에 부대껴야 한다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하나 듣고 보면, 별 의미 없이 들릴 수도 있다. 그저 은유로 가득한 문장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시를 접하고 보니, 시인이 할 수 있는 말을 시로 전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의 감정을 적고, 세상에 소리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때로는 감정을 추스르는 역할을 시가 하고 있다. 궁핍한 삶을 얘기하고, 혼란한 세상을 한탄한다. 사랑과 이별을 다독이고, 추억을 꺼내 읊조린다. 눈물과 상처에 시가 온기를 불어넣고 있는 거였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가슴을 열어 보여 답답하고 힘든 속내를 풀어놓는 것처럼, 시가 말을 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시 구절에 자신의 사유를 담았다. 시의 배경이 되는 시간에 했을 법한 고민을 들려주며 역사의 한 때를 설명한다. 그 시간에 그런 시를 읊고 있는 이의 고뇌를 공유한다. 상처와 아픔을 말하는 마음을 토닥거리며 위로를 건넨다. 그때 우리가, 처음 이 시들을 대하고 미처 다 알아채지 못했던 가슴의 울림을 위해서라도 꼭 한 번은 시와 재회해보라고 말한다. 혹시 또 모르지. 사라진 줄 알았던 추억이 떠오를지도, 급하기만 했던 마음이 속도를 조금 늦출지도, 참았던 눈물이 흘러버릴지도...

 

저자는, 시가 진실하고, 필요하며, 친절한 말이라고 했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시를 저자의 사유가 함께한 글이 담담하게 만나게 한다. 시의 재해석이 아니라, 시에 각자의 의미를 담으면 그만인 거다. 똑같은 시라도 들려오는 타이밍에 따라 나만의 감정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한 편의 시가 내 사랑을 기뻐해 주고, 이별을 위로해주며, 답답한 마음을 세상에 뿜어주고,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준다면,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상상에 빠지는 것처럼 시를 읽고 자유롭게 사고'하라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시가 우리에게 여유를 주었으면 좋겠다. 자유로운 사고로 정답 없는 삶의 문제들을 잘 건너갈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갑자기 찾아드는 외로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그리움, 삶의 고단함에 고개 숙일 때, 일상처럼 다가오는 슬픔에도 기죽지 않게 마음 온도를 높여주었으면 좋겠다.

 

 

병원 -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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