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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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장례식에 다녀왔다. 돌아가신 분은 103. 이 나이까지 사신 분을 처음 봤고, 최근에 장례식에 다녀온 것도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상황에 장례식은 조촐했다. 가장 낯설었던 것은, 기존에 경험했던 장례식의 분위기와 너무 달랐던 거였다. 죽은 이를 보내는 자식들의 나이가 보통 70~80. 아무리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이 정도 나이라면 죽음이 가까워지지 않았던가. 실제로 죽은 이의 가장 큰 자식은 오래전에 먼저 하늘로 갔다고 한다. 103세의 부모를 보내는 70~80대 자식들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래 사셨다면서 슬픔을 거두는 표정이었지만, 아무리 나이 많은 부모를 보내는 일이라도, 같이 늙고 죽어가는 나이의 자식이라도, 부모의 죽음이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낯선 감정은 사라지고, 오직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슬픈 건, 슬픈 거다.


돌아가셨어.”

우리는 병실로 올라갔다. 그토록 기다렸으면서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시신의 모습을 한 존재가 엄마 대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시신의 손과 이마는 차가웠다. 그건 여전히 엄마였지만, 앞으로 엄마는 영원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움직이지 않는 얼굴을 둘렀단 가제 천이 턱을 받치고 있었다. (124페이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 쓴 글을 읽는 게 쉽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겪을 일이고,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지금, 이 글이 어떻게 읽힐지 가늠되지 않았다. 어쨌든 슬픔이고, 그래서 슬퍼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글은 의외로 담담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간이 마냥 슬픔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 그 기회로 한 여자의 생을 더듬고 육체의 죽음을 바라보며,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를 본다. 죽어가는 엄마의 옆에 머물면서 모녀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이제야 엄마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1963년의 어느 날, 시몬은 로마의 한 호텔에서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것. 겨우 전화기까지 간 어머니는 친구에게 전화하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다. 넘어져서 다쳤으니 병원 생활은 누워있는 것이 전부다. 곧 시몬과 여동생이 왔고, 자매는 교대로 엄마의 곁을 지킨다. 넘어져서 다친 것을 치료하려고 간 병원에서 어머니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지지 않았다면 암에 걸린 것도 몰랐을 테니, 오히려 넘어진 게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 어떤 병 앞에서도 다행인 건 없으리라. 이제 수술이라는 중요한 선택이 남았다. 수술하면 한 달 정도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르고, 수술하지 않으면 곧 죽는다고 하고. 근데 나는 여기서 참 궁금하더라. 수술하고 한 달을 더 사는 것과 수술하지 않고 곧 죽는다는 시간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정말 고민이 되더라는. 그래서 다시 이 상황에 나를 대입하면서 문장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이 상황에서, 엄마의 죽음과 수술을 앞에 두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자매는 어머니에게 복막염 수술이라고 말하고 암 수술에 동의한다. , 여기서 또 궁금해지네. 엄마는 정말 자기가 복막염 수술을 했다고 믿었을까? 자식들이 자기 앞에서 병을 숨기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른 척한 건 아닐까? 어쨌든 시몬의 어머니는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듯 보이다가 통증이 심해지다가 다시 괜찮아지는 듯하면서도 결국 나아지지 않는 쪽으로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깊은 잠에 빠져 꿈속에서 헤매고, 어느 날은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문병에 담소를 나누다가도 귀찮아하고, 아주 오래전 기억을 꺼내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 함께 있는 시간이 생기다 보니, 으레 그렇듯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거리를 좁힌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이 이제 조금씩 보이는 일을 여기서도 듣는다. , 인간은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왜 항상 지나고 나야 보이는 것들이 이렇게도 많은 거냐고. , . 그냥 그때 그 순간에 바로 알게 해주면 안 되나? 매번 뒤늦게 알아채는 것들 때문에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괴롭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 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죽은 듯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시계를 매달아 둔 검은색 리본이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엄마가 입고 있는 하얀색 실내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하곤 했다. 이게 마지막 경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106페이지)


원래 이 작가가 이렇게 글을 쓰는가 싶을 정도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을 차분하게 적은 느낌에 놀랍기도 했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하나 싶기도 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완독한 게 없기에 안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 비교 대상이 없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애매한 분위기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기에는 충분했다. 더불어 내가 경험할 죽음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엄마는 어제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오셔서 1차보다 심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 이러다가 뉴스에서나 보던 심각한 부작용 사례를 내가 눈앞에서 보는 건 아닐까 걱정하다가, 마침 읽고 있던 이 책을 생각하니 또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도 없었고. 원래 병원행이 잦았던 엄마였지만, 최근 반년 사이에 병원 생활은 사람을 너무 지치게 했기에 다시 또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간의 기억은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니 작가가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담기 시작했던 많은 것이 내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 거다. 그 문장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아마 자신의 경험이 가장 정확한 죽음의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거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앞에서 시들시들 누워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문장의 여러 곳을 곱씹었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시간에야 비로소 화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게 또 다른 슬픔이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자,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거북했던 딸의 시선은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온전히 받아들인다. 외면했던 장면들을 되살리고 그 외면의 일부였던 어머니를 소환하며 화해한다. 그걸 화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적당한 표현을 못 찾겠다. 어쩌면 작가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고, 어머니는 또 다른 시선으로 딸을 보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머니는 그동안 한 번도 딸을 외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를 다 알게 되지는 못할 테니까.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58페이지)


어머니의 늙은 육체를 보는 것도 어색하고 어렵기 그지없었다. 늙어가는 게 어디 육체의 한 군데뿐이겠냐마는, 언제 봐도 적응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작가의 놀란 마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서 그대로 전해진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엄마랑 목욕탕에 가는데, 예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일 때마다 놀랍고, 마음이 아프다. 엄마의 등을 밀어드리는데, 갈수록 늘어지는 근육에 타올을 낀 내 손이 다른 방향으로 밀릴 때마다, 혹시나 살이 아프지 않을까 물어보면서 조심스럽게 등을 미는 일을 계속하는 게 그저 편하지만은 않다. 작가가 적어낸 그 과정을 보는 것처럼, 이렇게 늙어가는 엄마의 몸은 어느 순간 죽음에 훨씬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을 아니까 말이다. 그 어떤 말을 해도 경험을 능가하는 감정과 표현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빨리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완벽하게 공감하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그 공감에 바탕에 되는 건 슬픔일 테니.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과정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작가는 이 시간 동안 죽음이 우리 곁의 일상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죽음의 민낯을 드러낸다.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어머니를 곁에서 지킨 가족들이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도 알았다. 어떤 죽음도 자연스럽지 않으며, 누구라도 죽음을 맞이한다는 걸 알지만, 외부에서 기인한 것들로 죽어가는 인간에게 죽음은 폭력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보면서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을 하는 거로 생각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것도 가족을, 어머니를 보내는 일에 많은 사유가 담겨 있었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153페이지)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아직 엄마가 내 옆에 있을 때 시간을 좀 더 같이 보내야지 하는 한 가지 바람만이 남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도, 앞집 아저씨 뒷말을 하는 의미 없는 수다라도, 아픈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이라도. 작가의 말처럼, 자기가 죽을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나의 엄마 역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흔히 노인들이 어서 죽어야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자기는 죽기 싫다고, 이제야 좀 숨 쉴만한데 왜 죽냐고, 자식들하고 손주들하고 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고. 나는 엄마가 이렇게 말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다행이다. 아마 엄마가 내 앞에서 입버릇처럼 어서 죽어야지 한다면 막 화를 냈겠지. 듣기 싫다고. 아직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화내는 것밖에는 없어서.


작가가 써 내려간 죽음의 정의 같은 문장들은 언젠가 내가 겪을 순간을 준비하는 것만 같다. 병원 생활이 더 잦아지는 엄마를 보는 일은 괴롭고, 그때마다 혹시 모를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어떤 죽음도 자연스럽지 않으며,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사람도 없다. 그러니 103세 노인의 죽음이 호상이라며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들의 말은 틀렸다. 죽음은 죽음이고, 어떤 죽음도 평범하지 않으며, 죽음 앞에서 나이는 없다. 죽음은 인간에게 닥친 사고일 뿐이라는 작가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저, 우리에게 다가온 일상의 불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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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6-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면서는 누구나 죽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해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런 생각은 못하겠지요 103세에 세상을 떠나다니... 죽음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다 슬프겠습니다 작가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쓰기도 하는데, 그것도 애도가 아닐까 싶네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해요


희선

구단씨 2021-06-24 21:18   좋아요 1 | URL
정말요. 읽으면서도, 타인의 경험을 보면서도 느껴요. 이렇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 하는구나...
하지만 그 죽음을 바라보고 감당하는 게 내 몫이 되면 또 생각대로 다가오지는 않더라고요.
작가의 애도 방식이 이 책으로 남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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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이로울 만큼 행복하다.

내가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함께 흥에 젖기 위해 연주한다.

나는 내 부모의 집을 나왔다. 정말로 나왔다. (312페이지)


15년간 아버지에게 감금당하듯 살아온 소녀가 그 집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끔찍했던 기억을 뒤로하고 현재의 삶을, 그녀가 잃은 많은 것을 찾아가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회복은 더뎠다. 쉽게 꺼낼 수 없는 기억이 되어 일상을 마비시켰다. 사십여 년이 지나고 이 책이 나온 이유가 그 고통의 시간을 증명한다. 선뜻 말할 수 없던 시간이 그렇게나 길었다. 정신적인 학대가 한 인간의 성장과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보여주는 시간이 되었다.


자신의 딸을 초인으로 만들겠다며 시작된 아버지의 계획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세상은 한없이 위험하며, 배신자로 들끓고, 어디서 공격해올지 모를 적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훈련처럼 아버지는 딸을 훈육한다. 가두고, 씻지도 못하게 하면서, 연장을 쥐여주며 일을 시킨다. 자신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상처에 독한 술을 부어 소독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소변보는 일을 어린 딸에게 수발들게 하고, 딸이 당하는 성폭력을 보고도 외면한다. 아버지가 행하는 모든 일은, 딸이 이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당연했다.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도 모드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방식에 입을 다물지 못하리라. 더없이 사악한 인간이 우글거리는, 더없이 위험한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말고, 세상을 지배하고 살아갈 존재로 만든다는 그의 신념을 누가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 광기에 휩싸인 아버지 손에서 자란 모드가 세상으로 뛰쳐나오기까지 버티게 한 건, 유일한 소통 창구였던 동물들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개, 두 마리의 말, 무리에게 공격당하던 오리. 그리고 책과 음악이었다. 아버지는 전쟁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음악을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모드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쳤다.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혔다. 그런 시간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모드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기도 했다. 위기를 감지한 좋은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발휘한 모드의 의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그 아버지 역시 잔인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 광기의 시작은 모드의 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드의 아버지 역시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인물이며, 그가 겪은 두 번의 전쟁은 큰 상처를 남겼고, 그로 인해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릇된 방식이라는 게 그 계획의 오류였지만. 모드의 어머니 역시 부모와 남편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했으며, 남편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딸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하는 존재가 된다. 모드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드. 세 사람 모두 희생자와 피해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고통을 이기고 버티며 존재하려고 애쓰는 게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모드의 아버지가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잘못된 신념은 어린 딸을 어떻게 망쳐가고 있는지 보여주었으니까. 그런데도 강인한 정신력의 모드는 이 이야기의 의미가 된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삶이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해준 것보다 훨씬 끔찍하다는 것을, 온통 폭력과 오욕과 복수와 배신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삶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삶에 맞서 벽을 세우지 않는다. 반대로 삶을 사랑하고, 그 안에 잠기고, 필요하다면 아예 깊숙이 빠져버린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뭐든 겪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 (157페이지)


조금씩 버티고 나아가는 그녀의 의지는 아버지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그녀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문을 연다. 트라우마를 이겨낸 그녀가 이 책으로 현재 그녀의 삶을 보여주었듯이, 우리에게 닥칠 불행과 위기를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지 미리 증명하는 답이 된다. 그녀 옆에서 의지가 된 동물들과 책(문학), 음악이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게 했다. 그녀의 말처럼, 자유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321페이지)라는 신념이 그녀에게 완전한 치유를 선사해주었기를 바란다. 충격으로 시작했지만,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하면서 페이지를 덮게 하는 책이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절망이 아니라는 희망을 남기는 듯하다.



아버지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전부 다 나를 위해서라고 되풀이해 말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나를 위해, 예외적 존재가 될 운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나를 키워내는 일에, 나의 형체를 빚고 조각하는 일에 바치고 있다고 말한다. (35페이지)


다른 집에서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고 춥지 않도록 이불을 잘 덮어준다는 얘기를 채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혼자다.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외톨이다. 혼자 버텨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싫다. 혼자만 떨어져 있는 것은 지옥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싶다. (118페이지)


아버지의 손이 내 얼굴로 다가오고, 아버지의 긴 손가락이 내 이마 위에서 열을 확인한다. 이제 그 손이 내 뺨을 어루만져주길 나는 온 힘을 다해 기원한다. 손가락 끝이라도 한 번만 만져준다면 바로 그 순간 이 집과 철책과 담이 사라지리라. 우리는 함께 바깥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리라. 하지만 손길은 없다. 아버지의 손가락은 내 이마를 곧 떠난다. 곧이어 아버지가 문 쪽을 향해 고함치는 소리가 지금까지의 마법을 깨뜨린다. “자닌! 모드 깼어! 백포도주 가져와!” (15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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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6-19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드 아버지도 자기 아버지한테 학대를 받았군요 그런 거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드 아버지가 한 일을 용서할 수는 없겠습니다 자신이 당한 일을 생각하고 자기 딸한테는 그러지 않아야겠다 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자신이 당한대로 자식한테도 하는 것 같아요 폭력은 대물림 된다고 하니... 동물, 음악, 책이 있었다니 다행이고, 스스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벗어나서 다행입니다


희선

구단씨 2021-06-22 23:11   좋아요 1 | URL
어느 전문가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마음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내면의 아이를 찾아서 그 시작부터 다시 걸어봐야 한다고요. 모드 아버지도 비슷한 시작이 아니었나 싶어요.
 
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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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과 논리를 조합해 진실을 제시한다. (181페이지)


마음이 약해지고 불안할 때 찾는 게 점집 아니었던가? 억울하고 아쉬운 마음에 그리운 사람 찾아보려는 이들에게는 더한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 영매가 아닐까 싶다. 믿고 싶지 않지만, 또 완전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상한 마음이 자꾸 끼어든다. 그래서 가끔은 영매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바라는 결과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을 가진 자는, 언제나 약자다.


고게쓰는 추리소설 작가다. 형사도 아닌 그에게 죽을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면서, 그의 능력을 무조건 믿는 듯한 말투다. 사실 그에게는 범인을 찾는 능력은 없다. 가끔 경찰의 의뢰를 받고 몇 가지 조언과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거기에 영매 조즈카 히스이를 만나면서, 그녀의 능력을 지켜본 게 전부다. 그도 남다른 추리력으로, 심지어 그 눈썰미로 추리소설까지 쓰고 있지만, 조즈카의 능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는 그녀의 시선은,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한 사건까지 해결하는 지경에 이른다. 도대체 영매 조즈카, 그녀는 누구인가.


오래전에 어디선가 들었는데, 형사가 범인을 잡지 못하고 답답할 때 점쟁이에게 간 적도 있다고 하더라만. 이 경우는 좀 다르게 시작된다. 고게쓰가 여자 후배 유이카의 부탁으로 영매를 만나러 가고, 영매의 기이한 조언에 따라 해보려고 하던 중에, 유이카는 죽는다. 그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해봐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조즈카의 섬세한 관찰력이 없었다면, 아마 유이카는 죽어서라도 편히 눈감지 못했을 것이다. 억울해서. 그때부터 인연이 된 조즈카와 고스케가 마치 한 팀이라도 된 것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살인 사건의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우는 여자 살인, 수경장 살인, 여고생 연쇄 교살 살인. 세상에 참 다양한 이유의 살인이 있다는 걸 이 책 보고 다시 느낀다. 이렇게 죽은 영혼은 또 얼마나 아프고 억울할까. 그래서 사건 해결에 조즈카의 참여가 뜬금없다고 생각되면서도 어떤 의미로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죽은 영혼을 위로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건 해결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이뤄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운을 느끼고, 희생자의 영혼에 접속하면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 조즈카의 초월적 능력 앞에서는 풀리지 못할 사건이 없다.


히스이는 타인의 냄새가 그렇게 잠깐 새에 변하는 것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고게쓰는 그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딱 한 마디로 자신의 인생이 뒤집혀버리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고게쓰도 그런 경험이 있다. 눈을 감으면 그 말을 했던 사람의 표정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고작 한마디로 나라는 인간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199~200페이지)


조즈카와 고게쓰의 조합은 과학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완벽한 팀이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이는 그대로를 추적하면서 사건 해결에 접근하는 게 고게쓰라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추론을 제시하면서 죽은 이와 보이지 않는 사건 상황을 말하는 이는 조즈카다. 어쩌면 막연한 환상처럼 들리는 조즈카의 추론을 뒷받침하는 게 고게쓰의 합리적인 수사 과정 설명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살인 사건들은 자칫하면 미제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상황을 들으면서 하나도 놓치지 않는 조즈카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들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터였다. 조즈카와 고게쓰의 하모니가 빛을 발하고 있을 무렵,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연쇄살인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연쇄살인을 멈출 수 없다고 여길 무렵, 소설은 반전으로 독자를 놀라게 한다.


두 사람이 명콤비로 이 시리즈를 이어갈 거로 여겼다. 새로운 분위기의 추리소설이었고, 맛깔나는 탐정 시리즈가 될 것 같았다. , 이들이 어떤 상황으로 치달을지는 소설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고, 무엇보다 영매라는 특이한 캐릭터의 등장은 신선했다. 영매 탐정. 비췻빛 눈동자로, 누가 봐도 아름답고 보호해주고 싶은 비주얼. 그녀의 특별한 능력으로 경찰 수사에 도움을 주면서, 마지막까지 그 능력을 빛나게 하는 해결사가 된다. 아우, 입이 근질근질. 이 소설의 결말에 놀라면서도, 아쉽기도 할 테다. 이 콤비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반, 사건이 해결되어 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반.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영매 탐정의 활약이 계속되어도 좋겠다는 바람만이 남는다.


한편으로는 정말 궁금하기도 하더라. 영매의 기운이 어떻게 다가올까 싶은 마음. 정말 인간에게 저런 능력이 주어지는 걸까? 믿기 어려운 상황은 계속 일어나지만, 살인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믿기 어려운 이 상황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건이 일어나고 시신이 놓였던 자리에서 영매의 재연을 보면서 신비함은 고조된다. 그렇게 재연한 영시의 힘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한 문장도 허투루 볼 수 없게 한다. , 모든 것이 마지막의 반전을 위한 복선이었어. 범인의 고백과 살인 이유를 듣다 보면, 인간의 감정이 보통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는 섬뜩함이 남는다. 역시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인 걸까.


사람의 혼은 어디에 있을까.

죽으면 그 넋은 어떻게 될까.

수수께끼는 많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도 있다고,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위안은 되리라. (314페이지)


아직 끝나지 않은 조즈카의 활약을 기다리는 이유가 충분한 이야기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오컬트 #시리즈 #책추천

#영매탐정조즈카 #아이자와사코 #비채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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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6-11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데, 말했다가 정말 그러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게쓰 죽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말해버렸네요 이게 아니면 괜찮겠지요 고게쓰가 뭔가 하는 걸 보면 아닐지도... 영매사 탐정 괜찮을 듯합니다


희선

구단씨 2021-06-17 16:02   좋아요 1 | URL
무섭죠? ㅎㅎㅎ
후반부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의외였어요.
 
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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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반년이 넘어가는데, 나는 아직도 엄마가 사는 시골의 낡은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목적지를 말할 때도 아파트로 갈게, 아파트에 들어왔어.’ 이렇게 표현하지 집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입에 붙은 습관처럼 말이 그렇게 나온다. 나는 아직 이 집에 정이 붙지 않은 걸까? 아니면 언제가 될지 모를 또 다른 이사계획에 마음이 붕 뜬 걸까, 그것도 아니면 폭력적인 소음으로 공격하는 윗집 사람들 때문일까. 머릿속에 막연하게 채워진 생각들이 만들어갈 그곳이 궁금하다. 이제까지 살아온 집의 기억에 보태 앞으로 살아갈 집은 어디의 어떤 집이 될는지.


집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을지도 모른다. 집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먹고 자고 쉬고, 일상의 모든 것이 해결되어야 할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물리적인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것까지 아우르는 존재로 있어 주기를 바라는 곳. 작가가 머물다 온 그 집들을 생각하면, 집은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장소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낡고 불편했지만, 간절하면서도 애틋한 기억으로 남은 집들이 작가에게는 정신적인 공간이었을 테다. 작가가 걸어온 시간을 가득 채운, 가난의 모습이 곳곳에 묻어있는 그곳. 집에 대해 잘 몰랐지만 편한 집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게 한 그 시절의 이야기에 우리는 또 꿈을 꾼다. 편한 집, 내 공간,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작가가 찾던 집도 그런 곳이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한 공간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결국에는 오랜 세월의 끝을 정착하려고 선택한 집에 머물며 오늘을 살게 하는 곳을 찾았다.


자주 집 꿈을 꾸었다. ‘보이라에 에아가 차서 방이 냉골이라고 추위에 떠는 엄마 꿈, ‘입식 부엌에 지름 보이라를 못 놔서 서러운 아버지 끼무. 꿈속에서도 나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있다. , 언젠가 돌아와 아궁이에 물도 차지 않고 보일러에 에어도 차지 않은 번듯한 입식 부엌에 기름보일러를 놓아드리리라. 엄마,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리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우선 나는 아궁이 물을 푸며 읽었던 책 몇 권 안고 집을 떠났다. (44페이지, 아궁이에 물을 푸며 책을 읽다)


작가가 어릴 적, 거대한 큰집 옆에 자리한 세 칸 초가집이 작가의 집이었다. 엄마가 힘들었음은 물론이고 그 후로 아버지가 다시 지은 부로꾸집(블록집) 역시 불편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집은 아버지의 거듭된 실패와 모습을 같이 한다. 더 좋아질 것 같았지만, 더 좋아지지 않았던 생활 공간으로 남았다. 어디를 봐도 완벽한 집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그곳을 거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처음 자취를 시작한 광주의 어느 식당 방.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의 봉제 공장에 취직하면서 경험한 기숙사, 역시 낡고 오래된 임대아파트까지. 그리고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게 구매했던 담양 수북의 땅. 땅만 사면 집은 저절로 짓는 거로 여긴 건 아닐까? 나도 그랬다. 땅만 구하면 집 짓는 것은 업체에 맡기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땅(자리)을 구하기도 어렵고, 집을 잘 짓는 업체를 만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흐지부지되었고, 이제는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을 생각하면서 막연하게 집 짓는 꿈을 꾼다. 작가의 시행착오를 들으면서 웃음이 나고 공감되는 건 그 때문이다. 나보다 앞서 경험한,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작가에게 존경을 담아본다.


어렸을 적의 시간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성장을 거쳐 나이 든 후 수북으로 돌아가 집을 짓고 사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입자로 살던 게 굳이 나쁘지는 않았을 테지만, 작가가 내버려 둔 땅에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일은 마냥 힘들었던 집주인 때문이었다. ‘더는 안 되겠다, 집주인의 갑질을 겪지 않을 내 집을 지어야지.’ 그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림 그리듯 해놓은 설계도를 가지고 시공자를 찾는 일부터, 부족한 예산으로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하는 계산까지 해야 했다. 저자는 말하는 장면들이 눈에 선했다. 듣기만 해도 아찔했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정말 정직하고 성실한 시공자를 만나지 않은 다음에야,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다음에야 이룰 수 없는 꿈이었으리라. 내가 마련한 장소에 내가 원하는 집을 짓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큰일 없이, 무사히(?) 집은 완성되었다. 작가는 그 오랜 세월 쌓아둔 집을 끌고 새로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조만간 집이 완성되면 좋든 싫든 나는 그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로서는 엄청난 결단과 돈을 들여 땅 위에 처음 짓는 내 집이다. 남이 지어놓은 아파트에 돈만 지불하고 들어가는 것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일임이 분명하다. 땅 위에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집을 짓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걸 집을 짓는 중간에서야 갑자기 깨달았다. 아이구야, 내가 뭣도 모르고 큰일을 저질러버렸구나! (99페이지, 그녀, 집주인 여자 때문에)


어찌 되었든, 머물기로 다짐한 곳에서 또 정을 붙이기 마련인가 보다. 잔디를 잘못 심어서 후회하고, 데크에 잘못 올린 지붕 때문에 여름 더위에 시달리고. 그러면서도 내 집이라는 안정이 주는 시간을 살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수북의 집에서 작가는 시골 마을 주민이 되어 살아간다. 시골이라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지만, 폐차한 차 대신에 이용하는 대중교통으로 다른 풍경을 본다. 장날에 읍내에 나가는 경험, 버스에 올라탄 이들의 이야기에 살아간다는 것을 배운다. 뭐든지 도시보다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버스에 올라탄 할머니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주는, 교통카드가 아니라 손에 쥔 잔돈으로 버스비를 내는, 그러다가 동전이 손에서 우르르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 짐보따리를 버스에 싣고, 지팡이도 올리고 몸도 실어야 하는 이들의 느린 행동에도 기다려주는 버스 기사. 나 역시 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이런 기사님 보기 어려운 이곳에서는 마치 다른 공간의 이야기 같아서 낯설다. 그 느림과 이해가 부럽기도 하다. 사고 없이 천천히, 누군가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버스의 모습을 그리면서, 작가가 머무는 시골 마을의 풍경을 읽는다.


작가처럼, 나도 집을 생각하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 시절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좁은 집에서 부모님과 육 남매 북적거리면서(사실은 낑겨지내면서) 살았던 시간, 수시로 싸우고 울고불고하면서, 가난에 원망만 가득하던 마음. 생각하면 아프기만 한 공간에 기억이 더해져, 그 시절의 행복과 불행이 따라온다. 솔직히 말하면, 행복보다는 불행하다고 여기던 시간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뭐든 힘들고 부족하기만 했던 기억, 마음의 여유는 생각도 못 하던 날들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우리는 어렸고, 그래서 더 이해하지 못했고, 그 집에서 고생하던 엄마의 애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래되고 낡은 집만큼이나 엄마도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부족하고 낡은 곳이어도 지키고 있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걸 이제야 안다. 집주인의 갑질 없이, 매달 나가는 월세 걱정 없이, 언젠가 내쫓길 걱정 없이 지내는 일이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곳이 아니었다면, 그 동네 그 집이 아닌 곳에서 나고 자랐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우리가 걸어온 시간과 모습 그대로를 담아낸 그곳이 가진 의미를 묻는다. 집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말하는 듯하다. 가지고 있다가 값이 오르면 팔고 나올 부동산이 아닌, 눈비 막아주면서 머물기 좋은 곳. 내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고, 언제 떠나도 돌아올 수 있는 곳, 그렇게 안심이 되는 곳. 엄마가 자주 이사를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 낡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게 아닐까. 예산이 맞지 않아 이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새로 집을 짓는 일을 꿈꾸는 게 어떤 마음인지, 안다. 엄마의 기억 속에 가난과 고생이 전부가 아니었던, 그래도 행복하고 따뜻했던 시간의 그 집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가지 못할 시절의 아름다움이 엄마의 기억 속에 있을 것만 같다.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할 그 시절의 이야기가 머물러 있는 곳이 되어.


왠지 마음이 고적한 날이면, 어떤 그리움에 목이 메는 날이면 전라선을 탈 일이다. 그래서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하나도 별날 것 없는 곡성역이나 구례구역이나 괴목역에 내릴 일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누구를 만날 일도 없이. 아무 일 없이 기차역으로 가서, 아무 일 없이 강물 가까이 흐르는 기차역에 내리자. 그래서 강물이 헤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일 없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리라. 그가 그 기차역, 그 강물 언저리쯤에서 사랑을 만나 새로운 둥지를 틀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있을쏘냐. (188페이지, 아무 일 없이 기차역으로 가자)


집이란 곳은 떠나야 한다고 여겼던 저자가,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거쳐 고향 근처로 내려온 이야기가 애틋하다. 집에 대한 기억이 단순히 집으로만 머물지 않음을 알고 있어서일까. 그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삶,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한다. 춥고 덥지만, 가끔은 시원하고 따뜻했을 그곳을 기억한다.



#춥고더운우리집 #공선옥 #한겨레출판 #에세이 #산문

##책추천 ##인생 #머물곳 #기억 #시간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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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6-11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집을 지어서 살기로 하다니,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네요 집 지어주는 곳하고도 잘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걸 하고 그 집에 들어가서 살게 돼서 다행이네요 그렇게 했으니 집에 정을 붙이고 살아야겠습니다

우리 집은 식구들이 함께 사는 집이라는 생각이 더 들겠습니다 집도 떠나봐야 그 집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을 안 떠나봐서... 좋은 기억뿐 아니라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집이 있다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희선

구단씨 2021-06-17 16:01   좋아요 1 | URL
물리적으로 완벽한 집이 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정 붙이면서 나만의 집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싶어요.
저도 고향집 생각하면 우울한 기억이 많은데, 지금은 그 집에 다니러 가면서 엄마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 집이 헐리고 새로운 집이 지어진다고 하면 이상하게 슬플 것 같아요.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243페이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염영숙이다. 죽어가는 상권이지만 편의점을 하나 가진 그녀가 노숙자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게, 선뜻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도움을 받은 상황이라고 해도, 나는 그녀의 결정이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염영숙은 기차 안에서 자기 파우치가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파우치 안에는 그녀의 신분증과 지갑, 통장 등 모든 것이 담겼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궁금할 무렵에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기차를 타기 전 머물렀던 서울역으로 되돌아가서 만나기로 한 분실물 습득자. 통화상으로 가늠할 수 없던 상대방은, 막상 만나고 나니 노숙자였다. 그녀의 파우치를 끌어안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자의 면면을 살핀 그녀는 타이밍 좋게 그만둔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에 그를 배치한다.


그럴 수도 있지. 외모 말고 내면을 본다면, 노숙자 이력이 있어도 성실하다면, 노숙자 독고 씨를 고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잠깐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염영숙의 선택을 아직도 의심한다. 독고 씨의 현재를 봤기에, 오랫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왔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옷에 외모를 가진 그의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지. 그것도 물건을 팔고 편의점을 맡기면서 혹시나 하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기다려 봤다. 그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따지려면 독고 씨의 모습을 더 지켜봐야지.


점점 이상해지는 이 기분은 뭔가 싶을 정도였다. 독고 씨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었고, 덩치만 컸지 누구에게 당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보였는데. 처음 편의점에 등장했을 때도 모두의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았던 그가 점점 변해간다. 편의점 알바 사수가 된 시현 씨는 배움이 느린 그에게 천천히 일을 가르쳐준다. 독고 씨는 나름의 성실함으로 금방 일을 배우고, 사수의 감탄을 끌어내고야 만다. 아침 교대 알바인 오 여사는 여전히 독고 씨는 경계하고 무시하지만,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 앞에 있어 준 것은 독고 씨뿐이었다. 어디 동료들뿐이랴. 편의점의 손님들 역시 이상한(?) 독고 씨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도대체 독고 씨,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오지라퍼 독고 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뜨끔거리는지 모르겠다. 느리고 버벅대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게 하는 건 그의 진심 때문이겠지. 기억을 잃은 그가 되찾으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놓친 것, 그가 후회하는 것, 그가 이제야 다시 찾고 싶은 것이 그의 어눌한 참견에 다 담겼다. 그렇다고 그의 참견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 건, 그의 더듬거리는 말투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그가 잃어버린 말을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마주한 사람들도 무언가를 찾아가야만 했던 마음을 내비친다. 서로 윈윈하는 모양새다. 독고 씨는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을 맞추면서 하나씩, 그에게 마음을 내비친 이들은 상처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하나씩. 독고 씨의 오지랖이 고마운 건 답을 알려주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보세요 하면서 그의 의견을 슬쩍 얹어놓는 것. 그가 눈여겨봤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에 의미가 있다.


그가 놓친 것을 이렇게 되찾는 건가?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타인에게 선뜻 꺼내지 못한 마음을 끌어안고 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여간 가슴 아프고 답답한 게 아니다. 염영숙은 수시로 아들의 전화에 시달린다. 편의점을 팔고 자기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안 하고 허황한 꿈에 부풀어 사는 아들이 괘씸하고 안타깝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편의점 알바로 일하는 시현 씨는 정말 자기 목표가 공무원시험 합격이 맞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이대로 있자니 불안하기만 하다. 오 여사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뛴다. 알바가 아니라 생업인 거다. 몇 년째 시험 준비한다면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하는 서른 살의 아들을 보는 게 괴롭다. 어디 이들뿐이랴. 편의점에 찾아와 매일 참참참 메뉴를 고르는 영업사원의 비애는 외로움이었다. (참참참 메뉴가 뭐냐고? 참깨라면에 참이슬에 참치김밥) 등단하면 다 된다고 여겼던 희곡작가에게는 절필 선언을 할 마지막 기회가 생겼고(작가 후기 보니 아마 이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건을 훔치던 소년에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어떻게 이들의 괴로움을 없애고 삶의 희망을 되찾을까 싶었던 그때, 독고 씨의 한 마디가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선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선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108페이지)


진심을 기본으로 장착한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 그 문제 해결의 답이었다. 이들 모두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듣다 보면 눈에 보인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고, 누구도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차단 스위치가 올라간다. 집에서, 사회에서, 자기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가장 당황했을 이를 당사자였을 텐데, 옆에서 윽박지르듯 다그치는 말에 소통의 부재가 시작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다니까 왜 그만둬? 어디서 그런 자리 구하겠어? 그런 사기에 빠져들지 말고 일하라니까?! 그거 아니니까 내 말을 들어!’ 근데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면서 우리는 당사자의 생각을 듣고 말한 적 몇 번이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상처받고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자기 의견만 말하고 그게 옳다고만 하면, 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더 상처를 주게 되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 멀어진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우리가 되겠지.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닌 게 되고, 서로의 가슴을 더 할퀴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독고 씨는 이 방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조금씩 그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독고 씨는 자기가 놓친 것을 알아채고, 그의 이력만큼이나 똑똑한 머리로 이들에게 답을 던져준 것이다. 지금 틀어진 이 관계를, 더 늦기 전에 더 놓치기 전에, 마치 자기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되돌려 놓으려고 애쓴다. 동료와 손님에게 꺼낸 말들은 아마 독고 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거다. 자기가 회복해야 할 관계의 주문이었을 테다. 그가 자기 과거에서 놓치고, 노숙자가 되기까지 절망했던 시간에, 그가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것은 실패한 관계였다. 누구나 바랐던 위로 한마디에, 제발 한 번만 들어달라는 간절함을 지나쳤던 순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또 다른 후회만 남길 뿐, 이제는 그가 타인에게 건넨 위로와 그가 타인에게 받은 위로와 믿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야만 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페이지)


김호연의 동네 이야기 시즌 2’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소설이, 이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인 망원동 브라더스를 아직도 읽는 중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외 작품들을 다 읽었지만, 너무 강렬한 이미지가 더 많이 남아서 그런가. 이 작품 읽고 나니 미처 다 읽지 못한 망원동 브라더스를 빨리 완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힘든 오늘을 위로받고, 불편하게 만들면서 은근 츤데레 스타일을 뽐내는 독고 씨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웃음이 나고, 따뜻해지고, 무심하게 건넨 위로에 희망을 꿈꾸는 곳. 불편한 편의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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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6-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작가의 <고스트라이터즈>를 재밌게 읽은 적 있어요.^^

구단씨 2021-06-08 22:46   좋아요 2 | URL
그쵸? 다른 작품도 재밌어요. 의미 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요. ^^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1-07-09 22: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이 작가분 책 재밌어요. 기회 닿으시면 한번 만나보셔도 좋을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