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나는 어떤 시간이 있다. 일부러 소환하지는 않았지만, 기어코 떠오르고야 마는 장면들 때문에 울컥해지고야 만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고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아련하게 떠오르고야 마는 기억 때문에 심장이 잠시 두근거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떤 계기로 떠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찾아온 그리움 같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은 대부분 후회를 동반한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면서 가슴을 한번 치고 싶은 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어떤 일,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 같은 거 말이다. 그래도 좋았는데, 그리운데, 그 한가운데는 언제나 아쉬움이 있다. 나이를 먹어가는 걸 이렇게 느끼는 건가.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서 그냥 그런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거나. 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는 처음부터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인 는 열일곱 살 아들과 함께 캠퍼스에 있다. 하버드였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아버지의 자격으로 함께 듣는 설명회였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진실도 있다. 아들이 후회하지 않는 대학 생활을 바라는 마음에 부모로서 건네는 조언과 염려와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의 대학 생활 한 부분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럴 수도 있지.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를 두고 어느 부모라도 그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너무 자연스러운 기억의 부름이 아니겠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보면 이십 대의 시작이었을 테고, 너무도 찬란해서 종종 그리워질 시간이다. 가장 젊고 예뻤을 때, 청춘이라 불리며 힘이 넘쳤을 때, 하고 싶은 게 많을 때. ,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그립다. 하지만 그의 대학 생활을 여유롭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버는 돈은 모두 집세로 들어갔고, 그의 용돈은 항상 모자랐다. 그나마 받는 장학금이 도움이 되는 정도였을까.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간이었고, 그의 청춘과 다른 어려운 시절이었다.


느 순간 그는 아들을 앞에 두고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그의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문학 시험을 대비해 책을 읽던 카페에서 그는 친구가 될 칼라지를 만난다. 수다스럽지만 의미 있는 말을 쏟아내는 칼라지. 그의 힘든 시절 한 장면을 장식하게 될 중요한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다. 칼라지의 몇 마디에 반해버린 그는 단번에 칼리지와 친해진다. 어쩌면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칼리지와 나눌 수 있어서일까. 주변의 화려한 것 가운데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일까.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자기 출신을 부끄러워하고 가난을 힘들어했다. 상황이 비슷한데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칼라지를, 그를 부러워했다. 매력적으로 여기며 닮고 싶었다. 두 사람에게는 프랑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으니, 대화가 얼마나 잘 통했을까.


소설에서 묘사되는 칼리지는 참 당당한 사람이었다. 환경에 주눅 들고, 항상 돈에 쫓기며 지내는 대학 생활이 그를 우울하게 했던 것과 달리 칼리지는 무서울 게 없어 보였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지식이 넘쳐 보였다. 안으로 숨어들기에 바빴던 그가 칼리지를 어떻게 봤을지 상상이 된다. 비슷한 조건인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닮고 싶기도 했을 거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하버드에서 살아가기란 어려웠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허락된 건 그저 하버드 입학뿐이었을까. 칼리지를 알고 그에게는 고향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편안했다. 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통과해야 할 시험보다 카페에서 칼리지와 머무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초라해 보이는 카페에서 마음만은 초라하지 않은 일이 가능했다.


이런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지 않아? 각자의 상황, 삶이 다르기에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비슷한 시절을 지나왔다고, 현실에 치여 살다가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에 눈길을 뺏기기도 했다고 말하면 어떨까. 나는 눈앞의 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마음은 너무 힘들어서 좀 쉴 곳을 찾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럴 때 우리가 보고 만난 누군가는 굉장한 의지가 된다. 나와 비슷해서 바라보고 연민을 느끼면서도,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길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혐오스러운 대상. 가까워서 편안한데 그게 불편해서 멀어지고 싶은.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그곳에 기대고 싶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야 할 텐데, 그 정도의 시간을 건너왔다면 그 존재가 지금 내 옆에 있어야 맞을 것 같은데, 없다. 그 존재는 이미 사라진 그 시간과 함께 나에게 남아 있지 않다. 잘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지금을 살아가는 일에 다시 바쁘다고 핑계를 대면서. 일부러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럴 기회조차 없이 살아왔다. 우리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런 책을 만나면, 주인공의 기억과 시간을 같이 거슬러 오르면서 찾아오는 이 감정에 잠깐 묶이곤 한다. 후회를 가득 안고서. 하아.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하버드 스퀘어 272페이지)


아마도 칼라지의 인생을 조금 엿본 다음에는 이 사회의 차별과 적대, 세상사에 무관심했던 그 자신을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거다. 거리를 떠돌고, 다른 이의 집에 얹혀살면서, 택시 운전을 하고 시를 쓰는 칼라지. 물론 칼라지에게도 험난한 사건이 많았고, 현재에도 칼라지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는 게 맞겠지. 그런데도 그와 닿을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두 사람의 우정과 끈끈함이 오래 갈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두 사람의 길을 너무 다르게 열리고 있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세상에 맞선 칼라지와 하버드의 삶을 인정하며 꾸려나가려는 그는 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오히려 서로를 알기 전보다 멀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미래를 하버드에 걸었으니까. 그의 인생이 칙칙한 카페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칼라지의 사이다 같은 말에 계속 빠져 있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 현실은 하버드 안에 있었고, 그가 올라야 할 곳을 바라보는 게 그의 삶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하버드 광장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너무도 닮았던 칼라지와 자신을 다시 보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대로 뒤돌아선 자신을 혼내고 있을까. 그도 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다른 선택이 그에게 최선이 될 수 없었음을.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도. 칼라지와 제대로 된 인사를 못 했기에, 풀지 못한 숙제로 오랜 세월 그의 가슴에 남아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그의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누가 묻지 않았지만, 오늘의 그가 불행하지도 않았지만, 그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건 그만이 알겠지만, 그와 너무 닮은 한 사람이 그렇게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종종 꺼내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세상에 맞서고 싶은 자신을 대신했던 사람, 그러지 못하고 숨죽인 자신의 모습을 아는 유일한 사람,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그저 스치듯 한번 보고 싶은 사람.


누구나 비슷하게 겪는 어떤 마음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립고 아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혹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의 선택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도 자꾸 생각나는 건 무슨 마음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이렇게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고. 그냥,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머물러 있지 않은 어떤 마음, 아마도 계속 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겠지.


안드레 애치먼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그가 가진 배경이 많이 담겼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같은 배경을 가진 이가 소설을 이끌어가면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소설에 잘 녹아 있다. 이방인과 방랑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던 시절의 그, 그런데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렀던 그의 경험이 이야기의 바탕이 된다니 소설이 더 생생하게 들린다. 물론 소설에 담긴 모든 것이 그의 인생은 아닐 것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면서 독자에게 그 경계를 서성이게 한다. 아마 전작도 그랬을 테고, 다음 작품도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무렴 어떠하랴.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의 시간을 듣는 일은 행복하다. 독자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능력이 타고났다.


 









#하버드스퀘어 #안드레애치먼 #하버드 #비채 #소설 ##책추천

#회상 #그리움 #아쉬움 #선택 #이방인 #이민자의삶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입니다.

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를 읽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말씀 남겨주세요.

제가 두 권을 가지고 있어서 한 권을 나눔하려고 합니다. 

좋은 책 같이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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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1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드레 에치먼 작품은 아직 안읽어봤는데 리뷰를 보니 완전 좋을거 같아요~ 감정을 흔든다니 ㅋ 이번달에 꼭 한권은 읽어봐야 겠습니다 ^^

2022-02-16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2-16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오늘까지 기다려 보시고 안 계시면 저에게
보내주시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아니 새파랑님 보내달라는 뜻인가요?
표현이 어떤 의민지 잘 모르겠네요.
구단씨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ㅎㅎ

2022-02-16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2-1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오늘 책 받았습니다.
나눔해 주셔서 넘 고맙습니다.
구단님 메모 글도 예쁘구요.ㅎ
즐겁게 읽도록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mini74 2022-03-0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넘 재미있게 읽은 책 ㅎㅎ 구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3-08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립니다~! 좋은 책, 좋은 리뷰였어요^^

그레이스 2022-03-08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3-08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하라 2022-03-08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희선 2022-03-08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 님 축하합니다 안드레 애치먼이 쓴 이 소설에는 자기 경험이 더 많이 들어간 듯하네요 사람한테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자꾸 떠오르는 때가 있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독서괭 2022-03-0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2관왕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2-03-09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2관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 제4의 벽 에디션 세트 - 전8권
싱숑 지음 / 비채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소설 같은 이야기를 언제 떠올리는가? 오늘의 현실이 팍팍할 때, 어떤 달콤함을 상상하고 싶을 때,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뭐 이런 거 아닐까? 하나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잠시 고통을 잊고자 할 때 몰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나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며, 우리 앞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


처음으로 소설을 읽은 순간을 기억한다. 손가락 끝에 닿는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 드넓은 백색의 대지에 꽃핀 까만 활자. 내 손으로 접어 넘기던 페이지의 감촉.

활자를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활자의 행간에 있단다.

책을 좋아한 어머니는 가끔 그런 말을 했는데, 적어도 어린 내게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활자와 활자가 만든 빈틈. 그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나만의 작은 설원(雪原). 그 공간은 누군가가 들어가 몸을 누이기에는 터무니없이 좁다랗지만, 숨기 좋아하는 어린 나에게는 꼭 맞는 장소였다. (8105페이지)


주인공 김독자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놓을 수 없던 연재 한편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잘 못 해서, 다음 회의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연재를 못 보는 나 같은 독자도 있지만, ‘김독자처럼 한 회 한 회 마음을 다해 빠져들면서 기다리는 독자도 있다. 그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의 연재를 기다리는 것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다릴 희망이 되는 일이다. 그가 몰이하면서 읽는 그 소설은 그의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한 처방전과 같다. 거의 십 년 동안 그는 멸살법을 읽으며 견뎌왔다. 처음 그 소설을 읽는 독자는 많았으나, 연재가 계속되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김독자는 그 소설의 유일한 독자로 남았다. 이럴 수 있을까?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이런 상황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버티는 작가나 그 글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독자나, 이 상황은 말 그대로 일대일, 유일한 작품에 유일한 독자 아닌가. 작가는 마지막 연재를 끝내고 김독자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김독자가 작가의 선물을 받은 그 순간, 그의 현실 속 세계가 변한다. 멸살법 속 이야기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SF영화 속 한 장면처럼, 도깨비의 등장과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션이 주어지는 상황이 몰아친다. 지하철 속 사람들은 그가 소설 속에서 본 인물들과 맞춰지고, 이제 어떤 상황이 이어질지 그는 금방 눈치챈다. 하지만 그가 내용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이 상황이 쉽게 풀어지지도 않는다. 어쨌든 소설 속 상황과 거의 일치하면서 흐른다고 해도 그가 그 순간을 해결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의 현실과 다른 세계, 하지만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게 비슷한 이 세계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마치 실감 나는 게임이라도 하듯이, 그들은 주어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얻는다. 이 코인은 후에 그들이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얻는 데 사용된다. 매번 시나리오를 수행하고 완성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성좌들에게 코인도 받는다. 그들의 능력을 활용할 배후도 선택하고, 때로는 그들의 능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각자의 스킬을 장착함으로써 위기를 탈피할 무기로 쓴다.


흥미롭다. 등장인물 모두 다양한 캐릭터였다. 어린아이부터 아이 엄마, 학생, 군인, 조폭까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어쩌겠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해서든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면서 그 결말에 다다라야 했다. 그 가운데서 김독자의 활약은 빛난다. 그는 이미 이 소설을 읽었던 사람이고, 이 소설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였으니,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응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스킬, 그 스킬은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무기가 되고, 김독자의 스킬은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txt)였다. 이미 읽은 소설을 금방 떠올릴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이 가진 무기, 생각 등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김독자는 이 세계의 시나리오는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인물이 된다. 많은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누군가를 따르면서 목숨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김독자를 따른다. 그의 스킬은 매번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데 필요했으며,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그런데 뭔가, 그가 아는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소설 속에서와 뭔가 다른, 스킬의 속도와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 이제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나리오는 클리어될 것인가. 누가 살아남아 이 소설을 완성할 것인가.


무수한 활자들이었다.

활자는 모여서 단어가 되었고, 단어는 모여서 문장이 되었다. 문장은 모여 문단이, 다시 문단은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는 곧 사람이 되었다. (8254페이지)


읽는 내내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자꾸 그려진다. 처음 그들이 갇히듯 사건이 시작되었던 지하철, 여러 다른 지하철역에서 완성해가는 싸움의 결말들, 소설과 다르게 흘러가는 장면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매번 위기를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긴장감은 고조된다. 목숨을 건 일이니 그들이 살아남아 이 시나리오를 끝낼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코인을 날려주는 성좌들은 또 어떤가. 그리스 로마 신화, 건국 신화 등 국적 가리지 않은 많은 신화 속 인물이 성좌로 나오며 신비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물론 이 성좌들의 능력 또한 대단하다. 각자가 살아남는데 굉장한 힘이 되어주니까. 거기에 각자가 가진 스킬을 활용하면 살아남는 건 노력의 결과로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중에서 능력을 더 보이는 김독자의 활약이 대단한 것도 당연하다. 이 소설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십 년의 세월 동안 이 소설연재의 유일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게, 주인공 김독자가 이 세계를 구할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다. Part 1 보는 것도 이렇게 흥미진진한데,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떻게 펼쳐질까. (Part 2 빨리 내주세요) 김독자가 마주한 인생의 장르가 바뀐 순간은 이제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조심스러운데,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고 완성하는 데 집중하면서 읽다가 8편에서 만난 김독자와 엄마의 이야기는, 그동안 살아온 그의 시간과 그가 연재되는 소설에 빠져들면서 읽게 되었는지 공감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현실 회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고단한 현실을 이기고 건너갈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많은 것에 빠져들고, 꼭 생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몰입하고 싶은 게 있다. 그 순간 위로가 된다면, 이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고통을 마주할지라도 말이다.


매력적인 인물들, 역사와 신화를 가미한 요소들, 이야기에 빠진 세계, 시공간을 초월한 이 소설에 빠져들 이유가 충분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 소설이 소설로만 남지 않을 매력이기도 하다. 김독자가 이 소설의 결말까지 어떻게 이끌어갈지, 어쩌면 그가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소설을 연재하든 출간하든, 작가가 있다면 독자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작가가 없다면 독자를 이야기를 만날 수 없고, 독자가 없다면 작가의 이야기는 읽히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소설의 역할을 더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왜 소설(이야기)을 읽는지, 그 소설 속에서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 안의 인간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남기게 될지. 당신은 소설에서,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찾고 있는지...


이번 ‘PART 1(8)’은 전체 이야기 중 약 1/3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건 페이퍼백 에디션이고, 올해 여름 페이퍼백 에디션 PART 2-3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거기에 하드커버 에디션 PART 1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어마무시한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오랫동안 이 소설 출간을 기다려온 독자에게 기쁨이 되겠습니다요. ^^




#전지적독자시점 #싱숑 #비채 ##책추천 #SF #소설 #문학

#네이버시리즈 #소설연재 #웹툰 #전지적독자시점PART1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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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레이디
윌라 캐더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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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브래스카의 작은 마을 스위트워터에는 포레스터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저택이 있다. 평범한 그 집에 포레스트 대령과 그의 아내가 산다. 누구라도 그 마을을 지나면서 머물 수 있는 곳, 마을 사람 모두가 우러러보는 곳이기도 하다. 철도사업으로 부유한 포레스터 대령의 집을 부러워했을 수도 있겠지. 사람들이 보는 그 집은 그런 부러움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대령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항상 환대했으며, 포레스터 부인은 집을 둘러싼 숲에 찾아오는 아이들도 반갑게 맞아주며 가진 자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아마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부부를 좋아했을 것 같다. 그렇게 그 집에 판사인 삼촌과 함께 드나들던 소년 닐. 그는 상냥한 포레스터 부인을 좋아했고, 존경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부인을 보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던 중 포레스터 부인을 향한 그의 마음은 변한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단순히 외모의 변화만은 아닐 테다. 우리가 가진 생각과 시선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는 것,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영향이 있는 어떤 것에 시선을 두기도 한다. 닐이 바라보는 포레스터 부인이 그랬다. 그의 눈에 부인은 아름다운 여인이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대령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내로 보였다. 대령 역시 아내와 잘 지냈다. 누가 봐도 두 사람 사이의 불화나 나이 차이 때문에 오는 불안함 따위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포레스터 집안이 쇠락해가고 대령의 몸이 아프고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인의 마음은 예전과 같지 않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제 올 게 왔군 싶을지도 모른다. 나이 많은 남편을 돌보는 일이 이제 지겨워졌겠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혀를 차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상황이 변하면서 생기는 시골 생활의 지겨움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춤을 추는 즐거움도 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그녀가 겨우 한숨 돌리는 시간은 남편의 돌봄을 잠시 맡겨두고 집 근처의 물가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겨울이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지내고 오는 삶이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고 갇힌 듯이 사는 것을 상상해보라.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그녀의 이 욕망을 본 순간 닐의 시선도 변했으리라. 내가 아는 부인은 저런 사람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부인이 저럴 수가 없는데? 뭐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어린 그가 다 알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이제 서서히 보게 될 것이다. 누구라도 다르지 않을 그 마음 말이다.


그러면서 점점 부인과 상대적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령이었다. 처음 대령을 봤을 때는 그저 나이 많은 남자가 돈을 무기로 젊은 부인과 사는 건가 싶었다. 그에게는 두 번째 아내였고, 시골의 조용한 생활에 익숙한 동네 유지 정도로 보였는데, 그가 참 어른이구나 싶어 보였던 일화가 그를 추락시켰음에도 그는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으로 다시 보인 거다. 그가 임원으로 있던 은행이 파산하게 되자, 그는 집을 제외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며 은행 고객을 지켰다. 사람들의 신임을 다시 굳건히 하면서도 그는 가난한 삶으로 들어왔다. 그런 선택을 누군가는 말렸을 테지만, 그는 인간으로 우선 돌봐야 하는 것을 선택했다. 포레스터 부인은 그의 선택을 존중했지만, 가난한 삶은 그녀가 원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령을 떠나지 않고 돌봤으며, 대령 옆에서 아내의 역할을 해냈다. 포레스터 플레이스에 찾아오는 많은 남자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대령은 그녀를 지켜보았다. 어느 날 문득 닐이 느꼈던 것처럼, 아마도 대령은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침묵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모두가 그녀를 아름다운 작품처럼 여기던 것도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던 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곁에 계속 머물기 위해 고요히 있던 것일까.


그 무엇도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이 옆에 있어서, 남편은 아내의 옆에 있어서 존재감을 갖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지나고 보니 다시 보인다. 포레스터 부인은 대령의 옆에서 아내의 모습으로 있던 게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아마도 소년 닐이 처음 포레스터 부인을 마음에 두게 되는 건 이 장면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소년의 눈에 자연스럽게 보이던, 아내가 남편의 옆에 머무르는 게 익숙한 그런 거 말이다. 부인은 그곳에서의 삶을 힘들어했는데, 그녀의 성격에 맞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감당할 수 없던 것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인생과 자꾸 멀어져가는 불안함에 어느 곳에도 마음 두지 못했겠지. 대령은 점점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가고, 포레스터 플레이스는 쇠락해가며 남은 게 없고, 부인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서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했으니. 닐이 바라보는 부인은 점차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추한 인간으로 보였던 건 아닐까. 누가 봐도 비열한 청년 아이비와 함께 있는 부인을 보는 닐의 마음은 절망이었으리라. 부인이 그럴 수는 없다는 확신, 그런 부인에게 그동안 가졌던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은 순간을 견딜 수 없었기에, 그는 떠났다. 자기 인생을 살아야 했기에.


세월이 흐르고 닐에게 들리는 부인의 소문은 좋을 수만은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도 마을을 떠났고,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지. 아니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거나. 누군가 그녀를 돌봤다면 잘 돌봐줬으면 좋았겠다 싶은 바람만 남았을 즈음, 그에게 들려온 소식 한 자락은 그를 안심시킨다. 그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그 시간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는 다시 그녀를 찾아갈 수도 없었을 텐데, 그 불편한 마음을 다독여준 그녀의 안부는 오히려 그를 더 성장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는 어떤 것을 다시 느꼈으리라. 치열한 삶 앞에서 포기하거나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누구나 그런 순간 앞에서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음을, 한 사람의 인간에게 담긴 아름다움은 한 가지 모습은 아니라고. 그녀를 향해 독처럼 뱉은 말을 되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썩은 백합이 아니라 살아가려고 애쓰던 질긴 잡초였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를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 역시 각자의 몫이려니. 대령이 부르던 그 아가씨를 우리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가씨의 모습은 삶이 다양하게 만드는 거라고. 인간에게는 살아가려는 욕구, 의무가 있으니 말이다.


남자에게 의지하는 여성의 삶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건지도 모르겠고, 남편의 그늘에 머무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던 시절의 시선을 반박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포레스터 부인의 인생이 대령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은 없는데, 주변의 남자들이 보는 그녀는 위대한 남자들 모두의 과부라고 여기곤 했던 것. 한 시대가 끝났다고, 그녀의 울타리가 사라졌다고 그녀 스스로 소멸하기를 원하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대령(남자)이 없는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마을을 떠난 그녀의 생활 역시 달라지지 않았지만(다른 남자를 만났다), 닐이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들으면서 점점 그녀의 삶과 인간의 변화를 알게 된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다른 누군가를 예술품으로 바라볼 수도 없고, 인간 역시 단순하지 않다. 삶이 만드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그 대상이 당신의 첫사랑이어도 인정해주기를,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당신은 그녀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 시절의 그 장면을 다시 그렸다.


아직 살아 계실까?” 닐이 물었다. “만나러 가볼 생각마저 드는데.”

아니, 3년 전에 돌아가셨어. 그건 확실해. 스위트워터를 떠난 다음에도 어디에서 살든지 매년 현충일에 대령님 무덤에 꽃을 놓아 달라고 그랜드 아미 포스트에 송금하셨거든. 3년 전에 영국인 노인네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포레스터 대령님의 무덤을 앞으로도 계속 관리해 달라며 수표를 동봉했대. ‘내 아내, 메리언 포레스터 콜린스를 추모하며라고 적혀 있었고.”
그럼 부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핌을 잘 받았다고 확신해도 되겠구나.” 닐이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네가 그렇게 느낄 줄 알았어.” 따뜻한 감정의 물결이 얼굴을 스치며 에드 엘리엇이 말했다. “나도 그랬거든!” (200페이지)



#로스트레이디 #윌라캐더 #소설 #문학 #첫사랑 #코호북스 #위대한개츠비 

#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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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책이 있어서 도서관에 갔다.

이곳 도서관은 예전에 예약 대출이 가능했는데, 

그러다 보니 직접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불편함도 발생하는 지라, 

예약 대출 시스템을 없애고 도서관 이용 시간을 연장했다.

그리하여, 상호대차 서비스는 잘 되어 있는 편이고(시간은 하루이틀 이상 걸리지만 괜찮음),

신간 도서 입고가 느린 편이지만 그럭저럭 기다릴 만한 책을 신청하는 편이기에 괜찮은데...


아, 도서관에 비치된 도서를 가지러 갔는데 

바로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 대출해가는 걸 보는 건 너무 괴롭....ㅠㅠ


검색해보니 여러 도서관 중에 딱 한 곳만 비치된 책이더라.

그것도 이제 막 입고된 도서였고,

마침 다른 책도 필요한 지라 겸사겸사 일부러 거기까지 갔는데,

바로 서가 바로 앞에 도착했는데 바로 내 앞에서 서성이던 어떤 사람이

그 책을 손에 들고 있어서 막 힘이 빠지더라는.

이걸 뺏어올 수도 없어서 더 허망했다. 자주 가는 도서관 아닌데, 일부러 멀리 있는 그곳까지 갔건만...

집에 와서 바로 가까운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다음달에나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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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0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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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14: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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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조현병
나카무라 유키 지음, 김성우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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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조현병이라는 말을 뉴스에서 자주 보게 됐다. 주로 나쁜 소식에,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이 다치게 될 때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해자가 이런 질병을 앓고 있었다면서 범죄의 원인에 갖다 붙이던 병명이 아니었던가. 그래서인지 조현병에 관한 인식이 매우 나쁘게 각인된 듯하다. 내 주변에도 조현병 앓는 사람이 있었는데, 좋은 관계가 아니어서 그런지 나랑 상관없는 미친 사람쯤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조현병이 100명 한 명에게 있는 질병이라는 말에 이 병이 다시 보인다. 누구나 갖고 있을 질병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단지 진단만 받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나 조금씩 조현병 증상이 있다는 말로 들렸다.


엄마 본인이 이 병에 관해 잘 알고 싶지만, 항상 약을 먹다 보니 설명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읽어도 금방 잊게 된다고. 게다가 전문 서적은 너무 어려워서 읽을 수조차 없었다는 말에, 저자는 엄마가 오랫동안 앓아온 조현병에 관해 조금 쉽게 설명하는 책을 보여주고자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저자의 엄마가 34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기에 가능한 생생함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역자의 아내 역시 조현병을 앓고 있다. 아내를 위해 조현병 관련 서적을 찾다가 이 책을 만나고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사정이 있다.


백화점 직원 수진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사회초년생 주인공의 현재 상황과 조현병 발병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수진은 친구에게 애인을 뺏기고, 직장생활에서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는데, 그게 참, 사람 불안을 최고조로 올려놓는다. 누군가 자기를 자꾸 쳐다보는 것 같고, 자기를 두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것 같고, 안절부절못하고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또다시 실수할까 걱정되고.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누군가 계속 나쁜 말로 공격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 서기도 어렵고, 자꾸만 집안에 숨어들게 되고, 과격한 성격도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의 도움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 진찰받지만, 그 후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주인공이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면서 본격적인 조현병 진단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조현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풀어놓는다. 저자가 겪은 시간을 바탕으로 했는데, 일단 병원에 간다는 것으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인데, 문제는 그 후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우왕좌왕한다는 거였다. 진찰과 처방된 약을 먹고, 그 후에는?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사회적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지, 계속 이렇게 약에 의존하면서 사회생활이 멈춰 있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가 지속한다. 무엇보다 조현병이라는 게 무엇인지, 왜 발병하는지 알 수 없던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치료의 시작을 연다. 저자는 이 만화의 주인공 사례로 수진과 그 가족이 어떻게 이 병을 마주하고 감당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조현병에 관한 선입견과 진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조현병에 관한 여러 가지 설명을 굉장히 상세하게 들려주는데, 이런 설명이 실제 조현병을 앓는 환자와 가족에게, 그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알 것 같다. 오랜 세월 경험한 저자의 상황이 이런 비법을 만들었다. 조현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내비게이터 유미네 가족을 등장시켜 문제 원인과 대처 방법, 조금 더 잘 건너갈 수 있는 팁을 정리해서 알려준다. 갑작스럽게 재발할 수도 있고,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서 약 복용을 중단했다가 악화하기도 하고, 약 복용의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이 문제와 마주한다. 이 상황에 더 어렵고 힘들어지는 생활에 도움을 받고 활용할 방법도 알려준다. 하나씩 차근차근, 자기 병과 마주하며 나아갈 방법을 적용해보면서, 잃었던 일상을 되찾고 살아갈 수 있는 귀한 팁이 가득하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목자에서 이미 그 섬세함도 보인다. 크게는 조현병의 증세와 조현병을 알아가는 과정, 치료하면서도 조현병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경험자로 들려주는 방법은 신뢰가 생긴다. 특히나 이 병이 무서운 게,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힘들게 하면서 병을 잘 치료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에 다시 악화할 수도 있는, 언제든 급성기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러니 꾸준한 관찰과 치료에 힘써야 한다는 것. 말로 하니까 쉬워 보이지만, 실제 이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몹시 어렵고 힘든 시간일 테지. 중요한 것은 조현병이 인류의 태초부터 현재까지 유병률이 1%라고 하니,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책 속의 말처럼, 조현병은 인류가 종으로 생존해가는 데 필요한 질환이라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많은 병이 스트레스로 시작된다고 한다. 흔하게 겪는 위장 질환, 불면증, 폭식, 암 등 우리 육체에 생기는 병이, 마음과 정신의 시달림 때문에 생긴다고 하니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어 우리 몸을 이룬다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일본어판을 우리나라의 현실과 상황에 맞게 많은 감수와 검토, 확인과 취재를 통해 가다듬었다고 한다. 조현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과 주변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조현병을 바라보던 선입견을 많이 버렸다. 조현병은 단순히 정신 질환이 아니라 뇌의 병이며, 적절한 치료로 회복 가능하다고 한다. 누구보다 주변 사람의 도움과 전문가의 치료가 필수라는 것도 알았다. 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사회적인 문제임이 분명한 것을 이미 많은 사건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사회적 시스템이 많이 갖추어져, 우리 일상에서 빈번하게 찾아오는 이 병을 치료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조현병의 이해와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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