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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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의 신작을 종종 만나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초기 출간 작품들에 손을 대고 있다. 누구나 처음이 있는 것처럼, 작가에게도 첫 작품이 있을 텐데, 이제까지 만난 정해연 작가의 작품들은 초기 출간작들과 최근 출간작들 사이에 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 어떤 작품이든 만나다 보면 재미의 정도는 다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재미의 정도를 따지기 보다는 기존에 만나왔던 작품들과 다르게 조금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일상 미스터리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은 정차웅은 봉명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시니컬한 태도로, 삼선슬리퍼 질질 끌면서 다니는데도 거슬리지 않는다. 그 자체가 패션처럼 보일 정도이니, 우중충한 아파트 분위기 안에서 유일하게 빛이 나는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특히 싫어하는 것은 오지랖,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가 어쩌다 보니 아파트의 온갖 사건사고에 그의 기지를 발휘하면서 은근슬쩍 참견하고 있던 거다. 알고 보니 그의 정체는 전직 형사, 그것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탁월한 능력을 뽐내던 형사였다. 무슨 사연으로 형사를 그만두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해결에 큰 역할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봉명아파트는 사람들이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는 임대아파트다. 아파트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데,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CCTV만 있었어도...’ 뭐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 대 달아도 되겠지만, 회사에서 설치해주지 않는 이상 누구도 개인 돈을 들여 이 아파트의 안전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아파트에서 계속 사건이 일어난다. 한밤중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도둑이 들고, 방문교사로 일하며 이 아파트에 사는 여성이 실종되어 시신으로 발견되고, 아파트 입주자가 아닌 사람이 아파트에서 자살하기도 한다. 누가 엘리베이터 안에 오줌을 싸놓는 것도 화가 나는데, 급기에 오줌은 똥으로 변하면서 엘리베이터 오물 사건의 정점을 찍는다. 또 누군가는 집안에 있는 상태로 사망했는데 침입 흔적조차 없으니 사건 해결에 난감해진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아파트 업무보다 더 거슬리고 피해가고 싶은 대상이 있다. 바로 아파트 부녀회장이다. 지나치게 잘 생긴 그의 얼굴을 위 아래로 훑으며 말을 거는 이 아줌마를 보면 불러도 못 들은 척 돌아간다. 그를 두고 수위를 넘나드는 성적인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 이들을 어떻게 하지도 못 하고 죽을 맛이다. 그 와중에 전 직장 동료인 형사 강주영과 마주치면서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하다. 어쩌다가 이 아파트에는 이런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왜 매번 담당 형사는 강주영이며, 관리소장의 기분에 따라 몸을 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그의 촉은 죽지 않아서, 형사 강주영이 담당하는 사건마다 은근슬쩍 실마리를 제공하고, 그의 추리에 신중을 더한다.


아마 강주영은 그가 왜 형사를 그만두었는지 모른 채로 궁금증이 쌓여가던 중에, 이 아파트의 사건들을 기회로 그의 비밀을 듣고 싶었을 거다. 나도 궁금했다. 그는 왜 형사를 그만두었을까. 나름 사연은 있겠지만, 마치 천직처럼 사건 해결을 잘 해 왔던 그가 갑자기 그만두었을 때는 이유가 있겠지 이해하면서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 이 사연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야 풀리긴 하는데, 단순히 한 사람의 비밀 같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는 개운함보다, 마치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한 마디 들을 기분이랄까. 어떤 일 앞에서 마치 내 탓인 것처럼 자책하면서 살아갈 필요도 없고,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니, 잘 추스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마치 우리 의무인 것처럼 말이다.


괜히 형사가 아닌 것 같다. 그가 하는 추리마다 그럴싸한 배경이 있었고, 읽으면서도 당연하게 흔적을 놓치고야 마는 게 나라는 독자라면, 조용하게 사건의 이면을 보면서 해결하는 게 정차웅이었다. 사람마다 가지고 사는 사연들이 어두웠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고 유쾌하게 사건 해결에 다다른다. 특히 엘리베이터 오물 사건은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누가 볼 수도 있는데, 어떻게 아무도 못 본 사이를 틈에 오줌과 똥을 그렇게 싸고 다니는지.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의외의 이유로 똥 사건의 배경을 듣고 나니 진짜 웃음만 나더라는. 교묘한 트릭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아파트라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사연들이었기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러한 일상에 미스터리라는 요소가 더해지니,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내는 오늘이 참 평범하면서도 복잡하게 흘러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 누구나 자기만의 사연, 이유는 있는 거니까.


가볍고 유쾌하게 읽히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읽는 동안, 몇 편 계속 이어지는 드라마를 상상하기도 했다. 주인공은 전직 형사 정차웅, 배경은 그가 정체를 숨기듯 새 인생을 시작한 봉명아파트,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정차웅,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건 해결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숨은 브레인, 뭐 그런 설정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는 재미를 더했다.


#봉명아파트꽃미남수사일지 #정해연 #황금가지 #소설 #추리미스터리

##책추천 #코지미스터리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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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약속을 하고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신호등 위에 쌓인 눈을 맞았다.

얼굴로 녹아내리는 눈 모자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는데,

너무 춥다...


아침 빙판길에 차조심을 얘기하고,

한낮의 녹아버린 눈에 미끄러워 넘어지지 말라고 얘기하고,

저녁이 되면서 다시 얼어붙는 온 세상에 더 추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녹색광선 책이 예뻐서 사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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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25-01-0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광선이 책 예쁘게 만들어요. 셰리 저도 반한 책!

구단씨 2025-01-08 19:20   좋아요 0 | URL
^^ 네. 책이 너무 예쁘고 손에 잡히는 감촉도 좋아요.
색이 변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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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좋고 나쁘다는 명확한 구분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하루가 쌓이면서 늘어가는 나이만큼, 사고가 넓어지고 더 성숙한 어른이 될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앞으로 이 생각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여러 만화가가 한 자리에 모여 인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다양한 개성만큼 각 이야기의 매력도 달랐지만, 인권이라는 한 가지로 모이게 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김보통의 최후의 보호막은 지금 내 주변의 몇몇 사람이 제조업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또는 외부의 작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기에 많이 공감했다. 대마왕이 존재하는 세계여서 판타지의 재미를 상상했는데, 그 세계 안에서도 여전히 산업재해는 존재했다. 보석을 캐는 노동 현장에서 재해가 일어나고 노동자는 사망하기에 이른다. 처음부터 보호조치가 되지 않은 현장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런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죽은 노동자를 대신해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고, 회사는 이익을 맞추면 되는 일이 너무 익숙하다. 우리가 아는 노동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책에서 고발하듯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가슴은 이 추위에 더 추워지기만 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수수께끼라는 작품 속 김정연 작가는 지금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누군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 이런 깊은 속내를 담아내는 돌봄의 문제를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일상의 곳곳에서 돌봄은 필요하다. 아픈 노인, 잘 성장 시켜야 할 아이, 활동에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등 마치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란 듯이 혼자서 불가능한 일이 너무 많다. 알고 있지만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관심 두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문제였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 그 돌봄을 위해 본인의 일상과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사회가 더 깊게 들어줘야 한다고.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없고, 국가와 사회가 함께 참여해야만 그 돌봄 현장의 많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이레, 요니요니 작가의 청첩장 도둑역시 변해가는 우리 사회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정상가족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쎄, 내가 이 작품 속 가족 안에 있다면 선뜻 다른 형태의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살아가는 기준에 올려놓은 목록을 불러왔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마주하게 될 다름을 먼저 떠올리기.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강요하는 게 가족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우리는 다르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어렵지만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가야 할 일이다.


특이한 접근으로 느껴졌던 게 구희 작가의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이었다. 10년 후의 우리는 4월부터 열대야가 찾아오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지구의 이상으로 폭염이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그 폭염을 견디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덥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모자라, 에어컨을 끼고 살았던 올 여름이었으니까. 이것도 지구를 상하게 하는 일일 텐데, 미안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더라. 인권과 폭염이 무슨 상관이기에 여기에 끼어 있느냐고? 나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작품의 뒷부분에 작가가 언급한 것을 보고 이마를 쳤다.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문제라고, 우리 모두가 탄소를 배출하며 살아가지만, 그 양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그래, 그러겠지. 선진국이, 큰 회사가, 부자가 더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한단다. 자원 분배나 탄소 소비의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기후위기가 만든 기후재난은 또 사회적 불평등에 노출된 그대로 겪어야 하는 양이 다른 악순환이 반복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본인의 진로를 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더 파고들겠다는 다짐이었지만,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사회적 불평등이 만든 지구의 위기에, 힘든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는 지금의 현실을 보라고 말이다.


엄마가 사는 곳은 여기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다. 젊은 인구보다 나이든 노인이 많은 동네. 시댁은 여기에서 차로 4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데, 마을 이장이 가장 젊다고 한다. 그 이장의 나이가 곧 환갑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우리 사회의 인구 구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김금숙의 은 초고령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도 많았기에 이 작품이 적나라하게 현실을 담았다는 감탄만 나오더라. 거기에 지역 소멸이라는 문제가 겹치니 이건 공포영화보다 더 괴기스러웠다. 저출산 문제가 초고령사회의 문제와 닿아 있고, 지역 소멸 속에 노인 문제가 함께 한다는 것. 우리 사회의 큰 문제를 이렇게 또 마주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암담하다. 앞으로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채워질까. 정영롱 작가의 끄나빠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짚어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 이주민이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정착하려고 애쓰며 살아간다. 그 가정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들은 자라면서 타인의 시선을 받곤 한다. 피부색이 조금 다를 뿐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인데, 이방인을 대하듯 할 때가 많다. 인종의 차별이 왜 필요한가?


마지막 작품 참교육의 화두는 정말 오랫동안 논쟁이 될 듯하다. 가해자의 인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사적 제재가 왜 문제가 되는가 하는 일은 계속 언급되어 왔다. 잔혹한 범죄 앞에서 뉘우침도 없이 건들거리며 인터뷰 하던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법이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결과에 사적 제재를 시도했다는 뉴스가 생각나기도 한다. 훈육이라는 말로 행한 폭력이 정말 참교육이었는지 묻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그 고민을 하는 작품 속 선생님들의 말에 시선이 머문다. 폭력이 폭력을 낳을 때, 남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멈추어야 할 때, 해서는 안 될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답인 듯하다. 참교육의 진짜 의미를 우리가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했다. 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이 책이 만들어졌을 테고, 이 작품 속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들의 만남이 의미 있다. 우리가 버려야 할 편견과 차별, 저기 어둡고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아내고, 우리가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작가들이 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면, 독자인 나는 그 목소리를 가슴에 한 번 더 새겨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창비인권만화 #호시탐탐 #인권 #북스타그램 #김보통 #구희 #서이레 #요니요니

##책추천 #책리뷰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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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한낮의 햇살이 너무 따스해서지금이 겨울이라는 것을 잊었다아침에 나가면서 유독 찬바람이 매서웠던 오늘 아침에, ‘맞다지금은 겨울이었지’ 하고 내 몸에 다시 각인했다그 아침에 파지를 주우러 리어카를 끌고 나온 할아버지 한 분을 보고서엄마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도 떠올랐다차라리 여름이 낫다고힘든 사람한테 겨울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힘들다고내가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도리어카를 끌고 파지가 쌓인 곳으로 돌고 돌을 그 할아버지를 계속 떠올렸다지금쯤 그 리어카에 파지가 가득 실려 있기를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정도여서아팠다그렇다고 내가 너무 여유 있는 삶이어서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전혀 여유롭지 못한 날들이지만길거리의 호떡 한 개가 2천원이라는 말에 머릿속으로 기억하던 달짝지근한 호떡의 맛을 지웠지만그래도 아직 식당에서 한 끼 해결할 돈이 주머니에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그래도 나는 여전히 가난 속에 있는 것 같다.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저자 안온이 이 책의 제목을 일인칭 가난이라고 적은 이유에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이 한국의 가난을 대표할 수 없다고가난의 양태가 가지각색이어서그래서 이 책은 일인칭일 수밖에 없다고그랬다우리는 각자의 생활수준을 자기만의 기준으로 계산한다그러니 여유롭다는 말도가난하다는 말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일인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겠다저자는 또 말한다그러나 일인분짜리는 아니라고그랬다그의 가난은 어느 한 부분에서 정리되고 판단되는 문제가 아니었다가난이 개인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의 기준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며국가가 이 가난을 돕기 위해 만들어놓은 제도는 어떤 기준으로 적용 대상을 정하는가이 문제는 행정복지센터의 사회복지 담당 부서에 몇 번만 가 봐도 직접 볼 수 있다누군가가 사는 게 어렵다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였으나여러 기초 조사 결과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는 통보에 찾아와서 담당자에게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이 제도는 현재 이 사람이 살아가는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각종 서류로 판단하는 게 대부분이라자식의 월 소득이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해도자식이 생활력 없는 부모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여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거다온갖 서류 속의 는 현실의 나와 같지 않음을 시사한다그렇다고 지금 사는 환경만으로 판단하는 것도 기준을 세울 수 없다말 그대로 소득 수준이 설명해주지 못 하는 많은 요소가 주관적일 수 있어서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인의 가난 척도가 되지 못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도 너무 잘 알아서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에 시선이 머물곤 했다아직도 이런다고사교육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은 EBS교재를 지원받으며 채우는 일방학식날 우유 한 박스를 어린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내고지원 기관에서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참여시켜주기도 하고이런 거 말고도 여러 기관에서 이들을 돕는다고 손을 내미는 행위들이고마우면서도 때로는 가슴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작년 겨울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했다센터에 등록된 아이들은일반 가정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아동 가정이 대부분이었다방과 후 학원이나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바로 센터로 오는 아이들이었다그러다 한 아이가 무거운 우유를 들고 오는 것을 보고 받아주었는데방학식 날이라 학교에서 주었다고 했다아직도 기초생활수급자 아동에게 방학식날 우유를 이렇게 준다고어느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방학식 날담임이 친구를 불렀고 친구는 우유를 한 박스 들고 왔다집으로 가는 길에 그 친구에게 물었다. ‘근데 선생님은 왜 너한테만 우유를 이렇게 많이 주는 거야?’ 그때의 내가 이 사회적 제도를 몰랐던 게 핑계가 될 수 없었고그 아이에게 상처가 됐을 거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내 질문을 그대로 받은 그 아이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들키고 싶지 않은 뭔가를 들킨 게 속상하다는 듯이이 무거운 우유를 어디에 내다 버리고 싶다는 듯이사회적 도움을 받는 게 나쁜 건 아닌데그 우유를 들고 가는 모습은 마치 사회적 낙인이 찍힌 것처럼 되었으니까방학식날 아이들에게 우유를 들고 가게 하지 말고각 가정에 배송해주는 방법은 없을까무겁기도 하지만 이 우유를 들고 집으로 가는 그 길이 몇 배로 멀고 고단했을 거라는 것을그 마음을 헤아리는 관계자들이 한 명도 없는 걸까아니면아무리 방법을 찾아도 아이들에게 직접 들고 가게 하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의 전달 방법을 찾지 못한 걸까.


가난은 일상을 불편하게 한다때로 삶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하는데그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힘은 쉽게 생기지 않기도 한다가끔 이 상황이 슬프기도 하면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게 하는 걸 보면이게 힘을 내는 건가 싶기도 하다그래서 벗어날 수 있느냐고누군가 맨 바닥에서 시작해서 엄청난 부를 이룬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그런 생각은 매번 현실에서 부딪혀 무너지기 쉽다너무 고통스러워서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말에 함부로 판단해서 말을 건네지 말기를각자가 겪고 감당하는 그 고통을 크기가 다 다를 것이기에거기에 내 맘대로 고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가족의 무게가 그 고통을 더하기도 하니도대체 이 가난의 구성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지는 것도 이상하다저자 안온의 시각장애인 아빠는 알코올중독이었고교통사고로 무릎이 아작 난 엄마의 경제 활동도 어려웠다는 게 가난을 대표하는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그저 이 가난의 한 부분이었을 테니까의도하지 않았지만 부딪혀버린 교통사고그 일로 엄마의 경력은 단절되었고저자 역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지쳐버린 몸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최저시급의 일자리를 전전하게 되는 시간들여성이어서 당하는 몸과 마음의 폭력들알코올중독 아버지가 휘두르는 가정 폭력까지 버무려진그렇게 한꺼번에 모인 이유들로 가난의 생명력이 질기고 길어졌다고 해야 하나.


언제까지 겪어야 할까이런 날들이 반복되고또 겪고누군가는 또 저자의 시간과 같은 흐름으로 오늘을 견디고 있을 거고저자가 들려준 여러 상황의 이야기가우리 사회의 가난이 현재형이라는 것을저자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내가 직접 보았으니 길게 더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겠으나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근심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저자 안온은 대안을 제시하거나 자신이 겪은 가난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이 사회 문제의 관심을 촉구하는 이야기에 아무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오늘의 날씨는 너무 추웠고내일도 추울 거다이번 겨울의 혹한을 예고하던 말들이 귀에 강하게 남아 있는데이 가난의 추위는 언제 어떻게 지나가게 되는 걸까.


나의 가난이 과거형이 된다 해도 우리의 가난은 진행형이기에이 책은 일인칭으로 쓰였으나 일인분짜리는 아니다그런 마음으로 썼다. (일인칭 가난, 10페이지)


이 책 일인칭 가난의 끝부분에 담긴 복지 신청 방법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한국의 복지 시스템은 신청해야만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이고가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주민을 제보해달라고 홍보하지만그런 방법으로 대상자를 얼마나 선정할까 싶기도 하다청년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장학금도 확인해야 하고일상을 지내려면 아르바이트도 쉬지 않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관계자들이 대한민국 선별 복지의 구조에서 찾아내야 할 것은 누군가의 절박한 목소리가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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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엔딩 소설Q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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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게 있긴 있는 건가? 종종 생각한다. 오늘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많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일, 모레, 훗날 언젠가의 우리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지금 불행하다면 행복하기 위해, 지금 행복하다면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늘 그렇듯 바라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고, 노력하면 되겠지 하는 바람은 가뿐히 무시당하기 쉬웠다. 소설의 주인공 자경이 아버지를 책임(?)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자경의 노력이 형체 없는 어떤 신으로부터 밟히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내가 너무 부정적 사고만 앞세워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자경은 요양병원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달려가는 중이다. 6년 전에 아버지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자경은 서울의 직장과 본가인 전주와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대전을 주말마다 오가고 있었다. 살아가는 날들이 아닌, 그저 버티는 날들로 채워지는 삶이었다. 그마저도 끝이 있었던 거라,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대전에 장례식장을 마련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조문을 오면서 자경의 싸늘했던 마음에 온기가 돌던 것도 잠깐, 시간에 쫓기듯 살아왔던 방식은 금방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감 기한이 있는 업무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상중에 경황도 없는데 회사의 팀원들이 단체로 퇴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2년째 함께하고 있는 애인은 자경의 상황도 모른 채로 원망어린 말들을 쏟아낸다. 아버지의 장례가 다 끝나기도 전에 본가의 집을 급하게 정리해야 할 일도 생겼다.


읽는 내내 드는 느낌은, 단거리 달리기와 장거리 마라톤을 같이 뛰는 것만 같았다. 자경이 아버지를 돌보면서 하루하루 촉박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니, 이 달리기의 피니시 라인은 어디쯤에 있을까 궁금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회사일, 애인의 말, 본가를 정리하는 것까지, 잠깐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벅찼다. 자경이 열 명 있어도 숨이 찰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 누구도 아닌 자경이 직접 처리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었기에 더 절망적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일이든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끝이 있겠지만, 그 과정이 참 고되기에 항상 좋은 생각이 먼저 나오지는 않더라. 겪어 봐서 안다. 장례식, 손님이 별로 없어도 힘들고, 상주 자리를 지키는 것도 고단하다. 끝나고 나면 온 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몸살이 나기도 하고, 며칠 동안 잠만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자경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느라 또 숨이 차다. 가구와 가전을 중고로 버리고, 집안 구석구석 차지하고 있는 짐을 커다란 김장 비닐이 가득 담아서 버리기를 여러 번. 이제 좀 쉬려나 싶었는데, 아직 한 곳이 남았다. 아버지의 서재. 어릴 적 자경이 지냈던 방이지만 자경이 떠나고 아버지의 일상으로 채워진 곳이다.


우연한 발견은 고단한 삶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는 마법이 되기도 하는 건가. 자경이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자경은 몰랐던 아버지의 세월을 엿보기도 한다. 자경을 낳고 바로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혼자서 자경을 키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자경의 이십대를 지켜보면서 저장해둔 기억과 흔적은, 오늘까지도 어둠에 휩싸여 있던 자경의 일상에 조금 다른 빛을 비추기 시작한다.


무모하다고 했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도 했다. 살아가면서 각자가 바라는 간절한 어떤 것을 이루려는 노력을 누구나 같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는다. 자경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빠져들었던 영화인의 삶은 이십대의 한순간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시절을 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시절을 지금까지 끌고 왔다고 해서 오늘의 삶이 크게 달라져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오늘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은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여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자경이 영화를 만들면서 보았던,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그 불빛을 기억하면서, 다시, 아직도 거기에 있는 것들을, 그 시절의 자경을 지탱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생각한다. 지독한 현실에 치여 살면서 어느 정도 단단해졌다고 여기던 것도 무색하게, 잊고 있던 이상한 순간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은 이제 흔들리는 방향으로 따라가려고 한다. 이게 이상한가?


자경이 본가를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서재를 남겨두었을 때, 내가 바란 것도 이런 마음이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다가도, 노력을 결과물을 기대하면서도 절망의 순간을 마주하곤 하는 게 우리 인생이라고 해도, 그래도 말이야, 상실과 절망의 순간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늘과 다른 엔딩을 기대해서는 아닐까. 자경이 그동안의 연애에서 배운 대로 자기 이야기를 지금의 애인에게 할 수 없던 이유가 오늘의 현실이었다면, 오늘 정리하면서 보게 된 작은 빛 하나로, 차단된 통로를 다시 열기 위해 용기 내려고 하는 건, 내일의 엔딩이 오늘과 다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그런 거지, 그래도 오늘을 사는 이유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선택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135페이지)


일상에 익숙하게 녹아 있는 팍팍한 삶이 들려 와서 답답했는데, 살아가는 일에는 언제나 한 가지 엔딩만 존재하는 건 아니기에,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는 방향으로 가는 건 막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어느 곳에는 위로가, 반대 방향에서는 기회가, 옆에서는 어떤 날의 기억이, 또 다른 곳에서는 따뜻하게 진심을 내미는 마음도 있다는 게, 그래서 언제나 시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을 품어준다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고 우리는 모두 정해진 엔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시한 삶의 그 지난한 과정 속에 아주 잠깐씩 빛나는 순간이 있는 거라고, “다시 멀리서 보면, 모두 거기에 있는 것들”, 그것을 우리는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이 소설이 얘기해주는 것만 같다. 너는 혼자로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에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건네며 소설은 엔딩 이후를 기약한다. 우리가 상실한 많은 것들이 실은 우리를 살게 한다는 걸 이 소설을 통해서 배웠다. 기울어지고 연학한 마음을 서로에게 조금 기대는 방식으로. (소설가 김유담의 발문 중에서, 149~150페이지)


분량도 짧아서 잘 읽히는데, 잘 읽히는 것만큼 감정은 단순하지 않아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소설이기도 했다. 그래서 좋았다. 별 것 아닌 일로 심란했던 감정들이 조금 단순해졌다고 해야 하나. 하나씩, 쓸데없는 마음들은 쳐내고, 절실한 마음들은 꼭 품으면서 오늘도 잘 지내봐야겠다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말고, 지금 나에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더 마음에 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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