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삶의 방식
이수희 지음 / 부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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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부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 가족 구성원의 정족수를 채워야만 행복해질까?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부부가 처음부터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 평생 버팀목이 되어 줄 배우자와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선택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다. (213페이지)

 

내가 언젠가부터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서 읽어보기로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내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다. 자발적으로 엄마이기를 거부하는, 건강의 이유가 아닌 것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로 생각했던 거다. 아니었다. 결혼하고 부부가 된 후, 많고 다양한 이유로 엄마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공감의 인터뷰로, 누군가에게는 전혀 몰랐던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축복이고 행복이겠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못하는) 이들에게는 고통으로 불행이다. 아이가 있든 없든, 결국은 행복 하고자 하는 인생을 사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개인이 선택한 행복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없는 오지랖을 부리고 언어로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를 가진 이들의 세상에 한발 들여놓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상에 속하지 못하면서 점점 거리가 생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배경에 두지 않고 함부로 생각하고 뱉는 말들에 두 번 상처받는다. 아이가 없다는 게 차별받고 계속 상처를 받아야만 하는 일인지 묻고 싶은 순간이다.

 

우리 사회는 왜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사람들만 비추는가?

저마다의 사정을 다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다. 결혼했지만 자녀 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많은데도 많은 시선이 그들의 삶을 비추지는 않는다. 난임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아이를 포기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오늘의 삶에 충실하다가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들, 처음부터 많은 고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들.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 아이가 없는 그 이유를 왜 타인들은 듣지 않으려고 하고 배려하지 않는가. 왜 아이 없는 삶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가. 아이가 없는 삶을 왜 비정상으로 간주하는가.

 

사회에서는 아이를 '사랑의 결실'이라고 하며, 그 결실이 없는 이들의 관계를 쉽게 부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틀렸다. 그러므로 아이를 억지로 만들면서 그 결실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 증명하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부모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명하면 행복해지는가? 행복은 증명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225페이지)

 

많은 여성의 인터뷰에 내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가장 가까이에서는 가족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주고, 조금 더 나가면 주변의 사람들이 아이 문제로 고통을 준다.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아야지.' 그 말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여성들. 노력해도 생기지 않는 아이 때문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해도 해도 안 되어서 아이를 포기하고 부부가 행복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는 데도 왜 아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가. 반대로, 결혼해서 당연하게(?)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지? 아이를 낳았으면 키우는 게 부모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잘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어려운 일을 선택하는 것조차 당사자가 결정할 수 없는 게 현실 속 사회 분위기다. 특히 요즘처럼 저출산 시대를 극복하려는 국가 정책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면 함부로 말 꺼내기도 무섭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여러 번의 난임 시술 끝에 건강만 나빠지고 결국 아이를 포기한 상황에도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를 낳지 못한 것만 회자되어 계속 오지랖을 거둘 줄 모르기만 한다. 당사자만큼이나 그 슬픔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추가 업무 담당이 된다. 면접을 볼 때마다 임신에 질문과 질책을 받는다. 난임 시술로 아예 사직하고서도, 결국 임신하지 못하고 재취업 하려고 해도 힘들다. 나라에서는 아이가 없다고 세금은 더 내라고 한다. 아이가 없으니 돈 들어갈 일 없다고 시부모님 용돈을 더 내놓으라고 한다. 손주가 없어서 밖에 나가면 남부끄럽단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행복인가?

인터뷰 답변을 듣고 있자니 화를 넘어서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왜 하나의 인간으로 봐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각자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마치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만 여겨진다. 왜 아이를 낳는 일이 생각과 계획이 빠진 채로 떠밀려야 하는지, 책임의 주체가 되는 개인은 왜 선택조차 어려운 일인 건지...

 

적당한 나이에 취직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적당한 나이에 아이를 낳고, 적당한 나이에 둘째를 낳는다…. 그런 적당한 삶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믿는 이들은 그 범주를 벗어난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다. (166페이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정상'이란 삶을 생각했다.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것을 이루며 보편적이라 여기는 인생의 항로를 가는 것. 그래서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이는 '낳는다'는 게 아니라 '선택한다'는 것으로 생각할 문제라고 여긴다.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 '출산은 부모가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능한 일(159페이지)'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물론 이 문제는 배우자와 같이 고민하고 합의해야 가능한 일일 거다) 내가 낳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고, 또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다. 옛날 어른들 말씀처럼 자기 밥그릇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밥그릇 챙기기도 어려운 시대이지 않은가. 다른 것은 고사하고 밥 먹고 사는 일조차 너무 힘들기 때문에, 살면서 저절로 자기 밥그릇 챙기지 못한다. 그런 시대를 살면서 내가 낳은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가늠해보지도 않고, 내가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고 낳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나는 환갑이 넘어서까지 미성년 자녀를 돌봐야 한다. 그때의 내가 경제적 육체적으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더 아이의 성장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아이는 낳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므로.

 

저자가 겪은 똑같은 일을 다른 여성도 겪는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그 실체를 확인하고,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자의의 선택이든 어쩔 수 없는 결과였든,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이 선택한 행복의 최선이라는 거다. '꼭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좀 더 깊게, 오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저자는 단순히 아이가 없는 이들의 인터뷰만을 들려주는 게 아니었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하기 전에, 아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아이를 안 낳기로 했지만 갑자기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노후는 어떻게?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의 행복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벽 하나를 넘고, 세상을 더 배운 느낌이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미혼이든 비혼이든, 남자든 여자든,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고 생각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한, 타인의 삶을 존중해주길 바라면서.

 

한국 사회에서 2인 가족의 삶은 고단하다. 수많은 이들이 '왜?'라고 질문해 온다. 생각 없이, 계획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는 축하는 보내는 이들이,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아이 없는 삶에는 의문을 표한다. 포기할 것은 얼른 포기하자. 그 삶이 어떤 모습이든, 부부 두 사람이 열심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2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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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용에 관해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듣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르겠고...)

표지의 배우 때문에라도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20여을 써내려간 그 고통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만 같다.

 

총 5부작 중에서 첫번째 이야기만 출간된 상태.

 

 

 

 

 

 

 

 

1권 - 괜찮아

 

 

 

 

 

 

 

 

 

2권 - 나쁜 소식

 

 

 

 

 

 

 

 

 

3권 - 일말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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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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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무뎌지기 쉬웠다. 불편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안으로 숨기고 아닌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상대에게 다가올 언짢은 말을 듣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내가 느끼는 불합리한 대우를 나 스스로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해야만 편해진다고 생각했다. 그 편해지는 주체가 누구인지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아닌 상대가 편해지는 일이었겠지?

 

너무 익숙하게 보아왔던 장면들이 ‘별일’이 되어버린 건 왜일까. 저자는 전작 『82년생 김지영』의 의미를 이어가기라도 하듯이 이 ‘별일’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자 애쓰는 듯 보였다. 아니, 저자는 굳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레 전작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저자의 전작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받아들이기로 하곤 했던 김지영 씨 인생의 모든 순간이 우리의 이야기였기에 잊을 수 없다.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KTX 해고 여승무원 이야기인 「다시 빛날 우리」는 지금도 뉴스에서 보는 장면들이 소설에 녹아 있다. 그녀들이 외치는 현재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부정부패로 저지른 일 때문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오랜 시간 외치던 목소리들은 법원의 로비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낼 수 있을까? 다양한 이름의 그녀들이 부딪히고 겪은 별일들은 다양하지 않았다.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강이 모여서 바다로 연결되는 어떤 지점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저자가 불러낸 이름들은 각자가 좁은 강줄기였다. 그 강줄기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길목에서 들려온 목소리다.

 

소진 씨는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했다.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올바르게 처리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되돌아온 건 그녀를 향한 수많은 화살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위장병과 탈모를 얻은 그녀는 거기서 멈춰야만 하는 걸까? 학교 급식 조리사의 단체 파업 때문에 오늘도 엄마의 도시락을 들고 등교하는 수빈은 엄마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들 급식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한다고 서운한 눈빛을 보낼까? 아니면 엄마가 되찾으려고 하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응원할까? 국회 청소노동자 진순 씨는 열심히 일했다. 비정규직, 하청 같은 수식어가 그녀의 노동을 더 힘들게 했지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업무를 더는 열심히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 노동의 대가는 어이없는 수준이었다.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힘을 냈다. 직장으로의 출근길이 행복이었으면 싶었다. 매우 어려운 싸움을 하면서 얻어낸 결과로 그녀는 더 열심히 일하고 싶은 노동자가 되었다. 국회에 직접 고용된 청소노동자. 더 열심히 일하고 싶게 만드는 근무 환경이 일의 능률을 높여준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다.

 

다양한 나이대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이 소설이 결코 소설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사회 초년생으로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달리기와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시간을 만드는지, 가사와 노동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중년 여성의 고충 같은,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눈물만 흘리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싸우기만 하자니 통하는 말이 없고, 두 손을 내려놓고 있자니 해결될 게 하나도 없는 상황. 답답하고 힘들지만 계속 나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그대로 꿋꿋하게 묵묵히 걸어가야만 하는 그녀들의 일상이, 인생이 말을 하는 거다. 우리 여기 이렇게 있다, 더 나아가지 않고서는 현실의 불합리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으니, 인간다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이 목소리는 힘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그녀들의 많은 이야기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이혼일기」와 「결혼일기」, 「엄마일기」는 한 가정의 세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정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시선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같은 어려움을 가진 여성의 마음을 엿볼 수도 있었다. 큰딸의 이혼과 작은딸의 결혼이 동시에 이뤄진다. 언니의 이혼으로 여동생은 결혼에 관해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아직 겪지 못한 일들에 언니의 이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곧 언니와 동생은 공감의 시간을 가질 거로 생각한다. 두 딸의 이혼과 결혼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심란하지만, 큰딸의 이혼을 반대하기는 싫다. 당신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혼이란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큰딸의 이혼이 곧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발악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여자의 이혼이 주홍 글씨로 여기던 시대는 지나갔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이혼이 주홍 글씨가 될 이유는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언니, 나 프러포즈 받았어. 오월에는 상견례를 하려고 해."

"아, 그래? 잘 됐네."

그리고 잠시 침묵.

"언니, 나 결혼 할까 말까? 결혼이라는 거 어떤 거야? 할 만한 거야? 언니가 하지 말라면 그냥 여기서 멈출게. 이유 같은 거 묻지 않을게."

결혼이라는 게 어떤 걸까. 나는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의외로 여러 장면들이 기억났다. 오랜 상의 끝에 선택한 식탁 위 액자, 같은 영화를 보고 나누었던 너무 다른 의견들, 밤 산책 중 사먹은 삼각김밥과 컵라면, 내 승진 축하파티…… 나는 동생에게 결혼하라고 말했다.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그게 쉽지 않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대로 나는 내 이혼을 진행했고 동생은 결혼을 준비했고 나와 동생의 일 모두 잘 마무리됐다. 이게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90페이지, 이혼일기)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당신이 윤 서방한테 전화 넣어봐."

"내가? 내가 왜?"

"잘 달래서 데려가라고 해야지."

"쟤들이 어린애들이야? 왜 우리가 끼어들어?"

"그래서 이혼하게 둘 거야?"

"이혼하라고 안 하지. 근데 절대 이혼만은 안 된다고도 안할 거야. 우리 정은이 똑똑하고 정확한 애야. 알아서 잘 판단하고 선택하고 잘 살 거야."

남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자고 딸들을 다 저렇게 키워놨어? 여자애들이 좀 숙이고 들어가는 법이 없어. 다들 나 잘났다고 저러고 있으니. 당신은 정은이 걱정되지도 않아? 여자 혼자 사는 게 어떤 건지 당신이 알기나 해?" (187페이지, 엄마일기)

 

이혼하는 큰딸, 결혼하는 작은딸, 그런 두 딸을 바라보는 엄마. 세 사람의 마음을 듣는 동안, 여자라는 존재가 다양한 자리를 갖고 있구나 싶었다. 거기에 사회에서 또 차지하는 역할들까지. 그렇게 많은 위치에서 존재하는 대상인데, 왜 적정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했나... 아프고 아픈 이야기들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익숙하고 당연시하게 되는 습관까지 붙었는지도 모른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인 건 맞다. 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틀리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일어나는 ‘별일’이 익숙해지지 않을 시간을 꿈꾸게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넘기고 나니, 가만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저자가 이 기록을 남겨야만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이유가 저절로 알게 될 수밖에 없다. 특별히 별일도 아니라고 말문을 여는 그녀들에게는,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때로는 투쟁이 되는 일들이었던 거다. 르포 기사로 연재되어 다시 소설로 태어난 이 이야기들이 내는 목소리는 부조리의 폭로이면서, 힘든 싸움에서 다른 방법이 없기에 계속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용기에,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연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독자로 그녀들의 싸움에 동참하는 나의 힘도 보태고 싶다.

 

그녀들의 짧은 이야기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다. 결혼과 이혼, 오랜 고심 끝에 선택한 비혼, 억울하게 당한 해고, 버스 기사를 하면서 추행에 대처하는 방법을 습득한 여성 버스 기사, 아내에서 엄마로 손주를 돌보는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이 육아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국정농단 폭로의 문을 연 여학생들의 시위가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 위해 기록해낸 결과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인생의 품위를 만드는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온몸으로 묻고 답하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끝은 없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것이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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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들에게 사면초가 1~2 (완결) - 전2권
소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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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주(여자 주인공 이름이 ‘여주’다)에게 찾아온 네 명의 남자. 그냥 남자도 아니고 네쌍둥이다. ㅋㅋ 네 명의 남자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좋아야 하는데, 팔짝팔짝 뛰어야 하는데, 이건 대력 난감이다. 형제라잖아. 여주가 생각하는, “인생에 한 번쯤 인기가 폭발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데, 나는 그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는 순간의 아름다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꽃보다 남자 F4의 형제 버전. 네쌍둥이의 등장은 다른 여학생들도 부러워하지만, 문제는 네 명의 남자 모두 여주에게 향하는 눈길이다.

첫째 일남이. 내신도 1등급인 우등생이다. 마음도 예쁘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여주라면 가장 먼저 일남이를 보게 될 것 같은데, 또 일남이 같은 애가 좋긴 해도 음, 너무 모범생이라 심심할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나는 그런 심심함을 느낄 수 없다. 왜냐고? 나는 여주가 아니잖아. ㅠㅠ 일남이가 나에게는 안 올 거니까...)

둘째 이남이. 과격하게 보이는 상남자다. ‘여주 넌 나랑 사귀어야 해!’라고 외치면서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가만히 보면 똘끼 충만한 것 같은데, 단순한 것 같아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것 같기도 하고. 그 단순함이 매력이 되기도 할 것 같은데, 내 취향은 상남자는 아니므로... 하긴 이남이로 나에게 안 올 것이기에 이남이의 상남자 스타일을 내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네. 쩝!)

셋째 삼남이. 운동을 하는 캐릭터. 거친(?) 외모와는 다르게 마음으로만 말하는 남자. 눈으로 말해요, 라고 말하는 시기가 지나간 지가 언제인데 고릿적 연애를 꿈꾸는가. (삼남이의 순수한 마음을 아름답지만, 답답해서 패스. 삼남이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을 살짝 가르쳐주고 싶기도 하다.)

넷쨈 사남이. 귀요미 폭발. 애교부터 청소, 요리,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남이는 그 집 형제들의 엄마처럼 보인다. 물론 사남이도 여주를 좋아한다. 동갑인데도 여주한테 누나라고 부르며 연하남 캐릭터를 만든다. (귀엽기로 따지면 사남이가 최고지만, 음, 사남이의 들러붙음이 나는 별로일세. 사남이도 내가 별로겠지만... ㅠㅠ)

 

“전생에 지구쯤은 구해야 이런 기적을 만날 수 있을까?”

하염없이 부럽긴 하다. 한꺼번에 네 명의 남자가 달려들면, 무섭기도 하겠지만 흐뭇하기도 하겠지? 근데 여주는 좀 이상해. 아니, 이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다 이상해. ㅎㅎ 뭐랄까, 책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남주를 찾아 헤매기 마련인데, 매 회 남주가 달라지는 느낌? 남주가 달라질 것만 같은 느낌? 오늘은 일남이였나 싶으면, 일주일 후에는 이남이? 그러니까 이 말인 즉슨, 여주의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의 마음이기에, 그 마음 들여다볼 수가 없어서 함부로 남주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게 이 웹툰의 재미였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여주의 짝은 누구란 말이냐~ 하면서 보게 되니까 말이다.

 

여주의 친구 나비가 등장하는데, 나비 역시 오늘은 일남이, 내일은 이남이, 이런 식으로 마음이 갈대가 된다. 아니, 나비는 갈대라기보다는 오히려 금사빠라고 해야 할까? 너무 착해서 순간순간 상대의 착한 점이나 매력을 바로 캐치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여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그때마다 알게 모르게 나비와 여주, 네쌍둥이 중 한 명은 삼각관계(사각관계)에 빠지게 되고 은근한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는데, 그게 참 웃음이 난다. 주인공들이 고등학생이어서 그런지, 애들의 연애가 참 풋풋하고 신선하게 보인다.

 

매 순간 달라지는 여주의 마음, 그때마다 연애와 실연에 빠지게 되는 네쌍둥이, 질투와 응원을 보내는 여주 친구 나비. 갈팡질팡, 오락가락, 여주의 마음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목적지를 확인하려고 끝까지 읽게 되는데, 아............. 너였어?

 

네쌍둥이의 성격과 매력이 다 달라서 누구 하나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각자의 매력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기에 누구 하나 놓고 싶지도 않고, 다 가질 수도 없고... 그렇게 보면 어쩌면 여주는 현명한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때그때 자기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그냥 가버리는 그녀가 당돌하게 보이면서도, 그게 솔직한 마음이기에 맞는다는 생각도 들고. ㅋㅋ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도,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느낌에 이 애들의 성장기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만 작가의 머릿속에 어떤 이야기가 남겨있을지 알 수 없어서 궁금할 뿐이다. 오랜만에 풋풋한 아이들을 보면서 잠깐 설레기에 좋은, 오래 전에 읽었던 순정만화 느낌에, 로맨틱 코미디 같은 분위기에, 현실감 좀 떨어지는, 오직 설렘설렘을 느끼고 싶은 순간에 딱 펼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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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주 그냥... 죽인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선입견인지 고정관념인지 모르겠지만,

내 머리 속에는 '교회 오빠' 이미지가 있다.

뿔테 안경을 낀, 선한 눈매의, 피부가 좀 하얗고, 공부도 좀 잘 할 것 같은...

전체적인 느낌은 한없이 착하고 착한 느낌을 뿜뿜하는 오빠의 분위기다.

테오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이석훈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바로 그 느낌.

 

작가 이기호가 들려줄 '교회 오빠'는 또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지 무척 궁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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