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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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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서전을 읽는다는 건, 그동안 나의 책 읽기 범주 안에 ‘반드시’ 포함되진 않았다. 작가가 쓴 글을 좋아하되, 그 이상의 것까지 굳이 들어야 할 필요성까지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 어떤 건지... 더욱 이 책을 앞에 두고 고민이 컸다. 살만 루슈디의 책을 눈앞에 두고도 완독하지 못했기에, 그의 자서전이 나에게 편하게 다가올 거란 기대가 없어서다.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예습이 되지 않은 수업시간을 맞이하는 것 기분? 좋은 작품들이란 얘기는 귀가 따갑게 들어왔으니 꼭 완독해야 하는데... 뭐, 그런 부담에 펼치기가 어려웠는데, 앞부분에서부터 그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슬람교와 예언자 무함마드와 쿠란을 모독한 ‘악마의 시’의 작가에게,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알면서도 출판에 관여한 모든 자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어디서든 그자들을 발견하는 즉시 처단하기를 모든 무슬림에게 촉구합니다.” (16페이지)라는 협박에 엄청 놀랐는데, 그 놀라움을 바로 재치로 받아들이게 하는 다음 장에서 이미 그 부담은 사라졌다. 통신원이 말했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호메이니는 미국 대통령에게도 금요일 오후마다 사형선고를 내리거든요.” 방송이 시작되고 호메이니의 위협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루슈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더 비판적으로 쓸 걸 그랬어요.”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그는 그렇게 말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17페이지) 그의 작품 『악마의 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을 통신원은 별일 아닌 것으로 넘기게 하는 말투,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진심으로 말하는 루슈디의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웃음이 먼저 나온다. 아, 이런 자유와 용기가 그의 글을 더 빛나게 만들어주고 있었나 보다 싶다.

 

그의 소설 『악마의 시』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출간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고,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종교 칙령(파트와)을 언급한다. 이때부터 루슈디의 도피생활은 시작됐고, 『악마의 시』와 관련된 사람들이 상해를 입거나 죽었다. 말 그대로 루슈디는 살해 위협 속에서 그 자신과 가족, 그의 작품을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게 된다.

 

그가 태어난 해인 1947년부터의 이야기가 있지만, 큰 틀은 『악마의 시』로 비롯된 암흑의 시간, 뺏겨버린 그의 황금기가 주를 이룬다. 십몇 년의 도피생활. 그가 도피 생활을 하며 만든 가명 ‘조지프 앤턴’(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를 합한 이름)이 자서전의 제목이 된 이유가 저절로 이해된다. 무장 경찰에 의해 보호 받고 살아야만 했던 시간을 그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유를 갈망했던 듯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 책으로 입을 열었다.

 

미국 태생의 국제적인 출판인 조지프 앤턴 씨가 슬퍼하는 이 한 명 없이 저세상으로 떠난 날, 인도 태생의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기나긴 지하생활을 끝내고 지상으로 나와, 노팅 힐의 펨브리지 뮤즈에 한시적으로나마 거처를 마련했다. 함께 축하해주는 이 한 명 없었지만 루슈디 씨는 혼자서나마 그 순간을 축하했다. (788페이지)

 

그가 자라온 환경에서 이런 용기와 자연스러움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유가 그를 두려움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 종교에 대한 자유 역시 마찬가지. 아버지 덕분에 이슬람교에 대한 관심으로 상상력을 키우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영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차별과 소외를 경험했다. 그게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할 정도였다. 성인이 되고 이슬람교를 공부하면서 가졌던 생각이 『악마의 시』의 발단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가 소설가가 되고 나서 이렇게 큰 화제를 몰고 올 줄 예상이나 했을까? ^^ 그래도 그의 변함없는 한 가지는 그가 작품에 대해 가지는 애정과 자랑스러움이다. 어떤 위협 앞에서도 그가 고개 숙이지 않았던 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거대서사를 비판하고 논쟁하고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의지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모두의 권리이며 열린사회의 구성원인 우리가 자유롭다는 증거일 테니. 그 때문에 많은 피해가 생기고 목숨을 잃은 이가 있었다는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자유가 자리를 잡는데 그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 역시 볼 수 있었다. 외골수처럼 좀 어두컴컴한 예술가를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그의 평범함을 봤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위협에서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것처럼 챙기는 행동이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해보니, 루슈디가 자신의 부모에게 받은 영향을 그대로 대물림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유롭고 당당하며, 우리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24시간 경호의 시대가 막을 내린 순간, 그는 자문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자유를 되찾고 있는 걸까? 혹시 온 식구의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천하에 없는 무책임한 사람인가, 아니면 경찰이 없는 곳에서 진정한 사생활을 재건하고 싶어하는, 본능에 충실한 현실주의자인가? 답은 훗날 돌이켜보아야만 알 수 있다. 10년 또 는 20년 후에는 내 본능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평가는 그 반대다. (690~691페이지)

 

그의 작품을 앞에 두고 게으름 피운걸 후회하게 만든 책이다. 그의 작품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의 이런 의지와 태도, 용기와 자유로움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다가왔는지 더 빠른 이해와 공감을 끌어왔을지 알아가는 재미도 더했을 텐데. 그러면서, 자서전인데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유쾌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도 나게 하고, 너무 진지해서 그 다음 장면을 기다리고, 한 편의 소설이 한 사람의 인생과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보게 한다. 아마 이런 재미는 그의 말투 때문인가 싶지만, 뭐, 아니면 또 어때. 독특한 매력이 돋보이는 자서전일세. ^^ 게다가 유명인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눈이 더 커진다. 아, 이 시기에 이런 사람이 있었지. 루슈디는 그와 이런 관계였군, 하는 식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도 있다. 루슈디가 주연한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그의 자서전부터 만나는 게 어떨지 몰라 부담스러웠던 감정은 다 사라지고, 이 책을 접하고 든 생각은 어서 빨리 그의 작품을 펼쳐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그의 생각, 그의 가치관, 그의 경험을 그가 쓴 소설로 다시 만나고 싶은 욕심. 그가 향하는 자유를 더 깊게 사유하고 싶어진다. 한 가지 좀 아쉬웠던 건, 반복되는 부분이 많지 않았나 하는 점. 그래서 더 재밌어질 수 있는 것을 약간 서운하게 만들었다는 거... 그게 좀 아쉽네.

 

미국 태생의 국제적인 출판인 조지프 앤턴 씨가 슬퍼하는 이 한 명 없이 저세상으로 떠난 날, 인도 태생의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기나긴 지하생활을 끝내고 지상으로 나와, 노팅 힐의 펨브리지 뮤즈에 한시적으로나마 거처를 마련했다. 함께 축하해주는 이 한 명 없었지만 루슈디 씨는 혼자서나마 그 순간을 축하했다. (788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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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9세기 최대의 해양참사로 알려진 포경선 에식스호의 비극을 다룬 논픽션.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야기라는데,

이번 개정판을 통해 나는 처음 만나게 될 듯하다.

기존 판본의 누락된 부분까지 더해졌다니 더욱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논픽션의 깊이와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니 기대된다.

 

 

 

 

 

 

 

 

 

임경선의 글을 두 편 읽었는데, 소설인듯 아닌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굳이 글의 장르를 구분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이 느낌이었다.

 

이번 신작은 그녀가 살아오면서 신뢰하게 된 삶의 다섯 가지 태도를 이야기한다.

그녀가 바라본 그 신뢰의 시선이 궁금해서 골라본다.

겨우(?) 다섯 가지일 수도 있고, 다섯 가지나 될 수도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의 많은 모습이 그 안에 담겨 있을 것 같아서 펼쳐보고 싶다.

그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므로....

 

 

 

 

 

 

 

 

'전생'이란 단어에서부터 시선을 붙잡는다.

아주 믿을 수도 무시할 수도 없어서 늘 망설이게 되는 접근이지만

누군가의 전생을 읽은 이의 메시지라니 한번쯤 들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점의 시선 또한 궁금하다.

그게 현실, 현재의 삶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도 듣고 싶다.


 

 

 

 

 

 

 

 

정말 궁금했다.

물론 이야기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지만,

아들 키우는 엄마, 그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궁금했다는 의미다.

우리 엄마만 봐도 내가 이해 못할 부분이 있기에

이 기회에 조금 가깝게 접근해서 이해와 올바른 태도에 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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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청혼
전은정 지음 / 청어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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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발칙한 청혼』

 

 

사람을 보는 기준, 특히 이성을 보는 기준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발칙한 청혼』의 여주인공 해진은 대놓고 외모라고 한다. “미남이시여, 나와 결혼해 주세요!” 남자를 보는, 선택하는 기준 1순위가 잘생긴 남자란다. 숨기려고 해도 진심은 튀어나오기 마련. 많은 계획을 뒤로하고 지금 그녀가 선택해야만 하는 건 누가 자기와 결혼해줄 것이냐 하는 것. 그래서 여러 후보를 두고 고민하다 청혼을 하러 간다. 냉미남이라 불리는 정강현에게.

 

감히 누굴?! 어림없지. 결혼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 생각했던 강현에게 해진은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아니지. 그녀가 강현에게 거절당한 청혼을 뒤로하고, 마음 탁탁 털어 내고 2번 후보에게 청혼하러 가는 길을 강현이 막는다. “너, 우리 영감이랑 무슨 거래 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가 이런 통첩을 날릴 수가 없다. 분명 뭔가 있다. 외모로 남자를 고르는 해진이란 맹한 여자와 할아버지 사이의 뭔가를 찾아야 한다. 어찌 됐건 지금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그녀와 결혼하는 것. 이 결혼은 어디로 갈 것이냐, 산? 바다? 어쩜 하늘의 구름 속으로 갈지도...

 

소개글을 보고, 그녀의 청혼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는데 당연한 순서처럼 강현은 해진과 결혼한다. 그 과정이 좀 어이없지만 뭐, 두 주인공이 그렇게라도 만나서 알콩달콩할 거라니까, 끝이 좋으면 그냥 좋은 것. ^^

 

시작이 경쾌했다. 물론 이 소설은 로맨스이니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펼쳐지느냐 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외모로 선택한 남자,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여자가 결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내가 궁금했던 건 로맨스 외에 작용하는 두 사람, 특히 여주인공 해진의 배경이다. 처음 프롤로그 세 편을 잘 읽고 넘어가야 이야기의 전개가 또렷하게 보이는데, 이 부분에서 이 소설이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이 자리의 너는 누구니?’라고 묻고 싶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는 게 누구였든 그녀가 바라는 일이 완벽하고 통쾌하게 흘러가기를 바라게 되니까.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 해결해야만 하는 일 앞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사람들까지 유쾌함을 끌어내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더했던 소설이다.

 

작가의 전작을 통해 만났던 분위기가 이 소설에서도 약간 느껴진다. 시대물과 현대물이라는 차이만 조금 있을 뿐이니, 재밌게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로맨스소설이 아니라 한편의 추리물로 나왔더라도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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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빛깔들의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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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우연이라면 희망도 우연처럼 찾아오겠지...『모든 빛깔들의 밤』

 

 

‘잊을 수 없으면 지워야 하고, 지울 수 없으면 죽여야 한다(229페이지)’는 말이 가슴에 박혀버리는 순간,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 말이 그 어떤 다짐보다 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들렸다. 잊으려 애쓰는 모습이 간절하고, 지우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지워지지 않아 가슴을 쥐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상황이 끝나는 점을 만나지 못한다. 끝이 없는 고통을 품는 것만이 남았다면, 어쩔 텐가. 고통의 원인을 죽이는 수밖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였더라도, 내가 이렇게 나아지고 보듬으려 악쓰는 데도 안 된다면, 별수 없다. 가능한 다른 방법을 찾아 그 원인을 소멸시켜야 한다. 어려운 건 그 소멸의 방법, 소멸의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지고 끝이 없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알 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차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조안은 아이와 함께 열차에 타고 있었다. 기관사는 자살하려고 선로 위에 누워버린 한 남자를 발견했다. 열차는 멈추려고 급정거했지만 탈선하고,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차량 안은 불과 연기로 가득 찼고, 조안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창문 밖으로 아이를 던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이가 죽었고 조안은 살았다. 사고 후 조안은 정신적 충격으로 밖에 나가지 못한다. 조안은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남편 희중은 그런 조안에게 모든 것을 집중한다. 조안의 양아치 동생 상윤은 열차 사고의 원인이 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먹을 휘두른다. 뭐든, 그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모든 것을 부수고 미친 듯이 퍼부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울분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조안은 정신을 내려놓았고, 그 사고와 연관된 사람들의 일상은 파탄 났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고통이 사라질 방법은, 없었다.

 

사고는 우연이었을까. 우연이겠지. 우연이어야만 해. 우연이 아니라면 이들의 상처를 멀쩡하게 두 눈으로 보는 게 불가능하다. 일한 돈을 받지 못해 죽어버리겠다고 만취한 채 선로 위에 누워버렸던 트럭 기사,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가 중단되어 트럭 기사에게 급여를 주지 못했던 회사, 인근의 철새도래지를 지키려고 공사에 반대했던 환경단체. 설상가상 선로지반까지 약해져 열차는 탈선했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으로 죽은 남편의 생일을 챙기고자 했던 희중의 어머니, 아이와 함께 그 기념일을 챙기려 열차에 올랐던 조안, 뉴스로 사고 소식을 듣고 미친놈처럼 달려가던 희중을 태워준 약국 손님, 식당에서 양아치들과 싸우게 되어 도망가던 백곰이 본 사고 현장, 백곰을 죽일 듯 따라가던 양아치가 구원의 손길이 된 것, 조안과 희중의 집 517호로 이사 온 백곰, 417호로 이사해도 변한 게 없었던 조안. 위층 아래층에서 동시에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귀신도 사람도 울어버리는 시간, 공간.

 

기억을 죽이기까지 해서 잊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건, 아픈 일이다. 그 아픔의 크기를 알 수도 없다. 그런 다짐이 필요할 정도의 고통이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나? 미리 말하지만,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다. 오롯이 당사자의 몫으로 남아 아파하고 견디고 버텨야만 한다.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리본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 상실을 끌어안고 버티듯 살아가야만 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오지랖은 부리지 말자. 아무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같은 경험을 하기 전에는... 아이를 잃고 살아남아 매일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조안, 그런 조안을 감시하듯 지켜봐야만 하는 희중. 자신의 작은 마음으로 죽음을 보게 했던 삼촌과 대화하는 백곰(백주), 신들린 듯 기도문을 외우는 희중의 어머니. 미친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였다면 나도 미친 건가. 미치지 않고서는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니 그 미친 사람들이 정상일 수밖에.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은 사고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경험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갈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고, 리셋 버튼 하나 누른다고 해서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꾸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그 열차에 타지 않았다면, 거짓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면, 첫사랑 정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절로 긴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열차 사고가 아닌, 훨씬 이전의 불행을 차곡차곡 끌어와 지금 시간에 밀어 넣는다. 불행의 이유는 더 짙어지고, 상처와 죄책감도 깊어간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물을 수 없고 그때 그 시간 때문에 지금 불행하게 살아갈 이유도 없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어 모든 것이 하나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지금 이런 시간과 고통의 이유가 그때부터 시작된 걸 거야, 라는 덩어리로 채우게 하는 마음의 흐름. 그 마음속이 온통 캄캄해져 빛이라곤 떠올릴 수 없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뭔가 싶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양아치 상윤의 한마디가 뒤통수를 친다.

 

“다시 한 번 말해봐.”

“누나, 괜찮아.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상윤의 가슴에 예리한 통증이 지나갔다. 조안은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말을 들어도 결국 괜찮을 수는 없겠으나, 어쩌면 그래서라도 더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293~294페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게, 캄캄한 밤을 밝은 빛으로 채울 수 있게, 그 온전한 삶으로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건 '괜찮다'는 단 한마디였는지 모른다. 약의 복용량을 늘이고 무슨 일을 저지를까 싶어 감시하듯 지키는 게 아닌, 위로의 말이 필요했던 거였다. 조안이 백곰 앞에서 울어버렸던 건 아마도 그런 마음의 폭발이었지 않을까.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 건넨 '괜찮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던 건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가끔은 그냥 모르는 대로 묻어버리고, 묻지 않고 건너가기도 하고,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불안과 고통을 버려두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행동이나 다짐이, 어둠을 통과해서 빛을 만나려는 희망을 희미하게 피우는 시작일지도 모르잖아. 죄책감, 상실감, 고통을 동반한 불행을 건너 만날 수 있는 건 희망이고, 그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건 갖은 모양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그 시간이니까. 그래서 기다릴 수도 있다. 지금 잠깐 내려놓았어도 그 빛이 찾아와 나를 밝혀줄 순간을. 산다는 건 이런 어둠이 지나가기도 하는 일이라고, 밝게 비춘 곳을 디딜 날도 곧 만날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너가야만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모든 밤, 사랑이었던 것도 잠깐 내려놓고, 지독히 두렵겠지만, 주춤주춤 현관문도 열어보면서, 어둠이 지나면 찾아올 어떤 것을 기다린다.

 

우연처럼 찾아온 불행이 우연처럼 물러갈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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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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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240여일간 유가족들이 겪은 내밀한 이야기들이다. 기록 작업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삶의 진실이 있었다. (6페이지, 여는 글)

 

고통의 시간이 1년을 채우기까지 3주 정도 남았다. 곧, 4월 16일이 돌아온다.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던 아이들은 몇 번의 금요일이 지났어도 오지 못했다. 앞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금요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 테지. 아이들의 부모는 절망과 오열 속에서 1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는 지금일 텐데, 감히 그들의 고통을 알 것 같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어려운 마음. 시간이 좀 지나가기를, 지워지지 않을 상처겠지만 조금은 옅어지길 바랐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그런데 이런 말조차 미안해서 할 수가 없다. 끝난 게 아니므로.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상처만 다독이면 될 것처럼 여기게 될까 봐 무섭고 죄송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가 비단 나뿐일까 싶은 생각에 공감의 시선을 들어보지만, 많은 말이 오히려 불필요함을 느끼곤 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분명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읽기를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펼쳐볼 생각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을 상상할 수 없었고, 읽고 난 후에 마주한 진실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렇게 마주한 진실을 들어야만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결코 끝나서는 안 될 이야기임을 저절로 알게 됐다. 온갖 매체를 통해 접했던, 내가 보고 들었던 이야기 중에 진실이 있기는 한 걸까. 누가, 무엇을 위해, 왜, 많은 이들에게 진실을 전하지 못했던 건가. 끝이 없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답답함. 이제야 듣고 격해지는 나보다, 직접 부딪힌 이들이 겪었을 그 참담함이 먼저 그려진다. 그러니, 절대 끝나지 않을 일인 거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안타까움을 떠올릴 사이도 없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를 두고, 먼저 시신을 수습하게 된 부모들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야 하는 현실을 두 눈으로 봐야만 했다. 죽음을 먼저 확인한 이에게 건네는 인사가 축하일 수밖에 없다니... 그런 세상을 부딪친 이들에게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마지막까지 팽목항에 남은 부모가 될까 봐 두렵고, 그 시간이 끝이 없을까 봐 겁나고, 비참함 죽음이 아무 의미 없이 기억에서 사라질까 봐 안타까운 시간을 버텨온 그들에게 남겨진 게 무엇인가. 많은 것을 놓아버리고 버티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퇴사하고 매달리고 있는 진상규명, 웃음을 잃어버린 표정, 행복이란 단어를 지운 머릿속의 무게감이 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이렇다.

 

2014년 4월 16일에 정지된 시계, 줄어들 수 없는 고통의 무게, 무너져버린 일상의 모습. 삶을 꾸려가던 많은 것이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여전히 멈춰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죽은 딸아이가 주문해놓은 참고서가 도착해있었다.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꿈이 많은 아이가 이제는 내일을 얘기할 수 없다. 미처 다 하지 못한, ‘다음에’라고 미뤘던 말이 죄스럽게 그들의 가슴 속을 채우고 있으니... 무엇보다, 그 어떤 진실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 기록을 계속하게 한다. 끝나지 않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미 귀한 것을 잃은 유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특별법이 증명해야 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안전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마땅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인 거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열세 명의 부모의 목소리지만, 이게 열세 명만의 목소리는 아닌 거다. 기억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야기. 작가들이 보고 듣고 쓰고 그린, 생생한 증언의 목소리가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들은 팽목항을 떠날 수 없다. 참사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기다림만이 이를 일깨워주는 것은 아니다. 아직 4월 16일은 끝나지 않았다. (341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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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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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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