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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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243페이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염영숙이다. 죽어가는 상권이지만 편의점을 하나 가진 그녀가 노숙자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게, 선뜻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도움을 받은 상황이라고 해도, 나는 그녀의 결정이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염영숙은 기차 안에서 자기 파우치가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파우치 안에는 그녀의 신분증과 지갑, 통장 등 모든 것이 담겼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궁금할 무렵에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기차를 타기 전 머물렀던 서울역으로 되돌아가서 만나기로 한 분실물 습득자. 통화상으로 가늠할 수 없던 상대방은, 막상 만나고 나니 노숙자였다. 그녀의 파우치를 끌어안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자의 면면을 살핀 그녀는 타이밍 좋게 그만둔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에 그를 배치한다.


그럴 수도 있지. 외모 말고 내면을 본다면, 노숙자 이력이 있어도 성실하다면, 노숙자 독고 씨를 고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잠깐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염영숙의 선택을 아직도 의심한다. 독고 씨의 현재를 봤기에, 오랫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왔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옷에 외모를 가진 그의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지. 그것도 물건을 팔고 편의점을 맡기면서 혹시나 하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기다려 봤다. 그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따지려면 독고 씨의 모습을 더 지켜봐야지.


점점 이상해지는 이 기분은 뭔가 싶을 정도였다. 독고 씨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었고, 덩치만 컸지 누구에게 당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보였는데. 처음 편의점에 등장했을 때도 모두의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았던 그가 점점 변해간다. 편의점 알바 사수가 된 시현 씨는 배움이 느린 그에게 천천히 일을 가르쳐준다. 독고 씨는 나름의 성실함으로 금방 일을 배우고, 사수의 감탄을 끌어내고야 만다. 아침 교대 알바인 오 여사는 여전히 독고 씨는 경계하고 무시하지만,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 앞에 있어 준 것은 독고 씨뿐이었다. 어디 동료들뿐이랴. 편의점의 손님들 역시 이상한(?) 독고 씨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도대체 독고 씨,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오지라퍼 독고 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뜨끔거리는지 모르겠다. 느리고 버벅대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게 하는 건 그의 진심 때문이겠지. 기억을 잃은 그가 되찾으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놓친 것, 그가 후회하는 것, 그가 이제야 다시 찾고 싶은 것이 그의 어눌한 참견에 다 담겼다. 그렇다고 그의 참견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 건, 그의 더듬거리는 말투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그가 잃어버린 말을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마주한 사람들도 무언가를 찾아가야만 했던 마음을 내비친다. 서로 윈윈하는 모양새다. 독고 씨는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을 맞추면서 하나씩, 그에게 마음을 내비친 이들은 상처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하나씩. 독고 씨의 오지랖이 고마운 건 답을 알려주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보세요 하면서 그의 의견을 슬쩍 얹어놓는 것. 그가 눈여겨봤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에 의미가 있다.


그가 놓친 것을 이렇게 되찾는 건가?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타인에게 선뜻 꺼내지 못한 마음을 끌어안고 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여간 가슴 아프고 답답한 게 아니다. 염영숙은 수시로 아들의 전화에 시달린다. 편의점을 팔고 자기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안 하고 허황한 꿈에 부풀어 사는 아들이 괘씸하고 안타깝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편의점 알바로 일하는 시현 씨는 정말 자기 목표가 공무원시험 합격이 맞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이대로 있자니 불안하기만 하다. 오 여사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뛴다. 알바가 아니라 생업인 거다. 몇 년째 시험 준비한다면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하는 서른 살의 아들을 보는 게 괴롭다. 어디 이들뿐이랴. 편의점에 찾아와 매일 참참참 메뉴를 고르는 영업사원의 비애는 외로움이었다. (참참참 메뉴가 뭐냐고? 참깨라면에 참이슬에 참치김밥) 등단하면 다 된다고 여겼던 희곡작가에게는 절필 선언을 할 마지막 기회가 생겼고(작가 후기 보니 아마 이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건을 훔치던 소년에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어떻게 이들의 괴로움을 없애고 삶의 희망을 되찾을까 싶었던 그때, 독고 씨의 한 마디가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선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선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108페이지)


진심을 기본으로 장착한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 그 문제 해결의 답이었다. 이들 모두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듣다 보면 눈에 보인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고, 누구도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차단 스위치가 올라간다. 집에서, 사회에서, 자기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가장 당황했을 이를 당사자였을 텐데, 옆에서 윽박지르듯 다그치는 말에 소통의 부재가 시작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다니까 왜 그만둬? 어디서 그런 자리 구하겠어? 그런 사기에 빠져들지 말고 일하라니까?! 그거 아니니까 내 말을 들어!’ 근데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면서 우리는 당사자의 생각을 듣고 말한 적 몇 번이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상처받고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자기 의견만 말하고 그게 옳다고만 하면, 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더 상처를 주게 되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 멀어진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우리가 되겠지.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닌 게 되고, 서로의 가슴을 더 할퀴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독고 씨는 이 방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조금씩 그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독고 씨는 자기가 놓친 것을 알아채고, 그의 이력만큼이나 똑똑한 머리로 이들에게 답을 던져준 것이다. 지금 틀어진 이 관계를, 더 늦기 전에 더 놓치기 전에, 마치 자기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되돌려 놓으려고 애쓴다. 동료와 손님에게 꺼낸 말들은 아마 독고 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거다. 자기가 회복해야 할 관계의 주문이었을 테다. 그가 자기 과거에서 놓치고, 노숙자가 되기까지 절망했던 시간에, 그가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것은 실패한 관계였다. 누구나 바랐던 위로 한마디에, 제발 한 번만 들어달라는 간절함을 지나쳤던 순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또 다른 후회만 남길 뿐, 이제는 그가 타인에게 건넨 위로와 그가 타인에게 받은 위로와 믿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야만 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페이지)


김호연의 동네 이야기 시즌 2’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소설이, 이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인 망원동 브라더스를 아직도 읽는 중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외 작품들을 다 읽었지만, 너무 강렬한 이미지가 더 많이 남아서 그런가. 이 작품 읽고 나니 미처 다 읽지 못한 망원동 브라더스를 빨리 완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힘든 오늘을 위로받고, 불편하게 만들면서 은근 츤데레 스타일을 뽐내는 독고 씨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웃음이 나고, 따뜻해지고, 무심하게 건넨 위로에 희망을 꿈꾸는 곳. 불편한 편의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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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6-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작가의 <고스트라이터즈>를 재밌게 읽은 적 있어요.^^

구단씨 2021-06-08 22:46   좋아요 2 | URL
그쵸? 다른 작품도 재밌어요. 의미 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요. ^^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1-07-09 22: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이 작가분 책 재밌어요. 기회 닿으시면 한번 만나보셔도 좋을 듯해요.
 
팔과 다리의 가격 - 지성호 이 사람 시리즈
장강명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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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을 느껴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일부러 굶거나 끼니를 챙길 겨를이 없었거나. 아마도 내가 경험한 배고픔은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였던 경우가 대부분일 테다. 아니, 어쩌면. 오랜 세월 가난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 가족에게 배고픔은 부모님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피해온 경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유롭지 못했으니, 식구가 많았으니 밥상 위에 오를 밥그릇 숫자만 봐도 부모님의 고생은 엄청났을 거다. 그래도 굶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는 목숨을 건 배고픔과 탈출을, 아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람이 굶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매우 배가 고파진다. 몸에 축적한 지방층이 없는 상태에서 두 끼 이상을 연속해서 거르면 그때부터는 허기가 통증에 가까운 감각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급성 위염이나 위궤양처럼 속이 쓰린 느낌인데, 특히 성장기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이 이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한다. 육체가 비명을 지르며, 신경 신호를 통해 뇌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먹을 것 외에 다른 일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고, 식량을 찾는 작업에 집중하라고. (10페이지)

어른들은 총살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집단농장의 종자보관소를 습격한다. 아이들은 옥수수 몇 알에 목숨을 건다. 훔친 음식을 먹다 걸린 아이를 사납게 때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손을 들어 매질을 막지도 않는다. 입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으면서 맞아 죽는다. (14~15페이지)

책의 목차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말하자마자 굶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놨다. 얼마만큼 굶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차례로 언급한다. 한 청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까지 온 젊은이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다. 소년에게도 부모님이 있고 친척들이 있었다.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할 게 없이 살았다. 고위직에 있는 친척들의 기세를 등에 업기도 했다. 부모님은 일하고, 소년은 공부하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놓았다. 누구나 비슷한 삶이었을 거다. 그 나이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나조차도 흘려들으며 넘겼던,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던 북한의 그 시기,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다. 누가 처음 만들었을지 모를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빡센 군사훈련을 말하는 줄 알았다. 지독한 훈련의 시간을 북한 주민 모두에게 경험하게 했다고 여겼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시기가 혹독한 가난과 굶주림이었다는 걸 알았다. 탄광 마을에 사는 소년이 본 모든 것을 이렇게 듣는다.

처음에 아사(餓死)는 소문이었다고 했다. 굶어서 죽는다는 말을 그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그러니 믿지 못했겠지. 카더라 통신으로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은 소문이 아니었다.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죽은 걸 보고 실감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죽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먼저 죽은 거다. 소년의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배급이 줄거나 끊기면서 먹을 것이 없었다. 먼 지역의 친척에게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왔어도 굶주림은 끝나지 않았다. 소년과 가족은 그 지역의 탄광에서 실려 나가는 석탄을 훔치기에 이른다. 달리는 열차에 몰래 올라타고, 어두컴컴한 상태로 포대에 손에 잡히는 석탄을 마구 담는다. 적당한 때에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그 위험한 일을 몇 번을 했다. 그렇게 훔친 석탄을 먹을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 굶어서 발을 헛디딘 소년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소년의 비명을 어떻게 잊을까.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또 살아간다. 소년은 꽃제비가 되었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국경을 건너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대한민국에 왔다. 이 글은 그 소년을 만난 작가가 기록했다. 자칫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작가는 한 사람의 생을 들려줌으로써 아직도 그곳에서 살아갈 이들의 굶주림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꿈을 갖기도 전에 생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버티는 인생. 소년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자기 몫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자기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며 같이 고통받았던 이들을 떠올린다. 아무 잘못 없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 잃은 것이 아닌, 아직 남은 한쪽 팔과 다리로 살아가는 희망을 말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은 살아야겠다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는 북한을 탈출했고, 자유를 갖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삶에 적응하면서 그는 또 다른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세상은 겪으면 겪을수록 새롭고 어렵고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가 경험할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여전히 북한의 인권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 폐쇄된 그 안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자기 이야기를 한 지성호 씨도,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놓은 작가도, 읽고 있는 우리도, 아마 바라는 건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북한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그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기를. 그렇게 그 안의 실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게 되기를. 우리에게 있는 팔과 다리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


#팔과다리의가격 #장강명 #책 #에세이 #문학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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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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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일기에 적는 건가 보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솔직한,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거나 할 수 없는 말을 차곡차곡 모아놓을 수 있는 것. 여자는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게 더는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상태를 진료하던 의사에게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도 그녀는 회복될 수 없었다. 누구도 진실하게 진료하지 않았고, 그녀의 마음을 듣지 않았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말할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남편 존은 아내의 정신적 질병을 알고 있다. 다른 의사도 그랬지만, 남편 역시 아내에게 내린 처방은 참 단순하고도 무심했다. 절대적으로 휴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내의 신경 쇠약이 쉬어야만 낫는 병이라고 말이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시골 마을 외딴 저택으로 간다. 여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아내의 정신을 환기하겠다고 말이다. 아내를 위해 통풍이 잘되고 채광이 좋은 꼭대기 층 넓은 방을 부부가 사용하기로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의 결정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 준다며,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시대를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호의로 여기며 생색내는 사람이 있기는 할 테지만, 소설로 보는 작가의 경험담이 더 생생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시대를 대신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남편은 자기 역할이라 여기며 아내를 돌보는 방법이 오직 휴식 치료법이라고 여겼기에 그렇게 했을 텐데, 그게 정말 치료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몰랐던 게 아니면, 무시하고 싶었거나.


존은 신중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나서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 줘. 하루 종일, 매 시간 내가 할 일을 처방해 주지.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 주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거야. (33페이지)


흔히 휴식 치료법이라고 불리며, 19세기 초 여성에게 히스테릭하고 신경질적인 성향이 내재하여 있다고 믿던 시기. 간혹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휴식 치료법이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관리하려 드는가. 육체를 옭아매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게 휴식 치료법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주장을 제압하고, 단속하려 들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아내답지 못하고, 엄마답지 못하고, 불평불만이 많고, 바라는 게 많다는 거였고, 그렇게 많은 여성이 휴식 치료법의 대상자가 되어 목소리를 잃었다. 삶을, 인생을, 미래를 잃었다.


남편은 아내의 완벽한 휴식을 위한다며 모든 지적 활동을 금지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생각도 하지 말고 상상도 하지 말고, 뭔가를 적는 일도 하지 말고. 오직 숨만 쉬고 먹고 자는 일만 허락했다. 방 밖으로 나오는 것도 금지했다. 아내는 꼭대기 층 방에 갇힌 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 마음을 말해도 부정당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갇힌 생활이 길어질수록 아내의 증상은 깊어졌다. 남편은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며 자기 처방을 믿었다. “내가 의사잖아.” 의사라는 전문가의 말을 믿어야겠지만, 때로는 오진도 있고 잘못된 처방도 있지 않은가. 출구 없는 감옥에 갇힌 아내가 매일 보는 것은 누런 벽지다. 노란 것도 아닌 누런 벽지. 누워도 보이고 앉아 있어도 보이는 그 벽지에 점점 시선을 빼앗긴다. 아내의 모든 시간은 이제 한쪽 벽을 뒤덮은 누런 벽지에 잠식당한다.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병은 더 깊어만 간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챌 정도면, 아내는 정말 아픈 게 아니다. 내 몸의 이상을 나 자신이 느낄 수 있다는 건 지극히 정상이고,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녀가 아무도 듣지 않는 자기 말을 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 몰래 글을 쓰는 방법뿐이었다. 누군가 오는 기척이 나면 얼른 숨기고,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자기 생각을 적곤 했다.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치유를 하는가 싶었는데, 그마저도 누런 벽지에 빠져들면서 힘을 잃었다. 혼자 있는 방, 보이는 건 누런 벽지뿐. 아내는 점점 벽지에 빠져들면서 벽지를 보고 읽는다. 벽지의 무늬에서 사람을 보고, 움직임을 느낀다. 심지어 벽지와 대적하는 지경에 이른다. 아내에게 휴식을 주겠다며, 아내의 병을 치료하겠다며 선택한 방법이 옳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디어 탈출했어, 당신과 제니는 막으려고 했지! 내가 벽지를 거의 다 뜯어냈으니 다시 나를 가둘 수 없을 것이야.” (115페이지)


총 열한 개의 일기가 담겨 있다. 그녀가 머물던 저택의 꼭대기 층 방에서 머문 시간이 고스란히 적혔다. 아무도 듣지 못한, 듣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말을 유일하게 꺼낼 수 있던 방법. 읽을수록 바라게 된다. 그녀가 빨리 그곳을 탈출했기를, 남편이 그녀의 말을 더 새겨듣게 되기를, 갇힌 방에서 있는 게 휴식도 아니고 치료도 아니라는 것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더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있는 많은 것을 억압당하고 살아야 하는 게 어떤 결말을 만드는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분출을 막는 강요로 지성이 스러지는 과정을 생경하게 그렸다는 말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원인과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문학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여성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그들이 믿는 치료법이 잘못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작가는, 거대한 벽 하나를 무너트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평등을 위한 외침은 계속된다. 19세기에 이뤄낸 여성 인권 신장을 이 소설로 확인하게 된다. 소설의 결말은 끔찍했지만, 작가는 독자는 물론이고 오늘을 사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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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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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그래, 다른 거 다 없어도 돈만 있다면 노후 생활이 편해질 거로 생각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나이 먹고 돈 없으면 누가 나에게 밥을 줄까. 다른 가족이 있거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과 비비며 늙어갈 수도 있겠지만, 자식도 없다면 혼자 늙어가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돈도 있고 자식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때도 있더라. 치매라는 병 앞에서 선뜻 가족이니까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은 꺼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여긴 모든 게 다 가짜다. 바다처럼 보이려고 바다 색으로 칠한 수영장, 잠금장치도 없는 가짜 방문, 마을도 아니면서 마을이라고 붙인 가짜 이름, 여기 사는 사람인 척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 어른들, 어른들의 가짜 웃음, 아이들의 가짜 친한 척, 이젠 아기가 되어 버린 가짜 할아버지 할머니들……. (45페이지)


도란 마을은 치매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다. 하지만 누구도 병원이라고 느낄 수 없게 구성되었다. 넓은 집을 분양받듯 한 채씩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각자 생활한다. 식사 시간이나 공동 운동 시간에는 함께 모이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사생활을 유지하며 살 수도 있다. 아프면 진료해주고, 배고프면 밥 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 안 마트에서 산다. 카페도 있고, 미용실도 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마을 안에서 해결된다. 의료진과 직원들은 자기 자리에 맞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의사 가운이나 간호사 복장은 아니다. 마치 마을의 주민처럼, 어느 레스토랑의 직원처럼 입고 있는 직원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 살면서도 쉽게 공포에 떨고 놀라기도 한다. 환자들의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이 구성이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평화로운 곳이다. 고요하고 큰 소리 한번 난 적이 없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들려온 비명은 까칠한 할머니 탐정을 탄생시킨다. 최고급 리조트 같은 도란 마을의 쓰레기장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아기 시체가 발견된다. 도란 마을의 원래 땅 주인이었고 현재 도란 마을 입주자인 까칠한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이 사건에 관심이 많다. 도란 마을의 의사 아들인 꼬마는 할머니와 팀이 되어 이 사건을 파헤친다. 사람도 싫고 아이도 싫어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꼬마와 팀을 이루었을까 싶지만, 원하는 게 같으면 원수도 아군이 되는 법. 할머니는 이 무료한 곳에서 사건을 추적하며 즐거움을 찾고, 꼬마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가슴에 있는 상처를 하나씩 치유해나간다.


여기가 그렇다. 이게 일상이다. 깨끗이 씻겨 놓은 노인들은 아기 같이 예쁘지만 그 똥은 아기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주 씻겨 준다 해도 죽음과 고통의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여기 일하는 모두가 말한다. 나는 이 병에 걸린다면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죽겠노라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치매는 치매다. 누구도 도망가지 못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뇌는 날로 쪼그라들고,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 더 괴로운 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땐 흘릴 눈물조차 없어진다. 왜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114페이지)


비닐봉지에 버려진 아기 시체를 시작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까지 불렀지만 별일 없이 묻혀버린 상황을 보니 이곳이 참 수상하긴 수상하다. 치매 노인을 위한 완벽한 천국 같은데, 이 수상쩍은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이 찝찝함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할머니와 꼬마의 활약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 어려운 할머니는 수첩에 수사(?) 상황을 꼬박꼬박 적는다. 꼬마는 눈치 빠르게 할머니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구린내가 풀풀 나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왜 이렇게 씁쓸해지는지 모르겠다. 처음 했던 생각은, 돈만 있으면 노후가 그나마 덜 불행할 거로 여겼다. 틀리지 않는다. 노후가 그나마 행복하려면 돈을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새삼 느낀다. 최고 시설에 최고급 대우를 받는 곳이지만, 외로웠다. 가족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가족이 없다고 외로운 것도 아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가족이 없어도 자기 삶을 잘 마무리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을 테지. 하지만 많은 이가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치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또 그 틈을 이용해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이 활개를 친다.


각자의 사정을 숨긴 채로 도란 마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외로움과 슬픔은 더 깊어진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겨우 회복되려는 모자,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당하는 청년, 돈에 가려진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며 불륜을 저지르는 부부, 아무리 못된 짓을 하고 다녀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텅 빈 머리의 부모들, 당연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마약을 즐기고 마약 밀매까지 하는 권력자들, 이 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아기 시체 유기까지.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나쁜 짓이 도란 마을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도대체 도란 마을은 어떤 곳인가?


남들에겐 흔한 비극이라도 자기가 당하면 서러워지는 게 인간이지.” (59페이지)


챕터마다 화자가 바뀐다. 그들의 속내를 듣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일을 살기 위한 오늘의 몸부림 같아서 말이다. 기쁨과 희망보다 감춰진 고통을 듣는 일이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할머니의 까칠한 말투나 세상 관조하는 읊조림은 사이다 같기도 하고 은근한 바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많은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못된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애쓰고 노력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할머니의 삶의 태도가 몸부림치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나이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다. 그런데도 그 상황과 나이를 넘어서서 해야만 하는 일도 있는 듯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감춰진 거짓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 꼬마가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옆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누군가는 감추려고 애썼던 범죄를 훌륭하게 들춰냈으니까. 어쩌면 어른이 더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심장 쫄깃해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이었다. 도란 마을을 떠올리면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결말이 다르니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본인은 모르는 본인의 삶이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내 일상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내 인생을 잘 모르는 시간. 끔찍했다. 그게 치매 노인의 시선이고 시간일 거로 생각하니 더없이 우울해졌다. 우리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우리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 두렵기도 하고. 한 달에 1천만 원씩 내는 요양 시설에 가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러니 더 건강하게 살아보려 애쓰는 수밖에. 그래도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살고 싶기는 하다. 멋지고 심플하게, 당당하게. 그 마지막 모습마저 레모네이드 할머니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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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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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해도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을까. LP 레코드를 모으는 걸 보고 놀란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티셔츠라니. 하긴, 편한 차림으로 달리는 그를 생각하면 그와 티셔츠는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긴 하다. 하지만 티셔츠 수집은 또 다른 얘기라 의외의 느낌도 있다. 구석구석 파고들면, 그는 LP 레코드나 티셔츠만 모으는 건 아닐 거다. 문득 드는 생각이, 그의 집은 참 넓고도 넓어야 하지 않을까?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그가 수집하는 게 한둘이 아닐 것 같고, 그는 물건뿐만 아니라 세월 속 많은 것을 그의 가슴과 공간에 담아두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지금 듣고 있는 티셔츠 이야기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앞으로 어떤 수집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들려올까 궁금할 정도가 되었으니. ^^


티셔츠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다. 값싸고 재미있는 티셔츠가 눈에 띄면 이내 사게 된다. 여기저기에서 홍보용 티셔츠도 받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완주 기념 티셔츠를 준다. 여행 가면 갈아입을 옷으로 그 지역 티셔츠를 사고……. 이러다 보니 어느새 잔뜩 늘어나서 서랍에 못다 넣고 상자에 담아서 쌓아 놓는다. 절대로 어느 날 좋아, 이제부터 티셔츠 수집을 하자하고 작심한 뒤 모은 게 아니다. (6페이지)


무언가에 꽂히는 것. 처음부터 작정하고 모으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모인 것이 수집되었을 거라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그렇게 모인 것이 그의 공간을 채웠을 것이고, 그가 관심 두는 대상이 되었겠지. 그에게 티셔츠도 그러하다. 하나둘 눈에 들어오는 것을 집어 들었을 테고, 어딘가에 참석하면서 기념품으로 받았겠지. 여행하다가 기념하려고 챙겨 넣고, 작품 홍보용으로 받은 것도 많단다. 그렇게 모인 티셔츠는 처음에는 그의 옷장에 자리 잡았을 것이고, 그러다가 점점 부피를 키워가면서 보관해야 할 상자 안으로 이사하는 신세가 되었겠지. 어쩜 그렇게 비슷한지 모르겠다. 잘 버려야 정리를 잘하는 거라고 어떤 전문가는 말했는데, 사실 그게 잘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버릴 수 없는 게 우리 옆에 참 많으니까. 처음부터 작정하진 않았지만, 그가 모은 티셔츠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져 연재되었다. 그의 세월에 한 장면을 차지하고 추억의 힘을 발휘한다.




그가 소개하는 티셔츠는 그가 소장하고 있는 티셔츠의 극히 일부분인데도, 이 정도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티셔츠마다 주제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희한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한다. 그냥 생각날 때마다 사기도 하고 받은 것도 많을 테지만, 그는 티셔츠에 주제를 부여해서 구분했다. 맥주, 동물, 히어로, , 서핑, 위스키, 레코드 등 티셔츠의 그림이나 티셔츠를 갖게 된 배경에 관해 말한다. 저렴한 가격에 샀던 티셔츠를 환호하다가 요즘에는 그 저렴함의 의미를 잃어버린 판매에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표지가 그대로 느껴지는 <노르웨이의 숲> 티셔츠는 딱 봐도 그의 책인지 알 정도로 선명했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그가 아침부터 위스키가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 알코올 의존증 아저씨로 보일까 봐 걱정하는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위스키를 좋아하잖아? 아마 저녁에는 입고 다니지 않을까? ^^


대학교 이름이 적힌 티셔츠는 가지고 있는 게 많으면서도 거의 입지 못한다고 한다. 그 학교 관련자가 아니니까 입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어떤 티셔츠를 사고 그 티셔츠에 적힌 이름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는 그였다. 그러니 티셔츠는 그에게 단순히 수집 대상이 아니라, 창작인으로 사는 그의 작품과 연결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로 보인다. 작은 시선 하나에서 소설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티셔츠 하나가 작품의 한 장면이 되기도 할 것 같다. 그가 말하는 계속하는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경험이 작품 세계를 더 폭넓고 깊게 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티셔츠는 단순히 옷 이상의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자주 달리는 그에게 티셔츠는 너무 친근한 대상이고, 익숙하다. 이상하게 그의 소개 사진이나 다른 매체에서 보이는 모습이 편한 차림이어서 그런지, 그가 다른 차림으로 나타난다면 영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자기 책 홍보용으로 받은 티셔츠도 많지만, 입고 다닐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을 상상한다. ‘내 작품이 이렇게 티셔츠로 태어나다니 정말 뿌듯하군. 하지만 이걸 입고 다닌다면 자기 책 홍보하는 작가로 비칠까? 이것 참 쑥스럽군. 정말 입고 싶기는 한데.’ 뭐 이런 생각 하면서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도로에서 다니는 홍보용 큰 차량을 보는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말이다. 그는 대학교 티셔츠나 자기 작품 티셔츠나 뭐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입고 다니기 어렵다고 말하는 티셔츠가 참 많더라만. 나한테 몇 개 주면 안 되나? 그의 말처럼 티셔츠가 이렇게 많으니 여름이 와도 뭘 입어야 할지 걱정할 게 없다는데, 밖에서 입기 좀 그러면 집에서라도 열심히 입으면 되지 않을까? 우리 엄마가 맨날 그랬는데, 아끼면 똥 된다고. 어느 날 세월이 더 흘러서 옷의 연식이 더 쌓이면, 그때는 입고 싶어도 옷감이 상해서 입을 수 없는 지경이 오면 후회할 것 같다. ‘티셔츠만 넣은 상자가 넘칠 지경이 되었다면서요. 그러니까 저한테 티셔츠 몇 장만 넘겨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열정적으로, 매일매일, 아주 많이 아끼고 사랑하면서 입어볼게요!’


얼마 전에 읽은 그의 에세이를 떠올려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제 하루키를 향한 내 취향을 좀 알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맞는 듯하다.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일상과 지나온 시간을 보는 것 같아서 집중하게 되고, 또 혼자 웃으면서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어쩌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쓰게 된 걸까 궁금하면서도, 다 읽고 나면 쓸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디서든 이야기가 될 준비를 하는 듯한 그의 인생 틈새가 더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그의 티셔츠 인터뷰와 백여 장의 티셔츠 사진까지 보면 그가 대단한 티셔츠 수집가였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비록 어쩌다 보니 모인 티셔츠였지만 말이다. ^^ 그의 티셔츠 사랑과 그가 관심 두는 것이 무엇인지 덩달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그는 재즈, 야구, 위스키, 여행, 달리기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티셔츠에까지 연결되어, 이제는 그의 삶의 많은 것이 담긴 티셔츠로 남았다. 어떤 주제도, 의미도, 디자인도, 색깔도 제약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과 손이 닿는 대로 가까워진 티셔츠는 평범하고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고 독특하다. 마치 그의 일상처럼.



나는 옷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한 번씩 정리하면서 거의 버리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하루키의 티셔츠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상이다. 하지만 즐겨 입는 옷이 티셔츠이고 편한 차림을 선호하다 보니 저절로 티셔츠에 손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자연스럽게 모였다라는 그의 티셔츠 수집이 어느 날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도 하루키처럼 티셔츠 한 장 한 장 사진으로 찍어두고 사진으로나마 남겨둘까? 옷으로 남겨두기에는 내 공간이 너무 협소하므로, 보관해두고 관리하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니까. 하지만 내 추억 속 한 자락이 티셔츠로 차지해도 될 것 같아서, 실물이 아닌 사진으로 기록해두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그 사진 꺼내 보면서 웃고 싶다. (, 나이 먹으니까 이래. 소소한 것 하나에도 자꾸 의미를 두게 되고, 혼자 배시시 웃는 일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자꾸 생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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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04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옹 에세이만큼
구단님의 이 리뷰 참 좋았는데
제예감 적중함요 ㅎㅎ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구단씨 2021-06-08 22: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하루키 책을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아무래도 저는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로 만족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요. ^^

초딩 2021-06-05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루끼옹이네요 ^^ ㅎㅎㅎ 점점 굉장히는 아니지만 창의적으로 책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6-08 22:48   좋아요 0 | URL
다양하지 않나요? ㅎㅎㅎ
저는 이 책 보고, 그가 또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