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의 일기
심윤서 지음 / 가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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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싫어하는 말들 중의 하나가 '미치겠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자주 쓰는 말들 중의 하나가 '미치겠다'이다. <난다의 일기>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나서도 연신 뱉어내는 말이 '미치겠다'였다. 그래, 이 책은 정말 나를 '미치겠다'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다. 건PD가 진솔에게 고백하던 그 장면이 뜬금없이 생각난다. "미치겠어, 그럴 땐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건PD의 그 '미치겠어' 이후로 이런 미친 감정은 다시 못만날 줄 알았는데...

이 책과의 인연이 이리 되려고 그렇게 애를 태웠나 싶다. 출간되었을 그즈음에, 새책으로 구입하기를 세번 정도, 자꾸 파본이 와서 반품하기를 세번 정도... 나랑 인연이 아닌 책이구나 싶어 리스트에 반년 동안 담겨 있던 녀석이 다시 한번 새책으로의 도전으로 나에게 왔다. 그리고 나를 미치게 만든다. 단 한번의 생에서 이런 치열함으로 살아갈 순간이 몇번이 될까 싶어서.

스물 세살의 윤난다. 세상에 안계신 부모님, 부모가 남기고간 빚덩어리와 어린 두 동생. 알음알음으로 그녀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남자의 아이를 낳아주기로 하고 그 집에 들어간다. 빅토리 여사(여사님 이름이 이기자씨 ^^)의 아들 현무의 아이를 낳아주는 조건으로 빚을 청산해주고, 두 동생들의 생활을 돌봐주고... 조건은 그것뿐이다. 서로의 감정이 얽히지 않게 인공수정으로 그의 아이만 낳아주고 바이바이 하면 된다. 쿨하게... 하지만 우리의 난다, 그냥 아이를 낳아주는게 아니고 그에게 남겨져 있다는 10개월의 시간동안 현무 곁에 함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추가한다.
의도하지 않게 시작된 세 사람의 동거, 빅토리 여사, 현무, 난다... 이들 세 사람의 10개월이 어떻게 흘러갈지...

'치사빤쓰, 유치뽕짝'이다 싶었다.
'뭐야, 이런 신파극을 보려고 나에게 세번의 반품을 하는 중노동을 시켰던 것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선입견으로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나는 또 한번 세상에서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삶 속에서 같이 녹아내려있는 이런 사랑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새롭게 시작된 생명에서 안도를 느끼게 해주고, 한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게 만드는...

빅토리여사의 욕심으로, 곧 죽을 아들을 대신할 하나의 손주를 보고 싶은 욕심에 불러들인 난다가 그런 역할로 자신의 삶까지 휘저어놓을 줄은 몰랐겠지. 더이상의 목숨을 포기한 당신의 아들에게 또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을 만들어줄 아이가 될 줄 몰랐겠지. 불쌍하다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이었는데, 차마 그렇게 이어질 운명인 줄도 몰랐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자꾸만 공기처럼 스며드는 난다의 향기에 익숙해져가는 현무. 사랑 같은게 아니고, 그저 익숙해져가는 일상 중의 하나라고, 곧 자신의 임무만 완수하면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시작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는 그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조금씩 조금씩 한 손을 내밀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씩 드러내놓게 되고, 서로의 향기가 스며들게 되면서... 따뜻한 온실의 포근함이 좋아서 온실을 만드는 남자 현무와 그런 온실의 포근함을 알아주는 그녀 난다와 함께 만들어갈 10개월의 시간... 하루만 더, 일년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라고 자꾸 바라게 되고 욕심나게 만드는 감정을 뭐라고 불러줘야 할까... 

어느 책에서인지 누군가의 말에서인지 기억이 희미한데, 함께 죽는 것만큼의 인연도 없을 것이고 축복도 없을 것이라고... 세상에 태어나 인연을 만나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다가도, '영원히'라는 말을 쓸 수 없는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어난 시간은 달라도, 서로가 만나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죽는 것만큼의 운명도 없을 것이라고...

각자의 아픔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서로에게 안녕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는 것 같다. 먼저 가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또 그 사람을 보내고 남겨져야 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대로의 입장이 있고 역할이 있다. 각자의 슬픔 역시 비슷하게지만 각자의 몫으로 또 감당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먼저 이 세상과 안녕한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한다. 그저, 남겨진 사람의 슬픔만을 가득 채운 가슴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이 겁난다는 것 뿐...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누군가를 두고 먼저 가는 발걸음 역시 무거울 것이라는 것을... 현무가 슬퍼할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많은 감정들이 더이상의 어떤 표현도 쓸 수 없게 만든다. 그저 '미치겠다' 하는 말만 반복하게 만들어서. 난다와 남겨진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애착이 시간이 흐를수록, 남겨진 시간이 부족할수록 더 애가 탈테니까... 전지현을 닮은 머릿결, 김태희를 닮은 눈, 송혜교를 닮은 코, 안젤리나 졸리를 닮았다는 그 입술을 끝까지 못봤다면 혹시 괜찮았을까?. 조금은 덜 슬펐을까?.

어리석은 질문이고, 바보 같은 가정이네... 'If...'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헤어져야 할 사람은 또 그렇게 헤어진다.
가야할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또 남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사람은 묵묵히 그 시간을 살아내고, 그리워할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아프면 아픈대로, 추억으로 꺼내볼 수 있으면 추억하는대로 그렇게 또 살아질테니까...


먹먹한 가슴이 진정이 잘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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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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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추리력,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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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보름달문고 23
김려령 지음, 노석미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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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여러가지 형태로 만들어진 가족이 있는 것 같다.
직접 낳은 아이를 키우는, 말 그대로 피로 이어진 가족이 있는가 하면, 재혼으로 연결되어 하나가 된 가족, 입양된 아이와 함께 또 하나의 삶을 사는 가족...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은 가족이라 불리운다. '가족'...... 가족..... 

이렇게 만들어진 가족도 있다.
공개입양된 아이 하늘이. 공공연하게 방송이나 입양에 관계된 이슈에서 늘 등장한다. 사진도 찍히고, 인터뷰도 하고, "입양된 건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일이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행복해요." 라고 웃는다. 하늘이의 웃음이, 마음이, 진심일까?. 하늘이는 태어나자마자 입양기관에 맡겨졌고, 그런 하늘이를 지금의 부모님이 입양을 결정했다. 그리고 태어난지 백일만에 하늘이는 수술을 하게 된다. 지금 하늘이가 해마라 부르는 가슴의 수술자국은 그때 생긴 것이다. 심장이 아파서 생긴 자국... 



근데 심장이 아파서 생긴 해마 모양의 수술자국이 이제는 하늘이의 마음이 아파서 생긴 것이 되어버렸다. 넓고 좋은 집, 좋으신 부모님, 늘 투박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 가족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구성원이나 환경은 없을 듯 한데, 사춘기 하늘이는 마음이 왜 자꾸 아파오는 걸까...

하늘이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것들, 생각하는 것들, 마음이 자꾸 불편해지는 것들... 그리고 하늘이가 엄마와의 거리가 자꾸 생기고 스스로를 잘 다듬어진 인형처럼 행동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견디기 힘든 것, 남들의 눈이 두려워 늘 웃고만 있어야 하는 괴로운 마음까지...

이 책에서 등장하는 문제들이 쉽게는 입양가족이라는 것이기에 불거져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입양된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 입양한 아이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 같은 것들이 그저 '입양'이란 이류로 나타나는 문제들이라고... 


정말 그럴까?
하늘이네 가족은 입양이란 구체적인 도구(?)로 이루어진 가족집단이지만, 이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비단 그 이유만은 아닌 듯 하다. 일반적인 어느 가족 누구네집에서나 한번쯤을 나타나는 일들... '니가 내 맘을 어떻게 알아?' 라고 하는 말이 튀어나올만한 상황... 가족 각자의 입장에서 뱉어내는 말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어가고 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런 문제가 특히나 입양으로 만들어진 가족이기에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또한 배려해야할 문제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는 하늘이의 모습은 하늘이네 갖고 네명이 모두 흘리고 있는 눈물이다.
입양아라는 공개적인 사실이 이젠 두렵고 거추장 스러운 하늘이의 눈물, 너무나 사랑해서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되는 엄마의 눈물, 이렇게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가족이기에 포근한 아빠의 눈물, 아들의 불임으로 받아들인 입양이지만 그놈의 정이 무서워 흘리는 할머니의 눈물... 

가족이라 이름 붙여져 있지만 이들의 시선은 다 다르다.
솔직한 말 한마디와 서로에 대한 조금의 배려, 남들에게 보여지는 시선이 아닌 그들만의 시선이 필요한 것을 조금은 늦게 알게 된 가족이다 하늘이네 가족은... 



하늘이가 취미로 하는 종이로 만든 집.
단지 취미가 아닌 하늘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집이다. 누구라도 편히 쉴 수 있는 집, 그런 집은 누구나가 다 원하는 집이다. 어떻게 만들어진 가족이든지...

어떤 식으로는 가족이란 이름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끔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가족' 그것을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것은 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행복과 행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양이라는 주제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슴에 새기게 하는 글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하늘이네 가족에게 일어난 갈등이 너무 가볍지만은 않았기에 생각할 고민거리를 주고, 그들이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또 한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어느날 뚝딱 만들어져서 그걸로 끝인 가족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고 유지해 나가기 위한 각자의 노력이 필요한 가족이라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둘러싼 가족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것 같다.  

하늘이의 가슴 속에 사는 해마...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많이 속상하게도 하고, 어떤 일 앞에서 또 함께 아파하기도 하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함께 하고 싶은... 그런 해마들이 가슴 속에서 살고 있다. 하늘이의 가슴 속에도, 우리들의 가슴 속에도... 

어린이문학에서 이런 주제를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풀어낸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을 일 같은데, 작가는 그걸 해낸 것 같다. 차분하게 읽어가면서 머리와 가슴에 새기면서, 우리는 지금 어떤 가족의 형태로 서로에게 해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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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 Navie 211
진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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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어떠한 시선으로 봐도 금지된 사랑으로 보이는 스승과 제자의 사랑...
그 금지된 사랑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들을 말려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사랑이니 응원을 해주어야 할까... 

그녀, 서남우. 25세. 영문과 복학생. 지난 사랑의 시끄러운 흔적으로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그녀가, 그녀를 아껴주는 한 남자를 다시 마음에 품으려 한다. 난치병이 있고, 또 한번의 흉문에 휩쓸릴지 모르겠어서 망설이던 그녀의 손을 그가 꽉 잡아준다.
그, 서이현. 35세. 영문과 교수. 결혼이란 것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던 그에게 좀더 유치해지고, 좀더 솔직해지고, 좀더 인간다워 보이게끔 만드는 그녀 남우가 나타난다. 무엇이 최선인지를 늘 고민하게 만드는 그녀가 그의 인생에 빛이 되는 순간... 

스승...
가끔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 이 나이를 먹고보니, '흥' 하고 콧방귀 뀌게 만드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진짜 존경의 눈으로 보게 만드는 선생님도 있다. 남우의 눈으로 본 이현이 그랬다. 영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충실하게 강의를 하는 교수로, 그리고 떨림을 가져다주는 남자로...
제자...
가르쳐야하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흔들게도 만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현의 눈으로 본 남우를 통해서 알아가게 된다. 수업에 충실하고 작품에 대해 진지해지는 학생으로, 감정을 흔드는 여자로... 

남우와 이현을 보면, 얼핏 불륜이나 금지된 사랑을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열살이란 나이 차이,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교수라는 직업의 세계,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불문율 같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향하는 감정은 누구라도 막을 수가 없었겠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로,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남자와 여자의 마음으로...
둘 사이를 힘들게 했던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위치도, 남우의 과거나 환경도 오직 하나의 믿음으로만 그 결과를 보여줬다.  

이야기니까...
이야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가볍게 읽을만한 이야기지만, 이 나이만큼 살다보니(더 어른이 들으시면 욕하겠지만) 세상에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소설 같은,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더라. 한 사람과 일곱번 만나고 일곱번 헤어지고, 결국 각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친구도 봤고, 학교다닐때 7년이나 사귀었다는 어느 선배 커플의 결혼식장에 갔더니 신부가 바뀌어 있더라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리고 더 남우와 이현 같은 이야기...
내가 입학했을때 담당교수님은 오십대 중반을 넘기신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얼마전 이혼하고 곧바로 재혼을 하셨는데, 신부가 바로 제자였으며 이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라고 했다. 이혼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니면 그냥 타이밍이 절묘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그 스캔들로 시끄러웠으니까... 그런데 곧 잠잠해지더라. 굉장히 실력있고 유명한 교수님이어서 그런 사생활 쯤은 바로 사그라들 정도로... 그땐 내가 어린 나이여서 놀라운 눈으로 그분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 교수님 부부가 불륜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건 두 사람의 사랑일 뿐이니까... 이제는 그걸 알겠으니까...
아마 지금쯤 그런 소식을 듣는다면, 나는 정말 쿨하게 시선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내 일이 아니기에 무관심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기에 그럴 수도 있을까 싶다만. 나이를 먹는건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은 더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이 책을 절반을 조금 넘게 읽었을 때, 나는 책을 덮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 , 솔직히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울었다고는 말 못한다. 소설이나 영화를 봐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고, 이야기는 이야기로 그 몰입도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나 혼자 감정이 북받쳐서 울었던 것이 개운하다. 처음부터 나는 이 이야기와 상관없이 한바탕 울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첫페이지를 열기 전부터... 힘든 일들이 감정을 더 다스리나보다. 다른때 같으면 그냥 계속 넘기면서 풀었을 이야기가 괜히 한숨 쉬며 도중에 멈추게 만들고 이야기와 상관없는 눈물까지 뽑아내는 걸 보면... 

진주라는 작가명으로 추천해준 책들을 한권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이번 신간은, 참...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이런가 싶다. 그래서 추천해주었나 싶기도 하고... 나쁘지 않다. 자칫 엉뚱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가만히 중심 잡아주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그 감성의 끈을 조용히 이어주고, 가끔은 그 마음을 조금은 더 흔들어주기도 하고... 감히 현실에서 이런일은 없을테니 이야기로 끝내라 하고 억지부리지 않은 설정들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지게 한다.

더군다나, 챕터 한장 한장의 제목에 붙여진 영시의 한 구절들, 챕터 한장 한장이 끝날때마다 등장하는 영시들... 이렇게 감성을 흔들어도 되나?. 도대체 '시'라는 것 자체를 접해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더더군다나 영시라니... 처음 들어본 것도 있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있는 그 시들이 이 책을 다 덮고나니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인터넷검색창을 열고 그 싯구절을 치고 있는걸 보면...^^
이야기 하나하나에 닿을 듯한 그 영시들의 구절들이, 참 이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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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 숲의 겨울
오월 지음 / 청어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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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같은 온도만큼으로 사랑하는 거, 그렇게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 

사랑이라 이름 붙여 놓고, 우리는 가끔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이해라는 요구를 한다. 사랑하니까, 한번만, 이해해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다시 또 그러면, 다시 또 한번만, 그리고 영원히 안녕을 고하는 사람이 마치 자신을 버린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가끔은 그런 착각 속에서 사랑이란 이름에 도금을 한다, 우리는... 

그 남자 강선우. 34세. 사진작가.
그의 애인 난형은 술을 좋아한다. 고주망태가 되어도 다음날은 안그럴께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그리고 특유의 아양으로 선우를 한번 더 참게 한다. 결국 선우는 그 끝에서 난형에게 이별을 고하고, 또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한다. 사랑이 뭐길래, 인간이 뭐길래...
그래도 이 남자, 적당한 온도로, 적당한 마음으로 다시 사랑을 하고 싶어한다.

그 여자 나세윤. 24세. 학생.
스무살 첫사랑의 정교수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유학을 떠난다. 서로가 사랑이었는데 정교수는 사랑이 아니란다. 세윤 혼자 자기를 홀린거란다. 세윤에게 사랑이라는 것의 나쁜 것만 남겨두고 떠난 사람인데, 더이상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이 여자, 다시 나타난 떨림의 대상에게 더없이 솔직한 사랑을 시작한다. 

딱 그 거리만큼 눈으로 보고 자로 잴 수 있는 어떤 수치처럼, 사람의 마음도 계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랬겠지. 이 정도 나이를 먹고 보면, 사실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생각인지 더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잘 알게 된다. 그저 속상한 마음에 그렇게라도 생각을 하고 싶었나 보다. 사람이라는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만의 마음을 허용할 것인지 생각하고 정하고 그만큼만 보여주고 넘겨주고... 다시 그 끝이 해피엔딩이 아닌 이별이었을 경우의 수까지 다 계산을 마친 다음, 거두어들일 수 있을 것까지 계산을 끝낼 수 있으면 세상에 마냥 슬픈 이별은 없을 것이라고...

이 두 사람에게 과거의 사랑들은 어땠을까. 그 사랑이 끝나고나서 쿨하게 거두어들일 수 있을만큼의 마음이 또 남아있었을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싶었으나, 돌아온 것은 실망을 안겨준 배신감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다시 시작한 사랑은 과거의 실패한 사랑에 대한 절망감이나 의심들이 아니었다. 지나간 사랑의 실패로 다시 한번 더 배운 것들을 이번 사랑에 적용시켰던 것. 그래서 그들의 노력은 이뻤고, 다시 또 이별이 다가온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절망하는 걸로 그 마음을 끝낼 것 같지는 않다. 서로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남겨두었으니까...

그리고, 그 믿음을 둘 사이의 감정을 쌓아가는 기본이 되었기에 두 사람은 더욱 지금 사랑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다. 각자의 인생에 대한 계획과 진행을 하면서도,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생각을 또 하게 되는 절차를 거쳐, 또 한번의 믿음이라는 정답을 내놓았다.
이야기니까 그런거 아니냐, 현실에서 그러는거 쉽지 않다, 누군가 한명의 포기를 강요하게 되는 건 인간이기에 다 그런 것이다...라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런 우리의 매마른 감정들에 조금은 단비 같은 물을 뿌려주지 않았을까, 새싹이 돋아나도록... 

잔잔한 분위기에 읽어가는 재미보다 느껴가는 재미가 더 컸다. 두 주인공의 평범한 성격과 설정들, 그리고 그 감정선의 연장... 누구나 한번은 겪어봤을지 모를 일들에 대한 생각에 그들의 감정을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여운까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꼭 사랑이 아닌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무엇보다 믿음과 솔직함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살아가는 그 맛을 더 느끼게 되는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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