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파트의 다른 집을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넓은 편이 아니다 보니, 집 안 곳곳에 수납 공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앞뒤로 발코니가 있는데, 공간을 아주 꽉꽉 채워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수납장을 비치해 두고 이런 저런 것을 다 넣어두어야 했겠지.

안 할 수가 없다. 신축 아파트처럼 팬트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라,

머리 써 가며 자기만의 수납법을 발휘할 수밖에.


나도 처음에는 앞쪽 발코니에 수납을 해볼까 하다가,

이것 저것 하나씩 쌓아두다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답답할 것만 같더라.

수납 공간이 아무리 부족해도 마음의 안정을 포기할 수 없어서, 

절대로 앞쪽 발코니에는 빨래 건조대 외에는 아무 것도 두지 않았다.

아직은...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다가, 천둥과 번개로 효과음도 넣어주다가, 다시 약한 비가 내리다가, 난리다.

은행 일을 며칠 동안 미뤄두기만 하다가,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나가려는데,

내리는 비가 괜히 아까워(?) 보이는 거다.

창을 열었더니 바로 발코니로 들어오는 빗물.





앞쪽 발코니에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던 알로에 화분을 열어둔 창 쪽으로 옮겨 두었더니, 

비를 맞고 더 푸릇해진 것 같다.

뭔가 키우는 걸 잘 못 해서 화분도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알로에는 관상용이 아니라 상처 치료용으로, 엄마 집에서 하나 가져다 두었다.

상처와 염증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한 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존중 받는 화분 하나.

수돗물 보다는 빗물이 더 영양이 있다고 들었는데, 장마 기간에 빗물 포식하기를.




...읽는 중...

#탕비실 #샤워 #엄마만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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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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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먹을까?”

점심과 저녁 사이에 밥을 먹고 나니 정작 저녁을 먹어야 하는 때가 되자 애매했다. 밥을 먹자니 차리기가 귀찮고, 식사를 배달시키자니 굳이 배달로 밥을 또 먹어야 하나 싶은 마음. 만만한(?) 게 치킨인 걸까. 선뜻 입 밖으로 나오는 메뉴가 치킨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왔음에도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먹어왔던 닭이, 치킨으로 생명을 다하기까지의 시간을 이 책에서 다시 듣고 보니, 치킨이 다르게 보인다. 치킨은 닭튀김이라기보다 덩치만 큰 병아리 튀김입니다. 품종개량이 되지 않은 병아리는 성체가 되기까지 5개월이 걸립니다. 생명 공학 기술의 발전은 성장에 필요한 5개월을 단 5주로 줄였습니다. 한국에서만 매월 9,000만 명()이 넘는 닭, 아니 병아리가 생후 2개월에 접어들면 고기로 죽습니다. ‘치느님으로 칭송받고 11닭이 기본인 양 불호 없는 식재료로 전시됩니다.”(28페이지)


충분히 들어왔던 많은 사람의 비건한 삶이 나와 닿지 않아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미식을 즐기는 비건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막상 만나본 이 책은 간단하면서도 비건한 미식이 가능한 초간단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살게 되는 저자의 평범한 일상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했다. 어느 장르로 구분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져들면서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가진 선입견을 많이 무너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살이 막 찌기 시작했고, 말로는 다이어트를 외치지만 운동도 식사조절도 하기 싫은 욕심은 다이어트와 점점 멀어졌다. 충분히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귀찮다는 거였다. 저렇게 만들어 먹으려면 이런저런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너무 번거롭게만 보였다. 그래서 건강하게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저자가 행하는 비건한 식탁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간단하게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비건을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처음에 소개했던 치킨으로 나오는 닭의 수명부터, 동물성 재료로 만들어지는 많은 음식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다. 꼭 이렇게만 먹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입으로 넣어서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에게 부엌은 요리하는 공간이자, 일상의 빈자리를 채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혼하고 이사하고, 새로운 공간에 새 생활을 열면서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의 하나가 요리였고, 비건한 식탁이었다. 그런 저자에게도 주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는 음식이 있었다. 특히 2장에서 반성하면서 읽게 되었던 부분이 있는데,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치킨집은 불이 나는데, 치맥 대신 바삭하게 익힌 김치전과 맥주를 먹었다는 장면에서 많이 생각했다. 그러네,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 왜 치킨이 필수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꼭 그날 치킨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국가대표를 응원하는데 치킨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테두리가 바삭하게 익어서 마치 튀김처럼 찢어지는 김치전을 갑자기 먹고 싶다.


생후 6개월의 돼지가, 겨우 계절 두 개를 넘기고 도살장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동네의 어느 고깃집에서는 그 6개월 동안 키워진 돼지가 가장 맛있고, 그 맛있는 돼지가 준비된 가게라는 문구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서도 고개만 끄덕였다. 맛있는 돼지갈비를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하나로 그 집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가 소개하는 동물성 식재료의 운명을 하나씩 듣고 있다 보면, 정말 이렇게 먹는 습관이 틀린 게 아닌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비건으로 살아갈 자신은 없다. 가끔은 치킨도 먹으면서 살고 싶은데, 감자보다 짧게 살다가 치킨이 된다는 닭, 계절 두 개를 견디고 식탁에 오른다는 돼지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경험과 이 책에 담긴 레시피를 보고 다다른 지점은, 완벽한 비건보다 비건의 삶을 인정하는 것과 비건 지향인으로 지내보는 것도 좋겠다는 소심한 다짐으로 무거운 고민을 줄여보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 건, 저자의 레시피가 하나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번거롭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쉽게 발견하는 재료로,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그 음식의 맛을 내면서 먹을 방법이 있었던 거다. 남은 채소들로 소스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쳤다. 괜히 남은 채소들 상해가는 거 보다가 버리기도 여러 번인데, 쓰고 남은 채소를 굳이 남겨두지 말고 이렇게 소스로 만들어서 다른 음식에 함께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음식으로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살이 찌고, 몸은 무거워지고, 그래서인지 피곤함이 더 찾아오고 병원에 갈 일도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만족할 만한 비건 생활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이다.


#한겨레 #비건한미식가 #초식마녀 #하니포터8#하니포터 #한겨레출판

#책추천 #책리뷰 #문학 #에세이 #비건레시피 #건강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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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알라딘 25주년이라네.

해마다 반복되는 추임새, 벌써~~~

하긴 상반기에도 '벌써 3월이네' 그랬고, 지금도 '벌써 7월이네' 그러고 있다.

에휴...


갈수록 책을 안 읽긴 하나 보다. 알라딘 기록 보니 언젠가부터 그래프가 급 하향세.

주식 샀는데 이런 그래프라면 엄청 좌절했겠네.



다른 알라디너분들에 비하면 천백만원의 책값은 뭐 책값도 아니겠지만,

그리고 수험서나 교재는 포함 안 되는 집계라고 하는데, 그래도 많이 사긴 했다. 

중고로 많이 팔기도 했네. 

틈틈이 금을 사두었으면 지금 더 기분이 좋았겠지만... @@


#25주년당신의기록 #당신의기록영수증



어쨌든, 항상 읽고 싶고, 항상 사고 싶은 게 책이려니...

완독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이 책들 펼쳐 봄.


#어떤동사의실종 #한승태 #mymy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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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블루 (Brilliant Blue)
함지성 지음 / 잔(도서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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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남은 여행의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하듯 그곳에 남겨두고 오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굳이 기대하지 않아도 좋을, 여행이 끝나면 현재의 생활로 가져와서 감정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계산(?)은 더 짙어졌고, 오늘을 살아내느라 바쁜 인생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잠깐, 아주 잠깐 한 번쯤은 그냥 여행 자체로 생각하면서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여행지에서의 만남을 꿈꾸지도 않지만, 혹시 여행지에서의 만남이 있더라도 거기 놔두고 와야만 하는 결론을 미리 내지 않아도 되는 일 아니었느냐고 말이다.


수키는 남프랑스에서 결혼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이 친구들은 몇 년 전 보라카이에서 만난 친구들이고, 이들의 초대로 남프랑스에서 지내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 리버를 만났다. 파란 눈의 중심에 노란빛이 섞인 그와의 시간은 사랑이 되었고, 그와 함께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사랑이 영원할 거로 믿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던 중 선뜻 선택하지 못할 문제에 이르렀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고...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니지? 수키가 그와 연인이기에 앞서 그는 결혼 당사자의 친구였으니, 당연히 초대받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의외의 망설임을 겪어야 했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싶은데, 그와 만남이 어색할까 잠깐 주춤거렸다. 단순히 그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게 어색해서만은 아니다. 그와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순간순간 그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은 튀어나왔다. 어느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 음악 바 앞에서, 어떤 음식을 두고도. 그녀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줄곧 그녀의 온전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에도 리버의 잔상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친구의 결혼식에 왔으니, 즐거우면서도 불안한 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두근거리면서, 떨리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다시 봐도 어떻게 할 거라는 생각도 계획도 없는데, 보고도 싶고 안 보고도 싶고. 모든 상황과 순간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 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혼자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을 때면 항상 데리러 와 내 것과 똑같은 차를 시키던 그 사람이. 잔이 거의 비워질 때 즈음에 맞춰 책을 덮으면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내 등을 감싸던 그 사람이.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기 전이면 꼭 허드슨 강 쪽 부두까지 손을 잡고 걷고 싶어 하던 그 사림이. 이제는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사람 따위, 전혀 가볍지 않지만 나는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43페이지)


벽에 박힌 못을 뽑아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이 자리에 없는 건 한 사람뿐이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지 못해서 헤어졌지만, 그렇게 헤어졌다고 슬프거나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인간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 아픔을 그대로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만큼 보고 싶고 힘든데 마치 아닌 것처럼,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아닌 척하는 게 아니라, 수키라는 인물을 통해 너무 솔직하게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일상에 집중하고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지냈지만, 어느 순간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흔적을 가감 없이 들려줬다. 그런 마음 모른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 같아서, 나도 모르게 수키의 감정을 담은 문장을 따라가고 있었다. 오래 전의 어떤 감정, 어려서 그랬다고 변명하기에는 후회가 가득했던 순간들, 조금 양보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대했던 날들을 지금도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니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경험했을 그 순간을 소설로 다시 만나니. 웃음도 나지만 아련하기도 하다. 사실 이런 감정을 느끼고 살기에는 오늘이 너무 바쁘지 않은가. 전쟁통에서도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살아가는 일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우선에 두지 못하게 하는, 어떤 눈치를 챙길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스물 전후의 시간을 보내는 수키의 일상에서 돌아가지 못할 시간의 설렘에 두근거렸다. 뭐든 열심히 하면서 실수도 하니까, 그래도 된다는 너그러움을 먼저 보이게 된다. 한 사람의 일기장을 보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데, 그 중심에 로맨스가 있다. 그래서? 친구의 결혼식에 갔어? 리버가 거기에 왔어, 안 왔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를 다시 만났는지, 만났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지나간 시간을 묻어두고 각자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녀의 오랜 그리움에 대한 답을 얻었는지. 뉴욕, 보라카이, 남프랑스 등 이국적인 배경이 이 소설을 더 특별한 느낌으로 전달하면서, 괜히 수다쟁이가 되면서 읽게 되는, 오랜만의 가슴 떨림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 되게 한다.


한 가지 궁금증만 보고 이 소설을 대했다. 처음 소개 글에서 언급된 헤어진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하는 결말만 파헤치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서술되는 한 사람의 일상과 그 나이에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날들, 이국적인 풍경을 들려주는 재미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도착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색다른 장소를 문장으로 여행하는 기분, 잊고 지냈던 두근거림을 마주하며 잠깐 설렜던 즐거움이 가득했던 소설이다.


#브릴리언트블루 #함지성 #도서출판잔 #소설 #로맨스 #한국소설

##책추천 #어떤그리움 #뉴욕 #보라카이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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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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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알려주고, 친절하게 살인의 이유까지 말해준다. 그러니 더 읽을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소설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더 큰 궁금증이 생겼으니까. 내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게 내 일상을 불편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한 가족을 죽일 이유가 된다고 금방 떠올릴 수 있을까? 문맹이 왜 살인의 이유가 되는지, 그 궁금증이 이 소설을 더 펼쳐보게 한다.


유니스가 글을 배우기 시작해야 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성장 환경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플 때 그녀가 간병했다. 제법 잘 해냈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자 더는 견디지 못했던 그녀는 아버지를 질식사로 죽게 했다. 들키지 않았다. 그저 죽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생존법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한다. 누군가의 약점을 잡아내어 돈을 갈취하면서 협박도 일삼았다. 그녀에게 만족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그냥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커버데일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 되었다.


커버데일 일가가 돈이나 쓰면서 즐기는,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면 아직 살아있었을까 싶기도 하다만. 학력이 높고 오페라도 즐기면서, 집안 곳곳에 책을 쌓아두고 즐기는 사람들이라서 유니스의 눈에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서재에는 책이 가득했고, 딸은 학교 과제를 하느라 책을 읽어야 했고, 아들은 주방의 식탁에서도 책을 들고 와서 읽을 정도였다. 조지의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가 쌓여있고, 재클린도 잡지와 책을 읽었다. 유니스는 이 많은 책과 활자들이, 이 가족이 자기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싸움도 아니고, 쌓여 있는 책이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글자를 모르는 것을 시작으로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하는, 문맹이 낳는 또 다른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동정심을 앗아갔고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심리학자들이 애정이라고 부르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그녀의 기질 안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74페이지)


유니스는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이후 처음으로 조지의 시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다음에는 응접실로 다시 들어가 재클린, 멜린다, 자일즈의 시체 역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연민도 회한도 일지 않았다. 사랑, 기쁨, 젊음, 평화, 안식, 생명, 먼지, , 낭비, 가난, 폐허, 절망, 광기,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을 제거하고 생명을 파괴하고 희망을 부수며 지성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기쁨을 종식시켰다. 유니스는 매장하는 사람들조차 신음을 흘릴 정도로 커버데일 가족의 시체를 썩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훌륭한 양탄자가 엉망이 되어 안타까웠고, 자신에게는 피가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257페이지)


단순히 글자를 모르는 건, 앞서 말했듯이 한 사람의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로 여겼다. 어디에 가서 내 정보를 써넣거나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지 못해서 나중에 찾아보지 못하게 하는 그 정도의 불편함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만 생각한다면, 유니스가 보여준 행동을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글자를 모르니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도 어려웠다. 타인의 감정을 읽거나 소통할 수 없으니, 자신의 필요로 저지른 일의 잘못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 감정의 교류나 도덕 같은, 같이 살아가는 방식도 알지 못해서 그녀만의 생존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거다. 그렇다고 그녀의 살인이 범죄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첫 문장에서 알려준 유니스의 살인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문맹은 일종의 시각 장애(47페이지)라는 말처럼, 그녀의 문맹을 장애로만 받아들였다면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글자를 모른다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다방면의 지원으로 이 장애를 치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유니스가 보여준 행동으로 생각하자면, 문맹은 시각 장애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듯하다. 문맹을 부끄러워하면서, 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지경에 이른 유니스를 보면 말이다. 글자를 모른 채로 사는 일상을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습관처럼 읽고 끄적이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읽지도 않을 책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외출하는 습관을 보면, 어디서든 읽는 일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의 소개에서 본 김상욱 교수의 말을 곱씹어봤다. 다들 영어로 얘기하는 자리에서, 영어를 모르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움과 분노였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으니, 혹시나 이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것도 영어도 모른다면서 비웃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의심이 가득해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영어를 모르는 내가 느끼는 좌절감, 이 부끄러움을 감당하게 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스쳐 지나간다.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보게 되는 건 살인의 과정이 아니라, 문맹이 단순히 읽고 쓰는 일을 못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쁜 마음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누구나 글을 알고 쓰는 세상이라고 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유니스와 대조적으로 커버데일 일가는 읽는 일에 집중한다. ‘우리 집에는 이렇게 책도 많고, 우리는 종종 오페라도 즐기면서, 주변 사람을 불러서 파티도 한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서 누리는 삶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태도는, 그들이 나에게 특별히 잘못이 없다고 해도 미움 받을 행동으로 각인된다. 너는 왜 열심히 일하면서 집에서만 지내? 새로운 동네에 왔으니까 소개 좀 해줄게, 이런 것도 있으니까 좀 즐기면서 살아, 뭐 이런 우월감을 유니스에게 보이기도 했다. 주인님, 마님 호칭을 좋아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기긴 하다. 유니스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타인과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즐기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나? 휴가 때 꼭 여행을 가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집콕으로 쉬고 싶다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내가 아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권하는 것도 실례가 된다는 것을, 커버데일 사람들은 몰랐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유니스가 일상을 사는 방식을 이해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들처럼 살아가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두 사람은 흰색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다. 조지는 커버데일 통조림 회사로, 자일즈는 마그누스 와이든 재단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조지는 자일즈에게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해 보겠노라 다짐했던 터라 바람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건네 보았지만, 자동차에 타고 있는 그들 위로 침묵이 내려앉을 뿐이었다. 자일즈는 소리만 내고는 언제나 그렇듯 책을 펼쳐 들었다. 제발 이번에 만나는 여자가 괜찮은 사람이기를. 재키가 이 넓은 집을 혼자서 감당하려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그녀에게 그런 짐을 지우는 건 부당한 일이야. 어디 단층집 같은 곳으로 이사라도 가야 할 형편인데…….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러니 제발 E. 파치먼이라는 여자가 괜찮은 사람이기를. (13~14페이지)


단순히 문맹인 한 사람의 살인으로만 보여주지 않은 책이라 더 인상 깊다. 문맹이거나 문맹이 아니거나, 책을 읽고 살거나 안 읽고 살거나, 어느 틈에 파고드는 우월감이나 박탈감을 조심해야 한다. 유니스의 살인을 무조건 혐오하기에도, 커버데일 일가의 죽음에 애도만을 표하기에도 어렵기만 했다. 문맹이 한 사람의 성장과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유니스의 감정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확인하게 하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었다. 커버데일 일가는 유니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당연한 일이 유니스에게는 언급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공포로 다가오는지 알지 못했다. 멜린다는 유니스의 문맹을 알고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선의는 선의로 다가오지 못하고 강요와 공포가 되기도 한다. 유니스에게 멜린다의 제안은 자신의 약점을 파고드는 공격이었다. 글자를 읽고 쓸 줄 안다고, 책 읽는 것을 즐긴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을 잘 읽고 선을 잘 지키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적당히 거리를 지키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는 법은 여전히 어렵다. 문맹으로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인격이 결국에는 한 가족의 몰살하고, 문맹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지른 실례는 파국을 불러왔다.


#활자잔혹극 #루스렌들 #북스피어 #복간할결심 #추리소설

##책추천 #개정판 #문맹 #오지랖조심 #특권의식조심 #문맹의위험 #파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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