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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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집값이 싸냐고 물으면 대개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지금요.” 혹시나 집값이 내릴까, 더 좋은 집이 매물로 나오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망설일 때는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거다. 어떤 결정을 해야 가장 만족하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안심할 수 있을지 불안해서다.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집값은 오르고, 내 몫으로 기다리는 집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고 마음에 들어오는 집을 다 구할 수 있었다면 이런 고민도 없었겠지. 언제나 그놈의 돈이 문제다.


주인공 오영선은 29세 여성이다. 사무보조로 일하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남들은 왜 사무보조를 하느냐고 더 조건 좋은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영선에게 사무보조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책임감이 무겁지도 않게, 단순 업무로 주어진 일만 하면 되니까 신경 쓸 게 거의 없다. 자기 일만 하면서, 타인의 시선 따위 무시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그녀는 회사의 누구와도 교류가 없다. 그녀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오면서 이런 삶의 태도는 조금씩 변한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빌라에서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다가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오영선은 이제 이 가정의 세대주가 됐다. 집주인은 곧 전세기한이 만기 되니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그녀가 자라왔던 동네, 엄마의 체취가 묻어 있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영선이 바란 것은 결코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미래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가난한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자신감은 상실되어 갔다. (143페이지)


바라는 대로 다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영선에게 닥친 현실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쯤 되면 짐작했을 것이다.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집을 찾는 일, 집값을 맞추는 일은 어려웠다. 여동생과 함께 살 집이니 의논해야 했고, 전세금을 빼고도 한참 모자라는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 되겠지. 요즘에는 대출 없이 집을 사는 일은 드물다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대출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아파트 노래를 부르며 결국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부모님이 은행에서 빌려 쓴 돈은 이 가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이 생기면, 일상이 힘들어진다. 쉽게 사 먹었던 어묵꼬치 하나에도 주저하게 된다. 매달 갚아야 할 금액을 맞추느라 일이 힘들어도 쉬지 못했다. 그렇게 돈에 끌려다니다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이때의 고생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 할 것 같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영선의 집 구하기 모험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돈만 여유로웠다면 이 이야기는 모험이 되지 않았을 테다. 언제나 같은 고민,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고 싶은 이상과 가진 돈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가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느냐, ‘영끌해서 빚을 지더라도 내 집이라는 안도감을 누릴 것이냐. 그녀는 이 정도도 모르고 살아왔다. 부모님이 집 때문에,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만 보면서 자라왔지 정작 서른을 바라보는 그녀의 현실에서는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계획에만 몰두했다. 엄마의 부재로 이제 그녀에게 넘어온 공은 마치 그녀를 시험하듯 부동산이라는 세계에 밀어 넣고 어떤 길로 가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읽으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럼 다음 이야기가 뻔하니 소설이 재미없겠다고? 아니다. 오히려 오영선의 부동산 입문기가 생생해서 놀랄 정도였다. 어쩜 이렇게 취재를 가까이서 했는지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부린이였다. 우연처럼 비밀을 알게 되어 안면을 튼 회사의 주 대리는 영선에게 부동산 스승이 된다. 물론 개인적인 일이니, 개입하면 안 되는 선이 있다. 주 대리는 그 선을 철저히 지키면서 영선의 현실 감각을 일깨워준다. 청약 준비부터 당첨 조건까지, 어느 지역을 돌아보고 어떤 이슈에 관심 두어야 하는지를. 주 대리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그녀 역시 스스로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인생의 모든 중심이 부동산 투자와 성공에 있다. 영선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으면서도 영선에게 현실을 조언해주고 세상을 더 정확히 보게 하는 주 대리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소설 속 인물에 머물지 않는 그녀는 마치 현실에서 알고 지내는 언니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렸을 적에는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맛있는 거 먹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멤버들이,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모임에서는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이야기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게 낯설지 않다. 그 모임에 주 대리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양가감정에 힘들어지기도 하겠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주 대리를 비난하면서도, 주 대리처럼 하지 않으면 집을 갖지 못할 거라는 현실에 그녀를 부러워하거나.


정말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과 같을까? 집을 구하려면 피할 수 없는 대출에 주 대리는 저런 명언을 남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대출은 어느 정도일까? ‘그만큼이란 역시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른 금액이겠지만, 주 대리의 말이 너무 와닿아서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돈 모아서 집 사려고 차곡차곡 모으면서 기다렸더니, 내가 모은 돈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때 그냥 무리해서라도 집을 살 것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들의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인생은 비례가 되지도 않고, 성실하게 모으기만 한다고 다 이루고 살 수도 없다. 금수저라도 물고 태어났다면 좋으련만, 그건 다음 생에서나 가능할까 싶어 포기한 지 오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끔 로또도 사지만 왜 매번 내 번호는 피해가는지도 모르겠고. 없는 돈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속으로 벌벌 떨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만, 역시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소설 속 오영선처럼 크게 바라는 것 없이 소박하게,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왔다. 엄마가 계시는 시골집을 정리하고 적당히 지낼만한 아파트를 구해야지 고민하던 게 벌써 일 년.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시골집 팔아도 소형 아파트 한 채 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이런 시골에서, 이 정도의 집값으로 채무자가 되어 살아가는 일이 흔한데, 매일 뉴스에서 보는 집값 얘기는 어디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


영선은 버스를 타려다가 걷는 걸 선택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대학에 가서는 취업, 이후에는 결혼과 집 등으로 화제가 달라졌다. 마주해야 할 세계는 넓어지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관계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감당해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들이 두터워진다. 하지만 영선은 그 모든 것들을 멀리하고 혼자인 것을 선택했다. 이건 도피일까. 아님 단단해지기 위한 몸부림일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이어지는 동안 영선은 화려한 불빛들이 줄 서 있는 번화가에서 벗어나 큰길에 이르렀다. (88페이지)


2021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한 편의 소설에서 봤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에 우울해지면서도, 어떤 방법을 알게 된 것도 같다. 물론 그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완전한 답이 없다면 최상의 답을 찾아가는 거 아니겠나. 어차피 선택은 자기가 하는 거지만, 이 정도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실적인 경제 서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소설은 소설이다. 이야기로 남겨두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집은 각기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그 안에서 내가 가진 집의 개념과 같은 인물을 찾으면서 읽는 재미도 있다. 혹시나 다른 시선을 가진 인물이 보인다면 새로운 시선으로 지켜봐도 좋다. 꼭 내 집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영선, 자산 증식 수단으로 부동산이 최고이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많다고 여기는 주 대리, 부동산으로 인생 파산까지 경험하고 다른 곳에서 위로를 얻으며 사는 카페 사장 휴 씨. 어느 한 사람에게만 마음 두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인물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에 읽으면서 같이 힘들어진다. 지금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이러하다. 묻고 싶은 게, 듣고 싶은 대답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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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7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02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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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사피엔스 읽다가 포기했다. 나 같은 독자 많을 것 같은데? (아니면... 음..) 그래픽 히스토리로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기뻐했는데, 1년에 한권씩이라니. 이거 너무 감질나잖아. 연재를 안 보는 이유가 다음 회 올라오는 거 기다리기 싫어서인데. 출간 간격 좀 좁혀주시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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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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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겠지. 내 자식이 예쁘고 귀하다. 마냥 품에 안고 키울 수 없으니, 내 아이가 집 밖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한다. 그저 아이를 잘 돌보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을 바라던 시절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부모는 내 아이가 또래와 잘 어울리는 것이 큰 바람이 됐다. 학교에서 별일은 없는지, 아이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내 아이가 왕따나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한다. 공부를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걱정이, 바로 학교 폭력이나 왕따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되었다.


사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까지 끊은 일은 너무 자주 들려오는 뉴스다. 피해자는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그 고통을 끝내고야 말았을까 싶고, 가해자는 왜 자기 잘못도 반성하지 못하고 폭력을 반복하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그 가운데 피해자의 부모가 있다. 내 아이가 왜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기도 전에 눈앞에서 아이가 사라진 고통을 감당하는 부모. 당사자가 아니어서 명확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로 아이를 보내줘야만 했다. 아이가 떠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이상한 퍼즐 조각들. 평소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알아가는 과정 역시 고통스러웠다. 시게아키의 아버지 역시 아들과 아내를 잃고서 진실에 근접하게 된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가족을 모두 잃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도키타는 아버지의 반대를 비웃으며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불량배의 타깃이 된 후로 괴롭힘을 당한다. 계속된 갈취와 폭력에 시달리던 도키타는 이제 포기했다. 차라리 죽이라며, 험한 발길질에도 웃을 수 있었다. 그날도 공원에서 류지 일당에게 맞고 있던 도키타 앞에 피에로가 나타나 도와준다. 류지 일당은 일단 후퇴하고 도키타는 살았지만, 이 평온이 오래가지 않을 것은 안다. 피에로는 도키타에게 제안한다. 류지 일당을 벌해주고 싶은 시나리오와 계획을 짜라고, 자기가 그 애를 죽여주겠다고.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것도 잠시, 도키타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완전범죄로 만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가능할까? 마음으로는 당연하게 나쁜 놈들을 벌해주고 싶지만, 더는 괴롭히지 못하게 속 시원히 죽여주고 싶지만, 그게 완전범죄로 가능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어차피 살인한다는 건 살인 이후의 책임에 대해서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일 텐데, 도키타는 살인자가 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것 역시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매일 맞고 갈취를 당하느니 자기가 죽는 게 쉽겠다고 생각했을 거다. 피에로의 제안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건, 어차피 나쁜 놈들을 죽이는 거고, 그 살인에 죄책감은 필요 없다는 당위성이 생기기도 해서다. 역사적인 그날, 학교 폭력으로 자살이 계속된 매년 116일을 저주의 날로 만들기 위한 디데이를 설정한다. 더는 류지 일당이 이 폭력을 이어가지 않도록 이 살인을 기어코 완성하리라. 도키타 역시 그들에게 계속 당하고 있지 않으려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실행해야 했다. 피에로의 도움으로 이 계획은 반드시 완성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폭력의 중심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가 있다. 아이들의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동시에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돈을 뺏고 의기양양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 같은 방식이 반복되면서 가해자는 더 쉽게 돈을 갈취하고, 폭력의 강도는 심해진다. 피해자는 처음에 반격하지만, 점점 힘을 잃는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며 포기하고, 그저 맞고 있는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기적처럼 그 고통을 같이 해결해주겠다는 이가 나타난다면 손을 잡지 않겠는가? 피해자가 눈앞에 있어도 다른 이들은 모두 방관자가 되어 힘 앞에 무릎 꿇고 마는 상황에서, 믿을 사람이 나타났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아무도 학교 폭력에 대해 바로 보지 않았다.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두려움에 빠져 피해자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게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건 아닐까. 마치 주변의 두려운 시선을 즐기는 듯, 가해자의 폭력은 날로 심해지고 뻔뻔해졌으니 말이다.


작가는 단순히 학교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만 비추지 않았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서술하면서 독자에게 그 피해의 정도와 절망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닿게 하면서도, 가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묻는다. 가해자들에게 쌓인 가정 폭력의 시간이 아이들을 어떻게 성장하게 했는지 확인시킨다. 피해자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의 두려움과 외면을 담는다. 폭력 앞에서 다양한 위치에 서 있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묻는다. 지금 이 피해자를 계속 외면할 것인가? 당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성공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피해자의 고통은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폭력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대물림하듯 이어지는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법이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흘러갈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억울함, 부모를 존경할 수 없는 슬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괴롭힘의 원동력이 되었구나. 그 사소한 시작에서 중대한 학교 폭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181페이지)


력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미성년자이고,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는 것은 절망적이다. 갱생을 목적으로 반성하고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준다는 의미겠지만, 그 갱생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건 누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단 말인가.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통의 감정을 피에로 페니가 나서주었지만, 그 역시 완전한 정의는 아니리라. 그런데도 우리는 읽으면서 페니의 등장에 안도하게 된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감히 시도하기까지 어려울 그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줄어들지도 모르니까. 가해자가 감당해야 할 죄의 무게와 피해자가 이루려는 복수의 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 무조건 악인이고 무조건 선인이 아닌 게 인간이기에, 이 폭력의 기저에 놓인 한 개인의 성장을 보면서 누구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다.


나를 심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학교 폭력으로 아이를 잃은 유족뿐입니다. (261페이지)


언제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폭력의 중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소설이다. 너무 잘 읽히기에 더 무거워진 이 소설이, 학교 폭력을 걱정하고 학교 폭력의 중심에 있는 모든 이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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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자살 #복수 #살인 #피해자가해자 #방관자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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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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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자기가 앉은 자리에 따른 책임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당연하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 큰 노력을 했을 것이고, 또 그 자리 아래의 사람들까지 통솔하고 맡은 일을 수행하는데 책임이 따른다는 건 진리다. 그 자리 앉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힘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소장, 반장, 관공서와 공사 관계자들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인부들은 반장의 지시 아래 일하고 그에게 소속된 사람들이다. 반장의 팀에 합류해 공사 현장을 같이 다닌다. 여러 명의 반장 역시 공사 현장 소장의 지시를 따른다. 소장이라고 자기 맘대로만 할까. 그 역시 시행사와 공사와 관련된 여러 문제와 절차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한다. 피라미드 같은 구조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이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그 힘을 확인하고 즐기기도 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책임을 망각한 채로 말이다.


국도 옆에 파 놓은 터에 관을 메우는 공사 현장은 인부들의 바쁜 몸짓이 한창이다. 그사이에 다른 인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한 남자 선길이 있다. 반장은 그가 신경 쓰이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현장 소장은 선길을 멧돼지 보초병으로 세운다. 공사 현장과 멧돼지가 무슨 연관인가 싶을 테지만, 우습지도 않은 그 일의 배경에는 소장의 비리가 있다. 소장은 늘어나는 공기(공사 기간) 때문에 발생한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부족한 돈을 인부의 식사를 위한 현장식당 예산에서 챙긴다. 부실한 식사가 불만인 인부들의 항의에 소장은 밤에 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가 식당 부자재를 위한 비닐하우스 채소를 망가뜨려 놓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에 작업 현장에 끼지 못하고 어색한 선길을 밤의 비닐하우스 보초병으로 세운 것이다. 어쨌든 소장은 일 못 하는 사람을 자르지 않고 임무를 주어 하루 일당을 챙겨주고 있다는 생색을 낸다. 아무도 소장의 말에 대꾸 못 하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우리 인생과 닮은 공사 현장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 무언가를 채우고 올려세워 눈앞에 보여 주는 것. 어느 날은 땅을 파고 있던데, 며칠 지나서 보니 바닥이 단단하게 메워져 있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보니 건물 1층이 올라와 있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뭔가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게 신기해서 바라보기만 했지, 그 현장의 논리 속에 우리 인생이 걸렸다고 여긴 적은 없다. 하지만 닮았다. 우리 삶 역시 자꾸 배우고 노력하고 올라가면서 채워지는 거 아니겠나. 규정대로 공정하게만 오른다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현실의 전쟁터는 공정하지 않았다. 은폐와 카르텔로 얼룩진 불의의 현장 그대로였다.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비리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관리가 아니라 힘으로 움직이는 곳이 된 공사 현장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도 모자라, 피해자를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로 왜곡시킨다. 마치 그러니까 죽었지, 그래도 싸다라는 비난을 받아도 충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피해자의 가족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해 죄송한 마음으로 사죄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입힌 사람의 가족이 되었다는, 배우자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가야 한다. 관리자들이 관리를 잘한 덕분에.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46페이지)


처음 알았다. 관리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내가 아는 책임과 너무 달라서 말이다. 책임을 지는 게 아니고 지우는 거라는 말이 이렇게 섬뜩하게 들릴 줄이야.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든 시작이 누구인지, 어디인지 뻔히 알고 있는데 그 상황을 너무 쉽게 바꿔놓는 소장의 발 빠른 처리가 너무 무서웠다. 피를 흘리며 죽은 현장 근로자가 내 앞에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혹시 이거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사실인지 내 기억을 의심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 부조리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피해와 결말을 만들어내는지 적나라해서 이게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여겨도 충분했다. 이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얼마나 이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지 확인한다. 동시에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선택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것인지를.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던 악당이 세상 악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주변에 얼마나 평범한 악당이 많이 존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어쩔 수 없이 힘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우리다. 때로는 그 힘에 주눅 들고 타협하며,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대신 떠안으며 대가를 챙기기도 한다. 힘에 기생하는 작은 인간이기도 하니까. 현실 논리와 상황 논리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은 괴리감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소설 속 비극은 선을 넘는 일이었고, 불의를 보고 넘길 수 없게 했다. 슬프게도 이런 이야기는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일이기도 하다. 비극인데 흔하다니, 반복해서 일어나기에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게 절망적이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너무 익숙한 비극이 되어 이제는 그 슬픔과 불의조차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될까 봐. 그래서 마지막에 현경이 굴착기의 시동을 켰을 때 흥분했던가 보다. 아직 우리가 인간이기는 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이 불의를 그대로 묻어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같아서.



#관리자들 #이혁진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한국소설

##책추천 #소설 #문학 #불의 #악당 #카르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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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웃는 장례식 별숲 동화 마을 33
홍민정 지음, 오윤화 그림 / 별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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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일도 많아졌다. 정확하게는 나의 죽음 이후의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윤서 할머니 말씀처럼, ‘죽은 뒤에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무슨 소용이겠는가.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요즘이다. 아마 그 중심에는 점점 노쇠해가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겠지. 지난 6, 조금 늦은 엄마 생신을 챙기면서 가족이 모였다. 코로나 특수 상황에 우리의 모임은 참 오랜만이었다. 각자 살기 바쁘고, 거리 두기가 필수가 된 시대를 살아가는 게 어떤 모습인지 실감하던 때였다. 별것 없는 조촐한 상차림이었다. 포장 음식 몇 가지와 미리 주문한 케이크 하나, 엄마의 자식들과 손주들이 전부인 생신에 엄마는 울고 말았다. 이렇게 얼굴 보고 같이 밥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면서.


나 죽은 뒤에 우르르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 있을 때, 누가 누군지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지. 안 그래?” (31페이지)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서로를 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유한한 시간을 살면서도, 그 시간의 유한함을 자주 잊고 산다. 언젠가는 죽겠지,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생각한다. 혹시 나의 죽음을 정할 수 있다면,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예고된 죽음이면 좋겠다고. 내 삶을 정리하고 갈 시간을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마도 보고 싶은 사람 한 번 더 보고 싶은 바람이 아닐까 싶다. 윤서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이 가지는 의미는 그래서 와 닿는다. 내가 떠나기 전에 눈에 담고 싶은 장면일 거다. 사랑하는, 보고 싶은 사람들 한 번이라도 더 새기고 가겠다는 간절함.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동화였다.


윤서 할머니가 암에 걸렸다. 치료의 시기가 지나버려 이제는 암을 낫기 위함이 아닌, 조금 덜 힘들게 지내시다가 가시는 것만이 남았다. 자꾸만 악화하는 몸의 상태를 할머니는 더 기다릴 수 없다. 자기 생전에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며 윤서 아빠에게 말한다.


사실 이 가족은 대가족이면서도 소가족이다. 집에는 할머니와 윤서, 윤서 아빠가 산다. 근처에 사는 이혼한 고모가 자주 드나들면서 윤서네 주방을 책임진다. 윤서 엄마는 중국으로 파견 근무하러 갔다. 윤서 생각에, 어쩌면 엄마는 아빠와 이혼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은 윤서에게도 충격이었지만, 할머니의 소원이니 들어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도 경험이 없는 이 행사를 어떻게 치를 수 있을까 걱정되면서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잊지 않으면 될 것 같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사람, 할머니를 보고 싶은 사람이 기억하면 되는 거다. 갑작스러운 일에 온 식구가 혼란스럽다. 윤서는 여름방학에 엄마를 만나러 상하이에 가겠다는 것을 취소했다. 고모는 재혼하겠다고 예비고모부를 데리고 왔다. 아빠는 사이가 안 좋은 형제들에게 할머니 소식을 전하면서 자주 싸웠다. 할머니가 바라는, 생일날 치르는 생전 장례식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죽음을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질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장례식은 익히 그런 양상이었다. 죽은 이의 사진 앞에서 절을 한다. 이미 차려진 식사를 하고 아는 얼굴들과 이야기 몇 마디 나누다가 일어선다. 장례식의 주최자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죽음은 잠깐 스치듯 인사하고 나오는 자리가 된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고인과 유가족에게 예를 다했다고 여긴다. 이 동화를 읽으면서 예의를 표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의문이 들었다. 떠나고 없는 이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얼굴 보고 손을 잡고, 따스하게 나누는 안부가 더 깊게 새겨지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윤서와 친구들이 준비한 영상은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이자 생신날의 최고 선물이 되었다. 할머니 삶의 터전이었던 시장, 오랫동안 교류했던 시장 상인들의 인사를 담았다.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질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곧 떠날 할머니의 장례식을 이렇게 치러도 되나 싶은 걱정은 다 사라지고, 할머니가 바랐던 일을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 중의 하나는 후회일 텐데, 소중한 사람이 떠난 뒤에도 후회만 남게 될까 봐 걱정이 가득하게 만든 이야기였다. 죽음을 앞둔 윤서 할머니가 자기 삶을 이렇게나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감동적인지. 활자를 읽고 있는데,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활자가 자꾸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읽으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이다. 엄마 집 TV 옆에는 작은 액자가 하나 놓여있는데,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갔던 때 찍었던 사진이다. 엄마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농담처럼 저 사진을 엄마 영정사진으로 써야겠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엄마는 또 그러라고 대답한다. 이제 우리는 언제가 감당해야 할 엄마의 죽음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윤서 할머니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엄마의 죽음 후가 아닌 지금을 더 많이 생각한다. 더 자주 보도록 노력하자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고, 덜 미워하면서 살도록 애써보자고.


누구나 태어나고, 누구나 죽는다. 각자의 삶을 다르겠지만, 죽음의 운명은 똑같다. 인생의 끝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을 테니까. 할머니의 뜻대로 마련된 생전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울고 웃으며 마음을 나눈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미워하면서 지냈던 순간도 잊은 채로,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하려는 유대감을 싹틔운다. 마치 할머니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준 선물처럼.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장례식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게 아쉬울 정도로, 감동이 한가득 남은 이야기다. 아직 죽음을 생각하는 게 서툰 우리가 배워도 좋을,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하면 슬플 장례식을, 실컷 울고 웃으면서 읽었다. 눈물은 슬프지 않았고, 웃음도 가볍지 않았다.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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