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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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87페이지)


아버지와의 짧은 일화로 시작한 이야기는 점점 아버지의 시간을 깊이 파고들면서 무게를 더해가고, 결국은 우리 삶이 부모에게 시작된 것임을 말하는 듯하다. 거리가 생기고 마음이 달라지면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반드시 함께할 수 없는 상황과 생각이 있다. 자연스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면서 부모에게 독립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하면 편한데, 또 그게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은 마음이라 어렵다. 하루키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시간을 듣고 읽게 된 그에게 변화는 찾아왔으리라.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에 쌓아온 경험에 녹아든 누군가의 인생을 읽음으로써, 한 인간의 이해가 커졌을 테다.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았던 하루키는 항상 고양이가 함께 했다. 외아들인 그에게 고양이는 형제였고, 책은 소중하고 즐거운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갔다. 고양이를 담은 상자를 해변에 내려놓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고양이가 하루키 부자보다 먼저 집에 도착해 있었다는 일. 어라? 무슨 일이지? 사실 고양이를 버리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를 버린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음 독하게 먹고 버리고 왔는데, 웬걸. 고양이는 그들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와 마치 외출한 주인을 기다리는 표정이었지 않았을까. 고양이가 어떻게 돌아왔을까 싶은 궁금증과 이상하게 안심되는 마음에 묘한 순간이었다.


고양이에 얽힌 단순하고 가벼운 이야기로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어느 시대의 역사를 한 개인의 시간으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하루키가 이렇게나 사적인 그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사실 그의 작품을 몇 편 읽었지만, 하루키 자신 외의 누군가를 말하는 건 거의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굳이 이 작품을 써야만 했던 이유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문장으로 정리해보겠다는 그의 오래된 다짐이 있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억과 정리가 이 책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아들에서 청소년으로, 성인이 된 그에게도 아버지와 다른 의견으로 가깝지 못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오랜 세월 다정한 부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버지 돌아가실 즈음에 화해 비슷한 마음을 나누는 게 모든 시간을 정리해주는 건 아니었겠지.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 아니었을까. 정리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온전히 담아둘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 말이다.


그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는데 특히 의아했던 건, 전쟁에 세 번이나 소집되었다는 거다.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두 번의 전쟁에 더 참전한 젊은 청년의 모습을 떠올리면 앞날이 까마득해진다.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부터, 하고 싶은 게 많은 시절의 꿈을 꺼내지도 못한 슬픈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세상이 고요했던 건 아니다. 끊임없이 혼란스러웠고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절에 입양되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파양되었고, 절을 운영하던 아버지(하루키의 할아버지)를 이어받는 일에 눈치 싸움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말년은 심한 질병으로 힘든 투병을 했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유는 다 알 수 없지만, 하루키와 아버지는 이십 년 넘게 남처럼 살아왔다.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이 될 수 없었다는 게 큰 이유일 수도 있지만, 그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는 이미 관계가 끊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계속 실망하게 했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순간도 편하지 않았을 마음에, 소설가로 만족하며 살아왔지만 언제나 그 완성의 빈구석에 아버지가 있었을 터였다. 그러니 언젠가 한 번은 이 이야기로 아버지와의 시간을 소환하고 아버지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 그에게는 필요했으리라.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아버지의 시간 속에 자리한 참전이었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기억이 완전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의 기억들은 아버지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게 했다. 이제 막 입대한 초병들을 진정한 군인으로 만들겠다며 중국인 포로를 죽게 한 이야기는 끔찍했다. 아버지가 무슨 마음으로 아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하루키에게는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후로도 계속되는 아버지의 참전 경험들은 어린 소년에게는 낯선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더는 없으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을 테지. 자기 길을 결정하면서 아버지와 소원해지고, 아버지와 마주하는 시간은 물론이고 서로의 불필요한 마주침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가 언급했던 그 시간의 사건들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듯하다. 더는, 아직은 마주 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마음이 읽힌다. 그런데도 언젠가는, 기어코 한 번의 기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이제야 들려오다니. 오랫동안 그의 마음을 아프고 불편하게 했을 감정들이 이 책 속에서 많이 읽힌다.


그에게 지나간 세월 속에서 잊히지 않고 자꾸만 떠오르는 것으로 아버지는 존재했다.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아버지 삶의 풍경들을 글로 쓰겠다는 그의 결심은 이렇게 짧은 문장과 글로 완성되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말이, 치유의 방법의 하나가 어떤 생각과 기억을 글로 써보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언젠가 기억 속 아버지를 꺼내 보고 써봐야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치유의 방법을 하루키가 보여준 듯하다. 나는 아버지와 기억이라고 할 정도로 함께한 시간이 거의 없어서, 연필을 손에 쥐어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적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하면 하루키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그에게 정말 다정하고 애틋한 아버지였던 것 같다. 희미하고 불완전하지만, 오랜 세월 속 아버지를 꺼내와 다시 대화하는 그의 시도가 부럽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 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62페이지)


누군가를 온전히 기억하는 방법으로, 누군가와 다시 대화를 시도하는 바람으로, 어느 역사의 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좋았던 책이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마음으로 그 관계를 다독이고 정리하는 그의 이야기 자체가 고마웠던 글이다. 언젠가 나도 이 문장들처럼, 기록들처럼 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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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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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나를 단단히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돌파구를 찾는다. 벗어나야지, 이 불행을 끝내고 행복을 찾아야지 하고 말이다. 발버둥 치고, 애쓰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능력 밖의 상황으로만 몰릴 때, 애써 달려왔는데도 늘 제자리의 고통만 느끼게 될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더는 나아질 것 없는 내일이 기대되지도 않고, 내 존재감이 누구에게도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절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절망의 끝에서 느끼게 되는 건 어떤 다짐이다. 더는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 내 존재 이유를 더는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체념한다. 단단하게 얽힌 인생의 거미줄에서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이 소설에서, 내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삶의 모습을 본다.


다나카 유키노. 방화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붙잡힌 그녀는 순순히 자기 죄를 인정한다. 옛 애인의 집에 불을 지른 그녀는 그의 아내와 쌍둥이 딸, 심지어 배 속의 아이까지 죽게 했다. 그녀의 죄는 사형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이제 사형 집행일만 기다리고 있다. 선고받았을 때 그녀가 한 유일한 말은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거였다. 순간 숨이 막혔다.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던가? 태어날 수 있는 환경과 부모를 내가 정할 수 있지 않다는 건 너무 잘 안다. 그런데도 살면서 나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이유로 내 인생을 평가받는다. 유키노에게도 그녀가 원하지 않고 바꿀 수 없는 인생의 배경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호스티스 출신으로 열일곱 살에 그녀를 낳았다. 사생아로 자라면서 새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고, 학창시절의 범죄 이력도 있다. 현재 그녀의 죄가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혹자가 말하길 너무 당연하게 만들어질 결과였음을 시사한다. 언론과 주변에서 말하는 그녀의 삶이 이럴진대, 그녀의 죄가 경감될 리 없다.


자기 스스로 사형을 원한다며 재판의 결과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은 범죄자의 마음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의 대가를 치른다는 건 당연한데, 그 죄가 꼭 사형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니, 그녀가 반드시 사형받아야 할 정도의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녀가 왜 그런 죄를 저질러야 했는지 가장 진실한 모습을 찾아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언론에서 언급하는 그녀의 풍문이 아니라, 가장 옆에서 가장 실제 모습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성장과 환경을 설명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일의 과정 정도는 들어주어도 좋은 거 아니냐고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았다. 많은 이가 모르고 또 많은 이가 아는 그녀의 진짜 모습을 파헤치는 과정이 그녀의 사형 선고 이후로 계속 들려온다.


딱히 변명도 반성도 하지 않은 채로 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유키노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장마다 유키노를 아는 이들의 조용한 진술이 시작된다. 재판 방청이 취미인 여자는 재판장에서 본 유키노의 표정과 눈빛을 말한다. 유키노의 언니 유코는 그녀와의 성장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학교 동창 리코는 유키노의 과거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억에서 꺼낸다. 유키노의 엄마를 알았던 산부인과 의사는 유키노의 탄생을 말했으며, 옛 애인이자 방화사건 가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게이스케의 친구 사토시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유키노를 이야기한다. 카더라 통신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루머 말고, 진짜 유키노를 겪으면서 알게 된 그녀의 진짜 모습을 말한다. 그들의 그런 진심 어린 호소와 진실 알리기에도 유키노의 사형은 변함없었다. 그녀 스스로 삶을 이어나가고 싶은 의지가 없던 것이다. 아마 이 사건이 아니었어도 그녀는 삶을 놓을 이유를 계속 찾아다녔을 것만 같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얼마나 간절히 살고 싶은지 내 마음의 의지를 찾지 못한다면, 누구에게나 오는 내일이 더는 기쁘지 않다면 얼마나 슬플까. 여러 사람이 말하는 그녀의 진실로도 바꿀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상처로 채워져 있을까.


나는 그녀의 삶을 더 늘려야 했다. 분명히 이 순간에도 친구들은 유키노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편지에 적힌 글에 아무 각오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순간을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미래는 없다. (366페이지)


그녀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소설은 그녀가 죄를 인정하고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지만, 독자가 지켜보게 되는 건 한 여자의 인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파괴되어 가는지, 오늘날 사형제도가 필요한지 아닌지 묻게 한다. 그녀의 삶을 이렇게까지 만든 모든 순간의 선택을 오롯이 그녀 책임이지만, 그때 그 순간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상황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누구나 다 비슷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삶의 구석구석에서 배치된 요소들은 너무 다양하고 중요한 것들이어서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다르게 그린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왜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삶을 소중히 여기게 해주는 이가 없었느냐는 거다. 비록 부모도 환경도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지만, 적어도 태어나는 순간이 성장하는 시간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다행일 것 같은데. 왜 이런 다행은 간절히 바라는 이에게 찾아오지 않는 건지.


이야기 자체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묵직한 주제까지 더해줘서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사건의 전개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점점 겉에서 안으로, 유키노라는 사람의 실체에 다가간다. 그녀가 정말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들이 하나씩 털어놓지 못한 순간들을 고백하면서, 결국은 이 사건의 끝에 있는 사형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쉬지 않는다. 이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범죄이지만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그래도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이 상황의 딜레마와 사회에 관해 같이 고민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누군가의 조금씩 왜곡한 진실에,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간절함이 더해진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듣고 나면 충격이다. 혹시나 하는 독자의 바람을 무시하듯 벗어난 결말에 이 소설의 무게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 결말의 여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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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SEASON 1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양정우 외 지음 / 블러썸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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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너무 멀지도 않으면서 마음에 들게 다녀올 곳, 숙박하기에 쉬운 곳, 사람이 너무 많지도 않은 곳 등등.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고 찾아보려니 더 어려운 듯하다. 그리고 말이 계획이지 어디로 어떻게 가서 무엇을 보고 와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온라인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여기 소도시에 살면서도 이 도시 안의 것들도 다 못 보고 살아왔는데, 특별히 어디론가 다녀오고자 하니 더 만족하고 싶은 마음에 짧은 여행길 욕심만 앞선다. 그래서 목록을 다시 추리고 있다. 가장 먼저 1순위에 올리고 싶은 목적, 그다음 순위를 정해서 골라볼 것. 뭔가를 보고 배우려는 게 아니라 그냥 편하게 하루 쉬고 올 것을 생각하니 그 범위가 점점 좁아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그 어떤 목적을 두고서라도 그냥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다녀오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무엇을 배우러 가든, 아무것도 안 하고 시체 놀이를 하고 오든, 일 때문에 방문하는 곳이든. 무언가 하나 마음에 담아오게 되지 않을까?


<알쓸신잡>이 우리에게 안겨준 기쁨은 다른 프로그램과 사뭇 달랐다. 좋은 도서들이 소개되었고, 뜻깊은 장소들이 조명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텔레비전이 바보상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뿌듯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추천의 글, 2020년 5월, 나영석)


<알쓸신잡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처음 이 방송을 접했을 때도 기대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과 거리가 먼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이 조합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이라기보다는 '그래, 너희가 무슨 말을 해서 시청자의 마음속에 들어올지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의심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김영하, 황교익, 유시민, 정재승. 각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이들이지만, 실제로 이들의 만남을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다. 너무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이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는 것조차 어려운 일 아니던가. 그러니 이 방송의 예고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던 거다. 대단하다, 이 사람들을 한자리에 앉게 하다니. 걱정 반 기대 반, 이들의 머릿속에 저장된 모든 지식을 한꺼번에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들이 평소에 서로 얼마나 안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낯선 조합에 웃음이 났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어색한 첫 만남에 무슨 말인가 하긴 해야겠고, 첫 방송이니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 취지를 완벽하게 드러내지는 않는 듯하고, 알아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알아서 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쏭달쏭. 그런데도 역시 베테랑은 달랐다. 이들은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냐는 듯이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어떤 주제가 등장해도 그들만의 지식을 마음껏 뽐내며 시청자에게 재미와 감동, 지식까지 전달했다.



여행 방송인 듯 아닌 듯, 이들의 만남은 여행으로 시작되었지만 정작 그 여행을 채운 건 수다였다. 이들 나이 세대의 분위기를 보면 한참 문과 이과로 나누며, 각자가 미리 선택한 전공을 공부하고 사회생활 역시 전공에 따라 선택하는 분위기였다. 자기가 공부한 것 외의 분야에 관해서는 잘 알 수 없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그런 편견(?)은 이들의 수다에서 싹 지워진다. 음식을 먹으면서 어느 시대의 역사를 말하고, 아주 오래전 위인의 숨결이 현재에서도 이어지고 있을 거라는 과학적 설명과, 교과서박물관을 보면서 추억을 곱씹지만 현재 한국의 교육제도를 언급하면서, '꼬막'으로 발음하던 사투리가 정식 이름이 되어가는 변화, 책과인쇄박물관을 보면서 사라진 직업들과 변화한 인쇄방식 이야기들까지. 무엇 하나 놓치면 아쉬울 이야기로 그들의 수다를 채운다. 아마 방송이 아니고 시간만 있었다면 이들은 무슨 합숙 훈련 하듯 한곳에 모여 몇 박 며칠을 다양한 지식을 쏟아내면서 기꺼이 즐겼을 것 같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트려주는 이들의 행보였다.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김영하의 음식 선택을 보면서, 어느 곳에 가면 어떤 음식을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통영에서의 해물 짬뽕과 이탈리아 음식을 먹겠다면서 파스타와 리조또를 골랐다. 누구나 그곳의 특화 음식을 고를 때 김영하는 통영에서 나온 해물로 만들었을 짬뽕과 파스타를 고른 것이다. 흔한 음식들,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메뉴였지만 김영하는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 이 프로그램 최고의 맛으로 꼽은 이들이 있었다니 믿음직한 선택 아니었나 싶다. 이 프로그램의 여행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기가 정한 여행 스케줄대로 움직이면서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골랐다. 음식에 관해서는 황교익의 선택을 무조건 믿고 따랐을 것 같지만, 그의 음식 지식을 인정하면서도 각자의 입맛과 호기심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여행 방식 너무 좋았다. 부럽기도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라면 우리는 같이 움직이는 게 익숙하다. 약속처럼 같이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일정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각자 입맛이 다르고 보고 싶은 게 다른데 시간까지 여유롭지 않다면, 각자 원하는 것을 보고 먹고 같이 움직이고 싶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여행 일정도 좋다고 생각한다. 여행이란, 첫째도 둘째도, 그 끝에서는 만족감이 남아야 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특별한 장소에 가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특별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거창하지 않을 때도 많다. 때로는 한 공간을 보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곧 그 공간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동피랑을 보며 깨닫는다. (36페이지, 통영)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의미는 누구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편하게 접하는 지식의 향연이 아니었을까. 출연한 이들에게는 평소 그들이 아는 이야기들의 수다일지 몰라도, 이 방송을 보는 우리에게는 '어머나, 그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어?' 하는 놀라움이나, 막연하게 보고 듣고 먹던 모든 것이 가진 역사와 사연들을 아는 즐거움이었다. 통영에서 시인 백석의 사랑을 듣고 시 한 편의 탄생을 더 눈여겨보게 됐다. 박경리의 문학 세계를 경험하면서 대하소설 한편에 담긴 우리네 삶의 시간을 되새긴다. 여류 작가의 고단함과 핍박을 강릉의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에게 같이 본다. 훗날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작품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써진 문장들인지, 동생이 누나의 문장을 기억하고 기록해야만 했던 마음이 읽힌다. 첨성대의 역할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의자왕과 3,000 궁녀의 이야기는 사료에서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실제 낙화암의 주변을 봐도 도저히 3,000 궁녀가 떨어질 수 없는 곳이라는 거다. 의자왕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유시민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서 웃음이 났다. 백제보다 훨씬 넓은 영토에 강력한 왕권이었던 조선 시대에서도 궁녀가 500여명 정도였다니, 백제 시대의 궁녀 ,3000명은 진짜 과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느 곳을 가든 그곳의 대표 음식을 한 번씩은 생각하게 된다. 경주에서 황교익이 황남빵을 사서 모인 장소에서 유시민은 어릴 적 추억을 꺼내면 앞니 끝으로 황남빵을 조금씩 먹었다. 어려웠던 시절의 한 장면이 저절로 그려진다. 경주에서 유명하다는 문어를 사가지고 온 김영하로 저녁 밥상은 더 풍성해졌고, 그 자리에서 이어진 문어에 관한 토론은 또 하나의 지식을 뽐내게 된다. 동서양 모두 문어를 특별한 존재로 여겼지만, 우리가 아는 상식은 조금 어긋난다는 것. 문어의 먹물은 글씨 쓰는데 사용할 수 없고, 머리처럼 보이는 게 사실은 몸통이고 먹물이 가득 들어있지도 않단다. ㅎㅎ 음식과 문화유적으로 유명해진 경주의 황리단길의 어두운 면을 같이 언급하던 장면도 잊지 못한다.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조금씩 사람들의 유입을 애쓰던 이들이 머물던 곳은 이제 자본이 유입되면서 분위기를 바꾼다. 건물 임대료가 오르고 원래 살던 이들이 더는 머물 수 없어서 떠나는 곳이 되어버리는 일. 경제가 살아나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경제는 스러지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되었다는 씁쓸한 현실도 이들의 수다에서 빠지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가 과학과 만나니 더 신비하고 즐거워졌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과학은 딱딱하고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정재승이 말하는 과학은 웃음부터 나기도 한다. 의외의 곳에서 그의 과학 지식은 즐거움을 주었다. 방귀로 불을 붙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접 출연 의뢰까지 있었지만, 호칭의 문제로 출연 불발되었다는 그의 과거(?)에 한바탕 웃고, 자연사박물관의 공룡 이야기에서 이어진 냉동 인간 논쟁은 흥미진진했다. 현재 어느 재단에서 진행되는 냉동인간 연구가 있다는 정재승의 말에 유시민은 냉동에서 깨어난 인간 삶의 관계들을 염려했다. 그에 정재승은 냉동 인간의 연구는 계속되고 있고, 냉동에서 깨어난 인간 세계는 또 다른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고 죽음에 대한 관념 자체가 바뀌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진짜 그런 세상이 올까? 조금은 긍정적으로 정재승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데, 예전의 우리가 상상만 하던 것들을 하나둘 현실로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그의 말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닐 듯하다. 정말 냉동 인간 세상이 오면 나는 혹시 내 몸을 얼려서 조금 더 연장된 또 다른 삶을 맞이하고 싶을지 또 한번 상상해봐야겠다.


그날 저녁, MC희열이 생각지 못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로봇들은 다 사람 모양일까요?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중략)

재승쌤은 이 말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로봇에게도 얼굴이 필요하다고. 이는 인간의 인식법과도 관련이 있다. 인간은 외부의 물체를 두 종류로 나누어 판단한다. 얼굴이 있는 존재와 얼굴이 없는 존재로. 심지어 우리 뇌는 얼굴에 대한 정보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기관인 방추상회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일단 얼굴을 갖추고 있으면 영혼이 없는 물건일지라도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얼굴을 갖춘 인형은 친구처럼 대하지만 쿠션이나 베개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얼굴을 갖춘 로봇을 만들어 훨씬 더 친근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다. (196페이지, 춘천)



다양한 지식의 향연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의 고뇌가 동시에 느껴지는 여행이기도 했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사는 이들의 모습에서 부족함을 찾기는 어려웠다. 누구나 다 아는 이름, 많은 연구와 작품과 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현실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다움이 넘쳐났으니, 그냥 우리는 각자가 하는 일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조금 다른 인간들일 뿐이구나 싶기도 했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의 슬로건,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말에 정재승이 외치던 워라밸의 가치를 생각한다. 전주는 영화나 한정식으로도 유명하지만, 남부시장의 청년몰도 유명하다. 나도 두세 번 가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동네서점 방문 목적으로 가봤는데, 나중에는 그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에 한 번씩 남부시장 2층을 올라가게 되더라. 각종 볼거리에 잠깐 앉아서 쉬다가, 어느 서점의 진열된 책에 눈길이 가다가... 찾는 사람이 드물어지는 재래시장을 살리고자, 청년들의 꿈을 펼치는 장소를 만들고자 형성된 청년몰.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이제는 자리 잡고 잘 운영중인 듯하다. 배가 고프면 1층의 시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2층의 청년몰에서 구경하고 쇼핑하고. 의외의 조화에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자연스레 발길이 1층 2층으로 향하는 걸 보면 이 조합이 참 괜찮은 거였구나 싶다. 처음 <알쓸신잡> 방송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점점 이 방송에 빠지는 느낌처럼 닮았다.


평범하면서도 매력적이고 개성 강한 지역들의 여행을 이 방송과 책 한 권으로 다 한듯하다. 그래서 그곳에 갈 필요가 없다고? 아니다. 방송과 이 책 때문에 그곳에 더 가고 싶어졌다. 첫 방송 이후로 이 방송에서 언급된 책들이 갑자기 팔리던 것처럼, 마음에 담아두기만 했거나 처음 듣는 이야기로 머문 장소들이 많아졌다. 그 지역의 숨은 이야기를 듣고, 음식을 맛보고, 익히 들어왔던 내용 뒤의 또 다른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여행에 푹 빠져들었다. 출연진 모두가 너무 개성적이어서 이 여행이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명소를 찾는 이, 사람들이 드문 곳을 찾는 이, 박물관과 과학관을 찾는 이, 낭만과 풍경에 빠져드는 이, 그리고 이들의 수다에 집중하며 새로운 이야기에 눈이 반짝이는 이. 여행이라 부르지만 마치 옆집 마실 다니는 것처럼 보이던 지식인들의 수다에, 시청자와 독자는 랜선 여행에 잡학 지식까지 더해 머릿속이 더 풍성해졌다. 어디서 이런 조합에 이런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을까 아쉽기도 하면서, 이제 이런 조합과 주제가 더는 낯선 일이 아니니 누군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생각만 해도 다시 설렌다.


방송을 만들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법칙이 있다. 웬만한 연출로는 절대 시청자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적당히 멘트를 치고 연기를 하는 중인지 시청자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촬영과 생활의 경계가 없어질 때,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마음을 빼앗긴다. 경주에서 우리는 비로소 쌤들이 진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말하자면 예능 프로그램의 이데아를 실현했달까? (123페이지, 경주)


이 책에서는 방송에서 다 볼 수 없던 촬영 뒷얘기도 있다. 저자들이 이 책을 준비하면서 그때의 여행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은 즐거움이면서 일터의 고단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장소 섭외부터 교통편 준비까지, 현장에서는 늘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출연자의 다양함에 상황의 다양함은 덩달아 따라온다. 그런데도 이들이 기억하는 이 여행들은 즐겁고 행복했다.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게 이들의 말에서 전해진다. 어쩌면 늦은 시간까지 방송 준비하고, 매번 몸으로 뛰는 고단함에도 이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것이겠지. 좋은 사람들과 좋은 방송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 방송의 취지를 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많은 이가 공감해주는 시간을 피부로 느끼고 있음에 행복한 순간들. 여행한다는 것,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게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준 시간에 감사하며, 많은 스태프의 노력과 출연자들의 지식이 만들어낸 이 방송이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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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쓸신잡 좋아했어요. 누구든 각자의 전문성이 있고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있으니 그런 각 개인이 모여 만나서 이야기 하면 참으로 풍성해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이끌어 가는 즐겁고 유익한 대화들...부러웠어요. 살다보니 생각이 비슷하고 관심사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끼리 모여사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교류가 있는 만남과 삶이 조금 샘이 나기도 했어요 ㅋ

구단씨 2020-11-04 16:13   좋아요 0 | URL
새로운 여행법을 만난 것 같기도 해요. ^^
동선 잘 짜서 여러가지 많이 보고 듣고 오는 여행 만들고 싶습니다.
 
스위트 투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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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세리나 프룸이고, 사십여 년 전 영국 보안정보국의 비밀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되었다. 나는 무사히 복귀하지 못했다. 보안정보국에 들어간 지 십팔 개월 만에 망신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시키고서 해고되었다. (11페이지)


얼마나 호기심 일으키는 첫 문장인가. 직설적으로 자기 이름을 밝히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말하면서, 그 일의 최후까지 세 문장으로 독자의 눈을 붙잡는다. 소설은 주인공 세리나 프룸의 회고로 시작하면서, 1970년대 초 암호명 '스위트 투스'로 그들만의 문화 전쟁을 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군사적으로도 경쟁했지만, 문화 전쟁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문화로 대중 의식을 장악하려고 애썼다. 그동안의 사실로 보면 문화를 장악하는 쪽이 이긴다는 건 역사에서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목적으로 문화예술 사업에 몰래 돈을 대고, 그들의 후원을 입은 예술가들로 문화 선동 사업을 일으켰다. 물론 이 소설에서처럼 예술가는 그 후원의 정체를 모르기도 하겠지만. 영국의 MI5, MI6은 이러한 문화 선동 사업의 선봉에 서서 반사회주의 성향의 작품들이 태어나도록 했다.


이 전쟁의 용맹한 전사로 투입된 미녀 첩보원 세리나 프롬. 소설을 좋아했지만, 그녀는 수학을 전공했다. 좋아하는 것과 상관없는 것의 학업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케임브리지대학 시절 역사학과 교수 토니 캐닝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문학적 재능을 찾아간다. 단순히 역사학자로 알던 토니는 사실 전직 보안정보국 요원이다. 세리나는 그에게 알게 모르게 훈련받았던 셈이다. 어쩌면 토니는 그녀의 인생의 다른 길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영국 정보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름에 무색하게 말단 여직원의 일을 하던 어느 날 첫 임무를 부여받는다. 소설가 톰 헤일리에게 접근하여 그를 후원하고 그가 반공주의 작품을 쓰게 하는 것. 정보국에서는 이 작전을 스위트 투스(단 것을 좋아하는 취향, 마약이나 해로운 것에 빠져드는 중독)라고 부르며, 지식인과 문학인이 자유주의적 사고를 작품으로 퍼트리는 일을 목표로 한다. 세리나에게는 소설가가 주어졌으며, 내부 회의에서는 과거 토니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던 그녀의 독자 생활을 바탕으로 톰 헤일리에게 붙여질 적격자라고 판단한다.


그런 그녀가 작전 대상과 사랑에 빠졌으니... 어쩌면 독자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떠올려보라. 비밀 임무 수행하는 이와 그 임무의 대상이 된 이가 사랑에 빠지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에서 힘을 발휘하기에 가능한 일. 세리나 역시 이 일에 성공하고 싶었다. 그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의 임무 역시 완성하고자 했다. 그는 그녀의 프로젝트이며, 일이며, 임무였다. 더불어 그의 예술, 그의 작품, 그들의 연애가 하나였다고 말하며 무게감을 느낀다. 그가 실패하면 그녀도 실패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성공해야만 했다. 그녀가 성공하는 게 그가 성공하는 일이며, '우리'가 성공하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더 혼란에 빠지고 감정에 죄책감을 가지는 이유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은 거짓말을 배경에 두고 시작했다는 게 언제나 가슴 한구석을 눌렀다. 그 죄책감은 그녀가 그를 사랑할수록 더 커져만 갔다.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고 진심이지만, 그 사랑이 시작된 배경에는 그녀가 숨긴 정체와 그에게 접근한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 언제까지 이 거짓을 숨길 수 없으며 언젠가는 그에게 다 말해야 한다는 고뇌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사랑은 끝날 것이라고 여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말할 수 없지만, 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말해야 한다는 모순 같은 진실의 혼란에 빠져든다.


이쯤 되면 더 궁금해질 것이다. 세리나는 톰에게 말했을까, 하지 않았을까. 둘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낳았을까. 그 궁금증은 이미 소설의 첫 문장, 첫 단락에서 알려주었다. 그녀의 임무는 성공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으며, 그녀 역시 정보국에서 파면당했다. 한 사람의 단편 작품들에 빠져들었고, 그러다 보니 그 작가에게 호감이 생기는 일. 결국 그 작가와 사랑에 빠져들어 버린 시간. 그게 삼십여 년 전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럼 지금은?


이 사랑이 방향을 잡고 흘러가기 전에 그에게 나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 사랑은 끝날 것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나중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팔짱을 끼고 누워 우리의 비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나쁜 짓에 어린애처럼 키득거렸다. 그리고 우리가 나눈 엄청난 말에도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규칙에 묶여 있지만 우리는 자유로웠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사랑을 나눌 것이고, 우리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다. (412~413페이지)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투입된 여성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지만, 그 시대에 실제 일어난 사건(인 카운터)을 보면 소설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작가는 그 사건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다는데, 그러한 관심은 그 시대의 분위기와 역사적 사실에 더 깊이 파고들게 했으며, 결국 이 소설까지 이어졌다. 냉전 시대의 복잡 미묘했던 문화 전쟁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에 로맨스까지 더해진 이 소설이 재미와 호기심에 한 발짝 더 들여놓게 한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 세리나가 그녀의 스승(?)인 토니와 벌인 열띤 토론과 문학 작품들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만나는 또 다른 문학의 목록을 쌓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문학 작품 이야기는 그녀의 작전 대상이자 연인이었던 톰과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학 작품 속에 녹아든 의미를 파악하고 시대를 읽으면서, 소설가의 현실을 동시에 본다. 쓰고 싶은 작품도 많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정작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도구나 수단은 너무 적었다. 잘 안 팔리는 단편소설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를 알릴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 21세기의 자유주의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까지 같이 담아냈다.


소설로의 재미도 넘쳤지만,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한 시대의 전쟁에 문화가 했던 역할을 알게 되기도 했고, 작품을 쓰고 싶은 한 소설가의 열정이 그대로 읽히기도 한다. 작전 타깃인 소설가와 작전 수행자인 독자가 공유하는 문학에 대한 애정 역시 엄청나다. 두 사람이 나누는 책 이야기는 어느 독서 토론 못지않게 치열하기까지 하다. 작품의 설명과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감상과 의도를 가지고 싸우기도 하고, 결국에는 상대의 진심을 읽어내며 감정적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일이 된다. 특히 세리나가 톰의 단편들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독자 후기 같은 감상은 너무 익숙했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몇 마디 남기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이렇게 너무 잘 소통하고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그들 사이에 '거짓'이라는 게 존재하는 사랑은 너무 위태로웠으니...


소설의 첫 부분에 드러난 이 사랑의 결말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거짓이 드러나고,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임무에 실패한 이들 사이에 어떤 게 남아 있을지 확인하길 바란다. 세상은, 사람은, 사랑은, 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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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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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은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54페이지)


가수 나훈아는 테스 형에게 물었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고, 먼저 가본 저세상은 어떠냐고, 가보니까 천국은 있더냐고. 나훈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테스 형에게 대답은 들었을까? 글쎄. 나도 궁금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정말 저세상이, 천국이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이 대답을 다음 세상에서나 할 수 있을 듯한데, 전생의 기억을 완전 삭제하고 태어난다면 또 그 대답을 할 수 없겠지. 그때 다시 궁금해질 것 같다. 천국은 있을까? 내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심판을 받으며 천국을 경험하고 있을까?



눈앞에 천국이 펼쳐져 있다. 그 천국을, 이제 막 천국에 입성한 아나톨만 모르고 있다. 하루에 담배를 세 갑이나 피워대던 아나톨은 폐암에 걸렸고, 수술하다가 사망했다. 눈을 떠보니 몸이 가뿐하다. 음,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되었군. 한참 착각에 빠진 그를 기다리는 건, 그를 천국에 머물게 할 것인지 다시 지상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재판이었다. 처음 그도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자기 인생에서 이보다 더 고민에 빠진 선택과 몸부림이 있었던가? 자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아나톨은 이제 그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하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온 힘을 다해 답을 찾아야만 한다.


천국의 법정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지상의 재판과 같은 모습이다. 죽기 전 판사였던 아나톨은 피고인이 되어 천국의 판사 가브리엘 앞에 서 있다. 그는 지나온 자기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판사의 물음에 그는 자기가 좋은 학생,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직업인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의 대답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조목조목 대면서, 그에게 천국에 머물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에 반해 아나톨의 변호사인 카롤린은 그가 '삶의 형'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변호사와 검사 사이의 설전을 지켜보면서 궁금해지는 건, 천국에서 죄를 논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거였다. 그들은 그동안 아나톨의 모든 생을 지켜본 이들이다. 검사는 그의 신호 위반, 속도위반, 음주운전, 욕설 등 모든 위반 사례를 들었고, 심지어 그가 제대로 판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언급했다. 심지어 그가 저지른 죄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가면서 아나톨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심각해진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일상의 소소한(?) 위반들이 천국의 심판대에서는 굵직한 죄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것을 시작으로 점점 우리가 저지른 죄의 크기는 살을 찌운다. 왜 그가 자기 행복을 위해 애쓰지 않았는지 저격한다. 아나톨은 지상에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판사라는 직업에 아내와 아이들, 크게 모자라지 않은 경제력이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 아니었나? 검사가 들춰내는 그의 죄목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뭔가 계속 콕콕 쑤시는 거 같았다. 행복을 누리지 않았다는, 행복한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죄. 그에게 행복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르고 놓친 채로 살아왔던가.


베르트랑 :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중략)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133페이지)


아나톨은 학창 시절 연극을 좋아했지만, 성인이 되고 판사로 살면서 우리가 아는 평범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연극으로 당시 밥벌이의 부족함을 알았고, 지금 아내와 만났으니 그냥 살았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는 그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재능을 죽였고, 그가 좋아했던 여성과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아이들에게 무관심함으로써 엇나가는 자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나톨 자신도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사는 콧방귀를 뀌면서 그의 말을 핑계로 치부하고 그의 죄명을 외친다. 불행하지 않으려는 인생을 선택한 죄, 행복하지 않은 죄. 천생배필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기에 현재의 부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평생 아내와 권태롭게 살아온 죄, 자기와 맞는 배우자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을 차단한 채로 살아온 죄가 크다고 말이다. 거기에 그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고 몰아붙인다. 그가 타고난 대배우가 될 자질인데 그 스스로 안정적인 삶을 찾느라 연극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않은 그의 세월을 탓한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했다면서, 순응주의에 빠져서 자기에게 주어진 특별한 운명을 무시했다고, 그의 죄가 무겁다고 외친다. 기억하지 못한 시간의 죄까지 한꺼번에 들춰내니 이건 뭐 빼도 박도 못 한 증거가 된다.


검사의 주장대로 아나톨은 행복하지 않은 죄를 저지르기가 했을까? 그의 변호사 카롤린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무죄로 만들어 천국에 남게 하고 싶다. 그의 선택이 왜 그래야 했는지, 그의 선택 이면의 감정들을 피력한다. 첫눈에 반한 아내와 저지른 실수를 책임지려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아버지로 살아가려고 배우보다는 판사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냈고, 판사로 최고는 아니어도 직업인으로 나름 성실히 일해 왔다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삶을 책임져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을까. 그는 판사의 판결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재능을 망각한 것은 유죄, 사랑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은 것도 유죄, 천국에 남을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것도 유죄. 그래서 아나톨 피숑은 유죄이며, '삶의 형'에 처했다. 천국에 남을 수 없으며,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끝났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죄를 묻는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서 당황할 것 같다.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들, 항상 원하고 바라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떠오른다.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아쉬움은 있겠지만,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으니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할 선택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나톨의 변호사 카롤린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선택한 그의 죄를 논하는 검사하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피숑이 유죄라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관습 전체에 함께 죄를 물어야 한다'고. 카롤린은 아나톨의 수호천사였다. 그의 평생을 지켜본 이가 하는 말이니 어쩌면 그의 죄를 경감하고자 하는 주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현실적인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은 바라는 것과 가능한 것의 싸움이었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꿈만 쫓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당장 눈앞의 오늘을 보면서 살아가기에 급급한 게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내일을 생각하면서도 오늘의 선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나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내는 삶으로 그의 인생을 채웠다. 그랬는데 인제 와서 그 삶을 심판한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가 기억하지도 못한 시간까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보다는, 그때 그 행동이나 선택의 마음이 저절로 읽힌다.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겠지. 이 심판의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무죄를 받아서 천국에 머물며 천사가 되거나, 유죄를 받아서 지상으로 내려가 다시 인간으로 살아내거나. 말 그대로 '삶의 형'.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유죄의 형벌이 내려진 게 꼭 나쁜 것이기만 할까? 별것 없이 고단한 인간 세상 다시 사는 게 힘들겠지만, 어쩌면 내가 놓친 행복을 다시 찾아가는 기회는 아닐까? 아나톨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판사복을 벗어 던진 가브리엘의 선택은, 행복의 기회를 다시 잡은 이의 즐거운 비명이 될 것 같다. 진짜 행복을, 또 다른 행복을 아는 인생이 되겠지.



아나톨 : 지상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인간이 된다는, 결국 다시 무지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동안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음 생에서도 또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예요. (162페이지)

가브리엘 :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내려가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혼자가 될 거예요. (197페이지)


현실에 순응하며 선택한 삶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순응보다는 꿈을, 다가오는 파도를 피하기보다는 맞으면서, '적당히'가 아니라 치열하게 부딪히려는 바람 한 자락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의 선택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죽어서 가본 천국에서, 자신의 행복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죄를 너무 잘 알게 되었지 않은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형벌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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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0-1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네요. 전 보관함에 있는 책입니다. ㅋ

구단씨 2020-10-19 18:21   좋아요 1 | URL
금방 읽히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