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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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종류의 책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림 그리는 이가 그림과 함께 전하는 이야기들. 크게 거북스럽지도 않고 한밤의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차분하게 읊조리는 듯한 말들.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래, 그랬지...'하는 추임새를 넣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건 요즘을 사는 우리들 마음의 온도가 금방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의외로 쉽고 익숙해져 버렸고, 바닥에 떨어진 온도를 올리는 일은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닫고 끝을 알리는 것보다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따스함을 건네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꾸 이런 말들을 하고 싶은 순간이 많아지고, 그런 공간을 찾아 누군가는 계속 말을 하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은 기억한다

 

아무리 지난날이 아름다웠다 되새겨도

문득 그날의 상처가, 그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아름답게 변해도

추억이 색색이 고운 빛깔의 옷을 입어도

 

가슴은 그날의 아픔을 기억한다. (63페이지)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따금 우리는 모든 것을 떠나 자신을 오롯이 대면해야 한다.

 

누군가의 딸, 아들, 엄마, 아빠…….

어느 학교에 다니든

어느 회사에 다니든

 

나에게 부여되는 많은 이름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걸 벗어나 그저 그냥 나이고 싶을 때가 있다. (78페이지)

 

 

사랑을 잃고 아팠던 시간을 꺼내놓으면서 아픔을 조금씩 덜어내려는,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을지 모를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과정을 거치는,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계속 연습하는 거 아닐까. 하나의 사랑은 끝났지만 이렇게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고, 사랑이 끝났다고 지금의 생이 끝난 것은 아니므로.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이렇게 걷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가는 담담하게 자기 경험의 시간을 드러낸다. 헤어지고 아팠던 시간을 털어놓듯 꺼내놓으면서, 우리 각자의 사랑을 한곳으로 끌어모은다. 아픈 날들은 이제 지나갈 것이고, 누구나의 것이며, 이런 위로의 순간으로 채워지는 오늘이 슬프지 않다고 말이다.

 

 

막다른 벽

 

인생이 갑자기 막막해질 때가 있다.

 

지난 시간 나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멈출 줄 몰랐다. 설익은 밥을 허겁지겁 먹는 것마냥 깊은 고민보다는 결과를 내기에 급급한 시간을 보냈다.

 

숨이 막혔지만 가끔은 무언가 이뤄 나가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다. 목표를 향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던 인생의 선택지 앞에 갑자기 거대한 벽이 나타난 순간, 많은 생각들이 나를 휘어감았다.

 

그동안 나의 선택지에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밀려났던 중요한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129페이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사랑을 끌어안고 우리는 머리와 마음을 무겁게 이고 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서서히 그 시간을 잊히겠지만, 잘라낸 기억처럼 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지나간 시간 속 누군가 때문에 지치기도 하고, 속상했던 일들 떠올라 울기도 한다. 우는 게 잘못이 아닌데도 마치 큰 잘못을 하는 것처럼 소리 죽여 눈물을 안으로 삼기도 했던 순간들. 저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같이 듣게 하면서, 그 시간을 같이 걸으며 다시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리의 서툴렀던 시간을 복기하듯, 다음 사랑에서는 더 잘하고 싶어지게 하는 기운 내게 하는 말들을 불러온다. 숨이 가쁜 100미터 달리기 말고, 천천히 가도 괜찮은 산책을 하듯이.

 

 

이별 노래 한 곡 듣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이야기들에, 뭔가 큰 짐 내려놓은 것처럼 한숨 놓이는 기분이다. 가르치려 드는 말이 아니라, 같은 선에서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듯한 그림과 문장들에 진심 어린 위로가 들려오는 것 같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쉽게 듣기는 어려운 위로와 공감의 말들이 눈에 들어오는 그림과 함께 다가온다. 차분하게 마음 내려놓고 싶을 때, 한낮의 숨 가쁨이 버거워질 때, 내게 남아있는 감정을 건드리는 것 같을 때, 괜한 불안함에 잠을 설칠 때, 누군가의 손끝이라도 잡고 싶어질 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다가오는 위로가 될 것이다.

 

끝에 다다르는 시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는 달라졌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에 집중하니

도전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경험이 되었고

실패는 나를 보완하고 다듬는 기회가 되었다.

 

사랑은 내게 살아있다는 충만감을 주었고

이별은 내게 타인을 이해하려는 배려심을 주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기회와 경험은 결코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15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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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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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당신은 이렇게 위대한 존재가 되어버렸는가. 어머니란 이름의 역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대로 목격하게 하는 글이다. 엄마를, 엄마의 엄마를 그리워지게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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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1-12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문한 책을 어제 받았어요.
내 어머니의 이야기.. 그 세계에 들어가보려구요

구단씨 2019-01-14 16:31   좋아요 0 | URL
주말동안 다 읽으려고 작정했는데, 아이고...
저 다 못 읽었어요. ㅠㅠ
이 책 읽고 나면 제 어머니의 세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려나요?
 

인종이 사람 종의 자연적인 구분 단위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인종이란 무엇일까? 인종은 고정관념이다. 실제로 직접 알아보지 않고, 누군가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많은 방법 중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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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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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듯하다. 빨리 해결이 안 되는 일에 마음을 닦달하고, 타인에게 건넬 마음을 건조하게 계산하기도 하는 일상.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나를 먼저 챙기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 아니었던가? 다른 사람을 볼 겨를이 없다. 그게 특히 가족도 아닌 남이라면 말이다. 그렇게 매 순간 전쟁이라도 하는 듯 긴장하며 살다 보니, 갑자기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가 들려오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뭔가 많이 달라져야 할 것 같고,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다가 점점 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따뜻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된다면, 소박한 행복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태어나는 아이에게 엄지 장갑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 나라, 루프마이제공화국. 이 나라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은 모두 장갑 뜨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엄마, 할머니가 되어가면서 꾸준히 장갑을 뜬다. 그렇게 평생 뜬 장갑은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전해진다. 루프마이제공화국 탄생의 나이와 같은 마리카도 장갑을 받았다. 할머니가 예쁘게 떠주신 장갑으로 마리카의 탄생을 축하했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마리카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성장했고, 야니스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을 점령한 얼음제국의 생활 방식을 따르게 된다. 마리카의 나라에서 평소 즐기며 나누었던 것들은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던 일들은 더는 불가능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겨진 것. 장갑 뜨는 일만이 허락되었다. 참전하게 된 야니스의 빈자리를 견딜 방법은 하나였다. 마리카는 장갑을 뜨고, 그동안 야니스에게 받았던 씨앗을 심고 꽃을 피운다.

 

한 명의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장의 시간을 그대로 기록한 글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보면서, 포근하게 살아가며 행복을 만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독자들에게 뿌린다. 특히 자연이 주는 많은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사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나라, 자연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사는 동안 만날 많은 기쁜 일에 장갑을 선물하며 마음을 전하는 일이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마리카가 인생에서 만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받았던 장갑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많은 순간에 축복받았을까 상상하게 된다. 태어나서 할머니에게 받은 장갑, 야니스에게 청혼으로 받은 장갑, 참전한 야니스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면서 뜬 장갑. 가만히 듣고 있자면, 우리가 간절하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 일기라도 적어서 그 마음 표현하고 싶은 것처럼, 마리카는 털실로 짠 것으로 인생을 기록하는 듯하다.

 

그렇게 털실로 뜬 장갑을 인생을 말하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마리카는 사용하지 않은 장갑을 풀어 그 털실로 다른 것을 뜬다. 일상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둘씩 뜨면서 공간을 채운다. 또 다른 이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도대체 털실로 장갑을 뜨는 일이, 무언가를 뜨는 게 왜 중요한 일일까 싶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채우는 게 고작(?) 장갑을 뜨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하찮게 보이겠지만, 마리카의 성장을 계속 보고 있으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일명 똥손이었던 마리카가 할머니 못지않은 베테랑처럼 장갑을 뜨는 순간. 성장이 완성된 느낌이 들더라. 그러다가 야니스가 부재할 때, 야니스의 소식만 기다리면서 망부석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에게 엄지장갑 뜨는 법을 가르쳐주는 마리카를 보니 왠지 뭉클해지는 기분까지. 어릴 적 마리카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뭔가 하나하나 완성되어가는 느낌을 주는 소설에, 괜히 읽으면서 뿌듯해지는 이 기분은 뭔가. 어쩌면 우리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차근차근 채워가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일. 그건 나 혼자 알아서 확인하게 되는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변의 많은 것이 같이 만들어주는 거였다. 알몸으로 호수에서 수영도 가능하게 하는 자연의 배려, 슬픔과 기쁨을 같이 느껴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 그들에서 배우는 삶의 방식들이 한 사람을 완성하는 과정이었던 거라고 말이다. 분명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슬픔과 고통이 찾아오겠지만, 그 순간을 건너는 방법 역시 알려주는 게 이 소설이다. 야니스가 부재할 때 마리카는 멍하니 기다리는 일만 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야니스는 돌아오지 않았고 마리카는 혼자 늙어가며 할머니가 되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마리카는 슬프지 않았다. 사랑하는 야니스는 옆에 없지만, 그를 기다리는 동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았다. 주어진 오늘을 열심히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 다그치고 불안해하며 오늘을 버티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일을 배운 거였다. 얼음제국이 언젠가는 물러가고 예전의 따뜻한 루프마이제공화국의 평화롭고 행복한 날들이 찾아오리라는 기대로 오늘을 살았다. 매일 같이 장갑을 뜨면서 말이다.

 

'고마워(Paldies)!'

 

작가가 라트비아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라트비아의 문화를 가슴에 담은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겨울에 장갑이 필수인 나라, 자연이 삶과 가까이 있어서 포근한 나라, 지나가다 만난 호수에 뛰어들어도 자연스러운 나라. 이 소설로 삶의 긍정적인 태도를 한 번 더 배운 듯하다. 추운 나라에서 찾은 행복의 장면들이 따뜻했다. 힘껏 달려서 맨 먼저 도착해 깃발을 뽑는 행복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변의 것이 뿜어내는 온기로 닿은 행복이었다. 코를 빠트리지 않고, 한 코씩 차근차근 엮어나가야 완성되는, 잘 짜인 장갑으로 보는 인생사 같다. 꽃 선물이 아니라 작은 씨앗 하나로 꽃을 피워가는 기쁨을 알게 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 찾아오는 작은 행복들에 고맙다는 인사가 저절로 나오게 하는 삶, 이런 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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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 김현의 詩 처방전 시요일
김현 지음 / 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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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닮은 걸까요. 사랑에 아파하고, 앞날의 불안함에 슬퍼지고,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찾아오는 슬픔과 기쁨의 크기가 왜 이렇게 비슷한 걸까요. 그나마 내 안에 자리한 슬픔을 그때그때 다 털어놓으면 속이라도 후련해질 것을, 그게 또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니잖아요. 어쩌면 평생 말을 못 하고 품고 지낼 수도 있고요. 내가 지금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 타인이 들어봤자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봐... 그러게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품고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할 감정과 문제들일 텐데 말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 마음을 알아주기나 할까 싶은 절망도 생기고요. 그래서 망설이게 돼요.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 내 안의 말들을 꺼내놓는 일을요. 마치, 우리의 그런 망설임을 아는 것처럼 시인은 말합니다. 들어줄 테니 꺼내 놓아보라고, 당신의 슬픔을 모조리 가져가겠노라고. 별거 아니면 어떠냐고, 누구나 다 그런 일들 겪으면서 살아가고 살아왔노라고, 그러니 같이 얘기 좀 해보자고.

 

그렇게 모여진 사연들을 듣고 시인이 내놓은 처방전을 묶어놓은 책입니다.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사연에 시인이 건네는 처방전은 바로 시(詩)였습니다. 어느 시인이 먼저 했던 말을 가져와서 마치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읽었노라고, 누군가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또 그렇게 흘러갈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이지 않겠느냐'고. 사람들의 사연에 시인 역시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한때 우리가 겪었을 이야기를, 슬픔과 아픔을 건너가는 방법이 참 많더라는 것을, 우리가 건넨 위로의 한 자락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될 거라는 것을요. 듣다 보니 참, 이 말도 별거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이런 말 종종 들어왔고 잘 알고 있잖아요. 몰라서 사연을 보내는 게 아니었잖아요? 그런데도 자꾸만 듣게 되고 듣고 싶어지는 건, 누군가의 한 마디가 힘이 되는 때가 많다는 것 역시 우리가 알기 때문이니까요. 인생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일들이 그때마다 잘 건너가기를 바라는 건 우리 모두의 바람일 테니까요. 그래서 자꾸 듣게 됩니다. 시인이 처방해주는 시와 시인의 말을요.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더 다정한 척을, 척을, 척을 했다. 더 다정한 척을 세 번도 넘게 했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말들일 뿐.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94페이지,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 이제니)

 

첫 애인과 오랜 연애 끝에 이별을 택했다는 사연.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은 허한 감정. 이 마음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묻는 일에 시인은 '허물어진 연애의 자리에 후두둑 떨어져 앉은 나뭇잎을 상상하는 그럴싸한 일, 그때 듣는 소리가 사랑이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소리일 거라고, 그러니 이별은 옳다고 말합니다. 모든 이별은 옳다. 그런가요?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후회보다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쓰던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그건 그냥 내가 그 시기를 잘 건너가기 위해 최면을 걸듯 되뇌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한 번도 그 헤어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조금 아프다 말겠지 하는 바람이 전부였는데, 시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별이 옳다는 게 이해가 되려고 해요. 그렇게 이별하면서 하나의 연애가 완성되어 간다고 하는 말이, 참 괜찮게 들리더라고요. 이별이 슬프지만은 않은 게 되어버리는 일, 이거 좀 괜찮은 걸요?

 

육아에 지친 아기 엄마의 사연에 황인숙 시인의 「걱정 많은 날」을 처방하면서, 어느 날 옥상에 벌렁 누워 낮잠에 빠지는 상상을 건넵니다. 지금 자기 삶이 멈춰있는 듯하고, 자기만의 시간이나 성취감을 잃은 채로 살아가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당신은 힘찬 도전자라고 응원합니다. 엄마일 때의 나, 부모가 된다는 위대한 일을 지금 당신이 하는 거라고요. 가장 희소식은 뭔지 아세요?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서 먼 훗날 언젠가 '중2'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ㅋㅋ 그러니 지금의 육아가 너무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곧 헬 게이트가 열릴 테니까요. 이러면 조금 위로가 될까요? ^^ 미안해요. 웃어서. 그런데 곧 닥쳐올 중2병의 전쟁터에 투입될 부모를 생각하면 육아에 힘들어하는 지금 모습이 워밍업 같아서요. 부모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기쁜 순간도 같이 찾아오는 거니까. 지금 어떤 도전 하나를 통과하는 거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누군가는 시도할 수 없는 도전을 당신은 지금 해내는 중입니다.

 

갑자기 아들을 잃은, 당신에게는 오빠가 사라진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가요? 어느 날 아들을 잃은 엄마의 슬픔에 딸이 펜을 들었습니다. 오빠를 잃은 순간에 멈춰있는 엄마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그 슬픔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엄마의 슬픔을 날아가게 할 방법이 무얼까 시인도 같이 고민합니다. 엄마와 오빠가 함께했던 이곳의 추억이 흘러가듯, 오빠가 지금 있는 그곳의 시간도 새롭게 흘러가고 있을 거라고. 나도 나를, 엄마도 엄마를 생각하면서 이곳의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엄마'라는 단어가 다가오는 많은 의미를 또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그런 존재였겠지요. 그러면서 엄마의 안위를 걱정하는 딸의 마음도 읽습니다. '위로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 나서는 거'라는 어느 시인의 말을 가져와서 위로의 의미를 다시 씁니다. 엄마의 안위를 걱정하는 당신은 위로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사람, 당신이 그렇게 찾아 나선 위로 때문에 엄마의 안위를 챙기게 되는 거라고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 닿았던 말입니다. 위로를 찾아 나선다... 왜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앞에 두고 위로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걸까요? 그 위로가 저절로 찾아오는 게 가능한 걸까요? 시인에게 사연을 보낸 이들은 스스로 위로를 찾아 나선 이들이었습니다. 주저하면서도 말을 시작하면서, 그 위로를 시인에게 찾으려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순간을 건너가는 방법 참 많이 있겠지만, 시인과 주고받은 사연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대한민국에 슬픔의 사연을 가진 많은 이의 목소리가 이곳에 모여 기운을 냅니다. 취업 준비생의 불안함, 육아 초보 엄마의 고충, 첫사랑과의 이별, 짝사랑을 첫사랑으로 시작한 소년, 가까운 이의 죽음. 우리가 살아가면서 충분히 겪는, 보편적인 상황들이잖아요. 너도 겪고 나도 겪는, 그래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요.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찾아오는 슬픔도 다 비슷해서, 같이 찾아보고 싶은 위로의 순간들이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계절이 흐르는 동안 시인에게 도착한 사연들에서 추려 올라온 이야기들에 많이 공감했어요. 특히 그때그때 어울리는 시는 어떻게 찾아냈는지 궁금하면서도, 이런 시가 이미 세상에 나왔다는 게 그 공감과 위로에 더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미 이 순간을 겪어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싶은 느낌이요. 나도 잘 건너갈 수 있겠구나 싶은 힘이 생기는 거 말이에요. 다양한 시인과 시를 만나는 기쁨과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함에 위안이 됩니다. 우리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 싶은 안도가 생기는 것 같아요. 맞죠? 잘 살아가고 있는 거?

 

살다보면 긴 휴가보다 짧은 휴식이 더 절실해질 때가 있습니다. 위로란 휴가보다는 휴식 같은 거지요. 수요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허허로이 걷거나 혼자서 미술관에 가고, 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보고 나와 마주치는 저녁 일몰은 다른 수요일 퇴근길의 그것과는 어딘가 달라도 다릅니다. 살아 있지요. 하루를 잘 놓아주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잠시 숨 돌릴, 위안의 시간이 필요하진 않나요?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한 숨을요. 잠시, 숨을 쉬세요. 마치 숨을 멀리에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20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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