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아스무까에스 톨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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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0 - 영국 산업 혁명 편 : 멋진 신세계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0
설민석.김정욱 지음, 박성일 그림, 원태준 감수 / 단꿈아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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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카 덕분에 어린이책 즐기면서 읽고 있는데, 역사와 세계사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시리즈도 이가 빠진 것처럼 읽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영국 산업 혁명 편. 세계사의 흐름을 차곡차곡 쌓기에 좋은 시리즈. 공부란 즐겁게 하는 게 가장 좋은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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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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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식을 다 담아놓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소설로 시작해서 희곡, 논픽션, 에세이가 혼재한다. 책 소개 글의 설명 그대로 말하자면 크로스오버 장르라고. 이런 방식의 책을 처음 접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익숙하지도 않다. 한참을 읽다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페이지를 넘기다가, 도쿄의 시간을 본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도쿄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


화자인 작가 K에피타프 도쿄라는 집필 중이다. 자기 자신을 흡혈귀라고 말하는 요시야를 만나서 도쿄의 곳곳을 누빈다. 이유는 도쿄의 묘비명을 찾기 위해. 묘비명이라는 뜻의 에피타프는 이 소설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야기 방식도 특이하다. 작가 K가 집필 중인 희곡 에피타프 도쿄는 여성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이고, K와 함께 도쿄의 묘비명을 찾아다니는 요시야는 스스로 흡혈귀라고 말한다. 소설은 그 이야기를 각각의 다른 시선으로 서술하면서 도쿄의 시간을 퍼즐처럼 맞추게 하는 듯하다. 작가 K가 일상을 지내면서 B와 요시야와의 시간을 보여주는 Piece는 과거 회상과 기억 속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요시야의 시선으로 도쿄의 시간을 풀어내는 drawing은 추억 속에서 헤매는 것만 같다. 작가 K가 집필하는 희곡 <에피타프 도쿄>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이야기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들려오는데, 서로 다른 내용, 장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만큼 종이 색을 다르게 구성한 방식은 이들의 이야기가 입은 색과 잘 어울린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듯한 K 종이 색 이야기, 과거 기억 속의 온도를 꺼내오는 듯한 요시야의 청색, 작가 K가 완성해가는 희곡의 복잡한 느낌이 드는 보랏빛. 세 가지 색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도 역시 다 알지 못할 도쿄의 면면을 마주한다. 때로는 익숙하고 때로는 낯선 지역을 여행하듯 돌아다니는 K의 이야기는 도쿄의 다양한 시간을 불러오지만, 그 시간 속의 모든 것이 다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슬픔과 고통으로 남아 있을 그 순간 역시 도쿄의 모습이었다. 언젠가 보고 들어왔던 순간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나는 것만 같다.


도시의 과거를 떠올리다가도, 그 변화에 놀라기도 한다. 미래의 도시는 또 어떤 모습일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도시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그 변화의 흐름 역시 점점 빨라진다.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는 도시의 변화에 가속도를 붙인다. 하지만 이뤄내야만 했던 올림픽은 개최되었고, 성공적이라기보다는 경기 그 자체를 보게 하는 올림픽이었다. 관중 없이 치러지는, 코로나로 참가 자체를 못 했던 선수들까지 생긴 대회였다. 평소 지진의 위험에도 대비해야 하는 도시 도쿄에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역사를 이어왔다. 거기에 이 책에서 마주하는 도시의 비밀 같은 분위기는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등장인물들 역시 캐릭터가 다양하면서도 매력적이고, 다른 장르를 한 권의 책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인물이 요시야였는데, 도쿄의 과거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를 바라보는 느낌은 참 묘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흡혈귀라고 말하며 도쿄 곳곳을 누볐을 그의 시간을 같이 생각한다. 과거의 그가 살았던 곳에서 느끼는 그리움은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이 쏟아져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몇 번을 죽었으나 이전 생의 기억을 다 안고 살아가는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흡혈귀인데 다른 사람의 피를 탐내지도 않고, 자기가 죽은 장소에 가면 그때의 시간을 느낀다. 그는 왜 지나쳐왔던 그의 생을 다 기억하는 걸까. 도시의 변화를 그대로 새기면서 놀라기도 하겠지만, 그 변화를 도시의 것으로 인정하고 다 받아들이는 듯하다. 요시야의 말대로 도쿄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와 함께한 도쿄의 여정은 흐릿하면서도 씁쓸했고, 변화가 안타까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기억할 오늘도 그러하겠지...


도쿄의 묘비명으로 어떨까?

'그때가 좋았다,'

도시는 언제나 과거가 더 나았다. 헤이세이 시대에는 쇼와가, 쇼와에는 고도성장기가, 다이쇼의 데카당스가, 메이지의 청운의 뜻이, 가장 독창성이 풍부했고 세련된 문화가 정점을 이루었던 에도 시대가.

하지만 필자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실제의 묘비명이 아니라 <에피타프 도쿄> 쪽이다. 단서가, 힌트가 어디 없을까. (35페이지)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모호한 게 거슬릴 수도 있지만, 미스터리한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는 도시의 모습에 많은 생각을 불러오는 이야기다. 빠르게 과거가 될 오늘, 지금이 얼마나 진실한 모습으로 남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미래의 임무라면, 기억을 남기기 위해 애쓰는 건 과거의 노력이다. 지우려고 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속에서 현재와 미래가 공존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도시의 진짜 모습은 바로 이것일 테다. 시간은 흐르겠지만, 끊어지지 않을 기억 속에 머무는 곳. 비밀 같은 도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간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로 한 발 더 들여놓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펼쳐보고 싶은 이야기다.


#에피타프도쿄 #온다리쿠 ##책추천 #비채

#소설 #미스터리 #도시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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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수집노트 - a bodyboarder’s notebook
이우일 지음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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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곧 태양에 이끌리듯 파도가 함께 올라온다. 내 앞으로 다가온 높게 솟구친 파도가 해를 가린다. 그 파도의 그림자 속에 내가 있다. 나는 파도 그늘 속으로 다이빙해 들어간다. 파도를 뚫고 나오면 여지없이 눈이 부시다. (65페이지)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간절한 뭔가를 행동에 옮기고 이어갈 때, 미칠 정도가 아니라면 그 결과에 만족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말이다. 작가의 도전이 보여주는 것은, 중독도 즐기면 행복하다는 거였다. 나이를 얼마나 먹었어도, 아직은 서툰 초보여도 즐거우면 된다. 작가의 전작에서 이미 부기보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그 부기보드에 온전히 몰입한 시간을 들려준다. 얼마나 재밌게 열정적으로 부기보드를 대하는지, 웃음도 나고 부럽기도 하다. 얼마나 좋아해야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중독이라도 말해도 좋을 만큼, 온몸으로 부딪히는 즐거움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작가가 몸 쓰는 일을 얼마나 해봤을까 싶을 정도로, 본인도 인정할 것 같지만, 언제나 책상 앞에서 머문 시간이 많았을 거다. 그런 그가 하와이에서부터 부기보드에 빠져 한국의 바다에 빠지게 되었다. 파도타기. 나도 작가의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부기보드를 알게 되었는데,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몰라서 초록창에 검색해봤다. 그동안 봤던 서핑보드보다는 짧은, 작가의 부기보드 타는 법으로 보면 오리발까지 착용해야 하는 서핑. 원래 이름은 보디보드, 작가가 선호하는 별칭 부기보드로 부른다. 엎드려서 보드에 몸을 밀착한 자세로 파도를 즐기는 스포츠라고, 안전하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단다. 그걸 배워서 즐기는 작가의 표정을 상상해봤는데, 좋아하는 장난감 하나 발견하고 종일 그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 집념을 보여주는 듯했다.


파도타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파도를 기다리는 끈기와 체력을 길러야 했다. 어떤 파도가 좋은지 알아채는 능력도 필요했다. 그 넓은 바다에서 혼자만 파도를 타는 게 아니니, 주변의 다른 서퍼들과의 소통하고, 바다 밑의 상태도 살필 줄 알아야 했다. 뭐든 쉽지 않겠지만, 특히나 바다는 보이는 그대로 다는 아닐 듯하다. 무엇보다 내 눈에는 위험해 보이는 요소가 많았다. 그런데도 작가는 그 짜릿함에 바다를 즐기고 파도를 탄다. 어느 정도인가 하며, 장롱면허를 밖으로 꺼내주기까지 했단다. 30년을 운전하는 아내의 옆자리에 탔던 그가 파도를 타기 위해 운전을 한다! 꿈에서까지 파도가 나온다고 한다. 노년의 삶을 바닷가 작은 오두막에서 지내고 싶다니, 이 정도면 미치게 좋아하는 거 아닌가? ^^


파도를 탄다는 건 자연과의 조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양과 색이 끊임없이 바뀌는 하늘, 그 하늘에 아름다운 선을 그으며 날고 있는 물새들을 물 위에서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는 것. 마침내 도착한 파도에 오르면 다른 하찮은 욕심들은 모두 사라진다는 것. 물을 가를 땐 자신이 바다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체처럼 느껴진다는 것. 파도를 읽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 파도타기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165페이지)


그가 파도를 따라다니던 시간 그대로 느껴진다. 어떻게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는지 들려줄 때면 그의 흥분이 그대로 전달된다. 파도타기는 즐기면서 할 수도 있고, 시합처럼 경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즐기느냐는 그 파도를 타는 사람 마음대로. 배우면서 마음이 급할 수도 있지만, 목적은 파도 타는 것이니 서툰 것도 괜찮고, 능숙하게 타는 것도 괜찮은 거 아니겠나. 천천히 배우는 마음으로 파도를 타고 싶다는 여유로운 마음은 어딜 가고, 파도를 타다 보면 어느 순간 그는 경쟁하는 자세로 파도를 타는 자신을 발견한다. , 이 마음 알 것 같다. 마음은 느긋하게, 잘 타게 되기까지 천천히 완벽하게 파도를 대하고 싶은데, 어느 순간 마음보다 몸이 앞서 파도를 대하고 있는 걸 또 어쩌겠나. 옆에서 그런 남편을 보는 아내의 표정이 어떨지.


여름에 실컷 즐기면 될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날씨 좋고 파도가 괜찮을 때 실컷 타면, 겨울의 추운 바다에서는 좀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겨울의 바다에 빠진다. 그의 서핑 이야기로 알게 되었는데, 겨울의 바다가 추울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모든 취미가 장비빨인지는 모르겠으나, 부기보드 역시 장비가 중요했다.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게 두툼한 슈트도 필요했다. 손이 시리니 장갑도 필요하겠지. 마치 육지 위에서와 똑같이 바다에서도 서 있는 느낌이다. 물이 무서워서 여름에도 물 근처가 아니라 차라리 나무 그늘로 피신하는 걸 선호하는 내가,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성으로 부기보드를 배운 것만 같다. 부기보드를 시작하고 즐기면서 차곡차곡 쌓은 작가의 시행착오가 파도를 즐기려는 이들에게 실전 교과서가 될지도 모르지. ‘이렇게만 배우면 파도타기 기본은 합니다.’ 뭐 이런 진심 어린 조언 같은? 읽는 순간마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3초짜리 다짐을 할 정도였다.


난 여전히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즐겁고 행복하지만, 이젠 거기에 다른 행복이 추가되었다. 온통 파도타기에 관한 것들이다. 후회가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인생의 후회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183페이지)




그동안 작가의 그림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손그림이 아니라 아이패드의 일러스트 프로그램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가 그림의 변화를 도전한 것처럼, 그의 부기보드 사랑도 도전이었겠지. 이만큼 나이를 먹고 가능할까 싶은 것을 시도하면서 보여줬고, 좋아하는 것을 시도하고 즐기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증명했다. 파도타기는 그의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도전으로만 머물지도 않았다.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바다 위에서 숨을 고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말한다. 바다에서 상어만큼이나 위협적인 존재는 해파리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즐기고 공유해야 하는 바다를 오염의 장소로 만들기도 하는 사람을 원망한다. 바다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함께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진리를 망각하는 이들에게 잔잔히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아내와 함께 즐기는 부기보드라고 했다. 그의 아내가 즐기는 방식이 작가와 똑같지는 않지만, 상관없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기면 되니까. 즐긴다는 게 뭔지, 도전이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필요한 많은 용기를 배우는 순간이었다. 누구보다도 파도를 사랑하고 즐기는, 지금보다 더 능숙하게 파도를 타는 부기보더 작가의 다음 이야기도 들려오기를. ^^




#파도수집노트 #이우일 #서핑 #부기보드 #보디보드 #파도타기

#에세이 ##책추천 #비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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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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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이 할머니에게 듣는 이야기를, 그저 흘러간 과거를 소환하는 정도로 여겼다. 나이 든 사람이 습관처럼 하는 말, 나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아왔네 하는 고릿적 이야기 말이다. 이십 년 동안 못 만나고 살아온 사이에서 등장하는 과거는 할머니의 일방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으로 들렸다. 할머니와 엄마의 끊어진 관계를 핑계 삼아 들려주려는 것은 아닌가 했다. 이혼하고 시골로 내려간 지연을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고, 혼자였지만 나름대로 상처를 극복하려는 지연만의 방식은 누가 봐주지 않았다. 그때 만난 할머니, 오랜 세월 속 짧은 기억에 머문 할머니가 지연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깊었다. 더는 슬픔으로 머물러 있지 않게 하는 힘. 누구 탓도 아니라는, 그러니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는 위로였다.


백정의 딸이어서 외면당하고, 일본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혼인하고,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했다. 남자가 있는 여자의 인생만이 인정받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부딪히고 겪어내는 것만이 답을 찾는 방법이었다.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한 딸은 엄마와 데면데면해지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그 사이에 있는 지연 역시 엄마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 모녀의 관계가 유전처럼 흘러온 것 같지만, 사실 덜 고통스럽기 위해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지연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었지만, 우연히 할머니에게 그 집안 여자들의 역사를 들으면서 그녀의 마음도 변한다. 만나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아프지 않으려고 피하기만 했던 시간이 삶을 회복시키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처음에 자기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 스스로 묻던 지연은 대답할 수 없었지만, 이야기가 끝날 무렵 지연은 변화한 삶을 찾는다. 엄마의 말처럼 하나하나 맞서지 않고 그냥 피하며 사는 게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님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여자이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녀들 때문이라며 비난받았다. 그럴 때마다 자책은 쌓이며, 자기 탓으로 돌리고 판단한다. 이번 생은 틀렸다고, 내가 왜 이랬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럴 바에는 왜 태어난 거냐고. (지연의 엄마 미선이 할머니에게 했던 말처럼, 자기가 없었으면 할머니 인생 더 편하지 않았겠느냐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살아가는 동안 쌓일 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전하는 이야기로, 듣는 지연이가 있기에 과거와 지금이 이어지면서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가난과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여서 핍박받는 인생을 건네주고 싶지 않았던 노력이었다. 보고 싶고 그리운, 아프지만 용기 있게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밝음이었다고 증명한다. 과거로부터 흘러와 오늘의 인생에 뿌리내린 삶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과거를 들으면서 현재를 본다. 세상의 폭력과 무시에 넘어질 수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서로를 지탱하며 슬픔을 넘는다. 여자로 살아가는 게 한없이 어두웠던 시대에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건 어떤 건지 그대로 보여주는 이들이다. 삶을 놓고 싶을 때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이가 옆에 있다는 건 기쁨이다. 가족에게도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꺼내놓을 수 있는 상대,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 할머니와 희자, 엄마와 멕시코 아줌마, 지연과 지우의 관계는 그래서 값지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살아가는 용기가 된다는 걸 증명한 이들이었으니.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100여 년 역사는 슬픔을 넘어서 빛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아픔을 겪고 나서 내 것이 된 삶의 흔적들은 이제 어둡지 않았다.


#밝은밤 #최은영 #문학동네 #소설 #한국소설 #문학 ##책추천 #여성4#100년의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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