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올드 - 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의 어쩌다 동거 이야기
홍승우 지음 / 트로이목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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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들과 80대 노부모가 함께 사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새 부모와 자식 세대가 같이 사는 일이 드물어져 버렸으므로. 나 역시 처음에 결혼할 때는 엄마와 함께 살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지만, 따로 살면서 자주 들여다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실제로는 큰 집을 구할 돈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직접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갑자기 80대 노부모를 자기 집으로 모셔오고 함께 산다는 게, 결말이 궁금해지는 모험처럼 보였다.


이들에게는 특이한 사정이 있었다. 저자는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낸 후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치매에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혼자 지내는 게 걱정스러웠던 저자가 자기를 위해서 부모님을 모셔왔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첫 번째 이야기에서, ‘, 이 사람은 엄마 밥이 그리웠구나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나는 아들이 갑자기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된 그 시간이 서로에게 소중하고, 치매를 겪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돌보는 어머니에게 많은 힘이 되었을 거라고 느껴진다. 어디에선가 들은 얘기로는, 치매는 갑자기 환경이 바뀌는 것도 위험하지만, 혼자이거나 외로울 때 더 심해진다고. 더군다나 아무리 남편이지만 노모가 혼자 치매 아버지를 돌보는 일도 많이 힘들었을 거다. 옆에서 다른 가족이 같이 돌볼 때, 치매 진행 속도가 더디거나, 돌봄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 것 같아서다. 가족 돌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많이 이해했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많이 어려웠을 시기. 4050세대가 자기 역할만으로도 힘이 버거웠을 때다. 자식을 키우기에도 힘든 시간, 일을 하면서도 갈등과 고민이 많을 시간, 자식으로 부모 돌봄을 걱정해야 하는 시간. 여기저기 걸쳐 있는 다리가 여러 개 필요한 시기를 이렇게 보낸 저자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곧 겪을 지도 모를 일에 대비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


이 책 속 인물들을 보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치매와 당뇨를 앓으면서 청력과 시력도 안 좋은 저자의 아버지는 항상 주의 깊게 살펴봐야할 대상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듯 돌보고 계셨다. 나의 아버지는 오랜 세월 당뇨가 있었고, 결국에는 당뇨 합병증을 심하게 앓다가 돌아가셨다. 지금의 시아버지는 시력이 굉장히 안 좋아서 오히려 청력이 발달한 경우다. 시어머니 역시 당뇨를 지병으로 갖고 있으며, 나의 엄마는 아프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다. 늙어가는 일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주변 사람을 통해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심각함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니까, 저자의 부모님 모습이 이제 흔하게 보는 우리네 부모의 모습이니까. 억지스럽게 그려지지 않아서 오히려 더 들여다보게 되는 이야기에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정치를 주제로 부모와 갈등하기도 하고, 조심하라면서 여러 번 강조하는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내 맘대로 되지 않은 자식의 문제로 속이 상하는 것도 잘 아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이야기에 저자의 이야기를 웃고 울면서 읽게 된다. 아픈 부모를 돌보는 간병기인가 싶었다가, 서로 다른 세대인 대상을 이해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변화하는 시대에 서로 감정 상하지 않게 소통하며 지내는 과정도 보인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면서 겪는 고충도 다르지 않았다. 빚 갚으려 일하다가 지친 날들이 버거울 만도 하다. 왕년에 잘 나가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 친구가 낡은 갑옷을 벗기 바라는 마음도 배운다. 젊은 사람들 틈에서 노인이 서러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빈번할 수 있다. 이제 고령화, 초고령화 세상이 되면서, 젊은이보다 노인의 인구가 많아지면서, 노인이 되어서 서럽지 않을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그런 세상으로 들어선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어떻게 배우면서 늙어가야 하는지 비춰주는 거울 같은 이야기에 울컥해지는 순간이 많아서, 어제 돌싱포맨 보면서 웃었던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올드 #OLD #홍승우 #트로이목마 #웹툰 #우리시대의이야기

##책추천 #책리뷰 #나도늙어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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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6-27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요새 울적한 책들 자주 보시네요ㅠㅠ
당분간 요런거 말고 코믹/액션/스릴러 이런거 읽어주셔요. 여름이니깐요 ㅎㅎ

구단씨 2024-06-28 14:08   좋아요 1 | URL
울적하다기 보다는 옆에 있는 책들 손을 뻗으니 이렇네요. ^^
사실 주변에서 지금 돌아가시 분, 곧 돌아가실지도 모를 분들이 많아서 심란하긴 해요...
몰입빵빵할 것 같은 추리 소설도 쌓아두었습니다. ㅎㅎ

젤소민아 2024-07-0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당선, 축하드립니다~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복간할 결심 시리즈로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이

루스 렌들의 '활자 잔혹극'이라고 한다.


책 소개글을 보다가 재미있겠군, 하면서 뭔가 이상한데? 싶은 느낌적인 느낌이 피어오른다.

찾아보니 2011년 출간했을 당시 내가 읽은 책이었던 거다. 

리뷰까지 작성해 놨으나, 솔직히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았는데,

문맹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소개에서 사라진 기억이 돌아왔다. 

그것도 별점을 다섯 개나 줬네. 진짜 재미있게 읽었나 보다. 



다시 책 소개글로 돌아가서,

출판사 대표도 말했다시피, 살인의 동기와 살인자가 처음부터 드러난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내가 문맹인 걸 아는 사람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뭐, 살인자는 이런 마음이었던 거지.

살인의 이유가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모른다는 게, 내가 글을 모른다는 걸 아는 자를 죽이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살인의 이유가 될 수가 있을까?


어쨌든 2011년 당시에 이 책은 잘 안 팔렸단다. 왜? 재밌었는데...

그러다가 2022년 김상욱 교수의 인터뷰에서 '혐오를 이기는 책'으로 이 책이 언급되면서 

다시 이 책에 관심이 생기는 독자들의 전화에 힘입은 출판사 대표는 다시 이 책을 내놓기로 했다는, 

이 책이 나와야만 했던, 2024 다시 복간할 결심의 배경이 되시겠다.



책 제목이 '유니스의 비밀'에서 처음 복간되어 '활자 잔혹극'으로,

폐기 처분의 운명에서 부활하듯 '활자 잔혹극'으로 다시 한번 태어난 이 책이 

독자에게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같은 출판사에서 두 번이나 복간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듯하여 이 책의 2024년 운명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 책이 잘 안 되면 복간할 결심 시리즈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뭐 그렇다.

절판되어 중고로 고가에 돌아다니는 책 중에, 진짜 다시 만나고 싶은 책 목록을 채워가는 즐거움도 생길 듯...













#활자잔혹극 #루스렌들 #북스피어 #문맹 #신간추천 #김상욱교수추천 #복간할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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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겠지만, 주변 많은 사람이 5월이 힘들다고 한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5월 5일 어린이날. 

이제 청소년이 된 조카들이 있으니 이건 따로 챙기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

하지만 조카에게는 소소하게 가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고 있는데, 이건 즐거움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힘들다. ㅠㅠ 양쪽 집 어른들 시간 맞춰 점심 식사 예약하고, 밥값도 생각해야 하고.

엄마는 자기까지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한사코 거절하셨지만, 

어버이날이라고 시부모님만 식사 대접 하기에는 기분이 거시기하여 꼭 엄마도 챙겼다.


5월 셋째 주, 엄마 생신.

어버이날 제대로 식사도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엄마 생신은 미리 식사 예약도 하고, 용돈도 드리고. 

엄마가 손을 다친 이후로 집안일 다 하기가 힘들어서, 내가 가끔 가서 할 수 있는 건 하고 오는데,

두 집 살림이 물리적인 시간이 있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고단하긴 하다.


5월 마지막 주.

옆지기와 나의 안경을 새로 맞췄다. 둘 다 이번에는 안경테와 렌즈를 동시에 바꿔야 하는 거라서,

1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했다. 

5월이 너무 힘든 달이라서 미루고 미루다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5월을 넘기지 않고 하게 되었다.

금액 결제하면서 허걱 한번 외쳐주고, 안경을 교체하는 시기에 맞춰서 만기가 될 적금을 들자고 했다.


6월 첫 주.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해서 만나서 식사하고 용돈 드리고, 이런 저런 과일도 몇 가지 사고...

계속 시어머니 집의 소소한 일들을 처리해 드리면서 또 몇 만 원씩 돈이 나갔는데,

그걸 더해보니 몇 십 만원이 되었다. ㅠㅠ 

몇 년 동안 여름에 빙수 한 번을 못 사먹었는데, 나도 빙수가 먹고 싶다.


7월 첫 주.

옆지기 생일인데, 항상 시어머니가 아들 생일이라고 밥 먹자고 연락을 주신다. 곧 연락이 오겠지...

또 밥인가 싶어서, 생각만 해도 피곤해진다.


뭘 기억에 남게 한 것도 없고, 나에게 남은 건 특히 더 없는 듯한데, 진짜 너무 피곤하다.

게다가 100원 수입에 200원 지출인 날들이 계속되고 있어서 그런가. 피곤이 배가 되는 듯.

잠깐의 틈이 나면 습관처럼 눕게 되고, 나도 모르게 초저녁부터 잠이 온다. 


오랜만에 이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옆에 쌓인 책을 보니 생각나는 건 하나.

읽지도 못했는데, 도서관에 반납할 날이 되어버렸다는 거...

진짜 재밌게 읽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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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6-1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진짜... 아니 근데 5월 한달에 생신, 결혼기념일 등등 죄다 겹치는 이유는 또 뭐냐고요 하아.... 휴일다운 휴일이 없어요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

구단씨 2024-06-18 23:46   좋아요 1 | URL
이것만 있는 건 아니고요. 더 있어요. ㅎㅎㅎ
게다가 이제 장례식장 줄줄이 가게 생겼거든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요. ㅠㅠ

잠자냥 2024-06-1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여름에는 꼭! 빙수 사 드세요!!!!! 꼭!!!

구단씨 2024-06-18 23:47   좋아요 0 | URL
그럴 거야요~~ 꼭!!

Breeze 2024-06-13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나를 위해 빙수는 하나 사 먹읍시다! ㅋㅋㅋ

구단씨 2024-06-18 23:47   좋아요 0 | URL
집 근처에 빙수 파는 집이 널렸는데, 그거 하나 못 먹고 있었다니...
먹고야 말테얏!!
 
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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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주택에서 사시는 시어머니의 집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주방 싱크대 위는 빈 곳을 찾아볼 수 없고, 주방 옆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냄비가 쌓여 있다. 안방 침대 옆 옷걸이에는 옷이 가득 걸려 있어서 안쪽에는 어떤 옷이 걸려 있는지 감춰져 있을 정도이고, 냉장고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까만 봉지에 담긴 것들이 두서없이 쌓여있다. 봉지를 열어봐야 뭔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사정이 있어서 다른 동네에 있는 집과 왔다 갔다 하면서, 말 그대로 두 집 살림하시는 시어머니에게는 총 5대의 냉장고가 있다. 그 냉장고마다 가득한 것들은 언제 냉장고를 탈출하는 걸까. 다른 방이 하나 더 있지만, 누군가 와서 쉬거나 잠을 자고 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집의 크기에 비해 많은 짐으로 가득해 보인다. 남의 살림이니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훗날 이 집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올 걸 생각하면 걱정이 가득하다.


소설은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러 온 모토코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하아. 한숨부터 나오는 건, 나 역시 그녀의 시선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어서, 가끔 가는 시어머니 집을 보는 내 마음이 그녀와 같았기 때문이다. 월세가 계속 나가는 시어머니의 집 정리를 서둘러 하고 싶은 모토코는 암담했다. 업체에 맡겨서 처리하자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 본인이 직접 하려고 시작하니 끝도 없이 짐이 쏟아져 나온다. 도대체 이것들로 뭘 하고 있던 걸까 싶을 정도로, 시어머니의 집에서는 한 번도 뜯지 않은 물건부터 오랫동안 입지 않았을 옷까지,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은 또 어떻고. 어쨌든 방법이 없으니 직접 해야만 했다. 빨리 처리하고자 짐을 꺼내고, 큰 가구나 가전은 수거 날짜에 맞춰 내놓아야 하니 차근차근 처리했다. 하지만, 정말 끝이 없었다. 종일 몸을 움직여 치우는데도 치워야 할 짐이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자기가 볼 때는 전혀 쓸모없는 물건들이지만, 이 집에서 나고 자란 남편에게는 다를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사진으로 보여주는 물건들의 처리를 물어보는데, 더 황당한 말이 돌아온다. 버릴 수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해? 집으로 들고 갈 수도 없고, 집으로 들고 간다고 하더라도 놓아둘 공간이 없는데 어쩌려고?


시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불쑥불쑥 친어머니의 집이 생각나는 모토코.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어머니의 집은 꼭 주인을 닮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집안 모습, 딱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있던 손수건처럼 집안의 모든 물건이나 자기 치장을 위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성정을 보고 자란 모토코가 시어머니의 생활 방식을 쉽게 이해할 리 없다. 그러니 지금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한숨만 푹푹 나오는 거겠지. 그때 시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녀가 처리하기 힘들어하던 물건을 지혜롭게 같이 정리해 주기 시작한다. 기부하는 곳에 보낼 물건, 수량 제한이 있지만 사정을 봐주기도 하는 시청의 수거 담당의 일 처리,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는 이웃들까지. 평소 시어머니와 잘 지냈던 이웃들은 암담해하던 모토코의 일을 도와준다. 이런 걸 보면서 그녀는 문득 궁금해진다. 이웃들에게 시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남겨진 짐들을 정리하면서 이웃들이 전하는 시어머니와의 일화는 의외였다. 시어머니의 오지랖이 불편했던 그녀와는 달리, 이웃들은 시어머니의 오지랖으로 도움을 받은 일이 적지 않았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을 돕고, 어쩌면 그들에게 베풀면서 본인도 주는 기쁨을 누렸던 건 아닐까. 시어머니의 소박한 일상은 나중에 발견한 일기를 통해 더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그 일기장 역시 자기 친어머니와 저절로 비교되는 모토코였다. 일기장까지 그 주인의 성격을 닮아있으니, 누군가 남긴 흔적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보는 기분이었다. 타인과의 교류에 감정 기복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던 시어머니의 일기장과 단 두 줄로 그날의 기록을 마무리했던 친어머니의 일기장.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불쑥불쑥 끼어드는 친어머니와의 기억은 또 하나의 시간여행이었다. 죽은 후 남겨진 물건들로 그 사람의 삶을 읽는다.


물건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영혼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영혼이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264페이지)


시어머니가 남긴 물건을 일일이 손으로 직접 확인한 일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시어머니의 방에 있던 수많은 유품은 시어머니의 인생을 응축시켜 보여주었다. (392페이지)


평소 우리 삶의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로 익숙한 가키야 미우의 이번 작품 역시, 내가 걱정하던 그 순간을 미리 보는 것만 같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남겨진 사람이 그 집을 정리해야 할 텐데, 시어머니의 유일한 자식인 나의 남편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나도 남편 대신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던 모토코와 같은 상황을 겪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다 버려야 할 것들이라 오히려 업체를 부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이 가득한 곳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남편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어찌 시어머니 집뿐일까. 혼자 계신 나의 엄마도 언젠가 떠날 테고, 그 집 역시 시어머니 집만큼은 아니어도 정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답답하긴 한데, 막상 정리하면서 느끼는 마음은 사뭇 다를 것도 같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엄마의 공간이면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자라던 나의 공간이기도 하기에. 버려도 되는 건 바로바로 버리고 살자고, 언젠가 쓸 것 같다는 마음으로 쌓아두기엔 언젠가 쓰지 않고 버리게 될 게 너무 많다고 잔소리하는 나이지만, 한 사람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건 역시 쉽지 않으리란 걸, 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토코가 알게 된 마음을 많은 독자가 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남겨진 물건들로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고부 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기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가는 노력으로 또 한 번 인간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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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책리뷰 #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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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5-30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이 책 못 읽을 것 같아요. 리뷰만 읽어도 몰입되서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데요 ㅠㅠ

구단씨 2024-05-31 21:51   좋아요 2 | URL
아닙니다. ^^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일은 없는데요.
그래도, 언젠가 일어날 일을 미리 경험하는 기분은 들었어요.
그것도 제가 항상 걱정하던 일이어서 그런지,
가볍고 편하게 읽히는 문장과는 달리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하더라고요.
 
용의자들
정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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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현유정이 실종되었고, 며칠 후 현유정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단순 실종이나 가출이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변한다. 용의자는 죽은 현유정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고, 현유정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거나 통화를 했던 사람들이다.

유정의 절친으로 보이는 한수연. 둘 다 한부모 가정의 환경이라는 점에서 공감대가 생겨 친해진 것 같지만, 친하면서도 서로를 대하는 마음은 전혀 달랐다. 수연은 유정을 성격을 좋아했지만, 유정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했다. 전혀 다른 아빠를 둔 두 아이의 운명은 어느 순간 달라졌다.

유정의 담임선생 민혜옥. 퇴근 후에 도착한 유정의 문자에, 제대로 응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의 질타를 받는다. 그때 담임선생이 유정의 연락에 적극적인 대처를 했다면 유정은 죽지 않았을까?

유정의 아빠 현강수. 빚 독촉 때문에 유정의 엄마와 위장이혼 했기에, 유정의 부모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유정의 엄마를 돌보면서도 딸의 양육을 소홀하지 않았다. 오히려 딸에게 더없이 다정하고 친구 같은 아빠인 그는 무슨 이유로 용의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승원의 엄마 김근미는 어쩌다 이 사건의 용의자가 되었을까. 아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게 이 살인 사건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 그녀는 단지 아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유정의 남자 친구 허승원.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그 시기에 여자 친구 한 명쯤 사귀고,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행위도 하니까. 그래서 유정을 만났다. 유정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한 번쯤 그래도 되는 시기라는 생각에, 많은 남학생이 눈여겨보던 유정을 여자 친구로 삼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용의자로 보였다. 공부도 잘하는데 성적까지 좋은 유정이었는데, 그런 아이가 살해당했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유정을 대했던 이가 있을 거였다. 친해 보이고 밝게 웃는 모습 뒤로 진심을 꼭꼭 감춘 누군가가 유정을 미워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유정과 친하면서 동시에 미워했던 수연을 의심했었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것 같지만, 부모의 태도가 전혀 달랐던 수연이 유정을 한없이 부러워하면서 질투가 쌓였을 거라고. 하지만 승원이 등장하자 이 아이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사귀자고 했으면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감이 없이 가벼운 태도로 대했다. , 이런 남자 만나면 진짜 고통스러웠겠다 싶은 공감이 저절로 생기더라. 승원의 엄마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키고 싶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지. 너무 다정하고 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유정의 아버지는 그래서 더 의심이 생겼다. 분명 보이는 거 이면에 다른 마음을 숨기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딸을 아끼고 보호했다. 빚 때문에 위장이혼이라고 하지만, 같이 살지 않는 아빠의 상황을 자식 역시 다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달라져서, 등장인물 각자의 마음을 듣는 재미가 있다. 겉에서 보면 다 알지 못할 마음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의심이 생겼다. 형사의 추궁에도 자기를 의심하는 거냐고, 각자의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다 드러냈지만, 그래서 더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알리바이를 댈 수 있는 걸까 싶어서. 게다가 모든 인물이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때마다 오히려 웃음이 났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같은 상황 같은 자리에 있었어도, 말하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일을 처음 본 것도 아니어서 그런가, 이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그 결백이 오히려 의심을 낳고 있었다. 그래서 형사가 이들을 대면 조사하고 추궁할 때마다, 이들의 말을 믿는 것처럼 그 순간의 조사를 끝낼 때마다 다음이 기대되곤 했다. 진실을 향한 추적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을 알기에.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야 말지만, 그 진실을 마주하고 마음만 더 복잡해졌다.


형사가 용의자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가 풀리는가 싶을 때, 그들 각자의 형편과 사정으로 죽은 유정을 대하는 게 달랐다는 걸 알았을 때, 각자의 자리에서 겪는 고충이 그들을 이렇게 무자비한 인간으로 만들었나 싶어서 안타까울 때, 인간의 마음이 이런 건가 하는 궁금증과 이해와 두려움 같은 게 남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인간의 마음이 어렵고, 이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마다 공감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라는 것을.


이 책 소개 글의 어떤 부분처럼, ‘믿고 읽는다는 독자 중의 한 명이 나다. 물론 출간작 모두를 읽지는 못했고, 거의 다 읽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그래서일까, 새 작품을 읽기에 앞서 어느 정도 기대감이 생기곤 한다.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즐기기도 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추리를 하면서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면서 읽게 되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독자이면서 범인을 밝혀내는 형사와 같은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물론, 내가 예상했던 범인과 전혀 다른 사람이 밝혀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눈에 보이는 범인이 드러나기도 한다. 조금만 읽고 자려고 펼쳤는데, 어느 새 끝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을 정도로 가독성은 좋다. 뻔한 내용으로 진행되건 말건, 그 책을 읽는 시간만큼 이야기에 푹 빠져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싶으면서도, 만족감까지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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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추리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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