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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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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좋아하는 계절은 없는데, 특히 더 싫어하는 계절은 있다.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겨울, 그다음은 여름, 봄, 가을. 추위가 많이 가셨다고는 하지만 얼마 전처럼 맹추위가 온 세상을 덮을 정도라면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겨울이 싫다.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은 기본이고, 그때 내가 사는 이곳에 내린 눈은 30cm정도였다. 그러고도 계속 내리는 눈이었다. 정말 오들오들 떨면서 보낸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하게 싫다. 날씨가 조금 풀리고 기온이 점점 올라간다고 해도, 지금의 추위가 금방 가시지는 않을 듯하다. 겨울이니까 추운 게 맞는데, 이번 겨울의 혹독함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기도 한데, 앞으로 이런 겨울이 또 오지 말란 법도 없으니 걱정이 앞선다. 또다시 겪을 추위를 생각하면, 어쩌면 이 책의 저자처럼 겨울 2~3달 정도 따뜻한 나라에서 지내고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저자의 경우 원래 여행자이지만, 여행자가 아니어도 이런 방식의 겨울나기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을 정도다.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 그녀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도 있고, 한 번 다녀왔던 곳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간 곳도 있다. 낯선 지역에서 살아보면서 그곳을 있는 그대로 담아보려 애쓴 흔적도 보이고, 다시 찾아간 곳에서 언젠가의 기억이나 감각을 불러오기를 바라는 애달픔도 느껴진다. 아예 그곳에 자리 잡고 사는 지인들을 방문하고, 인연이 인연을 물고 와 또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고마운 시간을 허락한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는 곳이 어디 이곳들뿐이겠느냐마는, 이곳들이 주는 그 보통의 시간에 더해진 특별함이 분명 있을 터였다. 피한으로 간 그곳에서 그녀가 분명 찾고 싶은 어떤 것을 주는 것. 이 지역들은 ‘따뜻한 나라’라는 것과 그녀가 오롯이 쉬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고 싶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컷 게으름을 피우면서 말이지. 그곳의 생활자가 되어, 그곳의 방식대로 슬로우 라이프를 몸에 바르고, 한정된 시간이지만 그 삶을 만끽하게 되는 것. 혹시라도 그 시간에 모자람이 느껴진다면 다시 그곳을 향해 짐을 꾸리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품게 한다.

 

사람들이 어딘가 달랐다. 모난 곳이 없는 것 같다고나 할까. 목소리도 낮고, 몸집도 자그마하고, 키도 작은 사람들. 눈이 마주치면 잘 웃었다. 매사에 서두르는 법도 없이 느긋했다. 이방인에게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없었다. 적당히 더 붙여 부르고 부른 만큼 설렁설렁 깎아줬다.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싸우는 사람도 없었다. 그악스러운 일상은 간 곳 없고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물가의 조약돌처럼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둥글둥글한 삶. 이곳에 머물면 어쩐지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245페이지. 치앙마이)

 

이 책의 제목에 딸려오는 부제가 마음에 드는 이유다.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쉴 수 있는 체류 여행’이라는 어감이 좋았다. 그런 지역 사람들의 특징 중에 ‘느긋함’이 있다는 것이 부러워지면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게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게 당연한 일상이라는 게 필요해질 때 그곳을 향하고 싶어질 것 같다. 여행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흥분과 설렘, 어딜 ‘다녀오는’ 잠깐의 외출 같았는데, 저자는 이 여행에서 ‘체류’라는 제법 긴 시간의 외출을 그린다. 그것도 이 추운 겨울에 딱 맞게, 정말 여기를 피하고 싶은 순간에 말이다. ‘따뜻함’을 넘어서서 고온의 습한 기운을 주는 때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쪽의 추위를 피해 어디든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을 때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곳이긴 하다. 물리적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 체류 기간 알뜰하게 생활하면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생활비보다 비싸지 않을 계산도 한 번 해보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조건인 그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런 겨울나기는 정말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지 않을까. (그 시간을 낸다는 게 마음의 문제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이렇게 핑계를 댈 수밖에 없겠지.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 시간이란 문제가, 그 마음 먹기가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어서 이 ‘체류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에도 선뜻 가벼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저자가 여행자여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여행 경험으로 생긴 노하우와 그녀의 직업이기도 한 여행에서만큼은 크게 얽매이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

 

이렇게 더운 나라 한 곳에 갈 때마다 두 달여의 시간을 그곳에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그녀다. 그 시간 동안 머물 방을 구하고, 짐을 풀고, 가져간 책을 꺼낸다. 가끔 생각한다. 여행자들의 짐 속에서 책이 나올 때마다, 다른 필요한 것을 꾸리기에도 벅찬 여행 가방일 텐데 책을 저렇게 많이(?) 가져가도 괜찮을까 싶은. (저자의 짐 가방에서 나온 책은 열권이 넘는다. 열다섯 권일 때도 있다) 일단은 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질 거고, 그곳의 많은 것을 보고 듣기에도 모자랄 시간일 텐데 여기서 가져간 책이 얼마나 여유롭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런데도 그녀의 짐 속에 책이 당연하게 들어가 있다는 게 이해가 되는 거다. 나 같은 게으른 독자도 며칠 동안 어딜 다녀올라치면 ‘무슨 책을 가져갈까’ 하는 고민부터 하는 걸 보면, 이상하게 공감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왜인지... 저자와 나의 차이라면, 나는 기껏해야 두세 권, 그것도 무거워서 짐을 꾸린 가방에서 한 권을 꺼낼까 말까 고민이 더해진다는 것뿐이다. 하긴, 한두 번도 아닐 텐데 그녀에게 이런 짐 꾸리기는, 그 안에 책을 몇 권을 가져가든, 그녀만의 노하우와 필요에 의한 것일 테다. 제법 오랜 시간 머물기 위한 당연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돌아가면 입지도 못할 옷을 굳이 사 입는 이유는 뭘까. 현지인 혹은 다른 여행자들과 섞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단지 편안해 보여서 일수도 있다. 어쨌든 여행지에서 옷은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되어준다. 나도 돌아갈 때면 발리식 나염 원피스 한 벌이 배낭 속에 들어 있지 않을까. (52페이지. 발리)

 

이곳에서 보낸 3주 동안의 나를 돌아보니 마치 10년 만에 만난 옛 애인에게서 변하지 않은 점만을 찾아내려고 안달 난 고집스러운 여자 같았다. 세월과 함께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면을 인정하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다. 당신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고. 어차피 내가 알던 그 사람도 그라는 사람의 지극히 적은 부분일 뿐이었다. 나는 그걸 전부라 믿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을 뿐이고.

이 거리의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는 이 도시의 사람들의 달라지지 않은 마음도 남아 있을 것이다. 단지 이제 이방인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지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 이 도시로 돌아왔나 보다. (392페이지. 라오스)

 

이 책이 여행에 관한 세세한 설명서는 아니다. (여행 팁을 보고 싶다면 이 책에 따라온 소책자를 참고하면 될 듯하다) 저자가 머문 그곳의 시간에 대한 감상에 가깝다. 낯선 땅에서 보고 듣는 것들에 찰나로 찾아오는 울컥거림도 있고,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도 있다. 그곳에서의 체류 시간을 통해 저자의 가슴 속에 저절로 담긴 어떤 것들이 자신이 내일을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곳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일 테다. 그 시도가,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싶은 방식이 궁금하다면 만나도 좋을 책이다. 추운, 지금...

 

 

 

 

딱, 이러고 싶어서 떠나는 건지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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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 2월에 읽고 싶은 도서, 에세이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고전 읽기에 대해 뭔가 조금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골라본다.

워낙 약한 부분이고, 책 읽기 게으름 피우면서 가장 게을러지는 부분이기도 해서

한 번쯤 읽고 고전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지게 해주지 않을까 싶네.

 

<열아홉 편의 겨울 여행과 한 편의 봄 여행>

지독했던 이 겨울을 금방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겨울 여행으로 이번 겨울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쉽게 지나가지 못할, 아직 남은 겨울을 생각하면서...

 

<단상 고양이>

일러스트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은 그 일러스트가 백 개의 문장을 대신 하는 말로 보일 것 같아서 궁금해졌다.

표정을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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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 당신과 문장 사이를 여행할 때
최갑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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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가지고 있던 카메라와 렌즈를 모두 팔아버렸다는 그의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오랜 시간 그를 이루고, 지탱해주고, 전부였을지 모를 순간을 채워준 것일 텐데, 그것을 손에서 멀리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아서 계속 생각했다. 무엇이 그가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지, 그것 다 내려놓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겠지. 하지만 계속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와 비슷한 감정이 나를 채웠던 때를 대입하게 된다. 가끔, 혹은 수시로 찾아오는 순간들.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때를 그가 지금 지나고 있나 보다 싶었다. 물론 내 마음대로 생각한 거다. 그럴 것이다, 라는 추측과 공감의 순간을 끌어내고 싶은 바람 같은 것. 어떤 때는 정말 잔액 0원인 통장까지도 다 내 손으로 정리하고 조용히 묻혀버리고 싶다. 내 흔적을 다 지우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쓰레기 하나까지도 다 내 손으로 처리하고 사라지고 싶더라. 그의 손에서 늘 함께했을 카메라를 떠나보내는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잠깐씩 만난 그의 글로 받았던 어떤 느낌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그동안 내가 느낀 그의 책이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면, 이번 책은 그의 고통을 풀어놓은 듯한,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게 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어떠한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데도 그가 무슨 말인가 계속 하고 싶어 하는 거로 들리는 건 나의 착각일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그가 가슴 속에 품은 문장들로 대신한다. 어떤 책의 구절, 가수의 목소리가 더해진 가사의 여운, 어느 잡지의 작가 인터뷰에서 남겨진 말, 낯선 곳에 누운 채로 바라본 천장의 무늬와 창문 너머의 풍경들, 누군가 건네는 차 한 잔이 하는 말을 전한다. 낯설지만 안심하게 되는, 알 수 없지만 편해질 수도 있는, 목적지가 없었지만 괜찮을 것 같은 순간들을 위로하는 모든 것이 되는 것 마냥.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알아지더라고 말할 수밖에. 그건 어느 순간 내가 느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되어버렸으니... 오랜 시간 그의 발길이 닿았던 곳들의 흔적과 시선과 사유가 하나로 뭉쳐 또 하나의 문장을 만든다. 그 시간을 걸어왔으니 할 수 있는 말들. “해결이 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지나간 것뿐이다. (30페이지)” 그도 알고 나도 아는 것들. 비단 여행이 아니어도 알아지는 것들을 이렇게 듣고 있자면, 또 한 번 듣고 더 잘 알게 되었으니 그만 내려놓아도 되는 마음일진대, 그게 잘되지 않아서 또 마음을 돌린다. 아직은, 아닌 거니까. 해결이 된 것 아무것도 없고 그냥 지나가는 것뿐이지만, 아직은 그걸 인정할 수 없어서 잔물결처럼 발버둥 치게 되는 순간들이 이어질 거라고. 여행 작가인 그에게 진정한 여행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런 거, 아닌가? 그동안 수없이 계속되었을 그의 여행이 아직 그의 마음속의 것들을 위로해주지 못했기에, 지금 이 순간 오롯이 필요한 건 진짜 여행인 거라고.

 

당신을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길을 멈추진 않겠지만,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끔 멈추어야 할 것 같아요. 이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무언가를 위해서 남은 인생을 바칠 결연한 다짐을 하기보다는 그냥 가끔 맛있는 것이나 먹으며 즐기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랍니다. 그 왜, 앞에서 제프 다이어의 이런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잖아요.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 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뭐 어쨌든, 이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168페이지)

 

의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그의 감춰둔 마음을 읽는 것 같은, 그가 잠깐씩 드러내지 않고 적어두었던 일기를 보는 기분이다. 이 책이 이런 느낌일 거라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다녔던 곳을 찍고 썼을, 늘 보아왔던, 이번에도 여전할 것 같은 그의 글을 예상했는데, 의외다. 누군가에게 그곳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아니라, 그곳을 떠올리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관해 더 어필하고 싶은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작가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 살짝 투박했던 맛이 있기도 했는데 갑자기 확 말랑해져 버려, 손대면 물컹한 어떤 게 느껴지는 듯한... 그에게 여행이란 익숙하고 편하고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 계획하고 작정하고 많은 준비를 해야만 떠날 수 있는 일이, 그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직업이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 여행이 주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면 더 좋은 시간일 테니까. 보통의 삶을 살면서, 하루하루 벅차게 뛰면서 사는 동안 어딘가를 향해 떠남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므로,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시선을 받을 만한 일이다. 직업이 여행하고 글을 쓰는 거라고 하면, 일단 한번은 부러워하고 볼 일이었다. 그런데 조금 더 솔직한 그의 마음을 듣고 나니, 여행이란 단어에 묻어있는 선입견은 버려야 할 듯하다. 설렘이나 부러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작가에게도 나에게도, 그곳의 이야기와 풍경들이 글이 되고 사진이 될 수 있지만, 온전한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 순간에는 그 의미가 색을 잃는다. 그가 지금 여행을 내려놓은 이유, 그를 위한 여행이 필요한 이유가 아마도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온전히 그를 위로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순간에는, 일을 위한 여행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거. 그에게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 순간이 건너가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닌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시간, 그것만이 답이 되는 때...

 

자판을 꾹꾹 눌러 문장을 만든다.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 따위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회사원에서 프로레슬러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그런 순간은 결코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반성하자. 비관하지 말고, 오늘은 반성하기 좋은 날씨고 이곳은 반성하기 좋은 위치다. (281페이지)

 

내 옆에 있는 어떤 사람, 그 사람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듣고 있는,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대로도 좋음을 알아주는 시선으로 봐주기를 바라게 되는 글이다. 기존 그의 글과는 약간 다른, 누군가의 내밀한 속내를 듣는 기분으로 만나면 좋을 책이기도 하다. 사랑이 아프고, 사람이 힘들고, 내일이 불안해도 찾게 되는 글과 문장들이다. 여전히 그의 여행 이야기와 낯선 풍경으로 가득한 사진이 함께하고 있지만, 그 문장들과 사진마저 외로워 보이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전에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감정을 이제야 포착한 것처럼 다가온다. 추운 계절에 만나서 더 그런 건지, 추운 계절에 추운 일들로 가득한 순간에 만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쓸쓸하고 무거운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조금의 온기라도 일으키기를 바라는 간절함 담아 차가운 손으로 양쪽 팔을 문지르는 기분이다. 이 책을 쓴 그도, 그의 글을 읽은 나에게도 그 고독과 외로움, 쓸쓸함, 무거움이 덜어졌기를...

 

“텔레비전은 고장 났고, 욕실에 세수하러 갔을 때는 배관이 심하게 떨면서 전쟁 영화에서처럼 소리가 탕탕 나”더라도, “줄을 설 때는 끼어드는 사람을 막기 위한 곡괭이가 필요”할지라도,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신히 눈치로 알 수 있을 뿐이며,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가 없”을 지라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삶 역시 마찬가지. 되는 일도 하나 없고, 생활은 뒤죽박죽이고, 당신과는 오해만 쌓이더라도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324페이지)

 

 

 

 답답해질 때,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여의치 않을 때.

군가는 공항에 간다고 했다.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를, 출국하고 입국하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마중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그곳을 보고 온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며칠을 견딜 수 있다면서.

나하고는 조금 다른 마음이지만,

나는 공항이 아닌 기차역의 플랫홈의 사진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그래서 막상 기차를 탈 일이 있을 때면,

기차에 오르는 그 순간보다 플랫홈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좋다.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들어올 기차를 기다리면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 기차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책에도 많은 사진이 함께 하지만,

다 읽고 나서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다 보니 이 사진에서 멈춘다.

어딘가로 출발할 누군가의 시선을 떠올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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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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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어려웠다. 연재되었던 칼럼이라고 해서 기존 그의 글보다 조금은 편하게 읽히지 않을까 싶었던 안도가 뒤집힌 거다. 그동안 출간된 그의 글(책)을 끝까지 읽은 게 없다. 늘 진행형으로 몇 페이지씩 넘기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이번 책을 만났으니, 전보다 부담을 내려놓고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다. 그의 두 번째 산문집으로 만나게 된 이 책이 그의 시 이야기와 나를 조금 가깝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말이다.

 

많은 시인을 언급하고, 그들의 시를 들려주면서 '시적인' 것을 말한다. 뭐랄까,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시를 다른 마음으로 대하게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해석하기는 어렵고, 그들의 영감은 특별할 거라고 여겨서인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접했다고 해야겠다. 그런데 비평가가 말하는 그 시 이야기가 거리감보다는, 세상 살아가는 곳곳에 묻어있는 어떤 흔적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그 모든 것, 그 많은 것을 내가 한꺼번에 다 알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시에 가졌던 어떤 선입견이 한 꺼풀 사라진 것은 틀림없다. 마음이 시를 향해 가는 것, 어떻게 그러한 상태에 다가서게 되는지 말하는 분위기조차 시적이다. (너무 오버인가?) 어떤 그림에서, 영화에서, 사회의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서, 누군가의 작품 근거가 되는 이야기에서... 눈에 보이고 겪어가는 모든 게 시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짙어지게 한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많은 것이 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그동안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가능성이기에.

 

좁은 우물에서 보게 되는 것 역시 좁고 편협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조금은 중의적인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올려다보는 좁은 시선에서 세상을 좀 더 넓고 여유롭게 바라볼 가능성을 열어주는 듯하다.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저마다 끌어안고 살아가는 슬픔과 고통이 있다. 누군가의 눈물과 웃음이 있다. 시는 그런 세상에서 말하고,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그 시대를 말하고, 세상이 녹아 있다. 잊지 말아야 하는 많은 눈물을 전하고, 비극이 모티브가 되어 울림을 전하는 거다. 어느 무명 시인의 아픔을 말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상당히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은 미처 몰랐다. 이런 삶의 구석구석이 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시가 단순히 문학의 한 분야이며, 일상과 닮지 않은 모습일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어느 진심이 그대로 묻어있을 수도 있음을, 이제는 좀 알겠다. 저자가 하는 모든 말을 그대로 다 소화하는 게 어려울지는 몰라도, 세상을 보는 시선에 문학과 시를 함께 떠올릴 수 있다는 공감으로 계속 접근하고 싶은 작가의 글이다.

 

각 편에서 들려주는 시 구절도 눈에 저절로 담긴다. 그가 뽑아낸 문장들로 시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시인과 예술가의 삶을 들으면서 진지해졌다.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하나를 배운 것 같아서 이 추운 겨울에 살짝 흐뭇해지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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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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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청춘>의 페루행을 한 번도 빠짐 없이 봤다. 페루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여행을 좋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세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가 궁금해서였다. 그렇게 그들의 발길 머문 곳의 풍경들과 갑작스레 닿게 된 타국에서 겪는 낯섦, 그런데도 좋아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서 전해오는 행복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테마에 맞게 찾아가는 듯한, 그들이 말하는 그 청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그 여행에서 그들이 찾게 된 청춘의 의미. 어떤 모양으로든 만나게 된 그들의 청춘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시 멈춘 듯한 열정이 다시 피어오르고, 오늘과 내일을 좀 더 열심히 살아가고 싶은, 오래전 그들이 무언가를 꿈꾸었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여행의 의미는 그런 거라고, 누구에게나 어딘가를 향하게 하는 크고 작은 이유가 생겨날 때 떠나게 되는 것, 이 아닐까. 그게 언제든, 그곳이 어디든...

 

페루 여행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은 마주하면서 한없이 낮아지던 경험. 때로는 그저 겸허하게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깨달음. 인간 능력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교만함을 버릴수록 영혼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소중한 진리. 이것이 바로 페루 여행에서 얻은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115페이지)

 

저자에게도 그런 이유가 하나쯤 존재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처받은 그녀의 영혼이 향할 수밖에 없는 곳, 페루였다. 사람이 언젠가 한번은 죽게 되겠지만, 그녀 역시 그때를 가깝게 생각하진 않았던 듯하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 인생을 크게 흔든 계기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의지할 곳은 여행이었고, 그녀를 부른 곳이 페루였다.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라니,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쉬이 들려오지 않았을 듯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와 치유가 절실했을 거라는 건 알겠다. 그녀에게 그 위로를 주겠다며 허락한 땅, 페루. 지구상에서 신들의 세상에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그곳에서라면 그녀의 영혼을 치유 받고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녀가 페루로 떠나고, 그곳의 땅을 밟고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 온기를 나누던 시간은 그녀 안으로 오롯이 들어왔다. 아름다운 그곳의 자연과 역사를 품고, 사람들이 건네는 순수와 진심을 안고 돌아와 우리 앞에 이 책을 내놓았다.

 

쿠스코의 푸른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도, 마추픽추의 웅장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자연과 사람들의 지혜를 발견한다. 잉카인의 문명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 비워내고 오로지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그 빈 곳에 다 채울 수 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페루의 유적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건함, 곳곳에서 보게 되는 삶과 죽음의 의미,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현재의 모습이 간직하는 것, 자연 앞에서 인간의 겸손함을 보게 되는 곳. 그녀가 그 길에서 마주친 것들을 들려줄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미 한 번 본 장면들도 있지만, 다시 봐도 역시 감탄사가 나오게 된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적을 보는 기분. 그게 또 아무 데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신비함. 열대 우림과 고산, 사막과 바다, 어느 한 곳이라도 자연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는 장소여서 그 특별함을 더한다. 그 여정에서 또 기적처럼 만나는 인연들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택시 운전사 그레고리와의 만남은 우연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약속하지도 않고 서로가 느낌만으로 재회할 수 있다는 게 오늘을 살면서 내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긋난 약속 그다음에 만나게 되는 우연은 신이 허락한 인연이 아니었을까? 그레고리의 가족들과 보낸 시간에 온기를 담아오고, 그녀의 친구인 이야의 할머니가 건넨 한 마디가 가슴속으로 직행한 듯 훈훈해진다. 시렸던 마음이 다독여지고 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녀가 왜 굳이 페루로 떠났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바다처럼 넓게 펼쳐진 녹색 평원에 드러누워 있자니 내가 잔디가 되고 구름이 된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인간이란 애초에 잔디나 바람 같은 존재와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긴 채 주어진 삶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154페이지)

 

가깝지만은 않은 곳이기에 선뜻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곳은 아닌 듯했던 페루를 이 여행기로 조금은 가까운 거리로 끌어당겼다. 문명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티티카카 호수 사람들의 삶에서 비워짐, 느림의 시간을 느꼈다. 도시적인 느낌이 아니어서 더 여유로움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런 삶을 여기서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특히 그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져 그들의 마음까지 담고 오는 저자의 기운에 뭔가가 더 가득 채워진 기분이다. 인연이라는 건 그렇게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와는 다른 성격의 그녀가 여행에서마저 낯섦을 떨쳐버리는 듯해서 부럽기도 했다. 어딘가로 향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예민함이 크기를 키우는 나와 다르게, 그녀가 여행준비를 할 때부터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설레기부터 한다. 뭔가 단단한 게 내 안에 들어올 준비를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결국은 그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내 것으로, 나를 위한 것으로 만들려는 그녀의 의지가 힘을 발휘한 게 아니었을까... 여행에서 채워지는 건, 낯선 곳을 낯설지 않게 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길 위의 시간까지 포함하는 것이겠지. 그런 의미로 이 책을 담아보자면, 마음이 어떤 신호를 보낼 때, 그녀처럼 주저 없이 가방을 꾸리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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