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를 잠깐 들춰봤다. 말 그대로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읽으면 될 책 같았는데, 오히려 나는 저자의 말 몇 마디로 늙는다는 생각에 집중하게 됐다. 병 앞에서 죽어가는 시간에도 제대로 사는 일에 대해 말하는 듯한데, 그런 말보다, 죽음보다는 늙어간다는 것에 더 많은 부분을 떠올리다가 그 책을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날, 종일 늙음에 관한 책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너선 실버타운의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까지 구매목록에 넣게 되었는데, 제목에서부터 뭔가 거부할 수 없는 진리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게다가 소개 글에 써진 이 말 때문에 늙어간다는 것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노화와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비통한 심정을 25편의 시를 통해 보여주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유머로 승화시킨다’는 소개 글. 주제 자체가 어두워질 수 있음이 뻔했는데, 그 주제로 사람을 얼마나 부담 없고 편하게 해줄 수 있는지 기대하고 싶어져서다.
그게 불과 지난 주말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죽는다는 거나 늙는다는 것을 떠올리는 게 생각처럼 긍정적이게 되지 않았다. 어제오늘, 늙음에 대해 밀려오는 서글픔 때문에 도저히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에 우울해졌다.
엄마 나이 쉰이었을 때, 엄마가 노래 부르듯 하던 말이 있다. ‘내 나이가 마흔이었으면 좋겠다...’ 그땐 나도 어렸을 때여서 그냥 어른들이 하는 말로 가볍게 생각했다. 항상 지나간 시간에 마음 두기 마련이니까, 그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엄마가 쉰다섯이 되었을 때도 비슷했다. ‘내 나인 쉰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때는 느끼는 게 좀 달랐다. 여전히 지나간 시간에서 아쉬움을 찾고 있지만, 우리에게 더 해주지 것들에 미안함을 담은 말로 들렸다. 엄마로, 가장으로 사는 게 힘들었을 텐데, 부족한 많은 것에 계속 마음을 두었던 듯하다. 가물거리기는 하지만, 그때 기억에 엄마는 우리를 더 잘 키우기 위해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말을 했었는데... 아직 키워야 할 자식들이 많은데,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든데 나이만 먹은 것 같아 마음이 아주 아프지 않았을까.
나도 점점 엄마의 나이를 따라가고 있다. 나이라는 숫자가 그렇고, 외모와 육체의 나이 듦이 그렇다. 엄마의 자식으로 살면서 의지했던 마음을, 이제는 엄마가 나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드러내곤 한다. 그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래서도 안 될 일이고. 여전히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사는 내가, 여전히 엄마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니까. 그냥, 엄마의 뒤를 조용히 밟으며 가는 느낌이 들어서 요즘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가장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건, 동안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다. 우리 형제들이 나이보다 어려 보이던 동안 외모는 엄마를 닮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이 부를 때 “학생~” 이렇게 부른 적이 많았다. 병원에 가서 진료받는 것만 아니면(병원은 접수할 때 이미 실제 나이가 그대로 기록되니까) 아무도 내 나이를 그대로 보진 않았다. 친구랑 같이 다녀도 한참 동생처럼 보여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곤 했는데, 올해 시작하면서 나의 외모는 내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봐도, 다른 사람이 봐도 내 나이로 보인다. 언제까지 동안으로 살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게 불과 며칠 사이에 눈에 확 보일 정도일까. 엄마 나이 일흔이 넘었는데, 사람들은 이제 환갑이 지났느냐고 묻곤 했다. 엄마의 실제 나이보다 평균 열 살은 어리게 보였다. 남들이 봐도 내가 봐도 엄마의 실제 나이만큼 보이는 외모는 아니었다. 이제껏 늘 그랬는데, 이제는 남들이 아니라 우리 형제가 봐도 엄마가 나이 들어 보인다. 어제는, 내가 “엄마, 갑자기 왜 이렇게 늙었어?” 라고 물었더니, 안 그래도 언니랑 동생이 전화할 때마다 요즘 그 얘기를 한단다. “엄마, 지난번에 가서 보니까 많이 늙었더라...” 막내 남동생이 어렸을 적부터 엄마에게 그랬다. “엄마, 나 장가갈 때까지는 늙지 마. 결혼사진 찍을 때 엄마가 늙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늦은 나이에 남동생을 낳았고, 아무래도 자기가 자라는 동안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조금 더 일찍 보였나 보다. 친구들의 엄마보다 한참 나이를 더 드신 엄마를 보는 게 슬펐을까. 다행히도 남동생이 결혼할 때 엄마는 젊어 보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 참 예뻤다. 그런데 그때보다 몇 년이나 흘렀다고, 이제 엄마가 늙어 보인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엄마의 얼굴이 그 나이의 노인으로 보인다. 하아...
오늘,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나이 먹어가는 시간을 아파하고, 나이 든 사람을 이해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2년 넘게 치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별일 없으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치과에 간다. 지난주 진료 때 입안에 다른 장치 하나를 더 붙여야 한다고 해서 본을 뜨고 오늘 병원 가서 입안에 새로운 장치 하나를 붙였다. 최소 석 달은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말을 할 때나 뭔가를 입에 물고 있으면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았다. 발음이 정확하지도 않고 웅얼웅얼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칫 방심하면 입 옆으로 침이 줄줄 흐르고... 이걸 못해도 석 달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숨이 쉬어지면서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장치를 붙였다 떼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치위생사가 와서 괜찮은지 묻는다. 그에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이런 질문이 나오더라. “어른들 틀니 하는 게 이런 원리인가요?” 그렇단다. 똑같단다. 이제야 틀니 하는 사람들 불편할 게 이해가 된다고, 지금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했다. 나는 틀니를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고 괜히 속상한 마음인데. 이런 거였구나.
치과에서 다음 진료를 예약하고 나와서 바로 안과로 갔다. 며칠 전부터 눈이 무겁고 답답하고, 책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눈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진료도 받아야겠고, 안경도 새로 해야겠기에 겸사겸사 진료받으러 간 건데, 눈에 무슨 질병이 있는 건 아닌데, 시력이 회복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나이를 먹어가고, 현대인의 생활 습관이 그러하고... 우리 몸은 늙어가고 있으니 눈도 마찬가지라고. 우리 몸이 천 냥이라면 눈은 구백 냥이라고 했는데, 평균 수명의 절반쯤 살아온 나는 이미 구백 냥을 모두 써버린 것 같았다. 회복이 불가능하고 다시 채워지지 않는, 말 그대로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게, 우리 한 생애의 시간인 건가... 안과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설마 내가? 내 눈이? 말도 안 돼. 좋은 눈은 아니었어도 이런 말을 듣는 순간을 단 한 번도 예상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아니겠지. 시력검사표를 들고 안경점으로 가서 다시 검사에 30여 분을 소요했다. 이런 시력에, 이런 상태에, 이런 렌즈를 사용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에게 노안이 온 건가요?”
“중년안이 시작되는 거죠. 요즘엔 70대까지는 중년안이라고 부릅니다.”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
“이왕이면 듣기 좋은 말로 중년안이라고 할게요.”
“아아... 선생님...”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계속 울었다. 그 큰 안경점에, 직원이 열 명도 넘게 있었는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건 말건 내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 한참을 꺽꺽대다 고개를 들고 보니 나를 담당했던 안경사 아저씨가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요즘엔 삼십 대 초반에 중년안이 오기도 하고, 이런 렌즈는 초등학생이 끼기도 합니다.”
“아, 그래도... 지금은 아니에요. 이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지금 제 안경 보이시나요? 제 안경 렌즈가 바로 그런 렌즈입니다. 하나도 표가 안 나죠?”
그 안경사 아저씨의 실제 나이는 모르겠으나 겉으로 보면오십 대로 보였다. 나를 위로하려고 그런 건지 몰라도, 그냥 다 이해하겠다는 눈빛을 보내면서 그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진정되고 나니, 다시 몇 가지 검사를 더 하고 안경 주문서를 넣었다. 기존에 사던 안경 가격의 두 배에 가까운 돈을 내면서 손이 후덜덜 떨렸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라는 생각에 더 슬퍼졌다. 나빠지는 몸을 유지라도 하려면 이래야 하는구나 싶어서...
안경은 일주일 후에 찾으러 오라면서, 안경사 아저씨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면서 그제야 말을 꺼낸다. “고객님이 갑자기 우셔서 아까는 제가 너무 당황했어요. 감수성이 예민하신가 봐요.” 감수성이고 뭐고, 하나도 귀에 안 들린다. 그냥 내 눈이 너무 늙어버렸다는 진실만 깊게 새겨졌다. 언젠가, 노안은 예방할 순 없지만, 진행을 늦출 수는 있다고 들었다. 눈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몸에 찾아오는 대부분 병에서 들어온 말과 같다. 우리 몸은 그렇게 늙어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거였다. 예방도 불가능하고, 진행도 막을 수 없고, 다만, 그 진행을 늦추는 게 최선인 처방으로...
도리언 그레이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었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나이 먹지 않는다면, 늙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건 몰라도 눈이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는데, 결국 내 몸에서 그 눈이 가장 먼저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어도 책을 읽으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은 점점 책을 거부하는 눈이 되어 간다. 눈물이 안경점에서 멈춘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