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크 다이어리
고은상 지음 / 로코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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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의 가능성을 두고 확률적으로 계산을 하는 순서가 종종 있는데, 그때 우리는 말 그대로 배운 그대로 수학적으로 계산을 한다. 하지만 그런 수학적 확률이 거의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보통 사람의 마음이 계산의 대상이 되는 경우다. 아무도 상대에 대해서 100%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렇다. 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확률 100%,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할 확률 100%,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 될 확률 100%. ‘아무것도 100%는 없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 확률 100%를 검증한 남자가 있다. 그 확신이 볼수록 재수 없는 그 남자, 쳇~!!

모든 것을 확률 100%로 만들어버리는 남자, 유진현.
뉴욕에 있는 그녀와 서울에 있는 그가 뉴욕의 공항에서 만날 확률 100%. 그가 친구 대신에 나간 선 자리에서 그녀를 만날 확률 100%. 그녀가 다니는 회사를 그가 인수할 확률 역시도 100%. 뭐든 100%. 100%... 100%...... 그가 그렇게 만들어버린다. 마음에 둔 그녀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는 것으로 그 확률 100%를 끔찍하게도 채워버린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라고 웃긴 짬뽕이라고 놀려주고 싶지만 그 남자의 진심은 통해버려서 밉다. 사람이 말이지 안 되는 것도 좀 있어야 사람이지, 안 그래?
“지겨워서.
기다리는 게 지겹다고.
누가 너무, 너무 늦어.
먼저 나가도 내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려.
늦어도 올 것 같아서 기껏 기다렸더니 저쪽엘 간 거지. 난 이쪽에 있는데. 이젠 기다리는 게 재미없어. 늦어도 안 기다려.”

그 남자의 100% 확률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여자. 김세은.
이상하게 자신에게만 까칠하게 빈정거리는 것 같고, 놀리는 것만 같은 그 남자가 보여준 진심 한 자락 때문에 3년의 시간을 타국에서 보내고, 다시 또 3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다. 바보 같은 그녀, 기다린다는 그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함께 나눌 수 있기까지의 시간이 길어, 너무 길어…….
“그럼 기다리지 마세요.“

그리고 여기서 늘 진심을 한발 늦게 알아차리는 캐릭터가 한 명은 등장해야 한다. 진현의 사촌동생 유준현. 세은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의 대상이며, 나중에서야 세은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남자. 그러나 너는 그 순간 바로 아웃이야~! 원래 이런 때는 타이밍이 중요한 거거든~??!!!
“해도 어렵고, 안 해도 어렵고. 사랑, 대체 왜 그래?”
“그러게. 대체 왜 그래?”
“그러니 사랑이지.”
“그러네.”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인 세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교차소설의 아오이의 마음을 듣는 느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친절하게도 쥰세이의 마음까지 세세하게 들려주었으나, 불친절한 작가 고은상은 오직 세은의 마음만 들려주고 진현의 행동만을 보여준다. 어차피 서로가 마주하고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입장과 마음 밖에 모를 테니까 나는 세은이의 말만 듣기로 한다.(어쩔 수 없잖아, 진현의 마음을 안 들려주니.) 그래도 이야기는 충분히 재밌게 서로의 마음을 독자로 하여금 알 수 있게 그려지고 있다. ^^ 그래서인지 세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 그 상황들이나 감정들이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주저하는 마음, 살면서 사랑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 그래서 놓을 수도 쥘 수도 없으니 당연히 아파야 하는 마음.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늘 가슴 한 구석 불안을 같이 안고 살아가는 시간들이 안타깝다. 그 와중에 언젠가는 끝을 내고 달아날 궁리를 하는 그녀의 마음을 인내심의 최강자 진현은 잘도 들여다본다. 놓치지 않기 위해, 기다리다 머뭇거리다 끝나기 전에, 그 기다림을 멈추고 기꺼이 다가가면서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번의 확률을 계산한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 나올 확률을. 오른쪽? 왼쪽? 1분? 2분? ^^

재밌게도 그녀의 마음이나 순간순간의 기분, 사랑을 하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 지금까지 살아온, 살아가는 인생들을 오만가지 맛을 내는 드링크로 설명된다. 조금 우울하다 싶을 때는 알코올이 들어간 아이리시 커피가 위로를 해주고, 인생 자체가 너무 힘들어 괴로울 때는 쓰고, 달고, 시고, 짜고, 매운 오미자차가 공감을 해주고, 달콤한 그 순간에는 청량한 콜라의 한 모금이 톡 쏘아주고, 밤을 새울 수 있게 도와주는 각성제 믹스 커피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연애는 너무 시지 않은, 너무 달지 않은 레모네이드 같다. Not too sweet, not too sour.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음료들 때문인지 어느 계절에 읽어도 어울릴만한 느낌이다. 얼음을 오도독 씹어야 할 것 같은 차가운 주스가 필요한 순간도 있고, 향이 그윽한 홍차가 어울리는 여운이 있고, 기계적으로 느껴지지만 늘 가까이에 있는 커피향이 나는 시간이 이들의 이야기 속에 공존한다. 그래서 이 책은 딱히 계절을 타면서 고를 대상은 아니지만, 굳이 또 한 번 이 이야기에 궁합이 맞는 계절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바람 부는 계절에, 추운 계절에 더 어울릴 것 같다.
딱,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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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마음을 찾습니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정민선 작가가 그려낸 선연한 청춘의 순간들
정민선 지음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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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 그런 느낌이 있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와 방송작가가 쓴 에세이는 그 느낌과 분위기가 다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굳이 비교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읽어본 후의 느낌이 저절로 그걸 잡아낸다. 내가 좋아하는, 한밤의 라디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이미나씨의 에세이와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무언가가 다른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난다는. 그래서 더 내 맘에 들었다는 게 생각이 난다.
이 책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TV음악방송 프로그램의 작가가 쓴 에세이. 근데 왜 나는 자꾸만 라디오 작가 같은 느낌을 더 받았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그렇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소설과는 다른 느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 어쩌면 누구의 가슴 속 이야기를 써놓은 일기를 보는 것 같은…….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그런지 더 부담 없이 읽힌다. 그렇다고, 부담이 없다고 해서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도 못하겠다. 가볍게 휘리릭 넘기고 싶은 책도 아니다.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고 공감하면서, 오래전 우리들을 꺼내게 되는 순간 숨어있던 온기마저 찾아내어 나누고픈 책이다.

주로 심야에 방송하는 음악방송이 그녀의 손을 거쳐 나왔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그리고 드라마음악의 가사까지 그 영역을 보탠 그녀. 그녀가 서른을 앞에 두고 쓴 이야기다. 그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주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어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 그저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듯 조용히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의 지나간 사랑의 이야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생이야기,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이야기, 그래서 다시 또 계속되는 하루하루를 만나야할 이야기.

사랑도 일도 일상도, 소소하거나 크거나, 모든 것들을 다 합한 인생이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에, 어쩌면 이 이야기들이 책으로 태어나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동안에 그녀는 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녀의 마음은, 마음이 생각이 되고 정리가 되고 활자로 연필로 종이에 한 글자씩 한 줄씩 써내려갈 때마다 내려놓음이었을 거라고. 무거운 것들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동시에 내일을 위한 그녀의 마음은 점점 가벼워져서 차분히 호흡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표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집 나간 마음’이라니. 허락도 없이 수시로 집을 나가는 우리의 마음들, 그 마음들을 다시 잡아다가 내 안에 가두어야 안심이 될 것 같은데 조바심이 나지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더 어른이 되고 무언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듯 사라져간 후에는 저절로 다시 들어올 것 같다, 그 마음이. 그래서 안절부절 서성이듯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곧 다시 돌아올 그 마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분이다. 곧.돌.아.올.테.니.까.

그녀의 담담한 이야기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찍힌 듯한 사진들, 인디밴드가 들려주는 세상살이를 초월한 듯한 가사들. 굳이 사랑에 관한 에세이가 아니라, 무언가 간절히 말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는 내 귀로 들어오고. 책 표지의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의 주인공인 그 여자처럼 마음에 바람이 같이 불어온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한밤의 라디오에서도 듣고 싶어진다. 전파를 타고 날아오는 그녀의 마음을 듣고 싶다, 그녀가 들려주고 싶어 하는 노래의 가사와 함께.


슬픔에 대처하는 그녀들의 자세

A는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비누를 잔뜩 칠해서 박박 무지르고 헹구고
‘아무래도 때가 덜 진 것 같아’ 혼잣말을 하며
옷이 다 닳도록 문대고 또 문댔다.

C는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칫솔에 치약을 꾸욱 눌러 짜서는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거품을 물고
3분이 넘도록 치카치카 칫솔질을 했다.

S는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기의 소음에 맞춰 못생긴 춤을 추었고,
낡은 수건을 걸레로 둔갑시킨 후
닥치는 대로 먼지를 훔쳐냈다.

J는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20분간 몸을 불린 후
이태리 타올로 힘주어 구석구석 때를 밀었다. 

 

어떤 일이 되었든지 그게 슬픔이 되고 힘겨운 순간에는 풀어낼 방법이 필요하다. 그녀들은 빨래를 하고 칫솔질을 하고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한다. 나는, 잠을, 잔다. 당신들은 무얼 하면서 그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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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기 신간평가단 활동 안내
<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가을이라는 이유로 책과 더 가까이 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 그저 평소의 마음대로 읽어주면 될 것 같기는 하다. 조금은 더 마음을 말랑말랑해주는 책이 많이 눈에 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간평가단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본다.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니까..."  

이렇게 뭔가를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문구가 있을까. '원래' 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왔다는 작가의 삶 자체를 옮겨놓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정확하게는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누군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이렇게 가슴을 시리게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프다 못해 처절한 삶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마음 아픔이 그대로 드러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는 저자의 말에 감동을 느끼고 싶다.  

 

 


여름이 갔어도, 가을이 왔어도... 추리소설의 끌림은 계속 된다. 쭈욱~ ^^ 

주유소 알바생인 신종민은 30대 중반으로 10억이나 되는 빚을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 어느 날, 그의 앞에 고급 외제차를 몰고 나타난 사람이 뜻밖의 제안을 한다. 일주일간 게임을 하면 모든 빚을 없애주겠다는 것. 

출판사의 책 소개가 참 짧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스포일러가 될 까봐 리뷰 쓰기가 겁난다고 했다. 그만큼 이야기 자체를 직접 읽어보지 못하면 그 흥미진진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읽어봐야 그 끝을 보고 개운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끌어간다는 그 이야기가 궁금해 미치겠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는 여자와 애초에 사랑보다는 물질의 논리에 길들여진 남자, 그리고 그들을 얽고 있는 다중의 관계들 속에서 은밀한 연애가 꿈꾸게 하는 것, 맛보게 하는 것, 또 그것이 돌려주는 것, 남기는 것은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묻고 있는 이 소설은, 매혹적이면서도 파멸적인 연애들이 꽃피고 스러져가는 참혹한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조금은 독한 연애인가? 위험한 연애인가? 소개글 몇 줄로 이 한권의 책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조금은 부드러운 느낌의 연애를 들려주지 않을까 했던 기대감보다는 시니컬한 느낌의 연애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의 연애가 시작하고 끝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이름에서 풍기는 재미와 포스가 있지만, 소개글 한 줄이 유독 눈에 들어오네요. 용의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라니... 어두워 보이지만 분명 진실은 있고, 그 진실을 같이 파헤치려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독자들이 있고. 용의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불륜(두 사람이 싱글이 아니므로)이지만 그 불륜마저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게 하는 매력을 담아놓았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또한 늘 그렇듯 작가가 풀어내는 미스터리와 함께 사회의 한 구석의 어두운 부분을 비춰주는 이야기로 가슴이 덜 차갑게 해줄 것만 같은... 

늦지 않게 다시 만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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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삼거리 한약방
서야 지음 / 가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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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가 오는 날, 엄마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비 비린내가 난다." 하고. 비가 내릴 때 나는 냄새가 비린내로 표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받아들일 때 그 냄새는 비오는 날의 흙냄새가 아닐까 한다. 흐음~ 마른 흙이 내리는 빗방울에 막 젖어 들면서 나는 냄새. 그 모든 것이 '흙냄새' 라는 한 마디로 다 표현될까 싶지만 나는 그 냄새가 가끔은 좋다. 내리는 비는 싫어도 그 흙냄새를 맡고 싶어서 마당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있을 때가 있는 걸 보면. ^^

전주라는 지명, 어느 골목길 모퉁이를 돌면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은, '삼거리 한약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한약방,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서 어른들과 말동무 하면서 침을 놓고 계실 것 같은 강원장 할아버지, 그리고 그 안을 종일 누비면서 놀이터 삼아 살고 있을 것 같은 늘뫼, 한약방과 이어진 쪽문 같은 것을 지나면 마당이 딸린 안채가 나올 것 같고, 마당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평상, 수돗가, 마당 한 구석에서 푸다닥거리면서 제 영역을 표시하고 있을 것 같은 닭들, 조용히 배춧잎을 씹어 먹고 있을 것 같은 토끼들, 하루 종일 구수한 냄새가 막 풍겨 나올 것만 같은 정지간.
이 책은 그렇다. 흙냄새가 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장소에만 어울리는 공간이고 사람들이다. 한약방도 늘뫼도, 그리고 그곳에 다시 채워지는 사람들은…….

스무 살이 넘은 나이인데도 초등학생의 지적수준을 가진 지적장애인 늘뫼.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듯 강원장도 그렇다. 자신이 이 세상과 작별하면 늘뫼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 늘 늘뫼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런 강원장의 또 다른 구원투수 편원장. 일 년에 한 번씩 강원장의 삼거리 한약방으로 진료 봉사를 오면서 늘 계획을 세운다. 늘뫼의 짝이라 생각되는 녀석들을 일부러 진료 봉사에 데리고 와서 삼거리 한약방에 떨어뜨려 놓고 갈 생각만 한다. 그동안 계속 그래왔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늘뫼와 짝지어주고 싶은 녀석을 데리고 왔다. 바로 이준 쌤. ^^ 차갑고 자상하지 않고 배려심도 없을 것 같은 이 남자의 진국의 모습을 어른들은 이미 보았나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늘뫼와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이준쌤 훈훈한 이야기.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서운함이 있다. 뭐랄까 로맨스이되, 가족드라마 같은. ^^ 늘뫼의 하루하루의 이야기가 천방지축 발랄함으로 보이지만 너무 안타깝고, 이준쌤의 그 마음은 돌덩이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산하고,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문명의 그 안하무인격 행동은 웃음과 차분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리고 늘뫼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조연들이 아니라 다 주연들 같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사랑스럽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너무 구수하다. 어디선가 나물 무치는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막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아삭 소리 내면서 풋고추 하나 된장에 찍어 먹는 것 같은 소리도 난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을 늘뫼가 보이는 듯도 하다. 아, 사랑스러워.

중요인물은 세 사람인데(늘뫼, 이준쌤, 문명), 난 오히려 문명의 이야기를 더 듣게 되어서 반갑더라.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 / 서야 / 은목의 가야금 스승으로 나왔던 인물 / 종손어르신의 연적이었던. ^^) 후반부에서 점을 치는 선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들 세 사람은 나무꾼을 놓고 선녀가 하늘로 데리고 올라갔던 세 아이의 운명 같은 관계라고. 그래서는 안 되는 사이인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안심이 되었다면 이상한가?

도시의 번화가가 아닌, 시골이어서 가능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 밟고 서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세련된 표준어가 아닌 촌스러운 사투리여서 더 정겨운 이야기. 아~ 포근해. ^^

근데 우리 집 골목 앞에 30년 넘은 한약방이 있는데, 거긴 이런 냄새 안 나던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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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9-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좋습니다!^^
 
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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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말 너무 시원하고 통쾌하더라. 끝내준다. 나도 이런 반란(?)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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