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머그컵 - 남색 바탕 흰색 글씨
대한민국
평점 :
절판



책 구매하면서 받으려고 했는데, 알라딘 서재의 달인 선물로 먼저 득템한 알라딘 머그컵...

알라딘에서 이벤트 할 때마다 그 디자인을 약간씩 달리해서 나오고 있는 머그컵이다.


솔직히 다른데서 이벤트로 주는 머그컵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는데, 오직!!

알라딘 머그컵은 득템하기 위해 구매욕구를 마구마구 끌어올린다...

 

쎈쑤있는 서재지기님이 살짝 힌트를 드렸더니 원하던 빨강이로 보내주셨다. ^^ (완죤~ 감사해요~!! ^^)
이제 남색만 득템하면 된다. 책 고르기가 어려워 남색은 그냥 구매로 득템할 예정이다...
너무 예뻐서 매일매일 뭔가를 마시고 싶어지게 만든다. ^^

도자기컵이라 그런지 무게감도 있고, 용량도 제법 커서 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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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는 내내, 평범하다는 기준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예쁘다는 극찬은 아니어도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았고, S라인 몸매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기성복을 사 입을 수 있는 몸으로 살고 있으며,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어디론가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그런 삶이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물론 그런 삶에도 경제적인 이유나 시간상의 이유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테지만, 보통은 그 ‘평범’에 가깝지 않나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남들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공감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 속의 주인공인 어거스트를 보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그 ‘평범’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다른 이들도 똑같이 평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배우게 되는 시간이었다. 외모로 인하여 그 ‘다름’으로 차별화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도 다시금 머릿속에 입력하고 있는 삶의 자세를 보게 되었다. 하루하루의 시간이, 나를 이해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이 사뭇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선천적인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어거스트는 열 살이 되면서 중학교에 입학한다.(여기서는 5학년, 우리나라로 보면 중학교1학년) 그동안에는 여러 차례의 수술과 치료, 자신의 기형적인 외모 때문에 밖에 나가기를 꺼려했던 이유로 홈스쿨을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엄마가 지도해주시는 홈스쿨도 무리가 있었고, 세상 속에서 부딪히면서 살아가야할 어거스트를 위해 부모님이 한 제안이었다. 어떤 기대감으로 어거스트에게 그 제안을 했을지 모를 부모님의 마음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어거스트의 마음이 어떤 시험대 위에 오른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거스트는 생애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 전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인물들, 새로운 공부, 그리고 가족들의 울타리에서만 생활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온 것과는 전혀 다른 시선들을 맞이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어거스트의 중학교1학년 생활, 1년 동안의 시간을 그대로 보여준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거스트의 1년을 우리도 같이 흘려보냈다. 여섯 명의 시선으로…….

“좋아, 그건 인정해. 하지만 이건 누가 학교생활이 더 나쁜지 견줘 보는 시합이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 모두 그런 나쁜 날들을 견뎌 내야만 한다는 거야. 죽을 때까지 아기 취급 받고 싶지 않으면, 아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로 남고 싶지 않으면 받아들이고 이겨 내야 해.” (185페이지)

이야기는 몇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나’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주인공인 어거스트와 어거스트의 누나인 비아(올리비아), 어거스트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먼저 사귄 친구인 잭, 사심 없이 편견 없이 어거스트를 맞이한 친구 서머, 비아의 남자친구인 저스틴, 비아의 오래된 친구인 미란다. 이들 여섯 명의 시선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그냥 겉으로만 보이는 시선들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솔직하게 들려왔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 때로는 솔직하게 풀어내지 못하는 표현들, 다르게 받아들여 쌓이는 오해의 시간들, 진심을 잠시 묻어두고 자신의 이기심을 보여야 했던 순간들까지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수록 마음은 더욱 아파져왔다. 그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입장의 차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혹은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럴 수 있으니까, 하는 이해의 마음도 갖고 싶어지지만 나도 이기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그때그때 풀어내고 있는 그들(말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여섯 명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여 이해와 함께 공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거스트.
그 누구보다 어거스트 자신에게 가장 힘든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2년 동안 머리에 헬멧을 쓰고 다니면서 거리를 활보했을 모습을 떠올려 보니, 귀밑머리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것만 같다. 누구에게나 열린 세상과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얼굴을 꽁꽁 싸매듯이 가리고 나서야 걸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게 서글펐다. 헬멧 밖으로 보이는 그 풍경들과 세상의 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을까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눈앞에 무언가가 한번 차단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아닌, 윙윙거리듯이 헬멧을 통과해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 생생함 그 자체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고만 싶은 간절함이 저절로 생긴다. 10년이라는 시간, 견디기 힘든 수술들과 몇 차례의 수술로도 정상적인 얼굴로 돌아오지 못한 모습에 좌절했을 것도 같건만, 적어도 집안에서의 어거스트는 몸집이 좀 왜소한 열 살 어린이일 뿐이었다. 성실하게 공부했고, 유머감각이 있고,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 또래의 소년이었다고. 그런 어거스트가 새롭게 만난 학교라는 공간은 많은 공포를 주었을 것이다. 그 안에 그 차별을 드러내놓고 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있었지만,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곳이라고 보여주듯이 시간과 마음을 통한 사이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배려와 친절, 그리고 사라진 선입견들은 어거스트의 밝은 미래를 대신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더 나빠질 것 없을 것이라는 용기를 준다. 이제 어거스트는, 고학년에 진학하더라도, 혹은 졸업 후에 사회에 나가더라도 자신만의 매력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해서 안심이 된다. 다행이다. 마음이 놓인다.

비아와 가족들.
집안에 환자가 있는 가족들은 알고 있다. 환자만큼 그 고통의 시간들을 함께 하고 있는 가족들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어거스트를 굳이 환자라고 말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이유로 배려해야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어거스트를 봐주라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다른 외모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일, 어떻게 대할지 몰라서 보일 수 있는 시행착오나 오해들이 가장 먼저 보일 수 있는 공간도 가정 안에서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거스트의 가족들은 이미 10년이란 시간을 어거스트와 함께 하면서 많이 적응하고 많이 배웠을 것이다.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들을. 그런데 이 안에서 안타까운 것은 비아다. 어거스트와 3살 차이밖에 안 나는, 어쩌면 비아 역시 부모님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언제나 어거스트가 1순위다. 비아 역시 모르지 않았다. 어거스트에게 부모님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그런 상황이 아프고 화가 나기도 한다. 비아가 보여주던 모습들은 그런 마음들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동생을 너무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이해가 아닌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았을까. 어거스트의 가족이 가지는, 일반적인 가정과 다르다면 다른 상황들이 이 가족을 더욱 성장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어거스트와 비아, 그리고 엄마 아빠는 누구보다도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잭, 꼭 나쁜 마음을 먹어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게 아니야, 알겠니?” (219페이지)

어거스트와 비아의 친구들, 잭, 서머, 저스틴, 미란다.
나는, 어거스트와 비아만큼이나 이 친구들에게 더 많은 시선을 주고 싶었다. 이 친구들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와 다른 독자들 대신해서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 같았다.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시선을, 누군가의 마음에 접근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거스트와 비아만큼이나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여과 없이 내 맘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안함에 더욱 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일인칭 시점이 주는 매력을 여기에서 한 번 더 발견하게 된다. 말하고 싶은 그대로를 말하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해야 할까.

 

읽어가는 게 쉽지 않은 흐름이었다.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게 하면서도 우리 사는 지금의 모습들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은 줄리안(어거스트를 괴롭히던 친구)이나 줄리안의 부모님 같은 편견을 가진 어른들이 더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꿋꿋하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세로, 자신만의 매력으로 1년 동안 세상을 극복한 어거스트는, 우리가 만나고 싶고 만나야만 하는 미래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더욱 어거스트의 홀로서기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기립박수를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거스트이거나, 어거스트의 가족이 될 수 있고, 어거스트의 친구들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성장을 측정하는 기준은 몇 센티미터가 컸는지, 혹은 트랙을 몇 바퀴 돌 수 있는지, 아니면 평균 점수가 얼마인지가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주어진 시간 동안 여러분이 무엇을 했는지,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해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올 한 해 여러분이 누구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기준으로 가늠이 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성공의 척도입니다.” (455페이지 - 교장선생님의 훈화 중에서)

특히나 이 책에서 꼭 필요했던, 존재해야만 했던 매력적인 인물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열린 마음으로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를 대했던 교장선생님과 금언과 소중한 이야기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찾게 만들어 주었던 브라운 선생님. 아이들의 하루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 이런 선생님의 존재는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당연하게 보이는 자세인데도 그 당연함이 사라진 학교나 교육자들을 보고 나면, 그런 간절한 바람은 더욱 진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현실에서 항상 만나고 싶은 선생님상이다. 이런 분들과 함께 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함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소설이라는 이름의 허구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비슷한 것들을 너무 많이 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인지 이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어거스트라는 아이의 안면기형을 소재로 했지만, 우리가 만나는 세상 속의 편견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더욱 아픈 이야기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나 사람의 외모만으로 판단하는 많은 경우를 이미 보았기에 말이다. 회사 입사시험에서 떨어질까 봐 성형수술을 하고 면접을 보고, 심지어는 커피점 아르바이트도 외모를 보고 뽑는다는 것을 보고 나니, 잠깐이나마 외모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본 어거스트의 매력은 순간적으로 보이는 외모가 아닌 마음이었으니까. 친구들이 마음을 열어가던 것 역시나 잠깐 동안 보이는 모습들은 아니었지 않나? 마음을 연 교류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어거스트가 받은 그 기립박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어거스트가 엽서로 전한 금언처럼,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은 기립박수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극복하니까.” 너무 멋진 말이다. 세상을 극복한 모든 이들에게 기립박수를!!

“조셉이 사람의 모습을 한 하느님의 얼굴을 알아보는 때는 바로 그러한 순간들이었다. 그들이 베푸는 친절 속에서 어렴풋이 빛났고, 도움의 열망 속에서 눈부시게 빛났으며, 배려 속에서 은연중에 드러났고, 진정 그들의 눈길에서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꼈다.” (457페이지)

 실제로 어거스트와 비슷한 여자아이를 보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잭과 잭의 동생과 보모의 입장이었다던 작가가, 그때 마침 들려오던 한곡의 노래와 겹쳐져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던데, 정말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기적을 같이 만난 독자인 나 역시도 가슴 속에 쌓이는 따스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동시에 성장해가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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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4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제 새벽 6시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며칠 동안 내린 눈이 쌓였고, 눈을 쓸기도 전에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도로는 빙판이 되었더라. 그 위에 다시 내리는 눈이 쌓였고...
그 추운 새벽에 할 일도 없었는데 밖으로 나가다가, 맨발로 신은 슬리퍼가 미끄러졌고 그 단단한 빙판에 넘어졌다. 너무 아팠고, 너무 추웠기에 벌떡 일어나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한번 넘어진 것으로만 생각하고, 아픔도 크게 느끼지 못했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제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기에 이상해서 거울을 보니 가관이다. 오른쪽 팔과 엉덩이,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그때서야 그 멍이 있는 자리가 부어올라 아팠던 거였다. 아, 정말 이 시원찮을 몸뚱이 같으니라고!!

웬만해서는 병원 안 가려고 했는데,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집 앞의 한의원에 갔다. 근데 정말 어르신 환자분들 너무 많더라. 나처럼 넘어져 오신 분도 계셨는데, 그분은 팔에 깁스까지 하고 오셔서는, 정말 내가 아프다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
침을 맞으려고 자리를 잡고 누웠는데, 선생님이 다치게 된 경위를 묻더니, 피식 웃으신다. 그 와중에 궁금해서 물어보고 있는 나.
“선생님, 멍이 들었는데 침 맞으면 더 빨리 나아요?”
“(완전 피식~) 그럼요. 침 맞으면 그래도 좀 낫죠.”

처음에는 팔에만 침을 맞으려 했는데,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슬그머니 바지를 걷어 올렸다.
“종아리도 무지 아파요...”
“(씨익~)......”
솔직히, 길 가다 넘어졌다거나, 눈길에 미끄러졌다는 얘기들을 뉴스에서나 봤었는데, 거의 한 달을 사이에 두고 내가 두 번의 경험을 하고 보니 알겠더라. 길 가다 넘어질 수도 있고, 눈길에 미끄러지면 정말 아프다는 것도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거...

책을 읽는 안 좋은 습관인 줄 아는데, 나는 엎드려서 혹은 방바닥에서 뒹굴면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새해 초부터 책 못 읽었다. 엎드리면 팔이 아프고,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아프고, 뒹구는 것은 더더욱 못하고... 그래서 입맛만 다시면서 책만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내고 있다. 빨리, 읽고 싶어...



꼬마 니콜라 리미티드 스페셜 에디션 - 초도 한정 하드 케이스다.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꼬마 니콜라 시리즈였는데, 이렇게 이쁜 포장을 하고 다시 나왔다.
그것도 "한정판"
아직 만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 어른들에게도 좋고 -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방학을 맞이해서 이 추위를 견디면서 심심해 할 수도 있는, 곧 다가올 명절에 올 조카를 위해 골라본다. 꼬마 니콜라 도서 특유의 빨강 표지가 어딜 가나 눈에 들어와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책이었는데, 튼튼한 케이스에 담겨 있으니 더 뽀대난다.



말할 수 없이 유쾌했던 하루키 에세이 시리즈도 이렇게 패밀리처럼 묶어서 다시 나타났다. 기존에 다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에 마련한 절호의 기회~!! 너무 심심한 이야기인가 싶으면서도 하루키 특유의 일상이 보이는 듯해서 웃으면서 읽을 수 있다.


 







언제 만나도 새로운 <어린 왕자>와 작년에 한참 귀에 익숙했던 음악들로 다시 찾아왔던 응칠이...
일러스트로 함께 만나는 이방인까지...


너무나도 유명한 피터래빗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즐겁게 들려올 것 같다. 애들 방학이라서 그런지 때 맞추어 나타난 것이 더 반갑기도 했지만, 너무 유명해서 캐릭터만 알았지 제대로 그 이야기를 즐겨보지는 못한 듯... 이번 기회에 조카에게 선물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살펴봐야지... ^^



인생학교 시리즈...
처음에는 부제만 보고 이것들이 무엇인고 했는데, 시리즈였다.
좀 특이한 듯 하면서도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을 듯한 기대감에 이 시리즈가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 책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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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무리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아쉬움을 가득 담고 2012년이 흘러갔다.
나에게도 유쾌하지 못한 감정으로 마무리가 된 한 해였지만,
주변인들에게도 슬픔과 아픔으로 무겁게 보내야만 했던 한 해가 된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항상 흘러간 그 시간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유독, 지난 해, 너무 힘들게 연말이 흐른 것 같아 그 아쉬움이 배가 되는 듯하다.





십년이 넘는 시간을 그녀와 알고 지냈는데, 그녀의 눈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지독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 보는데서 참 많이 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이번에 본 그녀의 눈물은 겨우 잠깐이었지만, 아마도 그녀에게는 통곡에 가까운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꾸만 변해가는 그녀의 부정적인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 역시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누군가(무엇에)에 대한 신뢰보다는 의심을 먼저 하는 인간이라
그녀만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의심이 많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없는 나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세상의 모든 일 앞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란 공식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다른 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원래 그래왔으니까 당연하게 받아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이의 의견이나 생각에, 단숨에 귀를 닫고 상대로 하여금 말문이 막히게 하는 태도에
이젠 나에게도 버겁고 지친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무언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날 나의 역할은 그냥 앞에 앉아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뿐이었을 것이기에 또 한 번 참았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세 명의 그녀들은 2012년을 이틀 앞두고 터지고야 말았다.

듣고 있기에 너무나도 불편한 말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톡톡 두드렸고, 나는 그녀가 그 의미를 알아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그녀는 얼굴이 굳었고, 행동이 변했고,
그 자리를 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모르겠다는 의미로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면 이야기를 해서 들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그녀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이러니까.’, ‘나만 고치면 되겠네.’ 하는 식으로 말을 하고 모든 것을 닫아버렸다.
상대가 그렇게 말을 하면 무언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을 만나고 나니, 나 스스로도 입을 다물고 싶어지고야 말았다.
그 순간 나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내고 보아왔던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입을 연 순간,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이렇게 정리가 되면서 이 관계가 끝나겠구나 싶은...
결국 나는 그녀들을 알고 지냈던 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서로를 할퀴고 멍들게 하는 말들과 오해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전쟁 같았던 그날이 흐르고 그 다음 날, 나는 그녀와 만났다.
왜 그런 시작이 되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다른 성격, 다른 표현방식, 그리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상황들에 대해서.
정말 마지막일수도 있겠구나하는 다잡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답답함만을 느껴야 했고,
서로를 위한 일이 어떤 것인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한가지,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조금이라도 말해 보고난 후의 달라질 그녀와 나의 관계였다.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그럴 수밖에,
이런 기회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생긴다면 다행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녀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화살이 자기에게 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그녀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었다.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십년쯤 전에 그녀가 나에게 소개했던 이 책을 떠올렸다.

책을 잘 읽지 않는 그녀였다고 기억된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할례의식과 그런 힘든 시간을 건너와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던
소말리아 출신인 와리스 디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당시의) 자신이 겪는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용기가 난다고 했었다.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고, 쉽지 않겠지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자주 웃었고,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지내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메일 계정에 ‘인샬라(Inshallah)’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많은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듯했다.

며칠 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오래 전의 이 책이 저절로 떠올랐었다.
그녀의 지금 이런 이야기들이, 생각이, 행동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그녀와 꾸준히 만나오면서 계속 보아오던, 언젠가 한번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만큼이나 나도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사고방식들이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여,
누군가가 보내는 배려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이 책을 그녀에게 건넬 차례인가보다.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김주영의 『잘 가요 엄마』의 이 한 줄처럼, 새벽 여섯시에 걸려오는 전화도 예사로울 리는 없다.
누군가는 벌써 그날의 활동을 시작했을 시간이지만, 아직은 주위가 캄캄한 시간.
갑작스러운 새벽의 전화는 며칠 전부터 엄마의 꿈에 보였다던 외삼촌의 소식이었다.
엄마의 몸도 편치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꿈에 보였던 외삼촌에게 전화를 한번 해본다는 것이
자꾸만 내일, 내일로 미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진료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신 다음 날 새벽, 외삼촌의 부음을 들었다.
엄마는 ‘그래서 자꾸 외삼촌이 꿈에 보였나보다.’ 하시면서 한참을 우셨고,
본인의 몸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적이 충격까지 더해져 극도의 슬픔으로 또 한참을 멍하니 앉아계셨다.
더군다나 엄마의 형제들 대부분이 미국에 살고 계셔서 5년에 한번 얼굴을 보면 자주 본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나마 한국에 남아계신 몇 안 되는 형제 중에서도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계신 외삼촌이어서 그런지 그 충격이 어마어마한 듯했다.
나이 육십,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 ‘야’, ‘너’ 하는 호칭을 써가면서 이야기할 때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는 참 웃음 밖에 안 나던데, 지금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인다.
나이를 얼마를 먹더라도 형제이기에 가능한 호칭들, 잔소리들, 관심들이었을 텐데…….
이제 그렇게 부를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은 ‘안 하는 것’이 아닌, ‘못 하는 것’이 되어버린 일들이 몰려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삐쩍 마른 사람, 이 추운 날 차가운 냉동실 안에서 더 춥겠네.’ 하시면서 또 한 번 통곡을 하시더니
일어나시려다 다시 주저앉으신다. 엄마의 눈물은,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나에게도 고통이다.
기억에서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이고 슬픔이겠지만,
조용히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듯해서 더 안타깝다.
지금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그때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하는 말과 함께 여전히 계속되는 통곡은 내 마음까지 울린다.

언젠가는 누구나가 겪는 이별일 것이지만, 매번 겪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아픔인 것 같다. 이별에 대한 연습마저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이별에 대한 연습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일들을 눈앞에서 겪는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해가 아니라, 각자의 몫으로 남겨져 견뎌야 할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이 다르고, 엄마가 견디는 만큼이 다를 것이기에 나는 또 한 번의 슬픔 앞에서 조연으로 존재할 뿐이다.

 

유독 추웠던 날, 기다렸다는 듯이 폭설까지 내렸던 날, 연말이고 연휴라서 누군가의 방문도 쉽지 않았던 날. 그렇게 아픈 날 시작되었던, 엄마는 친오빠와의 이별로 또 한참을 앓으실 것 같다. 그 앓음이 길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는 것 말고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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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03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 도자기로 보는 조선 시대 삶과 예술 사회와 친해지는 책
조은수 글.그림, 최석태 감수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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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잔뜩 심어주기에 충분한 이 책의 제목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를 보고, 나 역시도 긍정적인 호기심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기 시작했다. 이미 1편(풍속화)으로 만났던 이 책의 좋은 효과로 인해 호감을 가지고 있던 데다, 좋은 기회로 내 손에 들어온 이 책(2편)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흥미로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과 표지, 내용을 읽어가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마당 한편에 자리한 엄마의 장독대와 언니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만들어온 그릇이었다. (언니는 도예를 전공했다.) 엄마의 장독대에 즐비한 항아리들이 왜 굳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불편하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몰랐는데, 항아리가 숨을 쉬고 있기에 보관이 더 잘된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겨울김장을 위해 가을에 미리 사둔 왕소금을 항아리에 넣어놓고, 잘 말린 나물들을 항아리에 넣어놓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보면, 처음 넣을 때 그 상태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진짜 항아리가 숨을 쉬고 있었나? 그리고 언니가 초보자의 솜씨로 가장 먼저 만들어온 이 그릇도 딱히 정해진 용도나 의미도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집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흔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용이함과는 다르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가끔 내가 군것질을 할 때 애용하는 그릇이다. ^^) 실제로 구매해서 쓰는 사기그릇보다도 더 오래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호감과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릇을 바라보게 되기는 한다. 모양이 똑같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지만, 손이 먼저 가게 되는 것.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도자기는 튼튼하기도 하고(물론 떨어뜨리면 깨지기도 하겠지만), 사용 목적에 따라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르다. 시대에 따라, 문화의 교류의 범위에 따라 모양이나 무늬가 다르기도 하다. 처음 어떻게 해서 이런 그릇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는지, 우리 조상들이 이런 그릇(도자기라 부를 수 있는)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다양함을 이 책을 통해서 같이 배울 수 있다.

복 받으세요~!
말 그대로 문화유산, ‘도자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굉장히 엄격하고 예스럽고, 박물관을 연상하기 마련인데-실제로 이름 있는 도자기는 박물관에서 만나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펼친 첫 페이지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은 친근함이었다. 상당히 서민적이었고, 우리네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그대로의 바람이 담긴 기원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릇에 복을 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릇의 바닥에는 ‘복(福)’을 쓰고, 그릇에다가 음이 똑같이 ‘복(蝠)’으로 불리는 박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의 바람들을 담은 마음을 동식물로 표현하여 그릇에 그려내었다. 물고기나 연꽃, 매화, 연꽃과 함께 있는 백로 그림 등을 일상생활에 매일 함께 하는 그릇 안에 그려내면서 그네들의 삶의 기원을 함께 담아냈다.

에헤라디여~ 흥겹구나!!
코발트라는 광물로 만들어진 파란색 물감, 그 비싼 물감이 아낌없이 쓰였던 청화 백자가 많았던 조선 시대였다. 특히 왕실에서 사용하던 도자기들은 그 위엄과 아름다움, 귀한 잔치에서나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도자기의 무늬에서도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것과 차별화를 두었는데, 용의 그림이 많았고, 용의 발톱은 그 도자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그 수가 다르다는 것도 기억해둘만한 내용이다. 새해가 되면, 신령스러운 동물이라고 해서 호랑이를 용과 함께 그려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사옹원(조선 왕실의 음식과 잔치를 담당하던 관청)에서 사용하던 도장은 위엄 있는 동물인 사자 장식을 붙여넣기도 했다. 하지만 또 재치 있게, 그렇게 그려 넣은 동물들의 모습을 다양한 표정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하는 걸 보면 선조들은 그 잔치와 기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즐길 자세가 충분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

폼 나게 한번 마셔(먹어)볼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늘 무언가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일상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병의 모양과 새겨진 무늬들이 특이했다. 특히 그 무늬들은 그 병이 사용되었던 시기의 시대적 배경들의 의미를 같이 담고 있어서인지 더욱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끈무늬 병>은 기마민족이었던 몽골족의 특성상 말을 타고 다니면서 목을 축일 수 있게 말에 병들을 매달고 다녔던 것을 상징하고 있었고, <연못오리무늬 팔각병>은 대량 생산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그려내기에 오직 하나의 무늬만이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는 의미로 십장생을 그려 넣은 병 역시나 우리 고유의 무늬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하게 그냥 마시는 용도로 만드는 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우리 일상에서 항상 사용해왔던 병이 이렇게나 다양한 의미와 무늬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선조들이 참 위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재미와 마시는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도자기들이 아니었나 싶다.

당신은 멋쟁이 선비~!
나도 가끔 책을 읽으면서 책갈피나 북다트, 메모지나 펜, 혹은 북커버나 북스탠드까지 책과 관련된 용품들을 구입할 때가 있다. 그냥 읽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필요한 일이 생기다보니, 하나의 세트처럼 책 관련 용품들을 소장할 때가 있는데 우리의 선비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 자연의 모양으로 만들어낸 붓걸이와 필통, 멋스러운 필세(붓을 씻는 그릇), 아기자기한 장난감처럼 보이는 연적, 조선시대 선비들의 고상한 취미로 여겼던 향로까지. 이상하게 이런 게 갖추어져 있으면 글도 잘 읽힐 것 같고, 선비의 맞춤형 아이템들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무얼 하나 하려면 구색을 맞춰놓고 시작하면 더 잘 될 것 같고, 더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은 똑같았나 보다. ^^

우리, 저승까지 같이 갈래?
옛 여인들의 치장을 도왔던 분합이나 분항아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자기들의 미니어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그릇에 화장도구를 넣어놓고 사용하면 더 예쁜 얼굴로 치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대감도 갖게 만들기도 하고. ^^ 술이나 간장 물을 담아 옮길 때 사용하던 장군이란 것도 이번에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쓰임새가 다양했다. 보관뿐만 아니라 발효시키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비슷한 듯 하면서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나 무늬들이 더 눈길을 끌었다. 그림으로 그려 넣기도 하고 새기기도 하는 방식들이 비슷해 보이는 모양들에서 차별화를 두듯이 다르게 보이게 했다. 왕실에서 태어난 왕자나 공주들의 탯줄을 보관하는 태항아리는 그 용도와 함께 그 안의 슬픈 마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고, 투각 기법(무늬를 뚫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었던 도자기로 만든 베개는 ‘베고 자면 머리가 아프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걱정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 눈에 가장 많이 담았던 것은 ‘명기’라 불리던 무덤에 함께 묻어 주던 물건들이었다. 그릇이나 인형의 모습을 한 채로 죽은 이의 무덤 안에 같이 들어가는 역할이었다. 살아있을 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을 정도였다면, 정말 진지한 마음을 담아 함께 넣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저승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게 만들어주기 위한 배려였을까?

제사에 쓰이던 보와 궤(제사 그릇), 작(술잔), 대접(제사 전에 손을 씻는 용도), 자라병(술이나 물을 담음)과 같이 경건하게 사용되는 도자기들까지. 이름부터 낯설었지만, 그 용도와 역할까지 알게 되니 사뭇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옛날에 제사를 그리 많이도 지냈던 이유가 먹을 게 많지 않아서, 제사라는 구실로 먹을 것을 풍성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니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도자기’라고 하면 어느 장소(혹은 집안)의 내부 인테리어를 위해 뭔가 고급스러운 연출을 하기 위해 비치해놓는 소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거리감 있게, 박물관의 전시에서나 만날 수 있는 대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만난 도자기는 우리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삶에서 특정 신분만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들을 오래전부터 도자기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게다가 도자기의 무늬에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어떻게 얼마나 멀리 교류가 이루어졌는지까지 알 수도 있었다. 이건 역사책에서도 배울 수 있는 한 부분이겠지만, 도자기 하나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살아가는 장소, 시대, 인물이 다른데도 비슷한 무늬를 발견했을 때 유추할 수 있는 그 기대감은 아마 신대륙 발견만큼이나 놀랄 일일 것만 같다.

한 시대의 모습을 도자기 하나로 많은 이야기와 함께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책이다. 항상 보아왔던 사물 하나로 이런 배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어렵다는 선입견을 항상 가지고 있던 ‘역사’라는 과목에 대해 조금은 더 친근감 있게 만날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가 구연동화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에 놀이처럼 즐길 수 있었고, 나덤벙, 홍귀얄-두 아이의 이름은 이 책 속에서 들려주는 도자기 기법에서 따온 것- 두 아이와 함께 도자기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말처럼 쉽지 않은 박물관 관람을 이 책 한권으로 대신한 것 같기도 하다. 박물관의 도자기 방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구성에, 자주 접할 수 없는 이들에게 효과 만점일 것 같다.
초등 고학년 이상이 만난다면 큰 거부감 없이 배워가는 마음으로 접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이 시리즈의 1편과 함께 만난다면 더할 수 없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박물관 견학 예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유익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이 책 한 권 미리 만나고 가면 예습하고 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지난주부터 아이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우리 자랄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바쁘고 말로만 방학이지 실제 방학을 즐길 여유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아쉬운 시간이라도 조금 짬을 내서 이 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 탐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
박물관으로 고고씽~!!!


덧1)
이 책이 읽어가고 배워가고 알아가는 재미는 더할 바 없이 좋았으나, 리뷰로 이 책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 수록된 70여점의 그림들을 그대로 담아내지 않고서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리뷰를 쓰고자 하면서 저절로 느낄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소장을 추천하고 싶다. 소개 글과 다른 이의 리뷰를 통해서는 이 책의 진짜 맛을 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덧2)
이 책에서 들려주던 도자기의 여러 가지 기법들을 일부러 리뷰에 넣지 않았다. 하나하나 설명을 하자니 결국에는 이 책 한권을 옮겨놓고 싶어지는 욕심에, 이 책을 만날 수 있는 재미 하나를 뺐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이 단순하게 70여점의 도자기의 그림이 전부가 아니라, 다양하고 깊은 설명과 도자기가 그 다양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그 기법들을 직접 눈으로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기법들을 설명해놓으면 자칫 이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을까봐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부러 제외시켰다.
덧3)
거의 15년 만에 다시 만난 이 책의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풍속화와 도자기,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선조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지 궁금할 수밖에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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