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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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때로 어떤 거창한 조건이 필요 없다. 인간이기에 가져야 할 인간다움. 인간으로 살아가는 보편적인 모습이면 충분할 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런 기본적인 자세를 상실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아프고 힘들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또 가끔은 그 기본으로 사람을 대하는 누군가 때문에 흐뭇해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본다. 이 소설 때문에, 그렇게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상대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사람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소박하고 솔직하게 들려준 그 사람 때문에 가슴에 울컥, 묵직한 덩어리가 남았다. 그의 몸에 익숙했던 신사의 품격을 넘어서, 인간의 품격을 장착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형벌이란 말인가. 귀족 신분의 로스토프 백작은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거다. 그래서 그가 4년간 머물렀던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된다. 아니, 이걸 감금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한 걸음도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미 몇 년을 살아서 익숙한 곳에서, 그것도 호텔에서 지내라는 말인데 이걸 어떻게 형벌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에게 내려진 형벌이 가혹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동안 그에게 호텔은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에 불과했지만, 그의 의지가 아니라 법으로 강제되어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건 아주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그에게 주어진 공간은 그동안 그가 머물렀던 317호 스위트룸이 아니었다. 9제곱미터의 다락방이 주어졌다. 백작이나 각하로 불리던 그의 삶이 극과 극으로 달라진 거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그는 호텔의 다락방으로 이사한다. 그가 가졌던 계급과 부를 잃은 채로, 호텔의 창고 같은 방에 머무는 신세가 됐다.

 

하루아침에 추락해버린 삶.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내쳐진 신세. 백작의 뒤바뀐 신분과 환경을 보고, 인간은 어떻게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순간에 그를 수식하던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을 상상했다.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부잣집 구성원들이, 전에 발을 들인 적도 없는 낡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그것도 겨우겨우 얻은 집이다),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고(교통 카드라는 것도 모른 채로), 시중드는 사람에게 시키던 생활의 필요한 모든 것을 이제는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생활. 적응하기 힘들겠지. 있었던 것들은 사라지고, 없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예전의 삶을 동경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백작의 현재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는, 더는 백작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 칸의 호텔 방에 머물면서 살아가는 동안 그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제 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대는 가차 없이 변한다. 필연적으로 변한다. 창의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시대는 변하면서 케케묵은 경칭과 사냥용 호른뿐 아니라 은으로 만든 호출종과 자개를 입힌 오페라글라스, 그리고 이제는 쓰임새가 없어진 온갖 종류의 공들여 만든 물건들을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 (124페이지)

 

사실, 그가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이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곧 이번 생을 지워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는 못 살아, 내 체면이 있지, 나름 백작이었거든?! 뭐 이런 마음으로 남은 생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귀한 신분이었던 것을 하루아침에 버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누리던 것을 다 잃었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나라면?’이라는 의문을 계속 떠올렸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의 삶을 이끌었다. 읽는 내내 내 가슴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고 있었다. 한 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의 변화하는 삶을 지켜보면서 내 안에 켜켜이 쌓이는 어떤 것.

 

그는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쉬울 리 없다. 그가 삼십 년 넘게 살아온 세상이 바뀐 것을 금방 인정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호텔에서의 감금 생활을 시작도 할 수 없었으리라. 거기에 그가 가진 책의 격언도 그의 남은 삶 내내 큰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격언을 상기했다. (이 말은 후에 그의 딸 소피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그 스스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그가 이끌어가는 삶으로 만들었다. 그의 나이 예순이 넘도록 호텔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인생을 끝내는 큰 일 없이, 외롭지 않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거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위트룸에서 다락방으로 이사하면서 가져온 짐 몇 개가 전부다. 그것마저도 물림 받았던 거다. 오래된 책상이나 의자, 찻잔, 여동생 옐레나의 사진 정도. 혹시나 오해할까봐 말해두는데, 그에게 내려진 호텔 감금형은 그냥 호텔에서의 생활하라는 게 아니다. 호텔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이지 그가 호텔 안에서 생활하는 비용까지 대주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그에게는 일이 필요했다. 그가 오랜 세월 머물렀던 호텔은 그에게 최상의 일터가 된다. 그는 자기가 머무는 호텔의 웨이터가 되고, 식당 지배인 안드레이와 주방장 에밀과 친해진다. 오랜 세월 쌓아온 지식과 교양으로 누구보다 훌륭한 웨이터 임무를 수행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스스로 옷을 손보기 위해 호텔의 옷 수선실 마리나에게 바느질을 배우기도 한다. 호텔의 이발사와도 스스럼없이 일상을 나눈다. 한때 그가 손님으로 드나들면서 마주했던 호텔 사람들과 이제는 급이 사라진,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만난 어린 소녀 니나와의 우정은 후에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가 무난하게, 상당히 여유 있는 마음으로 호텔의 감금 생활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 불편함, 아직은 다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니나가 준 마스터키로 가끔 탐험하고, 그가 지냈던 방에도 들어가고 하는 일들이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는 제일 나은 방법으로, 그가 간절하게 누리고 싶은 것들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하여 이뤄낸다. 다락방의 옆방으로 통하는 벽을 발견하고 아무도 모르게 그의 생활공간을 넓힌다. 그의 서재를 만들고, 그만의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그렇게 자기를 위한 생활과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을 동시에 습득한다. 아니, 이건 배우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그의 내면에 자리한 인간다움이 타인과의 교류와 이해와 공감을 만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웨이터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본다. 그가 전에 알던 사람도 있고, 새로운 손님도 있다. 그가 오랜 세월 기본으로 쌓은 소양도 그의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가 현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웨이터 일은 조금 수월해지기도 하다. 어쩌면 호텔은 그의 나라인 러시아 속의 작은 러시아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에서의 적응 같은, 자기가 처한 환경을 헤쳐 나가는, 호텔이라는 나라에서 그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야만 했던 거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발을 맞추고, 친해지고, 서로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세상의 많은 감정을 읽고 배우는 것. 그는 충분히 해냈다. 어린 소녀의 이념을 이해했고, 아버지가 되었으며, 호텔 식당에서의 일을 최선으로 해내기 위해 동료들과 회의했고, 다른 이념을 공부하며 이해하려고 애썼다. 많은 사람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다.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그가 인생을 걸고 해낸 일이 정말 무엇이었던 건가.

 

백작의 마음을 흔든 것은 어쩌면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서 생활하는 이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되게 일하며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크리스마스의 유대감을 나누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씨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날 이른 저녁에 현대적인 젊은 커플이 옛 방식으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자신의 불리한 출신 성분에도 새로운 러시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듯싶은 니콜라이를 우연히 만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혹은 니나와의 우정이 가져다준 예기치 않은 축복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책을 덮고 불을 껐을 때 백작은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167페이지)

 

그가 호텔에 감금된 배경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로스토프 백작이 살아온 시간, 그를 둘러싼 시대는 밝지만은 않다. 볼셰비키 시대. 개인의 삶을 인정하기보다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면서, 개인으로 살기에 어려운 상황을 선사한다. 로스토프의 친구인 미시카, 그와 노란방에서 이념을 공부했던 오시프, 다른 이념의 세상에서 사는 리처드까지. 한 끗 차이로 목숨이 달라질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고 혼란의 도가니였지만, 오히려 호텔에서 감금된 그는 그런 어지러운 세상을 직접 부딪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그를 또 다른 모습의 위기에서 구해준 형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배경이 되는 시대의 흐름보다는, 오히려 그가 꾸려간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된다. 그의 인생에 갑자기 다가온 감금 생활을 시작으로, 호텔에서 만난 많은 사람과 그의 인생에 뛰어든 어린 소녀 니나, 니나의 딸 소피야로 이어지는 인생의 인연들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운다. 독신으로 살았던 그가 결코 알 수 없을 감정과 역할까지 말이다.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460페이지)라고 말하던 미시카가 제대로 본 것이다. 백작에게 주어진 호텔 연금형은, 그의 삶에 또 다른 길을 열어주면서 인간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했던 거다.

 

읽으면서 로스토프 백작의 인생을 독자도 같이 따라간다. 저절로 따라가게 된다. 그의 딸 소피야의 성장이 그에게 홀로 남은 외로움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의 마지막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다른 독자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독 백작이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어쩌면 내가 가진 결핍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는 독신이기에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의미로 니나는 그에게 절대 불가능했던 세상의 한 장면을 선물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게 소피야의 존재는, 소피야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동시에 그의 성장도 이뤄내는 시간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생전 처음 해보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역할을 그는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로 이뤄내야 했다. 호텔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으니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는 그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진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신사였다. 그의 호텔 친구들도 소피야를 위해서 세상의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호텔이라는 하나의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소피야의 성장을 도운 사람들 덕분에 그는 딸을 예쁘게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았을까. 그는 호텔에서의 한정된 삶이 소피야에게 더는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끼고 소피야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사람. 그게 부모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해내고야 만다. 그때, 소피야를 안전하게 또 다른 세상으로 보낸 것을 봤을 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차곡차곡 쌓아가던 감동은 단단히 굳어져 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안으로 들어왔던 감동을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가 자신에게 바라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 후 괴로움을 토로했을 때, 아버지는 그녀에게 한 가지 생각을 얘기해줌으로써 그녀를 위로하고자 했다. 아버지는 우리 인생은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여 나가는데, 그러한 불확실성은 우리의 인생 행로에 지장을 주거나 나아가 위협적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한다면 우리에게 극히 명료한 순간이 찾아들 거라고 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갑자기 하나의 필수 과정이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갈아가야 할 삶으로 꿈꿔온 대담하고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687페이지)

 

다 끝났을까? 아직 그의 인생에서 들려줄 뭐가 더 남았을까? 뭐랄까, 이 소설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처럼 여운을 남기며 독자에게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소피야는 목적지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는 왜 그곳(?)에 갔을까? 그가 도착했던 그곳에 있던 은발의 여인은 누구일까? 그는 거기서 생의 마지막까지 살아가게 될까? 혹시 그가 속한 나라와 다른 이념을 가진, 그가 친구들과 공유하고 이해를 도모했던 이념을 가진 나라로 가지는 않을까? 이상하다. 분명 소설은 다 끝났는데, 이 소설에 관한 궁금증과 관심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소설에 관한 관심과 의문은 더 늘어난 것만 같다. 그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를, 살아가는 자세에 관해 더 들어야만 할 것 같고, 그가 가진 지식과 우아함을 더 배워야만 할 것 같고, 아직 다 알지 못한 인생의 많은 이야기가 더 남아있을 것만 같다. 작가의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으면서도 소설의 몰입도는 완전 달랐다. 상당한 분량이지만 다 읽고 나니 책의 두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남은 이야기가 더 있을까 봐 있지도 않은 뒷장을 기웃거리게 된다.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자세를 배운 것 같은 묵직한 감동이 깊게 자리하게 하는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놓인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우리의 내일이 오지 못하게 막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어떤 태도로 그 환경을 받아들이며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지켜보게 한다. 삶의 새로운 의미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게 하는 이야기에 반해버렸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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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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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할 것.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우리가 예단을 하는 이유는 그게 좀 더 쉽고 게으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들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375페이지)

 

머리가 없는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처음부터 긴장감을 안고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시신이, 그것도 머리가 없는 시신이 발견된다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 살인을 했고, 머리를 잘라서 가져갔고,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불안에 떨면서 생활한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는데도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가 더 무섭다. 이 끔찍한 일을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지만, 범인이 잡혔다면 조금은 안심하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도대체 소녀는 왜 죽은 것일까, 누가 소녀의 머리를 가져간 것일까, 도대체 왜?

 

앤더베리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다. 마을 어디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다 알 수 있는 곳. 열두 살의 에디는 친구 네 명과 무리를 이루어 다닌다. 어느 날 이 아이들은 낙엽 더미에 덮인 소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리고 범인이 남겨놓은 흔적으로 보이는 하얀색 분필로 그려진 그림.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가 있다. 에디에게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알려준 사람, 에디의 학교에 선생으로 새로 부임한 남자, 에디가 백색 인간이라고 부르던 핼로런 씨. 그가 금발 머리 소녀를 죽인 범인일까?

 

이 소설은 1986년과 2016년, 30년의 시간을 오가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로 이야기한다. 1986년에 열두 살이었던 다섯 소년 중의 한 명인 에디가 주인공이 되어 소설을 이끈다. 2016년의 에디는 학교 선생이다. 부모님이 살던 낡은 집에서 여전히 지내고 있으며, 셰어하우스처럼 클로이라는 여자애에게 방을 하나 내주고 있다. 마흔두 살의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지내면서, 과거의 친구들이었던 개브와 호포를 여전히 친구로 두고 있다. 어느 날 배달된 한 통의 편지가 30년 전의 시간을 다시 끌고 온다. 그리고 그때의 시간은 사건도 같이 불러온다. 마틴 목사를 해치고 등에 천사 날개를 그린 건 누구일까, 미키의 형 션을 강물에 빠져 죽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호포의 개는 왜 죽었는지, 핼로런 씨는 정말 금발 머리 소녀를 죽였을까, 오랜 세월을 지나 미키는 왜 다시 에디를 찾아온 것일까...

 

등장인물 모두가 수상해 보인다. 낙태는 죄악이라며 신도들을 이끈 마틴 목사의 진짜 모습을 의심하게 된다. 건들거리던 미키는 형이 죽고 나서 더 불량해졌다. 핼로런 씨는 왜 금발 머리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에디의 부모님은 이 모든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는 건지. 왜 모든 사건에 초크맨의 메시지는 남아 있는 걸까. 초크맨이 등장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사건은 일어나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진다. 그럼 초크맨을 잡으면 되는데, 초크맨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니, 정말 초크맨이 범인이 맞기는 한 건지... 알아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의문은 늘어나고 사건은 풀린 듯 풀리지 않는다. 무엇 하나 분명하고 개운하게 해결된 것은 없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사건은 종료되고, 잊힌다.

 

내가 요즘 듣는 노래가 있다. 클로이가 하도 틀어서 비교적 견딜 수 있게 된, 프랭크 터너라는 포크 겸 펑크 가수의 노래다.

후렴구에 저지르지 않은 일로 기억되는 사람은 없다는 가사가 나온다.

하지만 그게 백 퍼센트 맞는 말은 아니다. 내 인생은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 내가 하지 않은 말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인엇이 누락되었는가가 우리를 규정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밝히지 않은 진실이 우리를 규정한다. (212~213페이지)

 

에디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을 때마다, 과거의 인물들과 하는 이야기가 늘어날 때마다 사건의 진실은 드러난다. 그때 그 일의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였다. 인제 와서 드러내봤자 무엇이 달라질까 싶지만, 그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사건의 해결보다는 자기 자신이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꺼내놓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중에는 진실을 말하기 싫었지만 드러내놓은 사람도 있다. 어쨌든, 30년의 세월은 범인도 범인이 아니게 만들고, 이제야 꺼내놓은 고백이 대나무 숲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독자는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들을 때마다 섬뜩해진다. 사소했지만, 고의가 아니었지만, 사건은 커졌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의 진짜 모습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난감한 것이 어디까지 말을 해도 되는가, 이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고 외치던 목소리에 분노한 독자라면 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이럴 거라는 예측과는 다르게 막상 펼쳐보니 진실은 저기 멀리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소설을 읽는 긴장감은 커진다. 예상했던 인물과 다른 사람이 범인이 되었을 때 두 눈은 커진다. 무엇보다, 전혀 다른 곳에서 진짜 범인이 등장할 때는 심장이 쫄깃해진다. 소설 『초크맨』은 긴장감과 읽는 재미를 동시에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인간이 저지르는 사소함이 얼마나 큰 사건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이럴 줄 몰랐어, 하는 뒤늦은 후회는 사실을 털어놓을 기회마저 놓치게 한다. 30년을 건너와 들려오는 진실은 끔찍하다. 무엇보다 호기심 때문에, 습관이 되고, 그게 또 인식하지 못하는 범죄를 몸에 익숙하게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게 가장 무섭다. 인간이 가장 무섭다는 누군가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우리는 스스로 해답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건 정답이다. 그게 인간의 천성이다. 우리는 원하는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질문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뭔가 하면 진실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그냥 진실인 습성이 있다. 우리는 그걸 믿느냐 믿지 않느냐만 선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24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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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겨울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5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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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계절인데, 해마다 겪는 게 다르게 느껴진다. 작년의 여름과 올해의 여름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올해 여름을 견디면서 생각하는 건 '작년에 에어컨을 몇 번 켰더라?' 하는 거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여름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에어컨을 켜고 지낸 날이 적었다. 올해는 에어컨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 더위에 에어컨이 말썽이어서 서비스 신청을 했는데 기본 일주일은 기다려야 점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더 더운 것 같았다.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점검받고 다시 시원한 집안에서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태어나서 몇십번의 여름을 겪었지만, 올해의 이 지독한 여름과 더위는 처음이라고 기억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다. 처음 겪는 일이 어디 올해의 여름뿐이랴. 올해의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지, 내년의 여름은 올해처럼 더울지,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많은 일이 그랬다. 처음 먹는 음식, 처음 보는 것들, 처음 가보는 장소들.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일 대부분은 처음을 거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던 거였다. 무민에게 이 겨울도 그러하겠지. 지난번에는 '태양이 저물어도 어둠이 찾아들지 않는 한여름'을 경험하더니, 무민은 이제 처음 보는 겨울을 지나고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한겨울 속에 있다. 해마다 11월의 겨울잠을 자는 무민들. 그렇게 잠들면 다음 해 4월에 잠에서 깨고, 잠에서 깬 무민들을 기다리는 건 따뜻한 봄이다. 겨울 내내 잠을 자면서 보내니 무민들이 겨울을 알 리 없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그때 혼자 잠에서 깬 무민은 밖으로 나간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낯설지만 처음 만진 눈은 신기하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추위를 몰고 오는 겨울과 눈이었다. 이런 겨울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 아직 무민은 모른다.

 

가족과 함께하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혼자 해야만 하는 일. 가족 모두가 겨울잠을 잘 때 혼자 잠에서 깬 무민은 모든 것을 혼자 해야만 한다. 우리가 부모의 둥지를 떠날 때나,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야 할 일이 늘어날 때를 떠올리게 된다. 객지에서의 독립생활이 외롭고 춥고, 사회생활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감이 늘어나고, 인간관계에 좀 더 깊은 고민을 하면서 성장한다. 무민의 겨울이 그렇다. 혼자서 먹을 것을 구하고, 한겨울의 추위를 견뎌내야 하고, 처음 겪는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어리바리, 알 수 없는 것들로 혼란스럽지만 무민은 우왕좌왕하면서도 잘 해낸다. 처음 보는 눈송이를 신기해하면서도 예쁘게 바라본다. 처음 겪는 일에 도움을 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추위를 피해 먹을 것을 찾으러 무민의 집으로 몰려든 친구들에게 온기와 먹을 것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겨울을 어떻게 지내게 되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무민은 생각했다.

'내가 겨울을 이겨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 주고 무릎 꿇리려고 이런 짓을 하는 게 틀림없어.'

겨울은 먼저 부드럽게 떠다니는 눈송이로 아름다운 커튼을 만들어 무민을 속인 다음, 아름다운 눈송이를 눈보라로 바꾸어 얼굴에 마구 내던진다. 그것도 무민이 막 겨울을 좋아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135페이지)

 

무민이 부딪히는 겨울은 만만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고, 시계는 멈췄고, 가족들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한참 전에 떠났던 스너프킨이 떠오르지만 여기에 없다는 현실. 투티키는 아빠의 탈의실에 머물고, 헤물렌은 스키를 타고 나타났다. 이상한 녀석들이 집 안 구석구석에 숨어 있고, 춥다고 무민의 집으로 몰려온 이들을 대하는 것도 짜증이 난다. 처음 보는 겨울에 적응할 사이도 없이 뭔가 몽땅 한꺼번에 무민에게 달려드는 느낌이다.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추운 겨울 실컷 자고 일어나면 따스한 봄이 기다렸던 그동안의 일이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 겨울을, 무민은 잘 견딜 수 있을까?

 

겨울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처음 겪는 추위는 어떤 걸까? 눈뜨면 봄과 여름이 기다려야 하는데, 아직 무서운 겨울이라면? 태양이 지지 않아 덥기만 했던 여름을 기억하는데, 이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태양이 뜨지 않는 겨울을 기억해야 한다면? 동글동글 오뚝이같이 생긴 무민을 보면서 보들보들 귀엽고 여린 인형을 상상했다. 그냥 아껴주기만 하고 예뻐해 주기만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면 그걸 받고 잘 자라기만 하는 대상. 그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다. 인간도, 무민도. 누구에게나 성장은 필요하다. 온몸으로 부딪히는 경험도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무민이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게 한다. 처음 경험하는 계절과 그 계절을 겪으면서 무민이 바라본 또 다른 세상. 무민은 이제 무민 골짜기의 겨울을 기억한다. 몸소 체험했으니, 혹시라도 다음 겨울에 다시 잠에서 깬다고 해도 지금처럼 무섭고 어렵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민에게 한 번의 경험치가 쌓였을 테니. +1~!

 

가끔 토요일 밤에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어느 날 등장한 개그맨 박성광과 그의 매니저 임송. 박성광의 매니저는 스물셋의 경상도 출신이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 하루하루 지내면서 실수한 것들을 복기하고, 주차를 잘 못 한다면서 매일 퇴근 후에 공용 주차장에서 주차를 연습한다. 사회생활 잘 해내고 싶고,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하면서 칭찬도 듣고 싶을 거다. 잘못한 것을 지적받는 것보다 잘한 것을 칭찬받는 게 훨씬 어려운 세상살이. 부모의 품을 떠난 그녀는 일하면서 매일 고향에 계신 엄마와 통화한다. 그날은 유독 실수가 잦았던 날이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와 그 장면을 보는 나도 같이 울었다. 그녀와 같은 나이의 나를, 우리를 생각했다. 알게 모르게, 조금 힘들지만 단단하게, 아마 그녀도 성장하는 중이겠지. 실수는 줄어들고, 일을 익숙하게 하고, 좀 더 잘 해낼 수 있는 노하우도 터득할 것이다. 무민이 처음 겪은 겨울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이제 겨울을 경험한 무민은 달라졌다. 겨울이 어떤 계절인지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다 가졌어. 한 해를 온전히 가졌다고. 겨울까지 몽땅 다. 나는 한 해를 모두 겪어 낸 첫 번째 무민이야." (154페이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는 일, 낯선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어렵고 힘들다. 어색하고 낯설어서 시행착오를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문 채로 살아갈 수 없는 우리는, 늘 낯선 세상에 한걸음 발을 디딘다. 어려움을 겪고 나면 훨씬 잘 자랄 거라는 무민의 말처럼, 그렇게 계속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성장할 것이기에 말이다.

 

 

(번역가를 보니 따루 살미넨이다. 혹시나 해서 이력을 보니 그녀 맞다. 방송인 따루.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한국의 정서를 너무도 잘 알아서 놀랐는데, 막걸리까지 좋아한다면서 즐기던 그녀. 아직 한국에 있는 줄 알았는데, 고국인 핀란드로 돌아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에 괜히 더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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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 시리즈

 

 

 

 

 

 

 

 

 

 

처음에는 편혜영의 소설이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두번째 박형서 책도 괜찮은 것 같음.

세번째 윤성희, 네번째 김경욱...

 

곧 나올 이기호 편을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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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멜로즈 시리즈 3권이 출간됐다.

이번에도 역시나, 컴버배치의 드라마 표지가 함께 한다.

이 배우님의 이 표정, 어뜨케... ㅠㅠ

드라마를 안 봐서 몰랐는데, 소설의 주인공과 컴버배치의 연기가 싱크로율 100%를 자랑한다고... 응?

 

 

지금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 1권과 2권 사면 컴버배치 님의 매력적인 표정의 엽서를 준다.

각 권 표지와 똑같은 엽서다. 아주 빳빳하고 좋다.

 

 

 

이제까지 3권. 곧 4권 5권도 나올 텐데...

완결까지 가보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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