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 괜찮아 (리미티드 에디션) - <나 안 괜찮아> 리커버 + 에스프레소잔 세트 + 마스킹테이프(랜덤 발송)
실키 글.그림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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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특별 한정판이라네. ^^ 공감과 이해, 사이다 같은 내용으로 풀어주는 그림과 글이다. 한정판이라고 해서 보니 표지도 다르고 예쁘긴 하다. 무엇보다 책 속의 내용에 많이 공감할 수 있어서 읽기 좋았다. 그림으로 하는 말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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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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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 안 나게 됐냐? 이렇게 멍청이들로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흥,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빌어먹을 크리스마스! 버는 건 없는데 빚은 잔뜩 지고,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될 뿐 벌이는 더 나아지지도 않건만, 크리스마스가 대체 뭐란 말이냐. 장부를 결산해 보면 일 년 열두 달 모든 항목이 적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이때 말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들은 푸딩과 함께 푹푹 끓인 다음 호랑가시나무 가지로 가슴을 푹 찔러 파묻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싸지!" (74페이지)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비종교인인 나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설렘을 안다. 아이일 때는 머리맡에 커다란 양발 걸어두고 선물을 받는 날로 두근거릴 것이고, 어른이 된 후로는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은 휴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날일 것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이 아니어도,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한 기분을 내도 좋을 날로 만들고 싶은 바람. 그런 간절함을 담은 날을 '빌어먹을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스크루지 영감이라니, 잔인하군!

 

겨울을 놓고 눈과 크리스마스를 빼고 얘기할 수는 없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니까. 언젠가부터 겨울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책 중의 한권이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두쇠 스크루지에게 찾아온 말리의 유령과 세 명의 크리스마스 유령이 스크루지의 과거 현재 미래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준다. 유령이 된 동업자 말리의 흉측한 모습, 세 명의 유령과 함께 다녔던 시간이 그에게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걸 모르는 이는 드물겠지. '빌어먹을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로 지낼 수 있는 마음의 변화를 기적처럼 이루어냈던 것이다. 변화한 그의 모습, 그가 건네는 인사 한 마디가 웃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 이야기에 감동은 저절로 따라온다.

 

사내아이의 이름은 '무지'이고 여자 아이의 이름은 '궁핍'이다. 이 두 아이를 경계하라. 그리고 이 두 아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계하라.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내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내 눈에는 이 아이의 이마에 적힌 '파멸'이란 글자가 보인다. 그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 한 이 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159페이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책이다. 너무 유명해서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런 책인『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렸을 적 읽은 동화 한 편으로 기억되기도 하겠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겨울의 낭만보다 현실이 먼저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흥분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게 굴었던 스크루지 때문에!

 

겨울은,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지옥이다. 추위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희망보다는 절망을 먼저 느끼게 한다. 이 추위와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잘 살 수 있을까,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찬바람이 불어오면 체감온도가 더 내려가는 것처럼, 시린 가슴을 더 춥게 하는 건 겨울이란 계절의 악명일지도 모른다. 그 악명을 스크루지가 대신 보여준다. 자비도 없고 인정도 없는 스크루지에게 많은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의 잔인한 한 마디와 무자비함은 더 춥고 아프게 살아갈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사무실 서기 밥에게는 석탄 한 조각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밝게 말하는 조카에게는 크리스마스의 악담을 퍼부었다. 가난한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그의 말은, 돈이 전부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그 무엇도 돈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개념을 만든다. 가난한 사람은, 겨울이 잠깐 허락한 그 낭만조차 누릴 수 없는 건가? 을인 밥에게 갑인 스크루지는 박봉에도 붙잡고 매달려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서글프게도 굶지 않으려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어른이 된 후 내가 만난 겨울은, 구두쇠 스크루지의 개과천선을 말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했던 거다. 여전히 겨울의 동화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이제와 다시 만나는 이 책은 마냥 판타지를 즐기며 읽을 수 있는 동화만은 아니다.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담고 있으니까. 당시 산업혁명의 절정기에서 노동자와 빈곤층의 삶은 비참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 역시 그 어려운 생활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빚에 쪼들려 경제적인 이유로 이 책을 썼다는 게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다섯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 가장 사랑받은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에게 큰돈이 되지 못했다. 직접 출판을 하느라 작가의 수입으로 많이 돌아오지도 않았고, 해적판이 나돌아 고소하느라 오히려 많은 돈을 써야 했다고 한다. 겨울의 추위를 물리칠 수 있을 만큼의 이 따뜻한 이야기가 그에게 현실의 온기는 주지 못했던 듯하다.

 

"자비로우신 유령님! 유령님이 곤경에 빠진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해 주세요. 제가 새사람이 된다면 지금까지 제게 보여주셨던 그 환영들이 바뀔 거라고 약속해 주세요!" (186페이지)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변함없다.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지독한 추위가 살을 에게 하지만, 판타지가 전하는 울림으로 세상이 금방 변할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온기가 되고 웃음과 행복으로 표현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과 자세로, 어떻게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기에 더 강조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크루지가 변했지 않는가. 석탄 한 조각에도 벌벌 떨던 그가 밥에게 커다란 고기 한 덩이를 보내고, 조카의 집에 먼저 찾아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말한다는 건 엄청난 변화 아닌가? ^^ 그래서 칼바람의 추위에도, 가난하고 부족한 크리스마스임에도, 아직 다 꺼지지 않은 희망 한 줄기를 놓을 수 없는 거다. 사람의 온기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부조리하고 불편한 세상이 바뀔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남아 있기에 말이다. 주말마다 밝히는 촛불의 힘을 믿는 우리니까...

 

겨울이다. 며칠 전에 내가 사는 이곳에 첫눈이 내렸다. 비와 눈이 함께 내리면서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바람까지 불어오니 갑자기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았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얼굴이 찢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굳이 일기예보를 확인하거나 눈이 내리지 않았더라도 겨울이 춥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누군가로 인해 이 추위가 조금은 덜 느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많은 사람에게, 더는 겨울이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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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 3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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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은 고전 무식자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다. 읽으면서 재밌었고, ‘이런 책들을 읽어봐야지‘ 하는 다짐과 목록을 채우게 했으니 좋은 거다.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미루기만 했던 책들을 다시 꺼내게 한다. 고전이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재밌기도 하다는 걸 전하는 저자의 마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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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시작을 알리는 건 참 많을 테지만,
알라딘은 언제나 그 다이어리로 12월을 여는 것 같다. 
곧 나올 2017 머그컵도 완전 기다리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다이어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북북 뜯어 쓰는 메모지나, 180도로 펼쳐지는 노트를 쓰거나 하는데
해마다 알라딘 다이어리를 득템하게 되는데 날짜 무시하고 그냥 노트로 사용하곤 했다.
사실 알라딘 다이어리가 두툼하고, 페이지도 넉넉하고, 튼튼해서 다 좋은데...
그동안 완전히 맘에 드는 표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하는 비틀즈 로고 그린은 너무너무너무 갖고 싶다.
딱 좋아하는 표지 색이다. 
펭귄클래식의 월든 특별판을 구매했던 이유도 그 색상 때문이었다. 
(아직도 랩핑 상태로 있다는 건 안 비밀. ㅠㅠ)
이번 비틀즈 로고 그린 색상은 정말 한눈에 바로 들어왔다.
사은품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등장하는 굿즈 때문에 책을 구매하지 말자고 다짐 다짐을 했고,
제법 지켜지고 있기에 혼자 뿌듯해 하다가(알라딘 '2016 당신의 책' 을 보니 확실히 구매가 줄긴 했더라),
연말에 그 마음이 주저앉아 버릴 듯하다.
그러다 습관처럼 다이어리 주는 도서 목록을 막 뒤지는 중이다.
 
 
이미 읽은 책도 있고, 도서관에 비치된 책도 있고,
희망도서로 신청해도 안 들어올 목록을 제외하고, 또 구매해서 읽어야 할 목록을 살펴보면서도,
고르지를 못하겠다.
아, 이놈의 결정장애 또 말썽..
 
 
<그럴 때 있으시죠?>, <숨결이 바람 될 때>, <시인의 밥상>,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나 안 괜찮아>, <법륜 스님의 행복>, <겹겹>은 이미 읽었고,
장강명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 궁금하지만 썩 갈증은 안 나고,
<브릿 마리 여기 있다>, <소주클럽>은 곧 도착할 예정이라 제외하고,
<정말 지독한 오후>는 음... 
전작들과 분위기가 많이 비슷할 것 같아서 이번에는 굳이 읽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여 빼버리고, 
<나는 지하철입니다>도 읽었는데, 조금 슬프기도 하고 기분이 쎄~해지기도 했다.
어제 뉴스룸에서 손석희님이 앵커브리핑에서 이 책 이야기 하시더라.
 
 

 

 


 
 
 
 

 
  
<세계 문학 브런치>는 지금 읽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다. 
물론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괴롭지만, 흥미는 생긴다.
<브루클린의 소녀>는 기욤 뮈소가 내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오랫동안 안 읽어온 작가라서 손이 안 간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저스트 키즈>, 등등 골라놓은 것은 따로 메모해두었고,
<밀수이야기>는 희망도서로 신청한지 한달이 넘었는데... ㅠㅠ 올해 도서 신청이 끝났단다.
 
 

   
 
 
 
 
 
 
 
 
정은궐이 신간 소식이 반가워 이미 지난달에 <홍천기>는 구매했고, 
<이갈리아의 딸들>도 특별판으로 데려다 놓았고, <파편>, <여름의 끝>, <사피엔스>도 있고...


 


 
 
 
 
 
 
 

그나마 조금 궁금한 건 <82년생 김지영>, <피프티 피플>, <유곽 안내서>, <없는 사람>, 
<면역에 관하여>, <아주 친밀한 폭력>, <강간은 강간이다>...


 


 
 
 
 
 
 
 
 
'지금 이 책을 사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아'라는 구매 기준을 정해놓고 보니,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에 결제버튼이 쉽게 눌러지지 않는다. ㅎㅎㅎ
 
이러다가는 조카들에게 보낼 책으로 눈길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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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2016-12-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멸종위기동물 굿즈 덕분에 맘이 몹시도 상하여 ㅠㅠ 녹색 다이어리를 내팽개쳤어요. ㅠㅠ
다이어리 주문해야하는데....꽁한 내마음이 언제 풀릴지 아무도 모름.ㅋ

구단씨 2016-12-12 13: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다이어리 득템해도 끝까지 안 쓸 것 같은데, 초록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네요.
탐나요. ^^
 
무릎딱지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2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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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당시에 읽어보고 싶었는데, 보관함에 넣어두고 잊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이웃님의 리뷰로 기억이 났다. 말썽쟁이 꼬맹이 조카 때문에 더 기억하던 책이기도 하다. 조카가 5~6살 때쯤이었나. 정말 말을 안 듣는 아이 때문에 언니가 힘들어했다. 자기 자식이 그러는 거,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본다고 해도 좀 심한 듯했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도 보통의 기준을 넘어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계속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던 형부가 조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너, 자꾸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엄마 머리에 흰머리가 난다. 흰머리가 나면 죽어."

 

뭐, 이런 말을 했었는데, 그때 조카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멍해 보이기는 했으나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엄마와는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던 걸까. 흰머리는 할머니처럼 나이를 많이 드신 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했을까? 그때, 딱히 조카의 입에서 어떤 말을 듣지는 못했다. 아이가 아무 말이 없었으니 그저 잘 알아들었으려니 하고 그 순간을 넘겼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 언니의 머리에 새치가 생겼다. 하나둘, 이제 막 새치가 나기 시작한 거 같은데, 그때 조카는 엄마의 머리를 보고 이런 말을 했더랬지.

 

"엄마, 여기 흰머리가 있어요. 그럼 이제, 엄마 죽어요?"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서로 눈도 못 마주쳤고, 그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웃고 떠들며 놀던 그 자리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졌다. 아, 정말... 뭐라고 대답해줘야 맞는 거지? 흰머리가 났으니까 죽는다고? 그때는 니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그냥 해본 말이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 했던 걸까? 지금 떠올려본 그때 그 순간에 우리가 조카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별말 못했던 것 같다. 다만, 그때 나는 조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 엄마에게 흰머리가 났으니 곧 죽는다고 믿고 있을까?

자기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에게 흰머리가 났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자기가 말을 잘 들으면 엄마의 머리에서 흰머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때 조카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차마 묻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내가 대꾸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묻기조차 겁났기 때문이다. 지금 조카는 초등학생이고, 또 여전히 말도 안 듣는 말썽쟁이지만, 가끔은 엄마와 대화하고 엄마와 싸우고 엄마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엄마가 흰머리가 났는데 죽지 않았다고, 어른들의 거짓말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공포가 이 아이에게 뭔가 다른 생각 하나를 심어주지는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면서, 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그렇게 또 자라나겠지.

 

 

그림책 『무릎 딱지』는 첫 페이지부터 심장이 쿵! 하고 울리는 듯 시작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죽었다. 어젯밤에 죽었지만, 아이에게는 엄마가 오늘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엄마가 저세상으로 떠났다고 했지만, 아이는 안다. 엄마가 어딘가로 떠난 게 아니라 죽은 거라는 걸. 사람들이 엄마를 관에 넣고 땅에 묻었다는 걸. 이제 엄마를 보지 못한다는 걸.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는 안다. 이제 아빠와 아이 둘만 남은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엄마의 부재는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아빠는 엄마처럼 빵을 발라주지도 않고, 울기만 한다. 아이는 자기가 아빠를 돌봐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엄마의 냄새가 날아갈까 봐 뜨거운 여름날인데도 온 집안의 창문을 다 걸어 닫는 걸 보니, 눈물이 핑 돈다. 그렇게 하면 엄마가 떠나지 않은 것 같을까?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로 들려온다. "괜찮아, 우리 아들. 누가 우리 착한 아들을 아프게 해? 넌 씩씩하니까 뭐든지 이겨 낼 수 있단다." 아이는 눈을 감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픈 게 다 나아버린다. 어느 날, 아이는 마당을 뛰다가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 아프지만 참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또 들려오는 게 좋았으니까. 그렇게 무릎에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으로 긁어서 뜯어내는 아이의 목적은 단 하나. 다시 상처가 생기고 또 피가 나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아, 어떡해... 얼마나 그리웠으면 딱지를 떼어 그 자리에 피가 흐르기를 반복하느냔 말이야. ㅠㅠ 그만큼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라도 간절했던 거겠지. 엄마가 죽은 걸 머리로는 알지만, 엄마가 아이 곁을 떠난 걸 마음은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어느 날 찾아온 할머니는 아이의 가슴에 대고 말한다. 엄마가 여기 있다고, 엄마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나는 정말 무섭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엄마를 완전히 잊게 될까 봐.

그래서 나는 달린다,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온몸이 흐늘흐늘해질 때까지, 내 심장이 쿵쿵 뛰어서 숨 쉬는 게 아플 때까지,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러면 꼭 엄마가 내 가슴 속에서 아주 세게 북을 치고 있는 것만 같다. (본문 중에서)

 

할머니는 아빠에게 빵에 지그재그로 꿀을 바라는 걸 가르쳐 주고, 아이와 아빠는 엄마와 함께였던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온다. 아침에 나는 커피 향기, 하루를 열어주는 라디오 소리, 식탁 위의 빵과 신문을 보는 아빠. 아이는 아빠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렇게 아빠에게 달려가는 아이 귓가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아빠한테 가서 안겨. 내 아들아……." 무릎을 만져보니 매끈매끈한 새살이 나 있었다. 어느 순간, 딱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딱지가 저절로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회복되는 걸까. 몸도 마음도, 슬픔을 겪고 나니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점점 차오르는 걸까. 엄마의 죽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엄마의 냄새가 날아가도 그게 끝이 아님을 알게 되고, 엄마와 똑같지 않지만 아빠가 대신해주는 엄마의 자리가 애틋해지는 감정을 알아간다. 남은 둘, 아빠와 아이는 그렇게 엄마 없는 오늘을 사는 법을 배운다.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슬픔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겪었고, 상처에 새살이 돋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제야 비로소 오늘 밤 편한 잠을 이루는 아이에게 내일은 어떤 날이 될까.

 

 

 

뭔가를 배운다는 건 그런 것 같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대개 좋은 기분보다는 아픈 것을 알아가며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슬픔을 받아들이며 배워야 할 게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 그 순간에는 무섭고 겁나지만, 또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인정하고 감당하는 시기를 건넌다. 언젠가 희미해질 기억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순리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사람이 영원할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죽는다는 거, 그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겪어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이미 훌쩍 자란 나도 죽음이 겁난다. 꼬맹이 조카처럼 나도, 엄마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어린 조카를 겁주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마의 머리는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이고,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불안하고, 문득문득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누군가의 장례 소식도 자주 듣는다. 이제 언제 어디서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인 거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죽음을 생각했다. 어른의 마음으로 겪는 죽음을 떠올렸다. 그 죽음 이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장례식, 이런저런 정리, 찾아온 사람들에게 전할 인사 같은 것들. 그런데 죽음 그 기저에 있는 마음을 잊고 있었다는 걸 이 그림책으로 다시 찾았다. 죽음 이후의 일은 일이고, 그 바탕에 깔린 슬픔과 헤어짐, 감당해야 할 마음의 무게를 잊고 있던 거다. 아이가 겪는 엄마의 죽음과 부재는 어른이 겪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 슬픔을 겪고 삶의 다음 페이지를 열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울기만 했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아빠를 달래주려고 한다. 누군가의 눈물은 그런 건가 보다. 슬픔. 그런 슬픔에 필요한 건 위로와 공감. 어른인 아빠와 아이인 주인공의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같은 크기로 다가온다는 걸 본다. 아이에게 엄마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아빠의 삶은 더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아이는 엄마의 빈자리에 아빠의 모습을 채워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와 아빠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엄마의 빈자리가 더는 슬프지 않게 사는 방법을 배울 거니까. 무릎에서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듯, 그런 날들을 살아갈 테니 말이다.

 

짧은 그림책 한 권을 읽은 것뿐인데 기분이 좀 멍하다. 자꾸 말썽쟁이 조카가 떠오른다. 그러면서 다음에 조카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엄마 머리에 흰머리가 하나씩 계속 생기고, 머리에 온통 흰머리가 가득했을 때가 오면, 엄마의 시간은 죽음에 가까워진 거라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고, 할머니도 죽고 엄마도 죽고 이모도 죽는 날이 올 거니까, 그때까지 우리 속상한 일 생기지 않게 서로서로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자고. 이모는 할머니 말 잘 듣고, 너는 너희 엄마 말 잘 듣고.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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