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기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264
레오 페루츠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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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고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추리소설 같으면서도, 주인공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게 했다. 매 순간 선택의 지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마다 그는 본능이 말하는 대로 움직였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는 갈 곳이 없었다. 다른 선택이 있을 수도 없었다. 목숨을 건 방향으로 걷는 것 말고,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소설은 마리아 크리스티네라는 여인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쌓인 기억을 써 내려갔다. 이 원고는 후에 손자가 발견하고 출간하게 되는데, 18세기에 접했던 다양한 사건이 배경이 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스웨덴 기사라는 제목으로, 자기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 묘한 내용은 독자에게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기대하게 했다. 당연하지. 전투에 참여한 아버지가 그 밤에 올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그리웠던 밤에 딸의 눈앞에 나타난 아버지, 그 아버지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사라졌으며, 딸은 그런 아버지의 방문이 꿈인지 아닌지 헷갈리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오던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만남은 후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남겨진 딸은 그날의 일을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딸의 눈에 보였던 아버지가 아버지였는지 아닌지 의문스러운 상태로 말이다.


1701년의 어느 추운 날이었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두 사람이 추위를 뚫고 걷고 있다. 한 명은 도망 중인 도둑, 다른 한 명 역시 도망 중인 병사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훔치다가 붙잡힌 도둑은 다시 잡히면 안 되는 간절함이 있다. 병사는 명예로운 삶을 위해 참전했으나 견디기 어려워 탈영했기에 용기병들에게 쫓기고 있다. 눈보라와 거친 바람에 시달리면서 지칠 대로 지친 둘은 어느 허름한 물레방앗간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더 움직일 수 없던 병사는 도둑에게 부탁한다. 병사는 귀족 청년 토르네펠트였으며, 물레방앗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대부이자 친척이 살고 있다면서, 도둑을 그곳에 보내 도움을 청하려고 한다. 용기병에게 쫓기며 위험한 것은 탈영병이나 도둑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상황에서 도둑은 탈영병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인생 끝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 운명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귀족의 부탁을 받고 영주를 찾아간 도둑은 어떻게 했을까? 어느 정도 예감했듯이, 도둑은 귀족을 배신하고 영주의 터전에 자리 잡는다. 그의 눈에 들어온 아리따운 아가씨의 약혼자로 둔갑하여 사랑을 이루고 신분도 바꾼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그의 인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오랜 세월 저택의 하인으로 살아온 그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무너져버린 영주의 공간을 부활시킨다. 제때 파종하지 않고 게으른 농사로 영주의 가문은 황폐해졌던 거다. 그곳에 영주는 없고(죽었으니까) 영주의 딸만 있었는데, 주인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그곳은 이미 죽은 땅이 되어버렸다. 그런 곳이, 그가 등장한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귀족(탈영병)의 약혼자와 결혼하여 귀족이 되었고, 아내의 가문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그럼 원래 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도둑을 믿고 영주에게 구조요청을 했으나, 도둑의 거짓말로 주교의 지옥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운명이 나뉜 두 사람의 인생은 각자의 상황대로 흘러간다. 소설은 대부분 주인공인 도둑의 삶을 말하는데, 읽으면서도 한 번씩 떠오르는 궁금증 때문에 들려오지 않는 귀족 청년의 안부가 궁금했다. 도둑은 신분을 바꿔 아내까지 챙기면서 잘만 살고 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귀족 청년은 보이지가 않네.


사실 도둑은 도둑으로 살다가 쫓기고, 귀족 청년을 속이고 그를 멀리 보내고, 다시 성물 도적단으로 활동하면서 부를 축적하지만,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영주를 찾으면서 신분을 바꿨다. 이제 팔자 폈구나 싶을 무렵, 그가 거짓말로 이룬 모든 것에 대가를 치를 순간이 온 거다. 사는 동안 마음 편하지 않았겠지.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 부유한 삶이 그를 안정되게 했지만, 그러면서도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한 감정을 견딜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 건 아닐까? 언젠가 들통나면 어쩌지? 역시 이 세상 나쁜 일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답인가 보다. 그에게 다가온 추격자들을 피해, 어찌 보면 이 불운의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일이 실패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는다. 그가 아끼는 딸까지 말이다. 다시 궁지에 몰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때 반전처럼 나타난 귀족 청년과 아버지가 떠난 후에 밤마다 자기 방에 찾아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딸의 이야기가 연결되는데, 마치 처음에 등장했던 상황의 의아함이 이 지점에서 맞춰지면서 우아한 미스터리가 된 느낌이다. 어느 설명에서는 이 소설을 환상 소설이라고 말하던데, 환상적인 분위기가 소설 전체에 깔려있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결말까지 보고 나면 무릎을 치게 하는 구성이 오히려 더 돋보였다. 장면 곳곳에 잘 녹아든 복선과 어느 순간 조금씩 맞춰져 가는 반전이 잘 짜인 추리소설 읽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스웨덴 역사가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그 커다란 역사 속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먹을 것이 없어서 훔쳐야만 했던 도둑(그는 처음에 어느 저택의 하인이었으리라),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고자 전투에 참여한 귀족 청년(의미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건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금수저로 태어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른 채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문을 이끌 수 없는 의지박약 약혼자(가진 것이 줄줄 새는 줄도 모르고 지킬 힘도 없는 그녀가 정신을 차렸으면 했는데)까지, 누구 하나 온전한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듯하다. 그 상황에 도둑과 귀족 청년의 바뀐 운명이 무슨 일인가 하는 걱정도 잠시, 이야기는 독자를 미친 듯이 빨아들인다. 누구나 궁금하지 않을까? 운명이 바뀐 두 청년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떤 결말로 두 사람의 운명을 마무리할지.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슬픔이 밀려와서 당황스러웠는데, 지키지 못한 사랑과 욕망의 한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사랑을 느끼고 욕망이 있다. 도둑 역시 자신의 욕망에 따랐을 뿐이고, 불안함 가운데 그 욕망의 결과물을 지키고 싶었을 텐데 말이지. 운명의 절묘한 힘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나 보다.


재미있다. 처음과 마지막이 서로 잘 연결된 짜임새가 매력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고전의 재미가 이런 거라면 계속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사랑과 욕망, 운명과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마 내가 도둑이었어도 그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중에 어떤 운명이 찾아와도 지금은 그 사랑을 선택하고야 말았으리라. 레오 페루츠의 다른 작품 곧 찾아 있으리.


#스웨덴기사 #레오페루츠 #소설 #유럽소설 #문학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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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2-03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고맙습니다. 예전에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이 책을 샀거든요. 아무 정보 없이 덜컥 사고 늘 읽어야지 그러고 있는데 구단씨님 리뷰 보니까 너무 읽고 싶어집니다 ㅎㅎㅎ

구단씨 2022-02-03 12:50   좋아요 1 | URL
환상소설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구매할 때만 해도 왕자와 거지의 패러디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막상 읽고 보니 묘한 분위기로 펼쳐지면서 우리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는 인생을 보게 되더라고요.
매력적인 작품인 것 같아요.
 
눈보라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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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가방에 소지품을 챙겨 넣는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넣다 보니 가방이 점점 뚱뚱해진다. 그래도 빠트릴 수 없는 한 가지, 다회용 컵이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들고 다니고, 집에 와서는 씻어두고. 사실 귀찮다. 한번 마시고 쓰레기통에 휙 버리면 그만인 컵이 흔했는데, 무겁게 들고 다녀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깜빡하지 않는 한 꼭 챙긴다. 내 몸이 경험한 불볕더위와 혹한 때문이다.


몇 년 전 여름, 에어컨 없이 지내고 있었다. 집안 공사로 버린 에어컨을 아직 사지 않은 상태였고, 그럭저럭 여름을 견딜 수 있을 거로 믿었다. 하지만 그 여름의 더위는 선풍기와 자연 바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고, 우리는 에어컨 없는 생활을 포기하고 다음 해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부터 마련했다. 지난겨울에는 이 정도로 추울 수 있을까 싶은 공포를 실감했다. 시골집의 모든 게 얼어붙어 이게 집인가 빙하 위인가 싶었다. 엄마는 서울에서 계속 지내시던 상태라 집이 더 추웠을 테지만, 멀쩡한 집 안에 있는 나도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어느 어르신이 한 말이 기억난다. ‘80년을 넘게 살면서 이런 추위는 처음 봐.’ 그 정도였나? 내 나이의 두 배쯤 살아오신 분의 말씀이니 맞겠지.


이런 추위와 더위가 왜 점점 심해지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구의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단순히 기후 변화 하나의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결국은 인간이 지구를 함부로 사용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강경수 작가의 눈보라역시 우리가 오랫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머물던 것들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북극곰 눈보라는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북극에서 태어났다. 사냥해서 먹고살던 눈보라는 빙하가 녹아내려 더는 사냥이 어려워지자 근처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구했다. 읽으면서도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걱정될 무렵, 눈보라는 먹이를 구하려 마을로 내려간다. 사람들은 북극곰의 등장에 공포에 떨고 경계하며 눈보라를 몰아낸다. 그러던 눈보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판다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온몸에 흙을 바르고 다시 마을로 내려간 눈보라를 사람들은 판다로 알고 반가워하며 받아들인다. 좋은 징조라고 눈보라를 쓰다듬고 아끼던 중, 사람들의 손길을 그대로 맞이하던 눈보라의 몸은 발랐던 흙이 점점 벗겨진다. 사람들은 다시 경계하고 분노하며 눈보라를 쫓아낸다.



그림책인데 이렇게 서늘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북극에 자꾸 녹아 없어지는 빙하, 사라지는 빙하로 점점 살길이 막히는 북극곰, 그러다 점점 소멸하는 거겠지. 어디 북극곰뿐일까.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점점 경계가 사라지는 듯하다. 어느 순간 여름과 겨울만 느낄 뿐이다. 우리가 즐기던 봄과 가을은 모두 어디로 갔나. 일 년 내내 거의 같은 계절을 보내는 나라도 있겠지만, 그동안 익숙했던 계절의 변화를 우리가 더는 예전처럼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그립다.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는 사실이 더 두려운 일이 되었다. 점점 높아지는 기온, 점점 높아지는 해수면. 이대로도 괜찮은가?


세상은 편해졌다. 계절 상관없이 과일을 즐기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대며 더위를 날린다.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해줄 난방도 충분하다. 그러는 동안 지구가 망가지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엄마는 요즘 눈이 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어느 순간 나에게 눈은 돌아다닐 때 불편하고 위험한 존재로 각인되었지만, 적당히 내리는 눈은 겨울 가뭄을 해소해준다. 엄마의 텃밭은 메말라서 먼지가 일어날 정도다. 물을 뿌리자니 남아 있는 농작물이 얼 것 같다고 눈이 와야 한다는 노래를 계속 부르고 계시는 엄마. 눈이 내려 밭을 덮어주고, 그 눈이 서서히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 듯이, 이불처럼 엄마의 밭을 덮어줄 눈을 기다리신다.



마을에서 쫓겨난 눈보라는 도망가지만, 마을 사냥꾼의 총은 눈보라를 향한다. 그때 내리던 함박눈 덕분에 눈보라는 총알을 피하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간다. ‘눈보라가 총을 맞지 않고 살아서 도망간 건 다행이지만, 그렇게 사라졌다고 해서 계속 잘 살 수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미 눈보라는 삶의 터전에서 먹을 게 없기에 마을로 내려갔던 건 아닌가. 이제 다시 돌아간 그곳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빙하가 녹아내릴 정도로 기온은 높은데, ‘눈보라를 받아들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왜 그렇게 꽁꽁 얼어붙어 있던 걸까. 인간 세상에서 다가온 북극곰이 그저 두렵기만 한 대상일까? 아직 무슨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작가는 이 이야기로 결말을 들려주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런데, 우리는 왜?’라는 질문으로 끝맺는 것만 같다. 지금을 즐길 수 있다고 다 괜찮은 걸까? 점점 변해가는 기후가 이대로 괜찮지 않은데? 앞으로도 기상 이변이 계속될 것이다. 어떤 나라는 사라질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지구를 떠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든 상황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당연한데, 이렇게 모른 척하기만 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다. 그때마다 우리는 외면하기만 해야 하는지 묻는 책이다. 녹아가는 빙하와는 반대로 얼어붙기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방법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만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같이 상생하는 방법과 의미를 배울 수 있겠지.


예쁜 그림과는 상대적으로 메시지는 깊었던,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많은 생각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읽게 된다.



#눈보라 #강경수 #그림책 #창비 #동화 #그림책 #어린이책

##책추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북극곰 #빙하 #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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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창비세계문학 18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세일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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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의미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깊게 파고들자면 한없이 깊어지는 이유로 간단하게 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역사적 지식이 모자란 탓도 있으니, 일단 소설의 재미에 빠지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로다가) 상상해보자. 네발로 걷던 개가 어느 날 두 발로 서서 걷기 시작하고 인간의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이 존재는 인간일까 개일까?


거리를 떠도는 개 한 마리가 신사에게 간택되어 보호받는다. 떠돌이 개에게 샤리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사람이 먹기에도 비싼 소시지를 주면서 돌본다. 개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신사에게 반하고, 그의 아늑한 집에서 마치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평온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개의 주인이 된 필리쁘 필리뽀비치교수는 닥터 보르멘딸리와 함께 개를 변신시킨다. 그들의 숙원이었던 연구를 성공시킬 수도 있는 그 수술은 인간의 뇌와 고환을 개의 몸에 이식시키는 거였다. 이게 가능할까? 교수와 닥터는 이 수술을 성공시키고 수술 예후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맞닥뜨리면서 대혼란에 빠진다.


하루아침에 개가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면 어떨까? 자기들이 수술한 개가 뇌가 바뀌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하니 얼마나 놀랐을까. 개 샤리끄는 점점 변모하여 인간 샤리꼬프라는 이름도 얻는다. 웅얼거리던 언어는 더 정확해지고, 몸은 더 인간다워졌다. 머리카락과 가슴 털을 제외하고는 온몸의 털이 빠지기 시작했고, 얼굴 형상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네 다리가 아닌 두 다리로 서고, 인간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걷는다. 이 정도면 인간인가? 그러나! 거리의 부랑자처럼 살았던 그의 습성은 변하지 않는다. 여성을 희롱하고, 식사 예절도 없으며, 소변도 아무 데서나 본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장착하지 못했고, 그동안 살아왔던 떠돌이 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거다. 몸에 밴 습관을 바꾸지 못한 채로 외모만 인간이 되어 인간의 삶을 누리고자 했다. 그것도 아주 불량한 방법으로. 그의 외모가 완벽한 인간의 모습도 아니었다. 어정쩡하게, 개와 인간의 중간에서 조금 더 인간에 가까워진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인간과 같다고 여기며 으스댔다. 그의 위치 때문에 이용하는 줄도 모른 채로, 잘못된 방식으로 빠져든 체제에 흡수되려고 한다.


인간의 모습을 했다고 이름도 바꾸고, 주거 서류도 발급받는 샤리꼬프. 분명 교수의 집에서 같이 지내는 인간으로 취급받는데, 그 집안사람 아무도 그를 인간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저 실험의 실패로 남겨진 골칫덩이 정도였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는데,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체제 전환하는 중이었다는 것. 샤리꼬프는 책을 읽고 공산주의 사회를 배워가면서, 그를 조종하는 시본제르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교수와 원수 사이였던 주택관리위원회의 시본제르는 샤리꼬프를 움직여 교수와 대척하게 만들고, 그들이 받드는 사상을 주입한다. 부르주아라는 말이 욕설로 들릴 만큼 공산주의 체제가 심하게 파고들던 시대에, 교수와 닥터는 체제에 시달리면서도 떠밀리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들의 위세에 겉으로는 가만히 있지만, 안으로는 현 체제를 한없이 비판한다. 주택관리위원회 사람들이나 샤리꼬프 같은 인간들을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 공산주의 사회가 되었지만, 오랜 세월 피지배계급으로 살아왔던 이의 습성이 쉽게 바뀔 리가 없다고 여긴다.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었기에, 받아들이는 것도 체하기 마련이겠지.


참으로 황당한 상황인 이 난관을 어떻게 탈출할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뭔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젊어지게 하려고 시작된 연구의 결과가 이렇게 엉뚱한 존재를 만들어냈으니, 교수는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생각한다. 마치 수학의 오답 노트를 작성하듯, 그의 시도가 틀렸음을 인정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고민을 안 할 수가 없겠지. 지금 상태로 샤리꼬프를 놔둘 수도 없고, 급변하는 체제 속에서 자기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니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샤리꼬프는 점점 교수와 닥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고, 언제 그가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처음 거리를 떠돌다가 교수를 만나고 따뜻한 실내에서 생활하던 개, 인간의 뇌를 가지면서 점점 인간을 거스르는 일도 서슴없이 하던 그가 신분증을 가지고 계급을 갖게 되니 부하 직원을 자르겠다며 소리치기도 하는 모습에 의아해진다. 바뀐 체제가 바랐던 변화가 이런 것이었나. 평등을 바라던 그들의 나눔은 이런 의미를 담고 급진적 변화를 시도했던 것일까? 시본제르를 등에 업고 활개를 칠 샤리꼬프의 꼴을 더는 봐줄 수가 없다. 이는 교수가 바라는 삶을 그의 마음과 상관없이 바꿔놓은 세상과 똑같으니 분노할 수밖에.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도 없고, 이대로 무너지기도 싫다. 어설프게 사상에 찌들어버린 샤리꼬프를 어떻게 해서든 정리해야만 한다.


우아, 마지막에 들려오는 교수의 노랫소리에 묘하게 소름이 돋는다. 안도의 한숨 같기도 하고, 웃픈 미소 같기도 하다. 1920년대의 러시아 사회에서 겪는 혼란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급하게 공산주의 체제로 돌입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수의 고뇌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를 그리워하는 교수의 향수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실수를 확인했으니 원래대로 되돌려 놓겠다며 또 한 번의 수술을 시도하는 교수와 닥터. 그게 정답이었을까? 샤리꼬프는 다시 샤리끄가 되었지만, 처음 개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머리의 수술 자국은 더 늘었고, 네 다리로 걷지 못한다. 인간의 언어와 개의 언어 중간쯤에서 여전히 불명확한 말을 쏟아낸다. 인간처럼 걷기도 하지만 인간다운 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개의 모습도 아니다.


물론, 스피노자의 뇌하수체든 다른 어떤 도깨비의 뇌하수체든 접목을 시켜서 개를 아주 고상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라는 문제가 있네. , 내게 설명해보게, 평범한 아낙네라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그와 같은 인물을 출산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인공적으로 스피노자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야. (172페이지)


인위적이고 강압적으로 시도한 일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교수 스스로 보여줬다. 인간 본성을 교정하겠다며 새로운 창조물을 생각하고 시도했으나,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결과물에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이는 당시 사회 변화를 시사하기도 한다. 소설 속 교수의 입을 통해 혁명이 비합리적이고 무자비했다고 말하며 비판한다. 그런 시도로 이상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닿는다. 모든 일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고서는 진정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이 소설로 작가의 의중을 듣는 듯하다. 자연스러운 진화, 차근차근 변화하는 방법으로 시도해야만 모두에게 동의를 얻고 만족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교수의 말처럼, 뇌하수체를 심어서 또 다른 스피노자를 만들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태어난 아이를 스피노자처럼 키우면 되는 일인 것을. 어느 체제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변화를 찾고 싶다면 자연스러운 절차와 방법을 찾는 것만이 답이 될 것이다.


인간의 뇌와 고환을 개에게 이식한다는 발상이 기발하면서도 섬뜩했는데, 이 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의미한지 결과로 보여주면서, 풍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그대로 증명하는 소설이다.



#개의심장 #미하일불가꼬프 #창비 #창비세계문학 #러시아 #세계문학

##책추천 #소설 #문학 #인간 #본성 #혁명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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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로 첫 댓글을 다네요 *^^*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02-11 18: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 책 재밌어요!! ^^

서니데이 2022-02-10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구단씨 2022-02-11 18:1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주말 즐겁게 지내세요~

러블리땡 2022-02-11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02-11 18: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님. ^^

thkang1001 2022-02-11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02-11 18: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일교차 심하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

강나루 2022-02-11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해요^^

구단씨 2022-02-11 18: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강나루님 응원에 좋은 책 많이 읽겠습니다. ^^
 
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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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전부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특정한 걸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죠. (206페이지)


여름의 한가운데, 꼭 장마철의 꿉꿉함이 그대로 담긴 듯한 그 날의 묘사에 빠져들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날, 폭우가 내릴 것처럼 습한 기운이 온 마을을 뒤덮은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을의 축제 같은 시간이 펼쳐졌다.


호쿠리쿠 지방 K. 사람들은 그 집을 배의 창문이 있는 집이라고 불렀다. 명망 있는 의사 집안의 3명이 동시에 생일을 맞이한다. 한 가족의 삼대가 생일이 같을 수가 있을까? 그것부터 그 집안의 신비로움과 위대함을 뒷받침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 개인의 생일이 아니라, 마을의 잔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고, 마을 사람들 또한 그 집안에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의원을 하며 사람들을 치료하던 남자, 없는 듯 조용히 살아가며 자기 역할을 했던 안주인, 그리고 아이들. 그중에 묘하게 매력을 뿜어대던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여자아이의 존재감은 유별났다.


불길한 느낌은 피해가지 않았다. 생일잔치에 모인 사람 중 음료수와 술을 마신 이들이 모두 죽었다. 그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딱 두 명, 그 집안의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와 그 집에 드나들던 유모. 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고, 유모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놨기에 그나마 목숨을 건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병들, 기괴한 모습으로 쓰러져있는 사람들이 그 집안의 마지막 모습을 장식했다. 그 집안의 주인과 손님 구분 없이 죽음 앞에 무너졌다. 범인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고, 거의 포기할 무렵 한 남자가 범인이라고 지목되었다. 그리고 남자는 숨진 채로 유서와 함께 발견되었다.


소설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시간을 다시 들춰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누군가 그때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사건의 진실을 듣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그때 본 그대로를 기억하고 있을 뿐,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아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는 그 마을 출신이다. 무슨 목적으로 그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새삼 다른 시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독자에게도 생긴다. 그날의 일은 미제사건처럼 남아있기 때문에 말이다. 범인은 밝혀졌고, 그가 유서와 죽음으로 알리면서 사건은 끝났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진범이 따로 있을 거로 여기며 그 사건을 기억에서 놓지 못한다. 그리고 한 개인의 기록은 잊혀진 축제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다시 한번 세간의 논쟁거리가 된다.


읽는 내내, 범인을 알면서도 범인이 누굴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잔칫집에 음료와 술을 배달했던 청년. 그가 범인이겠지. 그 청년을 찾으면 이 사건은 모두 풀릴 것이다. 물론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사건이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테지. 이상하게도 그 혼란 속에서 범인이 잡혔는데, 아무것도 개운해지는 게 없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앞을 못 보는 소녀는 이 기가 막힌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였고, 음료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유모는 공범자라는 누명까지 쓰며 긴 세월 아파했다. 모두가 피해자였는데, 누구도 가해자를 알려줄 수 없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인공이 당시 관련자들 인터뷰를 하면서, 이 인터뷰의 결과가 어떤 해결을 말해줄지 기대되는 건 당연했다. 뭔가 드러날 것만 같았다. 범인이 아닌 사건의 모든 것을 보여줄 거로 믿었다.


그 사람은 가끔씩 이상한 말을 했어요.

눈이 안 보이게 된 다음부터 보이게 됐어.

그런 말을 가끔 하는 거예요.

어쩐지 손으로, 귀로, 이마로 보이는 것 같아.

무심히 그런 말을 하곤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있군요.

그러니까 사건이 있고 나서 내가 몇 번이나 그 집으로 찾아가려고 한 건 히사한테 살짝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실은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죄다 본 게 아닌가.

범인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45페이지)


아마 1000조각 퍼즐을 맞추고 있는 기분이 이런 걸까.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데, 범인이든 용의자든 소설 속 등장인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 하나 투명하게 개운해지지 않았다. 마치 비슷한 퍼즐 조각을 여러 개 앞에 두고 어느 위치에 넣어야 하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파란색의 방, 창문, , 하얀 꽃, 백일홍. 반복하며 등장하는 단서들로 온갖 추측과 추리를 해보지만,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뭔가가 들어맞는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터. 그런데도 끝까지 이 소설은 완벽하게 소화되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아무리 풀어도 정답이 나오지 않는, 여러 가지 해석을 정답 처리해야 하는 서술 문제를 푸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읽은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과 비슷하게, ‘,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를 이런 것이었군.’ 싶은 깨달음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분명히 있는데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애매하지만 또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이야기의 세계, 딱 들어맞을 것 같은데 잘 맞지 않아서 계속 그 조각을 찾게 하는.


이 소설 속에서 서술하는 이들 대부분은 어딘가를 걷고 있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그 지역을 다시 찾으면서, 그 사건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만 더는 파고들 수 없는 자리에 서서 관조하듯 그 시간을 기억한다. 분명 그날의 사건은 똑같은데,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제각각이다. 어딘지 묘하게 어긋나 있다. 뒤늦게 들려오는 숨겨진 이야기 속에서 그날의 장면을 끼워 넣는다. 그렇게 우리는 진실을 찾고 있다. 어딘가에 그 진실의 끝이 있겠지. 완벽하게 맞춰진 그림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어느 날의 향수를 꺼내듯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정작 그 이야기의 진실 한가운데로 들어가지는 못한 채로, 이야기의 결말은 각자의 몫이 된다. 어렴풋한 확신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묻어놓기라도 하듯, 읽는 동안 고조된 긴장감은 담담함으로 바뀐다. 이렇게 바뀌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독자의 시선으로 추리하듯 읽어가는 재미와 과거 어느 날의 기억이 불러오는 향수가 맞물려 하나의 소설 속에 녹아들었다. 작가 특유의 분위기로 세월을 거슬러 노스탤지어의 감각에 빠져들게 하면서도, 미스터리소설의 재미도 붙잡는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서서 교통정리 하듯 결말을 들려주지도 않는다. 모두가 자기가 본 것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같은 것을 본 것은 아닐 거였다. 소설은 이 다양성을 중심에 둔 것처럼 들려준다. 누구나 자신이 본 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진실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니 인간이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벌할 수 있을 것인가. 수수께끼 같은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을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완전하지 않고, 기억은 혼란스러울 수 있으며,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축제마저도 잊혀진다.

그때 문득 그런 문장이 떠올랐다.

과거에는 물의를 일으키고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사건조차도 세월에 희해 매장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 그것은 잊혀진다는 것이다.

원래 사건 그 자체로 관계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제 사건을 아는 사람들마저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진실은 시간의 딸이라는 말이 있지만, 과연 시간은 이 사건의 진실을 가르쳐줄 것인가. (352페이지)



#유지니아 #온다리쿠 #온다리쿠월드 #노스탤지어 #향수 #그리움

#비채 #소설 ##책추천 #문학 #진실 #미스터리 #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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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고전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한 가지. 너무 유명해서, 여러 버전으로 접해서 내가 이미 그 작품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 착각 속에는 고전을 많이 읽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도 있다. 고백하지만, 나는 정말 고전 거의 안 읽었다. 이상하게 상 받은 작품들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고전이 재미가 없더라는 거다. 물론 모든 고전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니, 그저 그 작품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오거나 아니거나, 뭐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그렇게 고전을 두고 몇 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새롭게 만나는 고전의 버전이 일러스트였다. 그리하여 이번에 읽게 된 제인제인 에어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 제인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고, 이모의 집에서 길러진다. 평소 왕래가 없던 이모 집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인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객식구 한 명이 늘었지만, 아무도 관심 두는 이가 없다. 이모의 집은 분위기가 살벌하다. 폭력적이고 매일 싸운다. 제인은 이 집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만 지내자고 혼자 마음먹는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아야 했다, 여기서 탈출하려면. 그렇게 제인은 부모님이 바다에 나갔던 것처럼 뱃일을 한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을 때 제인은 뉴욕으로 떠난다. 아마 그 집 식구들 누구도 제인이 떠나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티격태격에 바쁜 나머지 제인이 그 집에서 살았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제인은 뉴욕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작은 방을 구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일자리를 또 구해야 했는데, 용모단정한 이를 뽑는다고 해서 간 일자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라는 대로 갔더니 저택이었고, 집주인 이름은 로체스터. ㅋㅋㅋ 제인이 할 일은 로체스터의 딸 아델을 돌보는 유모였던 것. 유모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는 말에 생각했다. , 고된 직업이겠군. 진상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기 힘들었으니, 가장 오래 버틴 유모가 일주일이겠지. 바로 뒤돌아서서 나갈 줄 알았던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 사실 제인은 어릴 적 혼자 지내며 외로웠던 시절을 아델에게서 다시 본 거였다. 엄마가 없이 아빠와 살지만, 아빠는 바빠서 아델을 볼 시간도 없는 게 현실. 제인이 지금 아델을 보는 게 동정은 아니겠지만, 안쓰러운 어린 시절을 지내는 건 맞지. 어쨌든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점점 아델을 보러 가는 일이 즐겁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친 아델의 아빠, 로체스터!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델의 상황을 아는 제인은 이때다 싶어 로체스터에게 아델의 상황을 말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도 혼자 지낸다고, 친구가 없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고, 학습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로체스터는 과외 선생을 들이라고 했던가? , 뭐든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였군. 하지만 우리의 제인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지. 로체스터에게 유치원의 상담에 참여하라고, 아델을 좀 더 잘 돌보라는 조언을 건넨다. 그러다가 점점, 제인은 심장이 없는 듯 살아가는 로체스터에게 반하고, 로체스터 역시 제인에게 마음이 가는데...


원작에서도 아이가 있었던가? 그게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반전같이 존재했던 비밀의 방은 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아무도 들어가면 안 돼, 큰일 난다, 누구라도 그 방에 접근하려고 하는 순간 저택에서 쫓겨난다고. 제인은 이 약속을 잘 지키지만, 설마 아델의 아빠에게 마음에 뺏길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저택은 어디든 수상한 기운이 풍기고, 로체스터를 바라보는 마음을 자꾸만 심쿵하다. 이상하게 원작보다 뭔가 더 스릴 있고 더 로맨틱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밤에 계단을 오르던 그 남자는 누구일지, 로체스터가 강렬하게 제인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뭔지. , 이거 정말 사랑인가요? ?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고, 배경이 현대로 바뀐 것만 좀 다른 듯하다. 제인이 당당하게 혼자서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로체스터와 관계가 더 진전되는지 보여 주지는 않았지만. , 죽을뻔한 위기를 같이 탈출했으니, 사랑하는 마음에 전우애 비슷한 것까지 더해지지 않았을까? 중간에서 아델이 또 중재자 역할도 잘할 것 같고. 이 정도면 훈훈한 마무리 되시겠다. 읽으면서도 계속 쏠리는 이 소설의 장르는 역시 고전이라기보다는 로맨스 소설 아닌감? 근데 왜 열린 결말처럼 보여줬는지 모르겠군. 둘이 다시 만나서 잘 먹고 잘살았다, 이것까지 확인사살 해주면 안 되는 법칙이라고 있는 건지 뭔지. 문장 말고 그림이 보여 주는 장면들이 확실히 더 설레긴 하다. 막 뽀뽀하는 이런 장면도 넣어주고 말이야.


몇 년 전 언젠가,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키다리 아저씨를 읽은 적이 있다. 이미 내용도 알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눈을 호강하면서 봤던 작품인데, 이거 느낌이 다르다. 문장으로 장면을 그려가면서 읽는 그 느낌이 더 말캉하다고 해야 하나. 주디가 저비스 씨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밀당 잘하라고 중얼거렸다. 일상을 너무 오픈하는 거 아니냐고 주디를 구박하면서 읽었다니까. 나중에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혼자 안절부절.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이미 눈치챘는데, 주디만 몰라.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니까!!! 뒹굴뒹굴하면서 읽다가 발차기를 여러 번, 혼자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읽으면서 주디랑 저비스 씨 때문에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 주디가 너무 순진하게 보여서, 저비스 씨가 빨리 정체를 밝히지 않아서 말이야. 처음 뭣 모르고 펼쳤을 땐 동화를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빠져들면서 이 소설의 장르를 확인했다지. 로맨스 소설이지 뭐야. 홍홍. 아무래도 내 고전(?) 취향은 이런 건가 보다. 읽고 보니 말랑말랑해지는 거? ^^ , 주인공에게 너무 이입하지 말아야 하는데, 읽다 보면 그게 잘 안 됨. 이제 막 변신펼쳤는데, 이 작품은 또 어떠려나. 기대 반 설렘 반. 뭔가 묵직한 여운까지 한꺼번에 와닿았으면 좋겠네.


두 작품 모두 어린 여자아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도, 당당한 삶 속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세 역시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험난한 성장 과정이었어도, 고아 소녀였어도,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완성해가고 있었다는 것. 제인 에어의 원작이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여성의 삶이 남자의 보호 아래 있어야 안정적이라는 것과 그래서 결혼까지 닿아야 완성된 인생이라고 믿었을 때라고 하니, 현대판으로 각색된 제인에서는 로체스터의 보호나 선택이 아닌 제인 자신의 커리어와 당당함으로 인생을 완성해간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외면당한 자기 화풍이 인정받고 전시회까지 하는 것으로 그녀의 자리가 굳어진다. 그리고 사랑도 더 탄탄하게 이뤄가리라고 믿는다. 그게 인생이지.


혹시라도 나처럼, 고전 읽어보고 싶은데 선뜻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비슷한 분위기로 들려오는 여러 버전을 접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네그려. 활자로 빽빽한 이야기가 부담스럽다면, 일러스트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먼저 만나도 충분히 즐겁다. 뭐든, 읽는 게 먼저 아니겠음둥? 읽고 보니 재밌다. 그리고 더 재밌어질 이야기들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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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06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 키스씬은 캔디가 생각난다는.... 분위기 캔디와 테리우스의 키스씬과 분위기 너무 비슷합니다. 그러고보면 제인에어도 결국 캔디장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꺄아악~ 캔디와 테리우스.
이야기의 분위기가 약간 비슷하죠? 캔디형 주인공. ^^

다락방 2022-01-0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키스씬 때문에 보고싶네요 ㅋㅋㅋㅋㅋ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까르르르르~
그림 스타일이 좀 투박(?)한 느낌이 있는데, 로맨스드라마 보는 느낌이 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