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술 -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싶었다. '작가'와 '술'이라니.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하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되는 부분도 있었다. 뭔가 조금 알 것 같은 분위기. 글을 쓰는 데 있어 술이 작용하는 힘이 어느 정도일까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더라. 술이라는 게, 작가라는 직업에서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술이 인간에게 가져오는 부정의 역할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거다. 흔하게 보아왔던 장면들일 텐데도 말이다. 뭐든 적당하면 좋고 약이 되지만, 과하면 독이 되는 건 여기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인가 보다. 술이 힘이 되어 쓰는 아름답고 멋진 글을 드러내기보다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보는 도구가 되었다.

 

올리비아 랭은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테네시 윌리엄스, 존 베리먼, 존 치버, 레이먼드 카버 등 여섯  작가의 삶과 작품을 들춰보며 그들과 술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추적한다. 추적이라고 하니 좀 으스스할 수도 있겠다. 그보다는 그들이 살았던 궤적을 밟으며 그 안에서 함께한 술과의 동거를 파헤쳤다는 게 더 어울리겠다. 좋은 말로 술을 사랑했고, 나쁜 말로 술로 파멸의 길을 걸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즐기는 걸 넘어서서 알코올중독에 빠지기 일쑤였고, 삶은 평온하지 않았다. 예술이라는 장르에 조용하고 평탄한 삶이 주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로 그동안 접해온 작가들의 삶은 평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절대 평탄하지 않은 삶일 수밖에 없는 게 예술가들이 아닐까 싶다. 그 누구보다 술을 좋아해서 즐겼고, 그 영향으로 많은 문학 작품도 토해냈지만, 그들의 삶은 영원히 숙취 해소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던 듯하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마지막을 보낸 뉴욕의 한 호텔을 시작으로 미국을 돌았던 저자는 각 작가의 삶과 술의 연관성을 찾고 그들의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길 기대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흐음...

 

하나하나 듣고 있자면, 나는 여기 소개된 작가들이 술과 보낸 시간에서 하는 말이 작가라는 직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너무 당연한가?) 직업의 특성에 하등 상관없이 보였다. 그냥, 여기저기서 봐왔던 술에 의존하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었다. 비극에 가까운 인생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그들만의 특징은 아니었던 거다. 다만, 작가가 술과 함께했을 때 불러오는 글의 효과를 그들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남아있다. 그들의 모든 작품을 읽은 건 아니지만, 그동안 들어왔던 그들 작품의 명성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성장 배경에서 생긴 우울한 삶의 시작은, 자기혐오로 자존심까지 추락했으며 늘 위태로웠다. 그렇게 이어진 술과의 자연스러운 인연이 그들의 글로 승화된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그렇게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그 술기운에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글을 쓰기 위해 술이라는 약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이었던 거라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이 그걸 증명하는 건지도 모른다. '술이 기분을 돋워주고, 감정이 고양되고, 그런 감정 때문에 이야기가 태어나고...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맞추기는 힘들지만, 글에 감정이 빠지면 안 될 것'처럼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술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에게 글을 쓰는 건 숙명처럼 보였고,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써야만 했다. 그러다가 주객이 전도된 거겠지. 술에 저당 잡힌 목숨이자 애증의 관계. 막말로 욕하고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어떤 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여섯 작가의 술 인생이 참 안타깝게 들여오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 안에서도 의외였던 게 술로 맺는 작가들끼리의 인연이었다. 존 치버와 레이먼드 카버,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몇 시간 후 많은 사람 앞에 서서 강의해야 하는데도 술을 사러 가는 작가들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만나면 술만 마셔댔다는 치버와 카버. 작가들이 만나면 작품 이야기를 하고, 진지하게 문학을 두고 토론의 장을 열 것만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 술로 쌓은 시간이라니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뭐, 실망하진 않았는데 '작가'라는 대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 변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느꼈던 거지만, '작가=글'을 동일시하지 않게 되더라는... 글과 글을 제외한 작가의 그 어떤 것들이 비례하는 건 아니므로. 술집에서 처음 만났다던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마찬가지다. 술로 맺은 인연이 적으로 돌아서기도 하면서 서로 떠올리기도 한다.

 

이 그들의 작품을 더 빛나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 치명적인 유혹 때문에 많은 것을 망가뜨리고 놓치면서 산다는 건 불멸의 법칙이다. 저자 자신에게도 가족 때문에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더 관심 두는 주제였나 보다. 너무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어서 저자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저 작가들의 알코올 인생이 어떻게 작품에 영향을 주고 어떻게 무너져가는 인생을 만들어갔는지 들려주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글의 분위기로는 저자의 감정을 자세히 읽을 수가 없지만, 곳곳에서 들리는 알코올중독 작가들의 책임 회피성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분노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들 작가가 술을 대하는 처지와 반대의 자리에 서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래도 글을 생각하면 술이 필요하구나 하는 긍정의 생각을 하다가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온갖 상처를 주는 작가들의 이런 변명 같은 말을 듣고 있자니 별수 없구나 하는 실망의 생각이 들더라. 작기이기에 앞서 그저 술로 저지른 많은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만 같아서.

 

작가와 작품이 주가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그 안에서 술의 작용은 뺄 수 없었고... 하지만 작가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삶과 술의 관계에서 더 보게 된다. 술 때문에 그들의 작품이 더 감정적이고 완벽하게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면의 것을 보고 있자면 술의 부작용이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술이, 누군가의 인생이나 시간을 더 깊어지게도 할 수 있고, 그 나약함을 더 증폭시켜 고통스러운 삶을 만든다는 걸 보게 한다. 술의 양면성, 부작용, 혹은 긍정의 효과, 거기에 작가와 술이 만나면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 흥미롭게 관찰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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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4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이나는 클래스
지난번에는 방송을 놓쳤는데 오늘은 우연히(?) 봤다.
챙겨보고 싶은 프로그램 . 쉽고 재밌게 들려서 저절로 집중하게 된다.
처음으로 유시민의 책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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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열광하며 보던 때가 생각난다.

도서관에 있기에 가져와봤는데, 소설로 읽으니 좀 다르다.

아마 드라마로 보던 그때 책으로 읽었어도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었겠지.

랠프 신부님 편애 모드로 완전 빠져들었었는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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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 대한민국. 종편 채널의 기자가 발견한 태블릿PC로 사람들은 영원히 숨겨졌을지도 모를 어마어마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다. 여대생들의 목소리는 입시 비리를 파헤치는 문을 열었다. 몰랐다면, 아니 짐작했으면서도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고요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입학시험에 통과하겠지 싶은 간절함으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낸 세금이 우리 삶을 더 안정되게 해주기를 바라면서...

 

한 가지 사건에 관해서 온갖 사람들이 취재한 것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검증하고 비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신념을 가진 저널리스트는 많지 않다. 그러니 신문을 읽는 우리도 쓰여 있는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항상 의문을 품고 읽어야 한다. (112페이지)

 

언론이 쏟아내는 모든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그때 달랐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어떤 때는 그게 전부가 아닐 거라는 것으로 판단하며 거짓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이슈가 터지면 또 무엇을 감추려고 저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매체가 전하는 정보는 세상과 통하는 하나의 창구가 되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그런 정보는 누가 전하나. 기자들이다. (외압이 없다는 전제하에) 어떤 의문이나 제보가 감지되면,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하면서 진실을 전할 거다. 이제껏 그렇게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자 사명이겠지. 하지만 그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이들은 그 취재 과정이나 자세를 다 알 수 없다.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공식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궁금했다. 그들이 바라는 특종을 위해 뛰는 오늘의 모습은 어떤 걸까. 그들이 취재하려고 달리는 모든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듣고 싶었다. 진실을 좇아 한밤중에도 취재에 나서는 기자 세계를, 신문기자로 활약했던 작가의 경험 때문에 더 생생하게 그릴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러니 더 듣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7년 전 아동 유괴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취재 중에 살아있는 피해자를 죽었다고 치명적인 오보를 낸 주오 신문. 그 책임으로 본사에서 지국으로 밀려나고 부서를 옮긴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들, 기자 고타로와 후지세, 히로후미의 현재 모습이 등장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특종 기자 고타로는 주오 신문 지국에서 일한다. 그는 여전히 특종에 목말라 있지만, 지국으로 돌면서 그 기회는 계속 멀어져간다. 어디 본사에 있을 때만 하려나. 그래도 그의 기자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오래 전의 실수 때문에 오히려 더 공정하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면서 기사를 신중히 처리한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그 실수로 피해자 가족은 고통스러웠고, 사람들은 주오 신문의 보도를 신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자 자신의 마음에 치명적인 주홍글자가 새겨졌다.

 

그러던 중 또다시 아동 유괴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고타로가 있는 사이타마. 도쿄가 아니었지만, 사건은 7년 전과 비슷하다. 이상하다. 이미 7년 전 사건의 범인은 사형을 당했는데? 무엇이 그 사건과 자꾸 연결해서 생각하게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면서 7년 전에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단서를 고타로가 다시 파헤치기 시작한다. 수법이 비슷하다. 어쩌면 동일범일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의심은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뭔가 계속 가려진 느낌이 든다. 뭘까? 뭐가 자꾸 안개가 낀 것처럼 이 사건을 투명하게 만들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취재는 계속된다. 더는 특종 때문에 불확실한 내용을 전하지는 않으리. 마지막까지 취재와 확인을 거듭하면서 진실을 전하는 것에 목적을 두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번 펼치면 도중에 내려놓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다. 기자들의 취재 과정이 흥미롭게 들린다. 오랫동안 닫힌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안의 모습을 샅샅이 훑은 느낌이랄까. ‘아, 기자는 이렇게 취재하면서, 이렇게 정리하고, 마지막까지 이런 긴장감을 놓지 않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눈으로 읽히는 맛이 그러했으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다. 막상 현장에서 뛰는 느낌은 이보다 더한 긴장감은 물론이고 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일 듯하다.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서 취재에 열을 올리는 기자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들이 기사를 쓰는 목적은 단 하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겠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사람의 거짓말이나 침묵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는 게 씁쓸했다. 각자의 입장을 아주 모를 것도 아니기에 말이다. 기자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취재해야 하고, 경찰은 사실 공개의 적정한 선을 두고 수사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며, 목격자 역시 자기가 위험해질까 봐 다 말하지 못하는 게 있을 거다. 동료 기자도 마찬가지였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진실 규명을 위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기자의 취재 과정이 의외였다. 그냥 사건이 터지면 달려가서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더라.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씨앗을 뿌리듯 정보원을 만들고, 싹이 트길(정보원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틔운 싹을 근거로 기사를 쓰기도 한다. 그때 정보원과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지만, 그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내보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다면 기사로 써야 한다.

 

신문기자에게 무기는 쓰는 것이다. 취재 대상 입장에서는 반드시 허락을 받고 쓰는 기자가 안심할 수 있으니 무슨 얘기든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취재 대상에게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 상태에서 질문한 적은 없었다. 오늘처럼 ‘잠시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정도에 그쳤다. (323~324페이지)

 

7년 전의 오보를 바로잡을 기회라 여기고 달려든 주오 신문의 기자들. 고참 베테랑 기자부터 신입 기자까지 다양한 기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가고자 하는 길은 하나였다. 진실을 알리는 게 저널리즘의 본질임을 잊지 않는 것. 실오라기 같은 단서라도 끝까지 매달려 확인하는 것만이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 거다. 클릭 한 번에 쏟아지는 많은 정보를 뒤로하고, 한밤중에라도 사건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는 그들의 열기를 전한다. 사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의 사명감과 사실을 전함으로써 다음 범죄를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 진실을 밝혀내면서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이 그들을 채운다. 그 배경에 어린 소녀들의 유괴·살인 사건을 심어두고, 사건은 사건대로 흐르면서 형사들의 추적을 그린다. 그 사건의 취재를 위해 뛰는 기자들의 고군분투가 소설의 주제다. 독자는 그 추리 과정을 즐기면서도 기자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재미까지 얻는다.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보는 소식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고 이런 정리로 우리에게 들리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흐른다는 걸 모르진 않았는데, 직접 듣고 보니 더 생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총과 칼 대신, 펜이 무기가 되어 휘두르는 전쟁터였다. 그 펜으로 누구 가슴을 찌를 수도 있고 눈물 나는 감동을 줄 수도 있다. 그 안에서 필수가 되어야 할 게 정확한 정보 전달이다. 인터넷 클릭 몇 번에 확인하는 정보들이 속도는 빠를 수 있겠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많기에, 그래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또 누구를 아프게 하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현직 기자들이 추천했다는 말이 이 소설에 신뢰를 얹는다. 소설로의 재미도 있었지만, 역시 그들(기자) 세계의 모습을 잘 전달했다는 믿음도 있을 거다. 진실을 파헤치는 고타로와 그의 동료들의 의지가 그래도 믿을 만한 세상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 올바른 정보 전달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 세상을 바꾸는데 그 사실 전달이 속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스마트한 시대에 구식 취재 방식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진실을 접하는 방식일 테다. 그 방식이 사람을 구하고, 죄를 묻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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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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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려운 단어다. 평범. 그 평범을 이루며 사는 게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일은 그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모든 순간의 오늘이 모여 채우는 인생을 가쿠타 미쓰요의 글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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