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내는 아이들 - 어린이를 위한 경제 교육 동화 한경 아이들 시리즈
옥효진 지음, 김미연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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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이런 책이 있었다면, 좀 더 빨리 경제 관념을 배우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었더라면. 많은 아쉬움과 후회를 만드는 책이었다. 어릴 때는 당연하게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 받아서 생활하고, 자라서는 돈을 벌고 혹은 대출로 빌리기도 하면서 원하는 것을 이뤄가는 게 일상의 똑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사람마다 모으는 돈이 다르고 이뤄가는 속도가 다르다는 건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것 말고는 다른 걸 모르겠더라.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닫는다. 경제 관념, 우리가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배우고 받아들이며 사는 게 무엇인지 덩달아 알게 된 책이다.


옥효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온라인에서 먼저 알게 됐다. 처음 봤을 때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위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기 위한 선생님만의 생존전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학급 생활을 보면, 이건 선생님을 위한 게 아닌, 더 자라고 성인이 되어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가장 실감 나는 교육이라는 것을 알겠다.


13살 시우의 6학년은 활명수 나라로 시작되었다. 새 학기 첫날, 담임선생님은 시우의 학급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자고 했고, 아이들 각자에게 역할을 임명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고 책임감 있게 이끌어나갈 수 있는 각 부서의 활동이 주어졌다. 평소 용돈을 받으면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면서, 돈이 부족하면 엄마에게 더 달라고 하면서 생활했던 시우는 새 학급의 시스템이 낯설었다. 하지만 아이들 모두 자기가 선택한 일을 열심히 수행했고, 그 역할에 따른 월급을 받으면서 시우도 활명수 나라의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나라의 화폐 미소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다.


시우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평소 습관대로 활명수 나라에서 살아가려고 한 것. 가장 많은 월급을 준다는 청소부를 선택하고 정해진 대로 가장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정해진 대로 월급을 받은 것 같은데 금액이 적었다. 나라에서 월급의 소득세를 떼어가다니, 이런 경우가 있나? 시우가 몰랐던 사실 하나, 우리가 일정 금액의 월급을 받으면 저절로 떼어가는 소득세와 건강보험료, 연금보험 등을 계산하지 않았던 거다. 그동안 몰랐겠지. 우리가 얻는 소득에는 소득세가 있다는 것을. 그것도 모르고 엄마에게 받는 용돈으로 편하게 계산하지 않고 있는 만큼 써버렸으니. 나라에서 소득세를 떼어갔다는 것에 흥분한 것도 잠시, 시우는 과거의 습관을 못 버리고 그 월급을 가장 먼저 탕진했다. ^^ 월급으로 받은 화폐 미소로 그렇게 쓰기 싫었던 일기 면제권을 사고 급식우선권도 샀다. 일기도 안 쓰고 참 좋구먼. 급식 먹을 때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먼저 밥을 먹으니 편해서 즐거웠다.


탕진 재미도 잠시, 시우는 사라져가는 월급에 불안을 느낀다. 당연하지. 돈을 계획 없이 쓰니 불안은 저절로 따라온다. 이 책의 목적이자 옥효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어릴 때부터 배운 경제 지식과 올바른 경제 관념으로 우리가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도 돈을 적절히 활용하고 저축과 투자로 돈을 버는 일을 가르쳐 주는 것. 우리가 일하고 돈을 버는 건 당연하게 알고 있으면서, 그 돈을 활용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가상화폐나 주식투자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는 주변 사람들을 봐도, 부럽기만 하고 막상 그 투자에 뛰어들려고 하니 불안하다. 항상 모자라는 돈,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확실하게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 책으로 기본 공부를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법을 기본으로 해서, 우리가 벌고 사용하는 돈의 흐름에 어떤 경제가 숨어 있는지 쉽고 재밌게 가르쳐주는 책이다. 급여명세서의 실수령액이 왜 그 금액인지, 나라에서는 왜 소득세를 떼는지, 가장 쉬운 은행 예금은 적금과 예금, 정기예금 등의 구분이 어떻게 나뉘는지 배운다. (사실, 아직도 이 차이를 모르는 사람 생각보다 많다) 안심하고 돈을 모을 수 있지만 이자는 적은 예금상품과 위험이 따르지만 높은 수익률도 있는 투자의 차이를 배우면서, 어떤 순간에 어떤 방법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새롭게 생기는지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시사한다. 월급을 많이 준다기에 청소 업무를 맡은 시우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절망한다. 이제 학교에서 외부 업체에 청소를 맡긴다고 하니, 시우는 백수가 됐다. 그나마 모자라는 월급으로 우울했던 시우는 이제 실업자까지 됐으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사라지는 직업이 있다면 또 생겨나는 직업이 있는 법. 시우는 다른 돌파구를 마련하고, 또 실업이라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 고용보험도 가입한다. 단순히 월급 받는 거 말고도 사업자등록을 하고 장사를 하는 법도 배우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돈을 모아야 하는지도 배운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배운 건 아니다. 아시다시피, 시우는 돈이 있으면 바라는 것을 당장에 해치우며 탕진 재미를 먼저 실천한 아이니까. 어떻게 돈이 다 사라졌는지, 장사가 잘되었는데 왜 적자인지, 어떤 아이템을 구상해야 돈이 보이는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배웠다. 몸으로 부딪친, 실전을 통한 배움이니 얼마나 뼈에 새겨질까 싶을 정도다. ^^ 시우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시우의 친구들, 돈을 저축하며 모으기만 하던 하진이, 다른 사람들 따라 하면서 돈 쓰는 재미와 쓴맛을 동시에 본 원희, 태어날 때부터 경제 박사였나 싶게 똑똑한 경제 지식인 재완이 등 아이들 각자의 성향에 맞게 돈을 벌고 사용하면서 경제를 알아가게 한다.


사실 돈이라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아플 때 치료받을 때도, 돈은 필요하다. 우리 일상의 모든 곳이 돈과 연관되어 있지만, 어린아이가 돈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교육받았다. 시쳇말로, ‘어린놈이 벌써 돈을 밝히냐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러니 돈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고, 제대로 설명해주는 어른이 드물었다. 그런 돈에 관한 것을 이렇게 초등학교에서 알려주고 있다니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효과가 좋은 배움이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금액의 월급을 받아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모이는 액수가 다를 것이다. 더 많이 모으고 싶고, 더 잘 사용하고 싶은 게 돈이다. 그 개념과 활용을 일찍 배우는 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이 책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 어릴 때도 이런 책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옥효진 선생님의 반 아이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너무 중요하고 기초적인 경제 지식을 초등학생 동화에서 배우다니.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면서, 적성을 찾아내고 직업으로 받는 월급으로 소득을 올리고, 우리가 버는 모든 돈에 부과되는 세금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깊게 들어가면 이보다 더한 경제 이야기가 있겠지만, 이 정도도 충분했다. 몸으로 체험하는 경제 개념을 이보다 더 확실하게 가르쳐줄 수는 없을 듯하다. 자연스럽게 경제 개념과 이해를 돕고, 돈의 흐름을 읽는 사고를 기를 수 있다는 것에 한 표. 아이들의 시선으로 배우는 취업과 세금, 사업이나 실업, 저축과 투자, 다양한 보험으로 우리가 위기를 대비하는 방식까지. 어른 세계에서가 아니라 어린이 세계에서 미리 배워야만 하는 필수 과목이었다. 이 책 한 권 마련해서 나이 상관없이 온 가족의 경제 기초 도서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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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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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가족이다. 우리가 믿을 건 가족뿐이야. 친구, 애인, 이웃, 이 지방 사람들, 국가. 그건 모두 환상이야. 정말로 중요한 때가 오면 양초 한 자루 값어치도 안 된다. 그때는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뭉쳐야 해, 로위.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가족이 뭉쳐야 한다고. 알았지?” (13페이지)


동생을 사랑했다. 글쎄, 가족으로의 끈끈함이었던 걸까, 아니면 동생에 맹목적으로 되어버린 이상한 마음인 걸까. 오프가르 집안의 첫째 로위는 동생 칼에게 그런 존재였다. 약간 부족한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래서 더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이기 쉬운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형을 의지했던 동생 칼에게 로위는 조건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언제나 동생을 보호해줄 보호자, 동생이 무슨 짓을 했어도 동생 편에 설 수 있는 지지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서라도 동생의 옆에 머물 희생자. 로위의 삶에서 언제나 1순위였던 칼을 빼면 그의 인생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제 와서 궁금해지기도 한다. 마냥 평범하게, 어느 시골의 작은 집에서 새로운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칼이 바라보는 형은 어떤 사람일까. 오프가르 집안의 둘째 칼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다. 어린 형제는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너무 강했고,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했던 집안의 분위기만 봐도 겁이 난다. 형보다 어린 동생에게 아버지는 더욱 커다란 존재였을 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동생의 두려움을 알아챈 형의 도움으로 칼은 학대의 공포에서 벗어난다. 무난하고 무료한 날을 더 좋아했던 형과 달리, 칼은 영리한 머리로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한다. 공부하겠다며 떠난 동생에게 학비를 보내던 형에게 가끔 소식을 전하면서 형제의 우애는 지속한다. 그리고 어느 날, 칼은 형에게 돌아간다. 그들이 자랐던 곳, 그 시골 마을 오스를 변화시킬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사실 칼이 고향에 돌아온 건 호텔 사업을 위해서였고, 사업을 위해서 고향 사람들의 투자가 필요했다. 그는 빈털터리였으니까. 이번에도 칼은 형의 도움이 필요했다. 거대한 규모의 사업을 구상하는 칼에게 로위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협조한다. 칼은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오르막길의 거의 끝에 있는 오프가르 형제의 집. 부모는 사고로 동시에 사망했고, 사고 흔적이 어디 있는지 알지만 찾지 못한다. 오직 형제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형 로위는 고향에서 머물고 동생 칼은 유학 끝에 집에 돌아온다. 그의 아내 섀넌과 함께. 혼자였다가 갑자기 셋이 된 이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지낸다. 형과 동생, 동생의 아내. 너무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떨어질 수 없는 형제애라고 읽혔다. 타인은 모르는 그 집안만의 불행이 있었고, 그 불행의 끝에 살아남은 형제는 이제 세상의 유일한 가족이었으니, 두 사람만이 남은 상황에서 더 똘똘 뭉치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이 형제의 역사에는 살인이 있다. 두 사람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일에 살인이 일어난다. 이들이 죽였을까? 글쎄. 그건 둘만이 아는 진실이겠지. 명확한 사실은, 둘은 형제이고,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언제까지나 한결같을지, 나는 이런 마음이 언제나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로위를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한 기분이 든다. 로위에게 칼은 언제나 지켜줘야 할 동생이었고, 동생의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줘야 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형은 시골에서 자동차 정비소를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삶이었고, 동생은 타국의 도시에서 그의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동생이 원하는 것이라면, 이뤄지도록 돕는 게 형의 의무이자 일상이었다. 이번에 돌아온다는 동생에게 형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갑자기 왜 돌아오는지 궁금하면서도 동생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동생인데, 상처를 안고 자란 녀석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아마도 로위는 이런 마음이 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전과 같은 건 아닐 것 같다. 세월이 흘렀고, 로위는 지금의 고요한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갑자기 나타나 칼과 섀넌이 아니라면, 이 생활 그대로 유지하는 데 별문제는 없었을 텐데.


가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갈등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가족과 얽힌 문제일 때가 많다. 누가 봐도 저건 허무맹랑하고 이상한 일인데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믿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는 그런 일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화를 내고 나무랄 것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럴 때 정말 이성이라는 걸 장착한 사람이 분명하게 이 혼란을 정돈시켜줘야 하는데, 이 형제에게는 그 중립을 지키며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 아니, 섀넌이 있었나? 칼의 아내 섀넌은 칼과 같은 마음일까? 두 사람의 등장은 로위의 일상을 흔들고, 오랜 세월 이 가족에게 감춰졌던 비밀이 드러날 위기에 처한다. 비밀은 비밀로 남아 있을 때 힘이 되는 법인데, 로위에게 힘이 되었던 그 비밀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 형제의 운명도 변화를 일으킨다. 형제의 아버지가 이뤄냈던 그 왕국, 오프가르 집안의 명성을 유지하는 일은 아버지를 이어 로위에게도 운명처럼 어깨에 내려앉은 듯하다. 가문의 수치,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로위가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 동생 칼도 보호해야 하고, 비밀이 비밀로 남도록 만드는 일도 해야 한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하고 있느냔 말이다. 가족이 무엇이기에, 형제가 어때야 하기에, 고통을 이기려고 했던 그 일들이 모두 가려진 채로 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는 들을 수 있을까?


가족관계, 피를 끊어낼 수 없는 혼란을 그대로 표현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 안에는 분명 사랑도 가족의 애정도 존재하지만, 때로는 끊어낼 수 있는 냉정함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정도까지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며 가족을 끌어안는다. 하지만 범죄라면? 어느 날 뉴스에서나 보던 사건을 작가의 입으로 듣는다. 대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된다고, 가족의 강한 유대와 의리가 도덕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이야기라고 말한다. 가족이니까 가능한 일들, 가족이니까 해서는 안 되는 일들. 이 형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품고 산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듯 자리 잡은 믿음은 이 형제에게 끔찍한 진실을 가린 채로 살게 한다. 로위가 견뎌야 했던 일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된다. 아마도 그곳은 지옥이 아니었을까. 로위는 그 지옥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거다. 후켄 계곡에 쌓여가는 시체와 망가진 자동차를 보면서, 누구도 그 진실을 찾아내지 못하게 지키면서 살아가는 일. 아버지가 세운 왕국을 지키면서, 마치 그는 지옥문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그곳에 머문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 우리를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전부 사막의 신기루야. 하지만 형이랑 나는 하나야. 우리는 형제니까. 사막의 두 형제. 한 명이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사라져.”

그래. 죽음은 우리를 갈라놓지 않는다.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짐승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우리 모두가, 살인할 수 있는 심장을 지닌 우리 모두가 가게 될 그 지옥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686페이지)


눈에 뻔히 보이는 살인, 용의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왜 이들을 가만히 둘 수밖에 없는지 지켜보는 독자는 답답할지도 모른다. 법으로 그들을 심판하려면 찾아야 할 그것, 증거. 심증 말고 물증. 매의 눈으로 주시하는 것 말고 눈앞에서 찾아낸 무언가로 살인자를 증명해야 한다. 의심하고 추측하지만, 아무도 이들 형제에게 죄를 묻지 못한다. 그렇게 범죄의 증거는 누구도 함부로 내려갈 수 없는 절벽, 후켄에 쌓여가고 형제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사랑으로. 혹시 지금 내가 보는 게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로위가 풀어가는 이 이야기는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마음이 자꾸 갈등을 일으킨다. 설마 하는 순간 사실이 되고, 의심하는 순간 사건은 벌어진다. 그들의 감정을 읽어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게 사랑인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질투인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이들에게 이제 남은 건 무엇인가.


요 네스뵈의 작품을 좋아하고(이렇게 말하지만, 열정 독자는 아니었던 듯), 언제나 신간 출간 소식이 반가웠지만(언제나 신작 소식은 즐거움), 그런데도 그의 작품에 쉽게 빠져들 수 없었던 건 그를 기억하게 하는 해리 홀레 시리즈를 완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가 빠지듯이 읽어온 그 작품들은 언젠가 완독해야 할 목표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해리 홀레 시리즈라면 신작이라도 섣불리 덤비지 못하게 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그 와중에 만난 <킹덤>은 반갑고 또 반갑다. 새로운 독립적인 이야기인 데다가, 이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본성(?)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가족 이야기이면서, 형제 이야기이기도 하고, 타인을 통해 나를 보는 섬뜩함까지 마주하는 일이 내 앞에 펼쳐진다.


혹시나 나처럼, 요 네스뵈의 작품을 미친 듯이 읽고 싶지만, 그 시리즈의 두려움에 망설이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얼른 펼치라고 말하고 싶다. 단박에 빠져들고야 말 테니. 그러고 나면 이 빠진 것처럼 읽은 해리 홀레 시리즈의 완독도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에 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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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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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읽다가 뒷부분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작가 후기가 길더라. 작가가 본문에서 다 하지 못한 말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궁금해서 끝까지 읽어보니 개정판에 부쳐 작가 후기가 다시 써졌던 것. ‘2020년 전미 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을 수상하면서 역주행 신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다시 읽힐 계기가 충분했고, 막상 이 소설을 다 읽고 보니 아직 이 책을 못 만난 독자가 있다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일 한국인 작가가 써낸 이 소설의 내용이 비단 일본에서만 보이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아마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이 읽힐 거란 생각에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우리가 보는 도시의 우아하고 화려한 이면에 자리한 것을 어둠 속으로 밀어버리기 일쑤다. 그 어둠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말이 없어진다. 주인공 가즈는 가난한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일한다. 때로는 타지에서, 때로는 부모 밑에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동생들을 보살핀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이 가족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때부터 타지를 전전하며 일하고 집으로 돈을 보냈다. 이십 년이 넘는 결혼생활 중에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채 1년도 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는 이 가족이 사는 법은 어떤 걸까 한참 생각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그 오랜 세월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기억이나 하고 살아왔을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 가족의 비극은 가난이 아니었다. 가난은 이들을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했지만, 아들이 죽은 건 가즈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다 큰 아들이 죽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그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잘 살아가겠구나 싶었는데, 그마저도 그에게 허락된 행복은 아니었나 보다. 그의 아내마저 죽자 그는 손녀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우에노역 노숙자가 된다. 노숙자의 삶을 차분하게 들려주는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아니, 알 것도 같으면서 다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듣는 그곳의 이야기는 노숙자의 삶이면서, 도시의 이면이었다. 도쿄 올림픽이 처음 열릴 때 그는 올림픽을 위한 건물을 짓는데 노동자로 일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이때 그는 노숙자로 이 축제를 지켜본다.


평소에는 우에노역 근처에서 노숙하는 이들을 그냥 봐주더라도, 큰 행사나 천황이 행차라도 할라치면 그들은 철거 대상이 된다. 지저분하고 걸리적거리는, 좋은 것만 보이고 싶은 공간에서 그 순간 사라져야 할 존재다. 천황의 행차를 보면서도 누군가는 직접 본다며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는 천황과 같은 날 태어난 아들을 떠올린다.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 아들은 사인도 모른 채로 죽었는데, 천황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앞에서 행차한다. 이 묘한 우연 속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화려한 도시의 한구석에서 노숙자들은 고독하고 쓸쓸하게 저물어간다. 사람들에게 그들은 보이는 존재이지만, 그 길을 지나면서 눈에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남지도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옛날에는 가족이 있었다. 집도 있었다. 처음부터 골판지와 비닐로 만든 천막집에 살던 사람은 없었고 자진해서 노숙자가 된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 각자의 사정이 있다. (91페이지)


비단 도쿄만의 모습일까. 사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몇 번 접해왔던 소재이기도 하고,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지금도 엄마가 사는 동네에는 대표 노숙자 3명이 있다. 누구네 집 자식이라더라, 돈이 많았는데 다 잃고 저렇게 되었다더라, 박스를 주워가곤 한다더라. 소설 속 가즈 역시 빈 캔을 모아 팔아 번 돈으로 잠시 노숙을 피하기도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며칠, 잠깐의 일이다. 그에게 이제 노숙은 삶이 되었다. 캔을 주워 팔거나 박스로 집을 만들어 살고, 누군가 버린 음식을 먹고 사는 이들인데도 길고양이에게 곁을 내주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곳의 노숙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을 거다. 이제 그들은 그곳에서 삶을 채우고 죽음을 맞이한다.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이들은 또 퇴거 대상이 된다. 어디 이들뿐일까.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터전을 잃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쓰나미로 공포에 떨고 붕괴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재민들과 돈을 벌겠다고 도쿄로 상경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거기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재일한국인 작가까지.


처음 구상에서 탈고까지 12년이 걸린 작품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긴 시간 작가의 가슴에 머물렀을까 생각하면 이 짧은 분량이 매우 커 보인다. 작가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기저에, ‘자신들은 결코 그런 상황에 부닥치지 않을 거란 믿음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시사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그런 생각 전혀 안 하고 있을까? 거리의 노숙인들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 동시에 하지 않는가? 혹시라도 내 삶이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도, 지금 내 모습이 그들과 다르니까 그들을 거부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이 두 감정이 동시에 들던데, 사실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사실이다. 아직 닥치지 않은 상황을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 내 모습을 더 담아두기 마련이다. 아마도 작가가 이 소설에서 노숙인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걸 보면, 나처럼 생각하는 이가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시선을 좀 보라고 다그치듯이.


혐오와 차별이 어떤 세상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세상을 또 우리가 만든 것이겠지. 누군가의 피해와 슬픔, 고통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다. 노숙인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길고양이한테 곁을 내어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계기조차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그런 거 아니었을까. 소외된 그들의 목소리를 작가가 들려주었으니, 우리는 그 목소리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곧 후속 작품을 내놓는다고 하니, 이 작품과 쌍둥이처럼 읽히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더 가까워질 것 같다.



#도쿄우에노스테이션 #유미리 #소미미디어 #소설 #일본소설

##책추천 #문학 #혐오 #차별 #소외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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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 2021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죽이고 싶은 아이 (무선) 1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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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생각하면 참 쉬운데, 간단하게 생각되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조금 더 섬세하게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다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적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약간 들기도 하면서. 거기에 우리가 자주 범하는 오류, 보이는 것만 보면서 믿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새삼 알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진실을 모른 채로 또 유유히 일상을 살아가겠지.


작가의 전작에 비하면 조금 섬뜩한 이야기다.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되었다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게 가독성이 좋다. 이야기 어느 한구석에 흐트러짐이 없다. 십 대 여학생의 이야기가 그렇지 뭐 하면서 가벼운 마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의 무게감과 미스터리한 전개, 소설의 결말을 마주하고서는 무릎을 쳤다. , 이럴 수도 있겠구나.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을 읽는 과정에 있었다. 서은과 주연은 누가 봐도 단짝이다. 그런 두 아이가 어느 날 크게 싸웠고, 다음 날 학교 건물 뒤에서 서은의 시체가 발견된다. 주연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체포된다. 정말 주연이 서은을 죽였을까? 주연이 이 사건의 용의자가 된 이유는 충분했다. 그날 서은과 크게 싸웠고, 건물 뒤편에서 주연이 이상하게 당황한 모습으로 뛰어오던 것을 본 목격자도 있었다. 이 정도면 주연이 서은을 죽였다고 해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단짝이던 아이가 무슨 이유인지 싸웠고, 싸우다가 주연이 서은을 죽였다는 가설이 성립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주연은 입을 다물고 있다. 무엇보다 그날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주연이 서은을 죽였다고 하는데, 주연은 자기가 정말 서은을 죽였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 자기가 서은을 죽인 걸까?


주연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인터뷰가 교차로 진행된다. 서은과 주연의 같은 반 친구, 초등학교 동창, 담임 선생님, 동네 편의점 주인, 서은의 엄마, 주연의 부모 등 그들은 자기가 보고 겪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일까? 카더라 통신의 내용과 자기가 본 몇몇 장면이 더해져 이야기는 거침없이 부풀어 오른다. 이야기가 들을수록 혼란스러웠다. 원래 타인의 말은 쉽게 하는 게 인간이기에, 나는 이들이 하는 말보다 그 누구도 아닌 두 아이를 직접 겪은 사람들의 말을 추리기 시작했다. 주연에게 성추행했다는 학원 선생, 주연의 엄마, 서은의 엄마가 본 두 아이의 묘한 관계, 스치듯 몇 번 봤겠지만 주연과 서은을 지켜본 편의점 주인의 말을 자꾸 되씹었다. 그 안에서 나는 이 사건의 진실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당사자 말고는 그 누구도 이 사건을, 각자의 진심을 말하거나 알지 못했다.


진실을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끝까지 주연을 쫓으며 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카더라 통신에 의지해 말하는 이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두 사람만 아는 게 맞는 거고, 진실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기에 꿰어맞추기가 쉽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꾹 다문 주연의 입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완전한 진실은 찾을 수 없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흔하게 하는 그 말, 죽고 싶다. 비슷하게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죽이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 말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마음속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여길 뿐이다. 혹시 주연이 서은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더라도, 정말 행동에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 서은과 싸우고 뒤돌아서면서 주연은 이미 그때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진실과 믿음. 평범하게 지낼 것 같은 나이에 겪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깊게 박힌다. 너무 다른 환경의 두 아이가 절친이 되었다는 것만 봐도 평등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친구인데 수직적인 관계, 누가 봐도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그 안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진실을 마주했을 때, 정말 상처 입고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느끼는 건 누구였는지 생각해본다.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점점 혼란에 빠진다. 용의자로 지목되고 체포된 주연을 더 알 수 없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닿아, 모든 진실이 들려왔을 때는 두렵기까지 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우리는 영원히 이 사건의 진실에 닿을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주연은 침묵할 것이고, 진실을 아는 이는 거짓을 말할 것이고, 진실을 아는 또 다른 이는 죽었으니까. 말 그대로, 진실은 편집되고 그렇게 편집된 진실은 사실로 사람들 사이에 흩어진다. 진실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해져 버린 세상. 그 세상의 단면을 주연의 부모와 변호사를 통해 보여준다. 아이는 그런 것을 보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세상은 다시 진실 따위는 파묻어버린 채로 흘러간다. 그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상처받으면서 성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부만큼 중요한 친구 관계가 십 대의 모습일 테다.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른도 사람 관계에 힘들어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십 대의 아이들에게는 더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가 되겠지. 그때의 여러 가지 문제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대상이 있다는 건 위태로운 순간을 겪을 때마다 잘 건너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 의지하고 위로가 되는 존재가 어떻게 얼마나 유지되느냐 하는 문제는 또 해결해야 할 다른 숙제이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친 우정의 상실은 어른이라고 해서 담담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상처받은 마음이 잘 아물기를, 누구라도 비슷하게 겪고 지나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누가 읽어도 공감하며 몰입하게 될 이야기다.



#죽이고싶은아이 #이꽃님 #소설 #청소년소설 #문학

#우리학교 #진실 #믿음 #반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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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작은 곰자리 49
조던 스콧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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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책 소개 글을 보지 않고 읽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 아이가 농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들리지 않는 아이가 소리의 발음을 잘 몰라서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거로 알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저 말을 더듬는 것뿐이다. 조금 천천히, 잘 듣기 위해 기다려준다면 충분히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아이.


학교 발표 수업을 싫어하고 긴장하는 게 어디 이 아이뿐일까. 멀쩡하게 잘 말하다가도 발표 수업이 있으면 저절로 말을 더듬게 되는 게 우리 아니던가. 손이 벌벌 떨리고 덥지도 않은데 땀이 줄줄 흐르는 상황. 말하지 않아도 알고, 언젠가 한 번쯤은 다 겪어봤을 일을 떠올린다. 다행히도 이 아이는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면 하굣길에 아버지가 찾아온다. 내 아이가 얼마나 긴장하고 힘들었을지 아는 아버지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상처가 난 마음을 볼 줄 아는 사람. 아버지는 아이에게 그 상처를 보듬을 방법을 알려준다. 한 가지 모양으로 흐르지 않는 강물을 보여 주고, 누구나 다 다르게 흐를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는 현명한 사람이다.




아침마다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지만, 정작 그 소리 들을 입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의 하루를 생각한다. 소나무, 까마귀, , 햇살, 지저귐 등 눈과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많지만,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입을 열고 그 소리와 대화하고 싶어도, 언제나 낱말들이 혀와 뒤엉켜 목구멍 안쪽에 달라붙는다. 그저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 굳게 다물 수밖에 없는 입 밖으로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다물어버리는 입안으로 그 많은 아픔을 삼켜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한번 두 번, 그렇게 삼켜버린 아픔은 다시 튀어나오지 못하고 내면에 쌓아가기만 하겠지.



반 친구들이 비웃고 그 시선에 더 창피했던 순간이 떠올라서 울고 싶지만, 그 울음은 길지 않다.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바꿔가며 흐르는 강물을 가리키며 아버지는 말한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다름을 알려주는 방법, 그 다름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게 아니고, 여기 부딪히고 저기에서 걸리면서, 어찌 보면 우리처럼 아이처럼, 더듬더듬 빠르게 느리게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거친 물살에 무서워하며 건널 수도 있고, 거친 물살 너머에서 마주하는 잔잔한 물살에 안심하며 건너기도 하는 강물을 생각한다. 아이가 말을 더듬는 건 겉으로 보이는 한 단면이고, 아이의 내면에 자리한 여러 가지 물살은 언제나 반짝인다고. 그저 말을 더듬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이제 다시 발표 시간이 와도 아이는 떨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말한다. 애정을 담아, 더 단단하게 강에 대해 말한다. 왜 좋아하는지, 왜 아름다운지, 어떤 존재인지.


아이는 종종 강을 보러 가겠지?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말해준 것 이상을 또 알게 되겠지. 그렇게 자연이 주는 치유에 몸을 맡기고, 하나하나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을 상상한다. 자라면서 내면의 아픔은 더 많이 겪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 만큼 아이는 더 단단하게 씩씩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자신과 닮았을 강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가슴에 채워갈지 궁금해지게 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더 놀랐다. 말을 더듬는 아이를 배려한 아버지의 현명한 방법은 훗날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알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주문처럼,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되뇌는 저자의 표정을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그날의 기억이 작가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알게 된다면, 이 그림책 한 권이 또 얼마나 많은 아이와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고 위로가 될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짧지만 몇 개의 문장, 문장보다 더 깊게 담은 그림의 힘이 놀라웠다. 상처와 치유를 동시에 보여 주면서도, 결국 우리는 치유하고 위로받으면서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깊은 마음과 자연이 주는 위안의 힘을 느낀다.


섬세한 그림과 따뜻한 문장으로 하나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마음의 따뜻함은 저절로 따라온다. 한번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이야기였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마음 온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작가의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어야지. 상처받더라도 주저앉은 채로 머물지 말아야지. 은근하게 다짐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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