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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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잘 모르겠다. 죽음으로 이별한 사람들과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과 나의 공감을 이룬 시간을 꺼내게 되지 않을까 추측을 할 뿐이다. 그 시간이 아니고서는 서로를 기억하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죽은 사람들과 나. 그 접점을 찾을 수도 없었거니와 이런 일 - 죽은 사람과 만나는 일 -을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아서인지 낯설다. 그런데 존 버거는 그걸 좀 다른 분위기로 불러온다. 낯선듯하지만 필연으로 만나게 되는 느낌으로 그들의 여행 같은 흐름에 끌어들인다.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와 우리가 그들과 공유했던 것들을 끄집어낸다. 계산되지 않은, 변하지 않은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가능할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들은 죽기 전 모습으로 남아 우리를 마주할 테니. 그들은 떠났고, 시간도 흘렀지만, 사람과 세상이 변하는 그 간격이 사라진 채로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을 거니까.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것처럼 읽힌다. 그의 자전적인 시간이지 않을까 추측하면서 읽게 되는데, 존 버거의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시간으로 들어간 것처럼 들리는 걸 무시할 수가 없다. 리스본과 제네바, 아이링턴, 그리고 더 많은 곳. 그렇게 유럽 곳곳을 다니면서 그의 기억 속 사람들을 소환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걷는다. 눈치를 챘겠지만, 그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다. 어머니, 딸, 지인들. 첫 페이지에서부터 등장하는 그와 어머니의 조우는 반가운 그림이면서 한동안 상황 파악을 해야 할 정도로 숨소리가 낮아지곤 했다. 그의 어머니? 어디서 오셨나? 아, 오래전 그의 곁에서 떠나간 사람을 이렇게 만나는구나. 너무 자연스럽게, 어제도 만난 것처럼,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소소하고 자잘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누면서... 죽은 이에게서 배우고 가져갈 것들을 말하는 어머니란, 뭐랄까, 아낌없이 더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처럼 들리더라. 죽기 전에 알 수 없던 것들을 죽은 후에 알게 되었는데, 뭐든 나에게 물어보렴, 내가 알게 된 것을 다 말해줄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죽은 다음에 많은 것을 배웠단다. 그러니까 너도 여기 있는 동안 나를 잘 이용해. 죽은 사람은 사전 같아서 모르는 것을 찾아볼 수 있어. (39페이지)

 

얼굴을 제대로 보기 전에 걸음걸이로 알 수 있는 사람. 그렇게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상대와 함께 보내고 싶은 좋은 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머니에게서 듣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에도 집중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내 눈에는 죽음으로 이별한 모자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이 만남이 지속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서일까, 아니면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너무 현실적인 장면들만 눈에 담고 살아가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애틋하면서도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살면서 공유했던 많은 시간을 읊조리듯 풀어내는 시간 속에서도 자꾸만 그 끝이 먼저 보이곤 해서, 슬픈 장면이 아님에도 자꾸만, 순간적으로, 뭔가가 울컥거리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가 여러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뭔가가 내 안에서 자꾸 쌓여갔다. 풀어내지 못할 지독한 어떤 감정, 마음에서 느끼는 건 분명하지만 표현하기에 불분명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좋아했던 과일 하나마저도 그만의 사전에 의미를 다시 새기듯 그려진다. 그럴 수도 있겠다. 뭐든, 누군가로 인해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가 머물렀던 도시들이 그냥 이름으로만 불리지는 않을 듯하다. 그 도시와 공간, 시간이 마치 그를 기다렸던 것처럼 스르륵 다가오곤 했다. 곳곳에서 사람들을 기억해 낸다. 아니지. 그들이 찾아와준 거니까 기억이 아니라 만난 거다. 그가 발 디디는 곳에서 그의 과거 한때를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를 추억하고, 살아오고 살아갈 시간에 대해 조언하듯 따뜻한 말이 오간다. 죽은 이들과의 대화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은 것처럼 이 소설은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현재형으로 보이게 한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상상조차 안 했던 장면들을 사실처럼 그리고 있다. 마치 그게 진짜인 것처럼 생생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과거와 현재라는 구분이 없이, 그냥 그들의 삶에 대해 계속되는 이야기로 머문다.

 

그렇게 구분 없이 읽어서일까. (그가 그렇게 썼으니 읽는 나도 그렇게 읽어지는 거겠지만) 읽다가 문득 한 번씩 생각하게 된다. 내가 죽으면 어디서 누구를 기다리고 싶을까. 누군가 죽은 후에 나는 그(그녀)를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만나고 싶어질까.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그가 언급한 어머니처럼, 나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지지 않을까. 가장 애틋하고, 가장 고맙고, 가장 미안하고, 아직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으로, 지금 하지 못한 말까지 한꺼번에 꺼내놓고 싶어지지 않을까.

 

어디나 아픔은 있다. 그리고 어디나, 아픔보다 더 끈질기고 예리한, 소망이 담긴 기다림이 있다. (224페이지)

 

죽은 이들과의 만남이라고 하면 슬플 것 같은데, 뜻밖에 슬픈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쾌한 기억들을 꺼내고 즐기는 시간으로 남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도 눈물이 자꾸 나려고 하는 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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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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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를 몇 권 읽었다. 각기 다른 작가, 다른 장소, 다른 분위기. 낯선 곳을 여행하는 특유의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박연준과 장석주의 글에서는 여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느리게 걷는 어떤 거리, 혹은 동네를 떠올리게 한다. 낯선 곳인데 익숙한 거리를 걷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국땅에서 익숙한 느낌이라니, 모순으로 들리지만 어쩌겠나. 내 느낌이 그랬는데 말이지. 시드니. 자주 듣는 지명이지만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 우리나라와 반대 계절을 사는 곳. 그저 추운 겨울을 피하고 싶을 때 떠올리곤 했던 도시인데, 두 사람이 함께한 그곳을 같이 걷고 있자니, 안 그래도 느린 내가 더 느려지는 느낌에 어슬렁거리고 싶어진다.

 

시드니를 여행한 글이라는 걸 알았는데, 내가 미처 이 책 정보를 접하지 않았던 한 가지가 있었다. 두 사람이 결혼식 대신으로 소식을 알리고자 했던 글이라는 것. 박연준과 장석주라는 조합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기에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그들의 인연을 알리는 글을 읽고 있자니, 글 쓰는 사람들다운 인사로 들려서 흐뭇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음악으로, 그림으로, 또 다른 방식으로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이제는 글로 전하는 것까지 보게 된다. 뭐, 글로 여러 소식을 전하던 작가를 처음 본 건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소식을 알리는 방식으로 글이 선택받았다는 게 좋더라. 그들만의 방식이어서 더 좋고, 두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한 권의 책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더 좋고... 두 사람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한 권의 책에서 두 작가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는 거다.

 

시드니의 한 시골 마을에서 두 사람이 보낸 시간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그저 오늘 여기서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장소만 바꾸어서 하는 듯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다른 분위기와 표정이 생각나서 순간순간 낯선 느낌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다. 두 사람의 나이 차 때문인 건지, 아니면 원래 다른 성향의 모습이 그때 드러난 건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그곳에서 같은 시간을 지냈는데, 다른 시간을 살다 온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시드니를 경험한 그와 시드니를 처음 경험하게 된 그녀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느리게, 좀 더 느리게 그곳을 사는 남자와 가보지 못한 곳을 눈에 담고 싶은 그녀의 발랄함이 대조적이다. 연애와 다르게 결혼은 한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기에,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몰랐던, 보이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는 기회이자 건너야 할 어느 지점인 듯하다. 마음이 맞지 않아 가벼운 언쟁을 하기도 하고, 그 위기를 넘기고 더 단단해질 수도 있고.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한 달 동안 두 사람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유난히 파랗게 보이는 하늘을 그리게 하는 장석주의 글과 일상에서 보이는 장면에 어떤 기억을 꺼내게 하는 박연준의 글이 일주일 동안 나의 밤을 견디게 해주었다. 부유하듯 떠돌아다니는 기분에 몸을 가볍게 했다가, 동네 뒷골목을 산책하는 듯한 더딘 시간을 허락해주었다가, 언젠가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어떤 곳을 떠올리게도 했다가... 혼자여서 편하고 좋았던 모든 것에 조금씩 공간을 만들게 한다. 떠돌고 싶은 마음을 붙잡으러 떠나더라도 돌아오면 제자리인 것을 알지만, 익숙한 곳의 무료함에 언제 또 출렁일지 모를 마음이지만, 그런 게 또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두 사람의 산책기. 봄이 올 듯 말듯 계절이 왔다 갔다 하는 요즘, 이렇게 느리게 걷는 기분 들게 하는 글, 좋았다.

 

낯선 곳을 여행해 보면 안다.

여행은 불편을 동반한 낯선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그리 익숙함을 그리워하게도 만든다는 것을.

 

 

돌아와보면 안다.

익숙할 때 즈음 그곳을 떠나왔음을.

이곳의 익숙함이 달콤하고 감동스럽게 느껴지지만

잠깐일 뿐이라는 것을.

조만간 권태에 빠져,

불편과 낯선 상황을 향해 달아나고 싶어할 것임을.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서울을 서울 밖에서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돌아와서도 헤매야 한다. (100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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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의 몇 년 전 기억을 꺼내는 순간이다. 학급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말썽만 부리는 아이, 평범하게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 스즈키 선생님의 기억 속 그 아이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아이였다. 정해진 규칙에 따르며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 그 아이가 졸업한 후에야 알게 된 마음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선생님은 학급의 모든 아이에게 신경 써야 하고, 그 아이들과 무사히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일지 모를 마음마저 보듬어 주지 못했다. 그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보고 알게 된 거다.

 

몇 년 전 스즈키 선생님의 제자였던 아이. 졸업 후 그 아이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 그 아이가 그동안 써온 일기로 자기가 담임을 맡고 있던 그때 그 아이의 마음을 엿보게 되었다. 같이 청소해야 하는데도 문제아는 청소하기 싫다고 그냥 가버리고, 남아있는 몇 명의 아이도 제대로 청소하지 않는다. 설렁설렁. 함께 해야 하는 일인데도 누군가는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저 시간 보내기로 생각하고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틈에 낀 한 여학생은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왜 나 혼자 청소해야 하지? 왜 나는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거지?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으면서 선생님은 왜 나무라지 않는 거지?

여기서 선생님 입장을 살짝 들여다보게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교사의 임무가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행정 업무도 있고 수업 이외의 자질구레한 학교 일이 많다. 청소당번 확인하고 나무라는 것쯤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 사람의 마음만 다독이는 게 간단한 일도 아니었을 테고, 그 책임을 회피한 아이들을 훈계하는 것도 만만하지 않았을 거다. 무엇보다 드러내놓고 불만을 쏟아내지 않은 여학생의 목소리까지 귀 기울일 수 없었다는 것. 그렇다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도 안다. 그때의 일은 스즈키 선생님에겐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과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될 교직 생활에서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거다. 여러 가지 이유로 눈에 띄는 아이들도 있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학교생활 하는 아이들에게도 목소리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공부를 엄청나게 잘하지도 않았고,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도 아니었던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친구들과 적당히 어울렸고, 크게 모나지 않게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기억한다. 특별이 나쁜 기억으로 남진 않았는데, 이 책을 보면서 평범하게 학교 생활하는 아이들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한반에 몇십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선생님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생님이 수업하는 것 말고 보이는 게 없어 한가할 거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큰 목소리를 내는 아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 반에 똑같이 존재하는 아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눈빛만으로 보내는 신호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아이들과 눈빛을 한 번이라도 마주치려 애써준다면, 그 신호를 못 알아볼 리는 없을 것 같다. 과한 기대가 아니라, 지금도 어느 반에서 고요하게 생활하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스즈키 선생님 시리즈의 소개를 처음 봤을 때 가장 궁금하고 기다려졌던 게 6권이다. 드디어 등장하는 ‘스즈키 재판’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기대됐다. 아마 앞의 이야기를 못 봤다면 이 재판이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겠지. 이미 스즈키 선생님 반과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분위기를 알고 나니 이 재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어서 더 궁금했다.

 

여름 축제 때 스즈키 선생님 애인이 임신한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됐다. 아이들은 이 문제를 학급회의 안건으로 올리고 스즈키 선생님을 심판대에 세운다. 재판이 열릴 거란 사실을 알게 된 스즈키 선생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교실로 들어가고, 정해진 시간 동안 아이들이 이끄는 회의를 지켜본다. 아이들이 스즈키 선생님을 재판에 부치면서 알아가고 있는 건 무엇일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게 과격해 보였다. (일본의 중학교는 정말 이런 건가?) 선생님의 사생활을 언급하면서 그걸 학급회의 안건으로 올릴 수 있는 건가? 게다가 무슨 죄인 취급하든 심판대에 세워놓고 몰아붙이는 분위기로? 아무래도 이건 이 만화의 그림이 표현하는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등장인물들의 표정이 너무 세게 보일 때가 많다. ^^),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들로서는 꼭 한번 따져보고 싶은 일일 수도 있겠더라. 학교에서 성교육하고 피임법을 가르치며 성생활의 책임감을 강조하곤 했는데, 그런 것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애인을 임신시켰다? 그 사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계속 생각하고 물을 수밖에 없다. 여러 명의 학생이 저마다 가진 생각, 궁금증을 꺼내놓는다. 왜 선생님은 피임하지 않았는가, 애인의 임신으로 선생님은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 책임만 진다고 하면 피임하지 않고 임신해도 괜찮은가.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방적으로 ‘너희는 이래야 해.’하는 식으로 일방통행이었다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아이들에게 잘 스며들지 않을 것 같다. 서로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나눔으로써 소통이 이루어지고, 오해는 이해가 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스즈키 선생님의 솔직한 생각을 들은 아이들은 그 상황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되었고, 스즈키 선생님은 자기의 임신 문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만드는지 알게 된다. 물론 스즈키 재판에서 판사의 봉은 울리지 않았다. 어느 한 가지 결론으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진행 중이다. 언젠가 아이들 스스로 자기만의 판단과 방식으로 이 문제의 답을 새길 것 같다. 그게 어떤 답이든, 이 사건을 겪으면서 성숙한 사고를 하는 아이들로 거듭날 것을 알겠다. 어떤 상황을 함부로 판단해서 말해서도 안 되며, 같은 상황이라도 그때마다 할 수 있는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떤 나이냐 하는 문제도 포함해서 말이다.

 

어떤 생각과 판단에서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가 아니라, 방향성을 좀 더 떠올려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만드는 이야기다. ‘너희는 나이도 어리고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안 돼!’ 하는 정해진 가르침이 아니라, 문제를 여러 방향으로 열어두고 하나씩 찾아가서 그 답을 스스로 보게 하는 과정이었다. 스즈키 선생님 등에 식은땀 좀 흘렸겠군. ^^

 

 

 

스즈키 재판의 결과가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고 끝났다. 그건 여러 생각이 공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콘돔이 없이 관계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데도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게 같은 선상에서 고민되기에 말이다. 어쨌든 한바탕 바람을 일으킨 스즈키 재판은 서로의 생각을 읽고 책임감을 느끼고 나아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답은 없어도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 선생님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생기는데, 다루코 선생님의 발광이다. 스즈키 선생님의 일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 다루코 선생님의 심리가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한두 가지는 아니었다. 점점 쌓여왔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갑자기 악화된 상황이다.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자리에서 생기는 일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게 아니다. 3학년 아이들이 다루코 선생님의 수업에 파업하고, 다루코 선생님은 감정적으로 폭주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내가 하는 수업을 아이들이 거부한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 필요한 건 무엇보다 대화일 텐데, 서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시도하기 어렵다.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지만, 극과 극을 달리는 견해 차이는 좁혀지기 어렵다. 차분하게 시작하는 게 필요한데 아직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못한 듯하다. 아이들은 거부, 다루코 선생님은 폭주. 마음을 정돈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행동하게 된다. 3학년 학생들이 다루코 선생님의 수업의 어떤 게 불만이어서 그렇게 된 건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해왔음에도 몰라줄 수 있고, 뭔가 더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에 불만을 터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가 오가기에 앞서 터지기부터 한 거라면,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학교라는 곳에서 선생님의 존재가 무엇이라고 새로운 개념이 써질지 몰라서 말이다. 그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정도로 여긴다면 기계적일 것 같고, 한없이 인간적이기만 하기에는 적당한 통제와 규제가 필요한 곳이기에 과한 것 같고... 다루코 선생님의 폭주하는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이면서도 그 마음 한 번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선생님의 자리에서 가장 힘든 건 뭔가요? 

 

 

 

다루코 선생님의 일로 혼란에 빠진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8권이다. 아이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지만,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 의견이다. 다수와 소수로 나뉘고, 그때 소수의 의견이 힘을 내지 못하는 것 역시 안타깝다. 서로가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 상황을 보니 각자의 얘기만 하겠다는 것으로 보여 혼란스럽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어른들 세계에서도 늘 보아오던 일이라 더 두려워진다. 아이들이 이 순간을 잘 건너가지 못하면, 이 상황을 지혜롭게 배우고 가지 못하면, 결국은 나만의 생각과 목소리가 전부인 것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그에 스즈키 선생님의 한 마디가 아이들의 혼란을 잠재운다. 완벽한 승리도 없고, 이해하는 게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이해에 가까워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가 담긴 말을 할 때의 스즈키 선생님은 참 멋져 보였다. 이상적인 선생님 상이라고 해야 할까. ^^

 

이어지는 학생회 선거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학생회 임원의 후보로 나서는 아이들과 선거의 모양을 지켜보는 게 재밌다. 아이들의 세계가 어른들의 세계와 너무 닮아있음을 볼 때마다 씁쓸해지면서, 아이들이 그 시간을 잘 배워갔으면 하는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어느 한순간 중요하지 않을 때가 없겠지만, 특히 더 예민하게 지켜보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나도 지나왔고 지금 누군가도 지나가고 있을 그 시간을 더 눈여겨보게 된다. 머리와 마음속에, 온전하게 따뜻하고 옳은 것만을 담고 갔으면 하는 기적 같은 바람을 갖고서...

 

아이들의 학생회 선거가 마무리되지 않고 8권이 끝났다. 11권까지 어떤 이야기가 더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보여준 스즈키 선생님의 경험과 노하우가 아이들과 함께 가는 그 길에서 꽉꽉 채우게 될 것을 기대해본다.

 

그나저나 이 만화가 일본 중학생의 생활 그대로일까 하는 궁금증은 여전하다. 내가 중학생일 때와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지금 대한민국의 중학교도 이런 분위기인지 궁금하고, 한국과 일본의 차이라고 이해해야 할지 어떨지도 모르겠고...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조카에게 많은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이 시기의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좀 무리가 있는 듯하다. 그 아이들과 나 사이, 그 생각과 태도의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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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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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은 주로 빼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33페이지
알고 있는데, 자주 듣는데, 계속 반복해서 하는 실수다.
익숙한 습관에 따라오는 고질병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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